2024-11-10

김성민 - 어제 마산 학생들이 일제 잔재라며 마산 박물관의 석물 두 개를 부수고 잡혀갔다. 난 운동권 학생들의... | Facebook

김성민 - 어제 마산 학생들이 일제 잔재라며 마산 박물관의 석물 두 개를 부수고 잡혀갔다. 난 운동권 학생들의... | Facebook


김성민's post

김성민

dnstoorpeSuh3049f0h78almhigg7a6g6g2m60g61533h8037l79c101825a ·

어제 마산 학생들이 일제 잔재라며 마산 박물관의 석물 두 개를 부수고 잡혀갔다. 난 운동권 학생들의 퍼포먼스에 공감하진 않지만 딱히 비판할 생각도 없다. 학생들은 퍼포먼스로 이름을 올렸으니 좋다. 마산 박물관에는 제대로 된 전시품이 없었는데 스토리텔링할 거리가 생겼으니 좋다. 서로의 호혜적인 이익이다.

이 전시 석물은 내 산책길에 놓여있다. 멀쩡할 때 사진 찍어뒀다. 수덕무강 水德无疆 물의 베품은 한이 없어라. 대충 이런 뜻이다. 소화 경오년 봄 이타가키 타다지가 썼다고 적혀있다. 찾아보니 1930년이다. 위에는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쓴 산명수청 山明水淸 산 좋고 물 맑네 대충 이런 글이 놓여있다.
전시는 뜬금이 없다.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맥락은 각자 알아서 알아봐야 한다. 맥락을 적어보자.


마산항은 일본과 러시아가 노린 요충지였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인은 마산에 신시가를 만들며 대규모로 정착했다. 봉암 저수지에서 물을 끌어와 추산정수장에서 정수해 물을 마셨는데, 신시가에 사는 일본인을 위한 인프라 건설이었다.
 
'마산이 생겨난 이후로부터 오랫동안 말성거리요 두통거리이엇고 일반 부민의 절규성이 끄닐사이업든 마산상수도는 필경 소화 이년에 공비 약 사십만 원 예산으로...' 동아일보 1930.3.26

마산 신사와 가까운 곳이라, 다시 큰 예산을 들여 공원화를 한다. 이 공원일대가 현재의 마산 박물관이 되었다. 정수장 물은 참 맛있어서 정종도 만들고 간장도 담궜다.
 
그런데, 여기가 끝이 아니다. 이 산 자체가 회원현성지 檜原縣城址다. 고려시대 성이다. 여몽연합군은 일본을 정벌하기 위해 전초기지인 정동행성을 마산에 세웠다. 몽골제국이 동쪽 끝에 세운 최대의 거점이다.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략은 두 차례에 걸쳐 장기간으로 행해졌다. 일본은 방어하긴 했으나 후유증을 감당하지 못한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고 전국시대에 들어선다. 임진왜란 때는 이 앞바다에서 이순신을 만나 다시 개고생을 하게 된다.

그 성의 기반이 여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1970년대까지도 축대, 성벽, 해자 등 남은 유물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산 수출자유지역 건설에 골재가 많이 필요했기에 깔끔하게 뜯어갔다. 천년의 역사를 청소한 셈이다. 마산 박물관에는 천년의 역사 대신 소니 구형 5.1채널 스피커가 전시되어 있다. 누가 보면 박물관이 아니라 당근인 줄 알겠다.
그러니, 학생들의 망치질을 탓하는 건 참 무안한 일이다. 유물에 망치질하는 건 마산의 전통놀이다. 얼쑤.











Park Yuha

이타가키라는 사람은 마산과 목포의 부윤이었던 사람이네요.
https://ja.wikipedia.org/.../%E6%9D%BF%E5%9E%A3%E5%8F%AA...


Author김성민

박유하 마산, 목포부윤에 행정고시, 사법고시(?) 패스에 잘 나가던 사람의 몰년이 미상이니 흥미롭네요.

Park Yuha

김성민 그러네요.^^ 온갖 회사사장까지 지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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板垣只二

出典: フリー百科事典『ウィキペディア(Wikipedia)』

板垣 只二(いたがき ただじ、1889年明治22年)4月5日[1] - 没年不詳)は、朝鮮総督府官僚。弁護士

経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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徳島県出身。井村乕吉の二男として生まれ、板垣住蔵の養子となった[2]1911年(明治44年)、東京高等工業学校(現在の東京工業大学)紡織科を卒業[2]。朝鮮総督府属、同税関鑑定官を務めた[3]1921年(大正10年)、高等試験行政科に合格[2]。朝鮮総督府税関監視官・事務官、税関関税官、理事官、馬山府尹、木浦府尹などを歴任した[3]

退官後の1932年(昭和7年)、高等試験司法科に合格し、弁護士を開業した[2]1935年(昭和10年)には中央大学法学部を卒業した[2]

その他、東京ビタミン製造会社社長、第一化学工業株式会社社長、北陸工業株式会社社長、小倉鉱業株式会社社長、時事写真速報株式会社取締役会長、京浜昭興株式会社社長、共立企業株式会社取締役、蔵前工業会館株式会社取締役、共立興業株式会社取締役、壁谷ゴム工業株式会社取締役、銀座昭興株式会社監査役などを務めた[2][4]

著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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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関税行政法論』(青山堂書店、1931年)

脚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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参考文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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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事興信所編『人事興信録 第9版』人事興信所、1931年。
  • 人事興信所編『人事興信録 第12版(上)』人事興信所、1939年。
  • 人事興信所編『人事興信録 第14版(上)』人事興信所、1943年。
  • 帝国秘密探偵社編『大衆人事録 第14版』帝国秘密探偵社、1943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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