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2

‘종족적 배타주의’는 새 정부의 미래가 아니다 박노자 2506

‘종족적 배타주의’는 새 정부의 미래가 아니다 2506

‘종족적 배타주의’는 새 정부의 미래가 아니다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수정 2025-06-03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며칠 전에 나는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지난달 22일에 전국역사단체협의회가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와 정책 협약식을 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놀랄 만한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역사단체협의회’ 같은 명칭은 다소 중립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협의회 소속 단체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그들이 대개 역사 연구자라기보다는 연구자들을 힘들게 하면서 역사의 사실과 무관한 ‘대안적 과거’를 구축해온 이들이다. 이 협의회 소속 단체 중에는 예컨대 최근 몇년간 ‘전라도 천년사’라는 대규모 역사서 편저자들을 “식민 사관의 소유자”라고 공격해온 이들이 있다. 그 이유인즉 소위 ‘임나일본부’라는 일제 식민주의 학설의 근거를 제공한 ‘일본서기’(720년)에 등장하는 몇개의 지명을 이 책에서 인용했기 때문이다.

역사 전공자라면 이런 비난이 근거가 없다는 것을 바로 알 것이다. 
일본서기 편찬자들의 황국사관이 일제 관학자들에 의해서 날조된 임나일본부설의 배경이 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서기가 가치 없는 책은 절대 아니다. 
역사단체협의회 소속 단체들이 문제 삼은 지명인 ‘기문국’(己汶國·전북 남원으로 추정)이나 ‘반파국’(伴跛國·경북 고령군 내지 전북 장수군으로 추정)이 등장하는 일본서기 기사들은 백제 계열의 사료에 의거한 것으로 해석된다. 즉,
 비록 편찬자들에 의해서 다소 윤색은 되었겠지만, 거기에 나오는 지명이나 사실들이 참고할 만하다는 것은 통설이다. 
더군다나 약간 다른 한자로 표기된 반파(叛波)는 중국 사료인 ‘양직공도’(6세기 초)에도 등장하며, 섬진강으로 해석되는 기문하(基汶河)는 또 다른 중국 자료인 ‘한원’(660년)에도 나온다. 
즉, 전라도 천년사 편저자들의 일본서기 활용은 세계 사학계에서 통용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을 뿐이고 임나일본부설 등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그
렇다면 전라도 천년사 편저자들은 왜 몇년간 이 ‘재야 사학’ 단체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을까.

문제는 이미 일본 학자들마저도 대부분 폐기 처분한 임나일본부설도 아니고, 이미 1960~70년대에 한국 사학계가 극복한 식민 사관도 아니다.
문제는 ‘재야’ 내지 ‘민족 사관’의 단체들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한반도의 역사상이다. 
이 역사상은 역사의 사실과도 무관하지만, 한국이 지금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전라도 천년사가 매도당한 근거 중 하나는, 바로 그 책의 편저자들이 언급한 영산강 유역의 장고분(전방후원분)과 같은 일부 유적과 거기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이 일본 내 고분들과 거기에서 출토된 고고학적 자료들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역사 교과서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듯이, 고대 한반도 출신의 도래인들이 일본 열도에 진출했다면 오늘날 국민국가와 같은 국경선과 비자 수속이 없었던 고대 세계에서는 일본 열도 주민들의 한반도로의 이주도 당연히 불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 부단한 섞임으로 이루어져왔던 교류와 혼종화의 역사적 사실은, ‘단일민족’의 신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아주 불편했던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역사상이란 바로 ‘우리’와 ‘남들’이 완벽하게 서로 차단돼 있는, ‘우리’만의 배타적 역사다. 그래서 그들의 또 하나의 공격의 초점은 바로 한나라 낙랑군의 중심이 오늘날의 평양에 있었다는 등 한사군이 한때 한반도의 일부 영토에 있었다는 사실로 향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도 낙랑군이 평안·황해도라고 봤고, 수많은 출토품 등으로 봐도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타자들이 ‘우리 땅’에 살았다는 것을 극단의 민족주의자들은 어디서나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일제 관학자들의 식민 사관에 반대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사관이야말로 일제의 자국 본위의 과대망상적 어용 사관을 이은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일제 어용 사관이 빚어낸 임나일본부 등의 낭설은 야마토 정권을 마치 ‘제국’처럼 묘사하여 고대 한반도를 일종의 ‘식민지’로 만들었지만, 오늘날 ‘재야’ ‘민족’ 사관을 주장하는 단체들 역시 고조선을 비롯하여 한반도의 고대 국가들을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제국’으로, 사료와는 무관하게 서술한다. 그들이 욕망하는 한반도 역사상은 타자들과의 경계선이 확실한, 부국강병의 ‘대국’이다. 그렇게 해서 역사 사실들이 왜곡되는 것도 문제지만, 과연 이게 미래를 향한 역사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충분한 수의 이민자들이 유입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한국의 총인구는 2100년쯤이 되면 반토막이 날 것이다. 초저출생률의 시대이자 인구 감소 시대에는 이민자들을 수용하여 통합시키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조선 대제국’을 억지로 상상해내는 것보다는, 실제 한국 역사 전반을 관통해온 이주, 교류, 혼합의 역사를 사실대로 규명하여 오늘날 다민족·다문화 사회 성립의 하나의 역사적 모델로 삼는 것이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일본 열도 출신들이 종종 마한으로 이주해 살았다면 그만큼 번창했던 마한의 소국들이 이주자들에게 매력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차라리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한반도 사료에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지만, 일본에 건너가서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된 고구려 승려 혜자나 일본 불화의 선구자가 된 담징(579~631)에 대한 기억을 담아준 일본서기를, 오히려 한반도 과거를 밝혀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다룰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월경(越境)하는 인구와 문화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대에, 월경의 역사를 중시하는 것은 미래지향적 태도다.

표밭부터 살피고 표를 의식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단일민족과 같은 과거의 신화에 갇혀 있는 일각의 유권자들에게 전국역사단체협의회와 같은 국수주의적 논리가 호소력이 있을 수 있기에 대선을 앞둔 시기에 민주당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해는 되지만, 그야말로 소탐대실의 전형적 사례다. 당장의 정치적 이해득실보다 미래의 다민족 사회로의 길을, 선견지명의 경세가들은 먼저 고려해야 한다. 아류 제국주의적 욕망과 종족적 배타주의는 결코 우리의 미래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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