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세계] 포스트 파시즘의 지배를 벗어나는 길
릴레이 기고⑦ 한국 파시즘의 성장 과정과 대안
김귀옥 한성대 교수·사회학
발행 2025-03-19 07:24:46
가가
편집자주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의 발호를 안팎에 과시했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극우세력의 음모론적 주장과 폭력적 양태가 거리를 채우고, 보수여당마저 끌려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현상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중국타도와 부정선거를 외치는 오늘의 극우파시즘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여당의 재집권이 저지돼도 극우파시즘의 폭주가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극우파시즘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간 여러 방면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연구자, 전문가들의 기고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극우 파시즘을 넘어 더 진보하고 진화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파시즘을 정의하는 일은 어둡고 그리고 아마도 텅 빈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일과 같다.” 대표적인 이탈리아 파시즘을 연구해온 사학자 존 위탐(John Whittam)이 1995년 발표한 Fascist Italy에서 했던 말이다. 한국에 정통한 파시즘 연구자가 많지 않지만, 최근 한국에 넘쳐나는 극우 파시스트적 증상에 의해 이를 분석 및 대응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파시즘(fascism)을 둘러싼 규정은 논자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역사적 파시즘에서 공통되는 요소는 극단적 국가주의 또는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에 대한 공격과 반동, 여성이나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난민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격하는 이론으로 무장한 카리스마적 영웅과 강력한 힘에 대한 찬양과 의존, 방법론적으로 파시즘은 공동체적인 생활 과정과 방식을 띠며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 세력이나 개인을 ‘적’으로 간주하여 제거하기 위한 실천을 하면서 대중운동으로 진화하였다.
1970년대~1980년대 전세계적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번영과 민주주의가 공존할 때는 파시즘은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듯했다. 21세기 들어 번영과 민주주의 간에 균형을 잃게 되면서, 포스트 파시즘(Post-fascism, 혹은 신파시즘)은 합법·비합법 공간에서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활동하여 그 세력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남갈등’으로 극우 파시즘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래로 청와대 인근 동네와 광화문에는 전광훈과 손현보 목사를 추종하는 신도이자 집단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때로는 이스라엘기를 내세우고 때로는 소녀상을 더럽히며, 일제의 옹호자가 되어버린 노인들이 다수를 이루는 태극기집회를 이끌어 왔다. 또한 최근 잇단 대학가 극우집회와 서부지법폭동 등을 주도해온 신남성연대와 과거 극우 남성의 대표적 사이버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약칭 일베)와 허위정보(거짓뉴스)와 알고리즘을 도구로 삼은 극우 유튜버들, 여기에 보수와 극우 사이를 동요해왔던 ‘국민의 힘’ 정당의 강성 우익지도자들이 결합하며, 극우 파시즘 운동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2024년 12.3비상계엄령 포고는 불붙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낯설다고 말한다. 또 혹자는 이미 2010년대 초부터 사이버 커뮤니티를 장악하기 시작한 일베의 등장에서 반여성이나 반호남, 반민주 세력들의 폭력에서 그 징조를 보았다고도 한다. 특히 2014년 가족을 잃고 애통해하던 세월호참사의 유족과 생존자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온갖 욕설, 비아냥과 거짓을 유포하며 ‘폭식 투쟁’을 하던 일베의 활동에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 일베는 얼굴 없이 온라인에만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한 ‘온툭남’(온라인에서 툭 튀어나온 남성) 중 한 사람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휘하에서 일베식 국정운영을 이끌기도 했다. 전통적 가치를 앞세우며 선남사상과 동성애 혐오주의, 가부장제, 군사주의 문화를 이끌 지도자로서 윤석열 대통령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과 사실상의 식물화로 응답했다.
한국 역사 속 파시즘
그렇다면 과연 21세기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극우 파시즘이 자리 잡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21세기 징후적 파시즘적 요인과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파시즘적 요인이 결합하여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는 오랫동안 청산되지 않은 국가주의와 반공주의, 군사주의와 함께 친일문화가 있고, 민주화 이래로 반민주주의와 반성평등주의, 반인권, 자본주의, 그리고 기독교 근본주의 등이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교차되고, 결합되어 21세기 파시즘의 징후를 보인다.
현재 극우적 상황에 동조하거나 적극 지지하는 극우적 입장은 연령대로 70대 이상 노인층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현재 70대 층은 해방 이후 출생 세대이므로 일제문화와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 현재 70대가 태어나고 자랐던 해방 이후로부터 한국전쟁을 경유한 1950년대 한국 사회는 언어만 한국어로 바뀌었지, 일제문화가 사회 곳곳에는 자리 잡고 있었다. 특히 학교에서는 일제 강점기 ‘국민’학교 학생들이 했던 국가 동원 운동과 유사한 대중운동이 전개되었다. ‘전조선 대학, 전문, 중등, 초등 학교 학생 217만5천 명을 총동원하여 신사참배, 국방헌금, 위문대 증정, 애국일기념식 거행’을 했다. 물론 1937년 ‘애국의 날’이 일제에 의해 제정되어 일반인들은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다. 또한 신사참배와 국방헌금과 위문대 증정을 ‘애국’이라 명명되었다. 황국신민정신과 내선일체를 완성하며, 강제동원을 기본으로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은 일제의 전시총동원체제를 만드는 중요한 도구였다. 전체 조선인 대다수가 황국신민화와 일제의 적국이었던 영국과 미국, 그리고 구 소련에 대한 적대시 정책 특히 반공·반소 선전교육에 대량으로 동원되어 전체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일제는 학생들이나 일반 주민들에게 철저한 적대교육을 시켰다. 일제 말기 소위 ‘황국신문화’교육은 천황과 군국주의, 애국심 배양을 위한 근로교육과 국가주의 교육으로 정착되었다. 1968년 ‘국민교육헌장’의 기원으로 얘기되는 ‘교육칙어’가 천황관을 배경으로 한 전체주의적 독재와 식민주의 차별교육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식민주의 차별의식에는 강력한 애국심에 기초한 국가주의와 가부장적 성차별주의, 계급차별주의, 일본식 인종주의와 함께 민족서열화가 내장되어 있었다. 현재 70대 노인층 중에는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일제의 황국신문화 사상이 뿌리 깊게 박힌 부모와 교사들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라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인간의 성찰적 의식 작용은 그러한 일제의 식민주의 파시즘교육에 대한 자성을 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 환경이 과거와 완전히 절연되거나 자신을 반성하는 사고의 힘이 없다면 그러한 성찰성이 발현되기란 대단히 어려움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 교육과정이나 정치·사회적으로 일본식 파시즘 교육과 문화의 청산은 1970년대까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승만의 일민주의나 박정희의 반공·멸공주의 체제에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경험하면서 국가주의적 동원과 파시즘 체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1968년 12월 5일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은 국가주의와 반공주의를 자유세계의 이념으로 보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국민’의 사명으로 규정했다. 6월이 되면 소위 ‘10종의 반공대회’, 즉 반공전시회, 반공 웅변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동화 대회, 반공 포스터 및 표어 그리기 대회, 국기 그리기 대회, 멸공 선언문 쓰기 등과 같은 대회가 개최되었다. 종종 개최되는 반공궐기대회에는 해당 지역의 중·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녀회, 재향군인회, 반공청년회 등 각종 관제NGOs가 동원되었다.
박정희를 이순신 장군으로 우상화시켰고 애국심과 군사주의, 반공과 경제성장주의를 앞세웠다. 박정희의 고유명사로 알려진 ‘새마을운동’은 1930년대 일제가 조선농촌을 재편성하여 농민을 황민신민으로 동원하려고 했던 개발을 통한 대중운동이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된 내막은 과잉 생산된 시멘트를 농촌지역에 도로와 집을 개량한다는 명목으로 소비하려 했던 게 의도였음은 훗날 밝혀졌다. 아무튼 성공적 농촌재건운동이었다고 하지만, “잘살아보세”라고 외친 국가와 달리, 저곡가정책으로 농촌을 탈출하는 인구는 걷잡을 수 없었다. 또한 일제 강점기로 유래한 ‘반상회’가 이승만 정권에서 부활하여 박정희 정권에서 강화되어 관주도로 운영되었다. 그 반상회는 명목상으로는 주민간 상호 친목과 부조의 도모였으나, 독재시대에 국민에 대한 감시, 통제, 및 동원의 최하위 수단이 되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전체주의 사회 기층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현대 한국을 파시즘 사회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군사주의를 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군사주의 사회 원형으로서 상명하복의 사회가 만들어지지만, 분단 이래로 반공·냉전과 군사주의는 더 철저하게 결속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북한 역시 다르지 않다. 군사주의의 요체는 일제로부터 정립된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이다. 군사주의는 학교에서 시작되어 군대에서 조직화·실전화되고 “까라면, 까”를 배워온 과거 ‘군필남’은 기업이 선호하는 1순위 재원이었다. 대개의 기업 대표는 ‘전제군주’인 양 호명되었고, 그들에게는 상명하복에 철저한 군필남 남성이 기업문화에 적합했다. 또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학원의 병영화와 학생의 군사화가 강화되었다. 1975년 5월 20일 문교부(현 교육부)가 밝힌 학도호국단 창설 목적은 군사훈련과 함께 면학과 호국정신을 강화하는데 있었다. 그 외에도 민방위훈련 등은 직장인이나 일반 시민의 군사주의적 동원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니 현재의 60대 장년층에도 그러한 파시즘의 국가주의 문화는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의 학생의 군사화와 국가의 동원수단화 정책이 완전히 성공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민주화 과정에서 반민주, 반인권적, 전체주의적 군사주의문화는 학생이나 직장인, 때로는 일반 시민들이 독재에 대한 저항을 하도록 동기부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국 파시즘과 기독교 파시즘의 만남
현재 한국의 파시즘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기독교 파시즘 체제이다. 1920, 30년대 미국의 기독교 파시즘(Christian fascism, Christofaschismus), 나치시대의 ‘독일 그리스도인 운동’(Die Deutsche Christen-Bewegung)과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정치신학’(Politische Theologie) 등의 공통성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그리고 혐오를 정당화하는 동일한 기제에 의해 작동’(박성철의 “한국교회 내 기독교 파시즘에 대한 비판적 연구”(2020))하는 데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독교 파시즘은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을 통하여 신성화 또는 신격화된 자본주의와 손을 잡았다. 번영 또는 성공을 통하여 신의 선택을 입증하면서, 약자와 가난한 자를 죄악시하는 인식을 정당화했고, 파시즘의 적대개념을 채택하도록 만들었다.
과거 한국의 기독교 파시즘은 반공주의와 손을 잡았다. 해방 직후 한경직 목사가 월남 직후, 세웠던 ‘베다니전도교회’ 즉 현재의 영락교회(1946년 11월 12일, 영락교회로 개칭)와 서북청년회의 만남은 미군정의 비호가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승공사상 고취를 목표로 한 영락교회는 설립 이후 1970년이 되면 신도수 1만4천여명에 달하며, 설립한 교회만도 전국에 100여 개에 달했다. 한경직 목사는 여수·순천10·19사건 당시, 지리산 일대에서 구국 전도 운동을 펼치면서 '구국전도대가'를 짓기도 하였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 이 강산에 나리시사
자유의 종 크게 울려 / 새나라가 되었도다
일어나 일어나 / 십자가의 정병들아
진리의 띠 굳게 매고 / 성신의 검 높이 들어
악마 화전 소멸하자(글쓴이 강조, 영락교회 창립50주년기념사업 역사분과위원회의 『한경직목사설교전집(1)』 (1971) 중).

한경직 목사는 반공운동을 '십자군 운동'으로, 이교도 '악마', ‘카인의 후예’, 즉 좌익세력을 소멸시키는 일로 비유하였다. 그는 적을 악마로 정의함으로써, 동족이자, 민간인이라는 의식을 마비시킬 수 있도록 정치신학을 구축했다. 초기 영락교회 청년회인 ‘베다니청년회’ 회원들의 상당수가 서북청년회였다. 서북청년회는 4.3항쟁의 국가폭력의 대리자이지만 행위의 자율적 주체가 되어 제주도민을 맘껏 유린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한 인식과 폭력을 계승한 세력 중 하나는 다름 아닌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민주화운동의 국가폭력의 도구로서 폭력을 자행했던 백골단이었다. 그런 21세기 백골단이 지난 1월 9일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에 의해 국회 기자회견장에 버젓이 나타났다.
1980년대 한강의 기적 이후 한국의 기독교 교회는 대형화와 권력화, 개인화의 길을 달려 갔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강부자(강남 땅 부자 줄임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줄임말) 정부라는 말조차 나왔다. 기성의 부유한 대형교회에서 배제당하고, 경쟁주의에서 탈락한 사람들을 포섭한 기독교 교파가 바로 신천지교회(이만희), 세계로교회(손현보) 등과 같은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손현보의 세계로교회는 예배와 같은 종교적 역할뿐만 아니라, 이승만학교를 세워 기독교입국론이라는 가치를 앞세우면, 복지, 친목, 각종 공동체, 각종 사업체를 통하여 손현보 목사는 강력한 리더십과 발휘해왔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대면예배를 강행하여 폐쇄조치를 당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과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법부 위에 있”음으로 선포하며 윤석열 지지 집회를 전광훈 목사와 함께 기독교 파시즘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아스팔트 우파를 지배하고 있는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와 손현보 목사와의 최근 갈등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파시즘 세력들이 갖고 있는 공통성은 국가 위에 종교적 가치, 때로는 목사의 말과 공동체를 그 위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약칭 한기총)는 신성모독을 행한 전광훈 목사를 대표회장직을 탈락시켰고,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수 차례 성명을 통하여 전광훈 ‘사이비’, ‘거짓 예언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전광훈이 이끄는 집회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파시스트적 발언이나 행동을 서슴지 않고 선동할 뿐만 아니라, 윤석열을 지지함으로써, 강력한 폭력과 미디어로서 유튜브, 포퓰리즘을 통하여 극우세력들을 결집시키고, 각종 수익사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더 많은 권력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한 배경에서 1.19 서부지법폭동을 ‘국민저항권’, ‘자유민주항쟁’ 등으로 정당화시키며, 민주화 세력의 가치, 신념, 행동을 미러링하고 있다. 한국의 파시스트집단을 지지하는 미국이나 일본의 극우세력을 연결하고 윤석열의 음모론적 주장을 지지하며, 세력화하고 있는 흐름마저 보인다(“미국 극우세력, 윤석열 살리기에 모든 걸 걸었다”, 『민들레』 2025/03/17). 미국의 기독교 파시스트 세력과 한국의 파시스트 세력과 이미 모종의 연대를 수행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공공적 가치를 실천하는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파시즘을 정의 내리기 어렵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도 쉽지 않다. 다만 현재와 같은 파시즘이 서식하거나 발호하는 데에는 번영과 민주주의의 균형이 깨지는 지점이라는 공통성이 발견된다. 왜 미국과 같은 나라에 극우세력이 집권하는 일이 재현되는가?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대니얼 마코비츠(Daniel Markovits)가 말하는 ‘엘리트 세습’에서 찾을 수 있다. 엘리트 세습은 ‘신(新)신분제 사회’를 의미한다. 경제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때로는 무기력하기도 하며, 시민은 민주주의의 장식품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런 사회에서 중산층이 빈곤화될 지경이니 하층의 빈곤 문제에 대해서 민주주의는 별다른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일자리를 준다는 포퓰리스트 트럼프에 대한 열성적 지지자들은 2020년 의회 테러를 ‘자유민주주의적 항거’로 정당화하게 되었으나, 구조적으로 볼 때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미국 사회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불평등은 심상치 않다. 1998년 IMF위기 상황에서 출범하여 남북공동선언을 이뤄내었고 IMF 채무를 청산했던 김대중정부를 제외하고 노무현정부나 문재인정부 모두 경제문제 해결에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노무현과 문재인정부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토지와 세금 문제를 포함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데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탓에 보수정부에 권력을 넘기게 됨으로써, 민주주의는 경제문제에 취약하다는 인식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더 큰 불행은 보수 정부하의 대통령들은 설상가상으로 정치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무능하거나 부패하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공고해지지 않는다. 한국 현대사 속에서 민주정부를 만들기 위한 피 흘린 항쟁과 평화의 노력이 길고 지난했건만 여전히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은 척박하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방해물이자, 분단의 결과물인 국가보안법과 분단 자체는 한국 민주주의 토양을 빈영양화시키는 주범이다. 그러나 분단을 극복하는 과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약칭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사상의 자유를 온전히 담보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향유하기는 근본적으로 제약되어 있으나, 우리는 한반도의 최소한의 평화상태, 즉 평화협정을 통한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을 해야 민주주의 토대를 두텁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이 존재해야 다양한 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정당이 활성화될 수 있다. 현재 한국에는 극우와 중도보수의 양당제가 자리잡혀 있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여성, 청년, 노인, 외국인노동자, 사회적 소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정당이 없거나, 있더라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독일이 우크라이나 위기를 겪으면서도 정치적 안정을 회복할 수 있는 데에는 다당제와 연합정치의 오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독일 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 정당이 2위를 차지하여 이탈리아의 길을 걷게 되는가 우려했지만, 기독민주당 연합과 사회민주당이 차기 연합정부 구성에 대한 합의를 통해, 극우의 길에 대한 우려를 잠식시키고 있다. 나치의 교훈을 기억하는 시민의 지혜와 결단이 작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단히 취약하다. 민주공화정이 제대로 작동되는 데에는 민주공화주의적 가치와 헌정주의적 법제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주체들이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고, 합리적인 판단과 지혜로운 결단을 해야 한다. 학교와 사회에서의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이 아무리 많아도, 경제불평등 상태가 방치되는 한, 그리고 민주주의가 대의제 선거 민주주의에 머물러 있는 한, 파시즘의 온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최근까지 파시즘적 인식과 행동에 노출된 시민들을 정리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가치와 입장을 공존하되, 일상의 민주주의와 민주적 정치과정을 통하여 소통하고 조율하며 타협하고 존중할 수 있는 정치 철학과 방법론이 작동되어야 한다. 한국에 민주주의와 공공적 가치를 수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한국 사회 대전환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련 기사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