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일본군 강제동원에 대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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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이집트사 강의 오류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된 후, 재즈 강의에 대한 오류 문제도 나오면서 그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체로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설민석에 대해 내리는 비판의 요점은, 그가 전공자가 아님에도 무리하게 강의의 영역을 확장하다가 결국 많은 거짓 정보(팩트 오류)를 제공하게 됐고, 이것은 결국 '예견된' 참사였다. 뭐 이런 식이다.
언론과 일부 비평가들이 주로 비전문가의 역량 부족이 불러온 문제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설민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설민석 만큼 재미있게 강의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런 실수야 노력해서 없도록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거기에 설민석은 ‘벌거벗은 세계사’프로의 오류에 대해서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근 이집트사나 재즈 강의 이외에도 설민석이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사실 관계에 어긋난 내용들을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페북 등에서도 전공자들의 많은 지적이 있었다. 나도 술자리에서 다른 전공자들과 같이 얘기하다보면 설민석의 강의에 대한 오류를 무더기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 뭐 사실 관계 틀리는 거야 예전부터 지적된 문제니까. 하지만 과연 설민석의 문제점이 단순히 팩트 오류뿐일까. 그 자체도 전문성을 지향하는 강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더 크게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설민석의 강의가 지향해온 바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오히려 그의 강의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결론과 메시지가 갖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민석의 강의는 예능프로의 숙명이겠지만, 소비 위주의 강의, 즉 사람들이 익숙한 주제를 선정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정서를 중심에 두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부에서 그놈의 ‘올바른’ 역사관을 강조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형태의 ‘내러티브’를 대학 수시면접에서 수도 없이 목도했다. 어린 학생들은 학업계획서 내지는 자기소개서의 맨 앞, 혹은 맨 뒤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매번 인용한다. 그 출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관심을 갖는 역사적 사건으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강탈당한 한국 문화재의 반환 문제를 든다. 학창시절에 역사와 관련해서 했던 활동을 꼽으라고 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자극되어 교내에서 왜 동북공정이 잘못됐는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과 논리를 정리해 학생과 교사들 앞에서 발표한 것을 사례로 든다. 거의 예외가 없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을 피해자로 놓고 일본을 가해자로 하는 명확한 선악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획일적인 역사상이 주류이며, 현재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들 틈에서 그들의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야만 하는 약소국인 한국의 처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이를 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바로 자신이 사학과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여 그 ‘올바른’ 역사관을 전달하는 첨병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가 좋아하는 역사가는 누구지?” “설민석이요.”
사실 이게 어린 학생들의 잘못이겠는가. 다 가르친 어른들의 잘못이지. 어찌보면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로 80여 년이 흘렀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국민교육 체계와 획일적인 민족주의 정서 속에서 위와 같은 ‘올바른 역사관’의 강요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본연의 목적은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역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사회, 외교적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시되어왔다. 역사 전공자는 당연히 이런 논리를 만드는데 복무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어린 학생들은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해 이미 정해진 정답의 논리를 달달 외워서 읊으면 훌륭한 역사관을 가진 것처럼 치켜세워왔다.
일선 학교, 그리고 언론에서도 그것이 마치 우리 역사교육의 지향인 것처럼 흔히 다뤄왔으며, 여러 국가기관과 박물관 등에서도 각종 공모전을 통해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사고의 획일화를 강요해오지 않았던가. 바보 같은 짓거리들이다. 역사학이 무슨 정훈교육이냐. 그럴 거면 차라리 국민윤리 교육 과정 집어넣든가, 따로 ‘역사사관학교’ 세워서 사관생도들을 키워내든가 하지.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숨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역사학의 특징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의 성향과 진행과정을 탐구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 그와 더불어 자기 자신에게 강요되어온 각종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는 것, 한마디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본다. 특히 자기가 살아가는 한국사회와 자기 주변,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통시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끊임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할 때, 그것이 반공이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념이든간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설민석이 해온 강의에는 그런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의식이 없다. 그가 해온 가장 큰 실수는 단순히 팩트 오류가 아니라,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 지금 시점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역사학자가 지향해야할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는데 있다. 스스로 역사의 ‘그랜드마스터’니, 역사를 바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해온 건 약삭빠르게 사람들이 듣기 좋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지식’만 뽑아서 쏟아냄으로써 기존에 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해오던 구태의연한 사회적 정서와 고루한 인식체계에 편승한, 말그대로 ‘예능’을 해온 것에 불과하다.
그의 강의에는 지금 시대에 한국에서 인문학이 지향해야할, 역사학이 지향해야할 메시지가 없다. 그런 학계의 논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전달할 능력도 없다. 그러고도 그가 마치 역사학에 큰 권위가 있는 사람처럼, 한국사의 대가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생 ‘멘토’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고 띄워졌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인문학을 가장한 그의 달콤한 언변에 일반 대중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몰려간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이 그렇게 수년, 혹은 십수년을 퇴보해간다.
결국 방송, 언론, 출판계에서 계속 그렇게 만들어왔잖아. 그렇게 설민석이라는 돈 되는 브랜드를 계속 키워나가고, 니들은 거기에 빌붙어서 같이 돈 벌어먹고. 지금이야 팩트 오류를 지적하지만 결국 또 그 ‘가짜 멘토’를 열심히 키워서 같이 갈 거 잖아!
한편으로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설민석이라는 존재를 지적질할 때마다 갖는 자괴감이지만, 매번 전공자들이랑 설민석에 대한 비판이 끝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이 엄습해온다. 열심히 설득되어 설민석이라는 ‘멘토’가 마음속에서 사라진 학생들이, ‘그럼 한국사 관련해서는 무슨 책 읽어야 돼요?’, ‘교수님들이 쓴 책은 왜 그렇게 어려워요?’라는 질문들에 전공자들은 웃음기가 싹 가신다. 솔직히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전공자가 쓴 권위 있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책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는 중고등학생들한테 제대로 추천할 책이 몇 권 없을까.
역사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그 수요를 제대로 읽어내고 거기에 부응할 능력을 제대로 못 갖춘 것이 현실이다. 전국의 대학에서 사학과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인문학의 숙명일까. 사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진로를 제대로 설정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공무원 시험으로 쏠리는데, 학과 교수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학과의 커리큘럼도 거의 바뀌질 않는다. 연구자들은 그저 국가에서 내주는 얼마 안 되는 연구지원금에나 매달리고, 마치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전공자들은 이전의 연구자 중심의 사고체계를 못 벗어나고 있으면서 대중역사가들의 무모한 시도에 ‘팩트체커’로 나서서 지적질하는 능력밖에 없는가. 그렇게 잠시 동안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에 의기양양해하는 거야 좋지만, 필연적으로 물어오는 ‘대안’이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제2, 제3의 설민석들이 대중들을 상대로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에 역행하는 ‘퇴행적’ 강의들을 쏟아낼 때, 이러한 흐름을 돌이키고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대체품’을 만들어낼 생각도 해야하지 않을까.
당장 설민석이가 강의에서 틀린 사료를 제시했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연구자들이 제대로 된 컨텐츠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더 분개해야지.... 아닌가. 그건 지고지순한 학문을 다루는 전문 연구자로서 너무 ‘경박한’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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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K이충원, Hyuk Bom Kwon and 1.2K others7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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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잠실 5단지의 친구집에 놀러간 적 있었다. 그 집 안에는 사람 몸하나 겨우 누일만한 작은 방이 있었는데, 예전에 식모방으로 쓰였다고 했다. 친구가 거실에서 버튼을 누르자 '따르르릉'하고 날카로운 호출음이 울렸는데, 그 소리에 흠칫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골에서 부모들이 입하나 덜겠다는 마음으로 어린 여자애들을 도시 부유한 집으로 넘겼고,
마나님이 그 애들을 집안일에 부리기도 했던, 전근대적인 우리 시대의 잔영들. 불과 얼마되지 않은 일인데,, 아직까지 제대로된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어린딸내미들 식모로 팔아버린 일들에 대해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지 않나. 반성어린 고백이 나올시기가 한참 지났는디 말이여. 아홉살, 열살 고사리손으로 살림살이허든 애들. 그저 밥만맥여주고 핵교만 보내주면 만고땡. 입하나 던다고 딸내미들 노예로보내고. 부자집만이 아니라 어염집에도 많았던걸로 아는디 이러고선 우리가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난할 자격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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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은 제국주의 국가만허는거여?. 보통사람은 해서는 안되는거고?. 그땐 다그랬지하고 넘어가면 되는건가? 그러면서 닥치고 남탓, 남들만 숭악시러운 놈들이라 지껄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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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가가려고 딸 팔아먹는 심청전. 평안북도 철산지방 실화였던 장화홍련전. 식모문화. 이런놈들이 위안부문제 백날 얘기해봐야 누가 믿어? 왜 우리는 화만 내고 남들한티만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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