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준 updated his status.
도종환이 겉으로 유사역사가들과 선을 긋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하는데. 그런다고 이전에 이덕일, 복기대 등 과 함께 동북아역사지도사업의 폐지를 추진했던 과오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실제로 그는 이 문제에 대해 한번도 사과나 유감을 표명한 적이 없다.
그리고 지난주 26일에도 인하대 고조선연구소가 주축이된 고려 국경문제 관련 세미나에 복기대, 김세연의원과 더불어 참석을 했고 '식민사학' 운운하는 발언을 했다. 동북공정 추존이라는 비난이 근현대사 뉴라이트를 대상으로 한 발언인가.
설사 그것이 학계를 대상으로 한것인지 아닌지 분명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유사역사학에 대한, 그리고 과거 동북아역사특위에 대한 본인의 과오에 대해 명확한 입장표명이 없이 그를 신뢰하는 것도 어불성설 아닌지.
'선의'는 무슨.. 자신의 과오로 인한 국가적, 학문적 폐해를 한번도 인정 안한 인간에 대해 '선의일거야' 하면서 이해하고 덮어주는게 정치.사상적 융통성인가. 안희정이 생각난다.
All reactions:
26263 comments
Like
Comment
이덕일의 아무말 대잔치
이쯤되면 완전히 아마추어의 아무말 대잔치다
본인이 아마추어가 아니라 전문가라 부르짖는다면,
다시 말해 이 게시물의 서술에 '전문가'로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See more
○『삼국사기』 불신론이란 미스테리
1971년 우연히 발견된 공주 무령왕릉의 지석은 백제 무령왕이 서기 523년 5월 붕(崩)했다고 쓰고 있다. 붕(崩)이란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릉 조는 재위 23년(523) 5월 훙(薨)했다고 적고 있다. 훙(薨)은 제후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김부식은 무령왕의 죽음에 대해서 백제인들이 황제의 죽음인 붕(崩)이라고 쓴 것을 제후의 죽음인 훙(薨)이라고 낮춰 적었지만 사망 연도는 물론 달까지 일치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어떤 사안들을 누락했을지는 몰라도 『일본서기』처럼 연대를 조작하거나 없던 일을 조작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자들도 아닌 한국인 학자들이 광복 72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따위를 신봉하는 것은 미스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 고등비판?
사실 미스테리일 것도 없다. 아직도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식민주의 근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를 적극 옹호해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되었던 전 동국대학교 교수 이기동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17대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모두 부인하면서 김씨 성을 가진 내물왕부터가 신라 역사의 전부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물론 없다, 그렇게 보고 싶다는 희망사항뿐이다. 이기동은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1980)』라는 책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초기기록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등비판(高等批判)’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식민사학자들의 용어에 휘말리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된다. 이기동이 말하는 ‘고등비판’이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가짜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짜라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보니 ‘고등’ 운운하는 말로 세상을 속이는 것뿐이다.
-실증사학? 그냥 우기는 것뿐
자신들의 머릿속 생각 외에 이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모는 유일한 근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스승들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뿐이다. 쓰다 소키치나 이마니시 류, 스에마쓰 야스카즈 같은 스승들이다. 그 중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체계화했던 인물은 만주철도에서 돈을 받고 한국과 만주의 역사를 연구했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다. 쓰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상대(上代) 부분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근거는? 물론 없다. 자기가 그렇게 믿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일제 식민사학이나 그 한국인 추종자들이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학문이 아니다.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학문인데,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사군 한반도설’뿐만 아니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다. 실증사학? 웃기는 말이다. 식민사학계에 무슨 ‘실증’이 있나? 사료적 근거가 있는데도 그토록 토론을 기피하나? 그냥 우기는 것뿐이다. 역사학이 아니다. 굳이 ‘학’자를 붙인다면 카르텔학이다. 일본극우파 및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과 굳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학일 뿐이다.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통한다.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뿐만 아니라 「고구려본기」, 「백제본기」도 모두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쓰다 소키치는 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모두 가짜로 몰았을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통한다. 쓰다 소키치는 『조선역사지리』에 그 이유를 써 놓았다.
“(한반도) 남쪽의 그 일각(一角)에 지위를 점유하고 있던 것은 우리나라〔倭國:왜국〕였다. 변진(弁辰)의 한 나라인 가라(加羅)는 우리 보호국이었고 임나일본부가 그 땅에 설치되어 있었다(쓰다 소키치, 『조선역사지리』)”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반도 남부에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삼국사기』는 가짜가 되어야 하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 편찬자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쓰려고 마음 먹고 왜곡한 『일본서기』는 진짜가 되어야 한다. 복잡할 것이 없다.
-총론 비판, 각론 추종
‘가야=임나설’도 모두 이 때문이다. “모든 길은 임나로 통한다”, 이것이 절대명제다. 그나마 쓰다 소키치는 지도에서 임나를 경상도 김해 지방으로 한정했는데, 조선총독부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전라도까지 확대시켰다. 근거는? 물론 없다. 그런데 김현구 씨는 임나의 위치에 대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명 비정(比定)은 스에마쓰 설을 따랐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43쪽)”라고 썼다. 총론에서는 비판하는 척하지만 각론에서는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추종하는 ‘총론 비판, 각론 추종’은 한국 식민사학의 생존술이다(계속)
All reactions:
43안정준 and 42 others8 comments
Like
Comment
Share
민주당에서 역사, 인문학을 대하는 행태를 보면 많이 무섭다.
그동안 수차례 '역사 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선 전력도 있지만, 이제는 새 정부 들어서면 ‘뉴라이트'를 죄다 청산하겠다고, 그들의 '매국행위'를 조사하는 위원회를 만든다고 한다. 그렇게 만든 국회의 <우리역사바로알기의원모임>에는 '일제 식민사관의 청산'을 부르짖는 <바른역사시민연대>를 비롯해 이덕일, 나간채 등 사이비 인사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그래서 '올바른' 역사랑 '매국' 행위는 누가 어떻게 판별을 하실 건가.
All reactions:
130김영재, Yuik Kim and 128 others7 comments
6 shares
Like
Comment
Share
가을이라, 낙엽도 지고, 학교 주변은 참 평화로워 보이는데, 책상에서 신문을 한 페이지 열어보면, 세상에 온갖 기회주의자들이 활개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인간들은 평범한 군중들의 불안과 분노, 그리고 욕망을 먹고 자란다. 마이크를 들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선동해 철저하게 자기 출세나 사업에 이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꼴을 빤히 보고도 뒷짐만 지고 있는 이들의 ‘무관심’에 의해 키워진다. 정치, 대선도 그렇지만, 학문이라는 분야에서도 그런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이제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과거 식민지배 하에서도 꿋꿋하게 연구하고 펜과 붓으로나마 나라의 독립에 조력하고자 했던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연구가 이제는 몇몇 저열한 인간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낙랑군 = 한반도설>을 긍정하면 '식민사학' 추종자이고
* <낙랑군 = 한반도설>을 부정하면 '민족사학'을 따르는 것이다.
이따위 도식적인 식민사관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현재 학계의 연구는 낙랑군의 한반도설을 긍정하니 우리 민족의 주체적 발전을 부정하는 매국(賣國)의 역사학이다.”라는 헛소리를 시전하고 다니는 인간이 있다. 아니, 그럼 조선후기에 <낙랑군 = 한반도설>을 주장했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식민사학자입니까 라고 따지자 횡설수설..
그러고는 나랑 기경량, 위가야샘이 역사비평에 글을 쓴 일에 대해 두고두고 원한이 깊었는지, 생물학적 나이만 어린 ‘무서운 아이들’이 ‘거대 친일 카르텔’에 의해 동원되어서는 이런저런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자기 같은 ‘민족사학’추종자들을 공격한 끝에 결국 대학에 교수자리를 얻게 됐다는, 구질구질한 음모론을 온갖 유튜브 채널이랑 자기 저서에 쓰고 다닌다. 스스로 정인보, 신채호와 같은 민족사학의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고작 한다는 짓이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론이나 조작하는 수준이다.
몇 년 전에 내가 광개토왕릉비 관련해서 대중강연을 나섰을 때, 청중 가운데 연세가 좀 많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강연은 잘 들었고,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시원하게 한번 말해보시오!!”라는 요구를 받은 적 있다. 아고,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게, 그때 미리 커다란 태극기라도 하나 준비해놓았다가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도 만세!”하고 삼창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무슨 ‘거대 친일카르텔’의 사주를 받아서 그들에게 거액을 받아 챙겼고, 심지어 ‘카르텔’인지 뭔지한테 교수 자리도 떡하니 하사받았다는 오해를 덜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분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하고 무지한 ‘반일선동’에 놀아난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아니, 어쩌면 이덕일 그분은 그런 고만고만한 지식과 정서 속에 살아온 분들까지도 최대한 ‘선동’하여 자기 꿈을 실현하는데 철저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인간일 수도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이덕일이라는 사람이 과연 민족주의 역사학과 북한학계의 연구를 제대로 계승하는 것인가. 이 사람의 학설을 따라야만 신채호나 정인보, 북한의 김석형, 박시형 등의 항일연구자들을 존숭하는 것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친일 기득권자이 되는가.
북한학계에 의해 평양 지역에서 <낙랑군 초원4년 호구부>가 출토되어 공개된 일에 대해, 이덕일씨는 뭐라고 했던가. 이건 다 북한의 조작이다. 북한이 남한학계의 식민사학(낙랑군=재평양설)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개한 위작이다. 대한민국에 불리한 자료다 라고 서슴없이 주장하지 않았나. 순 억지에 아무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음모론과 반공논리까지 펼치며 자기가 해명할 수 없는 자료는 무조건 조작, 내지는 위작이라고 규정한다.
이덕일씨는 북한이 평양 지역에서 발굴해 보고한 ‘낙랑고분’을 토대로 남한학계가 북한측과 다른 결론을 낸 것, 즉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일대로 본 것이 ‘사기’라는 식의 망동을 거듭한다. 내가 역사비평에 낸 글에서도 북한측의 연구 결과 자체를 ‘조작’한 뒤 모두 낙랑군의 고분으로 결론을 뒤바꾼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 ‘조작질’로 국민들 다수를 속인 뒤, 내가 ‘거대 친일 카르텔’의 휘하에 들어가 교수직을 받았다는 스릴러물을 거리낌 없이 창작해낸다. 벌써 한 4~5년 지났는데, 얼마나 사무친 분노가 깊었는지 요새는 만드는 컨텐츠마다 기경량, 안정준 이름은 꼭 빼놓지를 않으신다. 아니, 저보다 저 ‘악랄한’ 기경량샘을 물고 늘어지셔야지. 그분은 무려 일본 야쿠자들의 자금을 받는다는 설도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이덕일씨, 평양과 황해도 지역의 ‘낙랑고분’은 ‘낙랑국’의 것이라는 게 북한학계의 공식 결론이죠. 그들은 주체사상에 의거해 평양땅이 역사상 단 한번도 ‘외세’에 의해 지배된 적이 없다고 이념적으로 주장하니까요.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그렇게 정치적인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평양의 낙랑고분에서 나오는 중국 관리의 이름과 호구조사가 기재된 중국 군현의 공문서 등 모든 사료들까지 ‘낙랑국’에다 맞춰서 해석하는 거죠. 하지만 제가 이미 다 글에 썼듯이, 그들이 제시한 모든 고고학적 근거들은 죄다 중국왕조의 군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죠. 중국 군현의 관리이름이 왜 평양의 무덤에서 나옵니까. 중국 군현이 아닌 ‘낙랑국’에서 왜 낙랑군의 하위에 있던 소명현, 출신의 인물이나 부조현의 관리 무덤이 왜 나와요. 거기에 대해서 당신이 도대체 무슨 해명을 한 게 있어요. 그저 무책임한 ‘조작설’이나 들이대고, 자기만의 ‘친일역적놈’들 명단이나 만들었을 뿐이지.
현재 남한과 중국,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 연구자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따를 이유가 없죠. 그러니 당연히 평양에서 나온 수많은 발굴 자료와 중국 군현관련 문자자료들을 낙랑군과 관련된 걸로 보는 게 정상 아닙니까. 제가 역사비평에 남한학계의 연구 성과와 결론을 제시했지, 북한학계의 결론이라고 인용했나요? 제가 사기를 친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언급한 <안정준이 북한학계의 연구 결과를 거짓으로 인용했다>라는 발언이 사기입니까. 같은 사료를 두고 남북한학계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원인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교묘하게 ‘사기’치고 있는 건 당신 아닌가요? 그러니 당신을 ‘사이비 역사가’라고 하지. 그럼 당신을 정인보, 신채호선생님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불러야 합니까.
최근 가야사 문제로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설 문제를 들고 나온 방식도 예전에 동북아역사재단을 상대로 하던 방식과 똑같다. 먼저 국회의원 한두 명이 국정감사 때 <국가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일본 식민사학의 주장을 인용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다>고 문제제기를 하며, ‘비주류학자’가 참여한 발표회를 요구한다. 상급기관의 요구로 이덕일이 학술대회를 나간다. 발표장에서 역사학계가 과거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따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민족사학 입장에 의거한 자기주장이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국립 기관에서 30여 차례 이상의 단독 강연을 요구한다. 세상에, 어째 감사기관들 압박해서 동북아역사재단에 하던 짓이랑...
# 이덕일의 주장에 따르면,
*‘임나’라는 건 한반도에 없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임나’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 일대라고 보는데, 가야와 임나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이다.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보는 건 과거 쓰에마스와 같은 식민사학자들의 의견이며, 이를 따르는 것 자체가 임나일본부설을 따르는 것이다. 즉 한국 역사학계의 주장은 ‘식민사학’이라는 주장.
*이에 대해서 학계 연구자들은 ‘임나’라는 건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존재다. 관련 사료가 꽤 많다. 사료에 따라 가야 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고, 가야의 특정 국가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나온다. ‘임나’라는 존재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해서 ‘임나일본부’설이 맞는게 아니다.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으면 있었던 거지, 어째서 그 사실 자체가 왜가 4세기에 한반도 남부를 정복하고 그 지역을 장기간 통치했다고 하는 설을 정당화하는 게 되나. 4세기에 왜인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 활동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백제가 왜와 군사동맹을 맺고 한반도로 일부 군대를 파견하게 한 것일 뿐, 왜 정권이 그걸 주도해서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거나 그 지역을 지배한 적은 없다. 왜군이 나타난 기사에서 전쟁을 주도한 건 백제다.
아무리 이렇게, 아무리 반복해서 얘기해도 저쪽에서는 “그게 그거다!!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임나일본부설을 믿는 거다. 일제와 똑같은 ‘식민사학’이다. 술은 먹고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논리 아니냐, 빼액~”하며 이래저래 죄다 ‘식민사학’의 블랙홀로 끌어들인다.
토론자로 나온 연구자들이 꽤 여러 가지 사료를 들어 반박했다.
- 광개토왕릉비 영락 10년(400)조에 광개토왕이 왜(倭)의 침략을 받은 신라를 구원하러 보낸 군대가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 나오는 ‘임나가라’는 대체 뭐라고 봐야하나. 이 임나가라도 그럼 한반도 밖에 있었다는 건가? 민족주의 사학자인 위당 정인보 선생이나 북한의 박시형 같은 학자들도 이때 왜군이 신라 땅으로 침범해온 거라고 해석하셨는데, 그럼 이때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5만명의 고구려군이 한반도 남부로 출정했다가, 왜군을 쫓아서 남해 바다 건너 일본 땅까지 갔다고 봐야 되나? 그게 아니라면 정인보, 박시형까지 그놈의 ‘식민사학’으로 몰아붙일 셈인가.
- 신라에서 만들어진 <진경대사탑비>에는 주인공인 심희(審希)라는 사람이 분명 김유신의 후예이자, 임나(任那)의 왕족이었다고 나온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김유신 집안을 가야 금관국(金官國)의 왕족이라고 적은 것과 일치한다. 즉 <진경대사탑비>의 ‘임나’는 당연히 경상남도 김해의 금관가야를 말하는 거다. 당신 말대로 ‘임나’가 대마도나 일본 땅에 있었다고 한다면, ‘임나’의 왕족이나 신라의 영웅인 김유신 집안도 원래 일본 땅에 있었다는 것 아닌가.
- 삼국사기 강수 열전에 신라의 유명한 문장가인 강수가 “신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고 언급했는데, 그럼 여기 나오는 ‘임나’를 일본땅으로 봐야하나. 유명한 신라 인물들을 죄다 일본 출신으로 몰아갈 셈인가.
- 임나가 일본에 있다고 했는데, 그럼 임나는 도대체 일본 땅의 어디에 있었다고 봐야하나.
이런 토론자의 날 선 질문들에 이덕일은 도대체 무슨 해명을 내놨는가.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눈에는 이덕일이 완전히 궁지에 몰린 것 같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대외적 ‘노출’이고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일 것이니, 뭘 물어보든 상관없다. 토론장에서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그저 ‘큰소리’다. <앞 뒤 문맥이 잘 보이지도 않고, 일본에 의해 조작되기도 한 광개토왕비문 구절 갖고와서 무슨 근거랍시고 들이대느냐. 당신들 다 일본서기 믿는 거 아니냐, 식민사학자들...> 횡설수설...
그래도 다음날 언론 기사에는 「'남원 가야유적의 역사적 성격' 토론회, 찬반논쟁 후끈」 이런 식의 거창한 제목으로 기사가 나간다. 뭐가 ‘후끈’해, 아고, 속 터질 노릇이다. 이덕일은 그렇게 똑같은 엉터리 글을 들고 며칠 뒤 다른 학회에 가서 또 소위 ‘식민사학’ 성토질을 한다. 이게 대체 가야사의 발전과 지역 역사의 복원을 위한 학문 활동인가. 이덕일이 내세우는 ‘민족사학’의 틀에 끼워맞춰서 외국 연구자들 앞에 내놓으면 유네스코 문화유산 선정에 과연 더 유리해지는가?
과거에 북한의 김석형 같은 분들이 임나와 삼국의 분국 위치를 일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 있다. 정인보, 신채호 같은 분들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이 아닌 중국 영토에서 찾아야 한다고 언급하신 적 있다. 그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본서기를 해석하고, 광개토왕비를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하는 연구를 했고, 이에 맞선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일제의 부정한 논리에 맞서는 가운데, 낙랑군의 위치를 다르게 해석하고, 임나일본부설의 근저를 송두리째 흔드는 ‘분국론’ 등의 연구를 시도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80여 년이 흘러간 시점인 지금에 와서도, 우리는 그분들의 숭고한 ‘항일정신’을 이어받아 <낙랑군=중국땅> 설, <임나=일본땅> 설을 그대로 암송하고 옮겨 적어야 ‘올바른’ 역사관이 되는 건가? 그분들 말씀과 해석 하나하나를 수령님 훈시 마냥 따르지 않으면 죄다 ‘식민사학’으로 몰아붙일 건가? 아예 그냥 ‘경전’을 하나 만들어라. 주일마다 신도들이랑 모여서 정인보 가라사대, 김석형 가라사대하며 예배도 보고.
인문학이라는 건 시대가 지남에 따라 계속 움직이는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즉 과거의 ‘발언’이나 ‘문구’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다. 학문의 ‘계승’이라는 건 이전 시기의 연구자들이 그 시대의 ‘주류’가 갖는 문제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새 시대의 흐름에 맞는 지향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가치’를 배우는 것이지, 과거 누군가의 구체적인 ‘견해’와 주장에만 그대로 몰두하며 갇혀있는 게, 그게 ‘계승’이 아니다.
지금 현재 수많은 사료 속의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비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거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을 되살리는 거라는 어이없는 논리에 끌려 다니는 건 시대착오적 망상이다. 기원전 108년에 낙랑군이 한반도에 설치된 적이 있다고 해서 2천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가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될 거라는 멍청한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 자체가 바보짓 아닌가. 대체 왜 가야사 문제를 두고 똑같은 논리에 빠져드는 것인가.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난 뒤, 다른 어느 나라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민주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사회가, 왜 아직까지도 그런 철 지난 과거 식민사학의 ‘망령’에만 갇혀서 맴돌아야 하나.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자유롭게 연구해야할 대한민국의 역사학이 도대체 왜 저런 선동가 한두 명에 의해 국가기관이 압박을 받고, 심지어 세계에 내놓을 문화유산의 선정에까지 얼토당토않은 간섭을 받아야 하나.
대선 정국으로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국에 역사학을 둘러싼 이 작은 혼란도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흘러갈까? 세상 사람들이 당장은 이상한 놈들의 선동에 휘둘려서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휩쓸려도 결국은 ‘진실’에 귀 기울이고, 정리(正理)로 돌아갈까. 에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그러길 간절히 바라본다.
All reactions:
959513 comments
26 shares
Like
Comment
Share
그때그때 시류에 맞춰서 사도세자 죽음도 얘기했다가, 낙랑군 위치 얘기 꺼냈다가, 환단고기도 옹호했다가, 한반도 남부에 '왜'가 있다는 소리도 했다가, 이제는 임나일본부설을 꺼내들면서 일본서기 지명을 한반도에 비정하면 식민사학이라는 희한한 논리까지. 이덕일씨의 원래 전공은 근대 동북지역의 항일무장운동이라고 알고 있는데, 학자 코스프레하는 인간의 연구 스펙트럼은 한계가 없다.
이번 토론회(라고 쓰고 어거지 난동이라고 읽는다)에서 이강래 선생님이 이덕일의 정체를 잘 폭로하셨다.
그런데 이때 이덕일 옹호자들은 <전라도 천년사> 이야기만 하자, 이덕일 청문회냐 이런 식의 말들을 하면서 논점에서 벗어나려고 난리를 폈다.
이덕일의 이런 주장은 왜 중요하고, 왜 이야기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이덕일이 어떤 학문적 관점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 그때 그때 대중에 영합하여 자기 이득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덕일이 거기서 "그때 틀렸고 생각이 바뀌었다"만 했어도 조금은 나았을 것이다. (이렇게 나오면 또 세게 비판해줄 수 있다. 영업비밀이라 공개하지 않는다. ㅋㅋ)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거짓말로 당장의 자리만 모면하려고 했다. 이제부턴 뻔뻔하게 자기 주장은 그런 거 아니라고 외치고 다닐 것이다.
즉 지금 하는 말도 다른 이익이 생겨나면 그때는 또 바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해야 마땅하다.
이런 이덕일의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이덕일은 1996년에 쓴 책에서는 <환단고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의 어떤 역사학자도 <환단고기>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러 정황에 비추어 사실이 아닌 후대의 위작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이렇게 말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러나 후세의 용어들이 사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환단고기>의 내용 전부를 후세의 위작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중략) <환단고기>의 신봉, 비판 연구가 마치 전문연구가와 재야사학자를 가르는 기준으로 적용되는 듯한 현재의 폐쇄적·배타적이며 자기중심적인 학계의 연구풍토를 개방적으로 바꾸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2006년에는 평가가 이렇게 바뀐다.
>우리는 툭하면 위서다 뭐다 해서 부인하려고 애쓰는 동안 중국인들은 치우의 진실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2016년에는 이렇게 말이 완전히 바뀐다.
>제대로 된 연구를 통한 결론으로 '위서론'을 제기한 것이 아니라 '위서'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이 전제에 꿰어 맞춘 연구를 한 것이다. (중략) 비록 1979년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그 내용은 계연수가 편찬했다는 1911년 이전으로 소급해서 해석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되도 않는 말을 하는 인간들이 속출해서 내가 <유사역사학 비판>을 쓴 것이다. (한숨)
All reactions:
1101103 comments
2 shares
Like
Comment
Share
12월부터 KBS에서 모처럼 정통사극을 방영한다는데, '태종 이방원'이다. 예전에 '용의 눈물'이 아직 기억에 선한데, 모처럼 시도하는 게 또 이방원이냐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미 페북에서도 몇몇 분들이 지적하신 적이 있지만, 역사드라마에서 새로운 시도를 잘 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검증된 시나리오가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요즘 영화, 드라마들을 보면 기존에 나온 만화, 웹툰, 소설 중 대중성과 작품성이 어느 정도 검증된 작품들을 기반으로 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나름 흥행이 보증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역사 문제에 예민한 한국 사회에서 예전 '조선구마사'처럼 이런저런 시비거리를 양산할 ‘위험’을 안고 가기도 싫을테고. 그러니, ‘재탕’이라는 소리는 듣겠지만, 이미 검증된 스토리와 올드 팬층까지 있는 안정적인 시나리오를 택하는 게 아닐까.
만약 지금 나오는 사극들의 소재가 지겨워서 다른 걸 보고 싶다면. 누군가가 그럴듯한 역사 시나리오를 새로 만들고 이런저런 컨텐츠를 통해 검증을 하는 작업들이 필요한데, 과연 그걸 누가 만들 것이냐. 설민석? 이덕일? 아니면, 연애소설도 학술논문처럼 써낼 역사학자들?
동료 역사학자들 놀려서 미안하지만, 사실 나도 같은 처지라 ;;; 사료를 볼 줄 알고, 역사 '사실'들을 잔뜩 쥐고 있는 분들이, 지금 시대에 맞는 ‘이야기’들을 꺼내서 풀어낼 때가 아닌가 싶다. ‘역사’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많다고 하지만,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컨텐츠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낸 사례는 아주 드물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게임 등이 언급되지만, 그런 각양각색의 시도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건, ‘좋은 시나리오’다.
대학에서도 역사 전공자들이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내년에 우리 국사학과에도 ‘역사컨텐츠 만들기’와 ‘역사시나리오’ 만들기 전공 수업을 개설하게 됐다. ‘역사컨텐츠 만들기’는 이 방면 전문가를 섭외했는데, 시나리오 수업은 전임교수의 전공 수업 참여 비율이 일정 이상이어야 하는 규정도 있고 해서,,, 내가 맡기로 했다.
내년에 당장 시나리오 수업을 하겠다는 양반이 관련 저작도 하나 안 낸 실정이라, 대중서도 만드는 중이다. 대략 고대~중세의 사건 중심으로 7개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이를 이야기식으로 풀어보고 있다. 내년 초에 아마 나올 거 같다. 돈을 떠나서. 역사 전공을 살려서 취업해보고 싶다던 학생들이 결국 줄줄이 공무원 시험에 올인 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작은 시도라도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이런 저런 일들을 벌이는 중인데. 과연 긍정적인 효과가 날지는 알 수 없다.
수업도 듣는 이가 없고, 책도 망하고 하면.. 부끄러움과 함께 은퇴..
All reactions:
14214218 comments
4 shares
안정준
ooeSdrpstn4h7gmaa24hci0l72 4h81 g74aMa52u7391m52tu42i0ffu2yu ·
같이 중국어를 공부하는 분 중에 큰 무역회사에 근무하시는 분이 있다. 대화하는 중에 들은 바로는 요즘 대중 수출량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많이 바뀔 수 있기에 회사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했다. 최근 중문학과 선생님도 중국에 많은 공장을 짓고 값싼 인력을 이용하던 방식은 줄었고, 관련 기업들도 철수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일반인들의 경제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면의 수출 전략과 인력이 요구된다고 했다.
한국은 중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이해도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고, 젊은 친구들도 중국어와 문화를 깊이 공부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향후 상당 기간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옆에 있는 상황은 변함이 없고, 바뀐 추세에 맞춘 새로운 무역 방식으로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관련 인력의 충원과 더불어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0년대 말 이후 대중수출상황의 변동, 혐중정서 등 단기간 동안의 변화가 중문학과 지원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판국이라고.
어찌보면, 그러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평소 관심을 가졌던 어학과 경제,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넓힌 친구가 나중에 정말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될 거고, 다른 한편으로는 본인의 진로에 대한 만족감도 훨씬 높을 것이다.
굳이 특정 학과의 예시를 들지 않더라도. 주변에 보면, 학생들이 대학 전공을 택하면서 자기 개인의 오랜 관심사와 장기간의 전망을 고민하고, 넓게 조사하기 보다는, 그저 짧은 기간 동안의 가시적인 변화상과 주변 몇몇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요새 이쪽은 별로라더라’, ‘요즘 이게 뜬다더라’ 하는 수준의 근시안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평생 진로를 정하나.
의대 증원이 되니까 우루루 의대입시 학원으로 몰려가겠다는 반수생들은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상황에 어떻게 바뀔지 알고 저럴까. 사실 이런 학생들의 대다수가 과연 10대 시절 동안 자신의 진짜 적성과 관심사를 얼마나 깊이 고민해봤을까. 또 그 과정에서 부모들은 얼마나 열린 자세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었을까.
요즘 대치동에 ‘초등 의대반’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초등학생들의 진로를 아예 의대로 정해준 사람들은 그 부모들일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나, 자기 진로에 대한 주체적인 고민이 없는 친구들은 ‘멀쩡한’ 직업을 얻더라도 평생 ‘안정’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부모의 짧은 식견과 과도한 열등감이 애들 ‘미래’ 망치는 꼴로 연결되지 말란 법이 없다.
=====
무우상
ooeSdrpstn3h2gmaa24hci0l7 4h81eg74aJu52u7391m52tu42i0ffu2nu ·
듣다보니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한 말씀 남깁니다.
김재원 님은 진행자인척 중립인척 하면서 가장 일반 대중들을 비아냥 대며 이덕일의 거짓 주장도 구분하지 못하고 추종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로 상정하고 계시고, 다른 두 분 기경량님과 안정준님도 그 전제가 사실인양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비판하는 방식은 이덕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여집니다. 저도 비 전공자이지만, 역사와 과학 그리고 글쓰기등에 관심을 가지고 즐겨찾다 보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한 눈에 발견하진 못했을 지라도 관계자분들이 말씀해주시면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정도의 지능은 가지고 있고, 그걸 판별하는게 (지금의 수능의 방식)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해당 분야에 관심있고 열심히 공부하려는 일반 대중들을 믿고 함께 노력하자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게 옳지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덕일은 없는 사실이나, 해당 문헌에서 틀렸다고 이야기하기위한 예시로 든 문장을 마치 그 해당 문헌에서 주장하는 양 이야기하며 선동하고, 공부하기 싫어하며 이미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정해 둔 사람들에게 입맞에 맞는 변명거리를 쥐어주는게 목적인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 외곡됨과 거짓 + 악의를 끄집어 내는 과정에서 마치 일반 대중들 모두가 역사적 사실과 학문적 함의 및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몇몇 선동가에게 휘둘리는 멍청한 존재인 양 상정하며, 자신들 만이 진실을 알고있다는 태도는 너무도 위함하고 안이한 자세인 것 같습니다. 작금의 세태가 몇몇 법 전문가(로 위임되었던)들로 인해 나날이 무너져 가는 사회 시스템의 붕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과연 지금 당신들의 태도가 그들의 오만함과 얼마만큼 다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도 전문가나 관련 학계에 몸담지 않은 사람으로서 만인만색과 기타 주변분들의 멋진 저작활동에 크게 가르침을 받아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부탁말씀 드려봅니다.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팟캐스트 기경량 안정준 이문영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팟캐스트 ·
Follow
ooeSdrpstn3h1gmaa24hci0l7 4h81eg74aJu52u7391m52tu42i0ffu2nu ·
.
비오는 수요일입니다.
역사공작단, <사이비의 침습, 전라도 천년사 논란>
두번째 에피소드가 업로드됐습니다.
저희 팟빵 댓글창이 간만에 후끈해졌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노라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씁쓸합니다.
이번주 방송은 이덕일이 늘 선전하고 다니는 것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해드리는 내용입니다.
전라도가 낙후됐다고 썼다.
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했다.
마한의 기록을 부정했다.
고조선의 영역을 한반도로 국한했다.
.
.
말고도 상당수 됩니다.
그리고 저런 주장 전부 사실이 아닙니다.
안쓴걸 가지고 뭐라고 하니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시는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와같은 노력은 물론이고요, 사회자가 지적했듯 근본적인 문제제기, 역사교육의 목적과 지향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근대 이후의 교육은 거의 예외없이 ‘국민 만들기’의 범주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지난날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국민’들에게 ‘조국 근대화’도 이룩해내도록 그들을 애국애족의 일념을 가진 산업역군으로 키워내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던 과거가 있습니다. 학계에서 진전되어가고 있는 논의와는 별개로 그동안 ‘국사’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기획이 처음에 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성찰과 그 대안에 대해 광범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끼게 되는 시간이라고 여겨집니다.
댓글 많이 달아주시고요
재밋는 댓글 많이 보러 와주시고요
좋아요 많이 눌러주시고
홍보 많이 해주세요!
#전라도천년사 #이덕일 #사이비역사학 #사이비에버튼눌리는분들 #사이비안하면됩니다 #거참 #반지성주의 #엘리트주의 #도대체가 #가치판단에혼란이오면 #기준을먼저 #탐색하소서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만인만색역사공작단 #역사공작단TV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젊은역사학자 #역사 #한국사 #역사팟캐스트 #한국사팟캐스트 #팟캐스트추천 #팟캐스트 #유튜브 #한국사유튜브 #역사유튜브
안정준
===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