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3

안정준 | Facebook 이덕일

(3) 안정준 | Facebook
이덕일의 아무말 대잔치
이쯤되면 완전히 아마추어의 아무말 대잔치다
본인이 아마추어가 아니라 전문가라 부르짖는다면,
다시 말해 이 게시물의 서술에 '전문가'로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이것은 완전히 고소각이다.
오후에 이 게시물을 보고서는
이 게시물이 구체적으로 인쇄물로 나왔을 때 답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공유가 80개가 되는 걸 보고 결심했다.
불쌍한 추종자 가운데 몇몇이라도 사이비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길 희망해 본다
1.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그 이후의 연구경향에 대하여
1)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우리의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고, 4세기 이전 백제본기와 신라본기의 내용은 허구라고 주장하며 우리 역사를 왜곡한 데 대해서는 굳이 자세한 언급을 할 필요가 없겠다.
이것은 상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그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신빙성이 있다고 믿으면서 본심과 달리 신빙성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덕일의 저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도 등장하는 시게노 야스쓰구의 경우, 일본 근대 역사학의 개척자로 불리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실존을 부정하여 '말살박사'로 불리기도 했다. 저 일제식민사학자들은 그런 시각을 물려 받아 일본서기 등 자국의 역사서도 부정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삼국유사에 보이는 단군신화는 물론이고, 국왕의 재위연대가 비상식적으로 긴 점도 있고, 부자간의 나이차가 100살이나 되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믿는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나?(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들의 주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원래 하던대로 했다는 걸 짚고 싶은 것이다.)
2) 해방 후 우리 학계는 일제식민사학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삼국 초기 기록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리하여 나온 양대 견해가 '삼국사기 초기기록 수정론'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신빙론'이다.
전자의 '수정론'은 주류학계.... 이덕일이 말하는 '깽단사학'의 시각이다. 이걸 이덕일은 일제식민사학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는데, 실은 전혀 반대다. 현재 활동중인 수정론의 입장인 연구자들 대다수는 일제식민사학자들 및 이병도 신석호 등과는 당연히 일면식도 없고, 그 뒷 세대인 김철준 이기백과의 인맥을 따라 연구시각을 계승한 것도 아니다.(김철준의 경우 특이한 성격 탓에 제자들 대다수가 반목했다 - 이에 대해서는 이영호 교수가 검토한 바 있다- 이기백의 경우에는 아예 삼국사기 초기기록과 일본서기를 거의 논하지 않았다.)
기실 이 수정론의 입장인 연구자 대다수는 당초 일제식민사학의 삼국사기 초기기록 부정론에 대한 반발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검토과정에서 역시 왕계 및 사건발생 시점 등을 그대로 두고서는 도저히 합리적인 역사해석이라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삼국사기에 보이는 사건들 대다수는 믿을만 하나 왕계 및 각 사건의 발생연대는 수정해 보아야 한다는 시각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것이 수정론의 주된 논지인데, 연구자마다 시각도 다양하고, 어떤 경우에는 좀 과한 측면도 있어 학계 내부에도 비판과 논란이 많다
(이런 비판은 어디까지나 학문적 비판인데 이덕일은 내용무시하고 그냥 도식적으로 주장한다. 이병도는 쓰다의 제자다 지금 깽단 교수는 몽땅 이병도의 후예다 ㅋ 이런 도식을 믿고 이덕일을 존경한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정신상태인지 모르겠다.)
다음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신빙론의 경우, 일찍이 김광수 선생이 고구려사를 검토할 때 주장한 바가 있는데, 기실 고구려 초기기록에 대해서는 태조왕의 재위연대나 차대왕과 신대왕과의 관계, 고국천왕의 존부 등을 제외하고는 중국기록과도 대체로 부합하니 큰 논란은 없다.
핵심은 백제와 신라의 초기기록인데, 이 점에서 신빙론의 대표주자는 역시 이종욱 교수라 하겠다. 이종욱 교수의 주장 가운데 주목할 것은, 수정론 자체가 애초에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니 부정론과 무슨 차이가 있냐는 것이다. 이 점은 논리적으로는 나름 그럴듯한 논지이다. 그러나 기실 이렇게 주장하면 애초에 역사학 연구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적힌대로 외우면 되는 것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사실, 서로 충돌하거나 모순되는 것을 도출하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이 역사학의 본질이다.
그래도, 그나마 이종욱 교수까지는 학문적인 논쟁이었다.
그 제자인 이희진 박사가... 본인의 분노를 삭일 바 없어, 저서를 쓰면서,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 이병도는 쓰다의 제자다 지금 강단 사학자는 모두 이병도의 후예다 그러므로 지금 강단 사학자는 모두 식민사학의 후예다 라는 논리였다(이덕일의 주장하고 똑같다. 사실 이덕일은 이희진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그러나 이런 논리라면 이희진 본인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본인이 이종욱의 제자이고, 이종욱은 이기백의 제자이며, 이기백은 이병도의 제자가 아닌가? 저 도식이 절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라면 이희진 본인은 물론이고, 이종욱 교수도 역시 식민사학자가 아닌가? (이덕일은 고대사를 독학했으니, 어쩌면 모순이 아닐지도 ㅋ)
2. 무령왕릉 지석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부정론에 대하여
1) 이덕일은 이 글의 제목을 '삼국사기 불신론이란 미스테리' 라고 적어놓고 무령왕 지석으로 논지를 시작하고 있다.
'삼국사기 불신론'... 삼국사기를 몽땅 불신하는 설이 존재한다면 이건 어느 정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논점은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다. 그 초기기록이란 것은 백제와 신라의 4세기 이전 기록을 말하는데, 무령왕은 6세기에 재위한 왕이니 애초에 논외다
무령왕릉이 발견되었을 때, 무령왕이 승하한 시기가 삼국사기와 일치한다는 점, 훙이 아니라 붕이라 명명했다는 점 <= 이거 강단사학 모두가 기뻐한 일이다. 이덕일이 말하는 깽단사학이 이걸 기뻐했는데, 이덕일 추종자들은 뭐 좀 이상하지 않나?
2) 이덕일은 무령왕릉 지석이 삼국사기의 정확성을 밝혀 주었다고 떠들고 있으나..... 이덕일 지지자들이여... 일본서기는 휴지조각이라 말하는 자들이여 ... 이걸 어쩌나? 무령왕릉 지석을 통해 삼국사기의 정확성이 확인된 것은 저 사망연대 하나 뿐이고... 슬프게도 일본서기의 정확성이 확인된 것이 더 많다.
삼국사기에서는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되어 있는데, 일본서기에서는 무령왕이 곤지의 아들이고 동성왕과는 이복형제라고 되어 있다. 이 무령왕 지석이 발견되기 전에 일본서기에 보이는 왕계를 믿은 한국 학자는 거의 없다. 이것만 봐도 그 '깽단사학'이 삼국사기의 기록을 중요시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무령왕릉 지석의 발견을 통해, 무령왕이 동성왕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이 확인되었다. 즉 삼국사기의 왕계가 틀리고 일본서기에 보이는 백제 왕계가 신빙성이 있어진 것이다
게다가.... 일본서기에는 무령왕이 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嶋君(도군/しまきみ, 시마키미)라고 이름지었다고 나오는데.... 그 경과가.... 개로왕이 임신한 자기의 부인을 아우인 곤지에게 주면서 아이가 태어나거든 돌려 보내라 어쩌고 해서 도중에 섬에서 낳았다는 기괴한 이야기라... 우리 학계에서는 아무도 믿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무령왕 지석에 '백제 사마왕'이라 적혔으니 저 시마키미도 이제 완전히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거 어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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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1 이덕일 광신도들은 이걸 보고 내가 일본서기 추종자라 그러겠지만 ᆢ 뭐 마음대로 떠들어도 좋다 그러나 이것만은 기억하시라 일본서기에 허구도 많지만 백제 내부 기록을 베껴쓴 것도 많다는 것이다 ᆢ 즉 일본서기 전체를 휴지조각처럼 여기면 우리 백제인들이 쓴 기록의 단초가 홀라당 날라간다는 거다
일본서기에 보이는 무령왕의 저 왕계도 원사료는 백제인들의 손이나 입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다
2 저 삼국사기 초기기록이 앞뒤가 안맞거나 비합리적인 내용이 나오는 이유가 김부식 소행인 줄 잘못 아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기 이전에 이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가령 백제 온조왕 초반에 마한을 모두 통합한 기록 뒤에 다시 마한이 등장하는 기사를 서술해놓고... 김부식이 사론을 붙이기를... 마한은 이미 망했는데 또 나오니 그렇다면 부활한 것인가 하는 투로 멘트해놨으니... 김부식이 수집한 사료가 애초에 그 모양이었던 것이다.
(초기기록과는 좀 다른 문제이지만... 수나라 당나라와 고구려의 전쟁기사의 대다수는 중국기록을 베낀 것이다. 이걸 갖고 김부식이 고의로 우리 기록을 누락시킨 것으로 오해들을 하는데, 김부식의 사론을 보면 우리 기록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가령 주필산 전투에서 중국 기록을 쭈욱 베껴놓고 ... 유공권의 소설을 보면 당나라 황제가 두려워 하는 빛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들은 사실을 숨긴 것인가 하고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삼국사기에서 중국기록을 베낀 방식은.... 단순히 어느 한 사서를 베낀 게 아니라 구당서에서 한 구절 신당서에서 한구절 자치통감에서 한 구절 식으로 해서 세구절로 된 문장으로 짜깁기했다)
3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덕일은 참으로 행운아다
제대로 검토도 안하고 이렇게 간크게 남의 글을 조금씩 베끼고, 생각나는대로 왜곡하고, 생각나는대로 막 주워담았는데도, 박수 받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실 학문은 이렇게 제 멋대로 뚝딱 써서 내막을 잘 모르는 비전공자들을 상대로 선동할 일이 아니다.
이덕일에게 이르노니...
아마추어들 데리고 종교활동 하지 말고 연구자면 연구자답게 연구를 해라
박사학위 있으니 학회에 발표신청하면 받아 줄거다
학회에서 떡실신될 게 두려우면 반성하고 공부 좀 더 하시고
(이덕일은 이 글을 도대체 얼마동안의 시간을 갖고 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글을 30분만에 뚝딱 썼다. 그래서 좀 많이 투박한데... 이런 아마추어에게 이 정도 시간을 할애해 준 것만 해도 은택으로 여기기 바란다.)— with 안정준 and 이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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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불신론이란 미스테리
-붕(崩)을 훙(薨)으로 낮추긴 했지만.
1971년 우연히 발견된 공주 무령왕릉의 지석은 백제 무령왕이 서기 523년 5월 붕(崩)했다고 쓰고 있다. 붕(崩)이란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릉 조는 재위 23년(523) 5월 훙(薨)했다고 적고 있다. 훙(薨)은 제후의 죽음을 뜻하는 용어다. 김부식은 무령왕의 죽음에 대해서 백제인들이 황제의 죽음인 붕(崩)이라고 쓴 것을 제후의 죽음인 훙(薨)이라고 낮춰 적었지만 사망 연도는 물론 달까지 일치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삼국사기』는 고구려나 백제에 대한 어떤 사안들을 누락했을지는 몰라도 『일본서기』처럼 연대를 조작하거나 없던 일을 조작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학자들도 아닌 한국인 학자들이 광복 72년이 지나는 지금까지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따위를 신봉하는 것은 미스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국사기』 고등비판?
사실 미스테리일 것도 없다. 아직도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한국사를 바라보는 식민주의 근성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표 국정교과서를 적극 옹호해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이 되었던 전 동국대학교 교수 이기동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17대 내물왕 이전의 역사를 모두 부인하면서 김씨 성을 가진 내물왕부터가 신라 역사의 전부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물론 없다, 그렇게 보고 싶다는 희망사항뿐이다. 이기동은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1980)』라는 책에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초기기록은 진정한 의미에서 ‘고등비판(高等批判)’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식민사학자들의 용어에 휘말리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된다. 이기동이 말하는 ‘고등비판’이란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가짜라고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가짜라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보니 ‘고등’ 운운하는 말로 세상을 속이는 것뿐이다.
-실증사학? 그냥 우기는 것뿐
자신들의 머릿속 생각 외에 이들이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가짜로 모는 유일한 근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스승들이 그렇게 주장했다는 것뿐이다. 쓰다 소키치나 이마니시 류, 스에마쓰 야스카즈 같은 스승들이다. 그 중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체계화했던 인물은 만주철도에서 돈을 받고 한국과 만주의 역사를 연구했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다. 쓰다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상대(上代) 부분에 보이는 외국관계나 영토에 관한 기사는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근거는? 물론 없다. 자기가 그렇게 믿고 싶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일제 식민사학이나 그 한국인 추종자들이 ‘정설, 또는 통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학문이 아니다. 역사는 사료를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학문인데, 일체의 사료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한사군 한반도설’뿐만 아니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아무런 사료적 근거가 없다. 실증사학? 웃기는 말이다. 식민사학계에 무슨 ‘실증’이 있나? 사료적 근거가 있는데도 그토록 토론을 기피하나? 그냥 우기는 것뿐이다. 역사학이 아니다. 굳이 ‘학’자를 붙인다면 카르텔학이다. 일본극우파 및 조선총독부 기레기 언론들과 굳은 카르텔을 형성한 카르텔학일 뿐이다.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통한다.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 「신라본기」뿐만 아니라 「고구려본기」, 「백제본기」도 모두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쓰다 소키치는 왜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모두 가짜로 몰았을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가 아니라 모든 길은 임나일본부로 통한다. 쓰다 소키치는 『조선역사지리』에 그 이유를 써 놓았다.
“(한반도) 남쪽의 그 일각(一角)에 지위를 점유하고 있던 것은 우리나라〔倭國:왜국〕였다. 변진(弁辰)의 한 나라인 가라(加羅)는 우리 보호국이었고 임나일본부가 그 땅에 설치되어 있었다(쓰다 소키치, 『조선역사지리』)”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반도 남부에 고대판 조선총독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삼국사기』는 가짜가 되어야 하고, 연대부터 맞지 않는 『일본서기』, 편찬자가 처음부터 거짓말을 쓰려고 마음 먹고 왜곡한 『일본서기』는 진짜가 되어야 한다. 복잡할 것이 없다.
-총론 비판, 각론 추종
‘가야=임나설’도 모두 이 때문이다. “모든 길은 임나로 통한다”, 이것이 절대명제다. 그나마 쓰다 소키치는 지도에서 임나를 경상도 김해 지방으로 한정했는데, 조선총독부의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전라도까지 확대시켰다. 근거는? 물론 없다. 그런데 김현구 씨는 임나의 위치에 대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명 비정(比定)은 스에마쓰 설을 따랐다(『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43쪽)”라고 썼다. 총론에서는 비판하는 척하지만 각론에서는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추종하는 ‘총론 비판, 각론 추종’은 한국 식민사학의 생존술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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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 낙엽도 지고, 학교 주변은 참 평화로워 보이는데, 책상에서 신문을 한 페이지 열어보면, 세상에 온갖 기회주의자들이 활개치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인간들은 평범한 군중들의 불안과 분노, 그리고 욕망을 먹고 자란다. 마이크를 들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선동해 철저하게 자기 출세나 사업에 이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꼴을 빤히 보고도 뒷짐만 지고 있는 이들의 ‘무관심’에 의해 키워진다. 정치, 대선도 그렇지만, 학문이라는 분야에서도 그런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이제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과거 식민지배 하에서도 꿋꿋하게 연구하고 펜과 붓으로나마 나라의 독립에 조력하고자 했던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연구가 이제는 몇몇 저열한 인간들에게 ‘이용’이나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예전에 낙랑군의 위치 논쟁 때도 그랬다. 과거에 신채호, 정인보 등 민족주의 사학자들은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다는 걸 부정하셨으니, 마땅히 지금 현재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낙랑군의 위치를 논할 때,
* <낙랑군 = 한반도설>을 긍정하면 '식민사학' 추종자이고
* <낙랑군 = 한반도설>을 부정하면 '민족사학'을 따르는 것이다.
이따위 도식적인 식민사관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현재 학계의 연구는 낙랑군의 한반도설을 긍정하니 우리 민족의 주체적 발전을 부정하는 매국(賣國)의 역사학이다.”라는 헛소리를 시전하고 다니는 인간이 있다. 아니, 그럼 조선후기에 <낙랑군 = 한반도설>을 주장했던 실학자 다산 정약용도 식민사학자입니까 라고 따지자 횡설수설..
그러고는 나랑 기경량, 위가야샘이 역사비평에 글을 쓴 일에 대해 두고두고 원한이 깊었는지, 생물학적 나이만 어린 ‘무서운 아이들’이 ‘거대 친일 카르텔’에 의해 동원되어서는 이런저런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자기 같은 ‘민족사학’추종자들을 공격한 끝에 결국 대학에 교수자리를 얻게 됐다는, 구질구질한 음모론을 온갖 유튜브 채널이랑 자기 저서에 쓰고 다닌다. 스스로 정인보, 신채호와 같은 민족사학의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고작 한다는 짓이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음모론이나 조작하는 수준이다.
몇 년 전에 내가 광개토왕릉비 관련해서 대중강연을 나섰을 때, 청중 가운데 연세가 좀 많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강연은 잘 들었고,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인지 시원하게 한번 말해보시오!!”라는 요구를 받은 적 있다. 아고,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게, 그때 미리 커다란 태극기라도 하나 준비해놓았다가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도 만세!”하고 삼창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무슨 ‘거대 친일카르텔’의 사주를 받아서 그들에게 거액을 받아 챙겼고, 심지어 ‘카르텔’인지 뭔지한테 교수 자리도 떡하니 하사받았다는 오해를 덜 받을 수 있었을텐데.
그분을 보면서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 단순하고 무지한 ‘반일선동’에 놀아난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아니, 어쩌면 이덕일 그분은 그런 고만고만한 지식과 정서 속에 살아온 분들까지도 최대한 ‘선동’하여 자기 꿈을 실현하는데 철저하게 ‘이용’해먹을 수 있는 인간일 수도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이덕일이라는 사람이 과연 민족주의 역사학과 북한학계의 연구를 제대로 계승하는 것인가. 이 사람의 학설을 따라야만 신채호나 정인보, 북한의 김석형, 박시형 등의 항일연구자들을 존숭하는 것이 되고, 따르지 않으면 친일 기득권자이 되는가.
북한학계에 의해 평양 지역에서 <낙랑군 초원4년 호구부>가 출토되어 공개된 일에 대해, 이덕일씨는 뭐라고 했던가. 이건 다 북한의 조작이다. 북한이 남한학계의 식민사학(낙랑군=재평양설)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공개한 위작이다. 대한민국에 불리한 자료다 라고 서슴없이 주장하지 않았나. 순 억지에 아무 근거도 없는 무책임한 음모론과 반공논리까지 펼치며 자기가 해명할 수 없는 자료는 무조건 조작, 내지는 위작이라고 규정한다.
이덕일씨는 북한이 평양 지역에서 발굴해 보고한 ‘낙랑고분’을 토대로 남한학계가 북한측과 다른 결론을 낸 것, 즉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 일대로 본 것이 ‘사기’라는 식의 망동을 거듭한다. 내가 󰡔역사비평󰡕에 낸 글에서도 북한측의 연구 결과 자체를 ‘조작’한 뒤 모두 낙랑군의 고분으로 결론을 뒤바꾼 거라고 주장한다. 그런 ‘조작질’로 국민들 다수를 속인 뒤, 내가 ‘거대 친일 카르텔’의 휘하에 들어가 교수직을 받았다는 스릴러물을 거리낌 없이 창작해낸다. 벌써 한 4~5년 지났는데, 얼마나 사무친 분노가 깊었는지 요새는 만드는 컨텐츠마다 기경량, 안정준 이름은 꼭 빼놓지를 않으신다. 아니, 저보다 저 ‘악랄한’ 기경량샘을 물고 늘어지셔야지. 그분은 무려 일본 야쿠자들의 자금을 받는다는 설도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이덕일씨, 평양과 황해도 지역의 ‘낙랑고분’은 ‘낙랑국’의 것이라는 게 북한학계의 공식 결론이죠. 그들은 주체사상에 의거해 평양땅이 역사상 단 한번도 ‘외세’에 의해 지배된 적이 없다고 이념적으로 주장하니까요.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그렇게 정치적인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평양의 낙랑고분에서 나오는 중국 관리의 이름과 호구조사가 기재된 중국 군현의 공문서 등 모든 사료들까지 ‘낙랑국’에다 맞춰서 해석하는 거죠. 하지만 제가 이미 다 글에 썼듯이, 그들이 제시한 모든 고고학적 근거들은 죄다 중국왕조의 군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죠. 중국 군현의 관리이름이 왜 평양의 무덤에서 나옵니까. 중국 군현이 아닌 ‘낙랑국’에서 왜 낙랑군의 하위에 있던 소명현, 출신의 인물이나 부조현의 관리 무덤이 왜 나와요. 거기에 대해서 당신이 도대체 무슨 해명을 한 게 있어요. 그저 무책임한 ‘조작설’이나 들이대고, 자기만의 ‘친일역적놈’들 명단이나 만들었을 뿐이지.
현재 남한과 중국,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 연구자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따를 이유가 없죠. 그러니 당연히 평양에서 나온 수많은 발굴 자료와 중국 군현관련 문자자료들을 낙랑군과 관련된 걸로 보는 게 정상 아닙니까. 제가 역사비평에 남한학계의 연구 성과와 결론을 제시했지, 북한학계의 결론이라고 인용했나요? 제가 사기를 친 겁니까, 아니면 당신이 언급한 <안정준이 북한학계의 연구 결과를 거짓으로 인용했다>라는 발언이 사기입니까. 같은 사료를 두고 남북한학계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원인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교묘하게 ‘사기’치고 있는 건 당신 아닌가요? 그러니 당신을 ‘사이비 역사가’라고 하지. 그럼 당신을 정인보, 신채호선생님 같은 ‘민족주의 역사학자’로 불러야 합니까.
최근 가야사 문제로 일본서기와 임나일본부설 문제를 들고 나온 방식도 예전에 동북아역사재단을 상대로 하던 방식과 똑같다. 먼저 국회의원 한두 명이 국정감사 때 <국가기관인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일본 식민사학의 주장을 인용해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한다>고 문제제기를 하며, ‘비주류학자’가 참여한 발표회를 요구한다. 상급기관의 요구로 이덕일이 학술대회를 나간다. 발표장에서 역사학계가 과거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을 그대로 따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에 더해서 민족사학 입장에 의거한 자기주장이 더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국립 기관에서 30여 차례 이상의 단독 강연을 요구한다. 세상에, 어째 감사기관들 압박해서 동북아역사재단에 하던 짓이랑...
# 이덕일의 주장에 따르면,
*‘임나’라는 건 한반도에 없었다.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임나’가 한반도 남부의 가야 일대라고 보는데, 가야와 임나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이다.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보는 건 과거 쓰에마스와 같은 식민사학자들의 의견이며, 이를 따르는 것 자체가 임나일본부설을 따르는 것이다. 즉 한국 역사학계의 주장은 ‘식민사학’이라는 주장.
*이에 대해서 학계 연구자들은 ‘임나’라는 건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존재다. 관련 사료가 꽤 많다. 사료에 따라 가야 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였고, 가야의 특정 국가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나온다. ‘임나’라는 존재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해서 ‘임나일본부’설이 맞는게 아니다.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으면 있었던 거지, 어째서 그 사실 자체가 왜가 4세기에 한반도 남부를 정복하고 그 지역을 장기간 통치했다고 하는 설을 정당화하는 게 되나. 4세기에 왜인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군사 활동을 한 적은 있었지만, 그건 백제가 왜와 군사동맹을 맺고 한반도로 일부 군대를 파견하게 한 것일 뿐, 왜 정권이 그걸 주도해서 한반도 남부를 점령하거나 그 지역을 지배한 적은 없다. 왜군이 나타난 기사에서 전쟁을 주도한 건 백제다.
아무리 이렇게, 아무리 반복해서 얘기해도 저쪽에서는 “그게 그거다!!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임나일본부설을 믿는 거다. 일제와 똑같은 ‘식민사학’이다. 술은 먹고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논리 아니냐, 빼액~”하며 이래저래 죄다 ‘식민사학’의 블랙홀로 끌어들인다.
토론자로 나온 연구자들이 꽤 여러 가지 사료를 들어 반박했다.
- 광개토왕릉비 영락 10년(400)조에 광개토왕이 왜(倭)의 침략을 받은 신라를 구원하러 보낸 군대가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렀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 나오는 ‘임나가라’는 대체 뭐라고 봐야하나. 이 임나가라도 그럼 한반도 밖에 있었다는 건가? 민족주의 사학자인 위당 정인보 선생이나 북한의 박시형 같은 학자들도 이때 왜군이 신라 땅으로 침범해온 거라고 해석하셨는데, 그럼 이때 보병과 기병으로 이루어진 5만명의 고구려군이 한반도 남부로 출정했다가, 왜군을 쫓아서 남해 바다 건너 일본 땅까지 갔다고 봐야 되나? 그게 아니라면 정인보, 박시형까지 그놈의 ‘식민사학’으로 몰아붙일 셈인가.
- 신라에서 만들어진 <진경대사탑비>에는 주인공인 심희(審希)라는 사람이 분명 김유신의 후예이자, 임나(任那)의 왕족이었다고 나온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서 김유신 집안을 가야 금관국(金官國)의 왕족이라고 적은 것과 일치한다. 즉 <진경대사탑비>의 ‘임나’는 당연히 경상남도 김해의 금관가야를 말하는 거다. 당신 말대로 ‘임나’가 대마도나 일본 땅에 있었다고 한다면, ‘임나’의 왕족이나 신라의 영웅인 김유신 집안도 원래 일본 땅에 있었다는 것 아닌가.
- 󰡔삼국사기󰡕 강수 열전에 신라의 유명한 문장가인 강수가 “신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라고 언급했는데, 그럼 여기 나오는 ‘임나’를 일본땅으로 봐야하나. 유명한 신라 인물들을 죄다 일본 출신으로 몰아갈 셈인가.
- 임나가 일본에 있다고 했는데, 그럼 임나는 도대체 일본 땅의 어디에 있었다고 봐야하나.
이런 토론자의 날 선 질문들에 이덕일은 도대체 무슨 해명을 내놨는가. 바라보는 연구자들의 눈에는 이덕일이 완전히 궁지에 몰린 것 같지만, 그에게 중요한 건 대외적 ‘노출’이고 대중을 상대로 한 ‘선동’일 것이니, 뭘 물어보든 상관없다. 토론장에서 그런 질문 받을 때마다 그저 ‘큰소리’다. <앞 뒤 문맥이 잘 보이지도 않고, 일본에 의해 조작되기도 한 광개토왕비문 구절 갖고와서 무슨 근거랍시고 들이대느냐. 당신들 다 일본서기 믿는 거 아니냐, 식민사학자들...> 횡설수설...
그래도 다음날 언론 기사에는 「'남원 가야유적의 역사적 성격' 토론회, 찬반논쟁 후끈」 이런 식의 거창한 제목으로 기사가 나간다. 뭐가 ‘후끈’해, 아고, 속 터질 노릇이다. 이덕일은 그렇게 똑같은 엉터리 글을 들고 며칠 뒤 다른 학회에 가서 또 소위 ‘식민사학’ 성토질을 한다. 이게 대체 가야사의 발전과 지역 역사의 복원을 위한 학문 활동인가. 이덕일이 내세우는 ‘민족사학’의 틀에 끼워맞춰서 외국 연구자들 앞에 내놓으면 유네스코 문화유산 선정에 과연 더 유리해지는가?
과거에 북한의 김석형 같은 분들이 임나와 삼국의 분국 위치를 일본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 있다. 정인보, 신채호 같은 분들도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이 아닌 중국 영토에서 찾아야 한다고 언급하신 적 있다. 그 시대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본서기를 해석하고, 광개토왕비를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하는 연구를 했고, 이에 맞선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일제의 부정한 논리에 맞서는 가운데, 낙랑군의 위치를 다르게 해석하고, 임나일본부설의 근저를 송두리째 흔드는 ‘분국론’ 등의 연구를 시도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80여 년이 흘러간 시점인 지금에 와서도, 우리는 그분들의 숭고한 ‘항일정신’을 이어받아 <낙랑군=중국땅> 설, <임나=일본땅> 설을 그대로 암송하고 옮겨 적어야 ‘올바른’ 역사관이 되는 건가? 그분들 말씀과 해석 하나하나를 수령님 훈시 마냥 따르지 않으면 죄다 ‘식민사학’으로 몰아붙일 건가? 아예 그냥 ‘경전’을 하나 만들어라. 주일마다 신도들이랑 모여서 정인보 가라사대, 김석형 가라사대하며 예배도 보고.
인문학이라는 건 시대가 지남에 따라 계속 움직이는 ‘가치’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즉 과거의 ‘발언’이나 ‘문구’에만 갇혀있는 게 아니다. 학문의 ‘계승’이라는 건 이전 시기의 연구자들이 그 시대의 ‘주류’가 갖는 문제점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새 시대의 흐름에 맞는 지향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가치’를 배우는 것이지, 과거 누군가의 구체적인 ‘견해’와 주장에만 그대로 몰두하며 갇혀있는 게, 그게 ‘계승’이 아니다.
지금 현재 수많은 사료 속의 ‘임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비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과거 임나일본부설의 망령을 되살리는 거라는 어이없는 논리에 끌려 다니는 건 시대착오적 망상이다. 기원전 108년에 낙랑군이 한반도에 설치된 적이 있다고 해서 2천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가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될 거라는 멍청한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 자체가 바보짓 아닌가. 대체 왜 가야사 문제를 두고 똑같은 논리에 빠져드는 것인가.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난 뒤, 다른 어느 나라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민주국가로 성장한 대한민국 사회가, 왜 아직까지도 그런 철 지난 과거 식민사학의 ‘망령’에만 갇혀서 맴돌아야 하나. 중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들보다, 그 어느 국가보다 자유롭게 연구해야할 대한민국의 역사학이 도대체 왜 저런 선동가 한두 명에 의해 국가기관이 압박을 받고, 심지어 세계에 내놓을 문화유산의 선정에까지 얼토당토않은 간섭을 받아야 하나.
대선 정국으로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국에 역사학을 둘러싼 이 작은 혼란도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흘러갈까? 세상 사람들이 당장은 이상한 놈들의 선동에 휘둘려서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휩쓸려도 결국은 ‘진실’에 귀 기울이고, 정리(正理)로 돌아갈까. 에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그러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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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

srdteoonSpt2a3cul1943yif220127lf7h ahc907gu24gaggmMa0602a 68 ·



“세상에 어떻게 일본서기를 인용하냐. 그거 100% 다 조작된 거 아니냐” 하는 분들이 계신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건 아닌데요’다.
일본서기는 8세기 전반에 작성된 '관찬' 역사서다(국가에서 편찬한 역사서). 애초에 이 책은 쓰여진 목적 가운데 하나가 일본 천황가의 유구한 역사와 권위를 알리는 것이었고, 이에 작성 과정에서 상당한 허위가 들어간 것이 사실이다. 다만 작자가 완전히 창작소설을 쓴 게 아니라, 기본적인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예전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해서 그 사건의 배경과 의도 등을 자기 의도에 맞게 변개한 것이다.
그럼 어쨌든 불순한 의도가 들어간 이상한 책이니까 싹 다 무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할 수도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기존에 일본에서 전해진 자료들, 그리고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온 유민들이 전해준 백제 자체의 사료들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 기록들 가운데는 현재 전하지 않는 것들이 많으며, 삼국사기 등에도 전혀 보이지 않는 내용이 많다.
예컨대 일본에 천자문을 전한 왕인 박사, 불교를 전해준 노리사치계, 법륭사 금당에 벽화를 그린 고구려 승려 담징 등은 오직 일본서기에만 전하는 이름이다. 특히 일본서기에는 백제, 가야 등이 한반도에서 벌인 전쟁과 외교, 기타 사건과 관련 인물, 지명들도 다수 등장한다.
따라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할 때에도 일본서기는 반드시 필요한 자료다. 다만 아주 엄밀한 사료 비판과 교차검증을 통해 신중하게 진위를 가려서 사용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문헌고증(실증)이 바로 그러한 작업이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의도’가 있는 기록은 무조건 인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면, 장수왕때 작성된 광개토왕비문에도 작성자가 정치적 의도로 과장한 허위 기록이 포함되어 있으니 싹 다 ‘조작’이라고 무시해야 할까. 삼국사기, 고려사 기록은 정치적 의도의 허위, 과장이 없었던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일본서기 역시 그 작성 의도를 면밀히 감안한 가운데, 조작의 패턴과 방식 등을 고도로 따져가며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연구현황에 대한 아무런 이해도 없이 그저 “일본서기를 인용했으니 식민사학이다. 일본놈이다. 빼액!”하는 수준의 비판이 적지 않은 인간들에게 먹히고 있는 실정이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그걸 선동하는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가 바로 이덕일이다. 배울만큼 배운 인간들이 하는 수작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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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이집트사 강의 오류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된 후, 재즈 강의에 대한 오류 문제도 나오면서 그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체로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설민석에 대해 내리는 비판의 요점은, 그가 전공자가 아님에도 무리하게 강의의 영역을 확장하다가 결국 많은 거짓 정보(팩트 오류)를 제공하게 됐고, 이것은 결국 '예견된' 참사였다. 뭐 이런 식이다.
언론과 일부 비평가들이 주로 비전문가의 역량 부족이 불러온 문제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설민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설민석 만큼 재미있게 강의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런 실수야 노력해서 없도록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거기에 설민석은 ‘벌거벗은 세계사’프로의 오류에 대해서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마디로 앞으로 더 철저히 준비를 해서 다시는 사실 관계의 오류로 인한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설민석이 납작 엎드리는 가운데 방송은 예정된 강의들을 그대로 진행하고, 사람들은 또다시 그의 예능 강의를 계속 듣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인기 연예인이 예능프로에서 저지른 실수로 논란이 일자 고개 숙여 ‘반성’하고 곧바로 해당 프로에 복귀하는 것처럼.
최근 이집트사나 재즈 강의 이외에도 설민석이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사실 관계에 어긋난 내용들을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페북 등에서도 전공자들의 많은 지적이 있었다. 나도 술자리에서 다른 전공자들과 같이 얘기하다보면 설민석의 강의에 대한 오류를 무더기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 뭐 사실 관계 틀리는 거야 예전부터 지적된 문제니까. 하지만 과연 설민석의 문제점이 단순히 팩트 오류뿐일까. 그 자체도 전문성을 지향하는 강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더 크게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설민석의 강의가 지향해온 바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오히려 그의 강의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결론과 메시지가 갖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민석의 강의는 예능프로의 숙명이겠지만, 소비 위주의 강의, 즉 사람들이 익숙한 주제를 선정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정서를 중심에 두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부에서 그놈의 ‘올바른’ 역사관을 강조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형태의 ‘내러티브’를 대학 수시면접에서 수도 없이 목도했다. 어린 학생들은 학업계획서 내지는 자기소개서의 맨 앞, 혹은 맨 뒤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매번 인용한다. 그 출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관심을 갖는 역사적 사건으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강탈당한 한국 문화재의 반환 문제를 든다. 학창시절에 역사와 관련해서 했던 활동을 꼽으라고 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자극되어 교내에서 왜 동북공정이 잘못됐는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과 논리를 정리해 학생과 교사들 앞에서 발표한 것을 사례로 든다. 거의 예외가 없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을 피해자로 놓고 일본을 가해자로 하는 명확한 선악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획일적인 역사상이 주류이며, 현재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들 틈에서 그들의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야만 하는 약소국인 한국의 처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이를 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바로 자신이 사학과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여 그 ‘올바른’ 역사관을 전달하는 첨병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가 좋아하는 역사가는 누구지?”  “설민석이요.”
사실 이게 어린 학생들의 잘못이겠는가. 다 가르친 어른들의 잘못이지. 어찌보면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로 80여 년이 흘렀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국민교육 체계와 획일적인 민족주의 정서 속에서 위와 같은 ‘올바른 역사관’의 강요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본연의 목적은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역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사회, 외교적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시되어왔다. 역사 전공자는 당연히 이런 논리를 만드는데 복무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어린 학생들은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해 이미 정해진 정답의 논리를 달달 외워서 읊으면 훌륭한 역사관을 가진 것처럼 치켜세워왔다. 
일선 학교, 그리고 언론에서도 그것이 마치 우리 역사교육의 지향인 것처럼 흔히 다뤄왔으며, 여러 국가기관과 박물관 등에서도 각종 공모전을 통해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사고의 획일화를 강요해오지 않았던가. 바보 같은 짓거리들이다. 역사학이 무슨 정훈교육이냐. 그럴 거면 차라리 국민윤리 교육 과정 집어넣든가, 따로 ‘역사사관학교’ 세워서 사관생도들을 키워내든가 하지.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숨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역사학의 특징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의 성향과 진행과정을 탐구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 그와 더불어 자기 자신에게 강요되어온 각종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는 것, 한마디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본다. 특히  자기가 살아가는 한국사회와 자기 주변,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통시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끊임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할 때, 그것이 반공이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념이든간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설민석이 해온 강의에는 그런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의식이 없다. 그가 해온 가장 큰 실수는 단순히 팩트 오류가 아니라,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 지금 시점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역사학자가 지향해야할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는데 있다. 스스로 역사의 ‘그랜드마스터’니, 역사를 바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해온 건 약삭빠르게 사람들이 듣기 좋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지식’만 뽑아서 쏟아냄으로써 기존에 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해오던 구태의연한 사회적 정서와 고루한 인식체계에 편승한, 말그대로 ‘예능’을 해온 것에 불과하다.
그의 강의에는 지금 시대에 한국에서 인문학이 지향해야할, 역사학이 지향해야할 메시지가 없다. 그런 학계의 논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전달할 능력도 없다. 그러고도 그가 마치 역사학에 큰 권위가 있는 사람처럼, 한국사의 대가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생 ‘멘토’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고 띄워졌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인문학을 가장한 그의 달콤한 언변에 일반 대중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몰려간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이 그렇게 수년, 혹은 십수년을 퇴보해간다. 
결국 방송, 언론, 출판계에서 계속 그렇게 만들어왔잖아. 그렇게 설민석이라는 돈 되는 브랜드를 계속 키워나가고, 니들은 거기에 빌붙어서 같이 돈 벌어먹고. 지금이야 팩트 오류를 지적하지만 결국 또 그 ‘가짜 멘토’를 열심히 키워서 같이 갈 거 잖아!
한편으로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설민석이라는 존재를 지적질할 때마다 갖는 자괴감이지만, 매번 전공자들이랑 설민석에 대한 비판이 끝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이 엄습해온다. 열심히 설득되어 설민석이라는 ‘멘토’가 마음속에서 사라진 학생들이, ‘그럼 한국사 관련해서는 무슨 책 읽어야 돼요?’, ‘교수님들이 쓴 책은 왜 그렇게 어려워요?’라는 질문들에 전공자들은 웃음기가 싹 가신다. 솔직히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전공자가 쓴 권위 있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책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는 중고등학생들한테 제대로 추천할 책이 몇 권 없을까.
역사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그 수요를 제대로 읽어내고 거기에 부응할 능력을 제대로 못 갖춘 것이 현실이다. 전국의 대학에서 사학과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인문학의 숙명일까. 사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진로를 제대로 설정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공무원 시험으로 쏠리는데, 학과 교수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학과의 커리큘럼도 거의 바뀌질 않는다. 연구자들은 그저 국가에서 내주는 얼마 안 되는 연구지원금에나 매달리고, 마치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전공자들은 이전의 연구자 중심의 사고체계를 못 벗어나고 있으면서 대중역사가들의 무모한 시도에 ‘팩트체커’로 나서서 지적질하는 능력밖에 없는가. 그렇게 잠시 동안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에 의기양양해하는 거야 좋지만, 필연적으로 물어오는 ‘대안’이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제2, 제3의 설민석들이 대중들을 상대로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에 역행하는 ‘퇴행적’ 강의들을 쏟아낼 때, 이러한 흐름을 돌이키고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대체품’을 만들어낼 생각도 해야하지 않을까. 
당장 설민석이가 강의에서 틀린 사료를 제시했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연구자들이 제대로 된 컨텐츠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더 분개해야지.... 아닌가. 그건 지고지순한 학문을 다루는 전문 연구자로서 너무 ‘경박한’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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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올라오고 15분만에 따끈하게 ㅋ
개인 페북의 글보고 이렇게 광분하는 거 보면 안정준 선생님 확실히 출세(?)하신듯— with 안정준.
식민사학타도, 제도권안에 닻 올리다
m.koreahiti.com
식민사학타도, 제도권안에 닻 올리다
민족사학계 숙원사업 신한대학에 대학원과정 개설진보로 위장해 연명해 온 식민사학계 적잖은 충격일 듯73년 무소불위 역사독재권력 휘둘러 온 식민사학계단재 신채호 사관 잇는 민족사학자 대량 배출로반민족 역사 범죄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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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의 이집트사 강의 오류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된 후, 재즈 강의에 대한 오류 문제도 나오면서 그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는 모양새다. 대체로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이 설민석에 대해 내리는 비판의 요점은, 그가 전공자가 아님에도 무리하게 강의의 영역을 확장하다가 결국 많은 거짓 정보(팩트 오류)를 제공하게 됐고, 이것은 결국 '예견된' 참사였다. 뭐 이런 식이다.
언론과 일부 비평가들이 주로 비전문가의 역량 부족이 불러온 문제라고 비판하는 가운데, 설민석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설민석 만큼 재미있게 강의하는 사람이 어딨냐”, “그런 실수야 노력해서 없도록 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거기에 설민석은 ‘벌거벗은 세계사’프로의 오류에 대해서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의 말씀들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여기고, 더 성실하고 더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한마디로 앞으로 더 철저히 준비를 해서 다시는 사실 관계의 오류로 인한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설민석이 납작 엎드리는 가운데 방송은 예정된 강의들을 그대로 진행하고, 사람들은 또다시 그의 예능 강의를 계속 듣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가 싶다. 마치 인기 연예인이 예능프로에서 저지른 실수로 논란이 일자 고개 숙여 ‘반성’하고 곧바로 해당 프로에 복귀하는 것처럼.
최근 이집트사나 재즈 강의 이외에도 설민석이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사실 관계에 어긋난 내용들을 발언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페북 등에서도 전공자들의 많은 지적이 있었다. 나도 술자리에서 다른 전공자들과 같이 얘기하다보면 설민석의 강의에 대한 오류를 무더기로 지적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 뭐 사실 관계 틀리는 거야 예전부터 지적된 문제니까. 하지만 과연 설민석의 문제점이 단순히 팩트 오류뿐일까. 그 자체도 전문성을 지향하는 강의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사실 더 크게 지적하고 싶은 점은 설민석의 강의가 지향해온 바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오히려 그의 강의를 통해서 전달하려고 하는 결론과 메시지가 갖는 사회적 해악이 더 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민석의 강의는 예능프로의 숙명이겠지만, 소비 위주의 강의, 즉 사람들이 익숙한 주제를 선정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스토리라인을 구성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대중들에게 익숙한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적 정서를 중심에 두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부에서 그놈의 ‘올바른’ 역사관을 강조하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이런 형태의 ‘내러티브’를 대학 수시면접에서 수도 없이 목도했다. 어린 학생들은 학업계획서 내지는 자기소개서의 맨 앞, 혹은 맨 뒤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문구를 매번 인용한다. 그 출처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관심을 갖는 역사적 사건으로 일제 강점기의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 강탈당한 한국 문화재의 반환 문제를 든다. 학창시절에 역사와 관련해서 했던 활동을 꼽으라고 하면,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에 자극되어 교내에서 왜 동북공정이 잘못됐는지, 일본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대응방안과 논리를 정리해 학생과 교사들 앞에서 발표한 것을 사례로 든다. 거의 예외가 없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을 피해자로 놓고 일본을 가해자로 하는 명확한 선악구도 속에서 전개되는 획일적인 역사상이 주류이며, 현재 중국과 일본이라는 강대국들 틈에서 그들의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야만 하는 약소국인 한국의 처지를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고 이를 논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며, 바로 자신이 사학과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여 그 ‘올바른’ 역사관을 전달하는 첨병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네가 좋아하는 역사가는 누구지?” “설민석이요.”
사실 이게 어린 학생들의 잘못이겠는가. 다 가르친 어른들의 잘못이지. 어찌보면 일제 강점기가 끝난 뒤로 80여 년이 흘렀지만, 기성세대가 만든 국민교육 체계와 획일적인 민족주의 정서 속에서 위와 같은 ‘올바른 역사관’의 강요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그 과정에서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 본연의 목적은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역사’란 현재의 이데올로기나 정치, 사회, 외교적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라고 여기는 것이 당연시되어왔다. 역사 전공자는 당연히 이런 논리를 만드는데 복무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어린 학생들은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에 대해 이미 정해진 정답의 논리를 달달 외워서 읊으면 훌륭한 역사관을 가진 것처럼 치켜세워왔다.
일선 학교, 그리고 언론에서도 그것이 마치 우리 역사교육의 지향인 것처럼 흔히 다뤄왔으며, 여러 국가기관과 박물관 등에서도 각종 공모전을 통해 비슷한 주제를 반복하며 어린 학생들에게 사고의 획일화를 강요해오지 않았던가. 바보 같은 짓거리들이다. 역사학이 무슨 정훈교육이냐. 그럴 거면 차라리 국민윤리 교육 과정 집어넣든가, 따로 ‘역사사관학교’ 세워서 사관생도들을 키워내든가 하지.
인문학으로서의 역사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숨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역사학의 특징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그들이 모여서 이룬 ‘사회’의 성향과 진행과정을 탐구함으로써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것, 그와 더불어 자기 자신에게 강요되어온 각종 가치관,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는 것, 한마디로 ‘비판적 성찰의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본다. 특히 자기가 살아가는 한국사회와 자기 주변, 그리고 자신이 처한 현실을 통시적으로 볼 수 있는 능력.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끊임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할 때, 그것이 반공이든, 과도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이념이든간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기 스스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라고도 규정할 수 있다.
설민석이 해온 강의에는 그런 인문학적 성찰과 비판의식이 없다. 그가 해온 가장 큰 실수는 단순히 팩트 오류가 아니라, 인문학 본연의 목적과 지금 시점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역사학자가 지향해야할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망각했다는데 있다. 스스로 역사의 ‘그랜드마스터’니, 역사를 바로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가 해온 건 약삭빠르게 사람들이 듣기 좋고,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지식’만 뽑아서 쏟아냄으로써 기존에 다수의 대중들을 지배해오던 구태의연한 사회적 정서와 고루한 인식체계에 편승한, 말그대로 ‘예능’을 해온 것에 불과하다.
그의 강의에는 지금 시대에 한국에서 인문학이 지향해야할, 역사학이 지향해야할 메시지가 없다. 그런 학계의 논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전달할 능력도 없다. 그러고도 그가 마치 역사학에 큰 권위가 있는 사람처럼, 한국사의 대가처럼, 어린 학생들에게 대단한 인생 ‘멘토’라도 되는 것처럼 포장되고 띄워졌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인문학을 가장한 그의 달콤한 언변에 일반 대중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이 몰려간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이 그렇게 수년, 혹은 십수년을 퇴보해간다.
결국 방송, 언론, 출판계에서 계속 그렇게 만들어왔잖아. 그렇게 설민석이라는 돈 되는 브랜드를 계속 키워나가고, 니들은 거기에 빌붙어서 같이 돈 벌어먹고. 지금이야 팩트 오류를 지적하지만 결국 또 그 ‘가짜 멘토’를 열심히 키워서 같이 갈 거 잖아!
한편으로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설민석이라는 존재를 지적질할 때마다 갖는 자괴감이지만, 매번 전공자들이랑 설민석에 대한 비판이 끝나면 다른 한편으로는 무거운 마음이 엄습해온다. 열심히 설득되어 설민석이라는 ‘멘토’가 마음속에서 사라진 학생들이, ‘그럼 한국사 관련해서는 무슨 책 읽어야 돼요?’, ‘교수님들이 쓴 책은 왜 그렇게 어려워요?’라는 질문들에 전공자들은 웃음기가 싹 가신다. 솔직히 서유럽이나 미국, 일본에서는 전공자가 쓴 권위 있으면서도 술술 읽히는 책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는 중고등학생들한테 제대로 추천할 책이 몇 권 없을까.
역사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은 그 수요를 제대로 읽어내고 거기에 부응할 능력을 제대로 못 갖춘 것이 현실이다. 전국의 대학에서 사학과가 점점 줄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인문학의 숙명일까. 사학과 학생들은 졸업 후 진로를 제대로 설정 못해서 우왕좌왕하다가 공무원 시험으로 쏠리는데, 학과 교수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학과의 커리큘럼도 거의 바뀌질 않는다. 연구자들은 그저 국가에서 내주는 얼마 안 되는 연구지원금에나 매달리고, 마치 그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인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도 많다.
전공자들은 이전의 연구자 중심의 사고체계를 못 벗어나고 있으면서 대중역사가들의 무모한 시도에 ‘팩트체커’로 나서서 지적질하는 능력밖에 없는가. 그렇게 잠시 동안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는 거에 의기양양해하는 거야 좋지만, 필연적으로 물어오는 ‘대안’이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준비하고 있는가. 제2, 제3의 설민석들이 대중들을 상대로 지금 시대에 역행하는, 인문학 본연의 목적에 역행하는 ‘퇴행적’ 강의들을 쏟아낼 때, 이러한 흐름을 돌이키고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대체품’을 만들어낼 생각도 해야하지 않을까.
당장 설민석이가 강의에서 틀린 사료를 제시했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연구자들이 제대로 된 컨텐츠를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더 분개해야지.... 아닌가. 그건 지고지순한 학문을 다루는 전문 연구자로서 너무 ‘경박한’ 발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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