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럭방에 똥 칠할 때까증
노욕, 그보다 무서운 건 없으니...
파란별
2020. 5. 1. 0:02
이웃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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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이란? 늙을 로, 욕심 욕, 놁은 욕심이니 늙은이가 부리는 욕심이란 뜻이다. 하지만 난 이를 단순한 욕심으론 보진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최후가 가까워짐을 깨달을 수 밖에 없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감퇴되는 자신을 보며 어찌 느낄 수가 없을까. 그리고 자신과 비견되는 야생마 같은 청춘을 보면 더더욱 그러하리라.
내가 보기엔 노욕은 첫째는 대룸림이고 유산의 전승이다. 다시 말해서 날 잊지 말란 것이지. 내가 여태 이렇게 일구어 온 걸 무너뜨리지 말고 지켜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얼굴은 뭇다 이룬 꿈의 완성이다. 더 늦기 전에, 아직 기운이 남았을 때 재기해 보려는 몸부림.
그러나 어느 쪽이든 대단히 위험한 기도라고 볼 밖에. 30대 중반 까진 그나마 세월을 따라잡지만 마흔 줄에 들어서면 힘겨워지기 시작하고 오십이면 이미 뒤쳐지기 시작한다. 환경이 바뀌었는데 예전 생각으로 세상을 경영한다? 결론적으로 노욕은 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철부지들의 불장난임에야.
고사에 중국 어느 나라인지 몰라도 노인들을 고려장하다가 적의 침입에 이르러 한 노인의 지헤를 빌어 국난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왕은 고려장을 페하라 명한다. 고려장은 아니겠지. ㅋ 미담은 미담인데 이 고사가 알려 주려는 교훈은 무엇인가? 노인을 공경하라? 효가 제 1의 선인다? 아니면 구관이 명관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면 노인이 전면에 나선 바 없다. 아비의 이야기를 아들이 전했을 뿐. 바로 이것이 고사의 교훈인 게다. 나서지 말고 뒤에서 걱정하고 다독여 주어라. 그런데 요즘은 이 고사를 곡해하고 지 멋대로 의역해선 개나 소나 전면에 나선다.
한번 물어보자. 과연 그대가 지나간 세월 동안 익혀온 지식과 지혜들이 작금의 상황과 현실에서, 과거의 같은 정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있나. 아무도 못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지금 개나 소나 부리는 노욕은 앞서 말한 노욕의 근본 원인 중 두번 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즉 죽기 전에 뭔가 이루고 이름 좀 남겨 보자.
뒈지면 니가 이름을 남겼는지 똥을 남겼는지 알 수 있는가? 이름을 남겼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똥을 쌌다면 어쩔건가? 내가 하니 확률 100%라고 개소리 하지마라. 니가 하든 내가 하든 확률은 50% 이하다.
묘자리 보고 관 맞출 나이에 이른 송장들이 아직도 새벽에 텐트를 친답시고 뻘짓하는 꼬락서닐 보니 3년 전 먹은 아나고가 다 쏠린다. 고마 다 접고 손자 봉알이나 만지다가 쏠리면 콜라텍이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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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老慾)'의 심리학
나이와 탐욕 간의 관계에 대해
by 허용회의 사이콜로피아
Jan 10. 2024
아직 ‘한창’인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언젠가는 과감히 배낭 하나만 메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평생 가도 다 맛보지 못할 각종 전 세계의 음식들을 부지런히 맛보고도 싶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볼거리들을 구경하고 다니며 소중한 추억들을 쌓고 싶다. 물론 나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예전에는 기회가 닿지 않아 미처 미뤄두었던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 땀 흘려 몰입할 수 있는 스포츠 활동에도 관심이 있고, 소위 돈이 많다는 사람들만 한다는 고급 레저 활동들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다. 호화로운 집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싶고, 백화점에서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명품을 골라 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이 많은 것들을 힘들어서 다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거나, 고된 직장 생활 버텨내는 것보다는 무조건 낫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일부러 힘 들여서라도 해나갈 자신이 있다. 우리는 아직 ‘젊어서’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동의할 만한 전제 조건이 단 한 가지 있다. ‘돈만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쌓여있는 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부지불식간에 돈이라는 단어와 결합된 온갖 ‘희망사항’들이 자동으로 연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돈을 버는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돈 그 자체라기보다는, 돈 위에 아른거리는 우리의 소망들이다.
그러나 어떨까? 우리가 나이가 들어버려 더 이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때도 돈은 우리에게 매력적일까? 시력은 떨어지고, 두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리고 스스로가 직감한다. 내가 앞으로 살아있게 될 날은 그리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고. 결국 나이가 들게 되면 자연스레 기력이 쇠해지고,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설사 최선을 다해 돈을 쓰고 다닌다 해도 언제 내 수명이 다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돈을 가지고 저승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그 대단한 돈이라는 것도 한낱 종이조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정말 중요했던 것은 어쩌면 돈이 아니었는지 모른다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말이다. 결국 생각해보면, 돈 욕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예상하는 노년기의 자연스러운 한 가지 모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노년기를 종종 목격하고는 한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결코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욕심이 끝이 없어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 채 끊임없이 색(色)을 탐하고, 돈과 권력을 쫓는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며 호기롭게 행동하며, 어딘가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노욕(老慾), 노추(老醜)라고 부르는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나이와 탐욕(greed)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욕심은 점차 줄어드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심리학에서 이러한 나이와 탐욕의 문제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이 바로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이다. 공포관리이론은 ‘죽음이 찾아들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대처 방법에 관해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할 때,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의 보호와 자존감(self-esteem)의 고양을 통해 그러한 공포에 대처하고자 한다.
아직 ‘한창’인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나 많다. 언젠가는 과감히 배낭 하나만 메고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다. 평생 가도 다 맛보지 못할 각종 전 세계의 음식들을 부지런히 맛보고도 싶다. 가족, 친구, 연인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볼거리들을 구경하고 다니며 소중한 추억들을 쌓고 싶다. 물론 나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예전에는 기회가 닿지 않아 미처 미뤄두었던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 땀 흘려 몰입할 수 있는 스포츠 활동에도 관심이 있고, 소위 돈이 많다는 사람들만 한다는 고급 레저 활동들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다. 호화로운 집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싶고, 백화점에서도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명품을 골라 들어 보고 싶기도 하다.
이 많은 것들을 힘들어서 다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거나, 고된 직장 생활 버텨내는 것보다는 무조건 낫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일부러 힘 들여서라도 해나갈 자신이 있다. 우리는 아직 ‘젊어서’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우리가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리 모두가 동의할 만한 전제 조건이 단 한 가지 있다. ‘돈만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쌓여있는 돈을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부지불식간에 돈이라는 단어와 결합된 온갖 ‘희망사항’들이 자동으로 연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돈을 버는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돈 그 자체라기보다는, 돈 위에 아른거리는 우리의 소망들이다.
그러나 어떨까? 우리가 나이가 들어버려 더 이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때도 돈은 우리에게 매력적일까? 시력은 떨어지고, 두 다리는 후들거린다. 그리고 스스로가 직감한다. 내가 앞으로 살아있게 될 날은 그리 머지않았는지도 모른다고. 결국 나이가 들게 되면 자연스레 기력이 쇠해지고,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설사 최선을 다해 돈을 쓰고 다닌다 해도 언제 내 수명이 다할 것인지 알 수 없다. 돈을 가지고 저승으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그 대단한 돈이라는 것도 한낱 종이조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된다. 정말 중요했던 것은 어쩌면 돈이 아니었는지 모른다는, 뒤늦은 후회와 함께 말이다. 결국 생각해보면, 돈 욕심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예상하는 노년기의 자연스러운 한 가지 모습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또 다른 종류의 노년기를 종종 목격하고는 한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결코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욕심이 끝이 없어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 채 끊임없이 색(色)을 탐하고, 돈과 권력을 쫓는다. ‘나 아직 죽지 않았다’며 호기롭게 행동하며, 어딘가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노욕(老慾), 노추(老醜)라고 부르는 모습들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나이와 탐욕(greed) 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정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욕심은 점차 줄어드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심리학에서 이러한 나이와 탐욕의 문제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이 바로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이다. 공포관리이론은 ‘죽음이 찾아들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대처 방법에 관해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할 때, 문화적 세계관(cultural worldview)의 보호와 자존감(self-esteem)의 고양을 통해 그러한 공포에 대처하고자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왔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소멸과 대비되는 영생, 불멸 등의 상징들과 가까워지려 하는 성향이 있다. 즉 자신이 죽어 소멸되더라도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 기대되는 대상들에 가까워지려 하고, 여기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방식을 통해 나름의 ‘영생’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노인들에게는 자신의 후손을 위해 힘쓰고,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종교에의 헌신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을 이 사회의 유지를 돕는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자존감은 삶에의 통제감을 주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 공포관리이론과 관련된 다수의 연구들은 나이와 탐욕 간 다소 엇갈리는 결과들을 보인다. 일부 연구들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나이가 들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렬해지면 사람들의 기부나 봉사활동 의도는 강해진다(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스크루지 효과(Scrooge effect)”라고 부른다). 자신의 후손들을 아끼고,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사회성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늘어난다. 또 새로운 사회 경험을 추구하거나 인맥을 넓히려 하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가까운 사람과의 유대를 더 중요시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의 연구들에 따르면 나이와 탐욕 간에는 유의미한 부적 관계가 관찰되지 않는다. 즉 나이가 들어도 욕심이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여기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어떠한 설명을 꺼내놓았을까?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공포 관리 이론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보호하려는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관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비록 내가 소멸하더라도 세계관이 곧 나의 ‘대리자’로서 온전히 살아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을 수호하려는 동기는 곧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무엇을 ‘바람직한 가치관’으로 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만약 ‘도덕', '상호 협력’, ‘배려’, ‘봉사’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구축해 왔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친사회적인 행동 등을 통해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경쟁’, ‘이기’, ‘물질만능주의’ 등의 가치가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가치들이었다면, 그들은 더 많이 경쟁하고, 더 ‘탐욕스러워’ 지며, 더 인색한 모습을 통해 사회 체계를 ‘수호’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곧 그들이 살아온 이 터전을, 그리고 그 안에서 숨 쉬고 살아온 자신의 흔적을 지키는 길이라 믿기 때문에.
결국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돈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돈의 노예로 남아있을 것인가 여부는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삶의 방식에 달려 있는 일이다. 일생동안 자존감(self-esteem)을 사랑, 협력, 배려, 나눔 등의 가치로 꾸려왔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기력이 쇠한 몸을 이끌고 돈을 벌어들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생의 자존감을 돈으로만 채워왔다면, 그래서 더 이상 다른 가치들로는 그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끝없이 욕심을 추구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점차 몸이 쇠약해지고, 마음은 더더욱 공허해져 가니 설령 노욕이라는 비난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재물을 추구함에 있어 쉼이 없어야 한다. 그들에게 돈이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며,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방식이므로.
** 참고 문헌
1. Joireman, J., & Duell, B. (2007). Self-transcendent values moderate the impact of mortality salience on support for charitie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3(4), 779-789.
2. Jonas, E., Schimel, J., Greenberg, J., & Pyszczynski, T. (2002). The Scrooge effect: Evidence that mortality salience increases prosocial attitudes and behavi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8(10), 1342-1353.
그래서 노인들에게는 자신의 후손을 위해 힘쓰고, 사후 세계를 약속하는 종교에의 헌신을 추구하거나, 자신의 흔적이 남아있을 이 사회의 유지를 돕는 ‘친사회적 행동(prosocial behavior)'에 몰두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자존감은 삶에의 통제감을 주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 공포관리이론과 관련된 다수의 연구들은 나이와 탐욕 간 다소 엇갈리는 결과들을 보인다. 일부 연구들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나이가 들거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렬해지면 사람들의 기부나 봉사활동 의도는 강해진다(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스크루지 효과(Scrooge effect)”라고 부른다). 자신의 후손들을 아끼고, 책임감을 느끼기도 한다. 반사회성 범죄들이 일어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늘어난다. 또 새로운 사회 경험을 추구하거나 인맥을 넓히려 하기보다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가까운 사람과의 유대를 더 중요시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의 연구들에 따르면 나이와 탐욕 간에는 유의미한 부적 관계가 관찰되지 않는다. 즉 나이가 들어도 욕심이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보고되었다. 여기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어떠한 설명을 꺼내놓았을까?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공포 관리 이론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보호하려는 동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계관과 ‘나’를 동일시함으로써 비록 내가 소멸하더라도 세계관이 곧 나의 ‘대리자’로서 온전히 살아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을 수호하려는 동기는 곧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무엇을 ‘바람직한 가치관’으로 삼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즉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만약 ‘도덕', '상호 협력’, ‘배려’, ‘봉사’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삶을 구축해 왔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친사회적인 행동 등을 통해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경쟁’, ‘이기’, ‘물질만능주의’ 등의 가치가 자신의 삶을 지탱해온 가치들이었다면, 그들은 더 많이 경쟁하고, 더 ‘탐욕스러워’ 지며, 더 인색한 모습을 통해 사회 체계를 ‘수호’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곧 그들이 살아온 이 터전을, 그리고 그 안에서 숨 쉬고 살아온 자신의 흔적을 지키는 길이라 믿기 때문에.
결국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돈으로부터 해방되는 경험을 맛볼 것인가, 아니면 돈의 노예로 남아있을 것인가 여부는 우리가 앞으로 걸어갈 삶의 방식에 달려 있는 일이다. 일생동안 자존감(self-esteem)을 사랑, 협력, 배려, 나눔 등의 가치로 꾸려왔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기력이 쇠한 몸을 이끌고 돈을 벌어들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생의 자존감을 돈으로만 채워왔다면, 그래서 더 이상 다른 가치들로는 그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나이가 들어서도 끝없이 욕심을 추구하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점차 몸이 쇠약해지고, 마음은 더더욱 공허해져 가니 설령 노욕이라는 비난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재물을 추구함에 있어 쉼이 없어야 한다. 그들에게 돈이란 자신의 ‘존재’ 그 자체이며,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방식이므로.
** 참고 문헌
1. Joireman, J., & Duell, B. (2007). Self-transcendent values moderate the impact of mortality salience on support for charities.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43(4), 779-789.
2. Jonas, E., Schimel, J., Greenberg, J., & Pyszczynski, T. (2002). The Scrooge effect: Evidence that mortality salience increases prosocial attitudes and behavi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28(10), 1342-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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