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8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권은선 외 | 알라딘 2024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페미니스트 크리틱 3 | 권은선 외 | 알라딘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 | 페미니스트 크리틱 3
권은선,김신현경,김은경,김은실,김주희,박정애,야마시타 영애,이지은,이혜령,정희진,허윤 (지은이),김은실 (엮은이)휴머니스트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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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이 스스로 ‘위안부’임을 밝히고 피해를 공개 증언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위안부’ 문제는 국경을 넘어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같은 ‘글로벌 희생자’로 위치 지워지면서 지역을 넘은 초국적 텍스트로 논의되는 상황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그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탈식민 페미니즘 관점의 연구가 너무 적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고 쟁점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숙고와 토론의 결과가 바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이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전 세계에 촉구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위안부’ 운동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오랜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에 의지했고,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피해자’라는 상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자발 대 강제’라는 이분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망언의 정치에 대해 또다시 민족주의에 의지해 대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목차


들어가며

서문 | 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_김은실

1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

1. 야마시타와 영애 사이에서: 틈새의 시점에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_야마시타 영애

2.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한다는 것의 의미: 영화 〈귀향〉의 성/폭력 재현을 중심으로_권은선

3.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물화되는가: 일본군 ‘위안부’ 표상과 시민다움의 정치학_허윤

4. 어째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정쟁이 된 역사, 지속되는 폭력_박정애

5. 배봉기의 잊힌 삶 그리고 주검을 둘러싼 경합: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 속의 ‘위안부’ 문제_김신현경

2부.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

6. ‘위안부’ 망언은 어떻게 갱신되는가: 신자유주의 역사 해석으로 결속하는 수정주의 네트워크_김주희

7. ‘인정’ 이후 글로벌 지식장: 영어권의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동향과 과제_김은경

8. 유동하는 ‘위안부’ 표상과 번역된 민족주의: 1991년 이전 김일면, 임종국의 ‘위안부’ 텍스트를 중심으로_이지은

9.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숫자의 정치학’에서 벗어나 ‘바다의 기억’으로 나아가기_이혜령

10. 군 위안부 논의에서의 강제성 쟁점: 여성주의와 민족주의는 대립하지 않았다_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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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37 그동안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전장에 필요한 물자로서의 여성 동원이라는 차원보다 제국에 의한 식민지 여성의 강제 동원이라는 측면이 더 크게 다뤄져왔다. 비록 한국에서의 ‘위안부’ 논의가 두 측면을 어느 정도 포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인식 틀이 더 강하게 운동을 추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오랫동안 일본... 더보기
P. 85~86 ‘위안부’ 생존자들뿐만 아니라 활동가들도 식민 지배로 인해 민족적 피해를 겪었던 트라우마를 안고 있기 때문에, 짐작건대 국민기금과의 투쟁은 민족적 피해에 대한 분노로 표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본 정부에 이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나,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든 하지 않든(고노 담화에서 한 번 인정했다... 더보기
P. 121~122 중요한 것은 필름에 담는 세계, 그리고 대상과의 관계에서 취하는 태도일 것이다. <귀향>은 일종의 국민 이벤트로서 일본군 ‘위안부’의 재현에 대한 시민들의 욕망이 응집된 영화다. 일본군 ‘위안부’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7만 5,000여 명의 소망이 투사된 영화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귀향>은 무엇보다 국내 ... 더보기
P. 166~167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진 선량한 소비자들은 소녀상을 만들고 일본군 ‘위안부’ 관련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운동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자기 효용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조선의 소녀’가 아닌 일본군 ‘위안부’, 중년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나 ... 더보기
P. 211 ‘공창과 ‘위안부’의 관계를 생각했을 때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할 쪽은 ‘성적 위안 시설’에 배치된 여성들이 아니라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성 관리 체제를 유지했던 국가권력이다. 국가가 어떠한 인식과 목적에서 여성의 성을 남성에게 파는 것을 제도화하고, ‘위안 시설’이라는 명명으로 전쟁터의 병사에게 여성의 성을 제공하는 시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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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권은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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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 연극영화학전공 교수. 영화평론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수석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현재는 집행위원이다. 〈증언, 트라우마, 서사: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의 일본군 ‘위안부’ 영화〉(2019),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화상품: 1990년대를 재현하는 향수/복고 영화와 드라마〉(2014) 등의 글을 썼다.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총 2종 (모두보기)

김신현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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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대 교양대학 교수. 《폭력개념 연구》(출간 예정, 공저), 《이토록 두려운 사랑》(2018), 《팬데믹 시대에 경계를 바라보다》(2022, 공저), 《페미니스트 타임워프》(2019, 공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2018, 공저) 등을 썼다. 연구 관심사는 친밀성과 젠더/섹슈얼리티, 미디어 산업과 노동 주체성,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하 여성의 몸/섹슈얼리티 구성이다.

최근작 : <폭력개념 연구>,<‘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팬데믹 시대에 경계를 바라보다> … 총 12종 (모두보기)

김은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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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대 소양·핵심교양학부 교수. Rights Claiming in South Korea(2021, 공저), 《학생문화사,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2018), 《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2013, 공저),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의 경험과 기억》(2004, 공저) 등을 썼다. 소수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현재는 여성, 장애, 인종을 열쇠말로 소수자의 몸을 역사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한국 근대 여성 63인의 초상>,<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 … 총 3종 (모두보기)

김은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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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한국 사회에서의 지식 생산과 문화 권력,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정치와 사회 변화에 대한 관심을 업으로 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다. 민족 담론, 몸의 정치, 지식 권력과 여성 지식인의 등장, 국가폭력,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화정치, 페미니스트 평화학, 생태학 등이 주요한 관심 분야다.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토론하고 글을 쓰고, 즐겁게 살고자 한다.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2001),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2020, 공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2018, 공저), 《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더보기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 총 21종 (모두보기)

김주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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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교수이자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이사이다. 『레이디 크레딧』(2020), 『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2024, 공저),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2024, 공저), 『불처벌』(2022, 공저) 등을 썼고, 여성주의 관점에서 한국 자본주의 발전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최근작 : <문화과학 125호 - 2026.봄>,<디지털 시대의 페미니즘>,<‘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 총 32종 (모두보기)

박정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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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식민지 조선과 일본군‘위안부’문제 자료집’ 시리즈를 발간했다(현재 5권 6책). 《함께 쓰는 역사, 일본군‘위안부’》(2020), 〈국제연맹의 동양 여성매매 조사와 식민지 조선〉(《역사문화연구》 제87호, 2023) 등을 썼다. 공론장 안에서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가 ‘위안부’라는 말에 갇히거나 ‘역사 인식’ 또는 ‘젠더 관점’이 휘발된 채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 고민이다.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야마시타 영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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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쿄대학 문학부 교수. 《新版 ナショナリズムの狹間から: 〈慰安婦〉問題とフェミニズムの課題(신판
내셔널리즘의 틈새에서: ‘위안부’ 문제와 페미니즘의 과제)》(2022), 《女たちの韓流: 韓国ドラマを読み解く(여자들의 한류: 한국 드라마를 읽는다)》(2013) 등을 썼다. 1988년에 한국에 유학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의 초창기를 경험했다. 현재는 남북한 드라마와 젠더에 대해서 공부 중이다.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이지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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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소설을 전공하였으며, 문학 연구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최근에는 박사논문의 주제를 확장하여 태평양전쟁부터 베트남전쟁에 이르는 전쟁 여성 서사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갈라진 혀’의 노래-일본군 ‘위안부’ 증언의 혼종성과 번역의 문제」, 「여성탈북기의 ‘미국화’ 장치들」, 『탈북 문학의 도전과 실험』(공저),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공저), 『난민, 난민화되는 삶』(공저), 평론집 『소셜클럽』 등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의 선... 더보기

최근작 : <소수자와 내러티브>,<‘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2020년 제21회 젊은평론가상 수상작품집> … 총 4종 (모두보기)

이혜령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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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한국 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2007), 《민중의 시대》(2023, 공저),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2018, 공저), 《검열의 제국》(2016, 공저) 등을 썼다. 앞으로는 ‘위안부’를 은폐한 식민지 담론과 문학의 재현체계를 다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민중의 시대>,<지식을 공유하라> … 총 27종 (모두보기)

정희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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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평화학 연구자. 《페미니즘의 도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아주 친밀한 폭력》,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처럼 읽기》, 《낯선 시선》,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전 5권) 등을 썼으며, 《한국 여성인권운동사》, 《성폭력을 다시 쓴다》,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등의 편저자이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등 100여 권의 공저가 있다. 2024년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이 수여하는 ‘이화-현우’ 학술 교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최근작 : <[북토크]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설득하지 않는 법>,<[큰글자도서] 우리, 나이 드는 존재>,<우리, 나이 드는 존재> … 총 121종 (모두보기)

허윤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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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문학·문화·역사를 젠더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남성성의 각본들》 《위험한 책읽기》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공저)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일탈》(공역)과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가 있다.

최근작 : <마녀의 독서, 광녀의 춤>,<젠더>,<여성 문학과 담론, 그 경계와 지층들> … 총 38종 (모두보기)

김은실 (엮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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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여성학과 명예교수. 한국 사회에서의 지식 생산과 문화 권력,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정치와 사회 변화에 대한 관심을 업으로 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다. 민족 담론, 몸의 정치, 지식 권력과 여성 지식인의 등장, 국가폭력,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화정치, 페미니스트 평화학, 생태학 등이 주요한 관심 분야다. 동료 페미니스트들과 토론하고 글을 쓰고, 즐겁게 살고자 한다. 《여성의 몸, 몸의 문화정치학》(2001),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2020, 공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2018, 공저), 《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더보기

최근작 :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글로컬 시대 아시아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쟁점> … 총 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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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예민한 날엔 화학을 삼킨다>,<그리고 강은 그녀를 끌어내린다>,<마음은 아직 수습입니다>등 총 992종
대표분야 : 역사 1위 (브랜드 지수 1,360,761점), 청소년 인문/사회 3위 (브랜드 지수 256,465점), 철학 일반 9위 (브랜드 지수 104,30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연구에서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위안부’에 대한 최신의 탈식민 페미니즘 연구서
페미니스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을 논하다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이 스스로 ‘위안부’임을 밝히고 피해를 공개 증언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위안부’ 문제는 국경을 넘어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같은 ‘글로벌 희생자’로 위치 지워지면서 지역을 넘은 초국적 텍스트로 논의되는 상황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그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탈식민 페미니즘 관점의 연구가 너무 적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고 쟁점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숙고와 토론의 결과가 바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이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전 세계에 촉구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위안부’ 운동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오랜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에 의지했고,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피해자’라는 상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자발 대 강제’라는 이분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망언의 정치에 대해 또다시 민족주의에 의지해 대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은이들은 ‘위안부’ 운동이 그동안 이뤘던 것과 하지 못했던 것을 함께 들여다보고, ‘위안부’ 문제를 국가/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여성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위안부’ 연구의 현황을 살펴본다. ‘위안부’ 문제를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이 책은 민족주의와 망언이 서로를 강화하는 현실을 넘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과 지구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1. ‘위안부’, 제국주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
― ‘위안부’ 공론화의 시작점은 1991년이 아니라 1946년 도쿄전범재판이었다
―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연합군도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있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을 기획하고 엮은 여성학자 김은실은 탈식민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를 조명해왔다. 그는 이 책의 서문인 〈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에서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당사자 운동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물음으로써 책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된 피해자로, 일본인 ‘위안부’를 자발적 참여자로 구별함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곤경에 처하고 있다. 한국인 ‘위안부’가 전형적인 피해자상에서 벗어나 보일 때마다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안부’ 운동이 억압받은 민족의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는 한,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바라볼 여지도 줄어든다.

여기서 김은실은 ‘위안부’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연합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본다. 일본 제국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1946년에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에서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 항목에 포함되지 못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관들은 ‘위안부’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놓았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부족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비인도적 행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여성을 군수물자이자 성 노예로 동원한 전쟁범죄임이 명확하게 드러날 터였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면서 조금씩 바꿔 달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전범재판에서 집단 성폭력이 전쟁범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고, 성폭력을 국제형사법의 문제로 등록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는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민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갖는 다층적인 함의가 납작해졌고 집단 성폭력은 민족 간 갈등이라는 틀에서만 법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은실은 ‘위안부’ 문제 공론화의 시작점을 1991년(김학순의 공개 증언)보다 이른 1946년(도쿄전범재판)으로 돌림으로써 ‘위안부’에 대한 민족적/국가적 관점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한다. ‘위안부’를 제국주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로 조명해야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국제 연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엮은이의 주장은 ‘위안부’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전장에 필요한 물자로서의 여성 동원이라는 차원보다 제국에 의한 식민지 여성의 강제 동원이라는 측면이 더 크게 다뤄져왔다. 비록 한국에서의 ‘위안부’ 논의가 두 측면을 어느 정도 포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인식 틀이 더 강하게 운동을 추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오랫동안 일본 정부와 싸워왔던 ‘위안부’ 운동이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에서 제외시킨 연합군의 잘못 또한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싸움의 의제로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서문_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 37쪽

2.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
― 식민 지배에 상처 입은 지식인 활동가들의 투쟁은 아니었던가
― 성/폭력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겠다는 욕망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 ‘소녀상’에 대한 윤리적 소비로 운동을 대신할 수 있는가
― 누가 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 1975년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배봉기는 어째서 잊혔는가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무엇을 해왔고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를 운동 내부의 긴장과 활동가의 고민, 영화에서 성/폭력 재현의 문제, ‘소녀상’을 둘러싼 해석, ‘위안부’ 운동에서 배제된 공창제(公娼制) 문제, 민족의 시선에서 벗어난 ‘위안부’라는 주제로 살펴본다.

1부를 여는 〈1. 야마시타와 영애 사이에서: 틈새의 시점에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쓴 야마시타 영애는 ‘위안부’ 운동에서 한일 간 가교 역할을 했던 경험을 찬찬히 풀어낸다. 자이니치(在日) 2세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야마시타 영애는 한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위안부’ 운동에 초창기부터 함께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혀갔다. 하지만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식민 지배에 대한 상처를 회복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여성 인권을 위한 국제 연대가 차츰 무너져간 것이 아닐까 돌아본다. 

이어서 권은선은 〈2.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한다는 것의 의미: 영화 〈귀향〉의 성/폭력 재현을 중심으로〉에서 2016년 개봉 후 3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귀향〉을 면밀하게 비평한다. 〈귀향〉의 문제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방식이 여성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민족/남성의 죄책감과 수치심만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있다. 스펙터클은 고통을 재현하는 데 실패하고 ‘위안부’를 신성한 존재로 대상화하고 만다. 

허윤의 〈3.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물화되는가: 일본군 ‘위안부’ 표상과 시민다움의 정치학〉은 마찬가지로 ‘위안부’가 ‘순결한 희생자’라는 이미지에 고착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현재 ‘위안부’의 대표적인 형상은 ‘소녀상’이다. “친구처럼 편안한”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와 관련된 ‘윤리적 소비’는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납작하게 만들고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위안부’ 운동이 어떤 식으로 국제 연대의 가능성을 좁혀왔는지는 박정애의 〈4. 어째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정쟁이 된 역사, 지속되는 폭력〉에서도 잘 드러난다. ‘위안부’가 공창이냐 아니냐는 한국 민족주의 진영과 일본 우익 진영 사이의 주된 논쟁점이었다. 우익의 역사 부정론에 대항하기 위해 순결한 피해자라는 상에 의지하는 순간, 여성의 주체성과 자율성은 훼손되며 당사자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만다. 

김신현경의 〈5. 배봉기의 잊힌 삶 그리고 주검을 둘러싼 경합: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 속의 ‘위안부’ 문제〉 역시 ‘위안부’ 운동이 무엇을 배제해왔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관건임을 알려주는 글이다. 1975년 고 배봉기의 증언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위안부’ 증언이다. 종전 후 오키나와에 체류하던 배봉기의 삶은 남북한 냉전 구도와 더불어 미군정에서 일본 정부로 행정권이 이양된 오키나와의 역사와 맞물려 있었다. 공개 증언에 대한 일본과 남한의 반응은 정반대였고, 배봉기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는 민단과 조총련 사이의 분쟁으로 축소되었다. 배봉기의 사례는 국경을 넘어선 관점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독자들은 민족/국가의 안팎을 넘나드는 고민이 운동의 안팎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다양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서 ‘위안부’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
― ‘위안부’는 합리적인 섹스 계약의 당사자라는 주장이 망언인 이유는 무엇인가
―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영어권 학술계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었는가
― 전쟁문학을 통해 재현된 ‘위안부’ 서사는 어떻게 제국의 시선과 공모하는가
― ‘위안부’ 피해자들을 숫자로 셈할 때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위안부’ 문제에서 여성주의와 민족주의는 실제로 대립했는가

〈2부.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는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여성 인권과 지구적 정의라는 의제로 부상하면서 벌어진 논쟁을 망언의 국제 네트워크, 영어권 학술계의 ‘위안부’ 연구 동향, 탈식민 남성의 언어로 번역된 ‘위안부’ 서사, ‘숫자의 정치’에 매몰된 ‘위안부’의 현실, 여성주의와 민족주의의 허구적 대립이라는 관점으로 톺아본다.

김주희의 〈6. ‘위안부’ 망언은 어떻게 갱신되는가: 신자유주의 역사 해석으로 결속하는 수정주의 네트워크〉는 ‘위안부’들이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가 아니라 노동 계약의 당사자라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의 ‘망언’을 논파하고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역사 부정론 네트워크를 집중 조명한다. 램지어는 게임이론에 근거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분석했다고 주장하지만, ‘경제적 인간’이라는 틀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뿐이다. 부정론자들의 네트워크에 대항하려면 현장의 여성주의와 페미니스트 공유 지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논점이다. 

한편 김은경의 〈7. ‘인정’ 이후 글로벌 지식장: 영어권의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동향과 과제〉는 ‘위안부’ 문제가 글로벌 지식장의 의제에 오른 뒤 영어권 학술계에서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또 얼마나 생산해왔는지 분석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성폭력을 전시에 국한해야 하는지, ‘위안부’를 성 노예로 간주하는 것이 적합한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위안부’에 대한 담론을 조명하는 또 다른 시도는 이지은의 〈8. 유동하는 ‘위안부’ 표상과 번역된 민족주의: 1991년 이전 김일면, 임종국의 ‘위안부’ 텍스트를 중심으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기 이전, ‘위안부’와 전시 성폭력에 대한 기억은 참전군인의 체험담 같은 전쟁문학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자이니치 학자 김일면의 책 《천황의 군대와 조선인 위안부》와 문학평론가 임종국이 이를 번역한 《정신대실록》은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 병사의 시선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탈식민 남성의 문제의식이 여성에 대한 비인격화와 공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민족주의 담론이 제국주의 담론과 단순히 대립하고 있지 않음을 보이는 이 글은 당사자의 증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한다.

이어서 이혜령의 〈9.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숫자의 정치’에서 벗어나 ‘바다의 기억’으로 나아가기〉는 당사자의 증언을 동력으로 삼는 ‘위안부’ 운동과 연구가 ‘숫자의 정치’에 얽매인 현실을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인 까닭에 시간이 지날수록 ‘위안부’들의 숫자는 줄어간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증언한 데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가 바닥에 깔려있고, 이는 숫자로 셈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혜령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더 낫게 생활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숫자의 정치를 피할 수 없지만, ‘위안부’를 법적 대상으로 등록하는 것을 넘어서는 인식론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정희진은 〈10. 군 위안부 논의에서의 강제성 쟁점: 여성주의와 민족주의는 대립하지 않았다〉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집약하고, 강제와 자발의 이분법이 유지되는 한 여성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허구적임을 짚어낸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일본인 ‘위안부’를 운동에서 배제함으로써 강제와 자발의 이분법에 발목을 잡혔다. 국경 밖에서는 일본인 ‘위안부’와, 국경 안에서는 기지촌 여성들과 연대하지 못한 ‘위안부’ 운동이 사실상 “여성의 이름으로 민족(국가)의 피해를 대변해왔다.”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정희진은 글을 맺으며 여성의 피해가 국적에 따라 다르다는 입장, 그리고 전시 성폭력과 평시 성 산업을 분리하는 입장 모두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보살피는 회복적 정의라는 관점으로 ‘위안부’ 문제를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과 지구적 정의를 실현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접기




중요하고 필요한 책입니다. 사실 위안부 문제에 크게 관심이 있진 않았는데 다룰 쟁점이 이렇게나 많다는 점이 너무 놀라웠습니다. 너무 무지했어요. 개인적으로는 다른 공부로 뻗어나가는 중요한 줄기를 만난 느낌입니다.
o_o 2024-12-0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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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과 연구방향에 대하여

'위안부' 문제는 그것이 발생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얼마나 피해자들의 증언이 정확한가, 당시의 법이나 규칙에 얼마나 부합하거나 위반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현실을 다른 맥락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 혹은 질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이다.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담론에 대한 쟁점을 들여다보고 위안부 문제를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위안부 연구'와 관하여 이브 세즈윅의 '편집증적 읽기와 회복적 읽기'를 가져와 제시한다. 편집증적 읽기는 글을 읽기 전에 이미 텍스트에 대한 의심을 전제하며 그것을 문제제기하는 의심의 방법론이다. 반면 회복적 읽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앎의 한계에 부딪치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단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선언적 지식에서 벗어나는 앎의 형태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에서 편집증적 읽기보다 열려있는 관점이다. 당연히 저자는 후자의 읽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간단하게는 책을 읽는 방식이지만 사회적으로 다양한 상황의 복잡한 문제에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주목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정대협의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인식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민족주의, 보편주의 관점에서.

두 번째, 위안부 모집에 강제성은 없었는가? 램지어가 주장하는 대로 계약에 따른 경제적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것인가.

세 번째, 소녀상에 설정된 고정 이미지는 어떻게 볼 것인가. 위안부 관련 판매 굿즈에 돈을 내는 사람들의 심리는?

네 번째, 영화 귀향에서처럼 피해자를 두둔하는 방식이 결국 가해자들의 방식대로 재현된다면 이는 또 하나의 폭력 방식이 되는 것이 아닌가.




1. 정대협은 1990년대 초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책 마련과 후원을 위해서 탄생한 민간 단체다. 몇 년전 정대협 기금 논란이 터진 이후에는 그 성격이 . 고노 담화 이후 정대협은 자신들이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문제를 노출시켰는데 정대협이 발표한 내용은 조선인 위안부는 강제로 끌려갔기 때문에 성 노예적 성격을 부여할 수 있으나 일본인 위안부는 공창 출신이 많았기에 동일한 성격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일본인 학자 야마시타 영애는 이는 잘못된 인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정대협의 관점은 민족주의적 인식이 농후한 인식이었다 생각된다.

야마시타 영에는 또 위안부 피해 보상에 대한 국민기금 정책에서도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고 국민기금에서 피해자들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책임을 피하기 위함이라 하여 거절한 것에 대해 불편을 느꼈다고 한다.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의견은 반영된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 문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같은 피해자라고 해서 다 같은 대응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2. 박유하가 한참 논란이 될 때가 있었는데 램지어의 논문 발표 이후에는 그 파장도 그렇고 논란이 저물 줄을 모른다는 생각이다. 램지어는 <태평양전쟁기 섹스 계약> 논문에서 '모든 인간은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경제적 이유를 들어 위안부 여성들이 합리적 계약에 의한 선택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합리적 인간으로서의 경제인이라는 생각에 계층 간 권력 관계는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면 다 되는 것이라는 식으로 기존의 패권적 경제 질서를 옹호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그의 논문은 식민 지배를 옹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 매매 산업조차도 옹호하고 있는 것이 문제적으로 보인다. 여전히 '반일'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회 정치적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노력을 좌초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3. 소녀상은 늘 정형화된 모습이다. 단발 머리에 한복을 입고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댄 모습. 이런 소녀상의 모습이 위안부가 할머니에서 소녀로 이미지화되는 데 한몫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녀상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면 마치 피해자의 신체가 훼손된 것처럼 대응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해외 각국에 전시 성폭력 문제의 해결 촉구를 위해 소녀상이 세워지고 있다. 이를 철거하려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현지에서도 그렇고 국내 정치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된다. 소녀상은 어느새 소비되는 물체처럼 되어 버렸다.

과거 나는 위안부를 상징하는 나비,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담긴 에코백이나 노트 등 여러 굿즈 물품을 산 이력이 있다. 내 생각은 그랬다. 직접 위안부 할머니를 대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산 물품이 그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무언가를 했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식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은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이 문제 자체에 대한 본질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은 없이 말이다.

4. 영화 <귀향>은 역사적 사건, 폭력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못했으나 책에서 언급하는 장면의 내용, 카메라 워크 등을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히 힘겨웠다. 재현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비단 현재에 노출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영화의 내용과 구성에는 주관적인 입장이 들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취하고 뺄 것인가에 따라 영화의 내용은 달라진다. 하물며 같은 내용을 조감도로 보느냐 투시도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비춰지기도 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감독 및 스탭진이 여러 개의 장치를 두었으리라 짐작할 만하지만 거기에 과연 피해자들의 입장은 고려되었는가 하는 것은 의문점이 있다. 주체성이 부정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는 일은 현재도 역시나 불편하다. 위안부 여성들이 겪은 성폭력을 포르노그래피적으로 표현한 설정은 문제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5. 일본 제국주의와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일본의 대응으로 인해 이슈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갔다. 이로써 위안부는 글로벌화된 피해자 또는 희생자가 되어 보편 인권의 문제에서 다루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인권과 보편성 측면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것에 부족함은 없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제국주의든 전시 성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이 있었다. 다만 상황은 지역적으로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를 보편적으로 정리가 가능하냐 하는 문제다. 반대로 지역과 맥락을 고려하면 보편 인권과 폭력에 대한 피해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모으지 못한다는 단점이 생긴다. 글로벌 보편적 관점은 좋으나 차별되고 배제되는 소수자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필진의 말에 공감했다.

향후 위안부 담론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이제 정말 다양한 시각에서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1991년 이전 ‘위안부‘ 담론은 당사자가 드러나지 않은채 주로 재현/표상(re-presentation)으로만 존재했다. 익히 알려져 있듯, 재현/표상은 어떤 실재를 다시 (re, 再) 앞에 존재하게(presentation, 現)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표상은 문체, 수사적 표현법, 설명의 기교, 관습, 제도 등 역사적·사회적 여러 조건에 기반을 둔 표상 체계를 통해 생산되고 인식 주체의 위치성과 이데올로기에 연루되기 때문에, 언제나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것으로 나타난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 ‘변형된 것‘으로서의 표상이 실재하는 대상을 배제하고 표상 기술에 의존해 하나의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피해자가 공식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야말로 표상이 존재를 대체한 가장 명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참전 군인의 회고 속에 등장한 ‘위안부‘나 이를 민족 수난사의 상징으로 번역한 ‘위안부‘의 모습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재현 주체의 욕망과 당대 사회의 성차별적 표상 체계에 연루된 것이며, 그러한 욕망에 따라 계속해서 변형 · 증식되어 왔다. - P388~389

미학자 자크 랑시에르(Jacques Rencière)는 끔찍한 일을 이미지로 만든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인간성, 즉 인간성이 부정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미지는 한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대체함으로써 ‘본래의‘ 말이 할 수 있는 것보다 사건의 감각적 직조를 더욱 강렬하게 체험하게 만드는 형상이다. 따라서 형상화된 것은 사건의 ‘있는 그대로의 현존‘일 수없다. 그러므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의 재현에 대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점은 ‘가시적인 것을 분배하는 방식 내에 희생자를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지는 절대 홀로 작동하지 않으며, 가시성의 장치(apparatus of visuality)에 속한다. 이미지로 재현된 신체의 지위와 그 신체가 받아야 하는 주의) 유형은 그것을 규제하는 가시성의 장치 속에서 만들어진다. - P108

일본군 ‘위안부‘ 운동 단체에 후원금을 보내거나 후원 물품을 구매하는 데에는 ‘돕는다‘는 술어가 사용된다. 사회적 약자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게 금전적·정서적 지원을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선한 의도‘는 소녀상을 방문하거나 일본군 ‘위안부‘ 관련 굿즈를 구매하는 시민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자신의 작은 일상적 행동이 ‘우리 할머니‘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시민됨과 주체성을 확인하는 데 따른 효용감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단체가 생활 지원 외에 다른 사업을 하고 있다든가 1993년 일본군 ‘위안부‘ 특별법이 제정되어 정부 차원의 생활 지원이 제공되고 있다는 것보다, ‘우리 할머니‘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우선한다. - P168

램지어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계약이라는 합리적 경제행위에 참여한다는 주장을 게임이론을 도입함으로써 사실로 전제하고 있다. 그는 게임이론이라는 이론적 틀을 표방하고 있을 뿐, 논문에서 어떤 수학적 계산도 내놓지 않는다. 그가 표방하는 게임이론은 업소와 여성 간 "신뢰할 수 있는 약속(credible commitment)"에 기반한 게임적 상황을 전제하는 도구로 소환된다. 이러한 경제 논리는 게임의 규칙과 질서를 지정하고 공유한 자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 가상에 의존하고 있다. 합리적 인간으로서의 경제인이라는 모형을 통해 사회적 현실을 분석할 때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이 생산될뿐 아니라, 지배적 권력관계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기존의 패권적 경제 질서를 옹호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모델은 인간의 본성을 동질화하고 일반화하려는 본질주의적 보편주의에 근거해 사람들 간의 차이를 배제와 차별의 이유로 자연화하고 정당화하는 원리로 사용된다. - P286

리지웨이에 따르면, 성에 대한 공통된 문화적 믿음으로서의 성별 고정관념은 사회에서 성별 관계의 물질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암묵적인 문화적 규칙, 다시 말해 공유 지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공유 지식이 다시금 사회적 관계와 게임적 규칙을 만들어내는 원리로 작동하면서 성별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다는것이 그의 주장이다.
마이클 최에 따르면, "공유 지식은 집단적 조정을 도울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적 정체성, ‘상상된 공동체(imaginedcommunity)‘를 창출할 수도 있다." 램지어 논문의 주장은 일본 우익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역사 수정주의 집단과 결합하고 강화"되어 자신들의 입장을 집단화하고 있다. - P296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법적 등록의 대상으로 범주화하고 거기에 안착한 상황은 현재 한계에 다다랐다. 우선 신고와 등록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승인받는 권위적일뿐만 아니라 배타적인 형식이다. 국민기금부터 근래의 정의기억연대 논란에 이르기까지, 법적 등록이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사회적 맥락에 따른 다양한 입장의 표현을 억누르고 단일한 대응을 강제하는 물적 토대로 작용했음을 부인할수 없다." 또한 이는 ‘위안부‘ 운동의 대중화를 자극했던 문학/영화 텍스트의 서사 양식을 지배하는 형식이 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커밍아웃이 꼭 정부에 등록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면 일본군 ‘위안부‘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를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 일본군 ‘위안부‘에 국적이라는 경계를 부여해 고통과 의미의 경중을 달리하는 인식의 형성에 부지중에 기여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 P418

민족주의와 젠더가 맺는 관계는 상황적이다. 그것은 로컬의 역사적 맥락과 해당 공동체 구성원의 행위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 P462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는 이제 관련 당사자나 ‘귀속국‘을 떠나 국제적인 지평에서 논의되고 있다. 캐럴 글럭은 ‘이동하는 비유‘로서 글로벌 기억 경관에 등장한 일본군 ‘위안부‘에 주목했다. 그는 ‘위안부‘가 홀로코스트 희생자처럼 ‘상징 권력‘을 가진 ‘글로벌 희생자‘로 보편화되는 순간, 그것은 일본이나 아시아인의 손을 떠난 문제가 된다고 했다. 또한 미국에서 ‘위안부‘ 연구를 이끈 마거릿 스테츠는 미국 대학에서 초국적 텍스트로셔 ‘위안부‘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와 필요성을 제기하며 ‘위안부‘학의 가능성을 전망했다. 이것은 ‘위안부‘ 역사가 국제사회의 인정 체계 안으로 편입돼 글로벌 기억 장소로 이동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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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4-09-24 공감(19)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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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 요약 및 평론

1. 요약: 탈식민 페미니즘이 제기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김은실이 엮고 권은선, 정희진, 허윤 등 10명의 페미니스트 연구자가 집필한 이 책은 1991년 고 김학순의 증언 이후 30년 넘게 지속된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연구의 성과를 성찰하고, 기존 담론이 지닌 한계를 돌파하고자 기획된 탈식민 페미니즘 연구서다. 저자들은 그동안 <위안부>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에 의존해 왔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방식은 초기 운동의 동력을 만드는 데는 기여했으나, 결과적으로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조선의 소녀’라는 단일한 피해자 상을 고착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에서는 운동의 내부적 틈새와 문화적 재현을 심문한다. 야마시타 영애는 운동 내부에서 배제되거나 가려진 목소리들을 짚어내고, 권은선은 영화 <귀향> 등의 대중 매체가 <위안부> 피해를 재현할 때 왜 남성 가해자의 시선을 경유하거나 민족주의적 욕망을 투사하는지 분석한다. 허윤은 피해자들이 ‘우리 할머니’라는 친족 담론 안에서 어떻게 물화(reification)되는지 비판하며, 박정애는 공창제와 <위안부> 제도를 비교하는 담론이 어떻게 정쟁화되는지 살핀다. 김신현경은 오키나와에서 발견된 배봉기의 삶을 통해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가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은폐하고 경합하게 만들었는지 추적한다.

2부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에서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망언 구조와 글로벌 지식장의 동향을 다룬다. 김주희는 최근의 <위안부> 망언이 단순한 감정적 혐오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역사 해석 및 계약론적 논리와 결탁하여 갱신되고 있음을 폭로한다. 김은경은 영어권 학계에서 <위안부> 문제가 ‘글로벌 희생자’로 범주화되면서 지역성과 소수자의 구체성이 삭제되는 타자화 현상을 짚어낸다. 이지은은 1991년 이전의 텍스트를 통해 민족주의가 번역되는 과정을 분석하고, 이혜령은 피해 규모를 둘러싼 ‘숫자의 정치학’을 넘어서야 함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정희진은 <강제성> 쟁점을 재해석하며 여성주의와 민족주의가 대립 구도에 갇히지 않고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저자들이 공통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익의 ‘망언’과 이에 맞서는 ‘민족주의적 대항’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적대적으로 공존’하며 논의를 ‘자발 대 강제’, ‘순결 대 오염’이라는 이분법적 덫에 가두어왔다. 이 덫을 깨고 전시 성폭력과 식민지 가부장제, 그리고 냉전 체제가 교차하는 전 지구적 맥락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시 바라볼 때 비로소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과 역사적 정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2. 평론: 갇힌 광장을 열어젖히는 전 지구적 시민성의 언어

이 책은 한국 사회에서 사실상 성역화되었거나, 혹은 진영 간의 극단적인 정쟁 도구로 전락해 버린 <위안부> 담론의 숨통을 틔워주는 대단히 용기 있고 지적인 시도다. 그동안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민족의 딸이 당한 수난’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대중적 공분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주의적 접근은 양날의 검이었다. 그것은 가해국인 일본의 책임을 묻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피해자 개개인이 지닌 고유한 삶의 맥락과 다층적인 정체성을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본 서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은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망언에 감정적으로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망언이 발을 딛고 서 있는 논리적 토양을 정밀하게 해부했다는 점에 있다. 신자유주의적 계약론을 들고나와 ‘위안부는 자발적 계약 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자들의 공격에 대해, 기존의 민족주의 담론은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소녀’라는 도덕적 순결성만으로 맞서왔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순결하지 않거나 강제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복잡한 위치의 여성들을 피해자 범주에서 밀어내는 배제의 정치를 낳는다. 저자들은 이 빈틈을 정확히 파고들어, 식민지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이 처했던 다중적인 취약성과 제국주의 군사주의가 결합하여 탄생한 성착취의 구조적 본질을 폭로한다.

특히 이 책의 시선이 국가와 민족이라는 경계를 넘어 전 지구적인 맥락과 교차성(intersectionality)으로 향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위안부> 제도는 단지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패전 후 이들의 존재를 은폐한 일본 정부, 이를 전쟁범죄의 기소 대상에서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냉전 체제 구축에 활용한 연합군(미국), 그리고 가부장적 순결 이데올로기로 피해자들을 수십 년간 침묵하게 만든 한국 사회 모두가 공모한 결과다. 배봉기의 삶이나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 등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서사들은 이 문제가 특정 국가의 애국심이나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웅변한다.

결론적으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은 단일한 민족적 희생자 서사에 안주하려는 태도가 어떻게 역사적 진실을 박제화하고 우익의 망언에 빌미를 주는지 매섭게 성찰한다. 책의 제목처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성불가침의 우상을 숭배하는 침묵이 아니라, 더 복잡하고 더 치열하게 논쟁할 수 있는 책임이다.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국가의 경계에 갇힌 민족주의의 광장에서 해방시켜, 전 지구적 여성 인권과 포스트식민 정의라는 넓은 바다로 이끌어가는 기념비적인 이정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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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페미니스트 크리틱 3 | 권은선 외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은 2024년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페미니스트 크리틱> 3권으로, 부제는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이다. 권은선, 김신현경, 김은경, 김은실, 김주희, 박정애, 야마시타 영애, 이지은, 이혜령, 정희진, 허윤 등이 참여했고, 김은실이 엮었다. 알라딘과 국회도서관 정보에 따르면 2024년 8월 12일 출간된 465쪽 분량의 공동 저작이다.

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 충분히 말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방식으로만 말해져 왔다는 것이다. 즉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범죄”라는 규정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피해자들의 복합적 삶, 식민지 조선의 젠더 질서, 가난과 가족제도, 군사주의, 공창제, 인신매매, 민족주의적 기억정치까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책은 그래서 ‘논쟁을 줄이자’가 아니라 ‘더 많이, 더 정교하게, 더 책임 있게 논쟁하자’고 주장한다.

이 책이 겨냥하는 첫 번째 대상은 일본 우익의 부정론이다. 이들은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 ‘공식 매춘이었다’, ‘돈을 벌었다’는 식으로 피해를 축소하거나 부정해 왔다. 책은 이런 주장을 “망언”으로 본다. 그러나 동시에 책은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적 대응도 비판한다. 부정론에 맞서기 위해 피해자를 “순결한 조선 소녀”, “강제로 끌려간 절대적 희생자”, “민족의 딸”로만 재현하면, 피해자의 실제 삶은 다시 지워진다는 것이다. 예스24와 리디북스 소개도 이 책이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피해자’ 상에 집중해 온 운동의 한계를 성찰한다고 설명한다.

책의 중요한 개념은 <적대적 공존>이다. 일본 우익의 망언과 한국 민족주의의 피해자 재현은 서로 적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강화한다. 일본 우익이 “그들은 매춘부였다”고 말하면, 한국 쪽은 “아니다, 그들은 순결한 소녀였다”고 응답한다. 이 대립 속에서 정작 질문해야 할 문제, 곧 식민지 여성의 몸이 어떻게 가족, 빈곤, 제국, 군대, 성산업, 국가권력 사이에서 동원되었는가는 주변화된다. 책의 부제가 말하듯, 이 책은 바로 이 구도를 넘어서려 한다.

둘째,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 탈식민 페미니즘이란 일본 제국주의의 책임을 약화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국주의 책임을 더 넓은 권력구조 속에서 정확히 보자는 것이다. 식민지 조선 여성은 일본군의 폭력만이 아니라 조선 사회 내부의 가부장제, 빈곤, 가족 부양 압력, 여성 노동의 취약성 속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한일 양국 간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한 성폭력 체제의 문제다.

셋째, 이 책은 ‘피해자성’의 정치적 사용을 비판한다. 피해자를 기억하는 일은 당연히 중요하다.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공개 증언 이후 ‘위안부’ 문제는 침묵 속에 있던 피해를 공론장으로 끌어냈고, 여성 인권과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적으로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리디북스 소개도 이 책이 김학순 증언 이후 30년 넘게 이어진 운동과 기억정치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검토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피해자를 기념하는 방식이 언제나 해방적인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민족의 수치” 또는 “민족의 순결한 희생자”로만 불릴 때, 그는 다시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피해자는 역사적 행위자이기도 하고, 생존자이기도 하며, 때로는 모순적 기억을 가진 인간이기도 하다.

넷째, 책은 ‘증언’의 의미를 새롭게 본다. 증언은 단순한 사실 확인 자료가 아니다. 그것은 침묵을 깨는 정치적 행위이며, 기억을 구성하는 과정이다. 피해자의 말은 처음부터 완결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언어다. 이 점에서 책은 공문서 중심의 실증주의와도 거리를 둔다. 물론 문서와 사료는 중요하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처럼 국가와 군대가 폭력을 은폐하거나 기록하지 않은 경우, 피해자의 기억과 증언은 역사 구성의 핵심 자료가 된다. 국가기록원 자료도 ‘위안부’ 역사를 공문서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기억과 변화의 기록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섯째, 이 책은 운동 내부의 자기비판을 요구한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분명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침묵하던 피해자들을 공적 주체로 세웠고,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 인권 의제로 만들었다. 그러나 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해 반일 민족주의에 기대었을 때, 페미니즘적 질문은 약해졌다. 피해 여성의 몸은 일본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었지만, 여성들이 왜 그런 위험한 위치에 놓였는지, 식민지 조선 사회의 젠더 질서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성노동과 인신매매의 경계는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이 책의 장점은 첫째, 일본 우익의 부정론을 비판하면서도 한국 민족주의의 단순한 피해자 서사에 안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균형이다. 많은 논의가 “일본이 나쁘다”와 “한국 운동이 과장했다” 사이에서 양극화된다. 이 책은 그 둘 모두를 넘어선다. 일본 제국의 책임은 명백히 묻되, 피해자를 민족주의의 상징물로 고정하지 말자는 것이다.

둘째,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여성사, 식민지사, 기억정치, 군사주의, 성폭력 연구의 교차점에 놓는다. 이 접근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지만, 바로 그 복잡함이 진실에 가깝다. ‘위안부’ 문제는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다. 일본군의 제도적 책임, 식민지 지배, 조선인 모집업자, 가족 빈곤, 여성의 취약한 지위, 전쟁경제가 모두 얽혀 있었다. 복잡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책임이 흐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의 구조가 더 분명해진다.

셋째, 이 책은 “논쟁”을 회피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는 오래도록 도덕적 성역처럼 다루어졌다. 일본 우익의 망언이 워낙 악질적이었기 때문에, 내부 비판은 자칫 부정론에 이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 책은 그 두려움을 이해하면서도, 그래서 더 책임 있는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침묵은 운동을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사고를 빈곤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첫째, 이 책의 문제의식은 매우 중요하지만 독자에 따라 지나치게 이론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탈식민 페미니즘, 피해자성, 기억정치, 민족주의 비판 같은 개념이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논의가 어렵게 다가올 수 있다. 대중적 설득력을 높이려면 더 많은 사례 설명과 역사적 서사가 필요하다.

둘째, 민족주의 비판이 일본의 책임 추궁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오해될 위험이 있다. 책의 의도는 그렇지 않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는 이런 오해가 쉽게 발생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는 “한국 운동 비판”과 “일본 책임 부정”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이 책은 일본의 국가책임을 부정하는 책이 아니라, 그 책임을 더 복합적이고 페미니즘적으로 묻자는 책이다.

셋째, 운동 현장의 감정과 연구자의 비판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피해자 지원 운동은 법적 책임, 사과, 배상, 기억 계승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가진다. 반면 연구는 운동의 언어와 재현 방식을 비판한다. 이 둘은 충돌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바로 그 불편한 충돌을 드러낸 데 있지만, 동시에 그 충돌을 어떻게 실제 운동의 언어로 번역할지는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더 성숙하게 논의하기 위한 중요한 개입이다.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은 피해를 의심하자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단순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피해자는 순결해야만 피해자인 것이 아니다. 강제로 끌려갔는가, 속아서 갔는가, 가난 때문에 팔려 갔는가, 성매매 구조 속에 있었는가 하는 차이는 모두 중요하지만, 그것이 일본군 위안소 체제의 폭력성을 지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다양한 경로를 보아야 식민지 여성들이 어떤 구조 속에서 군사 성폭력 체제에 편입되었는지가 드러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은 <‘위안부’ 문제를 덜 논쟁하자는 책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논쟁하자는 책>이다. 일본 우익의 부정론과 한국 민족주의의 방어적 피해자 서사 사이에서, 피해자의 삶과 목소리를 다시 복잡한 역사 속에 놓으려는 시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위안부’ 연구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기억정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논의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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