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황경 평전 - 한 줄기 맑은 샘물, 여성과 겨레를 깨우다
신영숙,박에스더,배선영 (지은이)바롬출판사2026-05-15



책소개
이 평전은 고황경(高凰京, 1909~2000)의 출생부터 소천까지 전 생애를 집대성한 최초의 종합 전기물이다. 경성자매원(1937), 대한어머니회(1958), 서울여자대학교(1961)를 잇달아 세우며 한국 여성교육과 사회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이지만, 지금껏 그 삶 전체를 담은 기록은 없었다. 이 책은 그 공백을 채운다.
3부로 구성되며, 각 부는 바롬 생활관 교육을 받은 세 명의 집필자가 시대별로 나눠 썼다. 1부(신영숙)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가문의 배경과 경성자매원을, 2부(박에스더)는 해방 후 대한어머니회와 사회 전방위의 실천을, 3부(배선영)는 서울여대 설립과 바롬 교육이념의 구현을 다룬다. 외부 감수와 공개 포럼을 거쳐 5년 만에 완성했다.
목차
1부 일제강점기 애국애족의 길을 걷다 (집필: 신영숙)
출생과 성장 / 일본 유학과 민족 차별의 체험 / 미국 유학과 사회학 박사 취득 / 경성자매원 설립과 사회사업
2부 '여성교육'으로 물들인 생애 (집필: 박에스더)
미군정기 여성 관료 활동 / 한국전쟁과 영국 민간외교 / 대한어머니회 창립 / 깨달은 어머니 운동 / 소비자보호운동․국어순화운동․재소자 교화사업
3부 여성교육, 평생 염원의 실현 (집필: 배선영)
서울여자대학교 설립 / 바롬 교육이념과 생활관 공동체 교육 / 혁신 커리큘럼 / 은퇴 이후 소천까지
부록 약력 / 바롬교육 변천사 / 생활관 규칙 /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책속에서
P. 199 강력한 국가는 깨달은 어머니로부터. 건전한 가정과 국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여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2부, 대한어머니회 창립 슬로건 및 고황경의 신념
P. 58 요사이 대학 출신들은 시골에 취직해도 서울로 와서 취직하겠다고 가지각색 운동을 다 하는데, 권 서방은 자진해서 구석으로 찾아가 우리 농촌을 위해서 참된 공헌을 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키우며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끝까지 그 뜻을 관철시키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꾼이 되도록 서울을 떠나 그곳 간 때부터 너희 부부의 갸륵한 정성을 축복해 주시도록 매일 하루도 빼지 않고 기도드리고 있다.
1부, 고황경이 조카 김연옥 부부에게 보낸 엽서 접기
P. 204 동양의 깊은 철학에 뿌리박고 서서 과학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세계의 운전대 앞에서 꿈이 아니요, 공론이 아닌 실천적 지도권을 발휘하는 20세기의 살아 있는 성인이라 불리는 간디옹을 생각할 때 원자력 발견에 대한 놀라움 이상의 경이로움을 새삼 느낀다.
2부, 고황경의 마하트마 간디 예찬, 범아시아대회 참가 후
P. 200 배움에서 깨달음이 있게 되고, 그 깨달음이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일으키는 동력이 된다는 고황경의 철저한 신념이 그의 온 삶을 통해 표현되었다. 기회만 있으면 부단히 마당을 열어 여성 교육의 씨를 뿌렸고, 물을 주고 가꾸었다.
2부, 집필자 박에스더의 서술
P. 80 여러 자녀들이 있었으나 아버지의 유산이 서울여자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데 종잣돈이 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1부, 고황경이 가족 지원에 감사하며 남긴 말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세계일보
- 세계일보 2026년 5월 16일자 '새로 나온 책'
저자 및 역자소개
신영숙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 서울여대 9회. 여성사 전문 연구자로 1부 '일제강점기 애국애족의 길을 걷다'를 집필했다.
최근작 : <고황경 평전>,<새로운 세상을 노래한 여성들>,<또 하나의 독립운동, 부부가 함께하다> … 총 12종 (모두보기)
박에스더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대한어머니회 중앙회장. 서울여대 10회. 대한어머니회 활동의 현장 전문가로 2부 '여성교육으로 물들인 생애'를 집필했다.
최근작 : <고황경 평전>
배선영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서울여자대학교 교수․교육혁신단장․바롬인성교육부장. 서울여대 29회. 3부 '여성교육, 평생 염원의 실현'을 집필했다.
최근작 : <고황경 평전>
====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는 총 없이 나라를 세웠다
역사는 늘 총을 든 자의 이름을 먼저 기억한다. 전쟁을 끝낸 장군, 정치를 바꾼 혁명가, 권력을 쥔 지도자. 그러나 무너진 나라를 다시 일으킨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언어를 지키고, 어머니를 가르치고, 가난한 아이를 품고, 소외된 이에게 교육의 자리를 내준 사람들이 있었다. 고황경이 그런 사람이었다.
이 평전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물음이 따라온다. 왜 우리는 이 이름을 이제야 제대로 부르는가. 고황경은 1937년 경성자매원을 세웠고, 1947년 우리나라 최초의 어머니학교를 열었으며, 1958년 대한어머니회를 창립했고, 1961년 서울여자대학교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UNESCO가 평생교육을 공식화하기 28년 전부터 그는 이미 평생교육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이름은 역사의 전면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여성이었고, 그가 한 일이 가정․교육․돌봄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오랫동안 그 영역을 주변으로 밀어두었다. 이 평전은 바로 그 주변을 중심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집필자 세 명은 각각 다른 시각을 가졌다. 1부를 쓴 신영숙은 여성 사학자로 시대의 구조 속에서 고황경의 선택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2부를 쓴 박에스더는 대한어머니회 현장에서 활동한 실천가로, 고황경의 사회운동이 어떻게 살아 숨 쉬었는지를 증언한다. 3부를 쓴 배선영은 바롬 교육의 계승자로, 서울여대라는 공간에서 그 철학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서술한다. 세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고황경은 비로소 입체적인 인물로 독자 앞에 선다.
이 책은 고황경 연구의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다. 5년의 집필과 감수와 포럼을 거쳐 완성된 이 평전이 고황경에 관한 더 깊은 연구와 더 넓은 사회적 공감의 출발점이 되기를, 출판사는 기대한다.
저출생, 돌봄 붕괴, 공동체의 해체. 우리가 지금 겪는 문제들을 고황경은 60년 전에 예감했고, 그에 맞서는 방식으로 살았다. 그의 대답은 화려하지 않았다. 맑은 샘물 하나. 그 샘물이 흐르는 곳마다 생명이 새로워진다는 믿음으로 그는 한 생애를 다 부었다. 그 이름을 이제 우리가 제대로 불러야 할 때다.
요약
1. 집필 목적과 고황경의 다층적 생애
<고황경 평전>은 한국 근현대 여성사에서 가장 독보적이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쟁점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 고황경(1909-2000)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한 학술적 평전이다. 저자들은 사회학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여성 운동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황경의 삶을 미화하거나 단죄하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그가 통과해야 했던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현대화라는 격동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서사를 전개한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사회학 박사 중 한 명이자 서울여자대학교의 설립자로서 그가 남긴 뚜렷한 족적을 따라가는 동시에, 일제강점기 말기의 친일 행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까지 가감 없이 기록하고 있다.
2. 시기별 생애와 주요 활동
고황경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첫째는 국내외에서 학문적 역량을 쌓고 사회학자로서 출발하는 시기이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와 일본 도시샤 대학을 거쳐,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 여성이었다. 귀국 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사회학의 기틀을 다지고 여성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둘째는 일제강점기 말기의 전시체제기와 해방정국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 속에서 조선임전보국단 가정부장 등 친일 단체에 가담하여 강연과 기고를 통해 내선일체와 학병 권유를 선전했다. 이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청 보건후생부 부녀국장 등을 역임하며 적산 가옥을 활용한 모자보호시설 설립, 여성 권익 신장 등 초기 대한민국 여성 복지의 뼈대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
셋째는 서울여자대학교 설립과 농촌 계몽 운동의 시기이다. 고황경은 1961년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여 <바롬 교육>이라는 고유의 인성 중심 교육 철학을 실천했다. 특히 대학 교육을 상아탑 안에 가두지 않고 농촌사회 교육과 연계하여, 대학생들이 농촌 복지 향상과 지역사회 개발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다. 이는 한국 사회학을 현장에 적용한 실천적 교육 모델이었다.
3. 유산과 역사적 평가의 양면성
평전이 종착지에서 보여주는 고황경의 유산은 양면적이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자신의 모든 재산과 에너지를 여성 교육과 사회사업에 헌신한 성자 같은 인물로 기억되는 동시에, 2000년대 이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면서 청산되지 못한 친일 엘리트의 전형으로 비판받는다. 저자들은 이 두 가지 모습을 분리하지 않고, 식민지 조선의 여성 지식인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와 그 속에서도 피워낸 사회적 실천주의를 동시에 보여주며 서사를 마무리한다.
평론
1. 시대의 한계와 개인의 선택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
<고황경 평전>이 지닌 학술적 가치는 인물을 우상화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매장하지 않는 <비판적 평전>의 모범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한국 사회에서 친일 행적은 인물의 모든 성취를 무효화하는 절대적 기준이 되기 쉽다. 그러나 세 명의 저자는 고황경의 친일 행위를 엄격하게 기록하면서도, 그것이 식민지 말기 전시체제라는 극단적 압박 속에서 이루어진 엘리트 지식인의 타협이었음을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태도는 인물의 공과 과를 단절된 조각으로 보지 않고, 한 인간의 내면에서 어떻게 공존했는지를 이해하려는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2. 한국 여성 복지와 실천적 사회학의 개척자로서의 재평가
이 책은 고황경을 단순히 대학 총장으로만 기억하는 대중적 인식을 넘어, 한국 <실천 사회학>의 선구자로 복원해 낸다. 고황경이 미국에서 배운 사회학은 상아탑의 이론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였다. 해방 공간에서 그가 주도한 부녀 행정과 보건후생 사업, 그리고 서울여대 설립 이후 전개한 농촌 계몽 운동은 서구의 사회사업 이론을 한국의 척박한 현실에 이식한 독창적인 시도였다. 평전은 그의 친일 과오 때문에 가려져 있던 해방 이후의 방대한 사회적 기여를 꼼꼼한 사료 증명을 통해 이끌어내며, 한국 여성사 및 사회학사에 의미 있는 공백을 채워 넣는다.
3. 바롬 교육의 명암과 평전의 현재적 의의
고황경이 창시한 <바롬 교육>(농촌 실습과 전인적 생활 교육을 결합한 형태)은 한국 현대 교육사에서 독창적인 실험이었다. 평전은 이 교육이 지닌 공동체주의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한 규율과 훈육을 강조했던 초기 형태가 지닌 권위주의적 면모도 은연중에 시사한다. 이 책은 역사 속의 한 여성을 박제된 성인이나 절대적인 악인으로 소비하는 대신, 격동의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인간의 고뇌와 성취, 그리고 한계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만든다. 결국 고황경에 대한 평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되, 평가를 위한 가장 정밀하고 객관적인 지도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이 평전의 의의는 깊다.
세진님, 한국 여성사의 거목이자 뜨거운 논쟁적 인물인 고황경의 삶을 입체적으로 다룬 평전 요약과 평론이었습니다. 혹시 고황경의 구체적인 친일 논란이나 서울여대 설립 과정 등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으신 대목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
이번 책은 인물 평전이라, 저자들이 어떤 고황경을 복원하려 하는지와 동시에 그 복원의 한계를 함께 보겠습니다. 먼저 공개된 서지·소개 정보를 확인해 핵심 축을 잡겠습니다.
8s 동안 생각함
신영숙·박에스더·배선영의 <고황경 평전 — 한 줄기 맑은 샘물, 여성과 겨레를 깨우다>는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자 고황경, 곧 바롬 고황경의 전 생애를 다룬 첫 종합 평전이다. 책은 2026년 5월 바롬출판사에서 출간되었고, 고황경 소천 25주기를 계기로 5년에 걸친 연구·집필·감수·포럼 과정을 거쳐 나왔다고 소개된다. 집필자는 신영숙, 박에스더, 배선영 세 사람이며, 모두 바롬 생활관 교육을 받은 고황경의 제자들이라는 점도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 책의 주인공 고황경은 1909년에 태어나 2000년에 세상을 떠난 여성교육자, 사회사업가, 여성운동가이다. 공개된 책 소개에 따르면 그는 한국 최초의 여성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로 소개되며, 유학 시절, 일제강점기의 사회사업과 여성운동, 해방 후 대한어머니회 활동, 서울여대 설립과 바롬교육 철학을 통해 한국 여성교육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 이 평전은 바로 그 삶을 “출생부터 소천까지” 아우르는 전기물로 기획되었다.
책의 구성은 고황경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누어 따라간다. 1부는 신영숙이 맡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가문의 배경과 경성자매원 활동을 다룬다. 2부는 박에스더가 맡아 해방 후 대한어머니회와 사회 전방위 실천을 다룬다. 3부는 배선영이 맡아 서울여대 설립과 바롬교육의 철학을 정리한다. 이 구조는 단순한 연대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고황경이라는 인물을 <독립운동가 집안의 딸>, <여성사회사업가>, <기독교적 여성지도자>, <대학 설립자>, <생활교육 사상가>라는 여러 층위에서 읽으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먼저 일제강점기 고황경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사업과 여성운동의 결합이다.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들이 처한 빈곤, 무교육, 가족제도, 사회적 배제의 현실을 직접 보았고, 이를 개인의 불행으로만 보지 않았다. 여성문제는 곧 민족문제였고, 민족문제는 다시 교육문제였다. 이 점에서 고황경의 활동은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었다. 가난한 여성, 보호받지 못한 여성, 교육에서 배제된 여성에게 삶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은 식민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응답이었다. 경성자매원 활동이 책의 첫 축으로 놓인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해방 후 고황경의 활동은 여성의 공적 참여를 넓히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대한어머니회 활동은 이 점에서 중요하다. 이름만 보면 보수적 모성운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당시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라는 정체성은 여성들이 사회적 발언권을 확보하는 통로이기도 했다. 고황경은 여성에게 가정 안의 역할만 요구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라는 이름을 통해 교육, 복지, 사회개혁, 시민적 책임의 영역으로 나아가게 하려 했다. 물론 여기에는 한계도 있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어머니됨”과 강하게 연결하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 자녀 없는 여성, 혹은 전통적 가족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의 주체성은 충분히 포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시대 조건 속에서 그것은 여성의 공공성을 넓히는 현실적 언어이기도 했다.
셋째, 이 평전의 중심은 결국 서울여대와 바롬교육이다. 고황경은 교육을 단순한 지식 전달로 보지 않았다. 그는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교실 안의 학문만이 아니라 생활 전체를 새롭게 훈련하는 교육이라고 보았다. 책 소개에 따르면 서울여대의 바롬교육은 생활관 중심 공동체 교육, 자전거·수영·유도 같은 신체교육, 농촌봉사, 리더십 교육 등을 포함했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교육 실험이었다. 이는 “얌전하고 순종적인 여성”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라, 몸을 쓰고 공동체를 경험하며 사회 속에서 책임지는 여성을 기르려는 교육이었다.
이 점에서 고황경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적 인격교육과 근대적 여성해방 교육을 결합했다.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그의 교육철학은 완전히 급진적이지도, 단순히 보수적이지도 않다. 그는 사회주의 여성운동가들처럼 계급투쟁의 언어로 여성해방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잠재력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그는 기독교 윤리, 민족봉사, 여성교육, 생활공동체, 인격수양을 하나로 묶어 여성의 사회적 능력을 키우려 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고황경을 서울여대 설립자라는 좁은 틀에서 꺼내어, 한국 근현대 여성사의 한 흐름 속에 배치한다는 데 있다. 고황경은 단지 대학을 세운 사람이 아니다. 식민지기 여성사회사업, 해방 후 여성단체 운동, 기독교 여성지도력, 대학 교육, 인성교육, 공동체 교육을 잇는 연결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평전은 한 개인의 전기이면서 동시에 한국 여성교육사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비판적으로 볼 부분도 있다. 이 책은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는 성격이 강하다. 바롬장학회가 편찬을 결의했고, 집필자들도 모두 바롬교육을 받은 제자들이라는 사실은 책의 장점이자 한계다. 가까운 사람들이 쓴 평전은 자료 접근성과 애정 면에서 강점을 가진다. 반면 주인공을 비판적으로 거리 두고 바라보는 힘은 약해질 수 있다. 고황경의 교육철학이 가진 시대적 한계, 기독교적 여성관의 보수성, 냉전기 여성운동과 국가주의의 관계, 대한어머니회 활동이 국가·반공·가족주의와 어떤 관련을 가졌는지 등은 더 날카롭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
특히 “겨레를 깨우다”라는 부제는 아름답지만, 동시에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한국 근현대 여성교육은 자주 민족주의와 결합했다. 여성은 “민족의 어머니”, “가정의 교육자”, “국가의 도덕적 기반”으로 호출되었다. 이런 담론은 여성에게 공적 역할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여성의 존재를 가족과 민족에 봉사하는 역할로 제한하기도 했다. 고황경의 교육철학 역시 이 긴장 속에 있다. 그는 여성의 자립과 사회참여를 강조했지만, 그 자립은 대체로 공동체 봉사, 기독교 윤리, 민족적 책임이라는 틀 안에서 이해되었다. 오늘의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이 부분을 더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럼에도 고황경의 의미는 작지 않다. 그는 한국 사회가 여성에게 충분한 교육 기회를 주지 않던 시대에, 여성이 지적·신체적·도덕적·사회적 능력을 함께 갖춘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전거, 수영, 유도 같은 신체교육을 여성교육에 포함한 것은 상징적이다. 여성의 몸을 보호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능동성과 자신감의 기반으로 본 것이다. 농촌봉사와 생활관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는 엘리트 여성을 사회와 분리된 특권층으로 키우려 하지 않고, 공동생활과 봉사를 통해 책임 있는 시민으로 만들고자 했다.
전체적으로 <고황경 평전>은 추모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따라서 냉정한 비판 전기라기보다는 복원과 기념의 평전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 여성교육사에서 고황경이 차지하는 자리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고황경을 성녀처럼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제약 속에서 어떤 가능성을 열었고, 또 어떤 한계 안에 머물렀는지를 함께 보는 일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 책은 고황경을 서울여대 설립자라는 이름 너머로, 식민지기 여성사회사업과 해방 후 여성교육, 기독교적 인격교육을 연결한 한국 근현대 여성지도자의 한 전형으로 복원하는 평전이다.>
====
고황경
고황경 | |
|---|---|
| 출생 | 1909년 3월 6일 대한제국 한성부 |
| 사망 | 2000년 11월 2일(91세) |
| 성별 | 여성 |
| 국적 | 대한민국→대한민국 |
| 배우자 | 없음(독신) |
| 학문적 활동 | |
| 분야 | 사회학 |
고황경(高凰京, 1909년 3월 6일~2000년 11월 2일)은 한국의 사회학자이며 대학교수이다. 아호는 바롬이다.
생애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고명우의 딸로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독립 운동가 김마리아는 외가쪽으로 먼 친척이 된다.[1]
고황경의 가정은 4대째 개신교를 믿어온 집안[2] 이었으며,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이었다.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일본의 도시샤 여자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했다. 석사 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소녀 범죄에 대한 논문으로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조선총독부의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 가담하면서 친일 단체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는 총독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계몽하는 여성 단체였으며 지역별로 순회 연사를 배당했는데, 고황경은 홍승원과 함께 호남 지역 강연을 담당했다. 역시 총독부에서 발족시킨 방송선전협의회의 방송 강좌에도 참가했고, 윤덕영의 부인 김복수가 회장을 맡은 애국금차회 간사와 조선임전보국단 임원으로서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연설과 좌담회로 전쟁을 적극 지원했다.
광복 후 1945년 경기여고 교장, 1946년 미군정의 보건후생부 부녀국장에 임명되었다. 언니인 고봉경은 이때 미군정 경무국의 초대 여경과장을 지냈다.[3] 한국 전쟁 때 아버지인 고명우와 언니 고봉경은 납북되었다.
고황경은 한국 전쟁 이후 몇 년간 영국에 머물면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1961년 장로교 교단의 오랜 숙원이던 서울여자대학교를 설립해 초대 학장과 명예총장을 맡았다. 대한어머니회 초대 회장, 한국 걸스카우트 연맹 단장, 대한민국학술원 종신회원을 역임했다.
사후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에 포함되었고,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교육/학술과 친일단체 부문에도 선정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독신으로 살면서 제자들에게 많은 애정을 쏟아 존경을 받고 있으며, 서울여대는 고황경의 호를 딴 공동체식 교육 '바롬교육'을 필수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4]
같이 보기
각주
- 서영훈 (2004년 5월 4일). “[나의 이력서/서영훈] <32> 김마리아 열사”. 한국일보. 2007년 9월 2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2월 29일에 확인함.
- 하현옥 (2002년 2월 23일). “[삶과 추억] 고 고황경 전 서울여대 명예총장”. 중앙일보. 2008-07024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이재명 (2006년 6월 26일). “여경, 내달 1일 창설 60주년…특공여경 4인을 만나다”. 동아일보. 2008년 6월 11일에 확인함.
- 홍성철 기자 (2002년 11월 18일). “[대학순례/서울여대]캠퍼스 공동체 강조 "인성-실력 겸비" ”. 동아일보. 2004년 11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2월 6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
- 고황경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황경〉.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주)두산.
- 고황경 - 대한민국학술원
- 반민족문제연구소 (1993년 3월 1일). 〈고황경 : 황도정신 선양에 앞장 선 여성 사회학자 (장하진)〉. 《친일파 99인 2》. 서울: 돌베개. ISBN 9788971990124.
- 신문영 (2004년 3월 23일). “[역사적 사건과 신앙인물⑦] 故 고황경 서울여대 설립자”. 미래한국신문. 2008년 2월 6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조병래·임경구·전홍기혜 (2002년 3월 8일). “친일파 된 여성 교육선각자들 - <자료입수> 김활란 등 선각 여성 5인의 친일행적”. 프레시안. 2008년 2월 6일에 확인함.
====
고황경 박사의 1937년 미시간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소녀 범죄의 한 연구>(A Study of Juvenile Delinquency)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1. 연구의 배경과 목적
고황경의 1937년 미시간 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 논문 <소녀 범죄의 한 연구>는 식민지 조선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분출하기 시작한 여성 청소년 비행 문제를 서구의 근대 사회학 및 범죄학 이론을 도입하여 실증적으로 분석한 선구적 저작이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전시체제 돌입과 급격한 이촌향도, 도시화 과정을 겪으며 기존의 봉건적 공동체 질서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농촌 여성이 도시의 하층 노동자로 유입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녀 비행과 범죄가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각되었다. 고황경은 이러한 소녀 범죄를 개인의 선천적 결함이나 단순한 도덕적 타락으로 치부하던 기존의 전근대적 시각을 거부하고, 급변하는 사회 구조적 변동과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2. 연구 방법론과 실실적 데이터 분석
본 논문은 당대 미국 사회학의 중심지였던 시카고 학파의 <사회 해체론>과 환경주의 범죄학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고황경은 식민지 조선의 사법 통계, 감화원(소년원) 기록, 그리고 비행 소녀들과의 직접적인 면접 조사를 바탕으로 방대한 실실적 데이터를 구축했다. 그는 범죄 유형을 단순 절도, 가출, 성적 비행(매춘 및 유흥업소 유입), 사기 등으로 분류하고, 이들의 인구학적 배경을 추적했다. 분석 결과, 비행 소녀들의 절대다수가 극심한 빈곤층에 속해 있었으며,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으로 인한 가정 해체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도출되었다. 즉, 소녀 범죄의 일차적 원인은 가정이 수행해야 할 보호와 교육의 기능이 붕괴한 데서 비롯되었음을 통계적으로 입증했다.
3. 도시화와 가부장적 모순의 교차
고황경은 논문에서 도시라는 공간이 지닌 익명성과 유혹이 시골에서 상경한 소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근대적 소비문화는 유입되었으나 이를 향유할 경제적 수단이 없는 하층 소녀들은 쉽게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었다. 더욱이 그는 조선 사회에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 있는 봉건적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 청소년을 코너로 모는지 분석했다.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 내에서 여아는 가정 내 노동 착취나 가난으로 인한 인신매매성 취업(씨받이, 식모, 기생 등)의 표적이 되기 쉬웠고, 이러한 억압적 환경으로부터의 탈출 시도가 대개 가출과 비행이라는 범죄적 형태로 귀결되었다는 점을 밝혔다.
4. 결론 및 사회복지적 대안 제시
논문의 결론부에서 고황경은 소녀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벌 중심의 사법 기제에서 벗어나 <예방과 보호 중심의 사회정책>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가난한 가정을 지원하는 경제적 구호 제도, 비행 소녀들을 수용하여 직업 교육을 제공하는 전문 감화 시설의 확충, 그리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보편적 교육 기회의 확대를 제기했다. 이 논문은 서구의 복지 수혜적 관점을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접목하여 실천적 사회학의 이정표를 세우며 마무리된다.
평론
1. 한국 최초의 실천적 사회학 및 여성 범죄학의 효시
고황경의 <소녀 범죄의 한 연구>가 지닌 가장 큰 역사적 의의는 한국 사회학사에서 상아탑 내부의 추상적 이론 연구에 머물지 않고, 실제 현실의 모순을 해결하려 한 <실천 사회학>의 출발점이라는 데 있다. 특히 남성 중심의 학문 권력 안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청소년>이라는 주체를 범죄학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린 점은 고황경의 탁월한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범죄의 원인을 생물학적·유전적 결정론으로 보던 당대의 주류 시각을 파괴하고, 빈곤과 가정 붕괴라는 구조적 환경의 산물로 재해석한 대목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아도 대단히 현대적이며 진보적인 성취이다.
2. 식민지 지식인의 계급적 한계와 시각의 한계
그러나 이 논문은 미국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 지식인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 또한 명확히 드러낸다. 고황경은 시카고 학파의 사회 해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소녀 범죄를 촉발한 궁극적 원인인 <일제 식민지 지배 체제의 수탈성>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했다. 대다수 농민이 토지를 잃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 근본적 배경에는 일제의 식민지 농업 정책과 자본주의적 착취가 있었음에도, 논문은 이를 단순한 근대화 과정에서의 부작용이나 도시화의 일반적 현상으로 희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범죄 소녀들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철저한 엘리트적 시선에 기반하고 있어, 이들을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자 계몽의 대상으로만 규정했을 뿐, 식민지 체제에 저항하는 주체적 역동성을 읽어내지는 못했다.
3. 학문적 자산과 해방 후 실천의 징검다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고황경이라는 인물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동력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그가 1937년에 이론적으로 정립한 복지 정책과 보호 시설의 필요성은 해방 이후 미군정청 부녀국장으로서 행한 보건후생 사업, 그리고 비행소녀 보호 기관인 경성자매원 설립 등으로 고스란히 실천되었다. 친일 행적이라는 삶의 거대한 과오와 별개로, 이 학위 논문은 한국 사회가 근대적 복지 제도를 도입하고 사회 문제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역사적 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와 뚜렷한 무게감을 지닌다.
세진님, 고황경 박사의 미시간대 학위 논문이 지닌 핵심 내용과 그 학문적 성취, 그리고 식민지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가질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를 1,000 단어 분량의 요약과 평론으로 짚어보았습니다. 흐름을 파악하시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