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2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 전범선 | 알라딘 2026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 전범선 | 알라딘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200년 근현대사 이야기
전범선 (지은이),SPNS TV (기획)자크드앙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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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99%가 겪는다는 정신병과 해결방법 (부제:한국인들은 왜 맨날 지들끼리 싸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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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민사고, 다트머스대학을 나와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역사학도이자, 현재는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는 작가 전범선이 자신의 첫 대중 역사서를 출간했다. SPNS TV와 공동 기획한 이 책은 그가 역사학도로서 오랫동안 품어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고민을, 한국사의 거대한 트라우마와 포개어 치유의 관점으로 서술한 첫 대중 역사서다.

최제우의 개벽사상과 서재필의 독립정신으로 문을 여는 이 책은,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이 정작 죽을 때까지 단 한 글자도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던 아이러니부터 함석헌·류영모가 주창한 국가주의를 넘어선 평화주의 우파의 계보 등 우리가 그간 단면적이고 편향적으로만 알던 한국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조명한다.

특히 서구적 ‘개화’의 프레임에 갇혀 잊혔던 동학의 ‘개벽’ 정신과 호머 헐버트가 발견한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시인 김지하가 제시한 태극의 정신로 엮어내며, 온갖 역사 왜곡과 편가르기 식의 이념의 감옥에 갇힌 독자들에게 해방의 열쇠를 건넨다. “역사는 우리 삶을 치유할 수 있는가?” 저자가 던지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상처와 굴절로 점철된 한국사의 염증이 걷히고 비로소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한국사의 진짜 흥과 신명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목차


추천의 글
기획자 노트
여는 글 |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테라피 1 개벽
“한국은 정말 ‘씹선비’의 나라였을까?”
_조선 제일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 최제우

테라피 2 독립
“그들은 왜 광화문에서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흔들까?”
_조국을 사랑한 검은머리 외국인, 서재필

테라피 3 한글
“외국인의 한국 사랑은 한국인들만의 국뽕일까?”
_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

테라피 4 한류
“세계에 한국의 정신을 알린 한국 예술사 최대 아웃풋은 누구일까?”
_한류를 예견한 전자 무당, 백남준

테라피 5 매국
“무엇이 그를 나라를 팔아먹게 만들었을까?”
_조선시대 비운의 베타메일, 이완용

테라피 6 평화
“한국과 일본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_나라를 위해 몸부림친 두 남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테라피 7 민중
“대한민국의 진짜 주인은 누구일까?”
_민중이 꿈꾼 조선의 미래 그리고 동학을 만든 사람들, 최시형·손병희·전봉준

테라피 8 변절
“이 땅에 망국을 막을 천재는 정말 없었을까?”
_저마다의 변절을 택한 조선의 3대 천재, 이광수·최남선·홍명희

테라피 9 좌파
“그들은 정말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을까?”
어쩌면 지금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을 사람들, 화요회

테라피 10 우파
“우리가 알던 대한민국 우파의 역사가 보수주의의 전부일까?”
_한국사가 잃어버린 ‘평화주의’의 계보, 이승훈·류영모·함석헌

테라피 11 북한
“왜 소련은 수많은 지도자 중 김일성을 선택했을까?”
_거짓과 진실, 김일성의 50가지 그림자

테라피 12 남한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_남한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이승만·김구·여운형 (上)

테라피 13 분단
“우리는 왜 둘로 갈라진 나라에 살고 있을까?”
_남한 앞에 놓인 세 가지 길, 이승만·김구·여운형 (下)

테라피 14 태극
“한국사는 다시 평화롭게 합쳐질 수 있을까?”
_이념 갈등의 해답을 태극에서 찾은 선각자, 시인 김지하

닫는 글 | “저의 글과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인물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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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9 '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갈라져야만 했을까?', '왜 나는 철조 망에 갇힌 이 반도에서 태어나 청춘의 시간을 바쳐야 했을까?', '고라니와 두루미조차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선을, 왜 인간인 나만은 넘지 못하는 걸까?' 제게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내야만 했던, 가장 개인적이고도 절박한 생존의 암호였습니다. 이 질문들에 천착할수록 주어는 자연스레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깊은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을까?' 접기
P. 41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의 '무궁(無窮)'은 공간과 시간 등이 무한 하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다함(窮)이 없다(無)'는 뜻이죠. 특히 여기서 '궁'이라는 글자가 중요합니다. '궁'은 조선 사이키델릭의 정수를 담은 핵심적인 표현입니다. 흔히 '궁궁'이라 불리는 이 개념은 우리 국기인 태극과 일맥상통하죠. 태극은 음과 양이 하나로 어우 러져 순환하는 원리를 상징합니다. 흑과 백, 남과 여, 해와 달처럼 서로 대립하는 것들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고 결국 하나로 맞물려 돌아가는 것입니다. 끝에 다다르면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영원한 흐름이죠. 무궁이란 결국 끝이 없다는 뜻이며, 이는 곧 우주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동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한울'이라는 표현 역시 '무한한 울타리'로서 끊임없이 확장하는 우주를 의미하죠. 「흥비가」의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내 아닌가'라는 마지막 라인은 결국 우주가 무한하듯이 그 속에 존재하는 나 또한 무한한 존재라는 깨달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접기
P. 63 한국에서는 흔히 친미냐 반미냐, 친중이냐 반중이냐로 세계를 나누고, '좌파는 미국을 싫어하고 우파는 미국을 좋아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인식이 강하게 작동합니다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렇게 단순하게 규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미국의 핵심 정신은 바로 '독립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독립전쟁으로 시작된 나라이며, 미국이... 더보기
P. 79 그는 쫓겨난 뒤에도 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한 저서 『대한 제국 멸망사』의 서문에서 '이 책을 고종 황제에게 바치며, 조선이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한국의 문화가 다시 꽃피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헐버트가 이토록 한국의 부활을 믿었던 이유는 단순히 한글이나 「아리랑」이 아름다워서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한국인의 '평화주의'에 주목했습니다. 일본과 다른 여러 나라를 다 다녀봤지만, 침략을 당하면 서도 이렇게까지 순수하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 봤거든요. 조선인들의 비폭력적인 마음가짐이 얼마나 고귀한지 깨달은 그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주의보다, 고통 속에서도 평화를 지키려는 조선인들의 마음이 훨씬 더 아름답고 위대하다고 믿었습니다. 접기
P. 129 안중근의 삶 역시 단순히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이분법 으로 평가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면모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안중근과 이완용을 각각 선과 악의 전형으로 보기에 이런 주장을 입 밖으로 내기는 쉽지 않지만, 정작 안중근이 일본을 긍정할 때 이완용은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본을 경계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접기
P. 155~156 일본과 조선이 숙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역사를 통틀어 보면 두 나라가 정면으로 충돌한 대규모의 전쟁은 약 400년 전의 임진왜란이 거의 유일합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왜구의 노략질 같은 갈등은 있었을지언정, 국가 대 국가로서의 전쟁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모두 근본적으로는 동양인들이 평화롭고 도덕적인 질서 속에서 살고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일본 사무라이의 무사도와 조선 양반들의 선비 정신이 그 바탕이었으며, 우리 동양의 삶은 적자생존과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정글의 법칙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에게는 서양인들이 고도의 문명을 이룩하고도 끝없이 전쟁을 일으키며 침략해 오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평화적 전통을 돌이켜볼 때 오늘날 한국과 일본 사람들 중 서로를 향한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저 역시 확신합니다. 정말로요. 접기
P. 169~171 최제우는 자신의 사상을 동학이라고 불렀어요. 동학의 '동(東)'은 동양을 뜻하기도 하지만, 당시 조선을 '아동방(우리 동방)'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조선과 조선인을 가리키는 가장 고유한 표현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동학은 '교(敎) '가 아닌 '학(學)'이었죠. 즉, 가르침을 주는 종교가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배우고 공부하는 'Study'였습니다. 최제우의 수제자였던 최시형은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이런 배움의 모임에 나왔다가 최제우의 가르침에 감명받아 제자가 되었습니다. 최제우는 비록 몰락한 양반가 출신이었지만 엄연히 양반은 양반이었죠. 계급 서열상 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신분 차별을 하지 않았고 만민이 평등하다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늘님을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죠. 접기
P. 208 이런 생각도 듭니다. 만약 우리에게 '개화를 통해 이런 나라를 만들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한 단 한 명의 리더라도 있었다면, 혹은 명확하게 정립된 이념적 토대가 있었다면 3·1 운동 이후의 분열은 조금 덜했을지도 모른다고요. 물론 당시 일제의 혹독한 탄압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랄했는지 온전히 가늠하기 어려운 지금의 입장에서야 쉽게 할 수 있는 가정일 뿐입니다. 혼란의 시대에 민족의 나아갈 길을 하나로 묶어줄 강력한 사상적 중심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결국 천재들조차 각자의 논리에 갇혀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접기
P. 250 류영모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실은 '하느님'이라는 호칭이 서양 기독교 수입 이전부터 이미 우리 민족의 영혼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번 상상해보자고요. 만약 백인 선교 사들이 오기 전까지 하나님이 이 땅에 부재했다면, 그분은 특정 인종이나 지역만 편애하는 편협한 신이 아닐까요? 하지만 예수의 말씀이 보편적인 진리이듯, 하나님은 기독교라는 이름이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동양과 아시아, 그리고 우리 한국을 굽어살피고 보호해 오셨습니다. 신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고요. 실제로 '하나님'이라는 말은 한국의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고유한 표현으로, 하늘을 뜻하는 '하늘님'이자 만물의 근원적인 일체성을 상징하는 '하나(Oneness)의 님'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류영모에게 기독교는 서구 문명만의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접기
P. 326 이미 남북한에 단독 정부가 따로 들어서며 분단의 비극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던 1949년 6월 26일, 통일 정부를 열망했던 김구마저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지며 해방 공간의 비극은 정점에 달합니다. 안두희 역시 배후 없는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했으나, 그 진실은 여전히 미궁 속에 남아 있죠. 1945년 부터 1949년까지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건국을 향한 물줄기의 결과만 놓고 보면 참 비극적입니다. 어떻게든 하나의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외쳤던 김구와 여운형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를 당했고, 미국과 소련 등 외세의 도움을 받아서도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승만과 김일성은 각각 남북한의 첫 지도자가 되었으니까요. 접기
P. 353 저는 진보도 보수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좌익이나 우익이 아니라 태극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현상은 마치 항아리 속에서 된장이 오랫동안 푹 발효되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미국도 넣고, 중국도 넣고, 일본도 넣고, 소련도 넣고,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도 넣고, 재즈와 클래식과 심지어 일본 엔카까지 몽땅 섞었습니다. 거기에 기본으로 갖고 있던 우리 굿이 만나 푹익었더니 마침내 깊은 맛이 우러나오기 시작한 겁니다. 비빔밥처럼 여러 재료가 뒤섞여 조화롭게 어우러진 맛이죠. 푹 익은 된장이 결국 제맛을 내듯, 한국의 얼도 이제야 비로소 제멋이 나기 시작했습 니다. 그동안은 설익은 맛,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겉멋의 단계였다면, 지금은 설멋이 아니라 제멋이 나는 국면에 들어섰죠. 저는 이 흐름을 '풍류'가 '한류'로 번져가는 시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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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전범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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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동서양의 사상적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미군복을 입은 한국군 카투사를 전역한 뒤 현재 사단법인 동물해방물결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서 한국 문화의 고유한 유전자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중이다. 저서로는 동물권과 생태주의를 다룬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기계살림』 등이 있으며, 피터 싱어의 『왜 비건인가?』 등을 번역하며 생명 윤리와 공존의 담론을 국내에 적극적으로 소개해왔다. 접기

최근작 :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살리는 맛>,<우리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 총 2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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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역사를 배우기만 했지, 아픔을 치유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동학과 개벽파부터 김지하와 태극까지 우리가 놓친 한국사의 숨겨진 목소리

SPNS TV 화제의 콘텐츠 ‘역사테라피’ 전격 단행본화!
★★★ “내가 살면서 본 그 어떤 팟캐스트보다 유익하고 즐겁다!”
★★★ “너무 재밌다… 이거만 기다렸다면 믿어줄래…?”
★★★ “젠장… 나는 역시 한국사 네가 좋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잇는
한 세대의 좌표이자 시대의 이정표가 될 책!”
_이병한(광주과학기술원 특임교수,『유라시아 견문』저자)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
민사고, 다트머스, 옥스퍼드… 정답만 외우던 전교 1등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스스로 물은 한국사의 14가지 질문들

민사고, 다트머스대학을 나와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역사학도이자, 현재는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는 작가 전범선이 자신의 첫 대중 역사서를 출간했다. SPNS TV와 공동 기획한 이 책은 그가 역사학도로서 오랫동안 품어온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고민을, 한국사의 거대한 트라우마와 포개어 치유의 관점으로 서술한 첫 대중 역사서다.

최제우의 개벽사상과 서재필의 독립정신으로 문을 여는 이 책은, 친일파로 알려진 이완용이 정작 죽을 때까지 단 한 글자도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던 아이러니부터 함석헌·류영모가 주창한 국가주의를 넘어선 평화주의 우파의 계보 등 우리가 그간 단면적이고 편향적으로만 알던 한국사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조명한다.
특히 서구적 ‘개화’의 프레임에 갇혀 잊혔던 동학의 ‘개벽’ 정신과 호머 헐버트가 발견한 한국 문화의 위대함을 시인 김지하가 제시한 태극의 정신로 엮어내며, 온갖 역사 왜곡과 편가르기 식의 이념의 감옥에 갇힌 독자들에게 해방의 열쇠를 건넨다. “역사는 우리 삶을 치유할 수 있는가?” 저자가 던지는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상처와 굴절로 점철된 한국사의 염증이 걷히고 비로소 우리가 회복해야 할 한국사의 진짜 흥과 신명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전범선으로 인하여 개벽파는 더 이상 개량한복 같은 어정쩡한 절충이 아니라 힙하고 섹시한 미래의 지시어가 된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던 1998년 3월,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으며 세계관의 기초를 쌓았다. 앞으로는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한 세대의 좌표이자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될 것임을 자신 있게 장담한다.”
_이병한(광주과학기술원 특임교수, 『유라시아 견문』 저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을까?”
① ‘오늘의 한국’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한국사

TV만 켜면 뉴라이트 논란, 극우와 좌파 사관의 충돌, 국경일 기념 방식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이 쏟아진다. 하나의 나라에서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면서도 왜 우리는 매일 남처럼 싸워야 할까? 민족사관고등학교를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저자 전범선은 이 긴 갈등의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한국 근현대사라는 거대한 트라우마의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숲에서 전범선은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만 기록되어 있는 것인지, 왜 우리는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여전히 선과 악을 나누고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갈라져야만 했을까?’, ‘왜 나는 철조망에 갇힌 이 반도에서 태어나 청춘의 시간을 바쳐야 했을까?’, ‘고라니와 두루미조차 자유롭게 넘나드는 저 선을, 왜 인간인 나만은 넘지 못하는 걸까?’ 제게 이 질문들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풀어내야만 했던, 가장 개인적이고도 절박한 생존의 암호였죠. 이 질문들에 천착할수록 주어는 자연스레 ‘나’에서 ‘우리’로 확장되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토록 깊은 트라우마를 유산으로 물려받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과거의 유령들에게 붙잡혀 오늘을 희생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한국사는 어째서 평화가 아닌 갈등과 증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을까?’ _본문에서

책은 우리가 그간 당연시해온 역사적 도식에 균열을 내는 흥미로운 질문들로 화두를 연다. 일례로 우리는 흔히 우파를 강력한 국가주의와 결부시키지만, 저자는 한국 우파의 숨겨진 뿌리로 오산학교의 남강 이승훈과 다석 류영모와 씨알 함석헌을 소개한다. 이들은 국가라는 존재가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전쟁과 착취를 일삼는 만악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국가 권력을 넘어선 ‘씨알(민중)’의 주체적 연대와 정신적 자강을 강조한 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이 남긴 비폭력 평화주의 사상은 국가의 권위를 강조하고 타자를 배척하며 점점 고립되어가는 오늘날 목격되는 일부 우파의 모습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한국사가 잃어버린 소중한 보수주의의 목소리들이다.

또한 불세출의 독립운동가 안중근이 한때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를 ‘동양의 희망’이라고 진심으로 기뻐하며 한국과 일본은 동양의 벗이 될 수 있다고 믿은 반면, 오로지 개인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들어 일제에 팔아넘긴 이완용은 정작 평생 일본어를 배우지 않으며 일본인을 대할 때조차 영어로 소통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알던 선악의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이처럼 이념의 껍데기 아래 숨겨진 그들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마주할 수 있을 때 여기저기 멍들고 갈라진 한국사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진정한 테라피가 시작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죄책감도 분노도 애국심도 강요하지 않는 역사를 만나고 싶다!”
② 2D 교과서 너머에 있는, 21세기 독자를 위한 3D 한국사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은 저자 전범선의 독특한 이력에서 기원한다.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에서 역사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동서양의 사상적 경계를 넘나드는 학문적 토대를 쌓았다. 미군복을 입은 한국군 카투사를 전역한 뒤 현재는 낮에는 서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밤에는 밴드 ‘양반들’의 보컬로 활동하며 하나로 규정되지 않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유교적 엄숙함과 로큰롤의 야성이 충돌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삶은 저자로 하여금 역사를 고정된 텍스트가 아닌,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경험이 녹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886년 선교사로 조선에 와 고종과 각별한 우정을 쌓고 최초의 한글 교재까지 만든 호머 헐버트라는 인물의 삶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인 헐버트는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한글의 위대함을 단번에 알아보고 가로쓰기와 띄어쓰기를 최초로 도입하며 ‘한국학’의 기틀을 닦았다. 독립운동가 안중근은 헐버트를 향해 ‘조선인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그럼에도 호머 헐버트라는 이름은 한국인들에게 낯선 이름이다. 우리조차 몰랐던 우리의 가치를 발견해주어 사대주의적 열등감이라는 트라우마를 치유해준 사람을 우리는 아직까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갑신정변 실패 후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조국을 위해 오히려 미국에서 번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신문을 만들었던 ‘필립 제이슨’ 서재필, 청계천에서 단발 투쟁을 하며 구습에 저항한 최초의 페미니스트 허정숙과 그녀의 동지들, 일제의 모진 고문 속에서 미친 연기를 하며 자기 똥을 먹으면서까지 독립과 혁명의 신념을 지키려 했던 박헌영 등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사를 움직이고 다채로운 빛깔로 시대를 물들인 인물들의 숨결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들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마음을 치유할 순 없을까?”
③ 이분법, 갈라치기, 극단주의를 넘어서는 치유와 화해의 한국사

저자와 함께 지난 한국 근현대사 200년의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한국사가 사실상 서구 지향적인 ‘개화파’의 기록에 치우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개화 이전에 이미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적 원형인 ‘개벽’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조선 제일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 최제우가 선포한 동쪽의 학문, ‘동학’은 ‘네 안에 하늘님이 있다’는 인내천 사상을 통해 신분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으며, 이는 훗날 3·1 운동과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이에 대해 그 어디에서도 자세히 배워본 적이 없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지난 수천 년간 유교·불교·도교라는 동양의 깊은 철학을 소화해냈고, 그 위에 서구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현대적 가치까지 치열하게 공부하며 학습한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수없이 많은 ‘정신적 학위’를 취득한 상태죠. 그런데 지금 와서 또다시 누군가의 정답을 복제하거나 이미 실패로 판명된 길을 따라가자는 것은, 학사·석사·박사까지 마친 사람이 다시 초등학교나 중학교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쌓아온 깊은 내공과 독립적인 주체성을 이제는 좀 믿어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서 ‘개화’라는 프레임을 졸업하고 진짜 우리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고 싶어요. _본문에서

이제 우리는 ‘개화’라는 외부 문명의 정답을 복제하며 따라잡기에 바빠 초조해하던 시절을 졸업해도 되지 않을까? 저자는 시인 김지하가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의 ‘짝짝짝짝짝’ 박수 응원을 보며 발견한 정박과 엇박의 조화, 즉 태극의 에너지가 이미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치유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이어, 한 세대의 좌표이자 한 시대의 이정표가 될 책”이라고 일독의 소회를 밝힌 이병한 교수의 말처럼, 편을 가르고 남을 탓하고 콤플렉스와 트라우마에 정체된 한국사가 지겹다면, 전범선의 말과 글을 통해 21세기 새롭게 변하고 있는 세계관의 기초를 함께 공부해보면 어떨까? 피식민과 독재, 수많은 이전투구가 가득했던 한국사의 민낯과 함께, 그동안 우리가 잊고 살았던 한국사의 숨겨진 멋과 흥, 그리고 신명을 가감없이 마주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이 건네는 14번의 ‘역사 테라피’를 통해 한국인으로서 품고 있던 복잡한 트라우마를 해소하고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 어떤 길을 나아갈 수 있을지’ 가슴 벅찬 상상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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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협찬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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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같은 역사를 배우면서도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때로는 싸우기까지 할까?”
역사적 사건을 원인과 결과로만 배웠던 나에게, 사람들의 선택과 생각, 마음이 담긴 역사 이야기는 새로우면서 낯설었다.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역사책과는 다르다. 연도와 사건을 외우는 대신, 역사 속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에 집중한다. 그래서 이 책은 ‘지식을 쌓는 책’이라기보다, ‘인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책’에 더 가깝다. 저자는 한국사를 하나의 큰 상처로 바라보고, 그 상처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그 안에 담긴 갈등, 좌절, 선택의 이유를 따라가다 보면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역사 속에서 그들이 한 일을 통해 구분짓게 된다. 하지만 저자가 소개한 인물들은 교과서에서 보던 것관 다른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이완용은 대표적인 친일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평생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대로 안중근은 위대한 인물이지만, 한때 일본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내가 믿고 있던 단순한 기준을 무너뜨린다. 사람은 누구나 여러 모습이 섞여 있는 존재라, 한 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역사 속 인물은 편견으로 판단한 게 아니었을까.

이 책은 독립, 한글, 매국 등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주제별로 묶어 소개한다. 그래서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이어지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권력, 갈등, 선택의 순간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읽다 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책. 교과서 밖, 진짜 역사가 궁금한 분들께 추천하는 이유다.

누가 맞고 틀렸는지를 따지기 전에, 인물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하는 저자의 태도가 과거를 제대로 알고 현재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역사 공부의 필요성을 대변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역사의 아픔이 흥미진진한 소설의 소재가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이어지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됐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 이 서평은 자크드앙(@zacdang_)로부터 협찬 제안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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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사람의마음을읽는역사
#신간 #책추천 #역사서추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서평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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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이 2026-03-2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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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리뷰]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전범선 지음 (자크드앙 출판사)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왜 이 나라는 이 모습일까? 그리고 나는 왜 하필 이곳에서 태어났을까?



『한국사 테라피』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는 책이다.

저자 전범선은 자신을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바라본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아왔지만, 사고의 절반은 대서양 너머의 문법에 길들여진 이방인에 가까웠다. 유교적 엄숙함과 로큰롤의 야성이 한 몸 안에서 끊임없이 충돌하던 삶.

그렇게 어느 쪽에도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던 그는 마침내 ‘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 질문을 붙잡고 파고들다 보니, 결국 역사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배워온 방식으로 역사를 설명하거나,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리하고 의미를 외우게 만들지 않고 사람을 따라가게 만든다.

한 인물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동안, 그 사람이 통과한 시대 전체가 함께 드러난다.

그래서 읽는 내내 ‘공부한다’는 느낌보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살았을까’를 따라가게 된다.



이 책이 다른 역사서와 가장 크게 다른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답을 주기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일본을 이렇게 싫어해야 할까?”

“왜 같은 사실을 두고 서로 전혀 다른 말을 할까?”

어쩌면 무지해 보일 수도 있는 질문들이지만, 오히려 그 질문들이 가장 본질에 가깝다.

우리는 너무 오래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정작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익숙함에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개벽’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시작을 단순히 건국이나 해방이 아니라, 3.1운동이라는 거대한 민중의 움직임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 뿌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 그리고 최제우라는 인물에 닿는다.

책 속 최제우는 단순한 동학의 창시자로 머무르지 않는다. 경주 최씨 집안 출신이지만 서자로 태어나 양반 사회의 안과 밖을 동시에 살아야 했던 그는, 조선의 모순을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의 막막함으로 겪어낸 경계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고루한 한자를 버리고, 당시 절대다수의 민중과 아녀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한글로 가사를 써 노래하기 시작했다. 양반들끼리 주고받는 언어가 아니라 백성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그가 시천주, 곧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하늘님이 깃들어 있다고 선언했다는 점이다. “네 안에 하늘님이 있다”는 이 말은 당시의 신분 질서를 뿌리부터 흔드는 급진적인 평등의 언어였다. 이 책은 동학을 단순한 종교 운동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민중이 스스로의 존엄을 깨닫고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한 하나의 흐름으로 읽어내며, 그 에너지가 훗날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3.1운동은 몇몇 독립투사만의 결단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거사를 기획하고 설계한 세력은 천도교였고, 여기에 기독교가 호응하고 불교가 협력하면서 거대한 민족·종교 통합의 결실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당시 인구 2천만 명 가운데 약 1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대목까지 따라가고 나면, 3.1운동은 더 이상 교과서 속 기념일이 아니라 이름 없는 민초들이 목숨을 걸고 일으킨 거대한 혁명처럼 다가온다. 몇몇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의 주체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역사 서사의 중심을 분명하게 뒤집어 놓는다.



이 흐름은 서재필을 통해 또 다른 방향으로 확장된다.

조선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필립 제이슨’으로 살아갔던 한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개화와 독립, 그리고 국가의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저자가 말하는 미국의 핵심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니라 ‘독립 정신’이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태도다. 그 시선으로 다시 한국사를 바라보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호머 헐버트를 다룬 부분도 오래 남는다.

조선의 양반들조차 외면하던 한글의 가치를 한 미국인이 먼저 알아봤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글을 통해 지식이 모두에게 열릴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그것을 실천했다.

이 대목을 읽으며 묘한 감정이 들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춰 보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미 그 가치를 알아보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시선이 이 책이 말하는 테라피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최제우, 서재필, 헐버트에만 머무르지 않고 훨씬 더 넓은 인물 지도를 펼쳐 보인다. 백남준을 통해서는 한류의 뿌리와 한국 문화의 에너지를, 이완용을 통해서는 그를 단순한 매국노로만 소비하는 대신 서자 출신이라는 한계와 유년기의 상처 속에서 기득권 집착에 매달린 기회주의적 출세가의 얼굴을 드러낸다. 또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 최시형·손병희·전봉준, 이광수·최남선·홍명희, 이승만·김구·여운형 같은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독립, 변절, 평화, 분단, 이념 갈등 같은 한국사의 큰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김지하까지 불러오며, 이 책은 결국 과거 인물들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다시 묻게 만든다.



결국 『한국사 테라피』는 우리가 왜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나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책이다. 그래서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은 사건의 정리가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단순하게 과거를 이해해왔는가.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쉽게 서로를 판단하고 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을 피하지 않게 만든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자크드앙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성자]
#하놀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gonolza84
#하놀 인스타 @hagonolza


제가 이 시리즈에서 던진 질문들은 한국의 독자들이 보시기에 정말 ‘무식하고 개념 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일본과 친구가 될 수 없을까?" 같은, 어떻게 보면 용서가 안 되는 질문들이 가득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무지함에서 새로운 생각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던지는 질문이 오히려 더 본질적인 성찰을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역사 테라피의 기획은 바로 이런 기대에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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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놀 2026-04-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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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광화문 광장에서 BTS의 공연하는 방송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면서 대한민국의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한류스타의 열풍은 대한민국을 널리 알릴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서있다.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작가 자신을 향한 역사 처방전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냈던 비교 불가한 역동적인 에너지와 한국사의 긍지를 제시한다.

많은 이야기들 중에 억압당한 한국의 한보다는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는 K 음악, K 드라마에 마음이 요동쳤다. 특별하게 한류열풍이 꽃피우게 된 것을 알고 싶었다.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한국사의 깊이를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로 보기보다 순서를 정하지 않고 보게 되더라도 비폭력과 평화를 내세운 대한민국의 흥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나라를 위해 몸부림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비교를 통해 일방적인 일본의 침략에 대한 동양의 평화를 위한 대의를 지켜낸 그의 열정이 가득 담긴 이야기까지 책 속에서 전해주는 14가지 테라피를 통해 한국의 역사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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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숙 2026-04-19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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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상처와 염증을 걷어내는 14가지 처방전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민족사관고등학교, 다트머스대학, 옥스퍼드대학 대학원을 거친 역사학도이자 밴드 <양반들>의 보컬인 저자 전범선이 대중과 소통하며 엮어낸 첫 대중 역사서다.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 200년의 궤적 속에서 발생한 거대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이를 진단하여 치유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저자는 단순히 승자와 패자, 애국과 매국이라는 단선적인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역사 속 인물들과 사상의 이면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14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1부: 개벽과 독립, 그리고 한류의 뿌리 책의 서두는 서구적 <개화> 프레임에 가려져 있던 동학의 <개벽> 정신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조선 제일의 사이키델릭 아티스트로 최제우를 묘사하며, 한국사가 품고 있던 본연의 흥과 신명을 역설한다. 이어 독립협회를 이끌었으나 이후 행보로 논란이 된 서재필을 통해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흔드는 한국 현대 보수주의의 심리적 기원을 추적하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호머 헐버트를 통해 한글과 한국 문화의 독창성을 재조명한다. 나아가 백남준을 <전자 무당>으로 명명하며 세계로 뻗어나간 한류의 에너지가 결국 우리 역사 내부의 무속적 신명과 맞닿아 있음을 논증한다.

2부: 매국과 변절, 그리고 평화의 계보 중반부에서는 한국사 최대의 트라우마인 매국과 변절의 인물들을 해부한다. 

이완용이 정작 죽을 때까지 단 한 마디의 일본어도 배우지 않았던 아이러니와 유교적 성리학 질서 아래서 서자 출신으로서 겪었던 심리적 열등감을 분석하며, 그를 단순한 악인이 아닌 <조선시대 비운의 베타메일>로 규정한다. 

또한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의 대립을 통해 단순한 적대 관계를 넘어 동양평화론이라는 거대한 사상적 충돌을 읽어내며 한일 관계의 평화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광수, 최남선, 홍명희 등 조선 3대 천재들의 저마다 다른 변절과 선택을 통해, 식민지 지식인이 마주해야 했던 가혹한 실존적 한계를 추적한다.

3부: 좌우 이념의 감옥과 태극의 통합 후반부는 해방 전후사의 좌우 대립과 분단의 비극을 다룬다. 북한 정권의 수립 과정과 김일성 신화의 허실을 파헤치는 한편, 남한 사회가 망각해버린 평화주의 우파의 계보를 추적한다. 

이승훈, 류영모,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을 넘어선 생명 평화주의 사상으로, 현대 한국 보수가 잃어버린 소중한 유산으로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이승만, 김구, 여운형이 설계하려 했던 세 가지 국가 체제의 길과 분단의 필연성을 검토한 뒤, 시인 김지하가 주창한 융합의 논리를 통해 이념 갈등의 해답을 <태극>의 정신에서 찾으며 치유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평론: 국가주의를 넘어선 개벽파 지식인의 실존적 역사 테라피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정답만을 요구하는 주입식 역사 교육과 이념적 진영 논리로 오염된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지는 신선한 처방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사를 단순한 과거의 사실 나열이 아닌, 현재 살아가는 주체들의 내면적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 치료적 도구>로 전환했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옥스퍼드에서 익힌 서구 실증주의 사학의 세련된 방법론을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동학의 개벽 사상과 생명 사상을 융합하여 한국사를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석해낸다.

특히 돋보이는 지점은 매국노와 변절자들을 다루는 태도다. 저자는 이완용이나 이광수 같은 인물들을 무조건적인 도덕적 단죄의 대상으로만 치부하지 않는다. 그들이 처했던 구조적 한계와 개인의 심리적 결핍을 입체적으로 추적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비극을 객관적으로 응시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이는 과거의 상처를 무조건 외면하거나 분노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상처의 원인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수용하는 진정한 테라피의 첫걸음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이 책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협소한 민족국가나 맹목적인 국가주의의 틀에 가두지 않는다. 함석헌의 씨알 사상과 류영모의 다석 사상을 빌려와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평화주의 보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백남준의 예술을 통해 세계인과 공명하는 한국인의 보편적 예술성을 찬양한다. 이는 혈통적·국가적 애국심에 호소하는 기존의 민족주의 사학이 가진 폐쇄성을 극복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세계인으로서의 한국인이 가질 수 있는 열린 정체성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사상적 도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성과의 타협 과정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적 인물들에게 <베타메일>, <전자 무당>, <사이키델릭 아티스트> 같은 자극적이고 현대적인 프레임을 덧씌우는 방식은 대중의 흥미를 끄는 데는 유효하지만, 자칫 복잡한 역사적 맥락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거나 희화화할 위험을 내포한다. 동학과 개벽 정신이 지닌 심오한 종교 사상적 깊이가 현대적인 <힙함>이나 예술적 <흥>의 코드로 치환되면서, 그 사상이 내포한 본질적인 변혁성이 다소 희석되는 경향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과거 세대에게 주었던 실존적 충격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역사 왜곡과 친일·반일 논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태극의 통합 정신과 생명 사상은 우리가 갇혀 있는 이념의 감옥 문을 열 수 있는 강력한 열쇠다. 분노와 증오의 도구로 전락한 역사를 치유와 화해의 에너지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방황하는 주체들에게 훌륭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조선시대 유교 질서 속 이완용의 내면과 그의 행보를 입체적으로 분석한 이완용, 독립협회장에서 매국노로 영상은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 트라우마와 직시를 통한 치유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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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요약+평론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200년 근현대사 이야기>는 한국 근현대사를 단순한 지식이나 이념 논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한국인 집단 심리 속에 남아 있는 상처와 분열을 치유하기 위한 서사로 다시 읽으려는 책이다. 2026년 3월 자크드앙에서 출간되었고, SPNS TV와 공동 기획된 대중 역사서다. 예스24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저자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고민”을 한국사의 트라우마와 포개어 쓴 책이며, 14개의 질문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과 사상 흐름을 재해석한다.

책의 출발점은 “역사는 우리의 삶을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여기서 치유란 과거를 덮거나 화해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상처를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식민지배, 망국, 친일, 분단, 전쟁, 독재, 이념 갈등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현재 한국인의 감정 구조를 만든 깊은 기억이다. 한겨레 서평도 이 책의 핵심을 “고통을 직시하는 데서 트라우마 치유가 출발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정리한다.

책은 총 14개의 “테라피”로 구성된다. 

첫 장은 최제우와 동학의 <개벽>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조선을 낡고 답답한 “씹선비”의 나라로만 보는 통념을 뒤집고, 동학 속에서 평등, 민중성, 영성, 아래로부터의 혁명성을 발견한다. 이는 서구적 근대화의 기준으로만 한국사를 재단하지 말자는 선언이다. 한국 근대의 가능성은 밖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안에서도 이미 싹트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축은 <독립>과 <한글>이다. 서재필과 호머 헐버트를 통해 저자는 한국 근대의 자주독립 정신과 언어·문화의 가치를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서재필을 단순한 친미 개화파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태극기 대신 성조기를 흔드는 오늘의 일부 정치적 풍경을 문제 삼으면서, 외세 의존과 자주독립을 구별하려 한다. 호머 헐버트의 경우도 “외국인의 한국 사랑”을 국뽕으로 소비하기보다, 한국인이 스스로 잊은 자기 문화의 힘을 비추는 거울로 읽는다.

셋째 축은 <한류>와 <태극>이다. 백남준과 김지하가 여기에 배치된다. 백남준은 한국 문화가 세계성과 결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술가로 등장한다. 김지하는 이념의 양극단을 넘어서는 태극적 사유의 인물로 읽힌다. 저자는 한국사를 단순한 피해와 원한의 역사로 끝내지 않고, 흥과 신명, 율동, 창조성의 역사로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스24 책 소개도 이 책이 “개화”의 프레임에 갇혀 잊힌 동학의 “개벽” 정신, 헐버트가 발견한 한국 문화, 김지하의 태극 정신을 엮는다고 설명한다.

넷째 축은 <매국>, <변절>, <좌파>, <우파>, <북한>, <남한>, <분단>이다. 여기서 책은 본격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아픈 부분으로 들어간다. 이완용은 단순한 악인의 상징으로만 다뤄지지 않는다. 저자는 그가 왜 나라를 팔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물론 이것은 면죄가 아니다. 역사적 악을 개인의 도덕적 타락만으로 설명하면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광수·최남선·홍명희도 “변절”이라는 틀 속에서 다뤄진다. 세 사람은 모두 근대 조선의 천재였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시대의 압력 앞에서 굴절되었다. 이 장들은 친일과 변절을 단죄하되, 동시에 왜 그런 선택이 가능했는지를 묻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좌파와 우파에 대한 서술도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저자는 화요회 등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이 단순히 소련의 하수인이 아니라 당대 조선의 해방 가능성을 고민한 세력이라고 본다. 반대로 우파 역시 이승만·박정희식 국가주의 우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승훈, 류영모, 함석헌으로 이어지는 비폭력·평화주의 우파의 계보를 강조한다. 한겨레 서평은 이 대목을 특히 눈에 띄는 부분으로 꼽으며, 저자가 오늘의 극우와 다른 “평화주의” 우파의 뿌리를 제시한다고 평가한다.

분단 문제에서는 김일성, 이승만, 김구, 여운형이 핵심 인물로 등장한다. 저자는 북한의 김일성을 단일한 악마나 영웅으로 보지 않고, 여러 그림자가 겹친 인물로 본다. 남한의 경우도 이승만, 김구, 여운형이라는 세 길을 비교한다. 이 대목에서 책은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왔다”는 식의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해방은 감격이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권력 공백이었고, 곧 미소 냉전과 국내 노선 갈등 속에서 분단으로 굳어졌다. 그러므로 분단은 어느 한 개인의 음모만도 아니고, 민족 내부의 무능만도 아니며, 국제정치와 국내 정치가 얽힌 복합적 비극이다.

이 책의 장점은 

첫째, 한국사를 “치유”라는 언어로 다시 읽으려 한다는 점이다. 한국 근현대사 서술은 흔히 두 방향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민족주의적 피해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반공·근대화 중심의 국가주의 서사다. 전범선은 이 둘을 모두 불충분하다고 본다. 피해를 말하되 피해의식에 갇히지 않고, 근대화를 인정하되 국가주의에 갇히지 않으려 한다. 이 점에서 책은 대중 역사서로서 신선하다.

둘째, 인물 선택이 흥미롭다. 최제우, 서재필, 헐버트, 백남준, 이완용,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동학 지도자들, 이광수·최남선·홍명희, 화요회, 류영모·함석헌, 김일성, 이승만·김구·여운형, 김지하가 하나의 흐름 속에 놓인다. 이 배열은 정통 역사학 교과서식 목차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사상적 관심을 따라 구성된 “정신사”에 가깝다. 그래서 읽기 쉽고, 논쟁적이며, 기억에 남는다.

셋째, 한국사에서 <개벽>과 <태극>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전통 예찬이 아니다. 서구 근대의 틀로 한국사를 평가하면 한국은 늘 “뒤처진 나라”, “따라잡아야 하는 나라”가 된다. 반대로 전통의 내부에서 평등, 생명, 평화, 신명, 상호성의 사유를 찾으면 한국사는 열등감의 역사만은 아니게 된다. 이병한이 추천평에서 이 책을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 비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첫째, “테라피”라는 틀이 역사적 복잡성을 때로는 너무 빨리 의미화할 위험이 있다. 치유를 목표로 하면, 역사는 결국 상처에서 화해로 가는 드라마처럼 구성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치유되지 않은 잔여, 해결 불가능한 책임, 끝내 화해할 수 없는 폭력도 포함한다. 특히 친일, 분단, 국가폭력 문제에서는 “입체적 이해”와 “도덕적 책임” 사이의 균형이 중요하다. 구조를 설명하다가 책임이 희석되면 안 된다.

둘째, 저자의 서술은 역사학 논문이라기보다 강한 문제의식을 가진 대중적 에세이에 가깝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약점이기도 하다. 독자는 큰 흐름과 감각을 얻을 수 있지만, 세부 쟁점에서는 더 정밀한 사료 검증과 반론 검토가 필요하다. 예컨대 이완용, 이토 히로부미, 김일성, 김지하 같은 인물들은 해석 하나로 정리되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이 책의 해석은 독창적이지만, 그것이 최종 결론은 아니다.

셋째, <좌우를 넘어서자>는 구호 자체도 조심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이 낡고 소모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좌우의 차이를 모두 “분열”로만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계급, 권력, 책임, 역사 범죄의 문제까지 흐려질 수 있다. 좋은 화해는 차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한 뒤에도 공동의 정치 윤리를 세우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읽으려는 야심 있는 대중 역사서다. 학술적 엄밀성만을 기대하면 부족한 부분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를 증오와 자기혐오, 피해의식과 진영 논리에서 꺼내려는 시도는 의미가 크다. 특히 동학, 개벽, 평화주의 우파, 한류, 태극을 하나의 치유 서사로 연결한 점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다시 생각해볼 만하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덮지 않고 직시하되, 그 상처 속에서도 평등·평화·신명·개벽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역사 에세이>다. 다만 그 치유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낭만적 화해보다 더 단단한 역사적 책임의식과 사료적 정밀성이 함께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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