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8

Philo Kalia - 이병한 테크노 차이나

Philo Kalia - 이병한은 1978년 생이다. 지금 40대 후반, 젊은 학자이다. 1998년 대학생이 되었다.... | Facebook

이병한은 1978년 생이다. 지금 40대 후반, 젊은 학자이다. 1998년 대학생이 되었다. 2018년에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개화 대학’ 연세대학교에서 수학하고, ‘개벽 대학’ 원광대학교에서 첫 직을 구했다. 그는 학문여정을 이렇게 밝힌다.
“20대, 서학(西學)의 첨단을 달렸다. 사회학에 근간을 두고 구미의 현대 사상을 탐닉했다. 30대, 유학(儒學)의 아취에 젖어들었다. 역사학에 바탕하여 중화 세계의 오래된 지혜를 탐구했다. 40대, 동학(東學)에 귀의한다. 이 땅의 민초들이 펼쳐낸 토착적 근대화, 내재적 민주화의 장기적 이행을 탐사한다. 마침내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이 빚어낼 동/서 문명의 회통, ‘신문명론의 개략’을 천착한다. 그리고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동학의 세계화’, ‘개벽의 지구화’에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
그는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중화세계의 재편과 동아시아 냉전: 1945~1991」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교 국제학대학원, UCLA 한국학연구소, 베트남 하노이 사회과학원, 인도 네루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등에서 공부하고 연구했다.
나는 그를 조성환 교수와 함께 쓴 『개벽파선언』(2019년)에서 처음 만났고, 그의 40대 초반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음에 적이 감탄했다. 『유라시아 견문록』(3권)은 그가 유라시아 대륙을 1,000일간 횡단하며 쓴 인문학 기행 저서이다.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목차만 살피더라도 아이디어가 검은 밤하늘의 별처럼 쏟아지는 사람, 정말 젊은 학자의 호기(豪氣)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책 『테크노 차이나』(2022년)를 읽었다.

20세기 중화세계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세계 제2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중국의 면모를 더욱 잘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중국하면 하은주로부터 청나라 까지 이어지는 긴긴 역사, 중국의 철학 종교사상 중심으로 개론 수준의 지식이다. 이 책은 새로운 중국 철학이나 사회학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목하 과학과 공학을 결합하여 완전 체질을 바꾼 중국을 보여주고 있다.
1840년 아편전쟁의 역사적 시련은 중국만의 시련이 아니었다. 조선의 운명은 더욱 참혹했다. 최근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개벽의 길을 알게 되었다. 이병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책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무엇보다 이 책의 부제는 ”대반전과 대격변의 서막“이다. 중국은 서구 지배의 잔재를 완전히 털고 일어나 뒤집기 한다. ”미중 사이의 반전“, ”동서 사이의 대반전“이다. 그리고 근대의 산물인 민주주의나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너머의 ‘테크노 사회주의’를 꿈꾸고 있음이 대격변에 해당한다.
그래서 일부 한국인의 혐중국의 태도를 경계한다. “과연 어설픈 선무당의 시대가 위태롭기가 그지없다. 엉뚱한 나토에 참석해 탈중국을 외치는 자들은 저들이 스스로 나라를 불구덩이로 몰고 가고 있음을 미쳐 알고 있지 못할 것이다. 난세의 한복판, 제 처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미국의 장래와 중국의 미래에는 더더욱 까막눈이니 딱하기 이를 데가 없다. 어느 시절이나 무능과 지도부의 무지는 죄악이었다.” 이런 태도 때문인지 나무위키에서는 그를 완전 좌파로 소개한다. “반서방/친러 유라시아주의, 종북, 중국 제국주의 옹호, 이슬람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 그리고 환빠”라고 규정한다.

이 책은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2장씩 중국의 변화의 특징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⑴스페이스 차이나, ⑵바이오 차이나, ⑶그린 차이나, ⑷디지털 차이나.
⑴스페이스 차이나에선 우주과학 분야에서도 미국을 따라잡았고 몇몇 분야에서는 앞섰다고 보고한다.

마오와 덩샤오핑 이후에 “과학기술도 선도한다. 혁명국가에서 혁신, 테크노 차이나를 향해 우주를 향해 전력으로 전심으로 맹렬하게 질주하고 있다.” “우주를 쥐는 자, 미래를 얻는다. 고로 우주는 곧 미래의 전장이다.” 살벌하다. 이런 새로운 얘기도 한다. “우주산업 생태계의 진화는 우주 생태계 자체의 진화도 촉발하고 있다. 생명은 지구라는 예외적인 행성의 고유한 현상이라고만 알았다. 그러나 더 많은 로켓 더 많은 위성을 쏘아 올리고, 더 많은 우주인들이 생겨나면서 광막한 우주에도 생기가 돌고 활기 트는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빅뱅 이래의 한 번의 대폭발, 딥뱅Deep Bang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광막, 광활한 우주공간으로 과학이 그리도 많은 우주선을 쏘아 올렸기 때문에 우주에 생기가 도는 것일까? 현대 과학이 증명하는 우주는 죽은 진공이 아닌 '에너지의 바다'이다. 동아시아의 氣 철학에 의하면 우주는 '살아 있는 유기체'이다. 인간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행위는, 지구라는 작은 생명체가 우주라는 거대한 어머니의 몸과 대화하고 감응(感應)하려는 사상적 모험이어야 한다. 과학이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경외감,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며 영혼의 떨림을 느끼는 그 영성적 감성 자체가 바로 우주의 생기가 인간이라는 안테나를 통해 스스로를 자각하는 순간이다. 인간이 우주가 보내는 에너지 파동에 感하여 감탄으로 應할 때, 우주 역시 인간을 통해 비로소 '살아 숨 쉬는 생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과학의 탐구 대상으로 축소된 우주가 아닌 하늘(코스모스)과 감응하는 시점이 딥뱅의 순간인 것이다.
“우주로 생명이 확산되면 될수록”이 아니라 이미 처음부터 우주는 생명의 씨앗들이 흩뿌려져 있는 공간이다. 암튼 저자는 “우주과학과 생명과학이 지구의 안과 밖을 연결하며 공진화” 할 것을 예견한다. “공생자 행성에서 공생자 우주로의 대도약, 생명적 우주, 바이오 스페이스의 출현과 함께 생명공학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진보할 것임이 명백”하다고 확신한다.
얼핏. 이병한의 ‘바이오 스페이스(Bio-Space)’와 김지하의 ‘우주생명학’은 표면적으로 ‘우주’와 ‘생명’이라는 같은 어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유사성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철학적 깊이에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이병한은 기술의 가속을 통한 우주적 확장(東道東器)을, 김지하는 기술의 맹목성을 제어하는 생명 영성(同道東氣); 이병한은 '생명(Bio)'을 '기능'으로 이해하고, 김지하는 생명을 '감응'으로 이해하며, 개벽(開闢)'에 대한 경로도 이병한이 '하이테크적 도약'에만 집중한다면 김지하는'심층적 영성의 회복', 곧 영성적 우주이다.

⑵바이오 차이나로의 혁신이다.

중요한 전환점은 “농업 문명 시대, 무위자연의 지혜를 설파하던 고전적 중국은 서서히 잊히고 있다”는 문장이다. “인위자연과 인공생명의 낯선 신세계”를 연다는 확언이다.
종래의 과학은 자연에서의 발견을 위주로 했다. 그러나 지금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을, 창조를 하고자 한다. 대표적인 예가 시즈융 교수가 세포질 불일치를 통해 “인공적인 모기”를 만들어 낸 예이다. 인공모기는 인공인간, 인조인간으로 가는 중간단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예를 인공자궁에서 찾는다.
자연진화가 아니라 인공진화! Life 3.0이다.
“인공지능과 인공자궁이 만나면 인공생명의 창출도 가능해진다. 중국은 이미 돌파구를 열었다. 인공자궁에서 인공지능을 이용해 배아의 성장을 관리할 수 있는 AI 유모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AI유모 기술은 생명의 기원과 인간의 배아 발달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선천적 결함 및 생식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병한 교수는 여기에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해당 기술을 사용하면 여성이 아기를 배 속에 품고 다닐 필요가 없어져 태아가 몸 밖에서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미 현실이네!! 나만 깜깜이었군.
저출산 한국 위한 거라고? 현실로 다가온 '출산기계' 인공자궁(이미 중앙 2023. 09. 04)
생명을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생명이 잉태하고 성장하는 자궁의 환경을 인공적으로 완벽하게 만들 수 잇다는 얘기다.
동북아 고전(중국 고전이라고 말하는)을 통해 배우는 불변하는 진리같은 오래된 동양 사상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었다. 그러나 이병한은 인위자연(人爲自然), 인공진화, 인위인간을 말한다.
과학기술의 사용 추세를 보면 완전한 인위 인간(Man-Made-Human)이 나올 것이다.
前인간인가, 非인간인가, 超인간인가, 포스트인간인가? 50,000년 이상 체득한 모성에 대한 신화적 동굴도 사라진다. “여성과 모성에 대한 인류의 오랜 관성적 통념에 대한 일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의 관념에 대한 변화다. “無爲자연과 人爲자연이 공존하는 新자연 상태로 진입한다.”
"인공생명의 인위자연"이라는 표현은 섬뜩하다. 자연(Nature)의 본질은 인간이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그러한 '스스로 자(自), 그러할 연(然)'이다. 그것을 '인위(人爲)'로 통제하고 '자동' 기계 속으로 통폐합하겠다는 것은, 자연의 고유한 생명력과 영성(氣)을 말살하고 기술의 하위 시스템으로 박제하겠다는 오만이다. 이는 서구 근대 기계론적 우주관의 최악의 돌연변이 버전일 뿐이다.
무엇보다 탄소 기반의 생물조직과 실리콘 기반의 AI의 주요 조직이 점점 가까워지며 융합되는 단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탄소와 규소가 융복합되고, 생물과 사물이 통폐합되는 인공생명의 인위자연의 미래가 올 것이다. 자연과 자동과 자율이 무한대의 피드백을 영구히 거듭하는 새로운 인공진화의 세계로 진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현대 첨단 과학의 트렌드를 거시적으로 포착하고 있지만, 물리화학적 사실을 교묘하게 오해, 과장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 담긴 철학적•지정학적 위험성은 파멸적일 만큼 치명적이라는 사실에 눈 감고 있다. 과학적으로도 "원소의 주기율표 수준에서 탄소와 규소가 유기적으로 융합되는 것은 화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정답이다. 이병한은 생명공학과 반도체 공학의 '결합(Interface)'을 '화학적 융합(Fusion)'으로 혼동하고 있다.
⑶그린 차이나, 이병한은 새로운 에너지 분야에서 에너지 믹스, 전생 에너지, 그리고 재생 에너지, 그리고 완전 새로운 신생 에너지를 언급한다.

“지구를 생명이 번성하는 행성으로 진화시킨 물H₂O에 포함돼 있는 수소 에너지가 인공태양 시대로 가는 신생 에너지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산업문명 시대를 지배한 전생 에너지 시대를 지나 재생 에너지와 신생 에너지가 가동되는 신생명 문명으로의 이행을 상상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상상은 할 수 있다. SF소설의 상상이 현실이 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물에서 얻은 수소로 인공태양을 켠다는 이병한의 드림은 물리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저절로 ‘신생명 문명’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인공태양이라는 거대한 기계(器)가 켜지는 순간, 그 거대한 불꽃을 제어할 인간의 도덕성과 영성(道), 그리고 그 에너지를 독점하지 않고 전 지구적 생명 순환을 위해 골고루 흐르게 할 분산과 상생의 지혜(氣)가 준비되어 있는가, 하는 전제가 여전히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병한은 지질권과 생물권과 인간권과 기술권이 통합되어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지구 규모의 수학적 사회주의로 이행하리라 전망한다. 현재 중국은 알고리즘으로 장착한 최적화된 녹색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인-만물-만사의 자율적 신세계, 디지털 네이처가 개창한다고 말한다.
⑷디지털 차이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주제는 스마트시티 네트워크, 소위 넷시티와 디지털 실크로드이다. 탄센트는 8만 규모의 미래도시인 넷시티Net-City를 기획한다. ”핵심은 자동차 없는 도시다. 자율교통과 자전거, 보행자 중심으로 설계한다. 사람과 환경이 중심인 기술로 만든 생태도시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예콜로지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응당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업무지역과 등이 구역화되지 않는다. 상점도 학교도 공연장도 넷시티에 만들어질 모든 건물과 사물과 사람은 위챗으로 연결될 것이며. 만인과 만무로가 만사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미래의 도시다. 사회적 생산력이 생태적 생명으로 승화하는 공간으로 디자인된다.“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이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꿈 같다. 그러나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 도시는 ”구성하는 모든 인프라에 지능형 소프트웨어가 장착되면서 모든 것과 모든 곳이 실시간으로 연결됐다. “ 빅테이터와 AI가 의사결정을 한다. 神市같지만 이것은 어쩌면 AI가 감시하고 지도하는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암튼 디지털 문명과 생태 문명이 조화를 이뤄 만개하는 미래 문명의 정수를 장안을 뒤로 한 슝안(雄安) 신구에 구현해 내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 실크로드의 구축에 대한 이병한의 기대는 매우 크고 확신을 갖는다, "이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생명도시는 중국이 구축하고 잇는 일대일로를 따라 전 지구로 확산해갈 것이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주장인가? 중국예찬을 넘어 중국숭배로까지 느껴진다. 이병한이 첨단 기술과 동양 철학, 일대일로를 결합해 제시한 '생명도시'나 '신문명론'은 인문학적 상상력으로서는 매혹적일지 몰라도, 냉혹한 국제정치와 기술 현실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한 맹점과 과장이 존재한다고 보여진다. 왜 이런 주장을 하는지, 이병한의 입장에 되어 이해해 볼 수 있다. 첫째,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강한 반작용이다. 저자는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서구식 발전 모델(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원자화된 개인이 이기적으로 경쟁하는 구조)이 기후위기와 불평등으로 종말에 달했다고 본다. 이를 대체할 '대안 문명'을 찾다 보니, 동양의 유기체적 세계관과 가장 거대한 물리적 힘을 가진 중국의 결합에 과도하게 매료된 측면이 있다. 둘째, 저자가 말하는 '생명도시'는 생물학적 생명이라기보다는, 숲의 생태계처럼 도시 전체가 센서와 AI로 촘촘히 연결되어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순환하는 '유기적 복잡계'를 뜻한다. 서구식 도시가 '콘크리트 기계'라면, 중국식 테크 도시는 '유기체'에 가깝다는 인문학적 비유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비판이 가능하다. '디지털 전체주의'와 감시 사회의 수출, 플랫폼의 폐쇄성과 신뢰의 결여, 일대일로의 현실적 부진과 '부채의 덫' 등, "중국식 디지털 실크로드가 전 지구적 신문명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주장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중국의 기술이 동남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의 일부 인프라를 장악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인류를 구원할 '신문명 기획'이 되기에는 중국 체제 자체가 가진 폐쇄성, 권위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테크노 파시즘(디지털 독재) 사상이 중국의 '국가 플랫폼'이나 '일대일로'와 결합하면, 인간의 신체(탄소)가 국가의 디지털 인프라(실리콘)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공진화"이자 "개벽"이라며 찬양하는 우스운 꼴이다. 시민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생체 감시 사회를 '인공진화의 세계'라고 부르며 지배를 정당화하는 사상적 노예 계약서가 될 위험을 처음부터 예상해야 한다.
어제 일기예보에 올 여름의 폭염과 폭우는 가장 극심하리라는 예측이다. 이병한은 한가한 소리를 하는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디지털 혁명이 초가속으로 진행돼 스마트 인프라를 장착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 이렇게 낙관할 수 있는 기후적 상황인가 의심스럽다.
기상청의 올여름(6~8월) 전망만 보더라도 인도양과 태평양의 이례적인 고수온 현상과 슈퍼 엘니뇨의 여파로 역대급 불볕더위와 물폭탄이 예고된 상황이다. 당장 생존과 안전이 위협받는 재난의 한복판에서 "디지털 혁명이 초가속화되니 천재일우의 기회"라는 말은 현장을 모르는 철저한 공학적·인문학적 유토피아론이자 한가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사실 하이테크(High-Tech)가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역설을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디지털 혁명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를 가장 빠른 속도로 태우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기 때문이다.다. 데이터센터의 엄청난 탄소 배출, 즉 인공지능(AI), 5G, 클라우드를 돌리기 위한 초대형 데이터센터들은 '전기 먹는 하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병한 교수의 시선이 '기술적 해결주의'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기후위기의 본질은 끝없는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구조, 환경을 파괴해 온 인류의 탐욕에 있다. 근대 서구 문명의 기계론적 맹점을 비판하던 저자가, 결국 또 다른 첨단 기계(디지털)의 품으로 도망치는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

미국의 “실리콘벨리야말로 동방의 도와 서방의 기와 만나는 東道西器의 요람이자 보루였다.”東道西器, 東道東器에 대해 同道東氣란 말로써 테크노 중심의 파시즘의 위협을 제어할 모험적 관념을 제시하고 싶다.
①東道西器(동도서기): 정신(道)은 동양이 지키고 기술(器)은 서양 것을 쓴다는 구도는 이미 실패한 지 오래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세계관을 규정하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器’가 들어오는 순간, 동양의 ‘道’는 박물관 박제가 되거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②東道東器(동도동기): 현대 중국의 테크 산업이나 시진핑 체제의 중화주의적 결합이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동양의 도(천하사상, 유기체론)를 첨단 동양의 기술(AI, 빅데이터, 안면인식)로 구현하겠다는 야심이다. 그러나 이는 기술을 국가 권력과 결합하여 완벽한 판옵티콘을 만드는 ‘테크노 파시즘’ 혹은 ‘디지털 전체주의’의 괴물을 낳을 뿐이다. 器가 道를 집어삼킨 꼴이다.
③同道東氣(동도동기): 여기서 ‘同’은 동양과 서양, 혹은 인간과 자연, 인간과 기계를 나누던 이분법적 국경을 허무는 글자이다. 근대 서구의 인간 중심주의적 파멸과 중국식 국가 중심주의적 파멸을 모두 넘어,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함께 걸어가야 할 보편적 생명사상을 뜻한다. 기계와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테크노세(Technocene) 시대의 새로운 ‘공생산’(Sympoiesis)’의 道이다. ‘器(그릇/하드웨어)’가 아니라 ‘氣(에너지/흐름)’로의 전환이 중요하다. 테크노 파시즘의 본질은 기술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규격화하고, 데이터로 박제하며, 감시망 속에 단단하게 가두는 것(器의 고착화)이다. 반면 ‘東氣’는 동아시아 사상의 핵심인 ‘기론(氣論)’적 세계관을 소환한다. 만물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흐르고, 감응하며, 상호작용하는 기(氣)의 그물망이다. 기술 역시 인간을 지배하는 실리콘처럼 딱딱한 기계(器)가 아니라, 우주적 생명 순환을 돕는 유연한 흐름(氣)이다. 서구식 통제나 중화식 독점이 아닌, 동아시아적 생명 에너지가 가진 ‘소통과 순환’의 역동성으로 기술을 이끄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병한이 안 표지에 내세운 다음의 공진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민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마지막으로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테크노 차이나>에서 기술한 낙관론으로는 비현실적 드림에 불과하다면, 실현가능한 대안은 무엇인가, 스케치해 본다.
이병한 교수가 제시한 이 장엄한 ‘공진화’의 명제들은 사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세계관인 삼재사상(天地人)과 현대의 복잡계 과학, 그리고 개벽(開闢) 사상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인류 문명사적 최고 수준의 비전이다. 이것을 고작 중국의 디지털 인프라와 국가 플랫폼이라는 딱딱한 그릇(器)에 담아 실현하겠다는 낙관론은 현실의 기후 위기와 디지털 전체주의 앞에서 비현실 적인 드림, 혹은 유토피아적 수사에 그치고 만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꿈을 단순한 환상으로 버릴 것인가? 이 명제들을 현실에서 작동 가능한 '방책'은 없을까? '기술 만능의 器'에서 '상호 감응의 氣'로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빅테크의 독점'에서 '디지털 커먼즈(공유재)'로: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 '기술적 해결주의'에서 '적정·생태 기술'로의 다운사이징: [생명과 기술의 공진화]
만물을 감시하는 거대한 데이터센터 중심의 고비용·고에너지 하이테크(High-Tech) 대신, 에너지를 최소화하면서 자연의 순환을 돕는 로텍(Low-Tech)과 적정기술, 그리고 생태기술로 기술의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예컨대, 폭우와 폭염을 센서로 감시만 하는 스마트시티가 아니라, 빗물을 머금고 열섬현상을 식히는 '스펀지 도시(자연 기반 해결책)'에 기술을 보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기계(器)가 생태(氣)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순환의 흐름에 기술이 부드럽게 스며들게 해야 한다.
‣한국적 생명 사상과 '개벽학'의 실천적 복원: [개벽학과 지구학의 공진화]
‘우주 만물이 곧 한울님(侍天主)’이라는 사상은 인간이 기계나 자연을 도구로 보지 않고, 만물과 서로 감응(感應)하는 주체로 대접하는 태도이다. 이를 경제학과 법학에 도입하여 '자연의 권리'를 법제화하고, 만물을 단순한 '활물(活物)'을 넘어 행위 주체로 인정하는 실제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는 기술이 고도화된다고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주적 도리를 깨닫고 스스로의 탐욕과 소비를 줄이는 '영성적·문화적 守心'에서 비롯되고 성장한다.
이병한의 공진화 명제들은 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인류의 위대한 자산이다. 다만 그 실현 경로가 ‘테크노 차이나’라는 낙관적이고 무비판적 좌표를 찍었을 뿐이다. 진짜 방책은 기술을 ‘지배와 성장(器)’의 도구로 보았던 근대적 서구성과 중국식 국가주의를 폐기하고, 기술을 만물의 연결과 상호 치유를 돕는 ‘유기적 흐름(氣)’으로 인식하는 철학이 선행되어야 한다. 초가속 기술에 취할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속도를 늦추고 생태적 영성(道)과 결합시킬 때, 비로소 천지인(天地人)과 만물•만사가 함께 진화하는 ‘진짜 개벽’의 문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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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임보다 흐름이 새삶새엶길에 더 필요하고 중요함의 밑그림을 잘 그려주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겨레생명사상의 요람되기를 열망했던 동학공부고장에 테크노차이나의 새굳힘과 새짜임이 기통운화의 흐름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걱정스러웠는데 심광섭목사께서 깊진한 새새김을 펼쳐주심을 통해서 안타까움이 자못 누그러졌다. 다행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학을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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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도 높은 이해와 생산적인 비판의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기술만능의 器가 아니라 상호감응의 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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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대표인 ‘다른백년’ 삼청동 모임에 몇차례 참석. 훌륭한 생각과 실천을 겸비한 청년들의 열기로 후끈 후끈 ! 긴글 천천히 소리내어 읽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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