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yn Jang's post 260602
Huyn Jang
tSnedporos0aa5inm20uu11 fu4a6e16t4h4m81882m3:ta514a 512J0 tc ·
기독교국가 건설을 꿈꾸던 이승만정권은 민족종교 지도자들을 어떤 방법으로 몰살시겼을까?
1950년 6·25 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 정권이 자행한 보도연맹 학살 사건이 있다.
그 당시 수많은 민족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대거 학살당했다.
당시 이승만 정권과 군경은 좌익 사상가나 공산주의자뿐만 아니라, 정권에 비협조적이거나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민족종교 세력 전체를 '잠재적 적대 세력 즉 용공 세력으로 몰아 숙청했다.
이때 가장 참혹한 타격을 입은 곳이 바로 보천교와 대종교.천도교였다.
민족종교들이 이 비극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죽임을 당한 구체적인 배경과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승만 정권은 해방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는 과정에서, 강력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걷던 민족종교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민족종교는 곧 공산주의자다.
민족종교의 교리(후천개벽, 평등사상, 공동체 주의)는 얼핏 보면 계급 없는 세상을 말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과 유사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은 이를 빌미로 민족종교 지도자들에게 '좌익', '용공' 프레임을 씌웠다.
이승만 정권은 민족종교 신도들과 지도자들을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반강제적으로 보도연맹에 가입시켰다.
보도연맹은 원래 '좌익 전향자들을 계도한다'는 명목의 단체였지만,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고한 민족종교인들을 대거 등록시킨 것이다.
6·25 전쟁이 터지자 마자 이승만 정권은 이들이 북한군에 동조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와 의심만으로,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골짜기와 광산 등으로 끌고 가 집단 학살했다.
이 과정에서 각 지역의 민족종교 지부장, 전교(포교사), 지도층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특히 동학에 뿌리를 둔 천도교는 보도연맹 사건 전후로 가장 비참한 숙청을 당했다.
해방 후 북한 지역에서는 천도교 세력이 매우 강했다. 심지어 북한 정권 하에서 '천도교청우당'이라는 합법 정당이 만들어져 정권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남한에 있던 천도교인들은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북한 괴뢰 정권과 한통속이 아니냐"는 극심한 의심을 받았다.
보도연맹 사건 당시 수많은 남한의 천도교 지도자들과 청년 당원들이 '잠재적 간첩'으로 몰려 골짜기에서 총살당했다.
왜 하필 민족종교 지도자들이 타겟이었을까?
이승만 정권과 그를 지지하던 주류 세력 친미·친기독교및 친일파 출신 군경이 보기에, 민족종교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통제 불가능한 거대 조직이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수백만 명을 움직였던 민족종교의 조직력은 정권에 큰 부담이었다.
민족종교인들은 대개 격렬한 항일 운동을 했던 이들이 많았기에, 해방 후 이승만 정권에 그대로 고용된 친일파 출신 경찰과 군인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친일 출신 군경들이 전쟁이라는 혼란을 틈타 저놈들 좌익이다.라며 보도연맹 명단에 넣어 합법을 가장한 보복 학살을 감행한 것이다.
"민족종교가 해방 후 왜 기독교에 주류 자리를 내주었는가"에 대한 대답에 이 보도연맹 학살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비극이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일제강점기 때 뼈대가 부러진 민족종교는,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 사건을 거치며 지도층과 엘리트들이 물리적으로 학살당하는 대재앙을 맞이했다.
목소리를 낼 지도자를 모두 잃은 민족종교는 이후 '사이비', '미신'이라는 낙인 속에 완전히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던 한국 현대사의 슬픈 단면이다.
사진 1번 기독교국가 건설을 꿈꾸며 독립운동에 앞장선 민족종교 지도자들을 몰살시킨 초대대통령 이승만
사진 2번 북에서 내려온 한경직은 일제때 천리교성전을 미군정으로 부터 불하받아 영락교회를 만들었다.
북에서 내려온 기독교인으로 서북청년단을 조직하여 이승만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테러하고 제거한 배후인물 한경직목사
요약
이 글은 1950년 6.25 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이 감행한 보도연맹 학살 사건 당시, 좌익 사상가뿐만 아니라 보천교, 대종교, 천도교 등 민족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대거 숙청당한 비극을 다룬다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 출신 군경은 민족종교의 교리(후천개벽, 평등사상 등)가 사회주의와 유사하다는 빌미를 들어 '용공' 프레임을 씌웠다
특히 북한 지역에서 세력이 강했던 천도교는 간첩이라는 극심한 의심을 받으며 가장 비참한 숙청을 당했으며, 대종교가 설립한 홍익대학교에서도 교수와 학생들이 좌익으로 몰려 총살당했다
평론
본 글은 이승만 정권의 보도연맹 학살을 단순한 '좌우 이념 대립'의 프레임을 넘어, '기독교 국가 건설'이라는 권력의 기획과 '친일파 군경의 사적 보복'이라는 다각적 시선에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해방 공간에서 기득권을 장악한 친일파 출신 군경이 자신들의 과거를 비판하는 민족종교 세력을 통제 불가능한 잠재적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프레임을 씌운 과정은 권력이 어떻게 합법을 가장해 폭력을 행사하는지 잘 보여준다
다만,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기독교 편향 정책, 친일파 등용 문제는 역사적 사실이나, 민족종교의 몰락 원인을 오직 보도연맹 학살이라는 단일 사건과 '기독교 국가 건설을 위한 의도적 말살'로만 환원하기에는 다소 거친 단순화의 오류가 존재한다. 민족종교의 교세 약화에는 근대화 과정에서의 사상적 변화, 내부 분열, 제도 종교화의 실패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인도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민족종교 엘리트층의 집단 학살을 수면 위로 올려, 한국 종교 지형의 급격한 변화 뒤에 숨은 피비린내 나는 비극을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본 자료는 매우 강렬한 역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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