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아시아 - 1945-1991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
이병한 (지은이)서해문집2019-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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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세기 세계냉전사는 흔히 ‘미국vs.소련’ ‘서구vs.동구’ ‘자유주의진영vs.사회주의진영’ 구도로 발설되고 전자들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된다.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공식을 ‘역사의 종언’이라는 선언으로 발 빠르게 추인함으로써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 책이 들여다볼 냉전기 동아시아의 풍경들은 지금껏 알려진 양상과는 판이한 또 다른 역사의 존재를 암시한다. 저자 이병한은 책의 표제가 가리키는 지리-역사 공간에서 벌어진 ‘다른 역사’를 살핌으로써, 동아시아 냉전사의 재인식을 도모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붉은 아시아’는 “서구와 극동 사이에 위치한 광역의 시공간”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캄보디아부터 스리랑카까지, 인도양부터 몽골 초원까지 온통 붉었던” 1945년에서 1991년까지 동아시아 사회주의진영을 가리킨다. 당대 붉은 아시아는 미국은 물론 소련과도 문화적·정치적·군사적 일전을 벌였고, 이념·진영과 무관하게 주변국과 교류를 회복하고 이어나갔다. 요컨대 붉은 아시아에서 벌어진 대결의 축은 ‘자유주의 대 사회주의’가 아니라 ‘패권 대 반패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전 세계 1/3에 달하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이변 혹은 반전(反轉)을 살피는 일은,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진영의 역사에 소홀했던 동아시아사를 온전히 복구하는 방편인 동시에, 냉전 구도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판도를 G2(미중 양극 구도)로 바라보는 세계인식에 일정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1945-1991 붉은 아시아’를 세계의 ‘오래된 미래’로 들여다볼 만한 까닭이다.
목차
머리말•4
여는 글 장막 너머, ‘붉은 아시아’를 돌아보는 까닭
동아시아 없는 동아시아 15
또 하나의 동아시아 21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을 위하여 25
1 냉전의 역사학: 신냉전사와 신중국을 중심으로
역사학으로서의 냉전연구 33
냉전과 (구)냉전연구 37
탈냉전과 신냉전사 40
중국학계의 신냉전사: 배경 43
중국학계의 신냉전사: 성격 51
중국학계의 신냉전사: 비평 57
탈서구와 탈중국의 눈으로 60
2 ‘동방’의 기호학: 탈중국화를 위한 중국화
신중국과 신조선 67
항미抗美와 원조援朝 72
웨이웨이: 옌안에서 동방까지 76
웨이웨이와 신조선 81
“한 덩굴에 달린 오이” | 젠더화된 유사 가족애 | 동양과 동구의 소거 | 신조선의 신중국 인식: 재再중화 혹은 주체적 중국화
웨이웨이와 신월남: 또 하나의 조선 93
“동방東方”의 기호학 97
3 스포츠와 냉전: 가네포를 아십니까?
스포츠는 정치다 105
극동대회에서 아시안게임으로 109
YMCA와 극동대회 | 네루와 아시안게임
아시안게임에서 가네포로 115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의 파행 | 가네포의 탄생 | ‘반둥’의 분열
중국과 가네포 128
IOC와 중국의 충돌 | 가네포라는 출로 | 아시안가네포를 주도하다
세 갈래의 아시아 137
AA운동과 비동맹운동 | 동풍: 또 하나의 아시아
스포츠와 동아시아 냉전 143
4 ‘붉은 지식인들’의 냉전: AA작가회의의 출범과 분열
두 개의 AA 149
‘타슈켄트 정신’ 만세! 153
뉴델리 | 모스크바 | 타슈켄트: ‘문학의 반둥회의’ | 포도원 결의
AA의 갈림길 164
1961, 도쿄 | 1962, 카이로 | 1963, 발리
회고와 폭로 183
모스크바의 회고 | 콜롬보의 폭로 A| A의 분열: 반둥정신과 타슈켄트정신
콜롬보의 유산: 옌안의 세계화, 세계의 동방화 195
AA문학, 세계문학, 동방문학 205
5 마오쩌둥과 삼분천하: 중간지대론과 삼개세계론
냉전과 마오쩌둥 213
중간지대론: 자력갱생의 출발 218
평화공존 5원칙: 중화세계질서의 근대화 224
중국과 아시아의 관계 재건 | 사회주의 국제주의의 재건
두 개의 중간지대론: 탈냉전의 초석 240
대혼란, 대분화, 대개조 | 두 개의 중간지대론
삼개세계론 244
혁명 수출 | 삼개세계론
차서差序: 왕도와 패도 253
6 인도차이나의 잃어버린 20년: 동구와 동방의 길항
1979, 동방의 와해 261
인도차이나: 제국의 그림자 266
대남제국과 인도차이나 | 코민테른과 인도차이나 | 반反인도차이나
1975, 동구와 동방의 각축 273
동구의 이식 | 동방의 진화
하노이의 전쟁: 호찌민에서 레주언으로 282
1954, 제네바회담 290
《중국백서》의 오류와 오해 | 제네바회담 | 베트남의 길, 중국의 길
‘불평등한 제국들’ 간의 오해 308
동아시아의 ‘탈냉전’ 315
닫는 글 ‘다른 백 년’을 위한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
냉전과 동방 319
중화세계의 근대화: 제국주의에서 반제국주의로 326
주•334
참고문헌•382
찾아보기•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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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소련이 해체(1991)이 된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P. 4 데뷔작인 《반전의 시대》는 시론(時論)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해 내 나름으로 때에 맞춤한 논평을 가한 글들이다. 역사에 기반해 시사를 직시한다는 복안(複眼)의 태도를 견지했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은 새로운 세계사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은근했다. 시론에 이어 사론(史論)에, 대서사(Grand Narrative)에 도전해본 것이다. 그 시론과 사론이 어떠한 학구적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던가를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프리퀄(prequel)에 해당한다. 접기
P. 22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필자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균열선의 핵심은 좌우(左右)보다는 고금(古今)이며, 그 가운데서도 탈중화(脫中華)와 재중화(再中華)의 길항이었다고 본다. 명청 교체 이래 동아시아 내부에서는 (소)중화의 보편화 과정이 전개되고 있었다. 만주족이 대청제국을 표방하자 월남은 대남제국을 내세우며 ‘중국’을 자부했고, 조선 또한 중화문화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을 강화하며 ‘소중화’에서 ‘조선 중화’로 이행했다. (…)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향을 중화세계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중화세계의 민주화’ ‘중화세계의 평등화’로 독해하는 편이 한층 적실하다는 점이다. 즉 모두가 중화이고 저마다 중화라는 차원에서 기존의 문명적 위계를 대체하는 내재적인 근대화가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대국-소국 간 현실적 힘의 차이는 여전하였으되, 상국-하국이라는 문화적 위계의 관념은 흐릿해져갔다. 접기
P. 62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이면에는 중국-아시아 간에 노정되는 비대칭적 구도의 역사적 유산이 복류하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특유의 ‘장소성’과 ‘현장성’이 (동)아시아형 냉전 질서의 독특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냉전은 유럽 냉전과 다를뿐더러, ‘제3세계 냉전’으로 일반화해서도 해소되지 않는 남다른 독자성이 뚜렷했다 하겠다. 중국학계의 신냉전사는 이러한 겹겹의 분열·분단 구조에 천착하지 못하는 맹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인식과 실감의 사각지대로부터 새로운 연구의 지평과 개입 가능성이 열린다 하겠다. 접기
P. 101~102 서구와 동구, 그리고 동아는 다른 듯하면서도 합일점이 있었다. 저마다 근대를, 그래서 탈중화를 지향했다. 그리하여 서구·동구·동아와 모두 대결했던 동방은 그 속 깊이 중화를 복원하는 재중화의 과정이라 할 법하다. 중국공산당의 창건과 항일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중소분쟁을 거치며 신중국이 굴기하는 과정을 그 이웃 소국들과 연동하여 ‘중화세계의 근대화’라고 독해할 수 있는 것이다. 접기
P. 125~126 가네포의 발진은 IOC에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특히 ‘아프리카 게임’에 참여하는 37개국의 행보가 중요했다. 이들 신생국 중 적잖은 수가 처음으로 참가한 국제대회가 가네포였던 것이다. 난생처음 국기가 오르고, 국가가 울려 퍼지는 경험을 자카르타에서 맛본 셈이다. 독립을 실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이 유독 많았다는 현장 기록도 남아 있다. 게다가 제2회 가네포 대회가 아프리카 이집트에서 개최될 예정으로, 아랍 국가들도 가네포에 우호적이었다. 이들이 모두 가네포를 택한다면 올림픽 운동은 치명타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IOC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마음을 사고 자, 이들이 요구하던 남아공의 IOC 추방까지 수용해야 했다. 접기
P. 188 이렇게 소련의 회고를 바탕으로 정리하면, 1967년 이래 카이로 상임국이 주도한 AA작가회의란 소련의 문화냉전을 담당하는 국제기구에 가까워 보인다. 미국, 중국과 제3세계에서 경합하는 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미중 간 반소 연합이 형성되고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1975년, 김지하에게 로터스상을 안겨준 카이로 상임국과 그 막후에 있던 소련의 복심(腹心)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접기
P. 216~217 신중국이, 즉 마오쩌둥이 도전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근대 국제질서의 이념형과 배치되는 냉전체제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비유컨대 초강대국의 ‘패도’(覇道)에 대한 도덕적 저항이었다. 이를 통해 냉전의 길항 자체가 교란된다. 이념과 체제의 대결에서 ‘패권 대 반패권’의 구도로 전환된 것이다. 즉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주요 모순이 아니라, 미소의 세계패권 추구와 이에 대한 저항이 핵심 모순이라는 인식론적 전환을 촉발한 것이다. 옛말을 빌자면, 패도와 왕도의 길항이 냉전의 요체다. 새 말로 보태자면, 탈중화와 재중화의 길항이 동아시아 냉전의 핵심이다. 신중국은 이러한 언어적 전회, 패러다임 전환을 거치며 양극 질서를 돌파하고 탈냉전의 다극 질서를 일찌감치 준비할 수 있었다. 접기
P. 315 유럽과 동아시아는 탈냉전의 여로도 판이했다. 유럽에서는 동구의 몰락이 서구로의 흡수로 이어졌다. 소련(Soviet Union)을 대신한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 출범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였고, 그래서 ‘역사의 종언’에도 딱 들어맞았다. 반면 동아시아는 여전히 중국과 베트남과 북조선, 라오스가 건재하다. 어느 한쪽 체제의 일방적 와해와 흡수는커녕 중국의 부상과 연동되어 ‘아시아의 세기’를 전망하기도 한다.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여전하면서도 지역적 협력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다르면서도 어울리는 평화공존의 원칙이 1990년대 이래 꾸준하게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한베 수교 또한 유럽형 탈냉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동방형 탈냉전이라 하겠다. 동구와 서구가 주도하며 경합했던 ‘가치동맹’의 시대가 저물고 동방형 질서가 전면화된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탈냉전은 ‘역사의 종언’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역사의 반전(反轉)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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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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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전3권)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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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붉은 아시아, 지리상의 발견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 역사상의 재발견
‘죽의 장막’ 너머의 1945-1991,
잊혀진 절반의 동아시아사
20세기 세계냉전사는 흔히 ‘미국vs.소련’ ‘서구vs.동구’ ‘자유주의진영vs.사회주의진영’ 구도로 발설되고 전자들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된다.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공식을 ‘역사의 종언’이라는 선언으로 발 빠르게 추인함으로써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 책 《붉은 아시아》가 들여다볼 냉전기 동아시아의 풍경들은 지금껏 알려진 양상과는 판이한 또 다른 역사의 존재를 암시한다. 저자 이병한은 책의 표제가 가리키는 지리-역사 공간에서 벌어진 ‘다른 역사’를 살핌으로써, 동아시아 냉전사의 재인식을 도모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붉은 아시아’는 “서구와 극동 사이에 위치한 광역의 시공간”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캄보디아부터 스리랑카까지, 인도양부터 몽골 초원까지 온통 붉었던” 1945년에서 1991년까지 동아시아 사회주의진영을 가리킨다. 당대 붉은 아시아는 미국은 물론 소련과도 문화적·정치적·군사적 일전을 벌였고, 이념·진영과 무관하게 주변국과 교류를 회복하고 이어나갔다. 요컨대 붉은 아시아에서 벌어진 대결의 축은 ‘자유주의 대 사회주의’가 아니라 ‘패권 대 반패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전 세계 1/3에 달하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이변 혹은 반전(反轉)을 살피는 일은,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진영의 역사에 소홀했던 동아시아사를 온전히 복구하는 방편인 동시에, 냉전 구도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판도를 G2(미중 양극 구도)로 바라보는 세계인식에 일정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1945-1991 붉은 아시아’를 세계의 ‘오래된 미래’로 들여다볼 만한 까닭이다.
‘동방’,
붉은 아시아를 읽는 눈
붉은 아시아의 냉전상을 남김없이 살피기 위해 이 책이 제시하는 푯말은 ‘동방’(東方)이다. 저자가 전작들-《반전의 시대》와 《유라시아 견문》 3부작-에서부터 일관되게 강조해온 개념이기도 한 ‘동방’은, 전작들의 학문적 토대라 할 이 책에서 보다 정교하게 구현된다. 동방이란 서세동점과 함께 밀려온 제국주의에 물들기 이전의 중화세계질서, 다시 말해 번부·조공·호시라는 중층적·복합적 체제를 기반으로 대.소국 간 현실적 힘의 차이는 인정하되 각국의 독립성과 자주성 또한 존중했던 수평적 지역질서의 발전적(근대적) 계승을 뜻한다. 이는 19세기 이후 동아시아에 이식된 제국-식민체제와는 분명히 구별되며, 2차세계대전 이후 미소 패권국-동맹(위성)국의 종속 체제와도 다르다. 이렇듯 저자는 서구(西歐)는 물론이요, 서양의 타자적 개념으로서의 동양(東洋), 소련으로 대변되는 동구(東歐), 일본이 자임한 동아(東亞)와도 분명히 구별되는 지리-문명적 개념으로서 ‘동방’을 제안하고 동아시아에서 이행된 일련의 반제국주의적 근대화 및 탈냉전 움직임을 ‘동방화’로 규정한다. 나아가 동아시아 냉전상을 전통적 지역질서를 계승한 동방과 당대 세계 냉전질서의 대결과 길항, 각축으로 재편해낸다.
동방과 동구의 각축,
재중화와 탈중화의 길항
판이한 두 질서의 대결 양상은 붉은 아시아 전역에 걸쳐 일어났다. 중국은 한반도의 항미전쟁과 인도차이나의 항법·항미전쟁을 지원하는 한편, 중소분쟁을 통해 동구와도 대결했다. 여기에 가네포와 AA(아시아·아프리카)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동아시아 사회주의진영의 대표로 우뚝 섰다. 이 시기 마오쩌둥이 추구한 삼개세계론·평화공존5원칙·중간지대의혁명 등의 외교적 기치는 ‘복합성’과 ‘포용성’이라는 동방의 정신을 대변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동방 문명의 역동성을 중국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재차 ‘제국’의 모습으로 기울게끔 만든 문화대혁명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베트남 역시 세 차례의 인도차이나전쟁(항법전쟁·항미전쟁·인도차이나 내전)을 거치며 각각 호찌민과 레주언으로 대표되는 동방화와 제국화 사이를 이리저리 방황했다. 후자의 흐름에 소련의 입김이 작용했기에 이 또한 동방과 동구의 길항이었다. 북조선이 친소와 친중을 오가는 동안,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중심의 AA운동과 동구에 기반한 비동맹운동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결의 전선이 좌우(左右)가 아닌 고금(古今)에 있음을 간파한 저자는 중화세계질서의 구심력과 원심력에 빗대 ‘재중화’(탈냉전)와 ‘탈중화’(냉전)의 길항으로 설명한다. 동방과 동구, 재중화와 탈중화의 교직이야말로 동아시아 냉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붉은 아시아의 유산,
‘다른 백 년’을 위한 세계 판도의 재인식
붉은 아시아에서 벌어졌던 반세기의 각축은 또한 ‘다른 탈냉전’을 낳았다. 우선 ‘역사의 종언’이 무색하게 중국·베트남·북한·라오스 등 동아시아 사회주의국가들은 제각기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남았고, 주변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루었거나 도모하고 있다. 한편 세계냉전의 승자였던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일본·대만·한국)은 아직까지 그 종속성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동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정상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일찍이 ‘붉은 아시아’가 미국과 소련이라는 당대 G2의 패권전략에 저항하며 유라시아의 동서남북을 새로이 이어보고자 펼쳐온 다양한 시도들이다. 이는 단순히 동아시아 지역사 차원을 넘어, 오늘날은 물론 앞으로의 세계를 단순히 미중 패권 경쟁 구도로 수용·인식하는 풍조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역사적 유산이다. 그 균열이 현실화할 때, 이 책이 발굴해낸 붉은 아시아의 가치는 ‘지리상의 발견’을 넘어 ‘역사상의 재발견’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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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
1. 노루 꼬리 만 한 오후 햇살이 서산에 걸리더니 이내 어둠이 내린다. 뒷산 대숲을 찾아드는 잘 새들의 시끄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2. 지난 가을부터 현대사를 읽어내는 방법으로서 ‘발전사’와 ‘냉전사’ 등의 관련연구동향을 찾아보고 있는데, 레이섬 (Latham, Michael E.)과 개디스 (John Lewis Gaddis), 베스타(Odd Arne Westad) 등의 책들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3. 코로나 시국이라 해가 바뀌어도 움직이기가 싫어 조용히 들어앉아 책장만 넘기고 있다. 프레시안에 오랫동안 연재했던 이병한의 ‘유라시아 견문’을 흥미진진하게 읽으며 그 패기만만함이 싫지 않았다. 오늘 그의 학위논문(중화세계의 재편과 동아시아의 냉전, 2015)을 간행한 《붉은 아시아》2019를 손에 잡았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방법론에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엮어나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이끌어낸 논지가 설득력이 있다. 그는 지역사의 지평, 즉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구조 변동의 측면에서 냉전을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진영의 역사에 소홀했던 냉전기 동아시아사를 온전히 복구하는 방편인 동시에, 냉전 구도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판도를 G2(미중 양극 구도)로 바라보는 세계인식에 일정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 수 있는지를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에 중국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활발한 편이다. 주지하듯이 역사학 영역에서 중국대륙 중심의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그것을 상대화하려는 시도가 크게 두 가지 범주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하나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중국대륙 중심의 중국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기 위해 중화민족 담론이나 중국 변경지역과 소수민족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높아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사 자체를 상대화하려는 연구가 ‘동아시아적 시각’에 입각하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에 비추어 볼 때 그의 작업은 어떠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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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2022-01-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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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과 책으로 이어져 있다

생김새만으로 책을 고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예외는 있다. 생김새만으로도 무작정 책을 끄집어 낼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끄집어 낸 책이 겉보기만 그렇다면 잠시 망설일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안의 생김새까지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 책은 당연히 내가 갖고 와야 할 책.
아주 격하게 적극적으로 갖고 싶은 책,이 나왔네. - 라고 써 놓고 잠시 달력을 본다. 어차피 지금 주문해도 다음달이 되어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며칠만 참고 9월에 구입하는 것으로 할까....
9월이면 생일도 있으니 미리 받는 생일선물이라고나 할까.
아니, 이런저런 핑계가 없어도 사게 될 책 아닌가. 다만 시기를 노리고 있을뿐.









며칠전 어머니가 삼일 넘게 두통이 심하다고 하셔서 병원에 다녀왔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은 휴무인지라 다른 내과를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왜 이런 약처방을? 왜 이렇게 되도록 뒀는지 모르겠다는 등등등... 그동안 계속 다녔던 병원에 대한 불신만 키워놓고는 아무런 처방 없이 다니던 병원에 가서 의사소견서를 받고 대학병원에 가보라고만 했다. 어떻게 판단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찌어찌 아는 분을 통해 대학병원 의사에게 물어보니 처방하지 말아야 할 약은 아니고 당연히 반드시, 먹어야 하는 약인 것 같지만 걱정된다면 대학병원의 신장내과로 찾아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다음날 아침 일찍 원래 다니던 내과에 가서 의사소견서 들고 대학병원 가보라는데, 왜 그런지는 얘기도 안하고 그냥 그렇다고만 했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던 의사쌤, 걱정되신다면 가는 건 환자분과 가족이 결정할 일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하시며 2014년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혹시 모르는 다른 질병과의 연관이 있을까 대학병원에서 엑스레이, 초음파 기타등등의 검사를 하고 그 결과지를 보면서 꾸준히 약처방을 하고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하면서 신장기능까지 다 확인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니,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왜 그 병원 의사는 하지 말아야 할 약처방을 했다는 말을 보호자에게 흘린건지!!! (물론 이 말은 우리끼리만 했다. 의사 앞에서 의사를 욕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몇달을 다닌 내과에서 약을 받아도 갑자기 쓰러지시는 걸 못 잡더니 지금 내과로 옮긴 후로는 한번도 쓰러지신 적도 없고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다. 가끔 두통이 있다고 할때도 진료받으며 물어보면 그게 근육통이라고. 물론 단지 두통만 있다면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어머니의 경우 검사로 확인을 하고 있고 - 심장 초음파는 바로 한달전에 검사를 했고. 그래서 그게 근육통, 자세의 문제로 인한 통증일 수 있다고 하신다.
나도 그렇게 알고 어머니 어깨를 주물렀는데 교통사고 후 잘 쓰지 못하는 오른쪽만 미칠듯이 아프다고 하셨다. 그리고 엊그제 한의원에 가신 어머니가 머리 아프다 했더니 한의사 쌤도 똑같이 머리만 아프면 다른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그 두통은 어깨로 오는 거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그러게 어깨를 주물렀는데 한쪽이 아파 죽겠더라고.
하아... 의사가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고 한다면. 좋은 의사를 만난다는 걸 그저 재수 좋은거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남들은 더 큰 수술도 하고 회복되었는데, 나는 채 1년이 되기도 전에 수술 후유증처럼 신장 하나를 떼어내야 하고... 이런 것들을 정말 그저 재수 없었다,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것인지.
뭐 아무튼. 삼일 넘게 계속된 두통때문에 다들 걱정을 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될 때, 어머니는 또 새삼스럽게 콧줄도 안할꺼고 연명치료도 안받을꺼란다. 의사에게 본인이 소견을 이야기하면 된다며 다음번 진료가서는 그거 말씀하시겠단다.
멀리 돌아왔지만. 인간의 마지막 권리.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 이 책을 보니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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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19-08-27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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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냉전 (The Cold War)의 재인식- 동아시아의 사회주의권 국가를 중심으로
원광대에서 연구하시는 이병한 교수께서 2019년 출판하신 동아시아의 냉전사 연구서입니다.
냉전사(The Cold War History)라는 분야 자체가 현대사 중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를 다루는 매우 특수한 분야이다보니, 그리고 그중 사회주의/ 공산주의권에 대한 분야이므로 상당히 전문적인 분야인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저자의 연세대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것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권에 대한 20세기의 역사는 그 이념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로서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의 중요한 한축으로 잊혀져야 할 이유도 정당성도 전혀 없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북한의 독재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애초의 이들의 순수한 동기를 알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100년이 넘게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사실 그 자체로 바라보는게 처음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전을 흔히 보듯 미소 두 블럭간의 대결로 보는 서구적 시각 혹은 유럽적 시각(Eurocentric perspective)이 아니라 동아시아(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지역의 시각으로 냉전을 바라보려 했습니다.
유럽과 다른 동아시아의 냉전의 역사를 추적해보려고 했고, 미국과 동맹국인 일본이나 한국 등 자유주의 진영에서 본 냉전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 북조선, 그리고 북베트남 등 소위 공산주의 국가들이 바라본 냉전을 다뤘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와 컴플렉스( Red complex)로 터부시했고 그래서 분명히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기록된 역사였으나 애써 무시하고자 한 역사의 한 부분을 복원한 점에 이 책에 의의가 있습니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잠시 언급하기도 한 중국의 부상(浮上)은 집필당시인 2014-2018년에 그 전조가 나타나기는 했으나 지난 2022-2023년 현재처럼 첨예해지기 전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물론 이 책이
나온 후의 상황이라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건 유의해서 볼 사항입니다.
근래에 접한 정치권의 논쟁 중 상식적인 면을 물고 늘어진 한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께서 책을 소개하시면서 한국전쟁의 성격이 ‘국제전(International War)’ 이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 여당 정치인들이 북한의 남침 사실을 무시했다느니, 한국전쟁이 내전이었다고 날선 비판을 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언제나처럼 비판의 근거는 대지 못했습니다. 논쟁하는 법을 모르는 분들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서구의 냉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미소대결을 본격화한 최초의 사례라고 나오고 냉전이 열전 (the Hot War)로 번진 사례로 언급됩니다. 한국전쟁의 국제전성격은 또한 휴전협정 당사국을 보면 됩니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휴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의 팽덕회, 국제연합군의 미군 대장 마크 클라크 (Mark W Clark) 이 사인했고,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 국제연합군 수석대표 미군 대장 윌리엄 해리슨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국제전이 아니면 국제연합군이나 중국인민지원군 대장이 후정협정에 사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북한의 김일성과 조선인민군 사령관의 이름은 협정서이 올라있으나 당사자라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백선엽 장군 이름은 없습니다.
이 해프닝은 한국전쟁의 휴전에 대한 역사적 사실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왜곡해도 된다는 불순한 동기가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중국쪽의 인식을 일별할 수 있는 연구서가 한권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즉 중국에서는 항미원조(抗米援朝)라고 불리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에 대한 서사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 살핀 문화사입니다.
항미원조, 백지운 지음( 창비,2023)
또한 중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휴전협정 체결이후 1958년까지 진행된 북한의 재건과정이 새로운 중국의 정체성만들기와 연결된다(p85)고 인식합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한 이후 첫 국제전이 한국전쟁이고 이 전쟁에서 마오쩌뚱의 아들이 전사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북중관계를 혈맹이라고 부르고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한국과 관련된 언급은 여기서 그치고 저자의 주장을 잠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통념과 달리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는 오랜기간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 나타난 중화주의(中華主義)의 영향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화의 주체가 명대의 한족(漢族)에서 청대의 만주족(滿洲族)으로 바뀌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화의변태(華夷變態)라는 용어가 생겨나고,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는 등 중화사상 자체가 분기하고 중심이 없어지는 듯 보이고, 과거 근세시대의 종주국인 중국과 종속국인 중국 주변국간의 조공(朝貢) 관계가 국제법적인 조약관계로 바뀌었어도 오랜기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관계에서 고래의 영향인 중화주의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일견 당연하고 당연한 주장입니다. 한국의 경우도 중국과 수천년간 관계를 맺어왔고, 그 관계가 근대적 외교관계로 바뀌었다고 해도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유교문화에 대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자명합니다. 문명개화가 무엇이든 서양의 법률체계를 배우고 더할 수는 있어서 서양적인 법과 정치개념들이 동아시아 전통의 관념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타이,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과 중국과의 관계입니다. 이번에 처음 본 내용이고 새삼 무지를 깨닫게 되는 부분입니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구제국과 얽힌 근대이후 뿐만 아니라 근세이전 중국과 조공관계를 이루던 복잡한 역사가 있어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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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Kim 2023-07-01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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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의 저서 <붉은 아시아: 1945-1991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청하신 지침에 맞춰 대화는 존댓말로 진행하며, 요약과 평론 본문은 <해라> 체를 사용하고, 별표 대신 < >를 적용하여 작성했습니다.
붉은 아시아 요약
문명학자 이병한의 <붉은 아시아: 1945-1991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 대륙을 피로 물들였던 냉전의 역사를 서구 중심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아시아 주체들의 시각으로 전면 재구성한 역사 사상서이다. 저자는 유럽의 냉전이 대규모 전면전 없이 이념적 대치와 군비 경쟁으로 일어난 '차가운 평화'였던 반면, 동아시아의 냉전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 수백만 명의 희생을 낳은 '뜨거운 열전(熱戰)'이자 참혹한 문명 파괴의 과정이었음에 주목한다. 이 책은 아시아의 20세기를 지배한 '붉은 이념'의 실체를 추적하며, 분단과 전쟁으로 왜곡된 동아시아 근대성의 심층을 해체한다.
저자가 제기하는 핵심 논지는 동아시아의 냉전이 단순히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의 패권 경쟁에서 비롯된 하부 구조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자는 중국, 북한, 베트남 등으로 대변되는 아시아의 사회주의 세력들을 소련의 지령을 받는 위성국가로 보지 않고, 서구 및 일본의 제국주의 식민 지배에 저항하며 자생적으로 성장한 '민족해방 운동'의 연장선으로 파악한다. 즉, 아시아에서 '붉은색(사회주의)'은 서구식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수용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채택한 가장 강력한 주체성 확립의 도구이자 문명사적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본론에서 저자는 중-소 분쟁, 중-베 전쟁 등 사회주의 진영 내부의 갈등과 균열을 심층적으로 다룬다. 서구식 이분법적 냉전 프레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회주의 국가 간의 전쟁'은, 동아시아 냉전의 본질이 이념적 일체성보다는 각 국가의 주체적 생존과 민족주의적 역학 관계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저자는 마오쩌둥 사상이나 주체사상 등이 탄생한 배경을 유라시아 대륙의 장구한 역사적 맥락과 동아시아적 사상통통 속에서 재해석하며, 이들이 서구식 근대를 맹목적으로 모방하는 개화파적 경로를 거부하고 자생적 근대를 모색했던 거대한 문명적 실험들이었음을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서구의 냉전은 종식되었을지언정, 한반도의 분단과 대만 해협의 대치 등 동아시아의 냉전 구조는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저자는 대한민국이 이룩한 풍요와 민주주의가 이러한 '붉은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의 역동성을 차단하고 미국의 해양 헤게모니에 기댄 채 만들어진 섬나라 문명의 산물임을 지적한다. 냉전이 남긴 상흔과 이념적 적대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난 세기 아시아 대륙을 뒤흔들었던 사회주의 기획들의 주체적 역량과 민족주의적 열망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해양 중심성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과 다시 소통하는 반도 문명 본연의 좌표를 회복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평론: 냉전 서사의 도발적 전복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미화
이 책은 반공주의와 서구 중심의 냉전 사관이 강력하게 지배해 온 한국 지식인 사회에 동아시아 대륙의 시각이라는 거대한 균열을 내는 도발적인 문제작이다. 저자는 유럽의 냉전 공식으로 아시아의 참혹한 열전을 재단하던 기존 학계의 타성을 비판하며, 아시아 사회주의를 제국주의 저항과 자생적 근대 국가 수립이라는 주체적 '민족해방'의 서사로 격상시킨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거대 패권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중국, 베트남, 북한 등 아시아 주체들의 역동성과 내부 균열을 역사 사상사적 안목으로 엮어낸 대목은 대단히 신선하며, 독자에게 냉전의 다극적 본질을 이해하는 깊이 있는 지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분단이라는 지정학적 단절 속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야를 20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거대한 사상적 용광로 속으로 확장 시켜 준 점은 이 책이 거둔 뛰어난 학술적 성취다.
그러나 저자가 일관되게 추진하는 '아시아 주체성 복원'의 기획은, 냉전 시기 아시아 사회주의 체제들이 자행한 가혹한 내부 학살, 전체주의적 억압, 그리고 1인 독재 세습이라는 반인륜적 현실을 지나치게 낭만화하고 미화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노출한다. 마오쩌둥주의나 주체사상을 서구 근대성에 저항한 자생적 사상적 실험으로 포장하는 서사는, 그 실험의 과정에서 일어난 대躍進 운동과 문화대혁명의 참극, 북한 체제의 극단적 폐쇄성과 인권 유린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실책을 '문명사적 도약의 진통' 정도로 과소평가하거나 우회해 버린다. 제국주의에 저항했다는 도덕적 명분이 그 체제가 인민에게 가한 전체주의적 폭력과 내재적 모순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또한, 동아시아 냉전의 지속 원인을 주로 미국의 해양 패권 전략과 남한의 냉전주의에서 찾는 시각은 시선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반도의 분단과 지정학적 위기는 북한 정권의 핵 무장 전략과 세습 체제 유지 욕구,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권위주의 동맹 강화라는 대륙 세력 고유의 패권주의적 상수들이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붉은 아시아>는 서구와 해양의 시각에 박제되어 있던 동아시아 냉전사를 대륙의 거시적 스케일로 해방해 준 훌륭한 역사적 자극제이다. 하지만 대륙의 사회주의 기획이 내포한 전체주의적 괴물과 폭력성을 '민족주의적 주체성'이라는 서사로 지나치게 온정적으로 채색함으로써, 문명론적 상상력의 화려함에 비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신냉전적 대치와 북한 인권 문제 등 냉혹한 현실 정세를 타개할 균형 잡힌 실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병한 작가는 아시아의 사회주의를 서구 이념의 수입이 아닌 자생적 민족해방 운동으로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세진님께서는 이러한 아시아 냉전의 주체적 재인식과 사회주의 체제 내부의 모순 중 어느 쪽 면모가 오늘날 동아시아 정세를 바라보는 데 더 중요하게 대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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