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
마광수 (지은이)책마루2011-09-01

책소개
마광수 교수가 1989년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쓴 성심리 묘사 위주의 에로티시즘 장편소설이다. 야하면서도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마광수 교수의 성철학이 담겨있다. "권태로우면 변태가 되고, 변태는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다"라는 주제의식에 맞춰 리얼한 성애 묘사를 대담하게 담고 있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기에 권태와 외로움으로 긴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던 대학교수 이자 무명시인인 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나이트클럽 한구석에서 화려한 손톱 페티시를 꾸민 늘씬한 미인 하나를 우연히 만난다. 여성의 마조히즘적 속성과 관능적 치장본능에 열광하는 나의 시에 매료되어 있던 그 여인은 '즐거운 복종'으로 나를 자극하고, 고독에 노예처럼 매달리던 나의 일상은 색다른 님프와의 만남으로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데…
목차
1 변태는 즐거워라, 사랑이 오면
2 너는 귀여운 마조히스트
3 졸립고 지루한 일장(一章)
4 꿈속에서 나는 왕이 됐지
5 오르가슴은 없다
6 초추(初秋)의 양광(陽光)
7 먹기와 싸기
8 철썩 철썩 아아아아악
작가의 말
책속에서
저 여자의 치렁치렁한 긴 머리카락을 다섯 다발로 나누어 빨강, 노랑, 초록, 보라색 등 오색물감으로 염색을 한다면 얼마나 더 멋있을까. 희뿌연 조명을 받아 더욱 신비로운 호박빛으로 빛나는 맥주를 한 모금 입 속에 털어 넣고 혓바닥으로 질금거리면서, 나는 부질없는 공상에 잠겨보았다.(…)그것은 담황색(淡黃色)이 약간 섞인 불그스레한 색조였다. 지금 저 여자의 머리카락 색깔이 내 눈엔 짙은 브라운 빛깔로 보이긴 하지만 여늬 때 보던 보통 여자들의 흔하디흔한 브라운 빛깔 머리카락은 아닌 것 같다. 조금 청동색 비슷한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돈다고나 할까.(…)그 순간 나의 머리 속에는, 언젠가 어느 여자와 함께 데이트를 하다가 차를 타고 남산 터널을 통과할 때, 터널 천정에서 떨어지는 오렌지색 불빛을 받아 그 여자 손톱의 빨간색 매니큐어가 보라색으로 변해 보여 신기해 했던 기억이 스치며 지나갔다.(…) 가만있자…… 초록색 조명과 붉은 색 조명이 합쳐지면 무슨 빛으로 변하더라. 그래 맞아, 그러면 노란빛이 되지. 그럼 푸른 빛과 붉은 빛이 합쳐지면? (…) 그래 그래, 그건 복숭아 빛이었지…… 그럼 붉은 갈색의 무대의상에 청록색(靑綠色) 조명을 때리면? …… 그건 …… 그건…… 아마도 갈색이었던 것 같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그녀의 머리색은 푸른빛이 약간 감도는 짙은 갈색이다. 얼른 보면 칙칙한 빨강색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실내조명은 담황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것…….(…) 무대에서 암적색으로 보이는 경우는 초록색 의상이나 소도구 등에 붉은 빛 조명을 비췄을 경우다. 그러면 저 여자의 본래 머리빛깔, 아니 염색한 머리 빛깔이 초록색이란 말일까?(…) 아야야……, 아야야…… 초록색 머리카락이라니! …… 그것도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 <1. 변태는 즐거워라, 사랑이 오면> 중에서 접기
그녀는 신기한 눈요깃거리나 성기끼리의 접촉 대상으로만 자기를 상대해 주는 남자들만 있는 줄 알았었는데, 나 같은 진짜 페티시스트, 잔인한 사디즘으로서가 아니라 여자를 노예나 로봇으로 삼아 자기 마음대로 꾸며놓고 그 관능미에 심취하며 즐기는 심미안과 잔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진짜 사디스트(sadist)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 날뛰며 전율했을 게 틀림없다. 나는 그녀의 순진한 표정을 바라보며 그녀가 바로 내가 그토록이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마조히스트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을 다졌다.
― <2 너는 귀여운 마조히스트> 중에서 접기
'사람들은 누군가 조금만이라도 이상한 성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으면 거기에다 변태라는 말을 붙이곤 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만들어내는 나름대로의 채색과정이고 구체적 인 모습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런 행위를 결코 변태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이죠. 사랑이라는 목적 하에 이루어지는 다양한 성적 기호의 문제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어요.
― <5. 오르가슴은 없다> 중에서 접기
꽁꽁 묶여져 있다는 사실과 함께 페니스가 점차로 없어져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상상으로라도 경험해 본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마조히즘적인 무화(無化)의 상태에서 얻어지는 무아지경의 쾌감을 맛볼 수 있게 하는 데 충분했다. 또 내가 홍당무를 씹고 있는 사이에 미니가 내 바지춤을 열고 나의 심벌을 꺼내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더 거세의 공포감이 가중되어, 나의 온몸을 마치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것 같은 짜릿짜릿한 상충감(上衝感)과 길항상태(拮抗狀態)로 이끌어갔다.
생각해 보면 남자의 그 물건은 너무나 위험스럽게 돌출된 상태로 매달려 있다. 프로이트가 ‘거세공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든 만들어내지 않았든 남자는 평생 동안 거세공포 심리로 고생하기 마련이다. 나는 꽁꽁 묶여져 있는 상태에서 내 페니스가 미니의 손가락에 의해 공격당하는 순간, 온몸이 차갑게 얼어붙는 듯한 느낌과 함께 오금이 저려오면서, 사타구니의 치골 언저리가 마치 영하 수십 도가 넘는 극냉(極冷)의 얼음벼락을 맞은 것 같은 마비감 속에 빠져들었다.
― <7 먹기와 싸기>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마광수 (지은이)

1951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77년 『현대문학』에 시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등 6편의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데뷔
2017년 9월 5일 타계
주요 작품
-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 『시학』,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 정신』, 『마광수 문학론집』 외
- 시집
『가자... 더보기
최근작 :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머리를 집어 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 버렸는가?>,<추억마저 지우랴>,<마광수 시선> … 총 9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권태』는 마광수 교수가 1989년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쓴 성심리 묘사 위주의 에로티시즘 장편소설입니다. '문학사상'에 1989년도에 연재되었는데 연재 도중 문단에서 큰 반발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겨우겨우 1990년에 문학사상사에서 발간되었지요. 야하면서도 철학적이고 심리적인, 마광수 교수의 성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권태로우면 변태가 되고, 변태는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다"라는 주제의식에 맞춰 리얼한 성애 묘사를 대담하게 담고 있습니다.
마이리뷰
권태
마광수 교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아마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와 [즐거운 사라] 가 사회적 이슈가 되던 때일 것이다. 그리고 마광수 교수하면 으례 떠오르는 것은 외설적인 책을 쓴다는 것이다.
이 책 [권태] 역시 마광수다운 책이었다. 보수적인 것일까 아님 나의 편견때문일 것일까..
책의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외설적 표현들을 받아들기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책을 읽기가 조금은 힘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하지만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그 숨은 뜻을 찾기 위해 읽은 책이었지만 도통 집중이되지 않았다. [권태]는 마광수 교수의 첫번째 장편소설로 1990년에 쓰여진 작품이다.그는 이 작품을 통해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권태가 아닌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의미로서의 권태를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프지 않으면 권태롭다. 전쟁이 아니면 평화가 아니라 권태다. 고생끝에 낙이 아니라 권태다. 사랑끝에 결혼이 아니라 권태다. 오르가즘은 없다..
창작의 예술로 봐야하는것인지 아니면 외설적인 표현만을 가득 담은 책으로 봐야하는 것인지 모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는 말하고 있다. 상상력의 자유, 상징적 판타지의 자유가 부여되지 않은 한, 한국예술을 더 이상 발전 할 수 없다고.. 거기에 시위라도 하듯 [권태]라는 관능적 판타지를 통해 그는 일종의 시위를 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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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지 2016-08-07 공감(7) 댓글(2)
본능에 대한 욕망
'권태'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육체적 본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네요. 있는 그대로 묘사를 해서 더 그러한 생각이 드는 것 같네요. 20년 전에 이런 소설이 쓰여 졌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네요. 지금 읽어도 너무 사실적이라서 정말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이렇게 표현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보수적인 사회의 편견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표현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있고 자신의 철학에 소신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이 되네요. 이러한 자유로운 표현이 마광수 교수님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되네요.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 옛것에 대한 권태를 느끼는데 이러한 것을 소설을 읽으면서 잘 느껴볼 수 있었네요. 사람의 본능을 소재로 어떻게 권태로움을 느끼며 어떻게 극복하며 하지만 그것은 모든 이가 가지고 있는 꿈임을 글로써 잘 표현한 것 같네요.
주인공의 계속되는 욕망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본인 욕망을 통해 나타나는 행동으로 욕망의 원인이 권태라는 것을 잘 느껴볼 수 있었네요. 결국 권태는 어쩔 수 없는 결과이며 극복하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이루어 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 같네요.
본능에 충실한 사실적인 묘사가 때로는 신선하면서도 때로는 너무 자유롭게 표현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되네요.
권태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욕망의 굴레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고 권태를 느끼기 보다는 현재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가해 보네요. 신선한 작품이었던 것 같네요. 단지 야한이야기가 아닌 그 속에 뼈가 있는 듯 한 작품이라 생각이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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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nie 2011-10-0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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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한 성애 묘사로 독자를 압도하는 소설
인생이 권태롭다, 라고 말하면 또 누군가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요.
고통스럽게 하루하루 떼꺼리를 이어가며 사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그치만 내 작은 인생에 고통과 권태의 구간반복을 생각하면 고통도 지극히 고통스럽고
권태감도 지극히 사람을 힘들게 하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가 살면서 언제든 꼭 만나기 마련인 '권태감'에 대해서, 특히 사랑마저, 섹
스마저 권태롭다면 우린 어디서 힘을 얻고 살아야 하는지 늘 궁금했지요.
권태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변태'라는 차원이 나옵니다. 변태는 창조를 도출시키니 권태스러
움을 제거할 수 있겠지요. 그 변태를 아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도 좋을 듯 합니다. 천재들
은 늘 꼭 같은 방식을 고집하지 않는 무리라고 하였습니다. 창조를 하고 생을 만들어감에 있
어서 변태는 굳이 성적 변태가 아니더래도 필요하겠지요.
한 사회 구조가 늘 쉼 없이 사유하고 변덕 부리는 우리 뇌를 묶어 답답한 단혼제(monogamy)
속에 다 끼워 놓습니다. 거기서 만족이 안 되면 마치 이단아처럼 쳐다보는 이러한 답답한 규
율속에서 이 주인공들은 그래도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뼈대가 있는 줄거리는 없었습니다. 작가가 그 플롯 자체가 없는 이 하룻밤 이야기를 긴 긴
장편소설로 택함은 결국 성에 관해 무엇보다 묘사하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그 하고자 하는
말이 어떤 장치보다 더 선험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재, 하나 하나 특이한 방식으로 성적인 매개물이 되어 등장합니다. 일체의 성외의 것은 나
오지 않습니다. 꽤 장중한 소설인데 통일성도 획득이 됩니다. 거기에 약간 억눌린 기존의 질
서를 파괴해야 진정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는 설도 간헐적으로 나옵니다. 문장은 참으로 귀
족적이고 향기롭습니다. 아마 글을 쓰거나 글 읽길 좋아하는 사람은 나도 이런 소설 한 권
쯤 쓰고 싶다, 라는 충동질과 질투가 나오게 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마지막 '철썩 철썩 아아아악" 이 부제 편에서는 아주 통쾌한 권태 극복이 나옵니다.
"너, 맞고 싶냐..." 정말 내가 맞고 싶은지 때리고 싶은지는 모르오나 철저한 대리배설을
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문학이란 것은 참 알 수 없는 매력이 있지요.
마지막 부분에서 희수와 미니와 헤어지는 장면에서 짤막하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전 거기서 왜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이별 장면은 없던 것 같습니다. 지금쯤
희수와 미니는 어딘가를 가고 있겠지... 하고 읊조리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부분인 창틈 사이에 낀 하루살이, 오늘이 월요일이 아닌 일요일이라
는 사실, 죽지 않던 나방의 날개짓, 신경질나게 죽이고 싶었지만 그저 살의로만 마무리를 해
놓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틀 속에 적당히 얼기설기 드러나는 슬픈 스케치 같았습니다.
작가의 노력은 용솟음치고 격정적인 그 본능을 현실에서 그나마 조화롭게 그림이 되어가게
그 마지막까지 노력을 해주셨던 것 같았습니다.
'처녀작'이란 이름이 왜 그 처음의 작품에 붙나 생각해보건대, 훔쳐보는 독자 편에서
가장 즐거움이 크더군요. 이 말 역시 이 책을 덮으며 스스로 정의 내려봅니다. 또한 그
젊디젊은 남자로써 황금기의 그 시절에 한 청년이 흘렸던 눈물을 잠시 보고 나온답니다.
늘 좋은 작품 더 더더더더 기대합니다.
참고 : 관능적 상상력이 어정쩡한 분들은 이 감동의 물결 속에 못 들어 옵니다.
그러니 포기하시려면 그러시든가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어 속담은요, Regination is
the first lesson in life(체념은 인생에서 제 1의 수업이다.) 출전이 어딘지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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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s0414 2011-09-24 공감(1) 댓글(0)
[서평] 권태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를 보수성향이 짙은 사람으로 종종 표현하고는 한다.
나 스스로는 결코 보수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20여년전,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읽으면서 우리나라 교수 중에 이렇게 열린 사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 기억에 의존해서, 마광수교수의 첫 장편소설 '권태'가 얼마나 멋진 소설일지 기대가 너무도 컸나보다.
마광수 교수, 스스로를 투영시킨 주인공은 체격적인 면이나 성격적인 면, 취향이 모두 내가 알고 있는 드러난 마광수 교수의 특징을 그대로 가진 교수이다. 대학생들에게 좋은 강의로 나름 인기가 있으며, 심하게 마른 체격으로 힘(지구력, 파워) 등은 없지만, 성적으로 여성의 심하게 높은 하이힐과 심하게 길고 화려한 손톱의 네일아트에 반응하는 취향을 가졌다.
무료한 주말, 토요일 들른 클럽에서 그의 취향 그대로를 보이는 희수를 만나고, 그녀의 취향이 그 자신임을 알게 된 주인공은 그녀와의 하룻밤을 위해 그녀의 집으로 가서는 미니를 만나게 되고, 희수와 미니를 통해 성적 만족감을 얻는 모습을 너무도 자세히 표현해 두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취향이 아니기에서인지 읽는 내내 내가 포르노 삼류소설을 읽고 있는건지, 그야말로 내가 열린 사고의 선두주자로 꼽던 마광수교수의 또다른 진취적 글을 읽고 있는건지 계속 의문만 품다가 끝이 나버렸다.
한국이라는 독특한 유교문화에서 이렇게 마조히스트, 사디스트의 모습은 아직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기에 이 책의 나름 섬세한 각 인물의 취향에 대한 표현과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읽어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교수가 좋아하는 취향의 여성모습이 얼굴의 아름다움보다는 긴 손톱과 화려한 네일아트, 적어도 10cm 이상되어야 하는 하이힐과 그에 맞춰 한겨울에도 맨발에 진한 패티큐어를 한 발톱, 긴 생머리와 늘씬한 다리도 노출이 심해야 하는 등이었고, 희수의 이상형에 대한 모습도 자신이 성적인 노예로 모든 것을 남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그런 희생봉사 정신으로 똘똘뭉친 취향이어서 정말이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나의 이 보수적(?)인 생각이 깨일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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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지니 2011-09-26 공감(0) 댓글(0)
권태
그 옛날 마광수 교수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책을 접했을 때는 파격적인 느낌이었다. 어? 하는 의지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감탄사의 출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던 기억이 새록 흔적없는 구석 기억 창고에서 머리를 삐죽 내밀려 노력하는 것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마광수 교수님의 책이 재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어 펼쳐 들었다.
역시 책의 저자만이 할 수 있는 소재와 내용으로, 전혀 거리낌 없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선뜻 지금도 자연스레 읽어내려갈 수는 없었다.
다만 오랜 시간이 되고, 세월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함께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기에 예전보다는 아주 조금 자연스러워 졌다 할 수 있곘다.
저자의 성에 대한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들 속에서 여러가지 눈살도 찌푸러지고, 겉으로 표현되지는 얼굴 변화를 자제하느라 쉽지 않은 책읽기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단지 성을 나누는 모습에 집착하고 묘사한 것이 아니고, 약간 심리학적 기재를 접목시켜서 저자의 머리 속에 있었던 생각들을 펼쳐내고 있는 듯 보였다.
저자를 그대로 투영한 듯한 외모 묘사를 통해 설마 사실은 아니겠지? 실제 있는 일은 아닐거야? 라는 착각이 들정도의 늪으로 빠져들어가기도 했다.
한가지에 편력적인 집착을 보이는 남주인공은 자신에게 맞는 여자 상대를 자주가는 스탠딩 술집에서 우연을 가장했다 보일만큼 그런 상황에서 만나게 되고, 맘을 열게 된다.
머리속 생각들이 뒤 얽힌 채로 읽어 내려가고 있는 나란 독자에게 남겨진 메시지는 무얼까? 이런 적나라한 이야기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자문도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했다.
결론은 예술의 바탕이라고들 하는 성에 대한 표현의 자유로움을 선택한 저자의 용감성? 그리고, 이즈음 예전보다 조금 개방적이 되어진 사회 모습?
이런 것들의 조화로우면서도 부조화적인 세태에서 출간할 수 있다는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저자의 권태적 성향은 성에 대한 한가지 집착으로 번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본인의 욕구 충족을 하는 듯 보였다.
반대로 드는 생각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남자, 가장으로서 한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남자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투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여러가지 취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겉으로는 남자라는 이유로 강함을 드러내고 살아가기에 자신에게 시선을 투영시켜 내면을 드러나 보는 일 조차
억압속에 안된다고 합리회 하며 그저 흐르는 강에 몸을 맡기듯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로 쏟아 부은 에너지와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봤을 때 가지고 있는 것조차 허름하고 내세우지 못하고 오히려 심하게 부패되어 있고 문드러져 형체조차
없어졌는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상처들...
어디엔가 풀고 싶지만 자신이 필요로 할때는 존재감 없이 발 내딜틈조차 가족 내에는 없어 보이고,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목숨걸었던 가족의 울타리는 가장에게는 힘없이 형체도 없오 보이는 모습으로 무의미한 채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그런 에너지들을 안에서 쏟아 부을 수 없기에 권태를 풀기 위해 스스로에게 있었던 시선을 밖으로 분출하려다 보니 약간 어색하고 아직은 손가락질의 대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해 보이는 책속 주인공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직은 아니 앞으로도 계속 가족이라는 기본틀을 이루고 사는 이상, 그 틀은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한 함께 들었다.
이 관점 또한 개개의 가정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불가능 하다면 사회적 복지제도의 틀 안에서 이들의 연결고리가 되어질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언가의 형성이 시급해 보이기도 했다.
저자의 책속 내용을 옹호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도 없고, 그렇다고 어설픈 개인적 사견으로 시시비비를 논할 수 있는 여지 또한 가지고 있어 보이지 않았다.
이 책의 이면에 깔려 있는 저자의 생각이 무엇일까? 하는 것에 대한 독자로서의 강한 호기심이 생기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책읽기를 끝냈다고
말하는 것 이외에는 나란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 않았나 싶다.
이 책 또한 어설픈 관점으로 단지 저자의 관점과 생각들을 만나고 싶어 펼쳐들고 싶다면 물론 독자마다의 생각과 가치관 담아 낼 수 있는 그릇의 크기와 넓이 깊이가 다르기에 딴지를 걸 수 없겠으나 굳이 읽고 싶다면 심호흡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으로 들이마시고 내뿜고 한 후에 펼쳐보길 권하고 싶다.
그렇다고 다시 강조하지만, 책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덧붙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색다른 전혀 만나기 쉽지 않은 책속 여행을 통해 나름 새로운 심리학적 시각과 기재들을 통해서 자극을 받을 수 있었고, 생각 또한 많이 할 수 있었음에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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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e! 2011-09-30 공감(0) 댓글(0)
권태-마광수
대학교수이자 무명시인인 주인공 나는 평범한 성관계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손톱이 긴 여자를 보면 흥분하곤 하는데 꿈에서 그리던 이상형의 여자를 나이트클럽에서 만나게 된다. 보잘것없는 그의 서툰 작업에 그녀는 적극적으로 응하며 자신이 그의 시에 매료되어 있으며 그가 시에서 표현했던 것들을 몸소 보여주겠다며 그를 자극한다. 주말이라는 시간적 여유와 늘 꿈꾸던 여인을 만났다는 설렘으로 그녀의 초대에 응하게 되고 그는 그녀의 집에서 또다른 어린 소녀를 만나게 된다. 두 여인과 함께 그는 사디스트로서의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쳐보이게 되고 그녀들은 마조히스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된다.
솔직히 이런 종류의 책을 처음 읽어봐 나의 당황스러웠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난 지극히 평범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고 극장 개봉 영화외에 소위 말하는 빨간 비디오를 본 적도 없기에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에 집착하고 소변과 대변이 난무하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쓰고 읽을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마 서평을 써야한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더라면 책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 던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반복되면 권태로워지고,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변태가 된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납득할 수 있는건지. 이런 생각때문에 성범죄도 많아지고 새로운 성상품들이 개발되는 것이 아닌가 권태롭지 않기 위해 점점 다르고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될테고, 결국엔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게 될텐데 말이다.
나는 성을 터부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의 표현이 스킨십이고 그것을 통해 더 애정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런 애정도 없이 성적 흥분을 위해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은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작가가 이런 글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함인지도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오히려 그가 얘기하고 싶었던 본질이 자극적인 내용전개라는 형식때문에 사그라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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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의연애 2011-09-3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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