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0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 알라딘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 알라딘


장정일의 공부 -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장정일 (지은이)알에이치코리아(RHK)2015-05-29




































미리보기



책소개
2006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대한민국 10만 독자를 공부시킨 우리 시대 인문학 고전 『장정일의 공부』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만듦새의 개정판으로 재탄생했다. 요즘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공부책'의 원조 격인 이 책은, 2006년 당시 80개 인문대 학장들이 선언한 '인문학의 위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많은 이들을 공부의 길로 이끌어 화제가 됐었다.

『장정일의 공부』는 지난 10년간 인문 분야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며 책에 담긴 지식과 사유, 그리고 장정일식 인문학 독도법이 여전히 가치 있음을 증명해왔다. 이에 알에이치코리아는 출간 10주년을 특별히 기념하고자 가독성 높은 판형을 채택,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새로이 하고, 이중 표지로 소장 가치를 높인 2015년 개정판을 출간했다. 또한 초판에 없는 부록 '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을 추가해 독자들이 언제든 목록을 보고 읽고 싶은 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목차


머리말

잠 못 이룬 그 밤, 잠 못 이룬 사람
상한선을 찾아서
교양 ; 지식의 최전선
어느 역사가의 유작
전복과 역설의 '뻔뻔함과 음흉함'
문신 새긴 기억
이광수를 위한 변명
이것이 법이다
모차르트를 둘러싼 모험
미국의 극우파에 대한 명상
과두정이 온다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들
<영광의 탈출> 잊어버리기
오래되지 않았다
조봉암; 우리 현대사가 걸어 보지 못했던 길
철학의 오만
피해 대중과 '레드 콤플렉스'의 기원
바그너의 경우
촘스키와의 대화
우리들은 모두 오이디푸스의 가족이다
엘리자베스 1세 ; 영국사의 한 장면
2007년, 아마겟돈

부록_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

접기


책속에서


군대에 대한 박노자의 인식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신앙을 지켜 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온갖 고질을 들여다보고 고치기 위해서 우리가 고심해 보아야 할 의제에 속한다. 그에 의하면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와 서열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에 미만(彌滿)한 일상적인 폭력이 모두 군대로부터 기인한다.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상습적 구타와 인격 몰수의 습성은 제대 후의 전역병에게 고스란히 체화되어 여성과 어린아이에 대한 남성의 가부장적 태도를 구축하고, 학교와 직장에서는 물론 사회관계 전체를 서열화·기계화한다. _22쪽

공화주의자 블로크가 보기에 시험 편집증에 걸린 공교육의 가장 우려되는 폐해는, 공화국 시민에 걸맞은 '비판 정신'과 '포용력' 있는 '시민 정신'을 함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성공적인 '점수의 노예'로 훈련된 엘리트는 '그랑제콜'과 같은 '특권적인 기관'에서 '추억과 우정'을 나눈 뒤, '폐쇄적인 작은 사회'를 만든다. 그들은 장차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 진정한 인식이 없는 우두머리들, 세상을 모르는 정치가,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는 행정가'들이 된다. _72쪽

우주나 보편이 아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절대적인 경배야말로 근대가 우리의 내면과 신체 속에 아로새겨 놓은 지워지지 않는 문신이다. _103쪽

중국 철학은 유럽이 종교 시대를 마감하고 철학 시대의 문을 열 수 있게 해 주었으나, 곧이어 서구에 과학 문화가 대두함에 따라 '중국 사상의 유럽에 대한 영향은 그야말로 공을 이루고 은퇴하는 시기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쓸 때, 주겸지의 심정은 어땠을까?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사무엘 헌팅턴이 틀렸다는 것이다. 주겸지는 말한다: '명말·청초의 중서 문화 접촉에서 중국이 받아들인 것은 예수회의 '종교 문화'가 아니라, 예수회 선교사들이 종교의 방편으로 가져온 '과학 문화'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와 동일 선상에서 18세기 중국 문화가 유럽에 끼친 영향 역시도 예수회 선교사들이 가져와 교의에 억지로 갖다 붙인 이른바 '천학(天學)'이 아니라, 그들에 의해서 전해졌고 또한 유해하다고 인식되었던 바로 '이학(理學)'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명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호한다. _249쪽 접기
52p
전인교육의 장소였던 대학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실학을 가르치는 직업학교로 변모한 것은 일본 대학의 사명이 자유로운 교양인의 육성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국가에 필요한 인재의 육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 진보람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 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접기 - gaudium
빨갱이 대신 좌파라고 불러 주지만, 좌파라는 완곡 어법은 여전히, 곧바로 ‘공산당 일당 독재·생산수단의 공동소유·평등한 분배’를 의미하는 스탈린주의를 뜻하고, 나아가 김일성·김정일 세습 왕가의 추종 세력임을 증명해 주는 불도장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의 보론 「좌파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단상」을 쓰면서, 좌파란 ˝시대 해방적이며 발전적인 경향을 주장하고 따르는 사람˝을 일컫는다고 말한다. 그는 20세기 말에 무너졌던 교조적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모두, 이미 좌파라는 세례를 베푼다. 접기 - gaudium
중국이 조선을,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하다’는 뜻의 ‘군약신강君弱臣强’의 나라라고 일컬었듯, 조선은 재상 우위의 국가, 요즘으로 말하자면 내각책임제 국가였다. 조선은 그 정치 구조상 임금이 아무리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고 해도 사대부들이 따라 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나라였다. 이런 나라에서 효종이 추진한 군비 확장 정책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문신들의 강한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문신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란 국란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다. 어떤 교훈을 얻기에는 이미 정치 구조가 고질적인 문치주의로 고착된 것이다. 군약신강과 문치주의! 이것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것이 우리나라 현대사를 비극으로 만든 계몽 군주에 대한 갈구가 아니었을까?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국가 형성기에는 강력한 군주가 있어야 한다는 국가주의 신화를 이승만·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를 통해 해갈하려고 했던 절박한 사정에는, 군약신강과 문치주의에 대한 한국민의 오래된 불신이 깔려 있었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위의 인용문은, 몇 년 전부터 신문과 방송을 통해 심심찮게 대할 수 있었던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시큼한.... 접기 - gaudium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15년 6월 5일자 '북카페'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5년 6월 12일자 '교양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장정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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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경북 달성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컨」을 발표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장편소설 『너에게 나를 보낸다』, 『보트 하우스』등이 있다.


수상 : 1987년 김수영문학상,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 <아담이 눈뜰 때>,<밤이면 건방진 책을 읽고 라디오를 들었다>,<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 가는군요> … 총 92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알에이치코리아(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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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대본집 세트 - 전3권>,<생각에도 산책이 필요하다>,<쉐프에이든의 초간단 집밥 레시피>등 총 1,222종
대표분야 : 교육/학습 1위 (브랜드 지수 225,343점), 과학소설(SF) 4위 (브랜드 지수 352,688점), 부동산/경매 4위 (브랜드 지수 188,29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대한민국 10만 인을 공부시킨
우리 시대 인문학 고전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
★★★ 출간 10주년 개정판

2006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대한민국 10만 독자를 공부시킨 우리 시대 인문학 고전 『장정일의 공부』가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만듦새의 개정판으로 재탄생했다. 요즘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공부책'의 원조 격인 이 책은, 2006년 당시 80개 인문대 학장들이 선언한 '인문학의 위기'를 무색하게 할 만큼 많은 이들을 공부의 길로 이끌어 화제가 됐었다. 『장정일의 공부』는 지난 10년간 인문 분야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지키며 책에 담긴 지식과 사유, 그리고 장정일식 인문학 독도법이 여전히 가치 있음을 증명해왔다. 이에 알에이치코리아는 출간 10주년을 특별히 기념하고자 가독성 높은 판형을 채택,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새로이 하고, 이중 표지로 소장 가치를 높인 2015년 개정판을 출간했다. 또한 초판에 없는 부록 '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을 추가해 독자들이 언제든 목록을 보고 읽고 싶은 책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으로서의 공부의 길을 제시하는 이 책이 좀 더 폭넓은 대중들과 만나기를 기대한다.

독서광 장정일의 '무지를 깨는' 새로운 버전의 인문학 에세이
"정형화된 기억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라!"

장정일에게는 늘 '독서광' '최연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 '중졸의 대학교수' 등 그의 지성인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하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 책은 장정일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 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_「서문」 중에서

그는 중용이 본래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음을 뜻할 뿐이라고 비판한다. 중용의 미덕이 실제로는 무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장정일의 공부』는 '알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욕망에서 시작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공부란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한때(청소년기)의 고역' 정도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장정일에 의하면 공부는 좋은 사람/상식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주의 사회는 강압이 통하지 않는 의견과 의견이 부딪치는 사회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는 '나만 옳다'는 독단에 빠져 상대방의 개념과 논리에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서로의 개념과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하며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할 수 없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민주주의는 기만과 독선에 병드는 것이다. 이렇듯 장정일은 우리가 잊고 있던 공부의 진짜 목적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세속적인 성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공부의 가치를 격상시킨다.
그렇다면 장정일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했을까. 문학가로 살며 정치나 사회 이슈에 큰 관심이 없던 그는 2002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고자 23가지 화두를 정하고 관련 책들을 섭렵하면서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 결과가 바로 『장정일의 공부』에 담겼다.
예컨대 「교양; 지식의 최전선」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 저하 현상과 대학의 교양 교육 부재 문제를 짚어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다치바나 다카시), 『두 문화』(C.P. 스노우), 『문학의 사회학』(에스카르피),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드워드 윌슨) 등을 함께 읽고 대학의 교양 교육 강화, 졸업정원제 실시, 과학 공부 장려, 대학의 독립성 확보 등의 방안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그가 제시하는 23가지 화두는 모두 우리의 의식과 참신성과 창의력을 짓누르는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가령 「상한선을 찾아서」에서 장정일은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덕일),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김인호/박훤), 『서얼단상』(고종석) 등을 아울러 읽으며 인조반정은 잘못된 쿠데타였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군약신강의 문치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갈망하게 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송시열의 북벌론이 허구이듯 우리나라 보수 우익이 국부로 떠받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도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에서 발췌한 '한국 주류의 기원'에 대한 다음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다.

오늘까지도 일제와 영합했던 서인 계열의 척족들이 일부 기업의 대주주가 되어 있다는 현실은 권력과 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혐오의 근원을 짐작케 한다. 「상한선을 찾아서」 중에서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안인희), 『나치 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오인석) 등을 탐독한다. 장정일은 독일 사회민주당이 1차 세계대전의 참여를 놓고 분열된 것이 결국 나치의 암흑시대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 한 대목을 읽고서 (이념의 변별 없이 당명만 교체하는) 우리 정당의 계통발생 혹은 자기 복제를 떠올린다. 그는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 봤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이 열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이들 정당이 이념이 아니라 지역적 지지 기반과 지역주의 성향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치에 투표한 까닭을 레드 콤플렉스(=붉은 공포)에서 찾고서는, 자신에게도 레드 콤플렉스가 내면화돼 있으며 그것이 질서와 안정에 대한 중산층의 끈질긴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이 밖에 장정일이 공부한 내용을 주제별로 모으면 봉건성과 국가주의, 양심적 병역 거부, 역사 청산, 마키아벨리즘, 근대와 민족주의, 친일과 문학, 미국 극우파, 타성 앞에서의 법의 무력함, 시오니즘 등이 있다. 인물별로는 리쭝우, 마르크 블로크, 이탁오, 고미숙, 시마자키 도손, 무라카미 하루키, 이광수, 모차르트, 조봉암, 바그너, 촘스키, 오디이푸스, 엘리자베스 1세 등이 있다. 독자들은 장정일 식 인문학 독도 과정을 따라가면서 진보/보수/과두정/친일파/민주주의/전체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정확한 용어를 정립함으로써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공부의 길을 알려주는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

『장정일의 공부』는 그 어떤 '책에 대한 책'보다 절실하게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그는 하나의 화두를 풀기 위해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간다. 바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장정일의 공부는 앞으로 나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덮고 나면 더 읽고 공부하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장정일식 인문학 독도법은 '공부의 기쁨'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공부의 내용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시안에 불과하고,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감히 '장정일의 공부'라는 제목으로 내놓는 것은,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 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다 하면 당신이 할 게 뭐 남아 있는가? 그래야 당신이 '조금 하다'가 지치면, 내가 이어서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어 줄 젊은 독자들이, 내가 이 책에서 다룬 주제와 내용을 보고 나서 '여기서부터는 내가 더 해 봐야지' 하고 발심(發心)하기를 바랄 뿐이다. 「서문」 중에서

이 책은 기존의 인문교양서와는 다르다. 대중이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인 사유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진짜 독서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2006년 초판이 나왔을 때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당당한 문제의식에 눈뜨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배움과 공부에 대한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 진정한 공부의 길을 알려주는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를 강력하게 권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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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몰랐는데 다시 보게 된 책. 공부란 이렇게 하는 것이죠. 다만 우리는 독서량이 따라가기 힘들 뿐.
헥사녀 2017-02-2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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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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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건 없는 재출간



2006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이 최근에 다시 나왔는데, 내용이 보충되어 다시 나왔다는 약간의 광고성 글과 지례짐작으로 다시 사들여 읽었다. 결론적으로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고, 마지막 부분에 새로운 글이 조금 더해진 것 같다. 이 정도면 굳이 다시 사서 읽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장정일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 그간 읽어온 그의 '독서일기 1-7권'과 '빌-산-버 1-3권', 그리고 이전에 읽은 '공부' 이후 그의 새로운 독서후기에 목말라했기 때문에 사게 된 것이다. 밑줄을 다시 그을 필요도 없었고, 읽는 내내 이번에는 꽤 지겹게 느꼈다.




다만, 역시 그의 '공부'로써의 독서의 수준과 깊이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고, 나의 독서를 비춰보는 기회가 되기는 했다. 남은 2015년의 독서는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책을 덮었다. 한 동안 다시 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전의 판으로 이 책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이 책이 원래 좋은 책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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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09-03 공감(7) 댓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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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의 공부(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마음 쓰기]

✏이 책 초판이 나온지 딱 10년이 되는 2016년 11월에 그의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되었다. 그가 읽어냈던 10년전의 한국에 비해 지금의 한국은 과연 얼마나 진전했는지 궁금하다.

✏그의 책은 처음이지만 그 이름은 사회적 이슈(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고등학교에서 시행하는 교련을 피하고자 중졸로 학업을 마친 일 등)를 통해 여러번 들었었다.

✏로쟈 이현우의 서평집에서 소개받아 읽게된 장정일의 서평집. 한가지 주제에 대한 여러 개의 책을 동시에 읽어 독자의 지식과 관점을 수립하는 독서법.

✏그가 작품외적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서문에서 밝힌 아래의 신념때문은 아닐까?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밑줄 긋기]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송시열의 북벌론이 허구이듯이 이승만의 북진 통일론도 말뿐인 대국민 사기극이다.

✒스페셜리스트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도 존재하며,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결국 제너럴리스트가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높은 수준의 리버럴 아트 교육이다.(여기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말하는 ‘리버럴 아트‘는 그리스•로마시대의 ‘3학‘_문법학, 수사학, 논리학_과 ‘4과‘_산술, 기하, 천문학, 음악_가 아닌, 뇌과학을 비롯한 과학에 대한 지식이다.)

✒군사전략이 동맹의 선택을 좌우하거나 외교를 대신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일을 허용한다면 ˝군대의 지휘관들에게 국가의 전반적인 지도와 정부의 통제를 맡기는˝ 꼴이 된다. 이른바 군국주의인 것이다. 미군의 아시아 지역 군사전략에 의해 남한과 중국의 외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서는 안된다.

✒생존하는 것이 곧 성(性)이다. 합력의 이치를 아는 것이 곧 생존의 길이고 합력을 위반하는 것이 곧 소멸의 운명을 자초하는 것이다. 양보를 생존의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이종오, 후흑학)

✒고미숙에 의하면 민족 혹은 민족주의 담론은 우리 머릿속에 작동하는 우민화 기계다. ˝일본에 반하는 것은 무조건 애국적인 것이라는 이 지독한 강박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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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쓰기&글쓰기 2016-12-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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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뛰어 넘는 통찰의 독서목록



소설을 읽는 편이 아니다 보니 소설가하고는 거리가 있기에 장정일의 책은 처음이다. ‘독서일기’라는 제목으로 독서관련 책을 계속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별도 당기지 않아 보지 않다가 이번에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와 구입했다. 이 책은 서평이라기보다는 독후감이라고 해야겠다.



주제가 다른 별개의 책이 아닌 비슷한 주제의 책을 여러 권 한꺼번에 읽고 한 맥락으로 글을 쓴 것이 흥미로웠다. 단권보다는 관련된 여러 권의 책을 보는 것이 효율적인 독서법 중의 하나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잘 안 된다. 일주일 내내 힘들게 읽고 나면 피로 회복 및 기분 전환 겸 새로운 주제의 책을 찾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는 한 분야의 지식을 다양하고 깊이 있게 습득하기보다는 단편적인 지식들의 눈요기로 그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대로 읽은 사람이 일목요연하게 핵심을 정리한 요약본을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보다가 내가 관심 없는 내용은 상식으로 넘어 가고, 재미있는 주제는 관련 도서를 더 보면 된다.



나이 마흔이 되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어 책을 열심히 읽는다고 밝힌 저자의 글 씀씀이 내 취향과 맞는다. 그의 독서 목록을 보노라면 새삼스럽게 이 세상에 읽어야 할 책들이 많음을 느낀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이렇게도 많은 세상의 일들을 담고 있는데 내가 죽을 때까지 과연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까?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 문제는 중요한 것은 대부분 아니, 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몰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 세계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고, 그것을 관통하기 위해선 본질의 주인공이 되거나 혜안(慧眼)을 갖고 있는 수 밖에 없으니,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은 핵심에 접근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변죽이나마 유일한 통로인 독서를 통해 진실의 한가락이라도 움켜쥐려는 것이다.



물론, 진실과 핵심을 파악했다고 해서 인생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의 차이일 뿐. 그러나 난 알고 살고 싶다.

진실을 담고 있는 판도라의 상자에 달려 있는 자물쇠의 맞는 열쇠는 한 개다.

단지 열쇠가 많을 뿐. 그러나 맞는지 안 맞는지 꼭 넣어 보고 싶다.



맞는 열쇠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돌려 보는 것이 독서요, 인생의 과정이리라.

장정일의 공부는 그 많은 열쇠 중 몇 개를 선사한다. 물론, 맞을 확률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본인이 맞춰 보는 과정에 맞을 것 같은 것만 추려 줬으니 말이다.



장정일은 말한다. 나머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고. 안내는 해줬으나 먹여 줄 수는 없다는 말이다. 안내만 받고 만족해도 그의 책은 충분하다. 그러나 더 나아간다면 그의 책은 정말 좋은 책이다. 그에게서 수많은 책을 소개 받았고 그 중 몇 권의 책을 구입하려 한다. 그의 소개로 내 생각의 지평은 또 넓어 질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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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베고자는남자 2015-07-1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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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장정일의 공부

유시민님의 책에서 추천을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명확하지는 않다. 책은 무척 재미있고 유익하다. 작가가 읽은 다양한 책에 관한 독후감이다. 다만 이 책이 나온 때로부터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흐른지라, 언급된 책의 상당수가 품절 또는 절판이다. 초반에는 알라딘에서 찾아 장바구니에 부지런히 주워넣다가 없는 책이 너무 많아 중반 이후에는 포기했다. 있는 책이라도 열심리 읽어봐야겠다.
아라 2016-12-0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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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서문-)고 말하는 『장정일의 공부』대한민국 10만 인을 공부시킨 우리 시대 인문학 고전이며, 출간 10주년 개정판이라고 한다. 늦게라도 자신의 ‘무지’를 되새기며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다. 우리에게 흔한 말이 된 ‘중용’이라는 단어를 대충 편... + 더보기
모나리자 2021-01-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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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내가 좋아하는 한자성어 중에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란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 해석해보자면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란 뜻인데 배우고 익히는 공부의 즐거움을 표현한 한자성어라 하겠다. 이렇게 말하면 공부하는데 있어서 즐거움이 어디 있고, 기쁨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으나(본인을 포함해서), 모르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을 생각한다면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이다. 공부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대학교 졸업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해야 하는 게 공부란 걸 생각한다면 우리 모두 배우고 익히는 것에 소홀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장정일의 공부》를 읽으면서 치열하게 공부하는 장정일의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치열함은 어렸을 적 방황했던 기억의 파편들과 그로 인해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자책감, 폭력으로 인해 교도소를 들어간 어린 소년의 공포심이 한데 어우러져 광적으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책 속에서 눈빛이 살아 있는 장정일을 보았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책 속에서 장정일의 치열함을 맛보았고, 그 치열함 속에서 알고자 하는, 꼭 알아서 자신이 과거에 진 빚을 갚고자 하는 굳은 의지에 찬 그의 눈빛을 보고야 말았다. 그 눈빛을 보면서 매서운 바람과 눈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설중매(雪中梅)가 작가 장정일과 여러모로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장정일의 공부》가 이번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10년 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지금과 잘 어울리는 책이란 느낌이다. 장정일의 공부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광범위하다고 말하고 싶다. 맹자의 성선설부터 조선의 역사와 유럽 여러나라들의 세계사, 대한민국의 근대문학과 모짜르트라는 천재적 음악가와 그 속에 감춰진 비밀들,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과 그 괴물 속에 살아 숨쉬는 우파와 극우파에 대한 관계 등 인문학과 관계된 여러 분야의 공부 거리를 비교적 자세한 설명과 함께 우리들에게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설명 뒤에는 장정일 본인이 읽었던 책이 소개된다. 책을 통해서 맹자를 공부하고, 책을 통해 미국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며, 책을 통해 대한민국 근대의 역사를 공부하는 그의 치열함이 이 책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이 책에 실힌 글들과 선택된 주제들은 2002년 대선 이후로, 한국 사회가 내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해 보고자 했던 작은 결과물이다.

(책의 서문 中에서)




책 중간 정도를 읽다 보면 「나치 근대화론」이 나오는데 나치는 유태인을 미워했고, 유태인을 미워한 것과 똑같이 집시와 재즈를 미워했다고 한다. 집시들은 노동을 기피하는 반사회적인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고, 재즈는 나치의 규율적이면서 질서정연함과는 다르게 파격적이고, 돌발적인 불협화음이 느슨하고 해이한 삶을 표현한다고 봤기에 미워했다는 나치의 논리가 대단히 아이러니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섭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규범화시키고, 획일화시키는 나치의 문화에서 예측 불가능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존재인 유태인은 나치에겐 분명 눈엣가시였을 테고, 이 가시 같은 존재인 유태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이익을 채울 수 없다는 명분 아래 홀로코스트를 자행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인용된 데틀레프 포이게르트가 쓴 〈나치 시대의 일상사〉란 책에서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중세적 야만성”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신체로서의 사회”를 “과학적”으로 재편하고 개선하려는 근대적 기획이 폭넓게 현실화된 것(211쪽)이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홀로코스트는 나치의 폭력성과 야만성에 기인된 것이라는 내 생각과 정반대(나치의 야만성을 제대로 드러낸 사건)의 의견을 제시하는 데틀레프 포이게르트의 책이 순간 읽고 싶어졌다.








이 책 마지막에 실린 <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을 읽으려면 장정일 작가처럼 평생을 공부해도 부족할 듯 싶다. 책들의 면면을 훑어봐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책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평생 공부하는 게 무지한 채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삶이라 생각하기에 알기 위해서라도 평생을 학이시습(學而時習)하면서 지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이 바람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공부가 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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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똥 2015-06-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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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

책을 무척 좋아하는 동료가 있습니다. 그가 정성들여 읽는 책에는 언제나 눈길이 갑니다. 일명 '타임 킬용'(시간 죽이기용)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덮어버리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꼭 읽어야 할 책만 읽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인생이라는 게 그의 독서철학입니다. 그처럼 깐깐하게 책을 고르는 사람이 천천히 아껴읽는 책을 보았으니 당연히 눈길이 갈밖에요. 그 책이 바로 <장정일의 공부>였습니다. 2006년에 초판된 책을 왜 다시 읽나 싶었는데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나왔답니다. 10년 동안 꾸준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이 책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장르, 어떤 주제의 책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공부법을 가르쳐 주는 책인가?'였습니다.


<장정일의 공부>는 한국 사회가 저자에게 불러일으킨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저자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며 공부한 결과물입니다. 때로는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우연한 궁금증이 관련 도서를 찾아 읽으며 사유를 확장해가기도 하고, 때로는 대한민국의 현안과 관련된 주제를 풀어내고자 책을 파고들며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런데 이런 공부를 시작한 동기? 목적?이 참 재밌습니다. 저자는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공부를 한다고 밝힙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서문 中에서).


"확실하게 편들기"를 저자의 표현을 빌어 다른 말로 바꾸면 "중용의 무지에서 벗어나기"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국가나 어떤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난 '중립적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난 아는 게 없어"라는 말과 같다고 풀이합니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서문 中에서). 그러니까 사유과 고민이 없는 중용의 미덕은 사실 "아무 생각 없음"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학력이 중학교 졸업밖에 되지 않는"(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당시에 치러지던 고등학교의 학내 군사 훈련(교련)을 피하고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 18)이라고 해서 찾아보니, "최연소 김수영문학상 수상자", "중졸의 대학교수"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자의 지식이나 사유의 힘은 학교교육으로 길러진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장정일의 공부>와 같은 독서로 쌓여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는 무서운 독서광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비판적인 책 읽기가 습관이 된 사람, 한마디로 책을 참 "잘 읽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쓰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얼마나 적확한지 과녁의 정중앙을 명중시키는 듯한 매서움이 느껴집니다. 이 책의 부록에는 하나의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장정일이 공부한 책 목록"이 수록되어 있스니다. 지금까지의 독서가 부끄러워지면서 책을 읽으려면 이렇게 읽고, 적어도 어떤 사회적 현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려면 이 정도 공부는 하고 나서 말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정일의 공부>는 우리가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살았던 대한민국의 사회적 현안들에게 대해 눈뜨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부(독서)에 대한 목마름을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합니다. 지식이 확장될수록 확장된 지식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장정일의 공부>를 통해 나의 지식이 확장될수록 내 마음에 사무쳐 오는 한가지 진실은 내가 모르는 것이 이처럼 많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등떠밀려서 했던 입시공부말고, 장정일식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무엇에도, 심지어 내가 읽는 책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해 말입니다.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서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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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딸 2015-06-30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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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알에이치코리아, 2015)

‘장정일’은 지독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 책 2006년판 서문에서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라고 말합니다. 그는 제도권 교육은 많이 받지 않았지만 책을 통해 치열하게 공부한 사람입니다. 그가 읽은 책들은 다양한 분야의 저자들일 뿐 아니라 어지간히 마음먹고 달려들기 전에는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깊이 있는 책들입니다. 사회 현상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갈 수 있는 책들,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들, 정치와 관련된 책들, 시인답게 문학에 관한 책들... + 더보기
life7joy 2015-06-2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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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해 <장정일의 공부>



추천 [서평] 장정일 저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 2015. 5., 393쪽, RHK


이 책은 서점에 가득한 기존의 인문교양서와는 다르다. 대중이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인 사유 체계에 대한 비판적인 도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진짜 독서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불혹의 나이까지 뜻도 내용도 없는 ‘중용’이라는 허상에 빠져 있었으며, 자신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이 빠져 있는 ‘중용’, 그리고 ‘양비론’이라는 태도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는 ‘무지’에 불과하다고 질타한다.



“나는 언제나 '중용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중용의 사람이 되고자 했던 노력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자 했기 때문도 맞지만, 실제로는 무식 무지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렇다, 어떤 사안에서든 그저 중립이나 중용만 취하고 있으면 무지가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로까지 떠받들어진다. 나의 중용은 나의 무지였다. 중용의 본래는 칼날 위에 서는 것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유와 고민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니 그 중용에는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다. 허위 의식이고 대중 기만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무지의 중용을 빙자한 지긋지긋한 ‘양비론의 천사'들이 너무 많다” (5쪽)





또한 자신이 무지한 이유를 시인을 예로 들면서 전문화된 근현대의 직업군들이 다양하고 진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채 섣불리 다른 사안에 대해 판단하고 나서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사실 그의 고백은 시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문학가, 법조인, 경제학자, 의료인, 교수, 과학자 등 지식인, 지성인을 자처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무지의 근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상급 학교 진학을 하지 않았다는 결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한때 내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시인은 단지 언어를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최상급의 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턱없는 존경을 받기도 하지만, 시인은 그저 시가 좋아 시를 쓰는 사람일 뿐으로, 열정적인 우표 수집가나 난(蘭)이 좋아 난을 치는 사람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마흔 넘어 새삼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우선 내 무지를 밝히기 위해서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6쪽)

문학가로 살며 정치나 사회 이슈에 큰 관심이 없던 장정일은 2002년 대선 당시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궁금증을 풀고자 23가지 화두를 정하고 관련 책들을 섭렵하면서 사유의 확장을 시도한 결과가 바로 이 책 <장정일의 공부>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23가지 화두는 모두 우리의 의식과 참신성과 창의력을 짓누르는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상한선을 찾아서]에서 그는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덕일),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김인호/박훤), <서얼단상>(고종석) 등을 아울러 읽으며 인조반정은 잘못된 쿠데타였다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군약신강의 문치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이승만과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갈망하게 된 것은 아닌지 묻는다. 송시열의 북벌론이 허구이듯 우리나라 보수 우익이 국부로 떠받드는 이승만의 북진통일론도 사기극이라고 말한다. 이승만의 사기극은 박정희-전두환을 거치면서 2016년 현재 ‘북한붕괴’, ‘종북타도’, ‘종북세력’, ‘통일은대박’이라는 사기극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우리가 정말 몰랐던 조선 이야기 2>에서 발췌한 '한국 주류의 기원'에 대한 다음 문장으로 글을 끝맺는다.


“오늘까지도 일제와 영합했던 서인 계열의 척족들이 일부 기업의 대주주가 되어 있다는 현실은 권력과 부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과 혐오의 근원을 짐작케 한다.”(44쪽)


그리고 저자는 [교양; 지식의 최전선]에서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를 통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지적 능력 저하 현상과 대학의 교양 교육 부재 문제를 짚어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다치바나 다카시), <두 문화>(C.P. 스노우), <문학의 사회학>(에스카르피), <통섭: 지식의 대통합>(에드워드 윌슨) 등을 함께 읽고 대학의 교양 교육 강화, 졸업정원제 실시, 과학 공부 장려, 대학의 독립성 확보 등의 방안을 조심스레 내놓는다.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에서는 나치와 히틀러에 대해 깊이 알기 위해 <게르만 신화, 바그너, 히틀러>(안인희), <나치 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오인석) 등을 탐독한다. 저자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1차 세계대전의 참여를 놓고 분열된 것이 결국 나치의 암흑시대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바이마르공화국의 역사> 한 대목을 읽고서 (이념의 변별 없이 당명만 교체하는) 우리 정당의 계통발생 혹은 자기 복제를 떠올린다. 그는 부서진 손잡이를 움켜쥐고 아무리 문을 열려고 해 봤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이 열리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이들 정당이 이념이 아니라 지역적 지지 기반과 지역주의 성향에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치에 투표한 까닭을 레드 콤플렉스(=붉은 공포)에서 찾고서는, 자신에게도 레드 콤플렉스가 내면화돼 있으며 그것이 질서와 안정에 대한 중산층의 끈질긴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깜짝 놀란다.


[과두정이 온다]에서는 <제국의 몰락>(엠마뉘엘 토드)을 통해 21세기 미국이라는 제국을 공부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델로스 동맹’에 참가한 대부분의 도시국가들은 직접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대신에 포로스(조공)을 바치고 군사적 의무를 면제받았다. 아테네는 그것으로 저항적인 동맹국들을 제어하는 데 썼을 뿐 아니라, 아테네를 전 세계인의 뇌리 속에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각인시켜 놓은 아크로폴리스 신전을 건축했다. 20~21세기 미국과 자본주의 동맹(협력)국가들의 관계와 비슷한 셈이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이 아테네에게 했듯이, 지구라는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미국에게 세계가 바치는 조공의 내역은 어떤 것일까? 첫째, 미국이 참전하는 각종 전쟁에 군비를 각출하기. 둘째, 미제 무기 구입하기. 셋째, 아랍의 석유 생산 지역을 미국의 통제권에 맡기고 미국의 다국적 석유기업의 지위를 인정하기. 넷째, 달러를 세계의 기축활폐로 인정하기. 이런 것들이 군사 대국인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거둬들이는 조공의 내용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국가의 안전을 확보하기에는 너무 크지만 제국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다.’” (181쪽)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들]에서는 <나치 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식민지의 회색지대>(윤해동), 한국의 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고민 끝에 일본의 조선 지배에 협력한 부류(친일파)와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에 참여했던 부류(전범)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윤해동의 주장에 결국 공감한다. 우리가 “민족이라는 협소한 잣대에 얽매여 친일파의 행적만을 문제 삼을” 때, 우리가 “만주나 태평양 도시에서 저질렀던 만행은 청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라도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미루고 있는 북한과 연대하여, 천황제 청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일제의 2등 시민이 되고자 부르짖으며 중국과 태평양 전쟁에 여러 형태로 참여했던 우리 손의 피만 씻어 내는 게 아니라, 우리 뇌수 속의 민족주의까지 씻어 낼 비장한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 광범위한 친일 설정에 따른 얕은 처벌보다는, 폭좁은 친일 설정에 따른 깊은 처벌이 훨씬 현실적이다.” (223쪽)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들]은 이 책 중에서 가장 반론이 많은 단락이다. 저자의 결론만 따져보아도 ‘현실적’이라는 취지는 무색하다. 우리에게는 1949년 반민특위가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반민족행위자로 선정한 668명 마저 이승만과 친일파들에 의해 탄압을 받아 해산되었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중국과 태평양 전쟁에 여러 형태로 참여했던 우리 손의 피’가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필자는 외세에 결탁하여 공동체 집단을 파괴하고 항일운동을 말살한 일제와 적극적 친일파들은 아무리 늦어도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밖에 장정일이 공부한 내용을 주제별로 모으면 봉건성과 국가주의, 양심적 병역 거부, 역사 청산, 마키아벨리즘, 근대와 민족주의, 친일과 문학, 미국 극우파, 타성 앞에서의 법의 무력함, 시오니즘 등이 있다. 인물별로는 리쭝우, 마르크 블로크, 이탁오, 고미숙, 시마자키 도손, 무라카미 하루키, 이광수, 모차르트, 조봉암, 바그너, 촘스키, 오디이푸스, 엘리자베스 1세 등이 있다.



독자들은 장정일식 인문학 독학 과정을 따라가면서 진보/보수/과두정/친일파/민주주의/전체주의 등 우리 사회에서 늘 논란의 중심이 되는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정확한 용어를 정립함으로써 정형화된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어떤 못지 않게 독서의 힘을 보여준다. 저자는 하나의 화두를 풀기 위해 수십, 수백 권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간다. 바로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장정일의 공부’는 전진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을 덮고 나면 더 읽고 공부하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맨 아래에 필자가 읽고 싶은 책을 수록해 놓았다)


저자의 말대로 ‘공부 가운데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그리고 그런 공부야말로 이 책의 부제처럼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삶을 위한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적극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인간과 인문학에 대한 열풍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지금, 진정한 공부의 길을 알려주는 <장정일의 공부] 다시 읽기를 권한다.


-인상 깊은 문장-


“이 땅의 극우반공체제는 1949년 6.6 반민특위 습격 테러 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6.26 김구 암살, 6.5 국민보도연맹 창설 이후, 강요되어 구축된 것이다. (....)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의 극우반공 테러가 어용 관제 단체, 깡패 그리고 일부 경찰에 의해 저질러졌다면, 박정희의 극우반공 테러는 군부의 정보 장?zㄹ에 의해 훨씬 더 잘 제도화, 조직화되었으며 거기에 더해 피해 대중들의 골수에까지 스며든 ‘레드 콤플렉스’는 박정희 시대의 극우반공체계를 더욱더 잘 작동하게 만들었다.”(308쪽)


“런던탑의 축축한 감방이 없었으며 고통 속에 내지르는 비명 사이로 영리한 취조관이 조용히 취조서를 쓰고 있지 않았다면,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광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엘리자베스의 문예부흥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372쪽)

[ 2016년 6월 14일 ]


[2016년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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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구름 2017-03-2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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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오늘날 공부는 학교 다닐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공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끝없이 이어가야 할 것이 바로 공부이다. 이런 공부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의 한 명이 바로 장정일이다. 10년 전에 나온 장정일의 <공부>를 읽으면서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개정판이 다시 나와 또 한 번 공부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저자가 말하는 최상의 공부는 무지를 참을 수 없는 자발적인 욕구와 앎의 필요를 느껴서 하는 공부다. 그렇기에 저자가 던져주는 화두는 그저 출발선에서 울리는 한 발의 총성과 같을 뿐이다. 나머지 여정은 결국 달리기를 하는 주자인 각자의 몫인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예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떠오르지 않아 다시 새롭게 읽는다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조금씩 읽어나가다 보니 머릿속에 그전에 읽었던 내용들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분명 책을 읽으면서 분노하기도 하고, 나 자신을 다잡기도 하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겠노라고 다짐했었는데, 10년의 시간동안 나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이 흘렀고, 나름대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저자의 말처럼 나의 무지를 깨닫고 진정한 중용의 가치를 세우고자 했는데 10년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내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모든 공부가 헛된 것이었던 걸까?



맞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없다. 하지만 내면의 무언가가 그때와는 조금이나마 달라졌다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잠 못 이룬 그 밤, 잠 못 이룬 사람’이라는 제목에서 본 박노자의 이야기는 내 삶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번에도 다시 느낀 것이지만 비판과 부정의 정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는 그 말이 나를, 내 생각을 날카롭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지금 그가 다시 들려준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앞으로 내 삶에 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공부란 한 사람이 ‘조금’하고, 그 사람이 지치거나 힘이 달리면, 선행자가 조금 공부해 놓았던 것을 맛본 사람이 이어서 계속 하는 것이다(p.206)라는 저자의 말처럼, 그가 펼쳐놓은 공부에 나의 공부를 조금씩 더해갈 것이다. 저자처럼 책으로 내가 쌓은 공부를 펼쳐놓지는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아이에게, 나의 옆 사람에게 내가 했던 공부를 다시 건네줄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각자의 공부가 끝없이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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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ra6363 2015-07-0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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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요약>

<1. 책의 개요와 진정한 공부의 정의> 장정일은 정규 교육 과정을 일찍 그만두고 오직 도서관과 헌책방을 전전하며 독학으로 문학과 지성을 성취한 한국의 독보적인 작가다. <장정일의 공부>는 그가 평생을 바쳐온 독서라는 행위와, 그 독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지적 탐구의 진정한 의미를 서술한 에세이다. 그에게 공부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적 학습이나 취업과 성공을 위해 스펙을 쌓는 도구가 아니다. 장정일에게 공부는 곧 <독서>이며, 이는 맹목적인 믿음을 거부하고 세상을 비판적으로 읽어내며 자아를 방어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치열한 생존 방식이다.

<2. 자아 형성과 자기 구원으로서의 독서> 작가는 책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활자를 통해 성장하고 스스로를 구원했는지 고백한다. 십 대 시절 소년원에 수감되었을 때조차 그를 버티게 한 것은 책이었다. 그는 제도권 교육이 주입하는 획일화된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지적 세계를 구축했다. 이 책에서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세계의 폭력과 억압으로부터 개인의 내면을 지키는 요새이자, 타인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는 공감의 다리로 기능한다. 그는 활자를 통해 세상의 부조리를 견디는 힘을 길렀다.

<3. 서평 쓰기: 독서의 완성이자 사유의 훈련> 장정일의 독서법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서평 쓰기>다. 그는 눈으로만 읽고 덮는 책은 진정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은 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고 비판하며 문장으로 엮어내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그 책이 자신의 피와 살이 된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주장에 무비판적으로 동화되는 것을 경계하며, 책과 치열하게 토론하고 때로는 저자의 사상과 싸우는 파괴적인 독서를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서평은 수동적인 정보 습득을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사유로 뒤바꾸는 강력한 연금술이 된다.

<4. 맹목적 집단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 장정일은 이 책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천박한 실용주의와 파편화된 지식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동시에, 맹목적인 애국심이나 국가주의의 환상을 날카롭게 해체한다. 사람들은 처세술이나 경제적 성공을 위한 실용서만을 편식하며 깊이 있는 사유를 기피하고, 국가나 민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에 쉽게 매몰된다. 작가는 진정한 공부란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경계 지어진 통념에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국가나 체제가 주입하는 이데올로기에 속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읽고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정일의 공부 평론>

<1. 비제도권 지식인의 날카로운 통찰과 지적 자립>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힘은 장정일이 학벌주의가 공고한 사회에서 온전히 독학으로 일어선 비제도권 지식인이라는 데 있다. 대학의 상아탑 안에서 안전하게 생산되고 인용되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생존하며 체득한 지식이기에 그의 사유는 거칠지만 펄떡이는 생명력을 지닌다. <장정일의 공부>는 학위와 자격증으로 증명되는 가짜 지성이 넘쳐나는 시대에, 외부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유하는 진정한 지적 자립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강력한 죽비와 같다.

<2.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코스모폴리탄적 사유> 장정일의 글쓰기와 독서 편력은 한국이라는 지리적, 민족적 한계에 갇히지 않는다. 그는 문학, 역사, 철학을 넘나들며 인류 보편의 문제와 인간 소외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특정한 국가적 정체성이나 맹목적인 애국심, 충성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텍스트를 횡단하는 그의 모습은 세계인으로서의 지식인 모델을 보여준다. 혈통이나 소속된 국가가 개인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읽고 사유하여 도달한 지적 넓이가 곧 자신의 세계가 된다는 점을 그의 공부법은 증명하고 있다. 이는 좁은 민족주의를 벗어나 세계 시민으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깊은 철학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3. 위험하고 파괴적인 읽기의 매력> 오늘날의 독서는 흔히 마음의 양식을 쌓거나 각박한 현실을 잊기 위한 힐링의 도구로 가볍게 소비된다. 그러나 장정일은 독서를 기존의 자아를 깨부수고 낡은 세계관을 전복시키는 <위험한 행위>로 규정한다. 책에 대한 그의 평론과 감상은 타협이 없고 직설적이다. 이러한 급진적인 태도는 독자에게 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안일한 지적 태도를 반성하게 만든다. 책을 무기로 삼아 세상의 편견과 맞서는 그의 결연함은 지식이 어떻게 현실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4. 정보화 시대에 던지는 묵직한 화두> 짧고 파편적인 영상과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이 깊은 사유를 대체하는 시대다. 이러한 때에 온몸을 던져 책이라는 무거운 매체와 씨름하는 장정일의 아날로그적이고 우직한 공부론은 언뜻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더욱 유효하고 가치 있다. 진정한 통찰력은 타인이 요약해 놓은 정보를 빠르게 훑어내리는 속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활자 사이에서 길을 잃고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고통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그 더딘 시간 속에 존재한다. <장정일의 공부>는 지식의 편의주의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읽기와 쓰기라는 가장 고전적인 행위가 가진 영원한 불멸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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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

장정일의 <장정일의 공부>는 일반적인 의미의 독서 에세이도 아니고, 체계적인 인문학 입문서도 아니다. 부제처럼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에 가깝다. 2006년에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처음 나왔고, 2015년에 출간 10주년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 소개에 따르면 새 판형과 만듦새로 다시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책의 핵심은 제목 그대로 <공부>다. 그러나 여기서 공부란 시험을 위한 지식 축적도 아니고, 학위 취득을 위한 전문 연구도 아니다. 장정일에게 공부란 세계를 읽는 훈련이다. 책을 읽고, 그 책이 던지는 질문을 통해 사회와 역사와 인간을 다시 보는 행위다. 그래서 이 책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가”보다 “책을 읽은 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

장정일은 이미 <독서일기> 시리즈를 통해 독특한 독서가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책을 단순히 감상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거기서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며, 그 책이 놓인 사회적 맥락을 추적하고, 때로는 책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장정일의 공부>도 같은 흐름 안에 있다. 다만 <독서일기>가 개인적 독서 기록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독자를 향한 강의와 안내의 성격이 더 강하다. 한 독자는 이 책에서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 그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이라는 장정일의 말을 인상 깊게 받아들였다고 썼다. 이 문장은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장정일은 독자에게 결론을 떠먹여 주려 하지 않는다. 그는 공부의 출발점을 제공하고, 그다음은 독자가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서 장정일이 다루는 주제는 넓다. 문학, 역사, 정치, 사회, 철학, 종교, 국가, 자본주의, 근대성, 지식인의 책임 같은 문제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따로 떨어진 항목이 아니다. 장정일은 책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지적 빈곤을 비판한다. 한국 사회는 많은 지식을 소비하지만, 그 지식을 자기 삶과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힘으로 바꾸는 데는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공부는 교양 쌓기가 아니라 <비판 능력의 회복>에 가깝다.

장정일이 보기에 책읽기는 혼자만의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행위다. 어떤 책을 읽는가는 곧 어떤 세계를 보려 하는가의 문제다. 장정일은 독자에게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을 통해 자기가 속한 세계의 허위, 억압, 관습, 이데올로기를 의심하라고 요구한다. 이 점에서 그의 공부론은 상당히 정치적이다. 인문학을 인간의 내면을 풍부하게 하는 장식품으로 보지 않고, 세계를 해석하고 저항하는 도구로 본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장정일 특유의 문제 제기 능력이다. 그는 책을 요약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이 왜 지금 필요한지, 그 책이 한국 사회의 어떤 병증과 연결되는지 따진다. 예컨대 어떤 역사책을 읽으면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나 민족주의 문제로 끌고 간다. 어떤 철학책을 읽으면 철학사 지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오늘날 개인의 자유와 책임 문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는다. 그래서 이 책은 독서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사회비평서다.

또 하나의 장점은 공부에 대한 태도다. 장정일은 공부를 고상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만들지 않는다. 그는 전문 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권 학문 바깥의 독서가, 작가, 논객에 가깝다. 그런 위치 덕분에 그의 글은 자유롭다. 학문적 엄밀성은 때로 부족하지만, 주제 사이를 이동하는 속도와 감각은 날카롭다. 그는 책을 통해 자기만의 지적 지도를 만든다. 독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지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극을 받는 일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장정일의 독서는 때때로 지나치게 자기 확신적이다. 그는 책을 읽고 거기서 얻은 통찰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이 힘이 글의 매력이지만, 동시에 위험이기도 하다. 복잡한 쟁점이 한 방향으로 정리되고, 반대 논점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치적·사회적 주제를 다룰 때 장정일의 문장은 선명하지만, 그 선명함 때문에 현실의 복잡성이 덜 보일 때가 있다.

둘째, 이 책은 체계적인 인문학 입문서로 읽으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독자가 어떤 분야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배우고 싶다면, <장정일의 공부>는 친절한 교과서가 아니다. 책은 넓게 뛰어다닌다. 어떤 대목은 깊지만, 어떤 대목은 단상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 한 권으로 인문학을 배운다”는 식으로 읽으면 안 된다. 오히려 “공부를 시작하게 만드는 책”으로 읽어야 한다. 즉 완성된 지식의 창고가 아니라, 질문을 생산하는 장치다.

셋째, 장정일의 공부론에는 지식인의 자의식이 강하게 들어 있다. 이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보통 독자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의 독서 방식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이다. 책을 읽는 즉시 사회를 해석하고, 현실을 비판하며, 자기 입장을 세우려 한다. 이런 태도는 지적 훈련으로서 중요하지만, 모든 독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읽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독자를 격려하는 동시에 압박한다. “책을 읽었으면 생각하라, 생각했으면 입장을 가져라”라고 요구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장정일의 공부>가 여전히 읽을 만한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정보가 넘치지만 공부는 오히려 약해졌다. 인터넷과 유튜브와 짧은 글들은 많은 의견을 제공하지만, 그것을 자기 사유로 바꾸는 과정은 빈약하다. 장정일이 말하는 공부는 바로 그 빈틈을 찌른다. 그는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으로 자기 시대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정일의 책은 “좋은 교양인이 되자”는 부드러운 권유가 아니다. 그것은 “무지한 채로 살지 말라”는 꽤 거친 요구에 가깝다. 그리고 이 요구는 지금도 유효하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이념, 역사, 민족, 종교, 성, 계급 문제가 쉽게 감정적 진영 싸움으로 흘러가는 곳에서 공부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공부하지 않으면 남의 언어로 생각하게 된다. 장정일은 바로 그것을 경계한다.

종합하면, <장정일의 공부>는 인문학의 지식을 정리한 책이라기보다, 인문학적으로 사고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책이다. 장정일은 독자에게 책 목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긴장을 준다. 그의 해석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동의하지 않는 지점에서 이 책은 더 유익해진다. 왜냐하면 장정일식 공부의 핵심은 권위 있는 해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밀고 나가 자기 생각을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 줄로 말하면, 이 책은 <책을 읽는 법>에 관한 책이 아니라 <책을 읽고 세계와 싸우는 법>에 관한 책이다. 장정일의 공부는 얌전한 교양이 아니라, 불편한 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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