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수 작가의 대표작인 장편 소설 <현해탄>(玄海灘)은 1954년 발표된 재일조선인 문학의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현해탄> 요약
1. 일제 말기의 엄혹한 현실과 조선인 유학생
소설의 중심 인물인 남태식은 일본 도쿄에서 유학 중인 조선인 청년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전시 체제가 극에 달하면서 일본 내 조선인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은 통제 불능의 상태로 치닫는다. 태식을 비롯한 조선인 지식인 청년들은 황국신민화 정책과 강제 징용, 학도병 지원이라는 압박 속에서 매일같이 실존적 위기에 직면한다. 이들은 일본 사회의 철저한 주변부이자 이방인으로서,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숨기거나 혹은 박해를 감수해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2. 현해탄이라는 경계와 실존적 고뇌
제목이 상징하는 <현해탄>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 놓인 물리적 바다이자, 지배와 피지배, 고향과 이방, 삶과 죽음을 가르는 거대한 정신적 경계선이다. 주인공 태식은 이 바다를 건너와 일본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서 살아아가지만, 그의 내면은 언제나 고향의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태식이 겪는 학업의 좌절, 일본인들과의 갈등과 기묘한 연대, 그리고 지식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현해탄은 그에게 있어 언제든 돌아가고 싶지만 쉽게 건널 수 없는, 단절과 통탄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3. 해방의 맞이함과 새로운 비극의 서막
마침내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과 함께 해방이 찾아온다. 도쿄와 일본 전역의 조선인들은 거리에 쏟아져 나와 조국의 독립을 환호하며 마침내 이방인의 굴레를 벗어던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부푼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전후 일본 사회는 재일조선인들을 여전히 잠재적 범죄자나 치안을 위협하는 존재로 취급하며 배척한다. 설상가상으로 조국은 남과 북으로 쪼개질 조짐을 보이고, 재일조선인 사회 역시 이념적 노선에 따라 격렬하게 분열하기 시작한다. 태식은 일제 아래서의 고통이 끝난 자리에 더 거대하고 복잡한 역사적 비극(분단과 냉전)이 시작되고 있음을 목격하며 깊은 환멸을 느낀다.
<현해탄> 평론
1. 재일조선인 리얼리즘 문학의 시초이자 이정표
<현해탄>은 관념적인 민족주의나 감상적인 향수에 머무르던 초기 재일조선인 문학을 본격적인 사회주의적·비판적 리얼리즘의 단계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2. 경계인(Borderrider) 서사의 형상화
주인공 남태식은 전형적인 <경계인>의 초상이다. 그는 일본 문화를 흡수하고 일본어로 사고하는 지식인이지만, 결코 일본 사회에 동화될 수 없는 단독자이다. 작가는 태식의 시선을 통해 지배자의 언어로 피지배자의 한과 분노를 서술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이는 국가라는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현해탄이라는 경계 위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아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본질적인 실존 조건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3. 미완의 해방과 역사적 예견력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1945년의 해방을 단순한 해피엔딩으로 처리하지 않고, 그것이 가져온 새로운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했다는 데 있다. 작가는 해방 직후의 혼란상을 그리면서, 제국주의의 억압이 사라진 자리에 이데올로기의 도그마와 또 다른 형태의 배제가 자리 잡는 과정을 냉철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시선은 이후 남북 분단과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잔혹사를 예견한 것으로, 작가의 깊은 역사적 안목을 보여준다.
4. 한계와 현대적 의의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 소설 후반부로 갈 수록 인물들의 행동이 다소 도식적인 계급 투쟁이나 이념적 대립의 틀에 갇히는 경향이 있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작가의 의식이 앞서다 보니, 일부 인물들이 입체성을 잃고 사상적 프로파간다의 대변인처럼 소모되는 리얼리즘 소설 특유의 한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해탄>은 한국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일본 전후 문학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대한 성취이다
세진님, 지침에 명시된 대로 <현해탄>에 관한 요약과 평론을 평어체(<해라>체)로 작성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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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コリアン文学」の始源としての金達寿文学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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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総合的研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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メタデータ |
言語: Japanese 出版者: 公開日: 2015-06-03 キーワード: 作成者: 廣瀬, 陽一メールアドレス:
所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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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
https://doi.org/10.24729/00002532 |
廣瀬陽一「「在日コリアン文学」の始源としての金達寿文学──その総合的研究」要旨
本稿は、戦後日本の在日朝鮮人を代表する金達寿の知的活動を総合的に考察し、そのアクチュアリティーを提示するものである。彼の本格的な知的活動は、日本の敗戦=〈解放〉後の
1946 年 4 月に創刊され、彼が編集長をつとめた日本語総合雑誌『民主朝鮮』に、日本語で「後裔の街」などの小説を発表することから始まった。その後も彼は次々と小説を発表し、「在日朝鮮人文学」というものの存在を日本社会に認知させるのに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さらに
50 年代から 60 年代にかけては、新日本文学会などに属しながら、リアリズム研究会などの文学運動を独自に主導した。だが
70 年前後を境に、活動領域が文学から古代史研究へと移り、文学活動は「行基の時代」(78~81 年)で終わった。彼はその後、死去するまで古代史研究に没頭した。
また彼は、特に在日朝鮮人知識人の少なかった 60 年代半ばごろまでは、日韓・日朝関係や韓国・北朝鮮関係で何か事が起こると、たびたび発言を求められた。金嬉老事件では特別弁護人を務め、韓国の詩人・金芝河の投獄と死刑判決に対しては抗議のハンストを行った。この他にも、『民主朝鮮』から『季刊青丘』まで、様々な雑誌の編集長や編集委員をつとめた。これらの活動をとおして、彼は多くの日本人の目を、韓国・北朝鮮や在日朝鮮人に向けさせ、理解を促す架け橋の役割を担った。
彼の活動はこのように、極めて多様な領域にわたっている。しかし現在まで、彼に関する研究は小説を個別に考察するにとどまり、彼の知的活動全体を射程に入れた議論はなされていない。そこで本論は彼の知的活動を①文学、②社会主義を標榜する国家や組織との関わり、③日本古代史、の 3 つに分類して考察した。その上で、彼が文学や古代史という特定の学問領域で活動した作家や古代史家ではなく、学問領域や党派を互いに独立させ自己完結的なものにしている理論的基盤に対して根本的な異議申し立てを行うことで、「日本と朝鮮との関係を人間的なものにする」ことを生涯の課題とした知識人だったことを明らかにし、彼の知的活動の全体像とそのアクチュアリティーを提示した。
本論は序論と結論および 4 章から成り、各章は 2~3 節に細分化される。
第 1 章は 2 節に分けられる。第 1 節では金達寿の生涯と活動を概観した。第 2 節では日本と韓国で発表された同時代批評や学術論文を、①日本人が日本国内で発表したもの、② コリアンが日本国内で発表したもの、③韓国国内で発表されたもの、に分類し、それぞれ整理した。
第 2 章は文学活動に焦点をあてて考察したもので、3 節に分かれる。第 1 節では、金達寿が〈解放〉後まもなく提唱した、「日本語で書かれる朝鮮文学」概念をとりあげて論じた。彼はこの概念によって、在日朝鮮人が〈解放〉後もあえて日本語で創作活動をすることについて、一方では「朝鮮文学」の可能性を広げるものであり、他方では日本の左翼勢力との連帯を可能にするものと主張した。第
1 節では、これをうけて、この概念が意味するものを考察した上で、この概念が
40~50 年頃にかけての彼の文学活動にどのように実践されたか/されなかったかを問題にした。
第 2 節では、金達寿の文学を本質的に志賀直哉から学んだ、自然主義リアリズムの文学の系譜に位置づける従来の通説を批判し、実際には彼が
50 年代を通じていかに志賀文学や自然主義リアリズムから訣別すべく闘争したかを論じた。さらに「日本の冬」を取りあげ、50 年初頭に起こった日本共産党内の激烈な権力闘争に巻きこまれた体験から、彼が日本と朝鮮、日本人と朝鮮人が対立関係ではなく、対立させられた関係にあるという認識を得たことを示した。その上で「朴達の裁判」に焦点をあて、この小説が 50 年代をつうじた金達寿の文学的・政治的闘争の大きな成果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
第 3 節では、「朴達の裁判」発表前後から本格化したリアリズム研究会の活動に焦点をあて、その活動をつうじて彼の文学が変質していった過程を論じた。まずリアリズム研究会結成の経緯や、研究会をめぐる同時代の状況を概観し、研究会が全国的な文学団体へと拡大していきながらも、次第に共産党の影響下に置か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その上でその悪影響が金達寿の文学活動に及んだことを、「公僕異聞」を取りあげて考察した。そして最後に、彼がこの活動から何を学んだかを示した。
第 3 章では国家や組織と金達寿との関係を問題にした。彼は朝連から総連にいたるまで一貫して、反韓国・親北朝鮮系の社会主義組織に所属しつづけた。しかし
81 年 3 月の訪韓以後、急速に韓国社会の礼讃に転じた。本章ではこの態度変更を、北朝鮮や総連との訣別と、韓国への接近という
2 つの過程に分けて論じた。
まず第 1 節では、①『朝鮮』に対する総連側の批判キャンペーン、②帰国事業への関わり、③講演会中止事件から訣別、という 3 つの局面を取りあげ、総連と彼との軋轢が深まっていくとともに、北朝鮮や総連に幻滅して訣別する過程を明らかにした。そして第
2 節では、アメリカ占領軍の権力を背景に、李承晩が〈親日派〉を結集させて韓国国家を樹立させた過程を同時代的に見聞している金達寿が、韓国をどのように表象し、攻撃してきたかを整理した。その上で訪韓にいたる経緯と、訪韓後に浴びせられた周囲からの批判とそれに対する金達寿たちの反論について考察した。これをとおして、彼の北朝鮮から韓国への態度変更が韓国社会の無条件の肯定ではなく、また社会主義から民族主義への態度変更とイコールでもなかったことを示した。
第 4 章は、70 年前後から本格化した、金達寿の古代史研究に焦点をあてて考察したもので、3 節にわけられる。第 1 節ではまず日韓における彼の古代史研究をめぐる状況と、彼が古代史研究に関わっていく過程を整理した。その上で、『日本の中の朝鮮文化』を国木田独歩の「武蔵野」と比較して、金達寿の文学活動と古代史研究とが、互いに無関係ではなく、いずれも文学や古代史という学問領域を成立させている言説の根拠を問いただすという点で、連続性が認められることを論じた。さらに彼の古代史研究が、各地の郷土史家や古代史愛好家と共同作業的に行われた点で、リアリズム研究会などの文学活動で果たせなかった、大きな飛躍となる運動の在り方を彼にもたらし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
第 2 節では、金達寿が〈皇国史観〉を支える鍵と考えた、「帰化人」の語が意味するものをどのように問いなおし、日本人自身の問題へと転回させようとしたかを論じた。一般的に金達寿は、「帰化人」への差別的な認識が現代の在日朝鮮人差別につながるからこの言葉を使うべきではなく、彼らを「渡来人」と呼ぶべきと主張したと考えられている。しかし実際には彼は、在日朝鮮人は「帰化人」でも「渡来人」でもない人々だと主張しつづけた。本節ではこの発言を踏まえて、古代における「帰化人」の役割を積極的に評価した戦後日本の古代史研究者による「帰化人」概念をあらためて考察した。そして金達寿が「帰化人」ではなく「渡来人」の語を主張したことを、彼らへの差別が日本人自身への自己差別につながることを日本人に啓蒙し、それをとおして日本と朝鮮、日本人と朝鮮人との関係を人間的なものに変える戦略だったことを明らかにした。
第 3 節では金達寿の最後の小説となった「行基の時代」を取りあげ、行基の生涯をとおしてあらためて問い直そうとした〈社会主義〉を、小説連載中の出来事である訪韓前後の金達寿の態度変更と重ねて論じることで、彼が最後に到達した〈社会主義〉が何であったかを考察した。まず「行基の時代」に描かれた行基の姿を、①文献学的・考古学的研究から得られた歴史的事実、②金達寿が歴史的事実と考えた「史実」、③彼の創作、に分類した。そして彼の小説には、学術研究から見て、不確実な事柄や創作が多数混じっていることを指摘し、それにもかかわらず、古代における「大和朝廷」の成立と朝廷内の権力闘争が、当時の朝鮮半島情勢と密接な関係にあることを描いた点で、現在から見て先駆的な視点が見られることを明らかにした。そして出家した行基が民衆とともに社会事業を行うようになったことと、金達寿の文学運動から古代史研究への転回とが平行関係にあることを示し、「行基の時代」には「朴達の裁判」で開示された〈飛躍〉と同じものが認められることを考察した。その上で、しかし金達寿は、訪韓後に日本人の友人たちから「よく生きて帰ってこられた」とねぎらいの言葉をかけられたことに衝撃を受け、新たな認識を練り上げていくことよりも、天皇の「お言葉」を利用してでも韓国に対する日本人の悪イメージを払拭することを優先してしまったことを問題にした。そしてこのことが、金達寿の〈社会主義〉の理念の変質をもたらし、彼自身も日本社会と在日コリアン社会の両方から忘れ去られることにつながったことを指摘した。
結論では、2~4 章で展開した議論を総合して、あらためて金達寿の知的活動のもつアクチュアリティーと限界性を示した。彼の知的活動の根底には一貫して、民族の違いや学問領域の壁、専門家とアマチュアの隔たりを超える普遍的な批判精神があったことを肯定的に評価した。それとともに、彼の議論の中には資本主義への批判や、日本と朝鮮との関係を中華帝国との関係の中で考察する視点などが、不足ないし欠如しているという限界もあることを示した。その上で、日韓関係が悪化の一途をたどっている現在こそ、日本と朝鮮、日本人と朝鮮人との関係を人間的なものにしていくために、その道すじを指し示した金達寿の知的活動に、あらためて目を向けることの重要性を提示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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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천잔일록
정년 퇴직 후 매일 흐려지는 후기 고령자의 비망록.
취미, 바둑. 좋아하는 것, 술, 라쿠고, 독서, 엔카, 수채화, 마작, 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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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16일
금달수 “겐카이탄”(쓰쿠마 서방 “금달수 소설 전집6” 소수)
'대일본제국' 지배하의 조선, 젊은이들의 고뇌와 혁명군상극.
트릭스타 '황국신민' 조광즈(조그완스)의 조형이 벌써.
김달수(김달스 1920~97년)의 대표작 '현해탄'(1954년)을 읽었습니다.
'대일본 제국'의 식민지 지배에 굳건한 1943년 조선 경성이 무대. 서경태, 백성5의 두 젊은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그들의 내면의 갈등과 생명으로 조선의 독립을 희구하는 사람들과의 몸매를 농밀하게 그려간다.
일본의 작은 지방신문사에서 일하던 서경태는 1시간에 10여만부를 프린트한다는 대신문사 경성신문의 사원이 되는 것을 꿈꾸며 조선으로 건너간다. 고심의 굳이 교정계에 휩쓸려, 곧 기자로서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경성신문사는 조선총독부의 어용신문사이며 조선의 젊은이들을 학도동원으로 몰아가는 신문조사는 경태에게 큰 고통이 된다.
백성 5는 강원도 지사였던 아버지의 비호 아래 히키코가 있는 아빠. 일본 유학 중에 서클 활동으로 특고하게 눈을 돌려 체포된 경험이 있다. 아버지의 정치력으로 석방되었지만, 귀향한 지금도, 현지 경찰서의 특고 형사 이승원(리승원)의 정기적인 방문·감시하에 놓여 있다. 경태와 성5는 성5 유학 중에 이케부쿠로의 선술집에서 만났다. 그 때의 인연을 따라 경태는, 조선에서의 생활의 시작을 성5의 집에서의 단기간의 기후로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이야기는 특고형사·이승원이 실은 독립운동의 투사였다는 의표를 붙이는 전개가 된다. 그의 오르그에서 성5는 인쇄공의 박정출, 중학교 교사 이우수, 리더격 최준 등을 만나 '조국광복회'(1936년~)의 독립운동에 이어간다. 스릴 넘치는 혁명의 군상극입니다.省五와 오간사 연련과의 순애도 씹어, 히키코모리의 젊은이가 사랑과 혁명에 힘쓰는 환생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한층 더 큰 동덴이 기다리고 있다. 무려 이승원이 독립운동의 투사를 가장하고 있던 것은 혁명의 기개가 있는 인간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권력측으로부터의 공작이었다. 동지들은 계속 붙잡혀 가혹한 고문에 노출된다.省五는 아무리 책고에 있어도 좀처럼 누설되지 않는다.
작품은 이승원이 성5에 “나는 조선인임에 질렸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 이대로 일본의 지배는 영원히 이어지는 일본의 지배에 순응하여 살 수밖에 없다는 절망의 고백입니다. 불과 2년 후에 일제 지배가 기와해지는 등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다.省五는 비록 거짓 오르그라도 '조선인으로서 목표로 삼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고 말해 이야기는 닫힙니다.
심각한 소설입니다. 가벼워질 수 없다. 오타리 타부루 '대일본 제국'이 조선에서 행한 폭학은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않았다. 징용공 문제, 위안부 문제, BC급 전범으로 형벌을 받은 전 병사에 대한 무보상 등 과제는 산적하고 있다. 역사 수정주의가 하바를 끌어당기고 헤이트 스피치가 풀려난 일본의 현실을 보면, 김달수의 67년 전의 고발은 지금도 그대로 살고 있다.
소설의 스타일로도 무겁다. 페이지의 대부분은, 경태와 성5의 내면 묘사(자문 자답·번지)에 지출됩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소설이 쓰여져 읽혀 있었구나라는 감개가 있습니다. 오에 켄사부로의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무게입니다. 지금의, 행위와 정경을 그려, 내면의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는다고 하는 스타일의 소설에 익숙한 몸에는, 읽기 쉬운 소설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점 멍한 조형이 있고, 소설에 전조, 빛, 웃음을 가져온다. 술집 거리의 「황국신민」 조광즈(조그완스)입니다. 누구든지 말을 걸어 '황국신민노맹사'를 알고 있거나 암묵해 보라고 강요한다. 모르는 인간에게는 가르쳐 줄 테니까 술을 흔들어 버린다.
“우리 등 황국 신민 나리, 충성 이태, 군국 니보젠. '
조광서는 한때 이를 주창할 수 없었을 뿐 일본 경찰에 심하게 맞아진 과거가 있으며, 이후 언제 어디서나 이를 고창해 타인에게도 강하다. 서경태도 바로 그 세례를 받고 탁주를 먹는 날개가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을 때까지 '황국신민노맹사'라는 것이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교육 칙어라든지, 군인 칙사라든지, 철저한 정신주의로 구미의 물량을 이긴다고 가르친 역사의 일부로서, 특히 조선인에 대한 동화의 강요, 순종을 도모하는 것으로서 이용된 것 같습니다.
趙光瑞는 이를 거꾸로 잡아 술을 먹는 아버지로 유명해졌다. 이제 경찰관으로부터도 언터터블한 존재로 간주되어 무엇을 해도 허락된다. 그 「황국신민」아버지가, 소설 종반에서 완수하는 중요한 부담이 벌어져 있습니다.
야마구치 마사오(문화인류학)가 '도화의 민속학'(1975년) 등에서 트릭스타라는 개념을 제시하기 20년 전에 김달수는 소설로 하고 있었다. '현해탄' 4년 뒤에는 '박달리의 재판'(1958년)이라는 트릭스타 자체의 주인공이 조선전쟁 사나카의 남한에서 맹활약이라는 작품을 갖고 있습니다. 지배자의 언설을 거꾸로 잡아, 망소를 무기로 국면을 타개해 나가는 통쾌한 이야기입니다.
나에게는 '현해탄'에서 가장 인상적인 등장인물이 '황국신민' 조광서이며, 곧바로 박달로 이어져, 금달수라는 작가의, 강한, 불굴의 정신을 느꼈습니다.
조선전쟁 속에 쓴 김달수의 대표작
67년 전에 쓰여진 소설과의 맞은편은 어렵다. 어떤 소설도 시대의 각인을 받고 있습니다. 하물며 금달수는 재일조선인 작가로서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식민지 지배와, 해방된 조국의 분단과 내전이라고 하는, 역사의 가혹한 기어에 소음하면서 계속 쓴 작가입니다.
당시 일본 공산당원이었던 김달수는 조선전쟁에서 북한 측의 승리를 바란다는 뚜렷한 입장에 서 있으며, 그 입장에서 쓰여진 이데올로기 소설로서의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이 소설이 역사의 풍설에 비추어 지금도 읽혀지는 것은 없었다. 구로카와 창(작가)은, 가나가와 근대 문학관에서 행해진 「금달수전」의 강연으로, 이승원은 3번째의 「시점 인물」이라고 하는 자극적인 해설을 했습니다. '새벽은 언제 만들어질 것인가'가 보이지 않는 일제 지배하의 암흑기에는 ①붓을 접거나 ②전향할지 ③형무소에 갈지 3가지 선택사항밖에 조선인 인텔리겐처에는 없었다. 전향한 이승원 역시 서경태·백성5와 마찬가지로 김달수의 일부라고.
「식민지 지배하의 인간」이라고 하는, 근대 문학이 피해 다닐 수 없는 보편적인 문제에, 정면에서 맞서은 「현해탄」. 그러므로 지금도 광각을 발하고 있다.
역사에 새겨지는 금달수의 대표작에 헌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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