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은이)한길사201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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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출간 이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히는 명저로, 저술 70주년을 기념하여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편집으로 펴내게 되었다. 이 책은 1933년 12월 31일부터 1934년 1월 4일까지 우리 역사에 대해 강연한 것을 잡지 성서조선 1934년 2월호부터 1935년 12월호에 실었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이후 이 글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 그대로 195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 1961년에 세째 판을 펴내면서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사관을 함께 풀어 밝히면서 책의 제목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바꿔 전면적인 개편작업을 시도하였다.
이 책은 이론이나 개념에 근거한 전통적인 역사철학의 범주에서 벗어나 신학적 요소 등을 차용하여 역사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함석헌의 역사관과 역사철학을 파악케 한다. 이번에 펴낸 책은 요즘의 감각에 맞게 어려운 용어와 한문문장을 한글로 풀어썼으며, 관련되는 그림과 사진 150컷도 새롭게 수록하였다.
목차
머리말
넷째 판에 부치는 말
제1부 새로 고쳐 쓰는 역사
1. 인생과 역사
2. 사관
3. 종교적 사관
4. 세계역사의 테두리
5. 한국역사의 기조
6. 지리적으로 결정된 한국역사의 성질
7. 한국 사람
제2부 올라가는 역사 내려가는 역사
8. 당당한 출발
9. 열국시대의 모밭
10. 풀무 속의 삼국시대
11. 다하지 못한 고려의 책임
12. 궁예·왕건이 그린 나라
13. 깨어진 꿈
14. 고려자기 속에 숨은 빛
15. 팔만경판에 새긴 마음
16. 최영과 이성계
제3부 났느냐 났느냐 났느냐
17. 수난의 오백 년
18. 중축이 부러진 역사
19. 쓸데없어진 세종의 다스림
20. 무너진 토대
21. 의인의 피
22. 회칠한 무덤
23. 살인의 역사
24. 고질
25. 율곡의 헛수고
26. 첫번째 환난
27. 두번째 환난
28. 임경업
29. 신생의 가는 빛
30. 기독교의 들어옴
31. 다시 거꾸러짐
32. 해방
33. 6·25
제4부 고난에 뜻이 있다
34. 생활에서 나타나는 고민하는 모습
35. 고난의 의미
36. 역사가 지시하는 우리의 사명
37. 역사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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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30 정말 크게, 오래 살려면 사실에다 뿌리를 박고 그것을 삭여 빨아올려야 한다. 사실은 나보다는 큰 객관적인 존재요. 나는 사실보다는 참된 주관적 삶이다. 그 둘이 하나가 되어야 살림이다. 그것을 하는 것이 사색이다.
사색하여 나온 것이 이해인데, 이해는 이(理)로 해석하였다는 말이다. 풀었단 말이다. 사실(事實)은 사실(死實)이라 생명이 돌처럼 굳어져 엉킨 것이다. 그것을 녹이고 삭이는 것이 이성이다. 사색은 그렇게 하는 활동이다. 그러면 흙이 나무가 되듯이 사실이 살림으로 피어난다.
사실은 두 면이 있다. 인생과 역사다. 식물생활의 근본이 되는 땅이 흙과 물이 합한 것이듯이, 인간 생활의 근거가 되는 사실은 인생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 둘로 되어 있다. 접기
P188 정말 민중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다. 역사의 어려움은 민중의 이해와 감정이 일치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 - 삼복사온
P321 전쟁의 의미는 전쟁 때보다도 전쟁 후에, 전장 보다도 학교와 공장과 농터와 가게에 있다.
침략자에게나 방어자에게나 다 말할 것 없이 전쟁은 한 큰 국민적 시련이라는 데 그 참뜻이 있다.
적국의 땅을 빼앗고 사람 죽이기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승리자가 아니라, 이 시련으로 일단 정신의 향상을 얻는 국민이 참 승리자요.
땅을 잃고 배상을 낸 것이 진자가 아니라, 이 시련에 낙제하고 정신이 내려가는 국민이 정말 진 자다.
전쟁 후에 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하고 힘든 일이다.
P333 청 태종도 인물이라 남의 충신 대접이 내 충신 대접임을 알기 때문에 그리한 것이요. (임경업을 두고 이름)
P340 환난을 이기는 것은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는 것 밖에 길이 없기 때문이다.
P342 흐린 물이 휩쓸면 모든 생명을 다 삼켜 버리는 듯 하지만, 일단 지나가면 새로운 번성을 가져오는 살찐 옥토를 그 뒤에 남겨 놓는다. 그와 같이 전쟁도 올 때에는 인간사회를 짓밟아 아수라장을 만들고 마나, 물러갈 때에는 풍성한 정신적 앙금 흙을 선물로 남겨놓고 간다.
P345 나무가 흔들려야만 뿌리가 깊어지듯이 뜻은 이뤄지지 않는 데서만 깊어진다. 접기
P470 살았다 함은 할일이 있다는 말이다. 생(生)은 명(命)이다.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이 삶이다. 삶은 힘이다. 괴테의 말과 같이 “쓸데없는 존재는 죽음의 존재다.”
P471 살았다 함은 결국 살 이유를 알았다 함이다. 까닭이 곧 힘이다. 사람은 정당한 까닭만 있으면 하나님과도 겨뤄대려 한다.
P472 사명의 자각이야말로 재생의 원동력이다.
P475 조즉존(操則存)이요 사즉실(舍則失)이다. 마음에 믿으면 살아나 크는 것이고, 스스로 의심하면 죽어 없어진다.
P489 길고 긴 수천년 역사라고 하지만 그 대체로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 인간의 자유가 점점 발달해간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접기
현대를 건지려면 군축회의도 필요하고 경제회의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새로운 세계이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머리가 달라져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역사를 고쳐 읽자는 것이다. - 우민(愚民)ngs01
사람의 살림은 뿌리가 있어야 한다. - 우민(愚民)ngs01
그럼 뿌리가 뭐냐? 생각함이다. - 우민(愚民)ngs01
예수는 자기 말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를 보내신 이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보내신 이란 보통말로 하면 역사, 종교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 역사의 아 - 우민(愚民)ngs01
역사를 안다 함은 지나간 날의 일기장을 외운다는 말이 아니다. - 우민(愚民)ngs01
그와 같이 역사에 적는 일은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골라진 사실이요, 그 고르는 표준이 되는 것은 지금과의 산 관련이다. 그러므 - 우민(愚民)ngs01
역사는 하나다. 하나밖에 없는 것이 역사다. - 우민(愚民)ngs01
인생을 뛰어넘지 않고는 인생을 모른단 말이다. 역사를 알아봄도 그와 같다. 보는 자리가 변함에 따라 그 보이는 바가 서로 다르다. - 우민(愚民)ngs01
* 왕도정치: 유교정치사상이추구하는 이상적인 정치 패도(道)가 힘에 의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면, 왕도(王道)는 덕으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말한다. 공자, 맹자에 의해왕도사상이 완성되었으며,
한대(漢代) 이후 유교가 국교로 확립되면서 유교정치이념의 바탕이 되었다. - 우민(愚民)ngs01
되풀이와 자람 - 우민(愚民)ngs01
역사는 결코 똑같은 것을 영원히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산 것이기 때문에 그 운동은 그저 되풀이 되풀이끝없이 하는 것이 아니요, 자람이다. 생명은 진화한다. 적게 보면되풀이하는 듯하면서 크게 보면 자란다. 생명의 운동은 곁으로 되 - 우민(愚民)ng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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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함석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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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의 민족 운동가, 그리고 이후 민주주의 인권 운동가이자 종교·평화 사상가로서 끝없는 실천의 인생을 산 함석헌(咸錫憲)은 아버지 함형택(咸亨澤)과 어머니 김형도(金亨道) 사이에서 5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6년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로서의 진로를 결정,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갈 생각으로 평양의 관립인 평양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다. 2학년이던 1917년 8월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이웃 마을에 살던 황득순(黃得順)과 결혼을 한다(슬하에 2남 5녀). 3학년이 되던 1919년에 당시 숭실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이었던 친척 형 함석은이 찾아와 평안남북도 학생 운동의 책임을 그에게 맡기고 역사적인 3·1 운동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서 의사를 꿈꾸던 함석헌의 생애는 크게 바뀌게 된다.
3·1 운동 참여 이후 학교를 자퇴하게 된 함석헌은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거나 수리조합에서 조합원 일을 하며 2년 간 방황하다가, 아버지의 권유로 일단 학업을 이어 나가기 위해 경성으로 가게 된다. 신학기 시작을 놓쳐 입학할 학교를 찾지 못했던 그는 함석규 목사의 추천을 받아 1921년 정주의 오산중학교 3학년으로 입학한다.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로 유학길에 오른 함석헌은 고심 끝에 교육자로서의 진로를 정하고 이듬해 도쿄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甲組)에 입학하게 되었으나, 당시 일본식 국가주의로 무장된 직업 교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의 수업 과정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대신, 평생 친구가 되는 김교신(金敎臣)과 친분을 가지게 되고 이어 그가 나가고 있던 우치무라 간조의 성경 연구 모임에 같이 참여하게 되면서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김교신을 포함해 여기서 만난 조선인 친구들(유석동,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6명은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 성서 연구를 지속하면서 1927년 7월 동인지 성격의 ≪성서조선(聖書朝鮮)≫을 도쿄에서 창간한다. 창간호(국판 44쪽)에 발표된 <먼저 그 의를 구하라>는 활자화된 함석헌의 첫 번째 글이라고 할 수 있다.
1928년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함석헌은 귀국 후 오산학교에 부임해 역사와 수신(修身)을 가르친다. 한편으로는 ≪성서조선≫을 발행하면서 ‘성서조선 독자회’를 열고 다수의 글을 발표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지만 그의 무교회주의 방식의 신앙 운동은 기존 기독교인들에게 배척을 받기도 한다.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종교 사상을 개척해 나가던 함석헌은 1933년 12월 30일부터 이듬해 1월 5일까지 송두용의 집(서울 오류동)에서 가진 성서 모임에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 초고를 발표하고 토론을 거친 뒤 2월부터 1935년 12월까지 ≪성서조선≫에 연재한다. 일제에 의한 조선의 역사 왜곡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고자 하는 이 글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이 글은 일제 당시 검열로 삭제되었던 부분을 포함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으며(1950. 3. 28), 이후에는 ‘성서적 입장’을 빼고 대폭 수정해 ≪뜻으로 본 한국 역사≫(1962)로 제목을 변경·출간했는데 민중의 고난을 중심으로 하는 이른바 ‘씨? 사관’을 보여 주는 그의 중요한 저술이다.
일제 말기 점점 노골화되던 식민지 교육 정책 속에서 창씨개명과 일본어 교육이 강조되자 더 이상 선생직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함석헌은 1938년 오산학교를 그만두고, 과수원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이해에 자식 둘을 홍역으로 잃는다. 1940년 평양 송산리의 송산(松山)농사학원을 인수해 거처를 옮긴다. 하지만 전 주인이었던 김두혁(金斗赫)이 도쿄로 유학 가서 도쿄농과대학 조선인 졸업생들과 만든 소위 ‘계우회(鷄友會)’ 모임 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함석헌도 연루자로 검거되어 1년 여 동안 평양의 대동경찰서에 수감되었다. 결국 농사학원은 폐원되었고, 아버지는 옥살이 중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임종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1942년 3월 ≪성서조선≫에 김교신이 쓴 권두언을 문제 삼은 일제의 폐간 조치와 더불어 함석헌 역시 연루자로 지목되면서 다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한다. 출소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중 오랜 벗이자 스승의 관계였던 김교신의 사망으로 인한 큰 충격과 슬픔 속에서 해방을 맞게 된다.
해방 공간에서 여러 자리에 불려 다니며 평안북도 임시 자치 위원회 문교부장을 맡기도 하였으나, 반소(反蘇)?반공(反共) 시위인 ‘신의주 학생 사건’에 연루되어 소련군 사령부에 의해 체포되어 평안북도 경찰부 유치장에 또다시 50여 일을 감금당하고 만다. 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산학교에 뿌려진 반정부 전단의 배후 인물로 지목되어 또다시 투옥된다. 별다른 용의점이 없어 한 달 만에 석방되었으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 때문에 당시 내려진 ‘지주 숙청령’의 대상이 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결국 1947년 월남을 감행한다. 1년여 후 아내와 자식 일부도 월남했으나, 어머니는 내려오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된다.
월남 직후 오류동 노연태의 집에서 지내면서 YMCA 강당에서 일요 종교 집회를 시작하고, 유영모 선생 등과 함께 모임을 가지던 중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대구, 김해 등지로 피난을 가게 되는데 이때 가진 한 성서집회에서 그간의 무교회주의와 결별하는 신앙적 변화를 겪게 된다. 퀘이커(Quaker)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즈음으로 여긴다. 휴전 이후 다시 서울에 올라와 강연 활동과 양계장을 하며 어렵게 삶에 정착해 나가는 가운데 ≪말씀≫, ≪편지≫ 등의 신앙 잡지에 여러 글을 발표한다. 그중 1956년 ≪사상계≫ 1월호에 발표한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기독교의 타락상과 계급화를 비판했는데, 이 글은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에도 함석헌은 ≪사상계≫에 영향력이 큰 글들을 발표하면서 장준하와 함께 군사 독재와 치열하게 싸우는 길을 걷게 된다. 한편으로는 언제나 꿈꾸어 왔던 ‘이상촌’을 위해 기증(정만수 장로)받은 천안(봉명동)의 땅에서 교육과 농사를 함께하는 공동체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곳의 이름을 ‘씨?농장’이라고 했는데, 후일에 직접 번역해 책으로 출간한 간디의 자서전을 읽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1958년 8월호 ≪사상계≫에 발표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로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서대문 형무소에 20여 일간 구금되는, 이승만 정권 시기 대표적인 필화 사건을 겪는다. 함석헌의 첫 번째 정치 평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로 인한 필화 사건 이후 함석헌은 오히려 왕성하게 글들을 발표하면서, ‘씨?농장’에서 시국을 참회하는 단식 투쟁을 전개하는 등 사회적인 목소리를 높여 간다. 1961년 ≪사상계≫ 7월호에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게 된 당시 군부 정권을 비판하는 글 <5·16을 어떻게 볼까>로 인해 사장이었던 장준하와 취재부장이 중앙정보부에 체포되기도 했으나 당시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때문이었는지 정작 함석헌을 체포하지는 못했다.
1962년 2월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3개월 예정 방미 길에 오른다. 귀국한 직후 7월에 오산학교 강당에서 귀국 강연회(오산학교 동창 주최)를, 이어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사상계≫주최의 시국 강연회를 연다.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미처 입장하지 못한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기마 경관대까지 출동한 이 강연회를 함석헌은 스스로 ‘사회 참여의 시작’으로 보았는데, 이후 장준하와 더불어 활발한 강연을 통해 군사 정권의 잘못을 꾸짖는 한편 굴욕적인 한일 협정의 비준을 반대하는 활동을 한다. 1965년에는 이를 위해 각 분야 인사 30여 명이 결성한 조국 수호 국민 협의회의 상임 대표로 선출되기도 한다.
1969년 박정희 정권의 3선을 위한 개헌을 앞두고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한편, 1970년에는 4·19혁명 10주년에 맞추어 개인 잡지 성격의 월간지 ≪씨의 소리≫를 창간하지만 두 달 만에 폐간 조치를 당하게 된다. 이후 법정 투쟁 끝에 승소해 이듬해 8월에야 복간호로 3호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1971년에는 이후 1988년까지 지속된 ≪노자≫와 ≪장자≫ 접기
최근작 : <매일, 시 한 잔 : 두 번째>,<뜻으로 본 인류역사>,<[큰글씨책] 함석헌 수필선집 > … 총 62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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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를 비틀어 보기! 고구려의 옛땅을 찾아서 미래로 미래로......
인문학에길을묻다 2010-07-13 공감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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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님의 영감과 통찰력.. 이런 역사를 쓸 수 있는 그 분 정신이 놀랍다..
딸기꽃 2010-04-28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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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매력이 있는 책입니다. 고난은 극복되어야 한다. 희망직함 생각을 갖도록 합니다
올챙이 2011-07-19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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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선생님의 놀라운 필치로 한국의 역사를 조명했다.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그 넓은 만주 땅은 우리의 땅이 되었을텐데...
거북이 2011-11-2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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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당시의 사상과 지금의 괴리를 느낀... 실망스러운 책이었습니다.
선풍기 2008-11-26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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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사교육의 억지포장이 부른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자기부정`을 진실을 이야기함을 통해 비로소 `긍정의 시각`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airmoo 2012-01-0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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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기는 하지만 상식도 늘고 우리 역사를 다른 관점으로 생각할수 있게 하는 책
matilda314 2010-11-0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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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며, 한국역사의 밝은 미래를 보여줍니다.
Will 2009-02-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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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책을 빠른 시일에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천지76 2010-09-0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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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뜻이 피어나기를...
역사는 남기는 것이 있다. 하나는 뒤에 남기는 것으로서 인과관계에 의한 역사의 서술이 바로 그것이다. 또 하나는 속에 남기는 것으로 역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기는 정신과 뜻이요. 그 사회와 세상에 남기는 인류 존재의 고갱이다. 아무리 과거의 사실을 해명하는 보존이 잘 된 사료와 유물이 쏟아져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뒤에 남긴 것으로 추측하는 인과관계의 찌꺼기일 뿐이다. 진정한 역사는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를 물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묻게 될 때 역사란 주어진 사료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자리한 정신적 속알을 헤아리는 것이 되고 우리 사회와 세계에 주어진 절대자의 뜻을 읽는 것이 된다.
함석헌 선생님의 전기에서 다석 선생님의 역사 강의는 무척이나 인상 깊고 감동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바로 역사를 듣는 이의 가슴 속에 민족적인 기상과 정신을 심어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이며 우리 고난의 역사에서 수많은 눈물을 흘리게 하고 그 아프고 한스러운 우리 역사에서 가슴에 사무치도록 가야할 방향을 일러주는 역사 수업이야말로 참된 역사 수업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바로 우리 국민들에게 민족정신을 세우는 역사이자 우리 마음과 정신을 더 높게 하고 더 넓게 펼치는 역사를 말한다. 여기 선생님의 말을 조금 인용해보기로 한다.
빈 소리 하지 말고 공상하지 마라. 우리가 받은 유일한 역사적 유산은 이것뿐이다. 못생겼지만 이것뿐인 우리 마음, 우리 정신, 닦으면 얼마든지 닦이고, 키우기만 하면 곧 크는 마음, 그 대신 없다 하면 아무것도 없다. 5천 년인지 6천 년인지 모르고, 세계 몇 나라, 몇 문명인지 모르나, 그것이 흐르다 흐르다 그 결과 이 가엾은 늙은 갈보같은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은 이것이다. 사실 어느 나라 무슨 문화도 복잡한 듯하지만 들추고 보면 수북한 껍질뿐이요, 마지막에 정말 남는 것은 이것뿐이다. 자유하는 정신, 이렇게 하느라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 예측에 벗어나게 하셨다.
5천년의 역사동안 한 번도 우리의 기상을 한껏 펼쳐보지 못하고 수많은 침입과 억압 속에 무수한 좌절과 고통만이 수많은 지층으로 쌓이고 쌓여서 하늘까지 닿은 민족, 바로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그는 승화시켜낸다. 세계사의 하수구인 우리 역사가 있기에 침입자들이 즐거움의 궁전에서 놀 수 있게 되고, 이 하수구가 있기에 그들의 편한 생활 가운데 나오는 보기 싫은 것들을 모두 받아주고 처리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드르의 살찐 육체와 어긋난 욕망의 문명을 뒷받침해주고 양분을 제공해주는 것도 또한 이 하수구가 아닌가 하고 선생님은 말한다.
'뜻'은 곧 씨알인 민중을 뜻한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과 억압 속에서도 면면히 그 생존을 지켜나가고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그들이야말로 우리 고난의 십자가를 두 어깨에 묵묵히 지고 간 자들이기 때문이다. 일제 36년의 통치기간에도 우리 조국의 국권이 사라졌음에도 다시 해방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조국의 정신을 가지고 조국의 언어를 사용하며 조국의 뜻을 이어갔던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일제에 빌붙어 자신의 영달을 꿈꾸었던, 조국의 정신을 버렸던 자들이 아니다.
'뜻'은 곧 민족 정신의 바탕을 뜻한다. 한반도의 운명이 우리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위험과 격랑의 파도에 휩쓸릴 때에도 그 마음 속에는 항상 외부자를 수용하는 마음을 품었고, 타인에 대해서 적대감을 가지지 않고 세상 모든 것을 품으려 했던 우리들의 인과 겸손함을 뜻한다. 한번도 먼저 타국을 침입하여 그들을 노예상태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던 순박했던 하지만 마음만은 웅혼했던 민족정신의 고갱이를 말한다. 비록 역사적으로 한번도 변변히 그 뜻을 펼치지 못하였지만 그렇기에 우리들의 마음의 이상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던 민족 정신의 노스탤지어다.
'뜻'은 곧 인간 존재의 바탈이자 인간 의식의 궁극적 존재인 절대자의 의지이다. 따라서 우주 본체이며 그것의 움직임의 정해진 방향이다. 모든 고난의 역사는 그것이 주는 교훈이 있다. "간디의 말과 같이 수난은 결코 약한 자의 일이 아니요, 강한 자의 일이다. 자기 안에 보다 더 위대한 힘을 믿는 것이 수난의 도다. 우리 싸움은 불행을 남에게 떠밀자는 싸움이 아니라, 죄악의 결과인 고난을 내 몸에 달게 받음으로써 세계의 생명을 살리자는 일이다. 우리 양심에 준비가 부족할 때까지는 우리는 스스로 약함을 염려하여 겁낼 것이다. 그러나 정의의 빛이 우리 마음에 비치고 진리에 대한 사랑이 우리 속에 불붙을 때 현대의 무력 국가들은 결국 한낱 골리앗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생님이 말한 바와 같이 고난의 역사는 자기 안을 들여다보게 하고 그 속에서 절대자를 찾게 만든다. 그것이 고난이 가진 의미자 교훈이다.
역사 서술을 이런 뜻으로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역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각성의 눈으로 들여다 본 세상은 모든 것이 달리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비록 근 현대사 부분에 와서 동학의 의미라든지(무위당 선생님이 다시 재조명하셨다.) 해방과 남북전쟁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해석이 나름대로 수긍되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역사를 이렇듯 큰 맥락에서 한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새로웠다. 왜 모 신문사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도서 100선에 선정되었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곤붕의 이야기 중에 큰 새가 되어 한반도의 역사의 상공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 역사의 시작과 끝을 한 눈에 쳐다보고 있는 시원하고 웅혼한 느낌을 주었다. 더불어 분노해야 할 곳에서는 가슴을 치게 하고 슬픈 곳에서는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도 그 분노와 슬픔 속에 담겨진 깊은 뜻에는 말없이 수긍하게 하는 정신적 깊이를 가진 서술에 우리 나라의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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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13 공감(9)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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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으로 본 한국역사 > 다시 구입하면서..
이책을 처음 만난 것이.. 언제 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길사에서 나온 책으로 처음 보았다.
그때는 문장의 글맛이 .. 옛스런 느낌이 강해 머리속에 잘들어오지 않는 부분도있었으나..
읽으면서 내내.. 어떤 울림이 마음을 흔들었다..
..
이제 다시.. 새로 나온 판이 있다하여.. 다시 구입하여 본다..
역사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그냥 역사책이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설화나 이야기도 아닌.. 뭐랄까..
우리의 역사에서 이전의 흐름과 지금(함선생님이 살아계실 때).. 그리고 그 이후에 나아갈 어떤 지침을 가르켜 주시는 듯한 그런 역사책..
..어떤 분이 평에서 본것 같은데.. 이런 책이 학생들에게 교과서로 쓰여져야 할 마땅한 그런 책이라 여겨진다..
.다시 읽어 보리라..
다시 울려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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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피아 2008-01-25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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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순간에도
역사 국정화 논재으로 극한 대치에 있는 여와 야 또 다른 재야 시민단체
그들에게 묻고 싶다. 역사란 무엇인지를.......?
역사란 그저 과거의 치적에만 치우쳐서도 또한 그릇되게 왜곡해서도 안 될 일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함석헌옹 같은 어르신이 없다. 지금 이 시대에는
고 함석헌옹이 근현대사 역사를 사실적이고 논리적으로 비판하고자 한 이유는
무엇일지 씨알사상은 또 무엇인지....
끝으로 역사를 연구 교육하는 이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의 편협한 역사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말고 좀더 미래를 내다 볼 수있는
역사교육을 해 주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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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5-11-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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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것이 진정 우리의 수준?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함석헌>
지난 총선 이후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졌다. 아니, 희망을 말하기 힘든 길고 긴 암흑터널
상태라 해야겠다.
박근혜의 광폭행보라든지, 안철수 대선출마 여부라든지....사각지대 밖의 일이긴 하나, 이번 박근
혜의 발언은 내 정신을 흔들어 꺠우는 벼락과 같은 충격이다.
인혁당 사건을 놓고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왔다',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라 하지를 않나,
5.16 쿠테타 사건을 놓고 '돌아가신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라고 하지를 않나, 지나가는 개미가, 모기가, 바퀴벌레가 웃을 소리다.
일단 웃음이 나온다. 부연 설명이 필요없는 헛웃음이다.
그 다음, 솔직함에 놀랐다.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해도 차마 입 밖에 소리내지 못하건만, 뚝심인건
지, 무식해서인지 그의 무대포 정신이 선명하다.
그 다음, 정말 무식하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이런 말을 할래야 할 수 없다. 타인을 설득해 자기 편
에 서게 하는 게 정치 아닌가. 세상을 올바르게 하는 게 문자 그대로 정치 아닌가. 무식한 발언에
두 손 두 발 들어버릴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득보다 실이 지나치게 많은 발언을 왜 할까.
차라리 아버지의 세상을 재현하고 싶어요~ 라 대놓고 말할 것이지.
그의 발언도 발언이지만, 국민을 어떻게 보고 이 따위 발언을 하는건지, 그런 발언을 들어야 하는
게 우리의 수준인지, 그 따위 (표현된 발언보다 그의 역사의식이 문제다) 발언을 해도 지지율에 큰
변화가 없는 게 정.말. 우리의 수준인지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김어준이 화제의 작 <닥치고, 정치>에서 일찍이 지적했지만, 실제로 당하고 보니 이번 일이야말로
메가톤급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지만, 그런 꼴을 들어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개탄스러워 어찌할 줄 모르겠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돌아가신 함석헌 선생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하다.
"한국사람은 심각성이 부족하다. 파고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말이다.
깊은 사색이 없다. 현상 뒤에 실재를 붙잡으려고, 무상 밑에 영원을 찾으려고, 잡다 사이에 하나인
뜻을 얻으려고 들이파는, 컴컴한 깊음의 혼돈을 타고 앉아 알을 품는 암탉처럼 들여다보고 있는,
운동하는, 생각하는, broodking over 하는 얼이 모자란다. 그래 시 없는 민족이요, 철학 없는 국민
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다. 이것이 큰 잘못이다."
일찍이 고구려의 위대함이란 주몽이 민중에게 뜻을 보였고, 그 뜻이 민중의 가슴에 타올랐기 때문
이었건만, 삼국시대를 기점으로 착하고 너그럽고 곧고 굳고 날쌔고 의젓하던 정신이 그만 사막으
로 흘러드는 냇물 모양으로 어느덧 자취를 감추어버렸다고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서 말하고 있다.
까마득한 삼국시대부터 잘못되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으나, 작금의 돌아가는 모양새
를 보니 그야말로 실감나는 일이다.
민중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자기를 잊은 적이 없다던데, 지금은 아닌가 보다.
특권계급은 언제나 자기네 이익을 위해 민중을 속여 압박자에게 팔고 자기네는 그 값으로 영화를
누리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 어느 시대나 민족을 파는 것은 권력계급이다. 민중을 팔지 않고 권력
은 안 생긴다.
민중은 자기를 팔지 않기 때문에 권력이 없다는데,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보면, 민중은 필시 자
기를 잊었나 보다.
파고들며 생각하는 힘도 모자라, 내가 나를 잊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역사는 점점 더 알 수 없다. 해방이 갑자기 온 것도 알 수 없거니와, 6.25 전쟁을 당하고 나서는
점점 더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생각하라는 말이다."
이제 신화도 없어지고 민족의 영웅도 없어져 갈수록 태산인 지금의 상황에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
대로 '알 수 없으니 생각'해야만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생각할 힘도 잃어버리고, 저 멀리 있는 희망이나 목표나 바램은 싸구려 짝
퉁마냥 내던져 버리고 싶건만,
별이 반드시 붙잡혀서 길 인도가 되는 게 아니듯, 이상도 반드시 거기 도달해야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냉정을 찾는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별이기 때문에 영원한 길잡이가 되듯, 이상이란 힘써도 힘써도 그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묵묵히 한 걸음 한 걸음을 걷는...것일....것이다.
올바른 말씀, 애써 주억거린다.
들리지 않는 말씀이나, 애써 새겨 듣는다.
역사는 나아가도 나아간 것이요, 물러가도 나아간 것이라는데 도대체 우리는 얼마큼 물러가야 진정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가 칼을 꺽고 깊이 생각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박근혜를 맹신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왜 그러냐고.
당신의 역사인식은 무엇이냐고.
당신의 옳고 그름, 소망은 무엇이냐고.
눈만 돌려도 수두룩하게 보이는 빈자와 약자가 안 보이냐고.
당신은 우월하게 태어났으니 상관없냐고.
영원할 거 같냐고.
진정.
읽은 날 2009. 6. 22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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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일상 2012-09-26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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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함석현 선생님은 1901년 조선시대에 태어나 1989년까지 격동의 역사를 살아가신 분이다. 그 시기를 기독교인, 교육자, 민주 운동가로 살아가며 느끼고 깨달은 바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목회를 하듯 이야기체로 쓰여진 이 책은 편안하게 읽힌다. 그리고 노교수님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내용이 깊고 비유가 풍부하다. 일제시대에 역사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봤을 때 조선의 역사는 너무나도 자랑할 것이 없고 4천년 민중의 앓는 소리가 컸다고 한다. 이 역사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한세기동안 고민한 결과 우리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고난을 극복하고 지금의 성공을 만들어 냈듯이 간디가 비참한 상황에서도 고귀한 뜻을 피어 냈듯이 우리도 우리 고난의 역사에서 뜻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 권의 책 속에 우리 역사의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등장한다. 함선생님은 사대세력과 자주세력 그리고 지배계급과 민중계급의 대결로 우리의 역사를 풀어간다.
삼국시대까지 우리 역사에는 석굴암, 강서고분 벽화에서 보듯이 우리만의 독특한 얼이 있었다.
하지만 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하면서 우리의 문화는 중국에 종속되게 된다.
한반도의 지배계층은 중국,일본 그리고 미국에 협력하며 우리의 민중을 억압했다. 이에 대응하는 여러 자주세력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묘청의 난, 최영, 실학, 동학, 기독교) 모두 한계가 있었고 실패한다. 이러한 실패의 결과로 우리는 여러 고난을 맞이하게 된다.
역사는 선택된 사실이다.
함석현 선생님이라는 역사가가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이고 하지만 이 역사 속에서 뜻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들처럼 영광의 역사를 가졌더라면 아쉬움은 있지만.. 어찌하리. 우리의 고난 속에서 어떤 뜻이 있는지 그리고 그 뜻으로 무엇을 하고 무엇을 피워내야 할지는 함석현 선생님이 지금 우리들에게 던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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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큰나무 2015-08-1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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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곧 영광으로
물론 함 선생님의 마음처럼 아직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도 역사의식도 너무나 형편없지만 글 한 자, 한 자
한 줄, 한 줄 읽을때마다 소리내어서 목소리로 읽었다. 마치 함 선생님이 책상에서 붓을 들었다 놓았다 하시
며 가슴으로 이 나라의 역사를 집필해 나가시는 그의 마음과 조금이라도 하나되기 위해서. 그의 정신의
십분의 일이라도 느껴보기 위해서. 어떤 독자도 말했듯이 이 책은 단순한 사실만을, 출판사의 이익추구만을
함 선생님의 지성과 노고만을 자랑치 않는 정말 그의 혼과 얼이 살아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으며 주먹이 쥐어 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페이지에
그가 우리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 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머리로 나라를
위해 몸 받쳤던 80년대의 386세대 이후의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궁금하
면서도 또한 두려웠다. 그렇다. 두려운 이유는 바로 내 자신, 자아, 씨알이 근본 정신이며 씨알만이 고난의 역
사를 영광의 역사로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정치인도 군인도 혁명가도 아닌 그저 무지에 목마르고
사상이, 주의가 뭔지 모르는 민중의 마음에 합한 사람 근본에 합한 사람들이 모여 이 극동의 조그만한 나라,
고난의 역사의 한 가운데 있는 둘로 나뉜 이 나라를 하나되게 하고 하나됨이 이루어 질 때 곧 영광의 역사
한 가운데서 세계의 중심으로 이끌어야만 하는 이가 바로 나, 자아 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5년 동안 내가 믿었던 신앙이 흔들리고 철학이 흔들릴때 역사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더 큰 것을 보게
되어 기쁘고 알게 되어 감사하다. 그랬기에 함 선생님도 '성서적'으로 본 한국 역사의 좁은 틀을 벗어나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 하지 않았던가.
통일 한국이라는 단기적인 사명과 '곧 오실 임금' 을 기다리며 세계와 인류의 구성원인 씨알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궁극적인 사명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어 또한 너무 기쁘다.
나도 책을 스스로 많이 읽지 않아 비판할 자격 없지만 정말 우리나라 교육계 넓게는 정치,사회 전반이
얼마나 썩어있으며 제대로 볼 줄 알는 통찰력이 없는 그런 대다수의 노론, 소론 분들이 아직까지도
이조 시대의 당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밥 그릇 싸움하고 있으니 자라나는 청소년 씨알들이 역사를
바로 알 리 만무하다. 386세대들의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도 소유하지 못한 그 다음 세대인 지금의
나를 비롯한 20대들의 머릿 속에서 소비와 향락, 한탕주의 기계적인 사고, 남의 의식 신경쓰며 겉 껍데기
만이라도 당장에 덥어쓰고자 하는 텅텅빈 깡통만 있을 뿐 세상을 넓게보고
깊게 보는 통찰력 따위는 쓰레기 통에 버려진지 오래인 듯 하다.
미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북유럽의 강대한 힘이 어디서 오는 줄 아는가, 바로 역사와 글쓰기에 있다.
장점은 본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그에 비하면 할 말을 잃는다. 할 말이 없다.
중, 고등학교 때 기계적으로 외웠던 역사는 살아있는 역사가 아니었다. 죽어있는 역사였다. 물론 대학에
와서 학문에 몰두 하지 않았던 개인, 나의 탓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구조적인 문제점은 훨씬 크다고 본다.
지금 세대들에게는 제대로 된 역사와 그 뜻을 해석할 줄 아는 정신을 가진 청소년들을 많이 육성해야한다.
이대로는 함 선생님이 가슴을 찢으며 당부했던 말씀들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역사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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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yj13 2007-05-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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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식으로 읽고 희망을 꿈꾸게 되는 한민족의 역사
읽는 내내 한숨과 안타까움이 나를 휘감았다.
학교에서 달달 외우기에 급급해 의미나 재미와는
다른 역사에 대한 추억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전혀 다른 역사 읽기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충격이라고
할만 하다.
사료나 왕의 연대기적 서술 그리고 시대를 그냥 단순히
나열한 지루하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역사가 아닌
한민족 역사 전체의 흐름 속에 있는 의미와 뜻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책이다.
흔히 아는 이야기라고 할지 모른다. '외부의 침입이 빈번했던
나라','당파싸움으로 병든 나라'등등 막연하고 또는
단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나 같은 사람은 이 책이
한번 그러한 개념과 생각들을 관통해서 새로운
사고를 일깨워준 고마운 책이라 하겠다.
읽는 내내 지켜줄 수 없이 실패하고 목숨을 잃어간
의인들에 대해서 자랑스러움과 계속 되는 힘을 잃는
나라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역사에 대한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고난에 뜻이 있다'는 우리 역사 속에 사명이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으면 그 것이 단순히 생존에 급급하면서
살아온 우리 한민족에게 (그리고 나에게) 엄청난 희망의 메시지와
한민족 역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로 다가온다.
무엇이 필요한가? 나를 위해서 그리고 한민족을 위해
그리고 한민족의 역사에 서린 그 고난의 결론을 위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이런 생각들로 여운이 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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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진 2010-11-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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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하지만 알아야 할 우리 역사
함석헌 이란 이름은 심심치 않게 접했다.. 주로 우리민족의 스승.. 뭐 이런식의 설명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역사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국사 전체를 아우르는 책에는 왠지 손이 가지 않는 듯하다..
우리나라 역사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으니까.. 더욱이 조선후기부터는 모르고 사는 편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도 싶고..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한국사에 대한 책을 멀리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책이 자꾸 눈에 띠는 바람에 더 무시하지 못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고 나서는 누군가에게든 꼭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아이가 있다면 꼭 읽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작가의 말대로 누가봐도 고난의 역사라 읽으면서도 내내 답답한 맘이 크지만.. 그렇기에 더욱 꼭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정말이지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500 페이지 되는 분량에 앞부분에서는 역사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사관)에 대한 얘기가 상당부분 있고, 또 뒤로 가서는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한국사 자체에 대한 내용은 400페이지 정도의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흔히 반 만년의 역사라고 하는데 그 정도의 분량에 담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그래서 세세한 내용을 다 담아내지는 않았다. 제목 그대로 한민족의 역사속에서 중요한 일들과 그 일들에 담긴 뜻에 대해 이야기 하는 부분이 휠씬 길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전반적인 역사를 이해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또 한 가지, 역사를 쓰는데 있어서 관점은 매우 중요한데.. 흔희들 사관이라고 하는.. 아무튼.. 함석헌 선생은 역사를 접근할 때 종교적 사관으로 접근한다. 그 종교가 기독교이고.. 그래서 처음 이 책의 제목으로 성경으로 본 한국역사였다고 한다. 그런데 후에 선생께서 비단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래서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역사를 이야기하는게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셔서 대폭 내용에 수정을 가했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는데.. 여전히 뒷부분 특히나 천주교나 개신교가 들어온 시점부터는 이 기독교적 사관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이비긴 하나 천주교인 제 입장에서도 편치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단점에 묻히기에는 이 책이 지닌 장점이, 그리고 선생이 이야기하시고자 한 뜻이 너무 크다. 책을 읽는 우리는 받아들일 것만 받아들이면 되니까.. 물론.. 이 책이 아니더라도.. 한국역사에 대해 읽고 고민해보는 것은 참 소중하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더이상 피하지 않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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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처 2009-05-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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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는 역사,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
극복하는 역사,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
이제 역사라는 것은 예전처럼 논문집 속에 갇힌 뜻 모를 한자어의 나열이 아니다. 의정부와 육조 체제 외우기는 더더욱 아니다. 역사책은 눈길을 끌 만큼 예쁘게 포장되고, 그 내용도 일반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쉽게 표현되고 있다. 학계 내에서의 전문화와 대중화의 갈등은 비중 있는 담론이 되었고, 어느 것도 소흘히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는 듯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이야 늘 긴장하면서 역사를 대할 것이다. 역사를 읽는 비전문적인 독자들도 긴장해보는 것이 어떨까. 특정한 시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역사라는 것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여기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에서 그 관심의 출발점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내가 누구이며 장차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 위해서는, 먼저 지나온 이력을 살펴봐야 한다. 이리저리 수천 갈래로 난 가지 사이로 굵은 줄기 하나가 보일 것이다. 그 줄기가 바로 오늘날의 나이며, 또한 내일의 나이다.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정체성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알고자 한다면 그 나라의 지나온 역사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역시나 수만 갈래의 가지가 있을 것이고, 굵은 줄기가 있을 것이다. 그 줄기가, 곧 함석헌 선생이 말하는 ‘하나’이며, ‘뜻’일 것이다.
역사에서의 ‘하나’ 찾기. 이는 곧 우리 자신의 뿌리를 찾는 일이며, 또한 기나긴 시간 동안 있어온 인간의 활동 속에서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 어떤 절대적인 것을 찾는 작업이다. 우리 민족의 형성과 그 지나온 길을 골똘히 살펴 민족적 자존심과 고유한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더 넓게 본다면 이 ‘하나’는 지구의 역사가 어떠한 발전 과정을 거쳤으며, 인류에게 진정한 진보란 무엇인가를 구하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향해 몸을 내던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역사 속에서 ‘하나’를 찾기 위해서 먼저 역사를 바라보는 잣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사관이다. 함석헌 선생이 삼은 잣대는 바로 종교적 사관이었다. 기독교의 편에서 역사를 해석했기에 찾아낸 ‘하나’는 바로 ‘아가페’였다. 기독교적 사관에서 본 역사의 궁극은 바로 ‘아가페’의 실현이요, 에반젤린과 같이 ‘아가페’를 만나는 데에 최후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한국 역사는 ‘아가페’를 실현하는 길에 있는 ‘고난의 역사’가 되는 셈이다. 언젠가 오실 님을 기다리며 거리에 나앉은 거렁뱅이 여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다.
쉽사리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얼핏 보이는 지내온 윤곽만을 그려보아도 한국 역사는 고난만이 가득한 역사이다. 그나마도 좁은 땅덩어리는 국력이 약하면 오히려 불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가졌고, 그 좁은 틀 밖으로 뛰쳐나가기는커녕 외침을 허다하게 받았으며, 찬란한 문화라고 하나 세계사에 크게 남을 만한 것도 없다. 함석헌 선생은 이러한 한국 역사의 고난에 대해서 그 뜻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즉, 한국 역사에 있어서 고난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하며, 더욱 강하게 하는 것, 더욱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 시대를 이끌어갈 자격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한민족의 험난한 과거사는 벅찬 미래와 짝하여 영광이 되는 순간이다. 한민족의 장구한 역사의 굴곡과 오늘날의 처지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고난의 역사는 한국 역사, 혹은 세계 역사의 속성일 뿐이지 한국 역사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함석헌 선생은 세계 역사 또한 고난의 역사라 하고 있다. 또한 고난을 내리는 주체가 하느님이며, 그 고난을 시험받는 객체가 지나치게 유기체화한 한민족의 역사라는 데서 종교적 사관이 지닌 불편함이 드러난다. 이순신, 임경업 등등의 죽음을 종교적 시각에서 바라본 나머지, 그들은 하느님의 뜻으로 나타나 임무를 수행하고, 뜻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한 뜻있는 위인들이 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고려 북벌론의 좌절, 몽고의 침입, 이성계의 집권, 조선의 양란, 조선후기의 붕당정치 등 고난과 실패가 있었던 썰물의 시기들은 대체로 북벌론이 좌절되거나 외침을 받은 때이다. 반면 성했던 밀물의 시기들은 만주땅으로의 확장을 꾀하거나 부분적인 확장을 이룬 때이다. 영토를 확장하는 것은 당연히 나라의 힘이 공고해지는 때에 있기 마련이므로 성한 시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결과론적으로만 보아 성쇠를 따진 한계가 있다.
고난을 견디어 비로소 맞게 되는 새 시대의 영도자. 이것이 바로 고난의 역사를 겪은 한민족에게 주어진 미래의 사명이요, 영광이라고 한다. 즉, 아가페의 실현자, 정의, 진리, 사랑의 승리를 가능케 하는 자이다. 언제일까 손을 꼽아보면 온 만큼이나 더 걸리지 않을까.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도덕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는 힘이 지배하지 않는 하나의 공동체 혹은 하나의 관리 체제가 되어야 한다. 그 관리 체제에서 물질이 아닌 정신을 받들어야 하고, 그러고 나서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장점이자 힘인 착함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밀물과 썰물로 나눈 팽창과 축소라는 해석과 미래에 주어질 우리의 사명은 언뜻 맞지 않아 보인다. 만주벌판의 정복자와 아가페의 실현자는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러한 불편함이 있어도 이 책은 큰 뜻을 지니고 있다. 그 뜻은 선생이 《성서조선》에 글을 싣던 때와 제목을 바꾸어 책을 펴내던 때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살펴봐야 비로소 확연해진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해방정국, 뒤이은 군사독재 시절. 또다시 고난과 핍박에 내몰린 우리 민족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위로였고 사명감이었으며 민족적 자존심이었다. 바로 민족의식의 고취였다.
이러한 시기에 함석헌 선생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객관적이고 세세한 고증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였을 것이다. 고난당하는 우리 민족의 정체는 무엇이며 대체 우리에게 나아갈 길은 무엇일지 찾아보아야 했을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현재의 삶 한가운데에서 역사를 둘러보았으며, 방관자가 아닌 이 땅에 난 이로서 얻어낸 것이 고난의 역사였다. 그 고난으로 얼룩진 역사 속에는 왜곡이나 과장보다는 침울할 만큼 안타까움과 한탄이 서려 있다. 이 내용은 우리 민족에게 우울감을 고취하거나, 열등감에 빠지게도 하지 않는다. 함석헌 선생은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의 연속인 고난의 역사를 통해 고난은 극복해야 할 것이고, 극복한 뒤에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다. 또한 어리석을 정도로 지켜져 온 착함을 잃지 말고 사랑을 베푸는 민족이 되자고 소리치고 있다. 고난을 당하더라고 최고의 가치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1950, 60년대를 살고 있던 이들에게 고난은 극복해야 할 것이고, 그 뒤에는 우리의 사명이 있다는 말은 힘이요, 희망이었음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 속에는 함석헌 선생의 이러한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실의에 빠진 많은 이들에게 읽히려는 뜻은 형식과도 맞물렸다. 즉, 어려운 한자어를 피하고 될 수 있는 한 우리말을 살려서 썼다. 그런데도 그 쓰임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뜻이 통하는 데도 무리가 없다. 이 점은 역사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새겨야 할 것이다.
함석헌 선생의 말대로 역사가의 본분은 고증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앞으로도 거울로 삼을 ‘하나’를 찾는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하나’를 찾는 일이 역사라는 학문의 궁극적인 역할이라 할 수 있겠다. 그 ‘하나’의 뜻을 밝혀 오늘과 닿게 해야 한다. 또한 앞서 말했듯 여러 사람이 만날 수 있게 그들의 말로 풀어 써야 한다. 그 뜻을 자신만만하게 밝히는 역사가보다 사실의 재조합과 해석의 답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역사가가 더 많다는 사실에 대한 함석헌 선생의 탄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겨들어야 할 일침이다. 이 책은 비록 종교적 사관에 치우쳐 써서 다른 잣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논박거리를 제공하지만, 자신의 잣대로 뜻을 풀어 밖으로 널리 알렸다는 데 큰 뜻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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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i_e 2004-07-1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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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역사, 한국의 역사
1부 새로 고쳐 쓰는 역사
- 이 책을 읽고 이해하는데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많다.
2부 올라오는 역사 내려가는 역사
- 고조선~ 고려시대까지의 고난의 역사를 보여준다.
3부 났느냐 났느냐 났느냐
- 조선시대~6.25까지의 고난의 역사를 보여준다.
4부 고난에 뜻이 있다
- 우리의 사명을 제시한다.
그동안 역사에 관한 책들은 사실의 열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책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엇가가 있다.
또한 자랑스럽거나, 훌륭한 대한민국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창피하고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만 있었다.
단군 시대에서 6.25까지 5천년 우리나라 역사를 성서적 관점에서 썼으며, 처음엔 그것이 상당히 이색적으로 다가와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읽는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각 시대별로 몇 개의 사건을 다루면서 그가 말하는 '뜻'과 ' 고난의 역사'에 대해 하나하나 증명하고 있다.
고구려 전까지 우리 역사는 아주 자랑스럽고 훌륭했다. 하지만 고구려가 망한 날, 우리 역사는 좁은 한반도에 갇히면서 고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를 업은 비루한 외교로 반도의 절반을 얻었다는 점에서 통일이 아니라 잃어버림이라고 말한다.
고려는 주체성을 잃은 문화를 되살리고 민족을 새로 통일할 의무를 지녔지만 실패했고, 조선 500년은 옛 고구려의 기상을 완전히 포기하고 주저앉으면서 시작했다며, 민족정신과 국민적 이상이 빠진, 다시 말해 중축이, 등뼈가 부러진 역사라고 말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해방, 분단, 전쟁과 그 후로 이어진 역사에 대해서도 그는 통렬한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똑같을 수가 없다. 역사의 사실도 중요하지만 사관도 또한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함석헌의 사관은 특별하고 차원이 달랐다.
자기는 어젯밤에 잤으나, 껠 때는 오늘 아침의 생명을 가지고 오늘 세계에서 오늘의 일을 가지고 오늘의 사람으로 깨는 것 같이 한국이 저를 잃기는 천년 전에 잃었으나 깨는 이때에는 근세인으로 깨지 않으면 안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자랑스런 우리 역사가 결코 그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부끄러워지기도 했지만 위의 저자가 한 말 처럼 늦었지만 제발 깨우쳐서 다시 일어나면 고난의 역사는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 위 이미지 출처: 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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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友 2010-02-1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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