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49대 국무총리 김민석 金民錫 | Kim Min-se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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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 |
본관 | 경주 김씨 (慶州 金氏) |
현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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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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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2. 신광국민학교 졸업 (7회)
- 1979.2. 서대문중학교 졸업 (9회)
- 1982.2. 숭실고등학교 졸업 (65회)
- 1985.4. ~ 1985.5. 제28대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 1985.4. 초대 전국학생총연합 의장
- 1992.4.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구 을 민주당 후보 (낙선)
- 1995.6.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조순 서울특별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기획실장 겸 대변인
- 1999.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
- 2002.6.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천년민주당 서울특별시장 후보 (낙선)
- 2002.10. 제16대 대통령 선거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2004.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구 을 새천년민주당 후보 (낙선 / 3위)
-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부산광역시장 경선 후보 (탈락)
- 2012. 아이공유프로보노코리아 대표, 상임이사
- 2013. 단국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 2014.9. 초대 민주당 대표
- 2016.4.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당 비례대표 2번 후보 (낙선)
- 2016.10. 더불어민주당 특보단장
- 2017.3. ~ 2017.5.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대선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
- 2017.5. ~ 2019.5. 제6대 민주연구원장
- 2019.5. ~ 2020.8. 더불어민주당 포용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
- 2020.9. ~ 2020.10. 더불어민주당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사회뉴딜분과 위원장
- 2020.10. ~ 2021.5.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자문위원장
- 2021.3. 2021년 재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 2022.5. ~ 2022.6.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총괄본부장
- 2023.3. ~ 2023.10. 제10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 2023.3. ~ 2023.10. 민주연구원 이사
- 2024.3. ~ 2024.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
- 2024.5.30. ~ 현재. 제22대 국회의원 (4선 / 서울 영등포 을 / 더불어민주당)
- 2024.6. 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
- 2024.9. '24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 2025.4. ~ 2025.6.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 매우 이른 나이에 정계에 입문한 이래 평생 전업 정치인으로 살았다. 정치인들이 대개 정계 입문 전 어느 정도의 사회 경력을 갖고 들어오는 걸 감안하면 특이 케이스.
- 1985년에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되고 3년의 수감 생활을 거쳐 1992년 만 27세의 나이에 14대 총선에 출마해 석패했다. 게다가 이 석패도 결코 패배가 아닌 것이, 표차도 고작 260표(0.23%p)였던 데다가 상대였던 나웅배 민주자유당 의원은 3선 의원으로 김민석 보다 30살 넘게 위인데다 그가 태어나기 2년 전에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고 이후 해태제과 사장과 한국타이어 사장을 거쳐 김민석이 서울대 신입생일 땐 재무부 장관을 지내고 그가 민주화운동으로 복역중일 때는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21세기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경륜이 차원이 다른 상대에게 굉장히 아슬아슬하게 진 것이 김민석의 정치적 역량이 싹수부터 비범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 참고로 헌정 사상 20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된 경우는 김영삼, 전휴상, 김종회, 류호정, 전용기뿐이다. 김영삼과 전휴상은 26세, 김종회와 류호정은 27세, 전용기는 28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류호정과 전용기는 2020년 비례대표로 당선, 나머지는 5.16 군사정변 이전 시대에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 즉 나라가 웬만큼 안정되고 나서는 20대에 지역구 의원이 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인데, 만약 그가 이때 당선되었다면 생일이 경과한 28세에 영등포의 지역구 의원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22대 국회에 뒤늦게 들어온 1995년생 손솔은 2025년에 비례대표직을 승계했기에 30세가 되어서 당선되었다.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첫 등원 당시 32세로 제15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며 제16대 국회의원직을 사퇴할 때도 38세였다. 그래서 2002년 지방선거에서 21대 총선까지 무려 18년간의 긴 공백이 있었음에도 2020년 기준 국회의원 전체 평균 정도인 56세였다. 현재는 환갑을 넘어 정치인 중 가장 흔한 60대가 됐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는 정계에서 가장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김영삼과 비슷하게 사회생활 자체를 정치로 시작하고 정치로 끝낸 인물이다.
- 이처럼 86세대 운동권 중에서 가장 눈에 띄게 빠른 정치적 성공 가도를 달렸기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사건이 있던 2002년까지는 86세대 운동권의 황태자로 여겨졌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겸 전학련[16] 초대 의장 출신의 운동권 성골에, 투쟁으로 수감되어 징역 5년 6개월 선고에 3년을 복역한 '훈장'도 달았고, 김대중에게 일찍이 주목받아 다른 운동권이 대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권 핵심에 진입한 데에 비해 혼자 제15대 국회의원으로 입성해 제16대까지 재선 의원을 지냈다. 국회에서도 존재감이 큰 신시대의 청년 리더로 여겨졌고 2002년에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출마했을 정도다. 물론 기나긴 공백을 거쳐 18년 만에 국회에 복귀한 지금도 '왕년의 황태자'라는 수식어는 빠지지 않는다. # 하지만 의원 선수는 다른 운동권 출신 주요 의원들이 17-22대 사이에 많게는 5선 의원이 되면서 따라잡혔다.[17] 그래도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당 정책위의장이 된 후 이 대표 측근인 신(新)친명계로 부각되며[18] 수석최고위원이 되어 존재감을 확보하더니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국무총리가 되며 재차 86세대 운동권 최선두로 떠올랐다.
- 중앙일보가 공개한 제21대 국회의원 총 재산 액수 순위에서 뒤에서 2위를 기록했다. 신고된 액수는 -577,019,000원이다. 선거공영제 실시 이전에 치른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들어간 자금, 민주당 창당에 소요된 자금 및 그 동안 지출한 각종 생활비가 상환되지 못한 채 개인채무로 남은 것으로 추측된다. 2004년 17대 총선부터 공직선거 후보자에게 선거비용을 보전해주기 시작했는데, 당연히 이 이전에 선거에 나설 때는 당 자금이나 개인 사재를 털어 치를 수밖에 없었어서 서울특별시장 출마가 재산을 어느 정도 소모한 것으로 보이며, 더불어서 원외에 있었던 지난 18년 중 직업이 없었던 기간도 있어서 그동안 쓴 돈이 고스란히 빚이 되었을 것이다.
- 2014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독거가족>을 연출하여 제7회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상영한 이력이 있다. 네이버 영화
- 비록 원외 군소정당이었지만, 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적이 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새정치 세력과 민주 세력의 내분으로 분당이 이루어지고 더이상 연합정당이 아니게 된 새정치민주연합이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을 추진하자 김민석 원외민주당 대표는 유사당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까지 시사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그래서 민주당 명칭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두고 법적 분쟁이 예상되었으나, 이후 어떤 물밑협상을 하였던 것인지 양 당의 통합에 합의하며 싱겁게 마무리되었고,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이라는 약칭도 쓸 수 있게 되었다.
-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사태 발발 4개월 전인 24년 8월에 이를 미리 예견하고 견제하는 놀라운 정무감각을 선보였다. 사실 21세기의 선진국에서 비상계엄이 발발할 것이란 예측 자체가 터무니없고 현실성 없었기에 김민석의 이 발언 당시에는 민주당 내에서도 반신반의의 수준[23]에 그쳤고 당연히 국힘, 개혁신당 소속 정치인들 및 보수 성향의 언론지, 평론가, 지지층 등에게서 군에 대한 무지, 괴담 살포 취급을 받으며 막대한 비난에 부딪혔다. 그러나 그 예측이 현실이 되면서 단숨에 해당 사태 관련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이 공적으로 인해 철새 이미지로 잃어버린 주가를 완전히 회복하며 정치인으로서 입지가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박선원 의원의 말에 따르면 영 뜬금없이 던진 견제는 아니었고 7월에 이미 불온한 징후를 감지하여 대비했던 것이라 한다.
- 고양이 집사이다. 아내가 길고양이 보호 활동을 하고 있어서 그 영향으로 본인도 고양이들을 키우고 있다고.

- 1999년 코오롱상사의 신사복 브랜드 '아더딕슨'의 모델로 활동한 바 있다.[24] 봄에 제작한 광고에는 혼자 출연했고 가을에 제작한 광고에는 당시 톱 모델이었던 차승원과 함께 사진이 실렸다. 정치인이 공익광고에 모델로 출연한 사례는 많지만 민간 기업, 그것도 패션 기업의 신사복 모델로 나선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며 김민석이 최초였다. 광고 출연 후 코오롱상사로부터 당시 지면 광고모델로는 최고대우 수준인 5천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는데 이 돈을 본인이 갖지 않고 본인의 지역구 내 결식 청소년들을 위한 기금으로 전액 기부했다. 이 사실은 광고 제작 후 26년이 지난 2025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재발굴됐는데 옆 지역구 의원인 채현일 의원이 발굴하여 언급했다. 혼잡했던 청문회 내내 평정을 유지하던 김민석 의원도 해당 일화의 공개 앞에서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쓱함에 말을 아꼈다.
- 국민의힘 의원들하고도 친분이 두텁다. 이종배, 김대식, 인요한, 유용원 등이 있는데 특히, 김대식 의원하고는 상당히 친한데, 아직 국무총리로 임명되지 않았음에도 총리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상당한 친분이 있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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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1964)/비판 및 논란
최근 수정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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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3. 새천년 NHK 사건4. 불법 정치자금 수수5. 60대 노부부 유서 허위 논란6. 코로나19 검사 새치기 논란7. 계엄 발언 파장
7.1.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후 재조명
8. 국무총리 후보자 시기9. 제49대 국무총리2008년 지인 3명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총 7억 2,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윤갑근 당시 검사는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고, 영장 집행에 나섰으나 당사로 피신한 뒤 떼로 저항하여 집행을 막아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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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관의 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당원들 |
- 제1심 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3. 13. 선고 2008고합1412 판결
2008년 12월 30일, 법정에서 정치자금이 아니라 생활비 명목으로 받거나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였다. #
2009년 3월 13일, 제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함께 추징금 7억 2,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
2009년 3월 13일, 제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함께 추징금 7억 2,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
- 항소심 사건번호: 서울고등법원 2009. 7. 30. 선고 2009노705 판결
이후 항소하였고 2009년 7월 30일 항소심에서 벌금 600만원으로 형량이 낮아졌다. # 아래에서 보듯 김민석은 차용한 금액이고 계약서를 썼다고 주장하였지만, 재판부는 불법 정치자금을 숨기기 위한 외형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항소심 판결문 발췌 | |||
- 상고심 사건번호: 대법원 2010. 8. 19. 선고 2009도7959 판결
2008년에 김민석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낸 자로부터 2018년 재차 4,000만원을 차용하였다. 그는 2008년에 불법 정치자금 추징금을 대납해준 자이기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강 씨는 김민석이 야인 시절 원외 민주당에 있던 시절에도 인연을 이어왔다고 한다. 강씨라는 성과 이재명 캠프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체육위원회 공동위원장이라는 직함 등을 감안하면 강신성 현 대한체육회 부회장임을 알 수 있다. 강신성은 2억 5,000만원 가량을 제공했으며, 법정에서 김민석과는 형제와 같은 사이라고 증언했다. 그 외에 10명에게서 1억 원을 별도로 차용[2]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일보는 과거 김민석이 정치자금법 사건의 추징금을 차용금으로 변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였고, 김민석은 "과거 정치자금법 사건에 대해서는 추후 소상히 설명드리겠다"고 답했다. #
김민석은 "사적 채무가 있었다"며 "누진되는 세금을 납부하는 데 썼고 그간 벌금·세금·추징금 등 공적 채무를 우선 변제하느라 상환 만기를 연장한 상태였다. 대출받아 전액 상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표적 사정의 성격이 농후한 사건"이라며 "당의 공천에서도 그런 점이 감안됐다. 검찰 등 모든 관련자를 증인으로 불러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
강신성에게 오피스텔까지 제공받았으며, 김민석의 법인인 아이공유 프로보노 코리아도 이 오피스텔을 주소지로 등록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인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김 후보자에게 금전을 빌려줬던 사람들은 정치인이거나 ‘업자들’”이라며 “김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채권자들이 ‘이권(利權) 청구서’를 들이미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후속보도에 의하면 전북 정읍에서 운영중인 강신성 씨의 회사가 사들인 사업 부지의 부동산 가치가 민주당 소속 김생기 정읍시장의 시행 사업 지정 이후 크게 오른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임기 시작 4개월 만에 사업 확장을 승인하고 도시계획시설 시행사로 지정해 강 씨 사업을 지원했다. 공시지가 10억원의 사업 부지는 감정평가에서 80억 원으로 평가받았는데 인근 땅값에 비해 월등히 높다. 정읍시청 관계자도 “절차대로 허가했을 뿐"이라면서도 "땅값이 80억 원이나 평가된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강씨 측은 50억 원을 융통할 수 있었다. 김생기 시장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 핵심인사들이 대거 찾아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 김민석 당시 최고위원도 한 차례 방문해 유세 지원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업 허가에 다른 배경이 있는지 물었지만 김 시장과 강 씨측은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
김민석은 "사적 채무가 있었다"며 "누진되는 세금을 납부하는 데 썼고 그간 벌금·세금·추징금 등 공적 채무를 우선 변제하느라 상환 만기를 연장한 상태였다. 대출받아 전액 상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표적 사정의 성격이 농후한 사건"이라며 "당의 공천에서도 그런 점이 감안됐다. 검찰 등 모든 관련자를 증인으로 불러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
강신성에게 오피스텔까지 제공받았으며, 김민석의 법인인 아이공유 프로보노 코리아도 이 오피스텔을 주소지로 등록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인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은 “김 후보자에게 금전을 빌려줬던 사람들은 정치인이거나 ‘업자들’”이라며 “김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채권자들이 ‘이권(利權) 청구서’를 들이미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후속보도에 의하면 전북 정읍에서 운영중인 강신성 씨의 회사가 사들인 사업 부지의 부동산 가치가 민주당 소속 김생기 정읍시장의 시행 사업 지정 이후 크게 오른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임기 시작 4개월 만에 사업 확장을 승인하고 도시계획시설 시행사로 지정해 강 씨 사업을 지원했다. 공시지가 10억원의 사업 부지는 감정평가에서 80억 원으로 평가받았는데 인근 땅값에 비해 월등히 높다. 정읍시청 관계자도 “절차대로 허가했을 뿐"이라면서도 "땅값이 80억 원이나 평가된 것은 잘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강씨 측은 50억 원을 융통할 수 있었다. 김생기 시장의 당선을 위해 민주당 핵심인사들이 대거 찾아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 김민석 당시 최고위원도 한 차례 방문해 유세 지원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사업 허가에 다른 배경이 있는지 물었지만 김 시장과 강 씨측은 질문에 답변을 피했다. #
과거 2004년 한 노부부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15장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에 이른 사건이 있었는데, 유서에서 김민석 의원이 자신들에게 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24억원 가량을 차용시키고 이중 8억 4,000만원을 정치자금으로 빌려가 이를 갚지 않았다는 주장의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었다. # 하지만 김민석은 이 유서에 대해 모함이라고 주장하며, 그들과 양부모 양아들 관계였다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도[3] "그들을 아버지 어머니라 부른 적이 없고 단 1원도 받은 적이 9없다. 검찰에서 전화가 와 직접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 2025년 6월 18일 김민석은 "청탁을 미끼로 제3자의 돈을 착복한 한 지역주민이 제게 그 청탁을 민원 했고 저는 들어주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분은 제게 돈을 줬다는 허위 투서를 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저는 하늘의 도움으로 제 보좌관이 녹취했던 그분과의 대화록을 검찰에 자진 제출하고 투서의 음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2021년 9월 2일 오전 9시 10분 경,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러 서울의 한 병원을 찾았다. 당시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은 줄을 서 있었는데, 김 의원은 병원 측 안내를 받으며 바로 검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먼저 기다리던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한다. #
병원 측은 SBS 취재진에게 "평소 코로나 검사에 대해 예약을 받지 않는다면서도 VIP나 응급환자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먼저 검사를 받게 한다"며 "김 의원 측의 연락은 전날(1일)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병원 측은 '새치기 논란' 관련해 "당시 시민 5~6명 정도만 줄을 서 있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병원은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성애병원으로, 코로나 검사는 유료로만 진행되며, 시간 예약을 받지 않고 시민 누구나 줄을 서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병원 측은 SBS 취재진에게 "평소 코로나 검사에 대해 예약을 받지 않는다면서도 VIP나 응급환자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먼저 검사를 받게 한다"며 "김 의원 측의 연락은 전날(1일)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병원 측은 '새치기 논란' 관련해 "당시 시민 5~6명 정도만 줄을 서 있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병원은 영등포구 신길동 소재 성애병원으로, 코로나 검사는 유료로만 진행되며, 시간 예약을 받지 않고 시민 누구나 줄을 서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2024년 8월 김용현을 국방부장관으로 발탁한 직후부터 윤석열 정부에서 충암고등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로 인해 파장이 커지며 여야 정쟁으로 비화되었다. 여당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근거 없는 국기문란", "오로지 상상에 기반한 괴담 선동"이라며 계엄설을 주장한 야권에 비난을 가하는 한편, 김민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개 토론을 제안하는 등 날을 세운 갈등을 이어갔다. #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비슷한 논지의 주장을 펼쳤는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비난하는 등 논란이 거셌다.
7.1.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이후 재조명[편집]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정부가 정말로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로 인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신처럼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박선원 의원과 더불어 재평가를 받았다.# 김민석, 김병주의 계엄령 준비설에 강도 높게 비판을 한 조선일보의 양상훈 주필, 진중권 또한 공개적으로 사과#하면서 윤석열의 계엄을 예측한 김민석이 옳았다고 인정했다. 계엄 주장을 비난했던 한동훈 대표도 사과만 안 했지, 이젠 윤석열의 직무 정지를 찬성하면서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경우에는 이번 비상계엄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재연될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에서 추미애 당시 대표가 정부가 몰래 계엄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돈다며 얘기를 꺼냈다가 역풍을 맞은 뒤 실제로 후에 계엄령 문건이 공개되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4]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2017년 계엄령 문건 사건에서 추미애 당시 대표가 정부가 몰래 계엄을 준비한다는 소문이 돈다며 얘기를 꺼냈다가 역풍을 맞은 뒤 실제로 후에 계엄령 문건이 공개되었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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