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1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권헌익 | 알라딘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권헌익 | 알라딘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2016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부문 선정도서
권헌익 (지은이),홍석준,박충환,이창호 (옮긴이)
산지니201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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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사 주간 22위, 역사 top100 4주|
Sales Point : 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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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동남아시아 연구서에 주어지는 ‘조지 카힌 상’ 1회 수상작. 권헌익 교수는 냉전 시대 베트남에서 발생한 잔혹한 폭력과 대규모 죽음의 비극적인 역사를 인류학자의 치밀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적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1980년대의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된 전쟁유령에 관한 의례에 초점을 맞추어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경제적, 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권헌익 교수는 냉전을 ‘상상의 전쟁’이라고 설명하는 유럽중심적 시각을 비판한다. 냉전이 전 지구적 차원의 갈등이었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 냉전이 ‘장기적인 평화’로 경험되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비서구 지역에서 냉전은 대규모 학살을 동반했다. 따라서 대규모 죽음의 역사와 망자를 기념하는 행위는 외교사와 경제사만큼이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이러한 집단기억 차이를 짚어내며 양극정치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깊이를 더한다.


목차


추천사
감사의 말

서론
1장 전쟁의 유령
2장 대규모 발굴
3장 작전 중 실종
4장 유령 다리
5장 객사
6장 유령의 변환
7장 유령을 위한 돈
결론

역자 후기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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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6년 6월 2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권헌익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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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대를 중퇴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학사,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사회인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초기의 구소련 시베리아 원주민사회 연구에서 근래의 베트남전쟁 미시사 연구에 이르기까지 줄곧 비교공산주의와 냉전시대 인간의 조건에 집중해왔다. 맨체스터대, 에든버러대, 런던정경대 교수를 거쳐 2020년 현재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베트남전쟁을 다룬 저서 『학살, 그 이후』로 미국인류학회에서 기어츠상,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로 아시아학회에서 카힌상을 수상했고, 냉전의 이해에 관한 저작으로 한국의 경암학술상과 세종문화상을 수상했다. 2019년 10월 프랑스의 레비스트로스상을 수상하고 이 책의 내용이 부분적으로 소개된 ‘인류학과 세계평화’라는 제목의 대중강연을 했다. 2020년 현재 서울대 사회과학대에서 인류학 초빙석좌교수로 있으면서 전쟁으로 인한 한국사회의 종교적 변화를 다룬 새 저작을 완성 중이다. 접기

최근작 : <한반도 정전체제와 전후 일본>,<전쟁과 가족>,<글로벌 냉전과 동아시아> … 총 19종 (모두보기)

홍석준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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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겸 도서문화연구원 원장이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 학사와 동 대학원 인류학과 석사를 거쳐 동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말레이시아 농촌의 이슬람화와 문화변동이라는 연구로 인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이슬람화, 말레이시아의 사회와 문화, 다문화사회로서의 말레이시아의 역사와 문화, 동남아시아의 노인과 노년문제, 도서해양부 동남아시아 해양세계와 이슬람, 동아시아 해양 실크로드의 역사와 문화, 동아시아 항구도시의 역사와 문화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현재 말레이시아 항구도... 더보기

최근작 : <섬 인문학 산책 2>,<섬 인문학 산책 1>,<아시아의 무형문화유산> … 총 27종 (모두보기)

박충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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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바버라 캠퍼스에서 개혁개방 후 중국 도농관계에 관한 민족지적 연구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좁게는 현대 중국 사회, 넓게는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문화, 정치경제, 과학기술의 연동관계, 그리고 인류세와 테크놀로지에 관한 과학기술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창호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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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글로벌다문화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이주민의 건강·의료에 대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 화교, 재외동포를 포함한 이주민 및 다문화사회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재단법인 무지개청소년센터 부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 및 저서로 「연해주 지역 북한 노동자의 실태와 인권」, 「러시아 사할린 지역의 북한 노동자」, 「러시아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의 북한 노동자」, 『다문화사회... 더보기

최근작 : <한국의 커피 수용과 변천>,<북한을 파견하다>,<질적 연구자 좌충우돌기 (반양장)> … 총 1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2016 경암학술상 인문사회부문 선정도서

▶ 전후 베트남, 떠도는 영혼에 대한 대중적 상상과 역사적 성찰

인류학계의 최고 상 중 하나인 ‘기어츠 상’의 수상자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이 마침내 국내 출간되었다. 캠브리지대학교의 석좌교수인 권헌익은 냉전 시대 베트남에서 발생한 잔혹한 폭력과 대규모 죽음의 비극적인 역사를 인류학자의 치밀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적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1980년대의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된 전쟁유령에 관한 의례에 초점을 맞추어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경제적, 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세계 석학들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감동적”, “어떠한 학자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 “인류학적 통찰의 거의 완벽하고 경이로운 예”라는 극찬을 받은『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뛰어난 동남아시아 연구서에 주어지는 ‘조지 카힌 상’의 제1회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국가적으로 추모되는 전쟁 영웅도, 가정 내에서 기려지는 조상도 아닌 떠도는 유령을 주제로 삼아 냉전사와 친족 연구 등의 지평에서 독보적 시각을 제시한다. 학술서이지만, 권헌익 교수는 베트남인들의 목소리를 생동감 있고 아름다운 문체로 전한다. 뿌리 뽑힌 유령들을 애도하는 베트남인들의 이야기는 냉전의 양극적 질서가 견고한 한국 사회의 독자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무지몽매의 표현이나 비유가 아닌 ‘사회적 사실’로서의 유령

유령 이야기만큼 중대하면서도 학술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주제는 드물다. 대부분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유령은 인류의 사회적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적 사실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도 근대화의 과정에서 유령 이야기는 물론 각종 민간 추모 방식을 공식적 활동에서 배제하고 있다. 국가적 기억에서도, 또 조상이라는 친족관계 내의 추모 대상으로서도 배제되는 것이 바로 유령이다.
하지만 권헌익 교수는 베트남의 전쟁유령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실체로서,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비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방식으로 현재에도 지속된다고 믿어지는 존재”(16쪽)로서 ‘사회적 사실’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베트남에서는 유령 그리고 유령을 둘러싼 문화적 담론과 실천이 대중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성찰과 자아정체성 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인류학적·사회학적·역사학적, 심지어 정치경제학적 연구의 중요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베트남의 유령 관련 문화를 비합리성이나 무지몽매의 표현이 아니라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경험, 도덕적 가치, 규범, 삶의 물질적 조건 등과 복잡하게 연동되어 사회적 현실의 중요한 축을 구성하는 것으로 접근한다.

▶ 친족관계·냉전사 연구의 지적 전통에 도전하는 독보적 시각

권헌익 교수의 베트남 2부작 중 앞서 출간된 『학살, 그 이후』는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마을의 주민들이 타인의 시신과 뒤섞인 가족의 유해를 어떻게 현존하는 국가적 혹은 가내 기념의 체계와 동화시키는지를 논한다. 반면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친족도 전쟁영웅도 아닌 전몰자라는 중요한 영역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남부 및 중부 베트남의 공동체들은 전사자의 개별 무덤과 마을 주민들의 집단 묘지뿐만 아니라 많은 무명 외지인의 무덤을 함께 지켜왔다. 베트남인들은 ‘길 위에서’ 비극적으로 죽은 이들이 그 죽음의 비통함과 폭력성 때문에 그들이 죽음을 맞이한 장소에 묶이게 된다고 생각한다. 망자들은 산 자들에 의해 그들의 기억이 인정되고 공유될 때에야 비로소 트라우마적 상황에서 자유로워진다. 뿌리 뽑힌 전쟁유령들은 윤리적 책임감에 따른 산 자들의 행동을 통해 강력한 상징적 변환을 거쳐 고향이 아닌 장소의 중요한 터주신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새로운 가족에게 입양되기도 한다. 전시와 전후 베트남인들의 삶에서, 친족관계는 예정되어 있는 배제적 계보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개방적 관계망이다.
권헌익 교수는 냉전을 ‘상상의 전쟁’이라고 설명하는 유럽중심적 시각을 비판한다. 냉전이 전 지구적 차원의 갈등이었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 냉전이 ‘장기적인 평화’로 경험되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베트남을 비롯한 비서구 지역에서 냉전은 대규모 학살을 동반했다. 따라서 대규모 죽음의 역사와 망자를 기념하는 행위는 외교사와 경제사만큼이나 중요한 연구주제이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은 이러한 집단기억의 차이를 짚어내며 양극정치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깊이를 더한다.

▶ “망자들의 세계에는 우리 편, 저쪽 편이 없다”
냉전이 지속되는 한반도의 현실과도 맞닿은 책

현지 조사 중에 한 지역의 신위를 만나 대화할 기회를 얻게 된 저자는 ‘명사수’라고 불리는 이 유령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권: 당신 세계의 사람들도 여전히 명분 때문에 논쟁하고 싸우나요? 망자들의 세계에도 “우리 편”과 “그들 편”이 있나요?
명사수: 아니오, 친애하는 외국인 친구! 망자들은 싸우지 않는다. 전쟁은 산 자들의 일이다. 내 세계의 사람들은 그들이 당신 세계에 있었을 때 싸웠던 전쟁의 동기와 목적을 기억하지 않는다.
-274쪽, 「유령을 위한 돈」 중에서

명사수의 말에 따르면 망자들의 세계에서는 ‘내 편’, ‘네 편’의 구분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오늘날 베트남인들은 전쟁 때문에 적이 되었던 가족의 일원들, 가족의 연은 물론 지역적 연고도 없는 민간인, 외국 군인 모두를 위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린다. 베트남인들이 전쟁유령을 위해 수행하는 의례행위는 “역사의 상처와 고통을 넘어 인류의 연대라는 윤리적 지평을 지향하는 창조적인 문화적 실천”(28쪽)인 것이다.
한국은 냉전의 오래된 질서가 여전히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의 삶을 양극적 대치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지구상 거의 유일한 사회이다. 이에 옮긴이들은 “베트남 전쟁유령 현상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화해와 연대의 가능성은 아직도 냉전의 유령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 사회에 중대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윤리적·실천적 교훈을 남기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역설한다. 뿌리 뽑힌 유령의 존재는 대규모 죽음의 경험을 겹겹이 축적해온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을 통해,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이지만 ‘내 편’과 ‘네 편’의 극단을 넘어 생명의 존귀함을 포용하는 것 또한 인간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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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주제 자체가 그 연구의 탁월함을 처음부터 보장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 연구가 그런 경우이다. 냉전시대의 정치적 대립을 뛰어넘는 현대 베트남인들의 귀신에 대한 포용적인 믿음과 의례 자체가 이미 매우 감동적일 뿐더러 각종의 서양중심적인 사고를 격파해가는 저자의 논리력 또한 경탄할만하다.
초록비 2018-07-15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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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헌익 선생님 책은 믿고 보는.
초록민들레 2016-07-1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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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컨셉트와 필력
낮에뜬별 2017-03-0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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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의 유령들 / 권헌익



서론




"동유럽과 중유럽 지식인들이 개인적 경험을 소설적 서사로 표현하는 데 힘을 실어줌으로써 진리를 주장하는 공식역사에 저항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이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개인의 기억은 공식역사에 대항하는 투쟁이라는 논쟁적인 진술을 통해 이러한 정향을 구체화했다. 하지만 유령이라는 요소는 익숙한 테마가 아니다. 오늘날 다양한 학자들이 당대의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도출하려는 시도에서 과거의 유령에 호소하는 경우가 흔하긴 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유령', '마르크스의 유령', '공산주의의 유령', '스탈린의 망령', '냉전의 유령' 등은 주로 역사적인 은유이다." "이들 역사의 유령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전쟁의 유령(ma chien tranh)과 같지 않다. 최근 이스트반 레브는 탈공산주의의 〈선사(先史)〉에 관한 논의에서 유령이라는 관념을 도입한다. 비록 나는 전쟁의 유령을 레브와 유사한 시각에서 역사적 불의의 산 증거로 접근하지만, 이들 유령은 단순한 역사적 관념과는 완전히 다르다."(14-5)




"베트남의 유령들은 구체적인 역사적 정체성을 가진 실체로서, 비록 과거에 속하지만 비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경험적인 방식으로 현재에도 지속된다고 믿어지는 존재이다.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과정에서 베트남의 유령 이야기는 탈사회주의적 서사와 양극적 질서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역사적 기술에서 독특한 장르의 관념과 가치를 구성한다. 베트남 유령의 생명력은 단순히 문학적인 현상일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장들에서 볼 수 있듯이 절박한 사회적 이슈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 현상은 베트남 사회 전역에 걸쳐 발견되는 유령 관련 이야기의 명백한 대중성과 베트남인들의 일상에서 점증하고 있는 비극적 전몰자에 대한 기억의 의례적 표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유령은 베트남에서 현저하게 대중적인 문화적 형태이자 역사적 성찰과 자기표현을 위한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령은 관례적인 사회학의 전통을 초월하는 사회적 연구의 정당한 영역을 구성한다."(16)




"이 책의 과제는 『학살, 그 이후』에서 다룬 친족의 의례적 기억에 관한 연구를 전몰자라는 중요한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대학살로 인해 가족에 기반한 전통적인 기념 관행이 위기에 직면했는데, 부분적으로 이것은 친족적 연고가 없는 시신들이 마구 뒤섞여버렸기 때문이다. 최근의 베트남 전쟁은 전통적인 마을을 뒤엎어 공동체적 삶의 안정적 공간을 흉폭하고 혼란스러운 전장으로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전쟁은 또한 민간인과 군인들이 여러 지역을 가로질러 대규모로 이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일반화된 인간의 이탈(human displacement)이라는 배경하에서, 남부 및 중부 베트남의 공동체들은 수많은 전쟁사망자의 개별 무덤과 마을 주민들의 집단 묘지를 유지해왔을 뿐만 아니라 그만큼이나 많은 수의 무명 외지인(응오아이, ngoai) 유해의 무덤도 지켜왔다. 이탈된 죽음의 이러한 물질적 조건은 베트남인들이 인지하는 비통한 전쟁 유령의 생명력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22)




1 전쟁의 유령




"냉전사에서 베트남 전쟁(1965~1975)이 그 전에 일어난 한국 전쟁(1950~1953)과 비교되는 것과 유사하게, 베트남인들은 베트남과 미국 간의 갈등을 이전의 '프랑스 전쟁'과 구분하기 위해 미국 전쟁(1960~1975)이라 부른다." "미국인들의 기억 속에 베트남에서 발생한 죽음은 주로 군인의 죽음이다. 이는 이 집단기억의 핵심적인 물질적 상징인 버지니아의 알링턴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관을 통해 입증된다. 베트남의 공식적인 기념방식에 따르면 미국 전쟁에서의 죽음 또한 주로 군인의 죽음이다. 이는 베트남 전역의 여느 농촌 마을이나 읍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묘지와 기념비를 통해 물질화된다. 하지만 실제로 베트남인들에게 베트남-미국 전쟁에서의 죽음은 남녀노소, 군인, 민간인, 당원, 비당원, 공산주의자 혹은 반공산주의자를 가리지 않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의 죽음이다. 이러한 상황은 전장의 전선이 지독하게 불분명했던 베트남 남부와 중부 지역에서 특히 심했다."(38-41)




"베트남에서 유령의 존재는 문화적인 상징이라기보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식된다. 유령은 전형적으로 '길 잃은 영혼' 혹은 '떠도는 영혼'으로 번역되는 다양한 이름(마ma, 혼hon, 혼마hon ma, 봉마bong ma, 린혼linh hon, 오안혼oan hon, 박린bach linh)으로 불리지만, 민간의 의례용어에서는 꼬박(co bac)으로 불린다. 꼬박은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뜻하는 용어인데, 이는 의례적 맥락에서 개별 가정이나 마을 사원 내에서 숭배되는 조상과 신위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옹 바(ong ba,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대조적이다. 이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죽었지만, 망자의 세계, 즉 엄(am)에 정착한다는 의미에서 진짜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살아 있진 않지만 여전히 산 자의 세계를 떠나지 않은 존재이다." "유령은 일종의 존재론적 난민으로서 에르네스트 블로흐가 말하는 다스 운하임리히(das unheimlich), 즉 집으로부터 뿌리 뽑힌 자의 지위에 가까운데, 이들에게 집은 자신의 기억이 머무는 장소일 수 있다."(44-5)




"베트남에서 유령은 아주 공적이기도 하다. 그들과의 사적인 조우 대부분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념활동으로 발전한다. 유령이 출현한 장소에 막대 모양의 향을 피우는 행위는 즉시 그 장소를 애도의 장으로 변환시키기 때문에 이미 명백히 공적인 행위이다. 유령 출현 이야기와 그 역사적 배경 또한 지역 사회에 신속하게 확산되어 공적인 형태의 지식으로 전환된다. 사전 지식이 없는 외부인이 아니라면 누구도 부주의하게 그 장소를 걸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주민들은 그 장소를 지날 때마다 향과 재를 보고 매번 그 특별한 유령 출현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이야기가 잊히고 관련 장소가 평범한 도랑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몇 개월 혹은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이와 같이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는 활동은 분향에서 음식과 돈의 봉헌, 혹은 때로 의례전문가의 주도하에서 이루어지는 본격적인 진혼 의식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46)




"혼과 유령에 관한 베트남인들의 담론에는 비판적인 역사적 의미가 풍부하게 담겨 있고, 이 담론이 널리 확산되는 이유는 정확히 그것을 통해 당대의 삶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도덕적·정치적 쟁점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쟁유령 현상은 역사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성된 인간의 조건을 반영하고, 때로 헤겔의 자이트가이스트(zeitgeist), 즉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정신으로 묘사되는 것과 긴밀한 친화성을 가진다. 가령, (남베트남군 군인으로 작전 중 사망한) 공산당 간부의 형이 유령으로 출현한 것은 친족영역 내에서 그의 기억의 부재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외세라는 공동의 적에 저항해서 싸운 통일된 '인민의 전쟁'이라는 공식적 패러다임 내에서 은닉되고 설명되지 않는 내전-냉전의 유산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주로 가족의 문제이지만 또한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비무장 민간인의 엄청난 희생과 그들의 기억에 대한 권력구조의 무관심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와도 연결된다."(48-9)




"베트남인들의 개념체계에 따르면, 유령은 망자의 세계에서 이방인 혹은 외부자를 뜻하는 응으어이 응오아이(nguoi ngoai)이다. 그것은 '나쁜 죽음', 즉 베트남인들이 〈객사〉(쩻 드엉, chet duong)라고 부르는 고통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에서 비롯된다. 이승의 이방인이 정착할 장소를 찾지 못하고 이 마을 저 마을로 옮겨 다니는 것처럼, 유령은 강제된 이동으로 인해 기억을 정박할 장소 없이 이승과 저승의 변두리에서 고통스럽게 떠돌아야만 하는 존재로 상상된다. 이승에서 이방인이 동질적인 배경의 결여라는 특징을 통해 정주민과 구별되는 것처럼, 유령들 또한 다양한 역사적 삶의 배경을 가진 개인들로 이루어진 혼성의 집단을 구성한다. 유령의 삶은 이러한 이동성과 다양성이라는 특질로 인해 조상의 삶과 구별된다. 조상의 '좋은 죽음', 즉 비폭력적이고 의례적으로 승인되는 〈집에서의 죽음〉(쩻 냐, chet nha)에 대한 기억은 계보적·공간적 질서에 따라 사회적 체계에 항구적으로 정착된다."(52-3)




2 대규모 발굴




"베트남에서 1990년대는 모든 면에서 가공할 변화의 시대였다. 외부 세계의 시각에서 볼 때 베트남은 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연이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가난하고 고립된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활력이 넘치는 나라로 변모했다. 베트남은 1980년대에는 높은 인플레이션과 저생산성이라는 심각한 경제위기에 빠져 있었다. 일부 관찰자들은 그 이유를 여러 요인들 중에서도 특히 관료사회주의의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에 대한 인민들의 일상적 저항에서 찾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베트남의 정치지도자들은 1980년대 후반 규제적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전반적인 경제개혁 프로그램(도이 머이, doi moi)을 도입했다. 경제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종교적 숭배를 포함하는 다양한 공동체활동과 결사활동에 대한 정치적 관용의 확대를 수반했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 베트남 사회에서 발생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전국적 차원의 종교와 의례의 부활〉이었다."(72-3)




"마크 브래들리는 베트남 혁명을 냉전기에 완전히 독립적인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탈식민지적 비전의 일반적인 추구로 정의한다. 따라서 최근 베트남의 사회적 전환은, 과거의 역사적 투쟁이 단순히 어떤 특수한 정치경제적 질서의 실현에 관한 것이 아니었듯, 단순히 하나의 경제 형태에서 다른 경제 형태로의 변화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경제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와 관련된 경제적 도덕성에 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최근의 탈사회주의 논쟁은 러시아, 동유럽, 중부유럽의 맥락에서는 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의를 진지한 재고 없이 20세기 후반의 정치사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희생시킨 사회세력의 폭력적인 양극화를 뜻하는, (유럽의 일부를 포함하는)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단순히 확장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이 주장은 정치적 양극성의 파괴적인 측면과 그것이 당대의 삶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마찬가지로 유럽중심적인 탈사회주의 정의에도 적용된다."(77-8)




"일군의 학자들은 산 자와 망자 간의 호혜적 관계라는 관념이 베트남의 문화적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베트남에서 의례활동이 부활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종교적 부흥을 한편으로 시장에 토대를 둔 경제적 실천의 강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민간의 종교활동에 대한 국가적 통제의 완화를 연관시키는 상이한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테일러는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서 〈최근의 주술 열기는 고대적인 것의 부활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경제대안의 포기가 수반하는 예측 불가능하고 부정적인 사회관계를 드러내는 탈사회주의적 현재의 징후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방향의 연구는 경제 내에서 상품관계의 부상을 종교에서 주술적 관념의 퇴화와 동일시하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주술적 관념을 사회진화의 낮은 단계에 있는 고대적 혹은 전통적 사회형태와 동일시하는 과거의 인류학적 전통에 대한 자기비판이기도 하다."(96)




3 작전 중 실종




"무명용사 무덤은 현대 현대 민족주의 물질문화의 중요한 초점 중 하나이다. 이 무덤은 흔히 아무도 매장되어 있지 않은 빈 무덤인데, 제이 윈터에 따르면 누구의 무덤도 아닌 빈 무덤이 모든 전쟁 사망자들을 위한 무덤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 그 이면의 사고방식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추상적인 군인의 매장이 전쟁의 종식을 표식하기 위해 이루어졌고, 사람들이 희생의 성스러운 목적을 기억하고 대규모 죽음의 비극적 현실을 망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 후에는 무명용사의 순수한 정신을 통해 국가를 축복했다. 냉전시대에는 군사적 갈등의 종식이 정치적 대치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았고, 추가적인 지정학적 목적을 위해 죽은 군인들이 동원되었다. 이 새로운 시대에 가치 있는 무명용사는 더 이상 무덤에 묻힌 환유적(換喩的) 신체가 아니라, 본국으로 송환되어 매장되지 않은 수많은 실제적인 신체들이었는데 이 시신들은 연장된 이데올로기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부분적으로 기여했다."(105-7)




"베트남에서도 사망한 영웅의 실종된 신체(nhung nguio mat tich)를 되찾는 일이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군 당국과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전후 베트남의 국가체계는 기념활동의 통제를 크게 강조했고, 미국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의 죽음을 프랑스 전쟁의 영웅들, 그리고 고대적 전승의 전설적 영웅들과 하나로 연결하는 영웅적 저항전쟁의 계보를 선전했다. 베트남의 모든 지방 행정단위에는 공동체의 공적 공간 중앙에 전몰자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고, 이 장소의 중심에 위치한 고딕풍의 기념비에는 〈우리 조상들의 땅이 당신들의 훈공을 기억합니다〉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패트리샤 펠리에 따르면, 이러한 국가적 기억의 구성은 기념의 초점을 전통적인 사회단위인 가족과 촌락에서 국가로 바꾸었다." "따라서 전쟁영웅과 혁명지도자에 대한 기억이 가내 공간의 조상위패를 대체하고, 공동체 사원은 해체되어 인민회관에 자리를 내주었다."(110-2)




"〈작전 중 실종자(MIA)〉 탐색활동은 보통 가족들을 현지답사에 참여시켰는데, 그 이유는 실종된 유해가 친족의 시체가 접근하는 데 반응해서 어떤 결정적인 표식이나 신호(저우 히에우, dau hieu)를 보낼 것이라는 추정 때문이다. 찌엔 쌤 마는 MIA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에서 다른 대부분의 비공식적 베트남 영매들과 마찬가지로 실종자 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정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소모도가 높은 탐색과 재매장의 긴 과정을 밟았다." "대부분의 베트남 영매들은 이러한 힘겨운 송환과 재화합의 과정에 활동적으로 참여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긴장과 트라우마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이 탐색 후 재매장 작업에서 수행하는 사제 역할은 탐색-발견 활동에 주술적으로 참여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가족들이 울부짖을 때 영매는 개인적인 통한(痛恨) 대신 커뮤니케이션을 장려했다. 요령 있는 영매는 결정적인 상황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을 웃길 수 있다."(121-2)




"한편 꽝남 성 당국은 관례에서 다소 벗어난 유해탐색 활동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대민관계에서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탐색활동을 자신들의 실종된 친지들에게까지 확대해달라는 시민들의 탄원이 빗발쳤다. 대중들의 요구는 강력했고 이는 결국 당국으로 하여금 유해탐색 프로그램을 재고하도록 만들었다. 베트남 국가 관료기구는 합리적 정신과 무신론적 도덕성을 공무원들에게 엄격하게 강조했기 때문에 관료들 사이에서 다소 혼탁한 논쟁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전쟁 영웅의 유해를 되찾는 영예로운 동기와 부분적으로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약 공산당 당국이 그 탄원을 무시하면 다소 자기모순적인 상황이 초래될 판국이었다. 결국 땀끼 시 당국은 과감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당국은 시민들이 실종된 친지 문제를 찾기 위해 종교적 영매에게 의뢰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정부에 공식적으로 청원할 수 있는 신청서를 발행했다."(125)




"1990년대 베트남과 미국의 화해 과정에서 미 행정부는 부분적으로 이전 적성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한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MIA 문제에 가시적인 진척이 있기를 조급하게 기대하고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정부대로 경제제재를 종식시키는 데 명운을 걸고 있었고, 발견된 미국인 유해의 수가 가시적으로 증가하기를 미국 정부만큼이나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유해탐색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한편으로 국제관계를 촉진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개혁이 수반하는 불확실성에 직면해서 당의 도덕적 기반을 강화한다는 국내적 목적을 위해 필요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찌엔은 1995년 인도차이나에 파견된 미국 MIA 탐색대와 접촉하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라오스 국경 지역에서 세 명의 실종 미군 비엣 끽(biet kich), 즉 베트남어로 특수부대 요원을 찾기 위한 탐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찌엔은 베트남-미국 합작 MIA 탐색활동의 성공을 위해 수호신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127)




4 유령 다리




"남베트남군과 미군의 통제하에 있던 남부와 중부 베트남의 도시 지역에는 또(to) 혹은 또 바 응으어이(to ba nguoi, 삼인조)라 불렸던 전시 베트콩 혁명소조가 있었다. 이 소조는 전형적으로 혁명과업에 충성하는 비밀 시민활동가를 지칭하는 꺼 소 깍망(co so cach mang), 즉 〈혁명의 토대(infrastructure of revolution)〉 남녀 3~5명으로 조직되었다. 각 소조는 보통 전체 서클의 규모와 범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늘날의 전문용어로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보다 광범위한 서클에 연결되어 있었다." "간부와 공작원 사이의 관계는 위계적이기도 했고 수평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공작원과 상급자 모두 서로를 같은 목적을 공유한 파트너, 즉 동찌(dong chi)라 부르고 또 그렇게 인식하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소조 조직은 개별 조직의 실질적인 자율성을 상실하지 않고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149-50)




"호랑이 사원 공동체는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도시 근교 공동체의 전형이다. 이 지역은 반식민주의 베트민 레지스탕스의 근거지 중 하나였다." "대규모 전쟁 묘지로 이어지는 길 끝자락에 은닉해 있는 사원은 서쪽으로 하위 중산층 주택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들 주택은 북쪽으로는 오래된 교도소와, 서쪽으로는 군부대와 맞닿아 있다." "이제 더 이상 죄수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웃들의 구술사에서 여러 번 드러나듯이 일부 주민들은 아직도 사형수들의 유령이 자기 집 뒤뜰이나 부엌으로 기어들어 올까 두려워한다. 그 지역의 토착적 지식체계에 따르면 살아가면서 죄수의 유령과 조우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없다. 그 유령은 긴 머리카락에 가슴을 풀어헤치고는 사람들을 유혹해서 죽음으로 이끄는 여자 물귀신으로 악명 높은 마우 마(Mau Ma)처럼 훼손된 몸과 늘어진 혀를 가지고 있다. 이웃의 젊은 여자 세 명이 이 공포스러운 환영을 경험했고, 그들 중 한 명은 끝내 그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153-4)




"이 마을은 역사적인 측면에서 〈부역자〉와 〈애국자〉가 뒤섞여 있는 곳이다. 사람들의 회상에 따르면, 이웃이나 친구가 누군가를 배신했다는 소문은 읍내 전체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이는 다시 은밀함과 상호불신을 강화했다. 역설적이게도 전쟁 지도부의 이와 같은 분열 통치전략은 민간인들 사이에 비밀 혁명지원 네트워크가 확장되는 데 기여했다. 민간 활동가들의 정치적·도덕적 동기 이면에는, 전쟁 상황에서 깍 망(cach mang, 혁명적) 네트워크가 유일하게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조직이라는 강력한 인식이 존재했다. 물질적·정신적으로 심각하게 고립되어 있었던 수많은 절망적 베트남인들, 특히 여성들은 인간적 연대의식을 회복하려는 혁명조직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꺼 소 활동가였던 한 여성은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남편은 없어도 살 수 있었다. 친척이 없어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웃이 없이는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이웃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156)




"호랑이 사원의 존재는 그 공동체의 회복력에 기여했다. 부역자 가족에 속하든 애국자 가족에 속하든, 거의 모든 주민들은 그들이 전쟁 동안 그렇게 했던 것처럼 사원의 유지와 의례일정에 참여했다. 사원의 활동, 특히 매년 음력 1월에 열리는 개원식에 대한 주민들의 공헌은 지연이나 혈연이 거의 없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사지절단 랍 같은 사람들도 공동체의 결속력에 기여했다. 그는 혁명 네트워크에 속해서 전쟁을 치렀다. 그는 또한 국가의 편에서 그 정반대의 전쟁을 치렀다. 그의 양극화된 정체성은 하나의 상실된 전체로 융합한다. 그는 애국자 가족의 명시적인 자부심에 공감하면서 부역자 가족의 보이지 않는 낙인에 대해서도 배려해준다. 랍과 같은 사람은 흔히 그 자부심이나 낙인 이면에 말해지지 않은 불확실성의 역사가 숨겨져 있고, 전쟁 중 생애사가 매우 분명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 보통 사람은 아주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164-5)




"사지가 절단된 자는 두 개의 모순적인 현실, 즉 살아 있는 사지의 역사적 현실과 그 부재의 주어진 현실을 동시에 받아들인다. 이 두 종류의 〈사지〉는 절단된 몸의 생생한 현실 속에서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한다. 따라서 부재하는 사지는 과거로 회귀하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의 살아 있는 체화된 기억이 됨으로써 유사현존(quasi-present)한다. 이 인간 신체의 현상학을 확장하면, 사회적 신체의 절단된 부분이 두 개의 모순적인 현실, 즉 살아 있는 전체의 역사적 현실과 상실된 부분의 주어진 현실을 동시에 유지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호랑이 사원 공동체에는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고 온전하게 살아남은 가족이 단 하나도 없다." "만약 (다양한 수준의 사지절단 상처를 입은) 가족이라는 관념을 확대 친족 혹은 친구와 이웃을 포함하는 수준으로 확대한다면, 그 상실과 상처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 분류하기 어렵게 된다. 정치적 정체성은 그 정체성을 보유한 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변화한다."(166-7)




5 객사




"베트남 전쟁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농촌 인구를 생계의 토대와 도덕적 애착의 장소로부터 이탈시켰다. 미국 전쟁의 기획자들은 농촌 주민들에게 도시 슬럼이나 전략촌으로의 강제이주에 저항하도록 부추겼고, 〈조상들의 땅에서 한 자, 한 치도 떠나지 말라〉고 선전했다. 이러한 전면전의 현실에서 객지에서의 죽음은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었고, 따라서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수많은 무명 사망자들의 얕은 무덤을 발견하는 것 또한 흔한 일이었다. 이러한 이탈된 사후의 삶이라는 상황, 즉 한 장소에서는 실종되고 다른 장소에서는 신원불명 혹은 무명으로 남아 있는 상태는 베트남인들이 〈객사(chet duong, 길거리에서의 죽음)〉라는 개념으로 지칭하는 상황이다. 이 개념은 〈집에서의 죽음〉 혹은 〈가정에서의 죽음(chet nha)〉이라는 정반대의 개념과 공존하고, 이들 두 개념이 함께 베트남의 가내 기념의례를 통해 표현되는 집 중심적인 도덕적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다."(179-80)




"아서 울프가 종교적 믿음에 관해 질문을 했을 때 대만의 한 촌락인들은 조상과 유령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그는 〈(의례적 의무의) 연속체 한쪽 끝에 있는 죽음은 진정한 조상이고, 다른쪽 끝에 있는 죽음의 거의 유령이다〉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울프는 또한 마을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죽음에 관한 이 두 가지 개념적으로 상반되는 범주가 상호변환이 가능한 상태임에 주목했다. 그는 후자의 예로 유령 조우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마을 들판에서 유령을 본 한 남자가 그 유령이 들 건너편 마을에 사는 가족의 한 조상 혼령이라고 믿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유령을 본 다음 날이 이 조상의 기일이었고, 그래서 그 유령은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여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 사례 및 여타 관련 사건에 근거해서, 울프는 유령의 변화하는 정체성에 관해 〈한 사람의 조상은 다른 사람의 유령이다〉라는 널리 인용되는 주장을 한다. 즉, 망자의 사회적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라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186)




"울프의 발견을 원용해보면, 유령들은 (의례적으로 조상의 혼령과 통합되어 있는) 사회적 삶의 질서에 대해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라 추방 상태에 있는 현실적 존재의 거울이 된다. 이탈 상태의 삶은 정주 상태의 삶과 다른 방식으로 유령과 관계 맺고, 유령과 인간 사이의 거리 또한 이탈의 역사가 깊어짐에 따라 좁아질 수 있다. 이러한 논지로부터 최근 베트남에서 관찰되는 유령과의 사회적 친밀성에 고유한 역사적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 도출된다. 베트남인들이 망자의 이탈된 혼령과 맺는 친밀한 관계는 그들이 대규모 이탈의 역사와 맺고 있는 친숙한 관계의 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면 담론 현상으로서의 유령이 조상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인들의 자아정체성을 구성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유령의 생생한 존재가 단지 〈조상들의 사회〉와 상징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사회적 자아의 반정립이라기보다 역사적 자아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면, 그들과의 의례적 상호작용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188)




"베트남의 대중적인 노래와 시는 고향에 대한 사랑을 찬미하고 집을 떠난 삶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넘쳐난다. 이들 노래 중 일부는 향수를 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바 매 꾸에(ba me que), 즉 〈고향의 어머니〉를 핵심 상징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대중 동원이 지속되는 장에서, 바 매 꾸에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또 다른 모성이 전쟁의 심리학을 구성했다. 대리모성(surrogate motherhood)은 이 시기 하나의 광범위한 현상이었다. 미국전쟁 당시 하노이의 전쟁계획은 대중적인 지지에 광범위하게 의존했는데, 이는 다시 〈인민의 자식〉 혹은 〈전투원의 어머니〉라는 전략의 성공에 달려 있었다." "군인들이 전투에 나갈 때면 어머니 활동가들은 입양한 자식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했다. 이러한 그들의 기도는 흔히 미국 편인 〈저쪽 편〉에 복무하는 자식들뿐만 아니라 혁명의 편인 〈이쪽 편〉을 위해 싸우는 자식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 어머니들 중에는 싸움의 양측 모두에 친자식이 있는 이들이 많았다."(188-97)




"과거에는 적이었던 이들 사이의 의사친족적 유대는 전쟁 전 기간에 걸쳐 실제 혈연관계만큼이나 강하게 유지되었다. (비밀 혁명 네트워크에서 활동한) 꺼 소 어머니들에게, 젊은 병사들의 성공적인 탈주는 먼 타지에 있는 친자식들이 살아서 고향에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어머니 활동가들이 노심초사하며 수행한 여러 정치활동 중에서도 특히 입양과 탈영 조직을 가장 헌신적이고 정성스럽게 운영했던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이 여성들에게 이러한 활동의 의미는 단지 적의 사기와 도덕성을 약화시키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입양 군인들에 대한 사랑이 미지의 전장에서 싸우는 친자식들이 미지의 어머니들에 의해 어떻게든 사랑받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믿음도 강화했다. 원격적 호혜행위에 관한 이러한 믿음이 헛된 희망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매우 흔했지만, 어떠한 정치적 폭력과 감시도 이러한 희망을 전적으로 파괴시킬 정도로 강력하지는 못했다."(199)




"유령은 사람들이 친숙하고 이상화된 집을 조상들을 위한 기억의 장소와 동일시할 때는 그에 대해 외부자가 된다. 이 맥락에서 조상들을 위한 기억은 그 장소를 계보적 통일성을 위한 배타적인 집으로 전용한다. 반면 사람들이 거주 장소(dwelling place)의 지평에서 단지 일부에 불과한 '계보적으로 제도화된 집'에서 벗어나 보다 광범위한 지평으로 나아갈 때 유령은 내부자가 된다. 유령은 전자에서는 기이한 것(das unheimlich)를 구성하고, 후자에서는 집(Heim)의 혼령을 구성한다. 돈 람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만약 (양방향의 의례적 실천으로 표현되는) 베트남의 혼령숭배 의례가 하나의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체계를 구성한다면, 나는 한편으로 폐쇄적이고 계보적으로 조성된 토착적 장소와 다른 한편으로 속박되지 않고 근본적으로 비계보적인 대안적 장소 및 보다 광범위하고 생성적인 의미의 고향-장소의 평행적 공존이 이러한 민주적인 종교성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주장하고 싶다."(210)




# 베트남의 혼령숭배 의례 : 가내 영역에서는 친족들이 함께 조상의 제단을 향해 절을 한 후, 개별적으로 외부의 제단으로 걸어나가 유령들을 위해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다.




6 유령의 변환




"유령 소금은 베트남인들의 역사적 상상력 속에 이미 구축되어 있는 관념이다. 그들의 가장 오래된 역사적 속담 중 하나가 바로 소금 섭취와 연관되어 있다.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익숙한 역사적 플롯 속에서 조급하게 설명하려고 할 때, 〈조상이 소금을 너무 많이 먹어서 자손들이 목마르다〉고 말한다. 이 플롯에서 진정한 인간의 욕망은 고립된 개인의 욕망이 아니다. 욕망을 느끼는 것은 개인이지만, 욕망의 근원은 영혼의 유령 소금과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에게 있을 수 있다. 바로 이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물을 짜게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억하려는 욕망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어딘가에서 발생하고, 기억하는 자아와 기억되는 타자 사이에 공유되는 무엇일 수 있다." "자아의 불완전한 자율성과 타자의 불완전한 수동성은 모든 형태의 기념의식과 사회적 교환에 내재할 것이다. 유령 소금의 경험은 기억하기의 간주관적(間主觀的, intersubjective)인 속성을 신체적으로 명확하게 만든다."(218-9)




"베트남인들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은 혼(hon)이라는 영적인 영혼과 비어(via)라는 물질적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은 자들의 갈증은 물질적 영혼이 느끼는 물질적인 현상이다." "내가 이해한 베트남인들의 대중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사후에 영적인 영혼은 반드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체성의 특성을 가진다. 마찬가지로 망자의 물질적 영혼은 개별적으로 특수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의례기간 동안 생리 중인 여성의 참여로 인해 초래된 불경에 화를 내는 것으로 알려진 껌레의 고래사원 수호정령은 자신의 분노를 불경을 저지른 외부 방문자가 아니라 무고한 어촌 가족을 익사시키는 형태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 고래의 영적 영혼은 살아 있는 우리가 물질적 영혼을 통해 느끼듯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공동체적이고 물질적으로 생각한다. 한 어촌 공동체의 고래신위에게 물질적 토대는 바로 그 공동체이다."(219-21)




"〈객사〉라는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은 영혼들을 내세의 감옥에 가두어버리고, 산 자들 측에서 그들의 비참한 존재에 대해 기억하지 않으면 이들 역사의 수감자 측에서는 불만의 강도와 양이 증가한다. 이러한 개념적인 도식에서, 산 자들은 행동하지 않음을 통해 망자들이 불만 증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살아 있는 세대가 비극적 죽음의 발생에 반드시 책임이 없을 수도 있지만(〈우연한 사고〉일 수 있다), 그들이 그 죽음을 점점 더 불만스러운 죽음으로 만들기는 쉽다. 이러한 기억 이론에서 트라우마는 망자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인 상처인 것이다. 산 자들이 타자의 육체적 고통에 대해 이러한 윤리적 책임감을 의식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실질적인 행동에 착수할 때 불만족이라는 축적의 경제는 기억이라는 분배의 도덕성에 굴복하게 된다. 망자들의 불만스러운 기억은 오직 산 자들에 의해 인정되고 공유될 때에만 그 트라우마적 효과를 상실하게 된다."(261)




"베트남인들은 유령의 변환을 자이 오안(giai oan), 즉 〈불만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한다. 이는 〈감옥을 열다〉 혹은 〈감옥을 파괴하다〉라는 뜻의 자이 응욱(giai nguc)으로도 표현될 수 있다. 이 관념은 비극적인 죽음의 역사가 망자의 영혼을 죽음의 치명적 드라마에 옭아매고 그것을 죽은 장소에 가두어서 저승에서의 삶에 부정적인 조건을 생성한다는 것이다. 죽음으로의 비극적 혹은 폭력적 이행은 사후에 감금의 상황으로 변화하며, 그 장소에 더 많은 새로운 운명적 수감자를 초래한다." "따라서 불만스러운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쌍방향의 과정이다. 그것은 감옥 개방을 위한 주문 낭송, 그리고 여타 관련된 의례적 행위같이 공감하는 외부자의 개입을 반드시 수반할 뿐만 아니라, 운명의 수감자 스스로가 해방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또한 필요로 한다. 유령 출현은 이러한 자유를 향한 의지가 존재함을 증거하고, 통상 이를 토대로 외부자의 의례적 개입이 이루어진다."(260-2)




7 유령을 위한 돈




"죽음과 부는 다른 많은 문화적 전통에서와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전통에서도 익숙한 조합이다. 베트남 전통 사회에서 부유함을 과시하는 주된 방법 중 하나가 죽음(혹은 결혼)과 관련된 의례를 통해서이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죽음과 관련해서 부를 과시하는 수단은 세 가지, 즉 조상 사당, 가족묘지, 장례식이다. 고인을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은 부의 상징만이 아니었다. 고인의 호사스러움은 가족의 부 그 자체이기도 했다. 클리퍼드 기어츠에 따르면, 의례의 화려함은 〈사회질서의 단순한 반영일 뿐만 아니라 전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유하고 성공했다면 반드시 일반대중이 눈에 그렇게 보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부유함은 대중적으로 인정되는 형태로 과시되어 이웃과 친구들이 그의 부를 보고 평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실제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호사스러운 매장의례와 매장시설은 조상을 부유하게 만들고, 이것이 부유한 자의 위신에 중요한 조건으로 간주된다."(277-9)




"호우 칭-랑에 따르면, 호화로운 죽음이라는 개념은 삶을 은행 대출의 한 유형으로 간주하는 고대적인 관념과 연관되어 있다. 오래된 중국의 믿음에 의하면, 이 세상의 모든 출생은 〈저세상의 금고(the Treasury of the Other World)〉 혹은 〈지옥은행(The Bank of Hell)〉의 대출 승인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은 은행의 대출기록에 상징적으로 대응해서 전개된다. 이론적으로 한 개인은 삶의 조건이 소박할수록, 그리고 세속적 쾌락에 탐닉하지 않을수록 자신의 대출을 더 오랫동안 누릴 수 있다. 만약 그 사람이 대출금을 다 써버리고 사망하면 반드시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데, 이 부담은 통상 현재 도산 상태인 대출자의 자손에게 돌아간다. 그는 실질적이든 상징적이든 재화의 형태로 바치는 사후의 제물과 망자에게 돈을 바치는 연관된 관습이 고대 중국에서 거의 법적으로 의무적인 채무상환(호우에 따르면 〈사법적인 돈)〉 행위였다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279)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의 경제학은 대중적인 수준에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 가지 정치경제학의 혼합이다. 축적과 투자의 이론은 산 자의 세계에 적용된다. 절약은 내가 만난 대부분의 베트남인들에게 1차적이고 근본적인 삶의 기술이자 국가 이데올로기의 중요한 요소였고, 베트남의 국가체제 또한 자본의 축적에 몰두했다." "다른 한편, 망자와 관련된 경제적 영역에서는 자제의 미덕을 보기 힘들었다. 큰 돈은 죽음의 순간부터 흘러들어오기 시작한다." "진짜 재화를 망자와 함께 묻는 봉건 왕실의 매장 관습과 달리, 오늘날의 장례 산업은 그것이 재현하는 부의 아주 일부만 지불해도 되는 장례 제물 창고를 운영한다. 이 산업은 옛 공예인 길드의 한 병형으로 시장개혁 이후 번창해왔다. 이러한 망자를 위한 가상 경제에서는 현실 경제에서 어려운 일이지만 가난한 자가 부자 행세를 할 수 있고,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간의 차이도 현실의 삶에서보다 훨씬 덜 분명해진다."(281-2)




"1990년대에는 의례용 달러(베트남 발음으로 〈돌라Do La〉) 지전이 가내생활에서 익숙한 물건으로 자리잡았다. 이 특별한 봉헌 화폐의 기원에 관한 토착적 설명방식은 다양했다. 필자의 정보제공자 중 한 명은 일반적 교환 이론과 흡사한 설명을 제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면서, 말하자면 덜 가난해지면서, 빈곤과 폭력 외에는 경험해본 적이 없는 망자들과 자신의 부를 나누어 갖기를 소망한다. 미국 돈인가 베트남 돈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망자들이 우리 돈을 받을 수 있든 없든,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 있는 것, 즉 우리의 동기와 좋은 기분, 그것이 근본적인 문제이다〉. 전쟁기간 동안 당 간부였던 이 남성에게 돈의 이면에 숨겨진 것은 나눔과 분배의 욕구이다. 혁명의 역사를 이렇게 우아하게 묘사하는 사람에게 이 공유의 욕구는 코코넛 나무가 코코넛을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본질이다."(286-7)




"돌라 지전은 1990년대 말까지 베트남인들의 기념의례 경관에서 완전히 익숙한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돌라 지전의 번성을 신, 조상, 유령이라는 위계적 관념에 불확실성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생각해보자. 의례적 화려함을 (전시에 관한 정치학이 아니라) 전시(展示)의 정치학으로 해석하는 것, 그리고 상징적 권력이라는 연관된 개념을 돌이켜 보도록 하자. 나는 전통적인 질서 내에서 베트남의 의례용 화폐가 옹 바(신과 조상) 대 꼬박(유령)의 도덕적인 상징적 위계를 확정하는 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전에는 돈이 위계적이고 동심원적인 질서를 지배했던 것처럼, 이제는 돈이 이 질서를 교란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돌라 의례용 화폐는 위계적으로 제도화된 가치의 영역들을 포괄하고,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던 이들 영역을 하나의 단일한 개념적 통일체로 통합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의례용 지전의 달러화가 함축하는 의미 하나가 명백해진다. 즉 달러화는 의례용 지전을 화폐화한다."(304-5)




"전통적인 의례용 화폐의 운동을 한정했던 눈에 띄지 않는 (전환불가능하고 내생적인) 가치의 영역들이 이제는 돌라의 초(超)영역적 순환에 취약한 상태에 처해 있다. 돌라는 내세의 재정경제를 단순화하고 다중심적 체계를 확장된 단일 영역으로 통합시켜왔다. 한편으로 기성의 신, 혹은 계보적으로 연결된 조상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연고 없이 길거리에서 떠도는 주변적인 유령 사이의 차이는 불타는 돌라 화폐의 힘과 인기에 비례해서 점점 더 주변화되어가고 있다. 달러화는 이러한 범주들 사이의 전통적인 위계를 붕괴시키고 엄(am, 저승) 세계 내 그들의 정치적 관계를 민주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 화폐는 주변적인 유령들과 의례조직의 중앙에 위치하는 의례적으로 수용된 조상 및 기성 신위들을 차별하지 않는다. 이들 주변적인 유령은 거리에서 많은 돈을 벌고, 그들이 번 돈은 초자연적인 세계에서 다른 보다 지위가 높은 사회 계급과 권력경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전환 가능한 통화이다."(305-6)




결론




"죽음의 재현에 존재하는 이중의 종교적 상징주의에 관한 고전적인 논문에서, 로버트 허츠는 어떻게 사회가 오른손과 왼손 그리고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같이 명백하게 동일한 상징에 기초해서 개념적인 도덕적 위서체계를 구성하는지를 탐구했다. 그는 왜 유럽의 언어를 위시한 여러 언어들에서 오른편이 힘, 능란함, 신뢰, 법과 순수성─여기에는 허츠가 인용하는 민족지 자료에서 의례적·은유적으로 오른손과 연결되는 〈좋은 죽음〉이 포함된다─등 긍정적인 가치들을 재현하는 반면, 왼쪽은 이에 반대되는 모든 가치와 불길한 의미들─이는 그 〈불안하고 악의적인 영혼〉에 대해 사회가 배제의 태도를 견지한다고 여겨지는 〈나쁜 죽음〉을 포함한다─을 상징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허츠는 왼손과 오른손의 상징적 대조를 생정치적(bio-political) 현상, 즉 사회가 〈도덕적 세계의 가치 대립과 폭력적인 대조〉를 각인하는 인간 신체의 조건으로 개념화하였다."(316-7)




"허츠는 좌와 우의 반정립이 보완적인 양극성임과 동시에 비대칭적인 관계라고 보았는데, 전자는 이중적 인간(homo duplex)의 자연적인 조건이고 후자는 집합적이고 위계적인 규범을 개인의 몸에 부과함으로써 비롯된다. 더욱이 그는 상징적 양극성이 원시 사회 혹은 평등주의 사회에서는 〈역전될 수 있는 이원성〉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이들 사회가 산 자의 삶과 관련해서 고정된 도덕적 위계를 가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망자의 삶에 관해서도 그러한 개념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징적 역전성(reversibility)의 이러한 측면은 왜 평등주의 사회에서의 죽음의례(혹은 그것의 부재)가 위계적인 사회의 관찰에 입각해 있는 도덕적 위계와 상징적 정복의 이론에 충격적일 정도로 부합하지 않아 보이는가를 설명한다." "허츠는 사회적 진보에서 양능적 인간 신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양능적 인간 신체는 우파와 좌파라는 도덕적인 상징적 위계로부터 자유로운 민주적인 사회적 신체를 표상한다."(317-8)




"(냉전을 단순한 전쟁 억제가 아니라 폭력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으로서 경험한) 베트남의 수많은 개인과 가족들은 친족 관계가 있는 전몰자를 기억해야 하는 가족의 의무와 혁명국가에 대항해서 싸웠던 사람들을 기억하지 말아야 하는 정치적 의무 사이에서 고뇌해왔다. 오늘날 이들 가족은 지금까지 〈저편(ben kia, 미국 편)〉으로 오명화된 조상의 기억을 위해 적절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고심하고 있고, 따라서 이 기억을 가족과 공동체의 의례공간 내에 있는 〈이편(bent ta, 혁명의 편)〉의 죽음에 대한 기억과 함께 명시적으로 공존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혁명전쟁의 반대편에서 죽은 형제의 혼령을 가내 의례로 초대하는 행위는 도덕적임과 동시에 정치적인 실천이다. 그것은 그 행위가 국가의 기억의 정치학에 내재하는 죽음의 거대한 도덕적 위계에 반작용하는 한에서, 그리고 아렌트가 〈정치적 고향을 가질 권리〉로 묘사한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이다."(321)




"보다 넓은 맥락에서 보면, 우리는 대규모 죽음의 역사에 대한 고려 없이 좌우의 역사를 생각할 수 없다. 좌와 우는 민족해방과 민족자결이라는 이상을 향해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양자 모두 반식민적 민족주의의 일부였다. 이어진 양극 시대에 이와 같은 민족주의는 민족적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상대편을 정치적 통일체로부터 절멸시키는 것을 의미하게 된 내적 분쟁과 전쟁의 이데올로기로 변환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좌와 우의 정치적 역사는 인간적 삶의 역사 및 그것에 의해 분열된 사회제도로부터 분리해서 고려할 수 없으며, 냉전 이후의 〈새로운 친족〉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역사 속에서 사망한 유해의 기억으로부터 분리해서 고려할 수 없다." "1990년대 초 이래 베트남에서 발생한 일들은 이러한 화해의 희망적인 궤적을 따라 이루어졌고, 망자를 기억하고 달랠 수 있는 권리의 강화는 좌우를 초월한 이와 같은 중요한 사회적 진보에 중심적인 요소였다."(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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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22-10-04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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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왓슨-사노 요코-권헌익



날짜로는 아직 열흘을 남겨놓고 있지만 날씨는 여름으로 진입한 것 같다. 대출도서를 반납하러 반바지를 입고 도서관에 다녀왔다. 오는 길에 아이스커피 한잔 마시고.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차례대로 무거운 책, 가벼운 책, 진중한 책을 펴낸 저자 3인이다.







먼저 이제는 언론인이라기보다는 지성사가라고 해야 옳을 피터 왓슨. 지난해 말부터 육중한 그의 저작이 연이어 소개되고 있는데(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우연의 일치인가?) <저먼 지니어스>와 <거대한 단절>에 이어서 이번주에 나온 건 <무신론자의 시대>(책과함께, 2016)다. 제목과 부제 '신의 죽음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왔는가' 모두 묵직하다. 분량도 832쪽.


"신의 죽음을 선언한 니체 직후 세대부터 현재까지 130년 동안 펼쳐진 거대한 문화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연대기적으로 조망하는 책이다. 문학에서 미술, 철학, 심리학과 정치운동, 세계대전과 극예술과 대중문화까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사이를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연결하여 인간과 그 사상의 전개에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독자들을 위해 또 한 편의 작품을 완성했다."

저널리스트에서 역사가 내지 지성사가로 변신한 점에서는 폴 존슨을 떠올리게 한다(폴 존슨이 1928년생이고 피터 왓슨은 1943년생). 아무튼 지성사가 관심분야의 하나인 만큼 나로선 꼬박꼬박 원서까지 챙겨놓게 된다. 분량상 언제 다 읽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더라도. "박학다식한 저자 피터 왓슨은 과학부터 시, 철학, 뉴에이지 '심령주의'와 테라피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비종교적 사상의 역사에 질서를 부여하여, 니체로부터 윌리엄 제임스, 밥 딜런, 심지어 재즈 사이의 동떨어진 지점들을 연결해나간다"고 하니까 <무신론자의 시대>부터 손에 들어야겠다.







요네하라 마리 이후 우리의 또다른 '여사님'이 된 사노 요코의 책도 한권이 더 보태졌다. <자식이 뭐라고>(마음산책, 2016).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는 게 뭐라고> 이후, <죽는 게 뭐라고>까지 포함하면 '뭐라고 3부작'이다. 일어판이 실제로 그렇게 묶이진 않았지만, 여하튼 우리에겐 그렇다. <자식이 뭐라고>는 '거침없는 작가의 천방지축 아들 관찰기'가 부제.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를 남편으로 두었던 사노 요코. <자식이 뭐라고>는 작가가 아들 몰래 틈틈이 써둔 독특한 육아 기록이다." 분량은 124쪽으로 정말 가벼운 책. 삶과 죽음은 물론 자식 고민도 덜어주는 이가 사노 요코 여사다.







듣자 하니 사노 요코의 책은 100여 권이 넘는다 한다. 대다수가 그림책이라지만 추세로 보아 이런 류의 산문집은 대부분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얼마전에 나온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을유문화사, 2016)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걸 보아 그렇다. 절판된 책 가운데 <나의 엄마 시즈코상>(이레, 2010)이나 <하나님도 부처님도 없다>(눈과마음, 2005) 같은 책만 하더라도 다시 소개됨직하지 않은가. 너무 앞질러 나온 탓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구나 싶다. 참, 타이밍이 뭐라고.







인류학자로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권헌익 교수의 책이 한권 더 번역돼 나왔다. '진중한 책'이라고 분류한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산지니, 2016)이다. 기어츠 상 수상작인 <학살, 그 이후>(아카이브, 2012)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책이 아닌가 한다.


"동남아시아 연구서에 주어지는 ‘조지 카힌 상’ 1회 수상작. 권헌익 교수는 냉전 시대 베트남에서 발생한 잔혹한 폭력과 대규모 죽음의 비극적인 역사를 인류학자의 치밀하면서도 따뜻한 인간적 시선으로 조명해왔다. 1980년대의 경제개혁 이후 베트남 사회에서 뚜렷한 문화현상으로 부각된 전쟁유령에 관한 의례에 초점을 맞추어 베트남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과 기념행위가 갖는 사회적, 정치경제적, 종교적 함의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처음 소개된 <학살, 그 이후> 이후에 <극장국가 북한>(창비, 2013), <또 하나의 냉전>(민음사, 2013)이 차례로 나왔지만 <또 하나의 냉전>은 품절 상태다. 학술서로 분류되지만 이런 진중한 책들도 좀 읽혔으면 싶다....



16.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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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6-05-21 공감 (5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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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전쟁 기획자들



전쟁과 전쟁사와 관련한 묵직한 책들이 나왔다(봄마다 그랬던가?). 먼저, 티모시 스나이더의 대작 <피에 젖은 땅>(글항아리).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유럽'의 부제다. 몇 년 전에 나온 <블랙 어스>(열린책들)와 짝을 이룰 만한 책.






















































"스나이더는 영어, 독일어, 이디시어,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폴란드어, 벨라루스어, 우크라이나어, 러시아어, 프랑스어로 쓰인 자료를 섭렵하며 16개 기록보관소를 뒤져 이차대전사의 전모를 그려냈다."




2차세계대전과 관련해서는 엄청난 양의 책들이 그간에 쓰였음에도 아직도 '대작'이 나온다는 사실에 놀랄 따름이다(네버엔딩인 것인가?). 2차세계대전과 관련해서는 게르하르트 와인버그의 <제2차세계대전>(교유서가)가 '가장 짧은 입문서'다.




















































와인버그는 긴 버전의 책도 썼는데, 현재는 절판된 상태다.




















































또다른 책은 도니 글룩스타인의 <2차세계대전의 민중사>(오월의봄)다. 저자는 영국 역사학자로, 좌파 활동가로 유명한 토니 클리프의 아들이라고(두 사람의 공저가 몇 권 소개되었다). 민중의 시각으로 2차세계대전을 해석한 '드문' 책이다. 그리고 훨씬 넓은 시야에서 2차세계대전을 바라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한다는 점과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의 역사가 풍부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합국과 추축국 진영 사이에 끼여 있던 국가들(그리스,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라트비아), 연합국 진영의 국가들(프랑스, 영국, 미국), 추축국 진영의 국가들(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그리고 아시아 국가들(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역사가 모두 14개 장에 소개되어 있다."




















































더불어 눈여겨볼 책은 국제 무기시장을 다룬 앤드루 파인스타인의 대작 <어둠의 세계>(오월의봄)이다.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이 부제('전쟁 기획자들'의란 제목의 책은 앞서 나왔었다. 개정판까지 나온 서영교 교수의 책이다).




"세계 무기산업을 20년 이상 파헤친 저자 앤드루 파인스타인이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을 폭로한다. 1차대전 전후부터 현재까지,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대륙까지 방대한 자료를 아우르며 전쟁이 ‘산업’이 된 역사를 되짚고, 이 산업에 뛰어든 수많은 인물들을 소환하며 고발한다."




현대의 전쟁을 말하려면 필히 참고해야 하는 책이다.




















































끝으로, 한겨레신문 고경태 기자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책을 다시 펴냈다.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한겨레출판). '베트남 퐁니·퐁녓 학살 그리고 세계'가 부제다.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은 <1968년 2월 12일>의 전면개정판으로 1968년 2월 12일에 일어난 퐁니ㆍ퐁녓 마을 학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1968년 2월 12일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세밀화처럼 그려내려고 한 저자의 시도는, 피해자의 증언을 꼼꼼히 담는 인터뷰 작업에 그치지 않고 1968년 2월 12일을 통과한 세계사의 주요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베트남 전쟁 관련으로 먼저 떠오르는 책은 박태균 교수의 <베트남 전쟁>인데 절판되었다(개정판이 나오는 것인가?). 그밖에도 다수의 책이 나와 있다.




개인적으로는 올 하반기에 동남아문학 강의를 진행할 계획인데, 베트남 현대문학을 다룬면서 자연스레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짚어볼 예정이다. 관련도서들을 챙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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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1-03-07 공감 (3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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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책시렁 175 Reflections on the wall



숲노래 빛꽃 / 사진비평 2025.6.4.

사진책시렁 175




《Reflections on the wall : the Vietnam Veterans Memorial》

Smithonian Institution

Stackpole Books

1987.







밑뜻을 안 짚는 채 ‘영웅(英雄)’ 같은 한자말을 아무렇게나 쓰는 이 나라이고, ‘영웅·영웅호걸’ 같은 이름에 얽매이거나 휘둘리는 우리 삶입니다. 한자 ‘영(英)’은 새김뜻이 ‘꽃부리’이되 ‘초(艸) + 앙(央)’이고, ‘앙(央)’은 “갇힌 사람”을 가리킵니다. 우리말로 보아도 ‘가운데’는 ‘가두다’로 뻗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빛나기에 가운데일 수 있되, 스스로 어둡기에 갇히는 가운데일 수 있습니다. 《Reflections on the wall : the Vietnam Veterans Memorial》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을 북돋우려는 꾸러미입니다. “베트남에서 목숨을 바쳐 싸우면서 나라(미국)와 뜻(자유민주)을 지킨 거룩한 사람(영웅)”을 추켜세우려는 뜻을 한껏 담아요. 이 꾸러미 어디에도 ‘베트남싸움’을 누가 왜 일으켰고, 멀쩡한 베트남사람을 누가 왜 죽이려 했고, 어떻게 죽였는지 아예 안 다룹니다. 또한, 애먼 나라로 가서 “돈을 버는 직업군인”으로 뛰다가 몸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어떻게 몸앓이와 마음앓이로 시달리는가 하는 대목도 안 다룹니다.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를 돌아볼까요? 우리는 1950년 한겨레싸움을 누가 어떤 눈으로 다루는지 쳐다볼 노릇입니다. 그 뒤 2025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스스로 “저놈과 이쪽”으로 가르는 쌈박질을 이어온 민낯을 들여다볼 일이에요. 모든 싸움은 나라가 시키되, 우리가 나서기에 일어나고야 맙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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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5-06-04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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