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6

인간에 대하여 | 마광수 | 알라딘 2017

[전자책] 인간에 대하여 | 마광수 | 알라딘
인간에 대하여  마광수 (지은이)  어문학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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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 마광수

책소개

마광수 에세이. 이 책은 '인간'이라는 추상성과 허구성, 위선적 통념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 마광수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이 새로운 '인간 읽기'를 위해 저자는 동서양의 역사서와 철학서를 두루 섭렵했으며, 원론적 고찰을 통해 자신의 논리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렸다.



목차
서시(序詩)
1.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2.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3.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4.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
5. 인간은 ‘역사’에 기댈 수 없다
6. 인간의 이성은 선천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다
7. 인간만이 성적(性的) 죄의식에 시달린다
8. 인간은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행복감밖에 느낄 수 없다
9. 인간은 법에 짓눌려 산다
10. 인간은 상징의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다
11. 인간은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12. 광신은 인간의 천적(天敵)이다
13. 인간의 청소년기는 ‘지옥’이다
14. 인간은 ‘문자’의 굴레 속에 있다
15. 인간은 ‘고난’을 즐기는 이상한 동물이다
16. 인간의 미의식은 ‘자궁회귀본능’에서 나온다
17. 인간은 애써 예술과 외설을 구분지으려 한다
18. 인간은 ‘실존적 인식’을 통해 거듭날 수 있다
19. ‘놀이 정신’만이 인류를 구원한다
20. ‘야한 사랑’만이 인간을 평화롭게 한다
21. 인간은 관능적 상상력을 통해 고통과 권태를 극복할 수 있다
22. ‘몸의 상품화’는 인간해방을 돕는다
23. 인류의 미래는 밝을 수도 있다
24. 미래의 성(性)운 여성이 주도한다
25. 죽음에 대하여
에필로그 : 에로스를 옹호함

=====
책속에서

내가 보기에 인간과 동물은 본질적으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다만 삶의 양태와 방식이 다를 뿐, 먹고 자고 생식하고 죽는 것은 매한가지다. 다만 인간에게 다른 것이 있다면 명예욕과 지배욕이 동물보다 한결 강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가 보기엔 생식욕(즉 성욕)의 또 다른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에겐 없는 성에 대한 죄의식과 수치심 같은 것이 인간에게만 있어, 타고난 자연적 성욕을 명예욕과 지배욕으로 대체하여 안쓰러운 대리 충족감을 맛보는 것이 바로 인간인 것이다. (……)

인류는 지금 대단히 중요한 일이 재발견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즉 본체 또는 실재의 세계에는 지금껏 생각해 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진실은 다른 연구방법과 다른 표현방식을 요구한다는 것을 인류는 차츰 깨달아가고 있다. 실재의 세계는 수리과학적 언어로는 터득되지 않는다. 이런 한계적 상황에 대한 통찰이야말로, 상징의 문제를 더욱 중요하게 인식하도록 하는 가장 적극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접기

사과 한 알을 훔치면 도둑이 되고, 나라를 훔치면 왕이 된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범이 되고, 수만 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 그러니 ‘훔친다‘는 것과 ‘죽인다‘는 것이 진짜 죄라는 근거가 무엇인가? - 총총

인류는 종교의 차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이나 민족의 차이로 인한 군사력 경쟁이나 문화 경쟁이 정말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시급히 깨달아야 한다. - 총총



저자 및 역자소개
마광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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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77년 『현대문학』에 시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등 6편의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데뷔
2017년 9월 5일 타계

주요 작품

-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 『시학』,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 정신』, 『마광수 문학론집』 외

- 시집
『가자... 더보기

최근작 :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머리를 집어 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 버렸는가?>,<추억마저 지우랴>,<마광수 시선> … 총 9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마광수 교수가 한국 최초로 시도하는
‘몸 중심의 인간’ 에 대한 본격 담론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놀이 정신’만이 인류를 구원한다

이 책은 ‘인간’이라는 추상성과 허구성, 위선적 통념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 마광수 교수의 이와 같은 주장은 인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를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이 새로운 ‘인간 읽기’를 위해 저자는 동서양의 역사서와 철학서를 두루 섭렵했으며, 원론적 고찰을 통해 자신의 논리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렸다.

기존의 현학적인 인간관을 송두리째 뒤집는 마광수식 인간 읽기

마광수는 이성과 정신에 기울어 있던 가치 중심을 육체 쪽으로 두자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몸의 상품화’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한다. “정신이나 지식의 상품화는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몸의 상품화를 부정하는 것은 모순이다. 몸의 상품화는 인간을 정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인간 해방을 돕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마광수가 한국 최초로 시도하는 ‘몸 중심의 인간’에 대한 본격 담론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적(知的) 시야를 조금씩 넓혀가게 되고, 인간과 성(性)에 대한 새로운 생각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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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광수하면 대중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 너무 올드하다, 음란하다 등등...
하지만 그건 모두 선입견이다. 인간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고 그 실체를 보여주는 훌륭한 책이다. 마광수 책은 왠만하면 읽어볼만 하다. 글 또한 쉽게 써 무척 마음에 든다.
바다7 2016-05-1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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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주제와 내용의 책을 너무 많이 썼어요.
읽을만한 것도 간혹 있어요.
madwife 2023-08-1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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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이나 연산군이 정말로 폭군이었나?.. 국사교과서 국정화,역사왜곡만행 철회하라!.. 인간에 대하여...

"광해군이나 연산군이 정말로 잔인무도한 폭군이었으며
사도세자는 과연 정신이상자였을까?

또 궁예는 정말 미친 놈이었고
신돈도 정밀 지독한 색골 요승이었을까?

하긴 미친 놈이든 아니든 역사책에 기록이라도 됐으니
그래도 그들은 일반 민중보다는 낫다.

민중들은 언제나 대의 명분을 위한 엑스트라로 희생됐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었다..."

나는 마광수교수님께서 저술하시고 <어문학사>에서 펴낸 이책
<인간에 대하여>를 꼼꼼히 읽어보다가 윗글을 읽고 <아 정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따라서, 패자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역사책에서 알고있는 내용들이 다 바뀌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바로 그걸 느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는 문제점이 많다.



먼저, 백제가 패망하자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뛰어내려

죽었다던데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요, 역사왜곡이요,

신라입장의 기만적 역사기술이요, 거짓의 역사라는건

지나가던 개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는 첫째, 그당시 사비성의 인구분포로 보아 10대 후반에서

20~30대의 궁녀들이 3천명이상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극히 적었다는 것이다.

둘째, 사비성의 궁터를 보라!

어디에 3천명 궁녀들에다가 신하들이 살 수 있을 정도로

궁터가 넓은가!

삼천명의 궁녀들이 궁안에 있었다면 서로 앉아있을 자리도 없을

정도로 비좁아 터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3천궁녀 얘기가 사실이 아닌 새빨간 거짓인데도

지금까지도 회자되고있는가!



그것은 일제 식민지시대때 구전으로 3천궁녀 어쩌구 저쩌구하며

민간에서 떠돌던 이야기들이 나중에 기정사실화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있지도않았던 낭설이 기정사실화되다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짓의 역사는 똑바로 바로 잡아야한다.



글고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는 엄연히 신라의 입장에서 지어진

역사서이기에 200% 신라에만 유리한 이야기들만 썼다는건 지나가는

강아지도 다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은 역사서로서 삼국사기를 그리 높게 쳐주지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그내용들을 다 믿지않는다고 한다.



일례로 의자왕은 방탕했던 왕이 아니라 성군이었다고 한다.

의자왕이 방탕했다는 것은 오로지 침략했던 신라의 입장에서

모략과 침소봉대한 거짓의 역사였다고 한다.



즉,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갈때에 백제백성들이 멀리까지 가서

배웅까지했다고 한다. 의자왕도 눈물을 흘리며 백성들과 작별을

했다고 한다. 이는 의자왕이 방탕에 쩔은 왕이었다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



이책을 읽다가 문득 요즘 박근혜와 새누리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라는 간악한 흉계를 다시금 상기하게되었다.



박근혜는 아버지인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을 미화시키고

친일파들의 만행축소, 독립운동가들의 활약 축소, 한국 근현대사는

간략하게 고대사는 늘리는 만행을 저지르고있다.



차라리 하늘을 가려라!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글고 이를 추종하는

뉴라이트와 어버이연합 등 쫄다구들 너희들 가슴을 겨누는 비수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사교과서 국정화,역사왜곡만행 철회하라!



그런 면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 당이 5월 30일 새로운 20대

국회가 개원되었기에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속히 백지화시켜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아무튼 이책 <인간에 대하여>를 통해 지나간 왜곡된 역사들도

다시금 되새겨보게한 참으로 의미깊은 훌륭한 책이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


나는 마광수교수님께서 저술하시고 <어문학사>에서 펴낸 이책

<인간에 대하여>를 찬찬히 읽어보다가 문득 내가 예전에 접했던

마교수님의 대표적 에세이, 시집, 소설 등이 생각나 몇작품을

떠올려보았다.


사실 그당시엔 우리 사회가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체통과 품위를

지키지못하고 저속하고 적나라한 작품들을 발표한다고 비난이

거셌고 마교수님은 강의를 할 수 없게된 경우도 계셨다.



또한, 심지어는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때문에 구속되기도 하여

실형을 산적도 있으셨다.


그런데, 나는 그당시에 마광수교수님의 시민상대 특강을 직접 들은

적이 있었는데 특강을 듣고보니 마광수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의도를 잘알 수 있게되었다...




그러던차에 마광수교수님께서 한국 최초로 시도하는 ‘몸 중심의

인간’ 에 대한 본격 담론인 <인간에 대하여>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걸 전제로 446쪽에 걸쳐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이에 나는 아주 흥미롭게 잘읽었다...^^*



이책에서 마교수님께서는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않으며 인간을

정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인간해방을 돕는 <몸의 상품화>에

이어 한국최초로 <몸중심의 인간>이 바람직하고 현실적이라며

그 중요성을 역설하고 계시는데 일견 공감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따라서, 이책은 마광수교수님의 팬들은 물론이고 문학, 역사,

사회부문에 걸쳐 마교수님의 광활한 지식세계로 푹빠지고싶으신

분들이시라면 꼭한번 읽어보실 것을 권유드리고싶다...



시원했다...

통쾌했다...
재미있었다...

나는 간만에 마광수교수님의 최근작인 이책 <인간에 대하여>를
읽고 위와같은 느낌들을 받았다...

아 또 기다려진다...
마광수교수님의 다음 작품이... 다음 책이...

또 어떤 책으로 지적 유희에다가 사회를 보는 새로운 눈을
심어주실지 넘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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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가 2016-06-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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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하여

마광수의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그의 초창기 소설 <가자, 장미여관으로>,<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즐거운 사라> 가 출간 금지가 되고 구속 되었을 당시만 하여도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했을 뿐이다. 그당시 다양한 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마광수의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으며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언론과 법에 의해 마광수의 작품들은 아웃사이더로서 배척당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의 생각과 가치관은 시대를 앞서 나갔던 것이며 지금으로 말하면 혁신이다. 다만 세상은 그의 생각과 가치관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마광수 스스로 <인간에 대하여>에서 세상의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서 자신이 고통받아야 햇던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 모습에 공감이 갔다.




<인간에 대하여>은 마광수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며,그의 생각과 가치관이 쓰여져 있다.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확인해 보는 과정과 마광수 스스로의 생각과 가치관에 대해 탐구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존의 학교에서 배웠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를 부정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동물로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답을 찾아가고 있다.




마광수는 인간이 만든 사회라는 개념은 인공적인 요소로서 인간이 한곳에 정착하면서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틀이며, 처음부터 인간에게 사회라는 개념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인간에게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짓기 위한 도구로서 언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며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기존의 동물과 다를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죽을 때까지 마흔 다섯개의 단어만 알았던 늑대소녀 가바라가 대표적이며, 책에는 없지만 신비한 서프라이즈에서 늑대소녀 가바라와 같은 동물과 같은 형태의 인간의 모습에 대해 소개되었기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그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짓은 것에 대해 거부하고 있는 이유는 그 스스로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고통을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그가 소설 작품을 써내려 가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출간 했을 뿐인데 그는 기존의 법과 제도로 인하여 자신이 추구하였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금지되었으며 결국 구속되었다. 그럼으로서 그는 사회적 인간의 모습이 아닌 개인적 인간을 기준으로 그에 부합하는 증거들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그렇게 해야 자신의 그동안 해왔던 작품들이 세상 속에서 재해석되고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생각과 가치관 속에서 모든 것이 틀렸다고 할 수 없으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신이 지향하고자 하는 것..즉 기존의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틀에 대해 순응하는 것보다는 맞서고 저항하는 것을 해왔으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요소인 성욕에 대해서 다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사회라는 틀에 갇혀서 법과 제도를 이용하여 금지와 통제를 함으로서 권력을 가지려고 인간이 존재하게 되고, 인간의 이성 안에 감추어진 도덕과 파멸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에 관한 본질을 찾아가는 마광수의 에세이 안에는 그의 그동안의 작품 세계를 간략하게 엿볼 수 있으며 여전히 세상의 부조리함과 모순에 대해 싸우고 있는 마광수의 모습 또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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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6-06-08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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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이고 에피쿠로스적인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광수의 책을 접한건 이번이 처음이다만,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해당 저서의 기저에는 마광수의 강박적 피해의식이 짙게 드러난다. 마광수가 ‘인간에 대하여’를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은 지극히 본질적이다. 이를테면, 인간 개인의 자유가 최대화 되어야하며, 인간의 본능적인 에로스 역시 억압되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들 말이다.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었다만, 중간 중간 본인의 주장에 본인이 스스로 반대하는 듯한 모순적인 부분들도 드러나 있다.

마광수는 종교적 예시를 많이 인용한다. 중세적 기독교적 가치관이 인간의 자유를 탄압했다며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오늘 날에도 여전히 종교가 선택이 되지 못하고 필연이 되는 국가들도 존재하니 말이다. 전쟁의 상당수는 종교적 이념의 갈등에서 출발한다. 그는 전쟁 역시도 인간이 즐기는 하나의 유희이자 놀이라고 이야기한다. 제아무리 놀이라고는 하나, 전쟁은 죽음을 부르고 죽음은 더 많은 인간을 종교로 귀의시킨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교는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마광수는 도덕적 금욕주의를 멀리하고, 실증주의적이고 육체주의적 태도를 취한다. 그 편이 ‘인간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허나, 넓은 의미에서 금욕주의에 대한 선택 역시 결국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방향인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에게 있어 현재의 세상은 가장 최선의 세계인 셈이다. 그는 본질을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 중세시대의 종교와 현대의 종교는 논리적 층위가 많이 다르다. (오늘날의 종교가 번영한 이유 역시, 인간의 본성인 기복신앙적 요소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존주의 대한 예시를 들며, 실존주의적 태도를 제법 옹호하는 듯이 보인다. 실존주의는 분명 무엇보다 본질적이다. 하지만 그 본질을 깊이 응시하다 보면 인간은 금방 늙어 버리고 만다. 그 본질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을 책임져주지도,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주지도 않는다. 본질은 삶 자체를 돌보지 못하게 만든다. 실존주의가 ‘심연으로의 추락’을 필요로 한다고 전제한다면, 나는 이를 정면으로 거부할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며 고통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굳이 심연의 밑바닥까지 핥고 올 필요까진 없는 것이다. 피할 수 있는 고통이 있다면 되도록 피하는 편이 좋다. 니체가 말하길,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의 고통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니 인간이라면 본인의 감정과 관념을 소중히 돌볼 필요가 있다. (반드시 에로스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실존적 세계가 아니라 현실적 세계에 발 담그고 있을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 편이 안전할 테니까.

성에 대해 외면하기보다는 직면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잘못된 성적 가치관을 가지기보다는 제대로된 교육을 통해 성에 대해 관대하고 안전한 울타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나 성에 대해 봉건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종합적으로 마광수의 ‘인간에 대하여’는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이다. 글 중간중간 다양한 예시를 들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지루하지 않았다. (물론 그 예시가 주제와 좀 엇나가는 듯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쉬웠던 점은, 그의 주장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사실이다. 본인 역시 그러한 부분을 캐치하고 있는 듯 하지만서도, 본인의 이상을 실천해나갈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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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 2025-08-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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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광수의 에세이 <인간에 대하여>는 인류가 오랜 세월 구축해 온 '인간'이라는 존재의 추상성, 허구성, 그리고 위선적 통념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고등하다거나 역사가 진보한다는 식의 근대적 낙관론을 전면 거부하며,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1. 탈(脫)문명주의와 동물로서의 인간

저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라며 독자적인 개인의 실존을 억압하는 집단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고 선언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이성 역시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인류 중심주의에 대한 거부다. 그는 인간의 역사가 결코 발전하지 않았으며 역사나 문자에 기대어 인간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도리어 인간을 굴레에 가두는 행위라고 본다.

2. 도덕적 억압과 육체적 실존

책은 법, 제도, 그리고 상징의 울타리가 인간을 어떻게 짓누르고 있는지 폭로한다. 특히 인간만이 유독 '성적 죄의식'에 시달린다는 점을 지적하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진짜 행복은 오직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행복감"뿐이라고 강조한다. 예술과 외설을 억지로 구분 지으려는 태도나 고난을 예찬하는 엄숙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왜곡하는 위선에 불과하다. 저자는 인간의 미의식조차 가장 원초적인 '자궁회귀본능'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한다.

3. '놀이와 에로스'를 통한 인류의 구원

마광수가 제시하는 구원의 열쇠는 문명적 억압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인간은 법과 관습에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실존적 인식을 통해 거듭나야 한다. 인간을 구원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것은 고고한 도덕이 아니라 '놀이 정신'과 '야한 사랑'이다. 관능적 상상력만이 인간의 근원적 고통과 권태를 극복하게 해주며, '몸의 상품화' 역시 도리어 위선적 엄숙주의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는 미래의 성은 여성이 주도할 것이며, 이러한 에로스의 옹호를 통해 인류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평론

1. 인류 중심주의의 성채를 허무는 반역의 철학

<인간에 대하여>는 마광수가 평생을 거쳐 투쟁해 온 '야한 정신'과 '육체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집대성한 에세이다. 그간 그의 주장이 단편적인 성(性) 담론이나 문학적 스캔들로 치부되었다면, 이 책은 동서양의 철학적·역사적 맥락을 두루 섭렵하여 자신의 논리를 체계화하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지 않다"는 선언은 다윈의 진화론적 성찰을 넘어, 정신을 육체보다 우위에 두어 온 서구의 이성 중심주의와 유교적 명분론에 대한 강력한 사상적 폭탄 투하다.

2. 가식의 해체와 실존적 해방의 메시지

이 에세이의 가장 큰 미덕은 인간이 스스로를 미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온갖 '우상'들을 사정없이 깨부순다는 점에 있다. 역사, 이성, 법, 문자 등 인간을 지배해 온 거대 서사들이 사실은 인간을 억압하는 굴레에 불과하다는 지적은 통렬하다. 저자는 인간을 사회적 거대 담론에서 분리해 내어 오직 '몸'과 '순간의 행복'을 지닌 단독적 실존으로 되돌려 놓는다.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카뮈적 선언과 "놀이 정신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호이징하적 관점은, 엄숙주의라는 감옥에 갇힌 한국 사회에 신선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3. 극단적 환원주의와 문명 인식의 평면성

그러나 이 책의 도발적인 논지들은 때로 지나친 환원주의로 흐르는 한계를 보인다. 인간의 미의식을 오직 '자궁회귀본능'으로만 설명하거나, 인간 사회의 복잡한 모순들을 '성적 억압'이라는 단일한 원인으로 수렴시키는 전개는 이론적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문명과 법의 기능을 오직 억압과 굴레로만 파악하는 시각은, 인간이 협력과 제도를 통해 이룩한 긍정적 성취(인권의 신장이나 사회적 안전망 등)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부정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몸의 상품화'가 가져올 수 있는 자본주의적 착취 구조에 대한 성찰이 생략된 채 '인간 해방'의 도구로만 상찬하는 대목 역시 다소 나이브한 결론이다.

4. 결론 : 시대를 매도당한 야인(野人)의 위대한 유산

일부 논리적 비약과 평면적 이분법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하여>는 한국 지성사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는 텍스트다. 모든 지식인이 거대 담론과 민족, 정의를 이야기할 때, 마광수는 홀로 인간의 '밑바닥 본능'과 '외로움', 그리고 '육체'를 응시했다. 광신을 경계하고 에로스를 옹호하는 그의 목소리는, 진영 논리와 집단적 도덕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강력한 현재적 의미를 획득한다. 인간이라는 가식의 옷을 벗기고 날것의 실존을 마주하게 하는 이 책은, 영원한 자유주의자 마광수가 한국 사회에 남긴 뜨거운 유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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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인간에 대하여> 1,000단어 요약+평론

마광수의 <인간에 대하여>는 그의 에세이 가운데 비교적 “철학적 선언문”에 가까운 책이다. <즐거운 사라>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성과 문학과 자유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 속에서 읽힌다면, <인간에 대하여>는 그 밑바닥에 깔린 마광수의 인간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인간은 고상하지 않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진보해온 존재도 아니며,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과장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물적이고, 육체적이고, 욕망적이며, 불안과 권태와 죽음 앞에서 허덕이는 존재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를 너무 고상하게 꾸미려 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이 책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니다”라는 도발적 명제로 시작한다. 보통 우리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마광수는 인간이 사회를 통해 완성된다는 생각을 의심한다. 사회는 인간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억압하고 길들이고 위선적으로 만든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법·제도·도덕·관습·상징·문자·역사 같은 장치에 갇힌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을 둘러싼 고상한 말들을 벗겨내야 한다. 그의 말투로 하면 인간을 “빨가벗겨” 보아야 한다.

두 번째 핵심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크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높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욕망하고 먹고 배설하고 성적 충동을 느끼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점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인간은 동물보다 더 불행한 존재일 수 있다. 왜냐하면 동물은 본능을 자연스럽게 따르지만, 인간은 본능을 죄악시하고 수치스러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성적 죄의식은 인간만이 가진 독특한 불행이다. 마광수에게 성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기 몸과 화해하게 하는 통로다.

세 번째 주장은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는 과학기술과 제도를 발전시켰지만, 인간 자체가 더 선해지거나 더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전쟁, 폭력, 광신, 억압, 질투, 집단주의, 권력욕은 시대가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은 역사에 기대어 구원받을 수 없다. 진보라는 말도, 문명이라는 말도, 마광수에게는 상당 부분 허구다. 인간은 여전히 고통을 만들고, 그 고통을 미화하며, 때로는 고난 자체를 즐기는 이상한 동물이다.

네 번째로 중요한 것은 이성에 대한 불신이다. 인간의 이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절대적 능력이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욕망, 공포, 습관, 집단심리, 상징체계에 의해 움직인다. 이 점에서 마광수는 계몽주의적 인간관에 반대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기보다 상징에 포획된 존재다. 인간은 문자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지만, 바로 그 문자와 언어 때문에 세계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 말과 글은 인간을 해방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관념의 감옥에 가둔다.

다섯 번째 핵심은 반항의 존재론이다. “인간은 반항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식의 명제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를 마광수식으로 뒤집은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순응이 아니라 반항이다. 사회가 금지하고 억압하고 훈육할수록 인간은 그것에 저항하려 한다. 특히 청소년기는 이 반항이 가장 고통스럽게 나타나는 시기다. 마광수는 청소년기를 낭만적으로 보지 않는다. 청소년기는 욕망은 깨어나지만 사회적 자유는 없는 시기이며, 몸은 뜨거워지지만 제도는 그것을 억누르는 시기다. 그래서 그는 청소년기를 “지옥”에 가깝게 본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가면 마광수 특유의 에로스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그는 인간이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행복감밖에 느낄 수 없다고 본다. 영원한 행복, 고상한 행복, 순수한 정신적 행복은 대체로 허구다. 인간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은 몸의 쾌감, 놀이, 관능적 상상력, 에로틱한 교감,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에서 온다. 그래서 그는 “놀이 정신”과 “야한 사랑”을 인류 구원의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이것은 단순히 음란한 주장이라기보다, 인간을 죄의식에서 해방시키려는 문화비판이다.

특히 “몸의 상품화는 인간해방을 돕는다”는 주장은 가장 논쟁적이다. 일반적으로 몸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적 착취, 여성 억압, 인간 소외의 문제로 비판된다. 그러나 마광수는 이를 다르게 본다. 몸을 상품화한다는 것은 몸을 감추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도덕주의를 깨뜨리는 일일 수 있다. 물론 이 주장은 매우 위험한 단순화를 포함한다. 실제 사회에서 몸의 상품화는 권력관계, 성별 불평등, 빈곤, 산업적 착취와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해방의 가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착취의 구조를 충분히 보지 못한다.

이 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첫째, 인간에 대한 통념을 사정없이 깨뜨린다. 인간을 이성적·도덕적·사회적 존재로 보는 교과서적 언어를 의심하게 만든다. 둘째, 몸과 욕망을 철학의 중심에 놓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을 말하는 것은 오래도록 천박함으로 취급되었는데, 마광수는 바로 그 천박하다고 여겨진 영역에서 인간의 진실을 보려 했다. 셋째, 문체가 명확하다.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독자가 동의하든 반발하든, 그의 주장은 곧장 들어온다.

그러나 한계도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점이다. 인간이 동물적이고 욕망적이라는 말은 맞지만,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도 여전히 맞다. 인간은 사회에 억압받지만, 동시에 사회 안에서 언어를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돌봄을 배우고 윤리를 만든다. 사회는 감옥이면서 동시에 생존 조건이다. 마광수는 사회의 억압성은 날카롭게 보지만, 사회적 관계가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측면은 약하게 본다.

둘째, 역사에 대한 불신이 지나치다. 인간의 역사가 완전히 발전하지 않았다는 그의 비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인권 개념의 확장, 장애인 권리, 성소수자 권리, 아동권리 같은 변화까지 모두 허구라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은 여전히 폭력적이지만, 폭력을 비판하는 감수성도 역사적으로 성장해왔다. 마광수는 인간의 어두운 반복을 잘 보지만, 느리고 불완전한 진보의 가능성은 과소평가한다.

셋째, 그의 에로스론은 해방적이면서도 남성 중심적이다. “야한 사랑”과 “관능적 상상력”을 통해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은 흥미롭지만, 그 상상력은 종종 남성 욕망의 언어로 기울어진다.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옹호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남성 작가가 꿈꾸는 자유로운 여성상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이 점에서 마광수는 도덕주의의 적이지만, 반드시 페미니즘의 동지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에 대하여>는 마광수 사상의 압축판이다. 이 책은 인간을 고상한 존재로 보는 모든 관념에 반기를 든다. 인간은 몸이고, 욕망이고, 놀이이고, 성이고, 반항이고, 죽음 앞의 불안이다. 이 관점은 불편하지만 중요한 진실을 건드린다. 다만 그 진실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몸이지만 관계이기도 하고, 욕망이지만 책임이기도 하며, 반항이지만 돌봄이기도 하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인간에 대하여>는 인간을 정신과 도덕의 왕좌에서 끌어내려 몸과 욕망의 자리로 되돌려놓는 마광수식 인간학이지만, 그 해방론은 사회적 책임과 권력관계의 문제를 충분히 품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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