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지은이)북리뷰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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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랑, 신념, 문학과 교육, 문화에 관한 마광수 교수의 다양한 관심사가 담겨 있는 문화 에세이. 마광수 교수는 마음이 야하다는 것은 본능에 솔직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 양면성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과 '자연의 본성을 거스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야한 사람'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
목차
1장 잊혀지지 않는 여자
잊혀지지 않는 여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사랑의 상징으로서의 ‘불’
제2의 사춘기
대학생 부부
일, 사랑, 놀이
결혼과 성
광고와 성
음악과 성
사랑과 용서
멋쟁이 만드는 교육
여름과 나
가을이 주는 의미
꿈과 쾌락의 가치
‘피의 시’와 ‘꿈의 시’
2장 솔직한 배설을 위하여
사랑학 4장
바람
행복
교양 있는 여자
내가 부렸던 오기
4월
산이 있으니 바라본다
가을을 기다리며
가을, 자연, 인생
솔직한 배설을 위하여
내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니의 자녀교육
젊은 엄마들에게 주는 글
그리피스 조이너의 손톱
3장 시와 성
시와 대리배설
마조히즘적 쾌락에의 동경
봄, 여인, 고양이 ?그 고혹적인 화음
리비도의 전이
성적 쾌감과 죽음의 쾌감
관음증과 나르시시즘의 복합
육체적 고통에의 그리움
페티시즘의 시적 승화
정자들의 무서운 질주
외로움, 사랑, 손톱
4장 정신주의와 육체주의
미美의 민주주의
정신주의와 육체주의
연극을 보는 심리
더위를 벗삼은 조상들의 슬기
서울
에로티시즘과 센세이셔널리즘
불교와 기독교
청소년들에게 주는 신년 메시지
역설적 의도의 자기암시
신념의 공해
그때 책 읽던 생각
섭세론涉世論
한 여인의 성적 자각과정
5장 작은 것도 아름답다
똥타령
빈센트 반 고흐
작은 것도 아름답다
성문학의 소개와 개발
아름다운 마조히즘의 연가
서울의 우울
나의 대학시절
여대생
행복에의 길
심리주의 비평과 문학
센세이셔널리즘의 극복
‘해설’ 전성시대
진정한 세계문학을 위하여
고전으로서의 전기傳奇소설
접기
책속에서
나는, 시는 역시 꿈이고 백일몽白日夢이며, 공상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사람은 평생 동안 3분의 1에 가까운 시간을 잠을 자는 데 쓰고 있고, 잠은 곧 꿈꾸는 시간을 의미하며, 꿈이 없는 잠은 곧 불건강한 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꿈꾸는 행위, 몽상하는 행위는 불필요한 사치나 여가 때우기 작업이 아니고 인간에게 있어 본질적으로 필수적인 것이다. 소설이 이성의 작업에 가까운 것이라면 시는 감성에 속하는 것이고, 소설이 ‘낮의 노동’에 비유된다면 시는 ‘밤의 꿈’에 비유된다.
흔히들 “젊은이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야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도한 희망은 그 희망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급격한 절망으로 바뀌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야망 역시 사람을 승부욕과 경쟁심으로 지치게 만든다. 미리 예방주사를 맞는 기분으로 자신의 젊은 기개를 약간 꺾을 필요가 있다. 부모들의 과잉애정, 과잉기대 때문에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뭐든지 지나치는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도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냉정하고 현명하게 설계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 4월 접기
가을은 확실히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만들어준다. 우리의 고달픈 인생길에 단순한 마취제와도 같은 작용을 하는 한여름의 들뜨고 화사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의 실존 그 자체의 본질을 깨달아 알게 해주는 것이 바로 가을의 자연이다. 가을밤의 내밀한 적막과 고독이 나는 너무나도 그립다. 그리고 자연의 진정한 신비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기만 하는 현대 도시인의 생태가 새삼 슬퍼지는 것이다.
― 가을, 자연, 인생 접기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점점 좋아지는 역사’가 아니라 ‘점점 나빠지는 역사’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수가 많은데, 인류의 비극은 모두 다 정신주의적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위 자연을 정복한다고 하여 생태계의 질서를 허물어뜨린 것은 모두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그 우월성은 인간의 정신(또는 이성)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오만한 태도에서 나왔다. 수많은 종교전쟁, 중세기 암흑시대의 비극, 이데올로기간의 피나는 싸움에서 비롯된 끔찍한 희생 등이 모두 다 정신주의에 기인한다. 요즘도 우리들은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곧 정신적 업적에 의한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나 나는 명예욕이야말로 식욕과 성욕보다 더 추악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 정신주의와 육체주의 접기
물욕과 명예욕은 우리들에겐 큰 강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기피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로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황진이를 꺾어보겠다고 그녀를 외면하며 길을 걷던 벽계수는, 황진이의 아름다운 둔부를 쓸어주면서도 태연했다는 서화담의 국량을 좇아가지 못했다. 한가지만 외곬으로 파고드는 것보다 모든 것을 두루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들이 지향해야 하는 인간상인 것 같다. (…) 더불어 역설의 진리를 항상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몸이 굽어 못생기게 흰 나무는 겉보기엔 볼품없어 보이는 나무 같지만, 곧고 훌륭하게 자란 멋있는 나무가 나무꾼들에 의해 벌채당할 때 화를 모면할 수 있다. (…) 현실에 매달려 인연에 급급하고 지나치게 출세를 꿈꾸다보면 세속적인 ‘성공’도 할 수 없게 된다.
- 섭세론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마광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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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1977년 『현대문학』에 시 「배꼽에」, 「망나니의 노래」, 「고구려」 등 6편의 시가 추천되어 시단에 데뷔
1989년 『문학사상』에 장편소설 「권태」를 발표하여 소설가로도 데뷔
2017년 9월 5일 타계
주요 작품
- 문학이론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문학과 성』, 『시학』, 『삐딱하게 보기』, 『연극과 놀이 정신』, 『마광수 문학론집』 외
- 시집
『가자... 더보기
최근작 : <왜 뱀은 구르는 수레바퀴 밑에 자기머리를 집어 넣어 말벌과 함께 죽어 버렸는가?>,<추억마저 지우랴>,<마광수 시선> … 총 94종 (모두보기)
마광수(지은이)의 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나는 ‘야하다’를 ‘천박하다’로 보지 않는다. 나는 ‘야하다’의 어원을 들야野자로 보아 ‘본능에 솔직하다’ ‘천진난만하게 아름답다’ ‘동물처럼 순수하다’의 의미로 본다. 솔직하게 스스로의 본능을 드러내는 사람, 자연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천진난만하게 원시적인 정열을 가지고 가꿔가는 사람이 ‘야한 사람’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온몸에 울긋불긋 채색을 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별거벗고 살듯이 말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솔직한 본성으로 집필한 마광수의 첫 대표에세이!
이 책은 마광수 교수의 인문교양이 잘 드러난 문화 에세이다. 사랑, 신념, 문학과 교육, 그리고 문화에 관한 마교수의 다양한 관심사가 잘 드러난 대표적인 에세이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 양면성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밝고 경쾌한 에세이로 잘 표현돼 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마교수의 철학이 잘 표현된 핵심단어다. ‘본능에 솔직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을 압축한 대표언어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본성을 거스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야한 사람’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편안한 에세이로 만날 수 있다.
▶ 출간의의
이 책은 마광수 교수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신고식을 치른 대표에세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제목의 강한 끌림으로 책의 내용이 문화에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다. 심지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소설인 줄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저자는 1989년 출간 당시 100만부가 팔렸다는 책의 유명세가 아닌 오로지 글의 내용으로서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싶다는 의중을 강하게 밝힌다. 마광수 교수가 글에서 오래전 밝혔던 문화사적 주장들이 지금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고,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의 건강한 생각을 다시 한번 재조명하는 데 출간의의가 있다.
도덕보다는 본능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획일보다는 다원을!
마교수는 마음이 야하다는 것은 본능에 솔직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야한 여자의 의미와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특히 우리 사회의 문화풍토가 너무 닫혀 있다며 이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언제나 과거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밝힌다. 그 결과로 문화적 민주화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중적 양면성을 극복하라고 조언한다. 스스로의 본성에 천진해질 필요가 있고, 또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도덕보다는 본성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획일보다는 다원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결정적 요인이 일과 사랑, 놀이라고 제안한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만 할 게 아니라 적당히 놀 줄 아는 미덕을 가지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가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결혼과 성」에서 마교수는 공자식 문단법으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빼도 되는 것이 대화, 다음으로 즐거운 식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원만한 성생활’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성욕이 있어야 식욕이 충족될 수 있다는 게 깔려 있다. 같은 식사를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나누는 식사는 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미운 사람과 같이하는 식사는 아무리 훌륭한 요리라도 배탈이 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기분’을 ‘사랑’으로 ‘미각’은 ‘성적 쾌감’으로 비유한다. 이는 곧 생명활동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식욕 역시 성욕의 도움을 받아야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끊임없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라
저자는 교육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못 이룬 것을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만큼 나쁜 태도는 없다고 질책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교육도 나쁘지만 지나치게 애정을 쏟아붓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긍정적인 시선을 자식에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가정교육의 비결이라고 제안한다. 자녀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지 말고 욕심 없이 무조건 잘 돌봐주는 것으로 자녀를 지켜보라는 얘기다.
명예욕이 식욕과 성욕보다 더 추악하다!
저자는 『맹자』를 예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화두를 끌어낸다. 특히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보는 고자의 생각을 빗대어, 그 한 예로 ‘인류의 비극이 모두 다 정신주의적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생태계의 질서를 허물어뜨린 이면에는 결국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그 우월성은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오만한 태도라고 평한다. 수많은 종교전쟁, 중세기 암흑시대의 비극, 이데올로기간의 피나는 싸움에서 비롯한 끔찍한 희생 등이 결국 모두 다 정신주의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신주의의 최종목적인 명예욕이야말로 오히려 식욕과 성욕보다 더 더럽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실질적인 인생관, 육체적 본성을 은폐시키지 않는 솔직한 생활태도를 제안한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벗기 위해서는 ‘역설의 진리’를 인정하라
저자는 안데르센 동화를 예로 섭세론을 펼친다. 마교수는 힘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그래야만 속물근성으로부터 우선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범위까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허용하여 받아들이냐는 것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일정한 기준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높여서도 혹은 지나치게 낯춰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교육을 받고 안 받음이 선량함의 유무와 상관없음을 이 사회가 말해주듯, 오히려 교육을 받으면서 늘어나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허망한 야심과 자신을 위장하려는 간특한 지성이라는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모든 기존율을 거부해보라고 말한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벗기 위해서는 ‘역설의 진리’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해질수록 행복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접기
그냥 남 눈치 안보고 자기 주장 펼친게 뭔 잘못이었단 말인가...
MAKWANGSOO 2020-11-19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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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컷의 본능 대로 살고 싶다는 울부짖음을 그럴싸한 말로 포장한 책. 물론 본인은 포장이 아니고 진짜겠지. 젤 놀라운 건, 제 꼬임에 안 넘어가서 "건방지다"는 이유로 여성의 목을 조르려 했다는 왕년의 일화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즐겁게 회상하다니..
정서적 불쾌감으로 1/4 은 읽기를 포기
白野 2016-05-28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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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제대로 됨, 이라는 생각. 마광쉬즘,,, 마광쉬즘은 보편성이다.
걸으며자는사람 2021-07-30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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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그래도 가끔 지구가 그리울게다.
품행제로 2019-06-0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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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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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15.03.26~15.04.21 마지막 3쪽은 읽지 않았다.예상과 달리 성교육에 대한 책은 아니었지만 내 생각과 맞는 책도 아니다.그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게 해준 책?대체 작가들은 무얼 염두에 두고 책을 읽길래, 그 작가의 필체와 방향성, 의도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 알게 되는 것일까?난 아직 주장하고자 하는 책의 통일성과 씌여진 내용을 전부 이해하기 힘든데 말이다.어쨌든 내 취향의 책은 아닌 것 같다. 심심해~
꿈꾸는 날 2015-09-2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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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마저 지우랴
오늘 아침에 문득 생각이 나서 주문하고 저녁에 받은 책은 마광수의 유작 소설집 <추억마저 지우랴>(어문학사)다. 음란물 판정을 받아 출금된 대표작(?) <즐거운 사라>를 구할 수가 없으므로 대체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2013 즐거운 사라>(책읽는귀족)도 같이 주문했는데 이건 일종의 대표 장면 변주 앤솔로지다(이런 장르도 있나?). 저자의 말에 판금해제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한다.
‘마광수 교수‘에 대한 기억은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대학가(연대 강의실)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는 그의 강의가 한 잡지에 소개된 걸 초겨울 어느 서점에서 읽었다. 그의 에세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나온 게 1989년으로 돼 있어서 1989년 겨울이 아닌가도 싶지만 내 기억은 1987년 겨울과 마광수를 겹쳐놓는다.
아무튼 그 이후에 마광수 문학론에 해당하는 책들을 두루 읽었고 단행본으로 나온 윤동주에 대한 박사학위논문도 읽었다. 문학론 가운데서는 얇지만 <상징시학> 같은 책이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그의 시나 소설은 문학론이나 에세이보다 수준이 떨어져 보였다. 아마도 사법적 처벌이 아니었다면 그냥 유야무야 끝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사법적 탄압을 받으면서 오히려 마광수는 표현의 자유와 성해방을 외치는 투사의 이미지를 덮어쓰게 되었다. 작가로서 가장 큰 문제는 빈곤한 상상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상상력은 그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언젠가 희대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광수 교수의 부고 기사를 읽은 건 프라하 성 투어를 하던 날이었다. 고인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편이지만 마지막 유작 정도는 읽어보고 싶었다. 사람을 잘못 보듯이 작품도 잘못 읽을 수가 있으니까. 설사 크게 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추억은 추억 자체로 기억될 권리를 갖는다. 내게 마광수는 30년 전 잡지속에서 본 자신만만한 젊은 문학교수로 남아 있다. 시무룩하고 우울한, 전혀 즐겁지 않은 표정의 은퇴한 노교수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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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7-09-18 공감 (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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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A. 호돈의 소설 < 주홍... + 더보기
곰곰생각하는발 2013-03-27 공감 (1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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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변잡기 170913 신문읽기
* 身邊雜記 170913 * 신문읽기 '즐거운 사라' 마광수 교수, 자택서 숨진 채 발견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67877
마립간 2017-09-13 공감 (1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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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책시렁 214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숲노래 어제책
숨은책시렁 214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마광수 자유문학사 1989.1.20.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 헌책집이란 곳은 “새빛이 되려고 기다리는 책이 가득한 보금터”라고 느꼈다면,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가득한 여러 헌책집을 날마다 다닐 적에는 책집단골인 할배들이 “모름지기 책을 골고루 깊으면서 넓게 알려면 새책만 봐서는 안 되고 반드시 헌책을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하고 일러 주었습니다. 책집단골인 할배들은 한문·영어·일본말은 쉽게 하고 몇 가지 다른 외국말까지 곧잘 하셨는데 “자네들은 새로 나왔다는 책이 막상 예전에 다 나왔던 책이고, 옛날에 나온 헌책이 바탕이 되어야 새책이 나올 수 있는 줄 아는가?” 하고도 짚어 주었습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처음 나온 뒤, 마광수 님이 법정에 설 무렵, 그리고 숨을 거둔 뒤 난데없이 비싼값이 붙었지만, 세 고비를 빼고는 헌책집에서 버려지다시피 했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이 책이 궁금해서 어느 날 폈더니 “어떤가? 대단하지 않나? 너무 일찍 태어난 천재야.” 하는 말을 책집단골 할배가 속삭이고 지나갑니다.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눈부시게 피어날 사랑을, 남녀라는 틀 없이 사람이라는 길을 담은 책은 언제쯤 고갱이대로 읽힐 만할까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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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0-02-12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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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170620 손톱 긴 사람
* 아이와 함께 170620
- 손톱 긴 사람
아이가 내게 ‘나, 손톱이 길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일단 아빠는 손톱 긴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는 태권도를 하기 때문에 손톱이 길면 손톱이 부러지거나 너와 상대하는 상대가 다칠 수도 있다고 했다.’
손톱을 기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손톱을 기르면서 네가 하고 있는 태권도를 포함한 많은 일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손톱이 길면 컴퓨터 typing에도 지장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내가 손톱 긴 사람을 별로 안 좋아와 하는 이유를 덧붙였다. 손톱이 길면, 농사일도 힘들고, 부엌일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손톱이 긴 사람을 보면, ‘나는 일하기 싫어요. 놀고먹으면서 생활하고 싶어요.’라는 신호를 주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막상 이야기를 해 놓고 보니, 손톱 긴 사람, 특히 여성에게 편견을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손톱이 유리한 직업, 또는 손톱 길이가 일과 무관한 직업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선 네일 아티스트는 손톱이 긴 것이 일과 관련하여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컴퓨터로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경우 극단적으로 길지가 않다면 일과 상관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불리하지 않을 뿐이지 유리할 것은 없다.
(개인적 경험으로 대학 동기 형이 오른손 엄지, 검지 손톱만 길렀다.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기 위해서다.)
딸아이와 나는 손톱이 긴 사람이 유리한 직업을 생각해 보자고 했다. ... 그리고 우리 둘은 다른 직업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기껏 생각해 낸 것이 ’작가‘이지만 이 경우도 typing 관련 범주에 묶는다면 새로 생각해 낸 직업이 아니다. 조금 더 일반화하면 사무직이 포함된다.
궁금증] (언급된 것 이외에) 손톱 긴 사람에게 유리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 무관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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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6-20 공감 (5) 댓글 (2)
요약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1989년 발간 당시 한국 사회와 문단에 거대한 충격을 던진 기념비적인 에세이집이다. 이 책은 유교적 가부장제와 위선적인 도덕주의에 갇혀 있던 한국 사회의 성(性) 담론을 최초로 공론화하며, 저자의 핵심 사상인 <야한 정신>을 구체적인 생활 철학으로 풀어냈다.
1. <야한 여자>의 정의와 육체미의 찬미
저자가 말하는 <야한 여자>는 단순히 선정적인 옷차림을 한 여성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본능과 욕망에 솔직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인습적 도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주체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마광수는 가식적인 지적 허영이나 내숭을 떨지 않는 인물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신주의적 사랑만을 고상한 것으로 치부하고 육체적 매력을 천박한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이분법을 거부하며, 긴 손톱, 화려한 화장, 세련된 패션 등 인공미(人工美)를 통한 관능성의 극대화를 적극적으로 예찬한다.
2. 엄숙주의 사회와 가식적 지식인 비판
책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유교적 엄숙주의와 지식인들의 위선적인 이중성을 거침없이 폭로한다. 낮에는 고고한 도덕과 정의를 외치면서 밤에는 음성적인 성을 탐닉하는 사회적 풍토를 꼬집으며, 이러한 억압이 인간의 정신을 오히려 병들게 한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성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려 건강한 유희와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사회가 투명해지고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역설한다.
3. 본능의 해방과 문학의 자율성
마광수는 문학과 예술이 도덕적 훈육이나 교훈 전달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문학의 진짜 역할은 인간의 억압된 무의식과 카타르시스를 자극하는 데 있으며, 성적 상상력의 해방이야말로 창조성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성을 억압하는 사회일수록 폭력성과 가학성이 다른 방식으로 분출된다고 분석하며, 솔직한 에로티시즘의 확산이 인류를 더 평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신념을 피력한다.
평론
1. 한국 문화사의 도덕적 금기를 깨부순 문화적 혁명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단순한 수필집을 넘어 한국 현대 문화사의 흐름을 바꾼 일종의 사회학적 선언문이다. 1980년대 말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도 문화적·성적 담론에서는 여전히 군사정권의 검열과 유교적 보수주의라는 이중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 마광수는 지성의 상징인 대학 교수라는 신분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당당히 외침으로써, 사회 전체가 침묵하던 거대한 성적 금기주의의 벽에 균열을 내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성적 근대화와 표현의 자유라는 화두를 던진 결정적 계기였다.
2. 솔직함의 미학이 주는 해방감
이 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어떤 철학적 수사나 현학적 은유 뒤에 숨지 않는 '단도직입적인 솔직함'에 있다. 저자는 대중이 속으로는 열망하면서도 겉으로는 쉬쉬하던 육체적 욕망, 페티시즘, 미적 취향을 서슴없이 고백하며 독자들에게 대리 만족과 강렬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가식적인 교양을 갖춘 이들보다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 더 정직하고 건강하다는 사상은, 위선적인 지식인 사회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폭로하는 문화 비평으로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3. 본질주의적 성 인식과 서사적 단순화의 한계
그러나 이 작품은 시대를 흔든 파격성만큼이나 뚜렷한 사상적 한계를 노출한다. 저자는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가부장제와 도덕주의를 비판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가 찬미하는 <야한 여자>의 이미지(긴 손톱, 화려한 화장, 남성을 매혹하는 관능성) 역시 가부장제와 상업주의가 만들어 낸 전통적인 남성 중심적 시선(Male Gaze)의 연장선상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성을 정치적·사회적 권력 관계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순수한 '유희'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평면적이다. 이로 인해 성의 상품화나 왜곡된 성 소비 구조가 유발할 수 있는 복합적인 문제들을 간과하는 나이브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4. 결론 : 억압된 시대를 향해 날린 자유주의자의 일갈
일부 이론적 거침과 남성 중심적 시선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지닌 역사적 가치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 마광수가 이 책을 통해 던진 파격적인 메시지는 훗날 그가 겪어야 했던 사법적 탄압과 사회적 매장이라는 비극의 서막이었으나, 동시에 한국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개인의 실존적 자유를 확장하는 밀알이 되었다. 진영 논리와 집단적 엄숙주의가 여전히 개인의 솔직한 표현을 검열하는 오늘날, 가면을 벗고 날것의 본성으로 소통하자던 그의 외침은 여전히 도발적이며 유효한 울림을 지닌다.
마광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1,000단어 요약+평론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한국 현대문학과 대중문화사에서 하나의 사건처럼 읽힌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집이라기보다, 1980~90년대 한국 사회의 성윤리, 문학관, 여성관, 검열문화, 지식인 사회의 위선을 정면으로 건드린 도발적 선언문이다. 제목부터 이미 논쟁적이다. “야한 여자”라는 표현은 당시의 통념으로는 품위 없고 외설적인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마광수는 바로 그 통념을 공격한다. 그는 “야함”을 타락이나 천박함이 아니라 생명력, 자유, 상상력, 관능, 반항, 자기표현의 상징으로 삼는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분명하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이고, 그 욕망 가운데 성적 욕망은 가장 자연스럽고 중요한 에너지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 욕망을 억압하고, 특히 여성의 성적 표현을 죄악시한다. 남성의 욕망은 은밀히 허용하면서도 여성의 욕망은 순결, 정숙, 모성,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가둔다. 마광수는 이런 이중윤리를 위선으로 본다. 그가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노출이 많은 여자나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그는 사회가 부여한 정숙한 여성상, 얌전한 여성상, 희생하는 여성상, 남성의 체면을 지켜주는 여성상에 맞서 자기 몸과 욕망을 긍정하는 여성을 이상화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첫 번째 주제는 <성적 자유의 옹호>다. 마광수에게 성은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다. 그는 성적 상상력, 육체적 쾌감, 관능적 아름다움을 인간 행복의 핵심으로 본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은 거창한 이념이나 도덕적 완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이 직접 느끼는 생생한 순간에서 온다고 본다. 이 점에서 그는 정신주의, 금욕주의, 유교적 도덕주의, 기독교적 죄의식, 민족주의적 엄숙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두 번째 주제는 <한국 사회의 위선 비판>이다. 마광수는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품위와 도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욕망으로 가득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성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척하고, 야한 것을 보면서도 남이 야하다고 말하면 비난한다. 특히 지식인 사회와 문단은 고상한 문학, 순수문학, 민족문학, 참여문학 같은 이름으로 욕망의 문제를 억눌러왔다고 비판한다. 그에게 문학은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어야 하며, 인간의 진실에서 성을 빼버린 문학은 반쪽짜리 문학이다.
세 번째 주제는 <여성성에 대한 마광수식 찬미>다. 그는 여성을 순결한 어머니나 희생적 아내로 보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장난기 있고, 관능적이고, 자유롭고, 자기 욕망을 숨기지 않는 여성을 긍정한다. 이 점에서 그는 당시 한국 사회의 보수적 여성관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중요한 한계도 있다. 마광수가 찬미하는 “야한 여자”는 실제 여성 주체라기보다, 남성 작가의 욕망과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여성상일 때가 많다. 그는 여성을 억압에서 풀어주려 하지만, 그 여성이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지, 성적 자유가 실제 여성에게 어떤 위험과 불평등을 동반하는지는 충분히 보지 않는다.
네 번째 주제는 <외설과 예술의 경계에 대한 문제 제기>다. 마광수는 예술과 외설을 엄격히 나누려는 태도 자체를 의심한다. 왜 어떤 것은 예술이고 어떤 것은 외설인가? 누가 그것을 결정하는가? 그 기준은 정말 미학적인가, 아니면 권력과 도덕의 기준인가? 그는 외설이라는 낙인이 종종 기존 질서를 위협하는 표현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고 본다. 이런 문제의식은 그의 다른 작품 <즐거운 사라> 논쟁과도 연결된다. 마광수에게 외설 시비는 단순한 문학 논쟁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성의 자유, 상상력의 자유를 둘러싼 정치적 문제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솔직함이다. 마광수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정면에서 말한다. 이 솔직함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의 문장은 고상하지 않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힘이 있다. 그는 학자이면서도 일부러 교양 있는 문체를 피하고, 직접적이고 대중적인 말투로 쓴다. 그래서 그의 글은 문학평론이라기보다 싸움의 언어처럼 읽힌다. 그는 독자를 설득하기보다 흔들어 깨우려 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몸의 복권>이다. 한국 근현대 담론은 오랫동안 민족, 역사, 국가, 계급, 민주주의, 산업화, 가족 같은 큰 주제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그 속에서 개인의 몸, 성적 욕망, 사적 쾌락은 부차적이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되었다. 마광수는 바로 그 주변부를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인간을 이념의 주체가 아니라 몸의 존재로 본다. 이 점에서 그의 글은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적 엄숙함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첫째, 마광수의 자유론은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다. 그는 도덕과 제도의 억압을 예리하게 비판하지만, 자유가 사회적 관계 안에서 어떻게 조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성적 자유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권력관계, 경제적 조건, 성별 불평등, 연령 차이, 동의의 문제와 결합될 때 훨씬 복잡해진다. 마광수의 글은 이 복잡성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둘째, 그의 여성해방론은 해방적이면서도 남성중심적이다. 그는 “야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정숙한 여성상에 도전하지만, 그 말의 주어는 여전히 남성이다. 여성 자신이 자신의 욕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상을 말하는 구조다. 그러므로 이 책은 보수적 순결주의를 깨는 데는 의미가 있지만, 오늘날의 젠더 감수성에서 보면 불편한 지점이 많다. 여성의 성적 자유를 옹호한다면서도, 여성을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방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셋째, 마광수의 도발은 반복될수록 힘이 약해진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지만, 여러 책을 읽다 보면 주장이 비슷하게 반복된다. 성은 좋다, 억압은 나쁘다, 위선은 나쁘다, 야함은 자유다, 상상력은 해방이다. 이 명제들은 분명하지만, 때로는 분석보다 구호에 가까워진다. 깊은 사회학적 분석이나 역사적 구조 분석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개인적 취향과 반항의 언어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문학적 세련미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마광수의 문장 자체보다, 그 문장이 드러낸 욕망의 진실을 더 두려워했다. 그는 성을 말했지만, 사실은 성을 둘러싼 권력과 위선을 건드렸다. 그는 “야한 여자”를 말했지만, 사실은 인간이 자기 몸과 욕망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완성도 높은 이론서라기보다는 문화적 폭탄에 가깝다. 그 폭탄은 때로 조잡하고, 때로 유치하고, 때로 남성중심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터뜨린 문제는 가볍지 않다. 인간은 정말 고상한 존재인가? 성을 억압하는 사회는 건강한가? 여성의 정숙함을 강요하는 도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야함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적 위선과 도덕주의를 공격한 마광수식 자유 선언이지만, 그 자유는 여성 주체의 현실보다 남성적 관능의 상상력에 더 많이 기대고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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