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그곳, 현실은 더 참혹했다…제주4.3 ‘P읍’ 학살터 순례
기자명 김찬우 기자 (kcw@jejusori.net)
입력 2025.12.27
[현장] 4.3도민연대 도민과 함께하는 4.3역사순례
“한강 소설 속 ‘P읍’은 결국 제주섬 전체 이야기”

이곳은 제주4.3 초토화작전에 따른 소개령 당시 갓난아이와 함께 바위틈으로 몸을 피한 가족이 아이 울음에 발각, 토벌대가 던져 넣은 수류탄에 의해 폭사당한 곳이다. ⓒ제주의소리
마을 전체가 불에 타버린 소설 같은 일이 흔하게 벌어진 제주4.3.
마을 전체가 불에 타버린 소설 같은 일이 흔하게 벌어진 제주4.3.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으련만 마을 곳곳, 마음 곳곳 남은 흉터는 여전히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펴낸 제주4.3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중심 배경 마을 중 하나로 알려진 서귀포시 표선면(P읍) 일대.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도민연대(대표 양동윤)는 27일, 제주4.3 당시 끔찍하고 처절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표선면 가시리와 표선리 등을 둘러보는 역사 현장 순례에 나섰다.
[제주의소리]가 동행한 이번 순례 이름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다. 소설의 주 무대라며 표선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사실 ‘소설 속 이야기는 제주 전체의 이야기’라는 것을 되새기게끔 하는 제목이다.
4.3도민연대는 25년간 이어온 순례의 마지막 순서로 표선면 가시리 마을과 표선리 마을 일대를 순례했다. 찬 바람이 몸이 웅크려지는 날씨, 신산공원에 모인 순례단은 한 참가자가 전해준 찐빵으로 온기를 채우고 표선면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장소는 가시리 4.3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작별하지않는다리’다. 가시천을 사이에 두고 가시리체육공원과 4.3희생자 위령비를 잇는 이 다리는 올해 1월 완공된 다리다.
행정 지원 없이 가시리 마을회 차원에서 만든 이 다리는 4.3희생자와 그 후손들이 작별하지 않도록 이어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날 현장 해설에 나선 안봉수 전 가시리장은 “4.3 당시 행정의 횡포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의 지원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시리에 소개령이 내려진 뒤 모든 집이 불에 탔다. 2채가 겨우 살아남았는데 이는 초가를 걷어뒀기 때문”이라며 “소개령이 내려진 뒤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된 이후 도피자 가족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한 순간에 학살당했다”고 설명했다.
안봉수 전 가시리장. 그는 이날 순례단을 맞아 가시리에 서린 제주4.3의 아픔을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안 전 이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례단. ⓒ제주의소리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펴낸 제주4.3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중심 배경 마을 중 하나로 알려진 서귀포시 표선면(P읍) 일대.
제주4.3진상규명과명예회복을위한도민연대(대표 양동윤)는 27일, 제주4.3 당시 끔찍하고 처절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표선면 가시리와 표선리 등을 둘러보는 역사 현장 순례에 나섰다.
[제주의소리]가 동행한 이번 순례 이름은 ‘픽션과 논픽션 사이’다. 소설의 주 무대라며 표선지역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지만, 사실 ‘소설 속 이야기는 제주 전체의 이야기’라는 것을 되새기게끔 하는 제목이다.
4.3도민연대는 25년간 이어온 순례의 마지막 순서로 표선면 가시리 마을과 표선리 마을 일대를 순례했다. 찬 바람이 몸이 웅크려지는 날씨, 신산공원에 모인 순례단은 한 참가자가 전해준 찐빵으로 온기를 채우고 표선면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장소는 가시리 4.3희생자 위령비가 있는 ‘작별하지않는다리’다. 가시천을 사이에 두고 가시리체육공원과 4.3희생자 위령비를 잇는 이 다리는 올해 1월 완공된 다리다.
행정 지원 없이 가시리 마을회 차원에서 만든 이 다리는 4.3희생자와 그 후손들이 작별하지 않도록 이어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날 현장 해설에 나선 안봉수 전 가시리장은 “4.3 당시 행정의 횡포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행정의 지원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시리에 소개령이 내려진 뒤 모든 집이 불에 탔다. 2채가 겨우 살아남았는데 이는 초가를 걷어뒀기 때문”이라며 “소개령이 내려진 뒤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된 이후 도피자 가족으로 구분된 사람들은 한 순간에 학살당했다”고 설명했다.
안봉수 전 가시리장. 그는 이날 순례단을 맞아 가시리에 서린 제주4.3의 아픔을 설명했다. ⓒ제주의소리
안 전 이장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례단. ⓒ제주의소리
가시리 4.3희생자 위령비에서 묵념 중인 순례단. ⓒ제주의소리
안 전 이장은 학살 당시 주민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한 어르신은 총살 직전 애지중지했던 담뱃대를 허리춤에 차고 숨을 거뒀다. 자식이 아비의 시신을 찾지 못해 어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안 전 이장 역시 4.3희생자 유족이다. 당시 10명이 넘는 집안 식구 중 아버지 혼자만 살아남고 모두 돌아가신 것. 이후 아버지가 다시 가족을 꾸려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그는 “4.3이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다”며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전했다.
또 소개령 당시 갓난아이와 함께 바위틈에 숨어있다가 수류탄에 의해 폭사한 일가족의 사연도 소개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토벌대가 폭탄을 던져 죽인 것. 폭발 여파로 무너진 바위는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안 전 이장의 설명을 듣고 억울하게 희생된 4.3 영령들을 위무한 순례단은 초토화작전으로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을 찾아 아픔을 기억했다. 주민 100여명이 살고 있던 이곳은 4.3 이후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해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이어 표선리로 이동한 순례단은 가시리 주민 70여명이 하루, 한순간에 총살당한 ‘버들못’ 학살터를 순례했다. 당시 토벌대는 호적상 모든 가족이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몰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과 15세 미만 어린이를 제외한 모두를 쏴 죽인 것. 학살된 시신들은 1년여 방치된 이후 가시리가 재건되면서 유족들이 하나둘 찾아갈 수 있었다.
4.3도민연대 김영란 연구원이 버들못 학살에 대해 설명 중인 모습. ⓒ제주의소리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에 있는 대나무.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제주의소리

안 전 이장은 학살 당시 주민들의 사례를 소개했다. 한 어르신은 총살 직전 애지중지했던 담뱃대를 허리춤에 차고 숨을 거뒀다. 자식이 아비의 시신을 찾지 못해 어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안 전 이장 역시 4.3희생자 유족이다. 당시 10명이 넘는 집안 식구 중 아버지 혼자만 살아남고 모두 돌아가신 것. 이후 아버지가 다시 가족을 꾸려 자신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그는 “4.3이 없었으면 태어나지 못했다”며 헤아릴 수 없는 아픔을 전했다.
또 소개령 당시 갓난아이와 함께 바위틈에 숨어있다가 수류탄에 의해 폭사한 일가족의 사연도 소개했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토벌대가 폭탄을 던져 죽인 것. 폭발 여파로 무너진 바위는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안 전 이장의 설명을 듣고 억울하게 희생된 4.3 영령들을 위무한 순례단은 초토화작전으로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을 찾아 아픔을 기억했다. 주민 100여명이 살고 있던 이곳은 4.3 이후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해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이어 표선리로 이동한 순례단은 가시리 주민 70여명이 하루, 한순간에 총살당한 ‘버들못’ 학살터를 순례했다. 당시 토벌대는 호적상 모든 가족이 없으면 도피자 가족으로 몰아 무차별적으로 죽였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과 15세 미만 어린이를 제외한 모두를 쏴 죽인 것. 학살된 시신들은 1년여 방치된 이후 가시리가 재건되면서 유족들이 하나둘 찾아갈 수 있었다.
4.3도민연대 김영란 연구원이 버들못 학살에 대해 설명 중인 모습. ⓒ제주의소리
잃어버린 마을 새가름에 있는 대나무. 사람이 살았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제주의소리
표선 가시마을 4.3길 리본을 정리 중인 순례단. ⓒ제주의소리
이어 순례단은 당시 제2연대 소속 군인들이 주둔했던 옛 표선면사무소(현 제주은행 표선지점)와 표선초등학교를 찾았다. 두 곳 모두 날마다 주민들이 잡혀 왔던 곳이다. 표선초등학교의 경우 암울했던 시대 끔찍한 사고도 있었던 곳이다.
1950년 7월, 당시 표선국민학교에서 놀던 30여명의 학생들이 폭발 사고로 생명을 잃은 것. 원인은 한 어린이가 가지고 놀던 폭탄으로 추정되는 ‘이상한 물체’가 터지면서다. 폭발 이전 학교에는 4.3 진압을 위한 1개 소대 병력이 주둔하다 철수했다는 증언이 따른다.
마지막 순서로 순례단은 3개월여간 가시리, 성읍리, 세화리, 토산리 등 여러 차례 걸쳐 표선 지역 일대 주민들이 학살당한 죽음의 장소, 표선백사장 ‘한모살’을 순례하며 일정을 마쳤다.
4.3도민연대에 따르면 가시리마을은 1948년 3.1절 기념집회와 3.10 총파업 이후 초토화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떤 충돌도 없었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중산간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은 무차별적으로 죽임당했다.
중산간이라는 것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학살. 가시리 주민 약 1600명 중 500여명이 학살당했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남쪽 마을 가시리 360가구 중 250가구가 불타 잿더미가 됐다. 남은 집들도 4.3기간을 거치며 완전히 불에 탔다.
초토화작전에 따라 해안으로 내려간 주민들은 표선국민학교와 토산2리 창고 등에 수용됐고 도피자 가족 등으로 몰려 학살당했다. 1948년 12월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가시리 주민 수십명이 한꺼번에 학살당한 버들못 학살이 대표적이다.
4.3도민연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4.3 당시 제주의 중산간 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진 제주섬의 4.3역사 이야기”라며 “평생을 농사일에 종사한 주민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4.3역사현장을 잊지 않기 위해 찾았다”고 말했다.
표선백사장 학살터 한모살을 찾아 묵념 중인 순례단. ⓒ제주의소리

이어 순례단은 당시 제2연대 소속 군인들이 주둔했던 옛 표선면사무소(현 제주은행 표선지점)와 표선초등학교를 찾았다. 두 곳 모두 날마다 주민들이 잡혀 왔던 곳이다. 표선초등학교의 경우 암울했던 시대 끔찍한 사고도 있었던 곳이다.
1950년 7월, 당시 표선국민학교에서 놀던 30여명의 학생들이 폭발 사고로 생명을 잃은 것. 원인은 한 어린이가 가지고 놀던 폭탄으로 추정되는 ‘이상한 물체’가 터지면서다. 폭발 이전 학교에는 4.3 진압을 위한 1개 소대 병력이 주둔하다 철수했다는 증언이 따른다.
마지막 순서로 순례단은 3개월여간 가시리, 성읍리, 세화리, 토산리 등 여러 차례 걸쳐 표선 지역 일대 주민들이 학살당한 죽음의 장소, 표선백사장 ‘한모살’을 순례하며 일정을 마쳤다.
4.3도민연대에 따르면 가시리마을은 1948년 3.1절 기념집회와 3.10 총파업 이후 초토화작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어떤 충돌도 없었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러나 중산간이라는 이유로 주민들은 무차별적으로 죽임당했다.
중산간이라는 것 말고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학살. 가시리 주민 약 1600명 중 500여명이 학살당했다.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남쪽 마을 가시리 360가구 중 250가구가 불타 잿더미가 됐다. 남은 집들도 4.3기간을 거치며 완전히 불에 탔다.
초토화작전에 따라 해안으로 내려간 주민들은 표선국민학교와 토산2리 창고 등에 수용됐고 도피자 가족 등으로 몰려 학살당했다. 1948년 12월 표선국민학교에 수용됐던 가시리 주민 수십명이 한꺼번에 학살당한 버들못 학살이 대표적이다.
4.3도민연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4.3 당시 제주의 중산간 마을, 그리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진 제주섬의 4.3역사 이야기”라며 “평생을 농사일에 종사한 주민들이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 4.3역사현장을 잊지 않기 위해 찾았다”고 말했다.
표선백사장 학살터 한모살을 찾아 묵념 중인 순례단. ⓒ제주의소리
표선도서관 인근에 설치된 표선 한모살 비석. 그 뒤로는 소설가 한강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걸렸다. ⓒ제주의소리


4.3도민연대 '도민과 함께하는 4.3역사순례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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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우 기자 kcw@jeju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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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바당 (비회원) 3일전 IP수정 삭제
제주바당 (비회원) 3일전 IP수정 삭제
도민과 함께 걸어온 4·3 역사순례가
오영훈도정에서 ‘부적합’이라는 판단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이 매우 화가나고, 안타깝습니다.
2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민과 함께 4·3의 길을 걸어온 제주4·3도민연대의 시간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군법재판 수형인 재심을 통해 ‘무죄’라는 이름을 되돌려준 그 걸음들이 모여, 오늘 우리가 4·3을 평화와 상생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순례는 멈출지 모르지만, 제주 4ㆍ3도민연대가 뿌린 씨앗은 이미 숲이 되었습니다.
숲은 판정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길을 만들어온 분들께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오영훈도정에서 ‘부적합’이라는 판단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이 매우 화가나고, 안타깝습니다.
25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도민과 함께 4·3의 길을 걸어온 제주4·3도민연대의 시간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합니다.
군법재판 수형인 재심을 통해 ‘무죄’라는 이름을 되돌려준 그 걸음들이 모여, 오늘 우리가 4·3을 평화와 상생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순례는 멈출지 모르지만, 제주 4ㆍ3도민연대가 뿌린 씨앗은 이미 숲이 되었습니다.
숲은 판정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길을 만들어온 분들께 깊은 존경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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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비회원) 4일전 IP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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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람 (비회원) 4일전 IP수정 삭제
지금 이글을 지지할것들은 찢죄명이가 나라를 잘 이끌어간다고 생각하는 멍청한것들이겠지, 지금도 이렇게 멍청한것들이 많은데 그당시는 얼마나 선동당했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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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4
도민 (비회원) 4일전 IP수정 삭제
5 14
도민 (비회원) 4일전 IP수정 삭제
제주사람/아가리 쳐싸물어.. 지만원이 5.18로 개소리하다가 감방살이한거 몰라?? 적당히해라 진짜..
답글 6
12 4
도민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12 4
도민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평화로운 마을이었다고??
진압작전 없으면 평호로운 동네라면
북한 역시 평화로운 동네일거다.
애초 공산주의 국가 만들겠다는 남로당의 폭동이고
이 폭동을 저지한것인데 이를 비난한다?
그건 북한 정권 추종자란 말이지
진압작전 없으면 평호로운 동네라면
북한 역시 평화로운 동네일거다.
애초 공산주의 국가 만들겠다는 남로당의 폭동이고
이 폭동을 저지한것인데 이를 비난한다?
그건 북한 정권 추종자란 말이지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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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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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안봉수 전이장님의 아픈가족사와 표선마을의 4.3학살을 통해 공권력을 잘못 사용하였을때의 무자비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아픈 사연을 이야기 안할 수 없죠^^
4.3도민연대의 4.3길 탐방이 쭉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4.3도민연대의 4.3길 탐방이 쭉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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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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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4.3도민연대 역사순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번에 함께 하지 못했지만 기사를 통해서라도 공유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다음에는 꼭 함께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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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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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 (비회원) 5일전 IP수정 삭제
남로당이 학살한 곳에 가셨군요!!!
남로당이 제주도민을 학살을 했죠!!
저도 가봐얄듯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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