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리스도신문>(キリスト新聞)에 1년에 두 번 정도, 한국의 기독교계나 정치사회에 대해서 소개하는 칼럼을 쓰고 있다. 일본인들은 한국의 새 대통령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에 그 점에 대해 소개하였다. (산돌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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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퉁이로부터】(この世界の片隅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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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퉁이로부터】(この世界の片隅から)
구석진 모퉁이의 교회가 탄생시킨 한국의 새 대통령 (홍이표, 2025년 7월 1일)
2025년 6월 3일의 대통령 선거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전 대표가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이 되었다.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대혼란에 빠졌던 우리 사회는 급속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재명 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채 공장에 다녀야 했던 '소년공' 출신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삶은 한국 및 일본의 보수 언론에 의해 오히려 '반일 강경파', '열등감으로 인한 반발심 가득한 인물', '저항적 기질의 독재적 괴물' 등으로 묘사되는 등, 왜곡되어 왔다.
한편 이재명 신임 대통령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기도 하다. 그의 어머니도 열성적인 개신교 신자였으며, 그는 결혼 후 2005년에 한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배우자 김혜경 씨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녔으며 대학시절에는 대학생선교회(CCC)의 리더였을 만큼 열성적인 크리스찬이었기 때문에 아내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내의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던 2025년 4월 27일의 수락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2004년 3월 28일 오후5시 성남시청 앞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결심했습니다. 성남시민들이 그토록 바랬지만 부정한 기득권자들이 좌절 시킨 시립 공공병원의 꿈을 성남시장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이뤄 보겠다고 시장 출마를,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러분 (...) 시립병원 설립 운동 10여년이 지나서 마침내 제가 성남 시장이 되어서 시립의료원을 제 손으로 설립했습니다. 시민들과 함께 시민이 주인인 성남, 시민이 행복한 성남시를 함께 만들어 냈습니다. 여러분...! 이제 (...) 완전히 새로운 나라, 희망과 열정이 넘치는 진짜 대한민들을 만들어서 보답하겠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역의 빈민・노동・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던 성남주민교회를 창립한 이해학 원로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성남주민) 교회는 꼴찌·꼴통 공동체였습니다.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피난 와서 쉬었다 기운을 회복해 나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하다가 경찰 수배받아 쫓기던 이재명도 그랬죠."
본격적으로 정치인으로 거듭난 원점으로서의 장소, 그곳을, 그 때를 잊지 않기 위해 그는 후보자가 됐을 때도 당시의 일을 기억했고, 모든 선거 운동이 종료되었던 6월 2일 오후에도 성남주민교회 예배당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실시해 이렇게 말했다.
"저의 정치적 고향 성남에서 국민 여러분과 함께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것을 약속합니다."
다음날부터 시작될지도 모르는 대통령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서울 중심부에서 한참 떨어진 곳인 성남은 1969년에 시작된 서울 시내 빈민의 추방 및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탄생한 도시이다. 그곳에서 중고생 시절을 공장 노동자로 보낸 이재명 씨는 사법시험 합격 후에도 자신이 성장한 지역으로 돌아와 가난한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주변(마지널리티)'을 지켰다.
이후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민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까지 되었다. 6월 23일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현직 열차 기관사인 김영훈 씨(전 전국철도노조위원장, 전 민주노총 위원장)가 이 대통령에 의해 지명돼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에 이어, 노동자 출신의 고용노동부 장관.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하였던 그리스도인 청년 전태일은, 그리고 그의 곁에 서있을 목수 출신 예수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새로운 역사를 바라보며 뭐라 말할까?
서울 중심부에서 한참 떨어진 곳인 성남은 1969년에 시작된 서울 시내 빈민의 추방 및 강제이주 정책에 의해 탄생한 도시이다. 그곳에서 중고생 시절을 공장 노동자로 보낸 이재명 씨는 사법시험 합격 후에도 자신이 성장한 지역으로 돌아와 가난한 시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변호사로 활동하며 '주변(마지널리티)'을 지켰다.
이후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민주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까지 되었다. 6월 23일에는 고용노동부 장관에 현직 열차 기관사인 김영훈 씨(전 전국철도노조위원장, 전 민주노총 위원장)가 이 대통령에 의해 지명돼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소년공 출신 대통령에 이어, 노동자 출신의 고용노동부 장관.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하였던 그리스도인 청년 전태일은, 그리고 그의 곁에 서있을 목수 출신 예수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새로운 역사를 바라보며 뭐라 말할까?
이 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석진 곳으로 내몰린 이들과 함께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한 초심을 잊지 않고, 한국뿐 아니라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에 우호와 평화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공교롭게도 일본의 총리도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각과 자세를 공유하면서 양국의 구석진 곳, 그늘진 모퉁이를 향한 눈길을 잃지 말기 바란다.
(사진 : 2025년 6월 2일 오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성남주민교회 예배당에서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이재명 씨, 성남주민교회)
2025年6月3日の大統領選挙によって「共に民主党」の李在明元代表が大韓民国第21代目の大統領となった。非常戒厳令宣布から大混乱に陥っていた韓国社会は急速に安定へと向かい始めている。
李在明氏は小学校を卒業した後、貧しい環境から中学校に進学できず、工場に通う少年工出身である。しかし、このような彼の人生は韓国及び日本の保守的マスコミによって「反日強硬派」「劣等感による反発心・抵抗的気質」「独裁的な怪物」と描かれ、歪曲されている。
一方、李在明新大統領は一人のキリスト者でもある。彼の母も熱心な信者で、彼は結婚後2005年にある長老派教会で受洗した。連れ合いの金恵景氏は幼いころから日曜学校に熱心に通い、大学時代には「大学生宣教会」(CCC)のリーダーだったほどの熱心なキリスト者であり、彼女からの影響が大きかったのだろう。李在明氏は「共に民主党」内の選挙で大統領候補に選ばれた2025年4月27日の所信表明冒頭、次のように発言した。
「2004年3月28日午後5時、城南市庁前の住民教会の地下祈祷室で涙を流しながら決心しました。城南市民があれほど望んだにもかかわらず、不正な既得権者が挫折させた市立公共病院の夢を城南市長になって必ず成し遂げる思いで市長出馬を、政治をすることを決心しました。みなさん……市立病院設立運動から10年余りが経ち、ついに私が城南市長になり、市立医療院を自分の手で設立しました。市民とともに市民が主人である城南、市民が幸せな城南市をともにつくり上げました。……みなさん! これから……まったく新しい国、希望と情熱があふれる本当の大韓民国をつくります」
2025年6月2日午後、韓国基督教長老会城南住民教会の礼拝堂で 対国民記者会見を実施している李在明氏(城南住民教会)
1970年代から地域の貧民救済・労働・民主化運動の中心だった城南住民教会を創立した李ヘハク元老牧師(韓国基督教長老会)は、「我が教会は最も隅っこにある共同体でした。力のない人たちが避難しては、休んで元気を取り戻していく、そんな場所でした。城南市立病院の設立運動をしていたところ、警察の手配を受けて追われていた李在明さんもそうでした」と回顧した。本格的に政治家として生まれ変わった原点としての場所、そこを、その時を忘れないように、彼は候補者になった時もそのことを語り、すべての選挙運動が終了する6月2日の午後にも、城南住民教会の礼拝堂で対国民記者会見を実施してこう述べた。「私の政治的故郷・城南で国民皆様とともに大韓民国の未来を開いていくことを約束します」。翌日から始まるかもしれない大統領としての心得を新たにした。
ソウル中心部からかなり離れた城南は、1969年に始まったソウル市内の貧民追放・強制移住政策によって誕生した町である。そこで中高生時代を工場労働者として過ごした李在明氏は、司法試験合格後に地元に戻って貧しい民衆たちとともに生きる弁護士として周辺(マージナリティ)を守った。
その後、城南市長、京畿道知事、国会議員、民主党の党首を経て大統領にまでたどり着いた。6月23日には雇用労働部長官に現職で働いている電車機関士の金栄訓氏(元、鉄道労働組合委員長・民主労働組合総連盟委員長)が李大統領によって指名され、新鮮な衝撃を与えている。少年工出身の大統領に続き、労働者出身の雇用労働部大臣。1970年、勤労基準法遵守を叫びながら焼身自死したキリスト者青年全泰壱は、そしてその側にいる大工出身のイエスはこの新しい歴史を眺めて何を語るだろうか。
李大統領がこれから5年間、一人のキリスト者として「片隅」に追いやられた人々とともに生きたイエス・キリストに従った初心を忘れず韓国のみならず、日本、さらに東アジアに友好と平和を広める指導者になることを切に祈る。偶然にも日本の首相もキリスト者であるため、このような視点と姿勢を共有し、両国の「片隅」への眼差しを忘れないでほしい。
ほん・いぴょ 1976年韓国江原道生まれ。延世大学大学院修了(神学博士)、京都大学大学院修了(文学博士)。基督教大韓監理会(KMC)牧師。2009年宣教師として渡日し、日本基督教団丹後宮津教会主任牧師などを経て、山梨英和大学の宗教主任を務めた。専門は日韓キリスト教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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