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 참패의 경고음
정청래 사퇴와 민주당의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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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결과로 말한다. 아무리 화려한 언변이 있고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더라도, 선거에서 패배했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자 정치의 최소한의 도리다. 그러나 지금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자인 정청래 대표의 연임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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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번 지방선거는 민주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 이후 경제와 민생 회복에 대한 확실한 기대를 심어주었고, 당은 검찰 및 사법개혁, 내란종식 등 유리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평택을 비롯해 서울, 부산 북구갑, 대구, 경남 등 상징성과 전략적 가치가 큰 핵심 지역을 모두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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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각한 것은 이 패배가 단순한 의석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던 국민의힘의 핵심 인물들에게 화려한 부활의 발판을 제공했다. 사실상 퇴장했어야 할 정치적 '좀비'들이 다시 전면에 복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의 심정은 기괴하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이 결과를 단순히 "몇 석 잃었다"는 차원으로 안이하게 해석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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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는 정청래 지도부의 오만과 오판이 있었다. 특히 평택 공천 파동은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적 무능과 도덕적 결함을 동시에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민주진영 전체를 위해 헌신해 온 조국혁신당 대표 등 우군에게 최소한의 정치적 예의와 도리를 다했다면 선거 지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부는 통합보다 배제, 전략보다 정파적 계산을 선택했다. 이 배신 행위는 민주진영 내부의 상처를 깊게 만들었고, 반대로 보수층의 결집만 자극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다 잡은 승리를 지도부 스스로 날려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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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대표는 저돌적인 행동대장으로서는 뛰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거대 정당을 이끄는 전략가이자 외연을 넓히는 통합형 리더로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 선거는 감정이 아니라 정교한 전략과 확장성으로 치르는 것이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는 결국 고립되고 패배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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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패배는 수도권 전략의 경고등이고, PK의 후퇴는 전국정당화 전략의 적색신호다. 주요 전략지역의 상실은 지도부의 판단과 조직 운영이 실패했음을 증명한다. 이 경고를 무시한다면 오늘의 지방선거 패배는 내일의 총선 위기로, 모레의 정권 재창출 실패라는 엄청난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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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급격한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 사회 역시 보수화의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러한 거대한 시대적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민주당이 체제를 완전히 새롭게 정비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연이어 필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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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재명 정부 이후'의 대한민국이다. 현재 이재명 정부가 AI 반도체와 더불어 경제적 호황을 견인하고 있지만, 이 호황이 5년 후에도 지속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많은 전문가는 AI, 반도체, 로봇, 전기차, 배터리 등 미래 산업의 여러 영역에서 중국이 이미 한국을 추월했거나 턱밑까지 바짝 추격했다고 진단한다. 중국의 거대한 기술적·경제적 파고를 이재명 대통령 이후의 대한민국이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두려움마저 인다. 만약 미래 권력마저 준비 부족으로 수구 세력에게 넘겨준다면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폭망'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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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참패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면적인 성찰과 일신을 주문하는 '하늘이 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지금은 친명과 친문이 한가하게 내부 세력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 안에서 편을 가르고 싸우는 망국적 병폐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과 민주당원들, 그리고 시민사회가 나서서 이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로 통합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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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서 정청래 대표는 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고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자리에 연연할 때가 아니라 사과와 성찰, 그리고 사퇴가 먼저다. 물러나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고,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재정립해야 한다.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는 뒷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그에게도 다음이라는 미래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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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현재 민주당의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모든 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엄중한 경고다. 모두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성찰하며 새롭게 일신하지 않으면 공멸한다. 이제는 이재명 이후의 시대와 인공지능(AI) 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 강력한 '새로운 세대', '새로운 주자'들이 전면에 부각되어야 한다. 인적 혁신과 지도 체계의 전면적 개편이야말로 민주당이 살고, 나아가 대한민국을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변명하지 않는다. 오직 책임 정치만이 민주당의 미래를 다시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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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대표에게 없지 않으나 공천에 관여 하지 않겠다 하였고 내막인 공천한 민주당 최고책임자들과 실제로 평택과 전북에 권한을 행사한 리박스쿨의 실세가 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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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손에 피를 묻히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공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피한 결과는 오롯이 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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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죽어가는 청년의 사회
한국 사회의 균열과 극우 청년정치에 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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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무언가가 무너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무너지는 소리보다 서로를 향한 고함에 더 집중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는데도 모두가 상대 진영의 책임만을 묻는다. 사회는 병들어 가는데 정치는 더욱 과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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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선거 이후 벌어진 혼란도 단순한 선거 논란으로만 보기 어렵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개표소 봉쇄 시위, 재선거 요구, 부정선거 음모론, 중국 개입설, 극우 유튜브의 선동, 이를 증폭시키는 해외 정치세력의 개입까지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정치 현상으로 해석하지만, 나는 이것이 정치 문제를 넘어선 사회적 붕괴의 징후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선거의 위기가 아니라 청년 정신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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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쉽게 말한다. "일베다", "극우다", "파시즘이다"라고. 물론 일부는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왜 수많은 20·30대가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가. 왜 음모론에 쉽게 끌리는가. 왜 민주주의 제도보다 유튜브 방송을 더 신뢰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이 살아온 현실이 이미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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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20·30세대는 역사상 가장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세대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절망적인 세대이기도 하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일해도 집을 살 수 없다. 결혼은 사치가 되었고 출산은 포기가 되었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노동은 불안정해졌다. 국가는 청년들에게 책임을 요구하지만 희망은 제공하지 못한다. 그 결과 청년들은 정치적 분노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기 시작했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증오가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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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도, 미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극우는 언제나 공동체가 무너질 때 성장한다. 사람들은 흔히 극우를 이념의 문제로 이해하지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뿌리를 '외로움'에서 찾았다. 고립된 인간은 쉽게 선동에 휘말린다. 공동체를 잃은 사람은 강한 적을 원하고, 자신의 삶을 설명해 줄 단순한 이야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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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음모론은 강력하다.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중국 때문이다", "좌파 때문이다", "부정선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현실을 단순화하고, 그 단순함은 절망 속에서 큰 유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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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은 한편으로는 성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실패했다. 수학을 가르쳤고 영어를 가르쳤으며 입시를 준비시켰다. 그러나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은 충분히 가르치지 못했다. 철학을 배우게 하지 않았고, 민주주의를 체험하게 하지도 못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법, 공동체를 유지하는 법 역시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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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시험에는 강하지만 사회에는 약한 세대를 만들었다. 정보는 넘치는데 판단력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은데 지혜는 부족하다. 그 결과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하나가 학교 교육 12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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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변화는 혐오가 일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지역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정치적 반대자는 인간이 아니라 적으로 규정된다. 국제정세에 대한 복잡한 분석은 사라지고 모든 문제가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대한 비난으로 환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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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생각을 멈추게 한다. 혐오가 시작되는 순간 대화는 끝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기술이다. 그러나 혐오는 상대를 시민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만든다. 그 순간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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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또 다른 비극은 정치의 과잉이다. 교육도 정치가 되고, 역사도 정치가 되며, 문화와 언론마저 정치의 전장이 된다. 심지어 사람의 죽음까지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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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원래 사회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정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적 승리가 인간의 삶보다 중요해졌고, 진영의 승리가 공동체의 존속보다 우선시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정치는 남기고 사회는 잃어버리는 역설 속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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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특정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 진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친명과 친문이 싸우고, 개혁파와 온건파가 충돌한다. 서로를 향해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고 정치적 순결성을 경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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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동안 청년들은 사라지고 있다. 지역은 소멸하고 있으며,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자살률 또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정치권은 전쟁 중이지만 국민은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이 간극이 오늘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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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의 청년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두렵다. 그들의 분노가 두렵고, 절망이 두렵고, 냉소가 두렵다. 왜냐하면 그들이 곧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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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을 잃으면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청년이 공동체를 믿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다. 청년이 타인을 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회는 해체된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극단화가 아니다. 한 사회가 미래 세대를 잃어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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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를 배운다. 그렇다면 오늘의 한국 청년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그들은 경쟁을 배우고, 생존을 배우고, 때로는 증오를 배운다. 누군가는 좌파를 증오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보수를 증오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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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다시 치를 수 있다. 정권은 바뀔 수 있고 정당은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그러나 공동체가 무너지면 그것을 복구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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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 진영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는 일이다. 교육을 인간 중심으로 복원하고, 철학과 인문학을 회복하며, 민주주의를 단순한 투표 절차가 아니라 공존의 기술로 가르치는 일이다. 지역 혐오와 세대 혐오를 끝내고, 정치를 다시 사회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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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은 증오의 길이다. 상대를 악마화하고 음모론에 의존하며 더욱 극단으로 향하는 길이다. 다른 한쪽은 성찰의 길이다. 왜 청년들이 절망하는지 묻고, 왜 공동체가 무너졌는지 돌아보며,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려는 길이다. 문제는 어느 정당이 이기느냐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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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다음 선거를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오늘 한국 사회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특정 정당도, 특정 정치인도 아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청년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절망을 방치하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마주한 가장 깊고도 어두운 위기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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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요약하면,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선거 조작 의혹과 연결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 또한 이재명 정부를 친중 정권으로 규정하고,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한국의 안보와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한다. 결국 이번 사태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저항으로 규정하며 국민적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원문: https://www.facebook.com/search/top?q=south%20koreans%20erupt%20in%20massive%20prot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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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페이스북에서 돌고 있는 이 계정(https://www.facebook.com/DonaldTrump4President)은 트럼프를 사칭한 가짜다. 다음이 트럼프 대통령의 진짜 계정이다. https://www.facebook.com/DonaldTr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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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논지 동감합니다. 지금 청년들 특히 남성들이 여성보다 더 극우쪽으로 가게됐는지도 나름 납득이 됩니다. 왜 이리 됐을까요?
저는 시골살아서 도시 집회현장의 분위기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어떤 이슈에 특정되어 선동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먼저 보수당인 국힘이나(사실 보수당 자질도 없지만) 민주진보진영 민주당을 보면 양당 똑같이 가득권이 강합니다. 이 양당체제는 정당정치를 위해서 투쟁할 뿐 국민들에게 선거때만 표달라고 떼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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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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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를 놓아주어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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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조국이라는 사람이 정치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믿어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정치인의 이상적인 모습에 가까웠다. 점잖고 공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며, 개인의 욕망보다 공동체의 미래를 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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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그에게 정치를 주문했다. 국가를 위해 나서 달라고 말했다. 때로는 계백장군 같은 심정으로 시대의 전면에 서 달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이재명처럼 권력의 중심에 서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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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를 지켜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치는 언제나 최선을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의 정치는 대부분 차악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이 왜 정치를 두고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했는지, 왜 완벽한 정의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강조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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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조국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요하다는 것과 선택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세상은 언제나 가장 올바른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 가장 선한 사람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때로는 가장 시끄러운 사람을 선택하고, 때로는 가장 강한 사람을 선택한다. 때로는 가장 거친 사람에게 권력을 맡긴다. 우리는 이미 그런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윤석열과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택된 것 역시 그러한 현실의 한 단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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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과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가지를 절실하게 깨달았다. 지금 젊은 세대가 조국이라는 이름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의와 불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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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감정의 문제다. 감정은 논리로 설득되지 않는다. 정치적 해명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때로는 한 세대가 지나야 비로소 달라진다. 우리가 아무리 억울함을 설명해도, 아무리 정의를 이야기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형성된 감정의 벽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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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현실이다. 나는 이제 그 현실을 인정하려 한다. 그래서 더 이상 조국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도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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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알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시대의 요구나 군중의 기대에 떠밀려 가는 길에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사명감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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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시대에 따라서는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헌신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독재정권 아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시대가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는 자리 잡았고, 우리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성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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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평생의 행복을 포기하라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 국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정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면 과거에는 한 사람의 결단과 희생, 한 사람의 영웅적 서사가 시대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국가의 운명을 짊어져 달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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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한 사람이 아무리 큰 성과를 내더라도 모든 국민이 같은 감동을 느끼는 시대가 아니다. 정보는 넘쳐나고 여론은 끊임없이 분화되며, 사회는 과거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이제 국가는 특정 개인 한 사람의 희생이나 헌신만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라 수많은 시민과 제도,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함께 만들어 가는 시대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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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한 사람에게 감동받아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시대도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조국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본래 권력을 탐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바라본 조국은 권력 자체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에 더 무게를 두는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권력욕보다는 양심과 책임감이 앞서는 사람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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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에게 시대의 기대와 책임, 그리고 진영의 미래까지 모두 짊어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가혹한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존경의 이름으로 우리가 그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온 것은 아닌지, 나는 이제 조심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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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은 안타까움과 슬픔이었다. 그는 정말 그것을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수많은 지지자들이 만들어 놓은 기대와 책임감 때문에 버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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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질문이 내 마음을 오래 붙들었다. 나는 이제 그를 놓아주고 싶다. 정치적 포기가 아니라 존중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면 때로는 더 이상 무엇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일 수 있다. 조국이 정치가 좋다면 계속하면 된다. 그것은 누구도 말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명감만으로 인생 전체를 바치라고 요구하는 일에는 이제 동의할 수 없다. 그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에게도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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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 선거를 통해 나는 또 하나의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내가 꿈꾸던 이상국가가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선택하는 나라가 아니다. 그보다 몇 단계 아래의 현실(자본) 속에서 움직이는 미국과 같은 국가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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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늘 현실주의자들이 운영하지만 방향은 이상주의자들이 제시한다. 당장 승리하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더 나은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당장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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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상주의자는 언제나 주인공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사람들은 그들이 남긴 가치의 의미를 발견한다. 나는 이제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국 역시 더 이상 누군가의 기대를 위해 살아가기보다 자신의 가슴이 향하는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정치든, 학문이든, 시민운동이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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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사랑하는 방법은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를 아낀다면 이제는 우리의 욕망도 멈추어야 한다. 조국이라는 정치인이 아니라 조국이라는 인간을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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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한 사람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또 한 사람 때문에 완성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은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말하고 싶다. 국가를 위한다면, 어쩌면 이제는 내려놓을 때라고. 그리고 인간 조국이 자기 삶의 행복을 찾도록, 우리도 조용히 그를 놓아주어야 할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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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이 그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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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제 올린 글에 대해 많은 분들께서 진심 어린 의견을 주셨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 분 한 분께 답을 드리지 못해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합니다. 물론, 늘 그래왔듯이 조롱과 비웃음도 적지 않습니다. 이 또한 한국 사회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솔직히 아프고 슬픕니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는 것 역시 성숙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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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인간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일까?”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것이 반드시 정치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정치적 성공이 인간 삶의 최고 가치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가슴이 뛰는 이유가 다르고, 행복에 이르는 길 또한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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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행복’에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국이라는 정치인이 아니라, 조국이라는 한 사람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기대와 요구, 시대가 부여한 역할과 책임 이전에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삶에서는 사명감과 의무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을 걸으며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평온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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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어떤 선택을 하든, 이제는 그것이 그의 행복에 조금 더 가까운 길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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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좋은 글에 감사하지만, 조국을 제대로 아신다는 착각과 정치공학 관점에서 나온 글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만났을 때 폴리페서요 착한 교수라 생각했지만, 십여 년을 함께 하면서 경험한 조국은 선생님 생각보다 강하고, 뛰어난 전략가겸 정치가가 되셨습니다. 본격적으로 활동해야 할 때가 되었고, 현실 정치 속의 조국을 존경합니다. 조국을 만나 그의 철학과 생각을 직접 듣지 않은 상태에서 쉽게 그를 재단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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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다면, 이제는 내려놓을 때
조국은 왜 민주진영의 전략적 한계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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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결과가 드러난 순간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분노도 있었고 허탈감도 있었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컸다. 선거의 승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번 선거가 보여준 민심의 흐름이 앞으로 민주·진보 진영이 마주해야 할 현실을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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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나는 홀로 강변을 걷고 또 걸었다. 평생을 이상주의자로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정갈한 마무리를 생각하는 한 시민으로서 오랫동안 우리 사회와 정치의 방향을 되돌아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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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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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 진영은 오랫동안 자신을 개혁과 정의의 세력으로 규정해 왔다. 그리고 상당 부분 그것은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인권을 확대하며,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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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는 정의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치는 현실이며, 선거는 인식의 세계다.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믿어도 국민이 다르게 받아들인다면 정치인은 그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사회현상에 절망하며 조국이라는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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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해 한국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정치적 감수성은 민주화 세대가 경험했던 시대정신과 전혀 다르다. 공동체와 연대보다 경쟁과 생존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이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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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사회는 개인화된다. 과거에는 민주주의와 개혁이 가장 절박한 과제였다면 오늘날 젊은 세대는 주거, 취업, 자산 형성, AI 시대의 생존 문제를 더 절실하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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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부 시절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자산을 축적한 계층 일부가 오히려 더욱 보수화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개혁의 수혜자가 개혁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확보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선거는 바로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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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주·진보 진영은 여전히 과거의 정치 언어와 성공 경험에 머물러 있다. 국민은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전쟁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민주진영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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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조국이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고 생각한다. 그가 겪은 고통 또한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매우 불편한 질문 하나를 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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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억울했는가?"와 "조국은 선거에서 이길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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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영은 조국을 검찰권력의 희생양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하지만 국민 전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는 법정이 아니다. 정치는 사실을 다투는 공간인 동시에 대중의 인식을 다루는 공간이다. 민주진영은 때때로 자신들이 옳기만 하면 결국 국민이 알아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선거는 도덕시험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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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강력한 거부감 역시 불러일으키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는 이미 한국 정치에서 가장 첨예하게 갈라진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조국이 민주진영의 전략적 한계가 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와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민주 진영의 차기 대권은 불가능에 가깝다. 나아가 한국형 트럼프의 등장을 목도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두려워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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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중요한 것은 조국 개인이 아니다. 조국은 하나의 상징이다. 민주진영이 아직도 과거의 상처와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는 상징이다. 국민은 이미 AI 혁명과 산업 대전환, 기후위기, 저출생, 주거 불안, 자산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진영은 여전히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이라는 과거의 전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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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검찰개혁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미래 세대를 설득할 수는 없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과거의 억울함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이다. 조국이라는 이름이 반복적으로 정치의 중심에 등장할수록 민주진영은 미래보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세력으로 비칠 위험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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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국이 권력욕 때문에 정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위해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렇기에 더욱 묻고 싶다. 정말 국가와 민주진영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치인은 때로 싸울 때보다 물러날 때 더 큰 역할을 한다. 역사는 권력을 얻은 사람만 기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희생하여 더 큰 길을 연 사람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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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대통령이 아니었지만 함석헌 선생과 박원순, 노회찬, 이해찬을 비롯해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영향력이 시대를 스쳐 간 권력자들보다 작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치의 가치는 대통령이라는 직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시대에 응답했고 무엇을 위해 헌신했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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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대장정 속에서 어떤 이름으로 기억될 것인지, 국민과 역사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남을 것인지 성찰하는 일은 정치인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책무다. 조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진영 전체가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오랫동안 차기 주자로 거론되어 온 정치인들 역시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정치를 하는가, 아니면 정치를 위해 정치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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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혁명과 산업 대전환이 만들어 낼 새로운 시대에는 전혀 다른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기성 정치인의 역할은 영원히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가 성장할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젊은 세대의 생각이 때로는 기성세대의 눈에 낯설고 불편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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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군가는 최고의 문명을 누리는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 풍요를 누리고, 왜 또 누군가는 문명의 혜택은커녕 먹을 것조차 부족한 척박한 땅에서 태어나는가. 우리는 이러한 근원적인 불평등의 이유조차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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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기성세대의 논리만으로 젊은 세대의 사고와 가치관을 모두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만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장하고 도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오늘날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마지막 역사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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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진보 진영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특정 인물 중심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의 상처와 영광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조국을 존중한다. 그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존중과 전략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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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대권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진다면 민주·진보 진영 앞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은 전략적 공간이 열릴 수 있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진영 내부를 갈라놓았던 친문과 친명의 해묵은 대립은 소멸될 것이며, 민주·진보 진영은 보다 큰 통합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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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개인의 권력 획득이 아닌 진영 재건과 통합에 두고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당권)을 맡아 총선을 이끌게 된다면, 이는 단순한 정치적 선택을 넘어 역사적 결단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대권 경쟁의 한 축으로 남는 것보다 민주·진보 진영 전체를 하나로 묶어내고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는 정치적 설계자가 되는 편이 훨씬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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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다면 민주·진보 진영은 더욱 단단한 통합의 기반 위에서 다음 세대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완으로 남아 있는 검찰개혁과 민주주의 회복, 그리고 내란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업 역시 보다 폭넓은 국민적 공감 속에서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고 민주·진보 진영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제는 조국 역시 자신의 역할을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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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한 사람의 정치적 미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이며 민주·진보 진영 전체의 미래다. 만약 그가 대권이라는 무거운 굴레를 내려놓고 진영의 통합과 재건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더 큰 승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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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권력의 크기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무엇을 남겼는가, 누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는가를 기억한다. 그것이야말로 조국이 평생 추구해 온 가치와 가장 닮은 길이며, 역사 앞에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승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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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질문은 비단 조국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모든 정치인들 역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권력인가, 아니면 시대의 미래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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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제는 조국이 정치인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민주당, 국민의 경고 외면하면 미래 없어
개혁을 잃은 오만, 국민은 다시 심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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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패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참패다. 선거는 냉정하다. 그리고 국민은 정치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다. 민주당은 이번 결과를 단순한 지역적 패배나 일시적 민심 이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자기기만이다. 이번 선거는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엄중한 경고이자 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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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과 헌정질서 훼손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무너진 헌정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역시 여전하다. 그럼에도 국민은 민주당을 무조건 선택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수호와 민주당 지지는 같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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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을 권력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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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민주당에 힘을 실어준 이유는 민주당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국가를 정상화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어느 순간부터 국민의 명령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오인하기 시작했다. 개혁보다 권력, 민생보다 당내 정치, 국민보다 지지층에 집중했다. 국민은 그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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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정청래 리더십의 본질적 한계를 드러냈다. 정청래 대표는 윤석열 정권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강한 투쟁력과 존재감을 보여준 정치인이다. 그러나 강한 투사라는 사실이 곧 훌륭한 지도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투를 지휘하는 것과 나라를 이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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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는 상대를 공격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국가의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분노의 언어가 아니라 미래의 비전이며, 지지층의 열광이 아니라 국민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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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선거는 정청래 리더십이 대중적 확장성과 전략적 통합 능력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강한 선봉장으로서의 역량은 입증했을지 몰라도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은 한계를 보였다. 대권의 꿈은 사실상 여기서 끝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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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역시 점점 지지층 정치에 갇혀 갔다. 비판은 적대시했고 다른 목소리는 내부 총질로 몰아붙였으며,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민심 전체로 착각했다. 정치적 오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정당이 국민보다 팬덤을 우선하는 순간 쇠락은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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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가장 큰 적은 국민의힘이 아니다. 민주당 내부에 자리 잡은 오만과 안일함이다. 민주당은 역사적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해 왔다. 국민이 만들어준 승리를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고, 정권을 잡으면 개혁보다 권력 유지에 몰두했다. 국민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실망은 결국 심판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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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국민은 내란과 헌정 파괴 세력을 심판하라고 했지 민주당에 무제한의 면허를 준 적은 없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라고 했지 또 다른 기득권이 되라고 허락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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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주당은 비판을 수용하기보다 방어에 급급했고, 성찰하기보다 자기합리화에 몰두했다. 민심의 경고음은 외면한 채 "우리가 옳다"는 확신 속에 안주했다. 정권 초반의 높은 지지율과 정치적 우위를 영구적인 자산으로 착각하는 순간 몰락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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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재명 정부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야당이 아니라 민주당 자신일 수 있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한 개혁 의지를 갖고 있어도 집권당이 오만과 무능에 빠지면 국정 동력은 급속히 소진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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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지금 자신을 해체하는 수준의 혁신에 나서야 한다. 우선 이번 참패의 책임을 분명히 져야 한다.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당은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특히 현 지도부는 변명보다 책임을 선택해야 한다. 지도부 전원 사퇴와 비상 혁신체제 구축은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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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민주주의 복원도 시급하다. 비판을 적으로 돌리는 문화, 팬덤 정치에 기대는 정치, 특정 세력 중심의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를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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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대대적인 인적 쇄신과 전략 혁신이 필요하다. 목소리만 큰 정치가 아니라 국정을 설계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인재들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당내 기득권 역시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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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다시 물어야 한다. 존재 이유가 권력인가, 민주주의인가? 당의 승리인가, 국민의 승리인가? 국민은 내란 세력을 심판하라고 했지 민주당에 영구 집권의 면허를 준 적은 없다. 민주주의를 지키라고 했지 또 다른 기득권이 되라고 허락한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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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는 단순한 패배가 아니다. 국민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민주당이 이 경고마저 외면한다면 다음 심판은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국민은 언제나 권력보다 강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사는 오만한 권력을 결코 오래 용서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미래 역시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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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훌륭하신 기고의 글 경종을 울립니다. 전투에서 수졸이 각개 전투에서 이긴들 장수가 목 베임을 당하면 패배를 의미합니다.
서울시장이 그 단적인 예이고 윤석열의 핵심 참모 한동훈을 살려준 것은 보수결집이 강화되고 장동혁을 중심으로 친윤내란세력은 기세가 꺽임으로써 오세훈-한동훈-이준석 3각 편대가 야성을 드러내어 차기 대선에서 변수로 작용할것입니다.
반대로 민주진영은 정체성을 잃고 조국을 사지로 몰았고 이재명의 픽인 하정우마져 패배함으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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