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1

논문 [식민자 2세의 첫사랑――유아사 가쓰에 「칸나니」 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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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식민자 2세의 첫사랑――유아사 가쓰에 「칸나니」 재고――>

요약: 식민자 2세의 시선과 피식민자 소녀의 목소리

유아사 가쓰에의 소설 「칸나니」는 12세의 일본인 소년 류지와 14세의 조선인 소녀 칸나니의 첫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지배 구조 속에서 두 사람의 가문은 정반대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놓여 있지만, 작품은 이들의 순수한 감정과 문화적 하이브리드성(혼종성)에 대한 낙관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식민지적 왜곡을 일시적으로 은폐한다. 류지는 칸나니를 통해 조선어를 배우고 조선인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기 시작하나, 3·1 독립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칸나니가 살해당함으로써 두 사람의 관계는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고 류지의 반쯤 열렸던 시선은 다시 닫히게 된다.

기존 연구는 이 작품이 결국 식민자의 시선으로 수렴된다고 지적하면서도, 칸나니라는 캐릭터가 가진 독특한 생동감과 휘황한 광채에 주목해 왔다. 논자는 이러한 생동감의 원인을 작가 유아사 가쓰에가 지닌 <식민자 2세>로서의 특수한 정체성에서 찾는다. 유아사는 일본 내지를 고향으로 느끼지 못하는 소외감과, 식민지 조선을 향한 왜곡된 향수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유아사의 또 다른 작품인 「심전개발」에서도 드러나는데, 여기서 작가는 조선인이 완벽하게 일본화되는 것에 저항하며 <언제나 변함없는 조선 사회>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표출한다.

결과적으로 「칸나니」는 식민자 2세의 희박한 내지 귀속 의식 덕분에 단순한 <여행지의 연애담>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히 칸나니가 류지의 사투리를 가리켜 동화 정책의 언어와 구별되는 <이상한 일본어>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대목이나, "일본인은 다 싫지만 너는 좋다"라고 외치는 직선적인 대사는 지배 구조를 뛰어넘고자 하는 피식민자의 주체적 목소리를 반영한다. 비록 작가 유아사는 전후에 일본으로 귀환하며 하이브리드한 요소를 도중에 포기하고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회귀했으나, 소설 속 칸나니는 식민지 소설의 균열 틈새에서 여전히 자신만의 생생한 목소리를 발하고 있다.

평론: 낭만적 하이브리디티의 한계와 균열의 미학

본 논문은 식민지 문학을 분석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이분법적 구도인 <제국주의 찬양> 혹은 <체제 저항>의 틀을 넘어, <식민자 2세>라는 주변적 정체성이 문학 텍스트에 미친 영향을 포스트コロニアル(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서 섬세하게 추적했다는 점에서 지적 가치가 높다. 논자가 지적하듯이, 유아사 가쓰에의 문학은 지배국과 피지배국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시선이 만들어낸 기묘한 낙관주의와 노스탤지어의 산물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칸나니가 제안하는 "조선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말하자"는 제안은 식민지 권력관계의 불평등함을 간과한 무지하고도 낭만적인 하이브리디티에 불과하다. 피식민지인의 언어 박탈이라는 폭력적 현실 위에서 구축된 유토피아적 환상은 식민자 중심의 위선적 관용으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본 논문이 탁월한 통찰을 보여주는 지점은, 이러한 작가의 한계와 변절 가능성과는 별개로, 텍스트 자체의 균열을 통해 피식민자의 목소리가 독자에게 도달하는 방식을 증명한 부분이다.

칸나니의 생동감은 식민자가 베푼 시혜적 묘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포지션을 넘어서는 관계이고 싶다"는 피식민지인의 주체적 욕망과 비극적 현실의 충돌에서 발생한다. 결국 논자의 분석처럼 유아사 가쓰에라는 개인은 현실의 벽 앞에서 일본이라는 안전한 국적성 내부로 철수해 버렸을지언정, 그가 포착해 낸 문학적 균열 속 칸나니의 목소리는 제국주의 문학이 스스로 감추고자 했던 모순을 폭로하는 가장 강력한 텍스트적 저항으로 남게 된다. 식민자 2세의 뒤틀린 향수가 역설적으로 피식민지인의 목소리를 보존하는 통로가 되었다는 본고의 논지는 식민지 타자 재현의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중대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혹시 이 논문에서 다룬 유아사 가쓰에의 다른 작품인 「심전개발」이나 포스트콜로니얼 비평 이론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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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자 2세의 첫사랑 ― 유아사 가쓰에 「칸나니」 재고(再考)>
(松浦芳子, 2007) 

요약 + 평론

이 논문은 일본 식민지 조선에서 성장한 일본인 작가 유아사 가쓰에(湯淺克衞)의 대표작 <카ンナニ(칸나니)>를 포스트콜로니얼 관점에서 다시 읽은 연구이다. 논문의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왜 이 작품은 명백한 식민지 소설임에도 오늘날까지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가? 특히 조선인 소녀 칸나니는 왜 여전히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지는가?

유아사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일곱 살 때 아버지를 따라 수원으로 이주하여 약 30년을 조선에서 보냈다. 그는 1919년 수원에서 3·1운동을 직접 목격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1934년 <칸나니>를 집필했다. 작품은 일본인 소년 류지와 조선인 소녀 칸나니의 첫사랑을 그린다.

논문은 우선 이 작품의 독특성을 지적한다. 일본 근대문학에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관계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 거의 없다. 그러나 <칸나니>는 일본인 소년과 조선인 소녀의 만남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작품 속 류지는 조선 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만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한다. 칸나니는 일본인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류지는 좋아한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류지에게 조선어를 배우라고 권하며 자신은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말한다. 두 언어를 섞어 쓰며 함께 살아가자는 그녀의 꿈은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논문은 이 장면이 식민지 현실을 가린다고 지적한다. 칸나니가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식민지 교육의 결과이다. 겉으로는 평등한 문화 교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본어가 지배 언어이고 조선어는 주변으로 밀려나는 상황이었다.

류지는 칸나니를 통해 조선인의 시각을 조금씩 배우게 된다. 조선 아이들이 홍수 후 위험을 무릅쓰고 참외를 주워가는 이유도 이해하게 되고, 조선 시장에서 먹는 음식의 가치도 새롭게 보게 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일본인 시각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성찰하지는 못한다.

이 점이 논문의 중요한 지적이다. 류지는 조선인을 이해하기 시작하지만 식민주의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후 3·1운동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비극으로 향한다. 칸나니는 실종되고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녀의 죽음은 두 사람의 사랑뿐 아니라 식민지 사회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맺을 수 있었던 관계의 한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논문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칸나니는 죽었음에도 독자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는가?

저자는 그 이유를 유아사 자신의 정체성에서 찾는다. 유아사는 일본인이지만 조선에서 성장했다. 일본 본토를 완전한 고향으로 느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조선인이 될 수도 없었다. 그는 식민지 2세라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논문은 유아사의 수필 <고향에 대하여>를 분석한다. 그는 일본에 가면 조선 출신으로 취급받고, 조선에서는 일본인으로 살아간다. 그는 "도대체 내 고향은 어디인가?"라고 묻는다. 이러한 정체성의 흔들림이 <칸나니>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작품 <심전개발(心田開発)>에서도 유아사는 일본화되어 가는 조선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것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비판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기억하는 조선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향수에 가깝다.

논문은 유아사의 한계를 분명히 지적한다. 그는 결국 일본인으로 남는다. 식민지배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전후에 작품을 다시 쓸 때도 자신의 식민주의적 시선을 충분히 반성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나니라는 인물은 단순한 친일 조선인 캐릭터가 아니다. 그녀는 일본을 비판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식민지 질서 너머의 인간적 관계를 꿈꾼다.

논문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칸나니의 유명한 대사에 대한 해석이다.

"일본인은 모두 싫어. 순사는 더 싫어. 그래도 너는 좋아."

저자는 이 말이 단순한 연애 고백이 아니라 식민지 구조를 넘어서는 관계가 가능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이라고 본다. 비록 작가가 창조한 인물이지만, 칸나니의 목소리는 작품 속 균열을 통해 지금도 들려온다는 것이다.

<평론>

이 논문은 단순한 작품 해설을 넘어 식민지 2세 일본인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분석한 뛰어난 연구이다.

특히 식민자를 단순한 가해자 집단으로 환원하지 않고, 식민지에서 성장한 일본인들이 경험한 애매한 정체성과 소속감의 문제를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세진님께서 관심을 가지시는 한일 기억 문제나 식민지 경험 연구와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다만 논문의 한계도 있다. 저자는 칸나니의 목소리에서 저항과 가능성을 읽어내려 하지만, 실제 작품의 서술권은 끝까지 일본인 소년 류지에게 있다. 따라서 칸나니의 목소리를 얼마나 독립적인 피식민자의 목소리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럼에도 이 논문은 중요한 통찰을 준다. 식민지 문학은 단순히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이분법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식민지 2세, 혼혈인, 귀환자, 이주민 같은 경계적 존재들이 있었고, 그들의 경험은 식민주의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 논문은 「칸나니」를 식민지 미화 소설도, 저항 문학도 아닌, 식민지 2세 일본인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조선에 대한 향수가 만들어낸 모순적 텍스트로 해석한 뛰어난 포스트콜로니얼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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