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20

[전문]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 '윤미향·정의연 기부금 횡령 의혹' 강타 < 국회/정당 < 정치 < 기사본문 - 일요서울i

[전문]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 '윤미향·정의연 기부금 횡령 의혹' 강타 < 국회/정당 < 정치 < 기사본문 - 일요서울i

[전문]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 '윤미향·정의연 기부금 횡령 의혹' 강타
기자명 조주형 기자
입력 2020.05.25  

시민들이 2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2020.05.25. [뉴시스]

[일요서울ㅣ조주형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부금 사용처 유용·횡령 의혹'에 휩싸인 윤미향 당선인, 그가 대표로 있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해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오후 2시 40분 대구 인터불고 호텔에서 2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할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윤 당선인을 비롯한 정의연에 대해 비판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는 지난 7일 "정의연 후원금이 불투명하게 사용되고 있다"며 "30여년 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 집회 때 돈없는 학생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내지만 제가 벽시계 하나 사달라고 해도 사주지 않았다"고 폭로하면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그러자 윤 당선인이 대표로 있던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11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인권재단 사람' 2층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사용이 불투명하다는 논란에 대해 사과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정작 기부금 세부 내역에 대해선 공개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내놔 공분을 샀다.

한편 다음은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 전문이다.

시민들이 25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2020.05.25. [뉴시스]




〈이용수 할머니 2차 기자회견 전문〉

이걸 전부 카메라로 찍었으면 좋겠어.(관계자 : 저희가 파일로 돌리면 됩니다) 제가 두 번째 기자회견을 합니다.

누굴 원망하고 잘못했다고 하는 건 제가 처음 기자회견할 떄 했고 한데, 많이 생각지 못하는 것이 나왔어.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검찰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정신대 대책 협의회. 공장에 갔다 온 할머니들이야. 그런데 공장에 갔다온 할머니들. 정신대가 할 수 있어.

하지만 공장 갔다온 할머니하고 위안부. 아주 더럽고 듣기싫은 위안부하고는 많이 달라. 공장 갔다온 할머니들은 공장에서 일하고 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는 간 데가 다 달라.

잠깐 제가 간 데를 말씀드릴게.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16살. 만으로 하면 14살이야. 저는 양력으로 돼가 있어. 그때 성을 갈지 않으면 배급을 안줬어. 성을 갈아서 야스하라 라고 갈았어.

그런데 학교도 그때는 일본 학교야. 제가 3,4학년까지 다녔어. 가타카나를 알았어. 끌려가서도 대만 xx 카미카제 특공 부대로 끌려가서도 그 장교가 가타카나로 써줘서 대화를 했어. 이 군인이 하는 이야기도 피해자라는 이야기를 했어. 그러면 제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히가이샤. 라고 적은 걸 배웠어. 이 군인이 이름을 지어줬어.

야스하라 도시코 라고 지어주면서. 나도 도시코 같은 피해자라는 것을. 히가이샤라는 것을 적어줬. 히가이샤가 뭔고. 몰랐어. 그 후에 겪으면서 제가 생ㄱ가할 떄 끌려가서 당한 건 말로는 못해. 제가 쭉 30년 동안 해오면서 미국 떠돌아다니면서 증언을 했어.

그러면 제가 확실하고 바른말 하고 이러니까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데를 몰랐어. 그런데 제가 92년도 6월 25일날 신고를 할 적에 윤미향이라는 간사였어. 간사한테 했어.

25일날 했는데 29일날 모임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갔어. 어느 교횝디다. 교회에 갔었는데 그날 따라 일본 어느 선생님이 정년퇴직을 하고 돈을 천엔인가? 줬다고 하면서 백만원씩 나눠줬어. 그게 무슨 돈인지도 몰랐어.

그때부터 모금을 하는 걸 저는 봤어. 왜 모금을 하는지. 그것도 몰랐어. 따라다니면서 모금을 하는데 보니까 농구선수들이 농구를 하는데 기다렸어. 기다렸는데 기대를 가지고 그 농구선수가 돈을 들고 모금을 하더라고요. 그 돈을 받아오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그게 왜 그런지 몰랐어. 그런가보다 했는데도 좀 부끄러웠어. 저렇게 하면서 애를 쓰고 이기려고 하는데 거기 버젓이 앉아서 그 농구 끝나고 하면 돈을. 받아서 나왔어. 좀 늦었어. 늦게인데. 배가 고픈데 좀 맛있는거 사두고. 하니까 돈 없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뭐 그런가보다 생각했어. 어디 가도, 또 교회 가도 또 돈을 주면 그거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모르고 쭉 30년을 해가지고 나왔어. 그런데 무엇입니까.

정신대 대책협의회입니다. 그러면 공장 갖다온 할머니들로 해야하는데 말하자면 빵으로 말하자면 공장 갖다온 할머니들 밀가루로 반죽해서 빚어놓고 속으로는 맛있고 귀하고.

그러면 그 속은 위안부야. 그걸 해도 쭉 30년을 해와도 저는 그걸 몰랐어. 그저께 그그저께도 몰랐어. 어저께 저녁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것은 왜. 뭣땜에. 정신대 할머니와 함꼐하는 시민 모임이 위안부 생명을 걸어놓고 끌려놓고 간 위안부를 왜 즈그가 정신대 할머니랑 합해가지고 쭉 이용해나왔습니다.

저는 그것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어저께 제가 생각하니. 이럴 수가 있나. 30년 동안 앉아가지고 얘기하는게 사죄해라 배상해라. 하는데 일본 사람이 뭔줄 알아야 사죄하고 배상하지. 섞어가지고 사죄안해도 된다는거 아닙니까.

이걸 30년동안 하면서 사죄배상 요구하고 학생들까지 그 고생을 시켰어. 그 학생들 돼지저금통 털어 나오는 돈도 받아 챙겼어. 이래서 저 어제 한숨도 못잤어. 왜 뭣떔으로 정신대대책협의회만 정신대 문제만 하지 왜 즈그가 무슨 권리로 위안부 피해자를.. 사용했어.

이것을 생각하니 저는 자다 일어나서 펑펑 울었어. 왜 내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왜 여태까지 말도 못했나. 하는 걸 생각하니 그래. 내일 기자회견에는 이것을 반드시 밝혀야겠다. 저희가 사죄배상 요구하는 것을 막았잖아. 위안부하고 정신대하고 어떻게 같습니까. 위안부는 생명을 걸어놓고 거기 가서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데. 이런걸 30년을 이용해나왔어. 저는 결심했습니다. 내일 기자회견 할 때는 이것을 내가 반드시 밝혀야되겠다. 이분이. 그 사람들이 바봅니까. 뭣하러 정신ㄴ대 대책협의회가 위안부 문제를 하는데 거기에 해당치도 않았는데 뭣하러 그사람들이 사죄하고 배상하겠나. 안한 이유를 저는 알았어. 이것 또한 무엇인가. 사진 한장만 목에 걸고 했는데 이것은 할머니들로 위안부 할머니들로 팔아먹었어. 팔았습니다. 내가 왜 팔려야됩니까.

여러분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 부모님들은 불면 날아날까. 엄마가 감춰서. 이리 온나. 해서 멕이고 했어. 이건 남의 집의 귀한 딸 고명딸을 밤에 그것도 끌고 가서 카미카제 부대를 가서 방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끌고가서 전기고문과 칼 가지고 몸을 그어서 죽여놨어.

그런데 군인이 보니까 급하게 들어가라고. 군인이 앉아있는데 안들어간다니까 오는데. 머리를 질질질 끌고 가서 광 아래 자물쇠. 문을 확 열더만 밀었어. 또 일으켜서 발로. 돌덩이보다 위험한 군화발이었어. 허리를 발길로 차서 엎어졌는데 너무너무 배 찢어지도록 아프고 죽도록 아프고. 저 잘못한 거 없습니다.

근데 잘못했다고 빌면서 살려달라고 했어. 그런데 앉혀가지고 두 팔을 놓고. 여기 하나 감고 여기 하나 감고 지금 머리에 귀에 소리납니다. 그때 제가 엄마를 한번 크게 불렀는데. 귀에서 나는지 머리에서 나는지. 이것은 어린 날에서부터 지금까지 지금도 나.

이래도 이걸 왜 그런지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어. 그런데 정신대대책협의회라고 하면 이걸 밝혀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할머니 어디갔다왔습니까. 해서 밝혀줬는데 한번도 할머니 앉혀가지고 증언 한번 받아본적이 없어. 밥먹는데도 어디갔다왔습니까. 하면 그걸 가지고 책을 냈어. 93년도부터 ㅡ에 집이 있었어.

책을 놓고 그 책을 6천500원에 파는 걸 봤어. 그래도 그걸 몰랐어. 그런 책이 있는줄 모르고 그것이 당연한갑다 하고 다니면서도 미국으로 어디로 다니면서 제가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증언도 하고 또 정신대 대책협의회 박물관을 짓는데 서대문형무소에서 짓는다고 했어.

그때에 박ㅡ씨하고 큰조카내외하고 저하고 가서 ㅡ를 받고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증언을 했어. 그 박물관 대표가 어데 있어. 대표란 소리 하지 마라. 창피하다. 고 했어. 그러면 대표 소리는 안해도 대표 대우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끝까지 3월 30일날 제가 전화를 했어.

미향씨. 이러면 안되지 않나. 한번 오라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기자회견할란다. 했는데 아주 큰소리로 당당하게 기자회견 하라고 해서 제가 5월 7일 기자회견 한 거야. 이런 등등을 하나하나 말씀을 못드리겠어. 빨리 생각이 안납니다. 이래서 제가 했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어느날이야. 여기 와가 있을 거야.

소위 국회의원으로 나올적에 ㅡ제가 도와준 건 없지만 가보고 돼야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저따구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느날 저녁에 나갔다가 들어오니까 들어와 있는데 문을 열어돌라고 해서 열어주니까 윤미향씨가 싹 들어오는 거에요. 놀래서 넘어갈 뻔했습니다. 그러면서 와서 무릎을 꿇고 무슨 말인지 용서? 뭐를 용서를 합니까.

뭘 가지고 와야. 뭘 가지고 와야 용서를 하든가말든가하지요. 용서? 뭐를? 보니까 엄청나더구나. 그걸 검찰에서도 할 것이고 내가 며칠 후에 기자회견을 할테니 그때 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갔는데 나가보니까 소위 교수라카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는데 내가 말을 안했어.

뻔뻔시리 차에 내려서 휠체어 타려하니까 뭣이 어떻고. 도대체 뻔뻔시럽기 짝이 없어. 이런 사람이 윤미향이를 ㅡ했다고 해. 해서 윤미향이에게 내가 기자회견 할텡게 그때 오라고 하고 나갔는데 어데 있더라고. 있는데 거기에서 무슨 원수졌는 것도 아니고 30년을 지내왔어. 했는데 한번 안아달라고 합디다.

그래서 저는 생각에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안아주니 저도 인간입니다. 30년을 같이 했으니. 원수도 아니고.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기침) 눈물이 왈칵 나서 제가 울었는데. 이걸 가지고 기자님들.

좀 부탁드립니다. 명백하게. 좀 기사를 내주세요. 그걸 가지고 용서했다. 이런 기사. 너무 황당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이거는 확실하고 명백히 여러분들도 다 책임이 돌아가는 일입니다. 제가 이거를 명백하게 하려고 했는데. 생각은 있었어. 어떻게 이걸 그만둬라. 하지마라 할 수가 없었어. 해서 있었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맘대로 뭐든지 하고싶으면 하고 팽개치는데 어떻게 30년 같이 해왔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맘대로 팽개쳤어.

우리 국민들. 세계 여러분들이 그 데모에 나오십니다. 그분들도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랬어. 이래놓고 자기가 사리사욕 챙겨서 맘대로 또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어. 저는 모릅니다. 저한테 얘기도 없었고 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거니까 제가 무엇을 용서를 구합니까.

용서? 그분도 자기 맘대로 했으니까 하든지 말든지 하는건데. 물어볼 필요도 없잖아. 뭣때문에 용서를 바랍니까. 그거 아니라도 여러 수십만가지를 제가 말씀을 다 못드립니다. 속이고 이용하고 ㅡ 30년동안 재주했어. 그 돈은 받아먹었어. 무슨 용서를 바랍니까.

저는 데모 방식을 바꾼다는거지 끝내는 건 아닙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시작했고 또다시 새롭게 좀 학생들에게 교육적인 이거를. 하기 위해서 제가 이거를 바꾼다고 했어. 그러면 먼저도 이 이야기를 했어.

일본과 한국은 이웃나라야. 이 학생들이 결국은 그 나라 주인 아닌가. 하니까 이 학생들이 알아야 사죄 배상. 뭣때문에 사죄배상을 한다는 걸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한국이 거짓말 한다. 그 학생들한테 물으면 한국이 거짓말쟁이다. 거짓말만 한다. 이렇게 나오니까 그것도 몰라서 그런거 아닌가. 우리 학생들도 몰라서 그렇고. 한국이 거짓말만 하는 한국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거야. 일본과 한국을 학생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이것이 시간이 오래 갈 거야. 시간이 가도 이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이 왜 일본한테 배상하고 사죄하라고 하나. 뭣때문에. 이런걸 얘기하면 그러면 일본은 왜 하지 않노. 하면 그게 아니라고 하고 거짓말이라고 하니까 우리는 그 말 들었다. 한국이 거짓말만 한다. 그렇게 해놨지 않나.

그럼 이걸 학생들한테 가르쳐서 서로 왕래하면서 친해지면 속에 할 말도 있고. 또 배워야 해. 배워야 알지요. 그래서 제가 짧은 생각이지만 저로선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어. 제가 대구에 역사관이 있어. 이것 또한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었어. 이걸 누가 했나. 대구 최ㅡ변호사가 대표로 있으면서 이걸 했어.

지금 윤미향을 밀고 있어. 윤을 밀고 있으면서 어느 아침에 할머니. 윤미향 욕하지 마세요. ㅡ일본에 돈 많이 내고 하니까. 그럼 나비기금이라든지 하는거 김복동할머니 돈입니까. 어느날 미국 가기로 했는데 모금하기로 했어. 모금을 6백만원인가 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이 전화가 왔어. 이것 또한 말이 됩니까? 모금하라 했습니까. 그뿐 아닙니다. 많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30년 그것만 이야기했는데 줄줄줄 나오는게 엄청나게 나옵니다. 말도못하게 나옵디다. 할머니 팔아서 햇으니까. 왜 위안부 할머니를 즈그가 했습니까. 부정 아닙니까 이것도. 이것도 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무슨 사죕니까.

김복동 할머니요? 김복동 할머니는 한쪽눈 실명이야. 저보다 두살 윕니다. 실명이고 한쪽눈 조금 보이는 이 할머니를 끌고 댕겼지요. 미국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면서. 있을 때 잘하고 할머니 있을때 해야하는데 고생시키고 끌고다니면서 할머니 이용해먹고 그래놓고도 뻔뻔스럽게 여주에 가가지고 눈물을 흘려요? 그거는 가짜 눈물입니다.

병주고 약주고 하는 이런. 그도 죄인데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 그것은 다 검찰측에서 밝힐 겁니다. 하지만 정신대대책협의회에서 위안부를 이용해서 한 것은 도저히 용서못합니다. 이것 또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해서 저는 끝까지 나이가 들다보니 자신이 없습니다. 한데, 우리 학생들 올바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일본과 한국과 학생들 해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올바른 역사를 공부를 해서 위안부 문제 사회 배상. 이건 천년 만년이 지나도 반드시 일본이 해야 해.

이런걸 알게 하기 위해서 양국이 친하게 지내면서 역사를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누명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 해결해줄 사람은. 우리 학생들이라고 생각해. 왜 내가 증언을 다 해야하고. 늦게까지 살아 이게 죕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다. 언니 동생들. 내가 이렇게 해결하고 왔으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빌랍니다. 그래서 그거를 생각하니까 너무 제가 미안하고 한데 저는 하나도 부끄럼이 없어.

이렇게 위안부야. 위안부. 위안부가. 여자야. 이것이 저는 세계 여성분들께 피해 끼칠 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세계 여성 여러분들 저희가 위안부지만 여성이라는 그 두글자가 너무 미안하고 해서 어떡하면 이런 것도 내가 좀 미안한 말씀 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 기회로 모든 여성분들께 정말 미안합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누명도 쓰실 것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위안부를 여자다.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그런 소리 들으실겁니다. 해서, 제가 한사람한사람에게 어떻게 다합니까.

이런 기자회견을 통해서 세계 여성분들에게 확실하게 위안부가 여러분들의 여자라는 두글자 손상 입혔다는게 참 죄송합니다. 하는 걸 말씀드립니다.

제가 어떻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제가 교육을 확실히 두 나라가 서로 왕래하고 친하게 지내가지고 이 역사를 아셔가지고 이 억울한 위안부 문제를 사죄받고 배상해야 제가 사죄를 받아야 위안부 누명을 벗어. 제가 왜 위안부고 성노옙니까. 그 더러운 성노예 소리를 왜 합니까. 미국 들으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팔아서 뭘 했습니까.

저 안성이라는 것도 나오는데 쉼터 화려하게 지어놨습니다. 그래서 윤미향. 그 위대한 대표. 그 아버님이 사셨다고 하더라고요. 이런거 엄청나게 나왔는데 그것은 검찰청에서 다 밝힐 겁니다. 이 죄를 모르고 아직까지도 큰 소리 하고 있는 이 사람들 죄는 지은대로 가고 공은 ㅡ로 갑니다.

이 죄를 물어서 죄를 살려야 해. 살린다고 죄가. 마음이 풀리는 건 아니지만 고쳐야지. 이 후에 두번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돌려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제가 또 무슨 말씀이 있겠습니까. 이걸 밝히기 위해서 하는데 너무 여러분들이 오셧는데 좌석이 너무 좁습디다. 그래서 제가 장소를 바꿨습니다.

기자 여러분들 부탁드립니다. 꼭 했던 말 그대로 해주세요. 없는 말 추측해가지고 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를 욕보이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다 옳은 말씀으로 기사를 내 주셨으면 두번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제가 오늘 장소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앉아서 마지막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들도 너무 가슴아파 할 것이고 해서 제가 요즘 이야기를 했어. 여러분들이 그래 아시고. 저 요즘 정말 죽겠습니다.

너무 죽겠습니다. 또 코로나가 퍼졋다고 하는데 저는 걱정이 됏어요. 좁은데서 하면 안되겟다는 생각에. 그래서 여러분을 큰 데 모셧어. 그 점 양해하시고 꼭 기사는 있는 그대로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박노자)...권용득 반론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박노자)...권용득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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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13 June 2020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
 
저는 이런 질문을, 제 학생들에게 비교적 자주 받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 기간도 예컨대 영국의 인도 지배보다 약 7배나 짧고, 해방 시기도 세계사적으로 보면 비교적 이르고 (아프리카의 많은 식민지들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 해방됐습니다), 해방의 방식도 원한을 크게 남기는 독립 전쟁이 아닌 제3자들의 '개입'이었는데, 한국의 반일 감정들이 왜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그 어느 옛 식민지의 옛 식민 모국에 대한 감정보다 더 나쁘냐는 질문입니다. 비슷한 일제 식민지 경험을 가진 대만 학생들은 특히 이와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지고, 영국의 식민지를 경험한 싱가포르 학생들에게도 이 부분은 궁금증을 많이 유발시키는 것 같습니다. ​

이런 질문을 자꾸 받아보니 제가 '옛 식민 모국에 대한 옛 식민지의 부정적인 집단 정서"의 유발 요인들을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대체로는:​
1. 
1) 과거에 대한 나름대로의 '정리', 그리고 식민지 시대 토착 엘리트의 '교체'가 잘 이루어질 수록
2) 옛 식민 모국에서 옛 식민지 출신에 대한 사회 통합이 잘 될 수록
3) 옛 식민지 시절에 식민 모국이 차별을 완화시켜 사회 통합 정책을 많이 진행할 수록
4) 식민 지배 종식 이후 또 어떤 다른 외부 집단의 폭력을 많이 체험할 수록
식민지 시절에 대한 기억의 지형은 비교적 '덜 나쁜' 쪽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인도나 인도네시아, 베트남의 경우에는 결국 식민지 시절의 토착민 관료들이 아닌 독립 운동가들이 정권을 잡았는가 하면 (1),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인도 출신들이 이민 와서 한 때에 비교적 쉽게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영국은 향항의 주민들에게도 이민 와서 영주권, 그리고 궁극적으로 시민권 획득으로의 길을 제시하기도 하지요 (2). 우즈베키스탄 같은 구쏘련 후계 사회로 가면 구쏘련에 대한 감정들이 비교적 좋은 편인데, 역시 구쏘련 시절에 러시아인과의 '차별'을 적어도 '정책' 차원에서 느낄 필요가 없었으며 복지 정책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크게 작용된 것 같습니다 (3). 그리고 대만 같은 경우에는 일제 식민 시절이 끝난 뒤에 후퇴하는 국민당의 당군에 사실상 점령을 당하고, 그 후로는 대륙 출신의 '외성인'들의 "제2 식민 지배"를 받아온 탓에 일제 식민 시절에 대한 기억들이 상대화된 부분은 있습니다 (4). 그러나 이 네 가지 항목 중에서는 대한민국에 적용되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탈식민화 이후 제1공화국의 대부분의 장관과 제3공화국의 대통령까지 다 식민지 토착 관료 출신들이었으며, 일본에서는 재일 조선인들이 시회 통합이 아닌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됐습니다. 식민지 시절에는 조선인에 대한 노골적인 임금 차별 등이 끝까지 계속 자행됐으며, 식민 지배 종식 이후 남한에 들어온 미국은 적어도 직접 지배 아닌 간접 지배의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일본'에 대한 기억의 지형은 대체로 부정 일변도로 잡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1) 피식민자들에게 애당초에 식민지배세력에 의해 '망국'을 폭력적으로 당한 근대형 국가가 있었다면
2) 계속해서 피식민자들의 독립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해야 했다면
보통 탈식민 이후의 기억의 지형은 부정적으로 형성되게 돼 있습니다. 예컨대 싱가포르의 경우에는 영국에 의한 식민화 이전에는 말라까의 술탄을 정점으로 하는 왕조 국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 해도, 식민지와 그 후 주민들의 대부분을 구성한 화교들은 그 국가와 무관했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를 기지로 하여 무역 등에 종사했던 화교 신흥 부르주아 집단은, '항영 투쟁'한다기보다는 식민 권력과의 일종의 블럭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좌파적 화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의 주된 저항 형태는 중국 공산당에 대한 후원금 송금이었고요....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대한제국은 비록 절대 왕권 국가이었지만, 분명히 '근대 국가'를 지향했으며, 이미 1900년대에 근대적 민족주의를 배태했습니다. 그리고 일제에 대한 민심이 하도 좋지 않아 '명분'의 차원에서라도 온건 부르주아 세력마저도 현실적으로 가능했을 때에 적어도 항일 투쟁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1920년대의 좌파가 <동아일보>를 타협적 민족주의로 분류했는데, <동아일보>가 가장 크게 선전하는 '영웅' ('성웅')은 김성수와 한 번 편지 교환까지 한 인도의 간디이었습니다. 김성수-김연수 형제의 본심이야 어떻든간에 '운동'을 떠나서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던 데가 바로 그 당시 조선 사회이었습니다. 그 운동에 대한 탄압이 어땠는지 굳이 다시금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요. 일제 때에 익힌 고문의 기술을 한국 보안 경찰들이 그나마 접은 것은 김대중 정권 때쯤의 일입니다. 1990년대 초반 사노맹 사건까지만 해도, 일제 시절과 비슷한 방식의 고문이 자행됐죠. 그러니 기억의 지형은 어떻게 됐겠어요?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 등은 일찍이 2000년대에 '대일 화해' 담론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덮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 화해!"라고, 피해 당사자들의 편에 서지도 않은 고급 '지식인'은 외쳐봐야 화해가 이루어질 리가 만무합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데는 금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본 내의 진보적 시민 사회와 협조해왔기 때문이죠. 한국인들의 대중 의식 속에서 '일제'와 '일본'이 각각 다른 층위를 차지하게 하자면, '일제'와 질적으로 다른 사고를 지니며 '일제'의 유산을 청산하고자하는 "또 하나의 일본", "색다른 일본"의 존재가 더 가시화돼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컨대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의 사회적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부분은 많지만 (기본적으로는 호사카 교수는 아무래도 온건 자유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그의 가시적 존재가 진정한 의미의 '한일 화해'에 뉴라이트들의 궤변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된다고, 나름 고맙게 생각합니다. 일본의 극우적 지배자들과 다른 편에 서는 일본 출신들의 존재는 '화해'로 가는 길을 터주는 역할을 크게 하지요. 저는 지금도 후지이 다케시 선생님의 칼럼을 다 챙겨도 꼼꼼히 읽고 있지만, 앞으로도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의 기고를 한국 신문에서 자주 볼 수 있었으면 대단히 좋겠습니다. 이런 교류야말로 탈식민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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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순
박노자선생님 정의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은 사람들에게 윤미향 사수의 의미로 글(?)을 올리셨다는데 전 못 보았습니다. 어디서 볼수 있나요?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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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선생님 정의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은 사람들에게 윤미향 사수의 의미로 글(?)을 올리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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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네, 여기에 있습니다만, '사수'라기보다는 마녀사냥의 배경을 설명해볼까 싶었습니다: http://www.hani.co.kr/.../cul.../culture_general/947634.html
    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HANI.CO.KR
    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정의연이 보수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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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자 선생님, 너무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데는 금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같은 조직이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정대협 대표였던 윤미향 씨의 선거 홍보 포스터는 그럼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한 시도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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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네, 포스터에서 '한일전' 따위의 표현은 아주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민족/국민주의를 이용하려는 자유주의 진영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인듯한데, 좋은 전략은 전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해 한일 갈등의 국면에서 "No Japan"같은 표현들은 아주 유감이었습니다. "No Abe"라면 몰라도 "No Japan"은 미래 지향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표현은 전혀 아닙니다. 이런, 적대감을 부추기는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당선인 본인의 뜻인지 해당 정당의 발상인지 전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과오라고 봐야죠. 그런데 그 전까지의 투쟁 과정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좋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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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한 가지를 확실하게 하고 싶습니다. 자유주의 진영의 일각에서 이용하는 "토착왜구" 같은 표현을 제가 좋게 생각한 적도 쓴 적도 없습니다. 일본의 통치자도 아닌 '모든' 일본인들을 겨냥해 적대심을 부추기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쇼비니즘 선동이지 '운동'은 아닙니다. 정대협이 반일감정에 특히 1990년대에 기댄 면도 있었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운동상의 오류, 과오를 범함 게 당연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컨대 월남에서 한국 파월병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를 하고, 자국, 즉 한국의 부끄러운 가해국으로서의 면모를 알린 것도 분명히 있었고요. 여태까지 운동의 공과,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을 싸잡아 비난하기보다는 일일이 전문적으로 고찰해 분석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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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토착왜구'라는 말을 쓴 적은 없습니다. 저속한 쇼비니즘적 표현이고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죠. 그리고 박유하 교수님을 포함해서, 동의를 하지 않았을 수는 있었지만, '매도'를 한 적은 없습니다. 박 교수님의 저서인 <화해를 위하여>나 <제국의 위안부>를 꼼꼼히 읽었는데, 총체적으로 '학술'과 별 관계 없는 저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매도'가 아니고 평가입니다.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린 이유는: 1. 과도 일반화 오류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동지적 관계" 같은 표현들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한 두 개인의 경험을 이런 식으로 과도 일반화하는 게 '학술적' 글쓰기 방법은 아닙니다. 2. 역사학의 방법론의 부재: 전후에 쓰여진 소설을 '사료'로 무비판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사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사실 오류들이 많은 것: 예컨대 일본이 한국 측에 지급한 금액들은 배상도 보상도 아니었지만, '보상했다'고 쓴 것은 사실 오류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근거로 학술 저서 내지 대중적 학술 저서라기보다는 특정한 이념적 견해의 표현 내지 선전의 도구라고 평가를 내렸을 뿐이지, '매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미 누누히 밝힌 바가 있어 저는 더이상의 답변 작성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좌우간, 질문해주신 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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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식 제 기억으로는 (저는 지금 책을 보고 쓰는 게 아니고, 기억에 의존합니다) 몇 분 피해 당사자들의 일군 병사와의 연애담 등을 근거로 하여 '동지의식' 운운 하셨는데, 당연히 어떤 개인적인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싹틀 수도 있지만 이 개인적 체험을 무한정 일반화시키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똑같이'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도 있었지만 대우가 달랐고 주로 장교를 상대하게 돼 있었습니다. 일본인 남성 병사들은 비록 의무 복무이었다 해도 '제국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의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물론 '익찬 국회'긴 하지만) 총선 투표권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유족에 대한 (초보적인) 복지 혜택도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무교육, 투표권, 복지혜택) 중에서는 조선인에게는 해당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국의 시민'과 피식민자가 "똑깉이 불행한 운을 타고' 동원됐다고는, 사학을 약간이라도 배운 사람이면 도저히 쓸 수 없습니다. 그 어느 제국에서도 본국 병사와 식민병, 그리고 피식민 피동원자들이 "똑같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 자체는, 제국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모욕감밖에는 그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표현을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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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윤 Yes, if she feels so the, I guess, we have to respect her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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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식 네, <제국의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명치학원 정영환 교수의 저서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484707)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내용을 영문으로 간추려 쓴 논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www.ejks.org.uk/.../the-japanese-military.../ 일단 사실오류와 사료비판의 부재, 역사적 맥락에 대한 몰인식, 과도 일반화 등 여러 종류의 문제들이 지적됩니다. 전후에 쓰인 소설을 원자료로 무비판적으로 이용하거나, 피해자 증언 중에서는 몇 가지만 매우 선별적으로 이용한 등등의 사료 이용 및 방법론의 문제들은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사항들을, 이 문제의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정영환 교수께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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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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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이왕이면 '박유하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것도 여쭙고 싶네요. 선생님이 그동안 해오신 거는 마녀사냥 아니고 정당한 비판이겠지요? 선생님은 언제나 옳으신 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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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면 진정한 의미의 화해는 전쟁을 통해 가능하다는 건지, 식견이 짧은 저로서는 박노자 선생님의 주옥같은 말씀들이 너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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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네, 포스터에서 '한일전' 따위의 표현은 아주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민족/국민주의를 이용하려는 자유주의 진영 (더불어민주당)의 전략인듯한데, 좋은 전략은 전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난 해 한일 갈등의 국면에서 "No Japan"같은 표현들은 아주 유감이었습니다. "No Abe"라면 몰라도 "No Japan"은 미래 지향적인, 연대를 형성하는 표현은 전혀 아닙니다. 이런, 적대감을 부추기는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당선인 본인의 뜻인지 해당 정당의 발상인지 전 잘 모르겠는데, 좌우간 과오라고 봐야죠. 그런데 그 전까지의 투쟁 과정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좋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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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ladimir Tikhonov 일본의 지원 단체와의 협력을 누가 나쁘게 평가하던가요? 그걸 문제 삼는 사람도 있었나요? 다만 정대협-정의연은 그동안 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선생님이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하시는 선거 홍보 문구처럼 반일 감정에 기댄 면이 없었나요? 안타깝게도 그동안의 운동은 반일 감정에 기댄 면이 있고, 그로 인해 운동의 목적에 맞지 않는 피해당사자는 배제되기도 했고, 이번 이용수 선생의 공개 발언은 그와 같은 문제를 이참에 바로잡자는 취지로 이해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윤미향과 정의연이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고만 하시니 매우 혼란스럽군요. 이 사달을 자초한 건 조중동이나 토착왜구 세력이 아니라 애초에 윤미향 씨와 정의연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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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한 가지를 확실하게 하고 싶습니다. 자유주의 진영의 일각에서 이용하는 "토착왜구" 같은 표현을 제가 좋게 생각한 적도 쓴 적도 없습니다. 일본의 통치자도 아닌 '모든' 일본인들을 겨냥해 적대심을 부추기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쇼비니즘 선동이지 '운동'은 아닙니다. 정대협이 반일감정에 특히 1990년대에 기댄 면도 있었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 운동상의 오류, 과오를 범함 게 당연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예컨대 월남에서 한국 파월병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를 하고, 자국, 즉 한국의 부끄러운 가해국으로서의 면모를 알린 것도 분명히 있었고요. 여태까지 운동의 공과, 부정적 경험과 긍정적 경험을 싸잡아 비난하기보다는 일일이 전문적으로 고찰해 분석하는 게 더 미래지향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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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ladimir Tikhonov ‘한일전’과 ‘토착왜구’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잘 기억해 두겠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견해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만, 이렇게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서로 다른 견해가 양립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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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ladimir Tikhonov 저도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군요. 그동안의 운동이 대중화 이후 어떤 식으로 외연을 확장했는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말씀처럼 운동의 공과 과를 싸잡아 비난해서도 안 되겠지요. 과를 부풀리며 공을 뭉개서도 안될 테고요. 그런 식의 마타도어는 되도록 삼가려고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점 다시 한 번 일깨워주셔서 고맙다는 말씀 드리고요. 그런데 그럴수록 궁금하군요. 이 사달이 나기 전, 그러니까 십수년 전부터 운동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박유하 교수의 주장은 대체 왜 고찰의 대상은커녕 매도의 대상이 되었던가요? 어떤 학자의 주장을 '뉴라이트'라고 손쉽게 분류해 사회로부터 매장시키려는 시도와 '토착왜구' 같은 혐오표현으로 피아식별을 확실히 하려는 시도에는 대체 어떤 차이가 있나요? 매사 피아식별이 철저하신 선생님은 혹시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 중 하나 아닌가요?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궁금증만 더 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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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저는 '토착왜구'라는 말을 쓴 적은 없습니다. 저속한 쇼비니즘적 표현이고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죠. 그리고 박유하 교수님을 포함해서, 동의를 하지 않았을 수는 있었지만, '매도'를 한 적은 없습니다. 박 교수님의 저서인 <화해를 위하여>나 <제국의 위안부>를 꼼꼼히 읽었는데, 총체적으로 '학술'과 별 관계 없는 저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건 '매도'가 아니고 평가입니다. 이와 같은 평가를 내린 이유는: 1. 과도 일반화 오류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일례로 "동지적 관계" 같은 표현들은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한 두 개인의 경험을 이런 식으로 과도 일반화하는 게 '학술적' 글쓰기 방법은 아닙니다. 2. 역사학의 방법론의 부재: 전후에 쓰여진 소설을 '사료'로 무비판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사학에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사실 오류들이 많은 것: 예컨대 일본이 한국 측에 지급한 금액들은 배상도 보상도 아니었지만, '보상했다'고 쓴 것은 사실 오류입니다. 저는 위와 같은 근거로 학술 저서 내지 대중적 학술 저서라기보다는 특정한 이념적 견해의 표현 내지 선전의 도구라고 평가를 내렸을 뿐이지, '매도'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이미 누누히 밝힌 바가 있어 저는 더이상의 답변 작성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좌우간, 질문해주신 데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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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ladimir Tikhonov 네. 선생님이 매도한 적 없다면 매도한 적 없는 거겠지요. 공개 석상에서 '박유하는 역사수정주의'라며 박유하의 주장을 싸잡아 뭉뚱그린 것도 매도가 아닐 테지요. 누군가 선생님을 음해하려고 선생님의 '학술적' 표현을 뭉뚱그린 것이겠지요.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같은 표현으로 무엇이든 과도하게 일반화(타자화)하지 않으려는 선생님인데 말입니다. 새삼 깨닫습니다. 아 이것이 학술적 글쓰기의 표본이구나, 사실상 똥맛에 가까운 카레맛이 느껴지는 뭐 이런 식으로 써야만 학술적 글쓰기가 완성되는 거구나. 선생님의 섬세한 학술적 표현에 사실상 큰 감명을 받고 돌아갑니다. 댓글 자꾸 달아서 귀한 시간 뺏은 점 사실상 사과드리며, 부디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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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께서는 박유하 교수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시면서 그 예로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을 들고 계십니다. 제 기억과 달라서 책을 다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동지적 관계’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으로서 동원되었다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1부2장에서는 제목을 ‘군수품으로서의 동지’라고 붙였고 본문에서 “일본군을 가해자로서가 아니라 똑같이 불행한 운을 가진 피해자”로 여긴 것을 ‘동지의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부분 뿐 아니라 책에서 ‘동지’라는 단어를 검색해 일일이 확인해봤는데 (다행히 pdf 파일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검색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모두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읽은 것일 수 있습니다만. (참고로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동지’라는 단어가 14회 나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표현처럼 판단하는 게 무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저라도 ‘동지의식’이라고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로 보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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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식 제 기억으로는 (저는 지금 책을 보고 쓰는 게 아니고, 기억에 의존합니다) 몇 분 피해 당사자들의 일군 병사와의 연애담 등을 근거로 하여 '동지의식' 운운 하셨는데, 당연히 어떤 개인적인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 싹틀 수도 있지만 이 개인적 체험을 무한정 일반화시키는 것은 역사적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선 조선인과 일본인들은 '똑같이' 동원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인 출신의 '위안부' 피해자도 있었지만 대우가 달랐고 주로 장교를 상대하게 돼 있었습니다. 일본인 남성 병사들은 비록 의무 복무이었다 해도 '제국의 시민'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의무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물론 '익찬 국회'긴 하지만) 총선 투표권도 있었습니다. 죽으면 유족에 대한 (초보적인) 복지 혜택도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 (의무교육, 투표권, 복지혜택) 중에서는 조선인에게는 해당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국의 시민'과 피식민자가 "똑깉이 불행한 운을 타고' 동원됐다고는, 사학을 약간이라도 배운 사람이면 도저히 쓸 수 없습니다. 그 어느 제국에서도 본국 병사와 식민병, 그리고 피식민 피동원자들이 "똑같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위안부'라는 말 자체는, 제국의 폭력을 경험한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모욕감밖에는 그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다. 피해 당사자들의 존엄성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표현을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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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ladimir Tikhonov 답글 고맙습니다. 교수님 말씀 잘 살펴보고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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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ladimir Tikhonov 성노예보다 제국의 위안부가 더 모욕적이란 말씀이신가요?
    이용수 위안부 피해자는 성노예란 말이 모욕적이라며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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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서윤 Yes, if she feels so the, I guess, we have to respect her feel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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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를 공부하고, 과거를 이해하는 - 때때로. 진짜 세상을 만드는 열쇠.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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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에게 먹힌 나라는 프랑스 뿐인가요? 4년인가 그렇지요. 우리가 일본을 침략한 것은 단한번 몽골과 함께 잠깐이었습니다. 금방 돌아왔지요. 수백년 간 무수한 노략질을 당한 끝에 40년을 먹혔고 저들이 져야할 분단의 짐을 지금껏 75년 지고 있습니다. 언제 이 짐을 벗을 지 모릅니다. 내전까지 치뤘지요. 어른들은 일본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왜정 왜놈 왜년이라 했습니다. 유전자에 새겨진 원한입니다. 아베와 극우는 일본의 국체입니다. 왕이 없어지지 않고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간다? 일본의 진보, 공산당마저 상상못할 일 일겁니다. 왜 그들은 우리를 무시하고 천대하고 비하합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끼쳤다구요. 요즘 그들의 신경과민은 두려움으로 보입니다. 자기네들이 한 짓을 잘 알고 있을테니요. 비록 분단되었으나 만만찮은 국력을 이뤄내고 있으니 더욱. 화해? 없습니다. 언제든 그들은 부산에 상륙하려 들겁니다. 아니면 원산이나 함흥에.
    생불귀.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며 그에 걸맞는 댓가를 치뤄야 할 겁니다.
    위 선생님이 든 예시는 다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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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지형 이외에 대만 학생들은 조선과 대만에 있어서의 일제 통치의 성격과 그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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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심한 이유는 한국인들이 적어도 일제 이전에는 일본이 자기들보다 한 수 아래인 경쟁자, 나아가서는 야만인이었다고 생각하는 탓이 클 것 같습니다. '일본놈들 따위가 어딜 감히!' 정도의 느낌이랄까요. 혐오와, 그 혐오의 대상자들에게 패배했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함이 깔려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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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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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의 발화권력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계속해서 비난하고 근거없는 혐오를 생산하는 모습을 몇 년째 보고 있으니 익숙해진건가 이젠 화도 안나네. 세뇌는 이렇게 하는거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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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미향의 정대협이 일본의 시민단체와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이 주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과 별도로 각성한 시민이 직접 나서야 진정성 있는 운동이라고 여겼을 겁니다. 일제의 전쟁범죄를 비판하는 진보 좌파 인사 중 다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이는 걸로 압니다. 무엇보다 정대협이 위안부 문제에 개입하는 방식에 대한 박유하 교수의 비판은 정당해 보이고, 정대협의 성과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계시지만 위안부 피해자 다수가 지금까지 문제 제기해온 윤미향과 정대협의 운동 방식과 회계 문제는 곁가지라기보다는 본질적인 사안입니다.
    호사카 유지 씨가 한국인에게 먹히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을 까기 때문 아닌가요. 그래야만 한국에서 자신의 입지가 서니까요.
    한국인이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호사카 유지 씨 같은 분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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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단하시네 진짜 박노자 선생ㅋㅋㅋㅋ 학자로서 양심은 길바닥에 버리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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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일 감정의 유지는 선전과 선동의 효과도 한 몫하지 않나요. 유지될 뿐만 아니라 증폭되지 않습니까. 윤미향의 반일 포스터가 '반일이란 무엇인가' 를 잘 보여주고 있네요. 저렇게 선동들을 해대니 화해란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국내 정치인의 밥줄이니까요. 거기에 부역하는 지식인들의 역할도 상당합니다. 그들은 덮어놓고 '반일' 을 앵무새처럼 외치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존재 자체가 학술적 근거라도 되는 듯 얼굴 마담으로서 이용하는데 서로 윈윈입니다. 신문에 칼럼도 실리고 얼굴도 알리고 여차하면 정치판에 끼워주기도 하고요. 심지어 반일은 돈도 됩니다. 윤미향과 정의연이 잘 보여줘요. 회계 장부를 쓰레기로 만들어놓고도 외부 감사도 안받을거고 돈을 어디다 썼는지 영수증도 공개안할거라면서 기자회견장에서 큰소리로 의심하는 국민들께 호통치는 정의연 인간들의 오만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당한 비판을 '마녀사냥' 이라고 앙념치기 바쁜 일부 지식인들은 둘 중 하나에요. '양심' 이 없거나, '상식' 이 없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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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author
    식민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지금도 대륙으로 진출할 의도를 한시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반일을 조장하는 무리는 왜국의 군국주의자 망령들입니다. 고약한 이웃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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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득
    14 June 2020 ·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박노자)
    https://www.facebook.com/vladimir.tikhonov.5/posts/10223324250717224

    위에 공유한 박노자 선생 글 두 번 읽었다. ‘학술적 글쓰기’ 내공이 워낙 깊으신 분이라 가방끈 짧은 나는 도무지 따라가기 힘든 얘기였다. 그럼에도 감히 내 방식으로 박노자 선생 글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면...

    1) 조선 해방은 다른 식민지 해방 사례와 비교하기 어려운 특수한 경우임
    2) 일제는 사회 통합을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조선인은 차별 대상에 불과했고, 해방 후 제3공화국까지 주류 교체가 안 된 상태에서 식민지 토착 관료 출신들이 계속 한자리 해먹었고, 그 배경에는 해방 후 미국의 간접 지배가 있었고, 전후 일본사회에서 재일조선인은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었고, 그러므로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감정은 해방 후에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음
    3) 식민지 조선부터 90년대 초반 사노맹 사건까지 운동에 대한 탄압은 계속됐고, 그게 다 일제의 악랄한 고문 기술이 식민지 조선에 뿌리내린 탓임
    4)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생기셨는지 휙 건너뛰더니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 등은 일찍이 2000년대에 ‘대일 화해’ 담론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덮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 화해!’라고, 피해 당사자들의 편에 서지도 않은 고급 ‘지식인’은 외쳐봐야 화해가 이루어질 리가 만무합니다”라며 글의 제목인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의 원인으로 박유하를 에둘러 지목함
    5) 그러면서 “사실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데는 금일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는 정대협-정의연 같은 조직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일본 내의 진보적 시민 사회와 협조해왔기 때문이죠”라며 정대협-정의연을 치켜세움
    6) 호사카 유지는 나랑 정치적 노선 좀 달라도 진정한 의미의 한일 화해에 도움이 되고 박유하보다 훨씬 나음
    7) 호사카 유지뿐만 아니라 후지이 다케시처럼 일본 진보 지식인의 칼럼을 한국 신문에서 더 자주 보면 좋겠고, 이런 교류야 말로 ‘탈식민 치유’에 도움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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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박노자 선생 글에 대한 내 어쭙잖은 소감...
     
    일단 박노자 선생의 한국 근현대사 해석은 전반적으로 몹시 시혜적이다. 너네 참 힘들었겠다, 그치? 선량한 너네는 일찌감치 자립할 의지도 있었는데 못돼 처먹은 일제의 영향으로 나쁜 물들어서 고생한 거쟈나, 토닥토닥... 뭐 이런 느낌이랄까. 이런 식으로 기승전...일제 식민 지배 탓인 얘기들, 이건 뭐랄까 ‘아베 개새끼’의 ‘고급 버전’ 같달까. 이와 같은 얘기를 소위 양심적 일본 지식인들도 곧잘 따라하던데, 한국사회가 그렇게 만만한가 싶다. 수차례 얘기했다시피 한국사회는 외부의 영향 없이도 알아서 썩을 때로 썩을 만큼 충분히 성장했다고 본다.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일제 식민 지배 탓으로 돌리는 한 내부의 문제로부터 외부로 눈을 돌리게 만들 뿐이고, 그건 엉뚱한 싸움을 하게 하는 선동이나 다름없다.
    심지어 박노자 선생은 이 와중에 ‘공공의 적’ 삼을 만한 표적을 제시하기도 한다. 박유하 교수의 화해론을 ‘고급 지식인’의 배부른 소리쯤으로 취급하며 ‘덮어놓고 없던 일로 하자’로 일축하면서 비꼬아 놓았는데(이런 것도 학술적 글쓰기인가?), 박유하 교수는 과연 그런 얘기를 했을까? 아래는 박유하 교수의 최근 인터뷰 중 한 대목.
    “내가 우선적으로 시도한 건 체험을 드러내 말하지 못한, 잊힌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거였다. 그런 할머니들 목소리만 진짜라고 말하려 한 게 아니라 당사자를 제쳐놓고 일이 진행되는 건 문제이며, 만약 당사자들 간에 생각이 다르다면 주변 사람들도 함께 고민해 보자, 오로지 그런 취지였다. 그러면서 기존 연구 담론과는 다른 접근법을 시도하려 했다. 전쟁 범죄로만 다뤄지던 것을 제국주의 문제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 위안부는 식민 지배가 야기한 문제인데 일본은 그 부분을 제대로 인식한 적이 없다는 것, 이를 명확히 한 뒤 그것을 기반으로 한 사죄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인터뷰 전문: https://shindonga.donga.com/3/all/13/2089701/1)

    박유하 교수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집필 의도를 아무리 해명해봤자 ‘내가 그렇게 읽었어! 내가 그렇게 읽었다고!’ 하시는 박노자 선생에게는 가닿을 리 만무하다.
    그보다 정대협-정의연이 일본 내 진보적 시민 사회와 협조해왔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온 조직이라니, 이것도 일종의 역사왜곡 아닌가 싶다.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되기 전부터 일본 정부의 전후 보상 책임을 촉구하며 징용·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을 도왔던 활동가 우스키 게이코 씨의 입국 금지를 신청한 것은 정대협이었다. ‘총선은 한일전’이란 슬로건을 동원해서 반일 감정을 무기 삼은 쪽은 윤미향 씨와 여당이었다. 윤미향 씨와 정의연을 향해 문제 제기를 한 건 피해당사자이자 운동의 중심이었던 이용수 선생이었다. 그리고 윤미향 씨와 정의연은 이용수 선생을 향한 2차 가해를 상당 시간 방치했다. 과거 운동의 중심부와 갈등했던 피해당사자들은 기림비에서 이름이 삭제되기도 했다. 그들의 이름을 고의로 누락시킨 것은 정의연이었다. 운동이 그동안 얼마나 큰 성과를 거두었고, 또한 전시 성폭력 문제를 국제 사회에 얼마나 환기시켰든, 앞서 열거한 문제들은 당사자중심주의도 아니고 진정한 의미의 화해를 위한 노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정보를 왜곡해 한국인 입맛에 맞는 소리를 늘어놓는 편인데*, 박노자 선생은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인이여, ‘내 귀에 캔디’ 하면서 불편한 진실은 끝내 외면하고 달콤한 소리나 귀담아들으라는 건가.

    무엇보다 박노자 선생 글에서는 진영이 확실히 구분된다. 박노자 선생에게 우리 편은 누구인지, 적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얘기다. 이 지긋지긋한 피아식별과 진영논리, 이런 것도 학술적 글쓰기인가. 대체 왜 내 눈에는 박노자 선생의 학술적 글쓰기가 반공이 시대정신이던 시절의 ‘삐라’ 같을까. 이게 다 내 가방끈이 짧아서겠지?

    *호사카 유지 교수는 ‘신친일파’론을 주장하면서 <반일종족주의> 저자들이 도요타 재단의 연구 지원금을 받은 적 있고, 그들의 배후에 일본 극우 기업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도요타 재단의 연구 지원금을 받은 것은 <반일종족주의> 저자들뿐만 아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들과 반대편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김부자, 한홍구, 정진성 교수(정대협 전 공동대표) 등도 받았다. 아래는 도요타 재단 연구 지원금 둘러싼 음모론을 반박하는 이승엽 선생의 포스팅이다.
    https://www.facebook.com/sungyup.lee.7/posts/2428924807194851

    **학술적 글쓰기에 ‘식민 모국’이 웬 말인가? 굳이 이런 데까지 여성성 동원해야 하나? 박노자 선생은 ‘성인지 감수성’ 모르나?
    ***박노자 선생은 ‘반일 감정이 유지되는 이유들’이라며 한국사회가 해방 후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 반일 감정으로부터 불가항력적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반일 감정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사람들을 슬그머니 지우고, ‘사실상 뉴라이트와 엇비슷한 입장에 서 있는 세종대 박유하 교수’를 과녁처럼 내세웁니다. 저는 이와 같은 글쓰기가 학술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것 또한 박노자 선생이 그토록 반대하던 ‘마녀사냥’과 다름없는 것 같아서 반박 차원으로 한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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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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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분 말마따나
    포스트트루스 시대죠ᆢ

    권용득

    Vladimir Tikhonov 박노자 선생님, 아까 선생님 포스팅에 경우 없이 댓글 너무 많이 달아서 미처 못 물어본 얘기는 따로 정리해서 포스팅했습니다. 독후감쯤으로 여겨주시고, 시간될 때는 지도 편달도 좀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만...

    Chee-Kwan Kim
    반일감정이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에 반일장사치는 어용학자들이 있다는 걸 빠트리셨네요.

    임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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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득샘이 수고 많으십니다. 박노자 교수님이 이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Park Yuha

    ‘“갑자기 급한 볼일이라도 생기셨는지”에 아침을 웃음으로 시작. 고마워요.^^

    Soon Ae Choi

    '화해'의 폭력 이라고 했던 재일 서경식 선생님 글도 이렇게 풀어서 포스팅해 주시길 감히
    바랍니다.부탁해요.

    Kilt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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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에 귀화하려다 거부당하고 남한에 온 이유가 있지요. 북한애들이 보기에도 전혀 쓸모가 없으니..그런 걸 귀화하게 해주는 남한은 뭔지...

    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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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근데 4)와 같은 주장은 진짜 근거 있나요?ㅋㅋㅋㅋㅋ 제가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최고조로 적대적일 때도 그건 절대 아닌 것 같았는데. 근본적으로 국가의 강한 힘을 추종하는 뉴라이트들의 주장이랑 어찌되었든 "국가의 책임"을 언급하는 박유하 교수의 주장이랑 같은 선상에 세운다는 것은 완전 무리수인데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