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5

[Lee Young-hoon's Historical Criticism] Korean Politics is Joseon's Part...

[Lee Young-hoon's Historical Criticism] Korean Politics is Joseon's Partisan Strife

이승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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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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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실과 자유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승만
TV의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근에 저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적지에 관해서
배 사람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쉽게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현재이 나라의 정치는
조선 시대의 당쟁과 비슷하다.
당쟁의 부활이 아닌가?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은 어 모든 사람들이 아 맞다
맞다하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실은 수년전부터 어 그러한
생각을 했고 그러한 관점에서
20세기의 한국사가
1948년 이후 나라의 정치사를
어 서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아
그런 그 문제 의식을 혼자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한국 정치는
조선 당장이다라는 제목으로에
저의 생각을 필요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4월 탄핵을 당한 윤성열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김근희 여사를
상대로 한 특별 검찰의 수사와 재판이
가속화하고 있습니다.이 이 두 사람을
변허해 줄 어떠한 정치 세력도 부제한
가운데 두 사람은 고린무원의 처지에서
조만간 그 신체가 구속을 당할 그러한
신체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는 그런
예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행한
사태가 초래한 단서를 찾자면은 저는
김건희 여사가 받은 명품 사건에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아 생각합니다.
유성 대통령이 침한 후 까마
2022년 9월인가요?
김견희 여사가 자신의 사무소에서
재미동포이
최재영이라는 목사로부터
300만 원 상당의 명품백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보여드리는
화면이 그 최재영 목사입니다. 뭐
명색이 목사지만은 저는 그 심성이
지극히 불순한 악성의 인물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이 이
사람이 그 아버지와 김근희십 부친간의
그 뭐 고향 사람이라는 지연을
이용해서 지배하게 김근희 여사에게
접근을 한다면은 드디어 만남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때이 명백역을 선물했는데
그 선물은 믿기였습니다. 그냥 착한
마음에서 준 선물이 아니라 김거리
씨를 업무에 빠뜨리기 위해 믿기로서
준 선물이었습니다. 서 그것을 몰래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필업을
감추 두었다가 정치적으로 적당한 때가
되자 폭로를 했습니다. 이후 집하게
그 야당의 민주당의 정치적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더구나이 김건희 씨가 윤성열 씨하고
결혼하기 이전에 주가 조작 사건 그런
혐의가 있었지만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몇 차례 수사가 있었지만은 구체적인
혐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배하게 특검을 그
요구하는 정치적 공세가 또
가해졌습니다.
집어하게
강해진 정치적 공세 개인의 도덕적
어떤 결합을 찾아내고 그걸 빌비로
해서 가해지는 인신 공격에 결국
윤성열 대통령의 부처가 마음의 평정을
잃고 엄청난 실수를함으로써
올날과 같은 비참한 아 어떤 실세가
되고 말았다. 저는 그렇게에 생각을
합니다. 이와 같은 정치적 공사를 좀
더 조직적으로 의연하게 대청할 수
있었는데 아 윤성열 대통령의 부처는
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야당의
공세는 업보적이었고 집요했고
잔인했죠. 여기에 뭐 국가의
정체성이라든가이
나라가 감당해야 될 어떤 공적인 과제
정책에 대한 토론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나 개인적인 윤리를
일미로 한 업모적 공세였는데 바로
그것이 조선 시대의 당정이었습니다.
최근에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리박 스쿨 사건에 그렇죠.이 이
루박스쿨의
책임자이신 서로수는
우리 학당을 수려한 분입니다. 우리
학당을 수료해서 저하고 잘 알고
지냅니다. 손흥석 씨는 이승만
박정희의 근국 대통령과 부국 대통령의
명예가 너무나 실총해 있고 또 많은
것이 매도되고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나름대로 시민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리박스 굴리죠. 그래서 이성만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강좌를
개설하고 또 그 강좌에 참여한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비공시입니다. 교사
영혼을 양성해서 초등학교 중학교이
공교육의 현장에 파견했습니다. 이것은
시민 단체가 공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합법적으로 제공된 기회를 이용했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는 한 20년 전부터 좌파
학부모 단체는 초등학교 중등학교
공교육의 현장에 참여를 해 왔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서도시스씨도
마찬가지로 모든 한국 시민에게 부여된
그와 같은 참재의 기회를 합법적으로
이용했다고 볼 수가 있죠. 그렇게
해서 마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키입을 이루어서 교육 현장을 찾아가서
이서만 박정희의 대통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또 많은 학생들이
그로부터 감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4월 달 대통령 선거
기관이 되자 어느 좌파 단체의 어느
사람이 어느 여성이이 소수씨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리박스쿨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면서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서로시은
반가워 가지고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그간 이온 리박 스쿨의 활동상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첩자였죠. 그리고 일주일 뒤에 그
찾아온 여성이 리박스쿨이 댓글부대를
조직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폭를 했습니다. 댓글부대를
운영할만큼 재정이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사무실이라는 것도 서의
시민 단체가 같이 쓰고 있습니다.
제가 한번 가서 강의를 한 적도
있는데 그렇게 재정적이 빈약한 단체가
무슨 댓글부대를 대기보로 조직적으로
이게 운영할 수 있습니까? 그저
마만한 사람들 우리 열심히 윤성열
대통령을 변호하고 어 옹호하는 또는
뭐 국당의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놀리자 그런 수준이었겠죠. 그러나
댓글 부대를 운영했다 이렇게 폭로가
되니까 언론과 국회가 나서서 맹
폭격을 했습니다. 손숙시를
마녀 사냥을 했죠. 그렇게 해서 결국
오직 선의 하나로만 운정되어온 그
우파 시민 단체의 교육 활동을
무산시키고 말았습니다. 이거 업모죠.
모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의 공공전한 정치 수습법이
되었습니다. 단순하게 국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가 아니라 시민 단체도이
업무적 정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조해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좌파 시민 단체뿐만 아니라 좌파 언론
모두가 다 그러합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정치 행태가 조선왕조의 당장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에 할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당정이
어떠했던가 제가 예를 간단하게 하나
들겠습니다.이
조선 시대 당쟁 사회 관해서는
작고하신 그 이성부 교수가 쓴
조선시대 당쟁사학원
책이 있습니다. 선조 연간부터
16세기 후반부터 시작돼서 약 한
300년간 지속된이
당정은 한마디로 말해서 업무의
역사였습니다.
나라의 정체성을 두고 전쟁을 할
것인가 뭐 말할 것인가 뭐 세금을
올리고 내릴 것인가 왕실 재정을 정부
재정을 어떻게 쓸 것인가 두고 정파가
다툰 건 아닙니다. 오로지 도덕을
기준으로 해서 투쟁을함으로써 상대방을
아기도 몰고 아기를 죽이는 데는
업모가 필요합니다. 업모는
정당합니다. 그렇게 해서 업모와
무고와 고변과 조작을 통해서 상대을
말살하는 그와 같은 정치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1680년에 당시 왕이
숙종이었습니다.이
허연의 옥사가 발생하는데요.
당시이 숙종 초전의 전기에 두
실력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는이 숙종의
외삼촌인 김석주라는 사람이 있었고요.
하는 사람은 남인의 영수인데
허적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숙종에게는 사촌 형제들이 있었어요.
숙종의 사천 형제로서 복창군, 복군,
복성군이라는이
삼복이라고도 합니다만은이 왕자들이
상당히 용무와 인품이 준수해서 모든
사람의 신망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숙적은 자기 사초 경제와
친하게 지내지만은 늘 그들을 경계하고
있는 그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여즘을 김석주 그 회삼촌이 이용한
거죠. 김석주가 그의 신복을 허적의
아들인 허결에게 접근을 시킵니다.
왜냐?이 허연이이 삼복이라 불리는
왕자와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염탐을 시킨 것이죠.
정월로라는
자기 신복으로 하여금 허연에게 접촉을
해서 1676년부터
사람을 보내는데 4년에 1680년에
이르러 허적의 아들 허연과 그리고
복선군이 자리하는 술자리에
정월로라는이 김석주가 보낸 신복이
함께 자리합니다. 그 자리에서 허연이
서로 믿게 지내려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왕이 지금 아직도 후사가
없다. 근데 왕의에 건강이 좋지
않다. 작차 어떤 사태가 생길지
모르는데 복성군께서는 그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될지 모르겠다.
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복성거는 그냥 듣고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러나 정원가 돌아와서이
사실을 고을 합니다. 그래서 역정
보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해서
그래서 복선군은 차벽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형제는 또 멀리 귀약을
보냈다가 사양을 내려서 죽였습니다.
아 이렇게 해서 서인 정권이 더욱더
굳어지게 되는데 이후 숙종이 서인을
내치고 남를 때는 허적과 그의 아들
허연 그리고 삼복 대군이 억울하게
무구로 죽였다 하는 것이 왕 스스로
밝히기도 합니다. 왕은 처음부터 자기
사촌 형제들이 모의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거는 알고 있었지만은 고변이
들어오니까 그걸 이용해서 자기의
불안한 그 경쟁자들을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장의 세
가지 요소는 상대방을 말살하려는
원수의 바입니다. 김석주가 저 허적을
치야 되겠다. 나비를 치야 되겠다.
두 번째는 업무와 고변입니다.
수년 동안 4년 동안 여러 사람을
시켜 가지고 그 집을 감시하게 하고
또 접근하게 해서 염탐을 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빌비가 잡히면
고변을 한다이 말이죠. 그 세 번째는
어리석거나 교활한 왕의 마음입니다.요
세 가지가 어울러져 가지고 피를
당쟁이 이어졌던 것이죠.이 당쟁의
여파가 얼마나 심각했는가. 저왕자가
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당에
망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당대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올날 뭐 몇몇
역사학자들이 조선왕조 당장을 가지고
근대적 정당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는데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근대적 정당의
역사에서는 공적 정치적 경쟁입니다.
공적 과절을 두고 공의 영령에서
그죠. 국가에 더 정체성을 두고
버리는 정치적 경쟁이 근대적 정당의
역사라면은 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사적인 도덕이이
정쟁의 빌가 되고 죽이고 죽고 하는
그와 같은 역사입니다.이 300년의
역사 얼마나 패단이 심했는가 잘
알려진 대로 이중한의 택리지를 채고
보면요. 이중안이라는 18세기 중반에
선비가 하도 당정이 심하고 본인도
조정에 나갈 기회도 없고 하니까 뜻을
접고 어디 조용한 시골에 가서 이제
살아야 되겠는데 어떤 곳이 좋으냐
목적으로 쓴 책입니다. 조용하게
언거해서 살 독리를 선택하는데 제일
중요한게 인심입니다.
길이, 생리, 교통의 편리라든가
산업의 어떤 유리함, 풍부함 이런
것도 좋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같은
당색이 모여 사는 곳에 가야 마음
편하게 서로 방문도 하고 담소도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따라서 같은
당색이 있는 곳에 찾아들어가라.
당정의 역사가 시골에까지
미쳐서 전국이 하나의 전정토와 같다.
어린이 서로 통하지가 않고 말이죠.
서로 용납하지가 않는다. 당파가
다르면은 같은 고장이라도
서로 왕례도 없고 서로 경계해서 장차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리고 그
파장이 천민에게까지 미쳐서 어느 집안
사람이라고 불리면은 집안을 바꾸고
섬기고자 해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렇게 그 당정의 패달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나라가
망하고 난 뒤에 우리 조선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둘러고 이제 일본인들이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중에이
타카아시 도루라는 사람이 식민지 조선인을 논한다라는 그 책이 있어요. 출관돼 있으니까요. 그
한번저 찾아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평견에 사로잡힌 일본인이 쓴 책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조용히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분은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이
성립하자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 부임해서
45년까지
조선에서 생활했습니다. 조선에서
생활은 그보다 일찍 1905년부터
시작입니다. 올날에 경기 중고등학교
전신인 관리 한성초학교가 성립할 때
거기에 이제 교사 요원으로 왔죠.
이분이 1926년에 경성제국 대학에
설립하자 경성제국대학의
교수로 취입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45년까지 이따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천리 대학의 교수로서 이따가
1967년에 잡고하신 분인데 이분이
한국 불교사, 한국 유교사를 정리를
했습니다.
우리 그 한국에 의해서 우리의 사상가
정리되지 않고이
힘이 한국의 불교 역사와 유교의
역사를 정리를 했죠. 또 이분이
정약용 등과 같은 신학자들을 발굴해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분이이 식민지 조선인을 논한다라는
그 책에서 당정의 역사를 이야기를
합니다. 어느 나라든간에 당파는 있기
마련데 조선인만큼 구태 의한 당파심을
끌어앉고
자신의 사상과 주장을 지유하게 펼치는
사람을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올날 이런 말 명 양방 가문들의
인사들은 모든 사람이 당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저마다 좋고 싫어하는
거 그 치사 선택의 척도가 있는데
아무리 수양을 쌓은 고상한 선비라
하더라도
고요하게 세상일에 개최부 지내
하다가도 일단 말이 터지면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일이 될 때는
서론은 노론을 해몽하고 노론은 소론을
비천하게 여기고 비웃고 나비는 는
노론을 시기하고 소론을 원망하고 그
양반 계급이 이와 같이 당파심이
격렬한 까닭으로
상민이야 천민의 이르기까지 모두
당파심이 심하다.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40년 가까이 한국에 살면서
그가 관찰한이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벌써 그로부터도 60년 70년이 지난
역사적 기록입니다. 허심탄이하게 그
역사적 기록을 되돌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에서 벌어진 동디분동도 어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뭐
신문에도 몇 차례 칼럼으로 소개되고
해서 잘 알진 이야기입니다만는
1939년에
10월 달에 중국의 치장이라는 데서
한국의 일곱 개 정당이 모여서 하나의
통합을 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습니다.
중국의 안개석 총통이 하나로 합쳐라.
공산당을 제외으로 보조 하나로
합쳐라. 그래야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겠다. 당신들이 맨날
광복권 광복권 하는데 하나로 합쳐라.
그렇게 해서 하나에 합쳤습니다.
그러나 그 회의를 참석한 왕성이라는
중국 국민당의 관리가 저 회의에
참조한 경과를 보고한 책에 보면은
도저히 합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한국에는 민족성 자체가 당길 정신이
부족하고 계성이 워낙 강하여서 또
자존심이 세서 자기 중심적 경향에
강한데다가 혁명을 영도할 지도자가
영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죠. 그러면서 중심 사상이 또
없다이 말이야. 중심 사상이 없기
때문에 같은 당이라 하더라도 그
내부의 수발은 또 당파와 파벌이
있다. 그리고 각 당파 간에는 극심한
시기, 질투, 견제 등 현상이 남에서
서로 기도권을 지키는데만 급해서 전혀
양보하는 자세가 보이지 않으니
이들로부터 진정한 통일을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워 보인다. 이게
국민당 관리가 장개석 총통에게 보고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독립운동의 어
역사였다고
보겠습니다. 저는 패방 후의 역사도
이와 같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정치
행태의 연장 선상에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에
생각합니다. 판위들 근대적 형태에
헌법이 만들어지고 또 국민들에 의한
보통 선거가 이루어지고 그리고 정당이
성립하고 하니까 아 이제 더 이상
구의 조선 시대의 당장과는 무관한
어떤 근대적인 정치 형태가 성립했다.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도한
대통령의 권의주의 정치를 또 비판하고
했는데요. 여러 지나치의 외래적인
기준을 갖고 우리 정치사를 본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1948년
10월 달, 그러니까이 나라가
성립한지가
48년 8월이니까 그 두 달 뒤에
여수 반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여수와 순천에서 남노당의
당장을 갖는 군하사관들이 반란을
일으켜 가지고 그 지역을 점령을
했습니다. 수많은 우익 인사들이에
처음에 살해가 되었죠. 그렇게 해서
이제 국군이 들어가 가지고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을 했습니다. 그런데이 여순 반란
사건이 발생을 하자 국회가 소집이
되어 가지고 국무원 총 사태를
결의합니다. 책임을 지라 이겁니다.
지금은 그 내각입니다만 당신은
국무원이라 했습니다. 국무원 13명
장관들은 전부 사퇴해라. 왜?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으니까 책임을 지야
된다. 책임을지는 것이 민주정치다.
이제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니 나라가
생긴지 장관이 임명된지 총리가
임명된지 두 달밖에 안 됐는데 그리고
다른 것도 아니고 공산당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그것을지고 네강이 총
사태하라.
그래서 이성 대통령이 화를 내고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1950년
6월 달에 625 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오기
하루 전에 이승마 대통령이에
남쪽으로 피난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강다리가 폭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시민을
버리고 도망쳤다 혼자서 하려고 아는
이러한 민원이 형성되었죠.
그러자 실리키 국회의장이 대통령 보고
대통령에게 죄기서를
발표하기를 요구했습니다. 죄기서라
것은 나에게 죄가 있다는 그와 같은
문서를 가지고 제기습니다. 어 옛날에
임금들이 큰 흉전이 들거나 나라의
변란이 발생을 하게 되면은 죄기서를
발표을 했습니다. 임진여란이 발생하자
선조가 어주로 피난을 가면서 죄기서를
발표하고 어병을 모집을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갑이 될자 내 잘못이다.
재기서를 발표했습니다. 그 유명한 그
저 중국의 당나라 당태종 당현 다 그
내란이 발생하고 또 나라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니까 재기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통령대로
재기서를 발표하십시오. 국별의 미심을
달래 주십시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이승만 대통령이 내가 당 현종이란
말인가 하면서 또 역정을 낸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그 정치
행태들을 뭐 그거에 수많은 정치
행태들을 보면은 다 조선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조선 시대적 감각을
갖고 민주정치의 외피를 키우고 지금
정치를 하고 있구나. 민주정치의
테두리는 외핀에 둘렀지만은 내용은
조선시대 정치와 같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발생을 하게 되면 책임을 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반란이 일어나고
전쟁이 터졌는데 직근자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하는 이와 같은 것 그리고
수많은 업모와 투서와 고변으로
1950년대 정치사가 이어지는 거를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투서가
그렇게 행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옆에 윤석호라는 아주 거음한 유학자
출신의 비서가 있는데 한 3년간
이렇게 훌륭하게 비서 역할을 했는데
워낙 투수가 많이 들어오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 총무처 차관으로 자리를
옮겨 주면서
쇠를 녹일 정도로 당신을 향한 투서가
들어오니까 이거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자리를 옮기시게 하면서 총보처
차관으로 내보낸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이 가난한 것 그리고
공무원이 부정패한 것이 모두가
대통령의 책임이 가난한게 어떻게
대통령의 책임입니까? 이걸 한한
세대를 거쳐서 경제 발전을 해야
해결할 수 있는 그러한 문제입니다.
그걸 대통령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가난하니까 공무원들이 부정 부패를
합니다. 이러와 같은 업무와 투성과
고병과 책임 정치로
난장판이 벌어진게 1950년대 한국
정치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요사이 그런 그
정치사를 많이 읽으면서 아 이러한
강쟁의 연속 전상에서 벌어지는 근대적
정치 형태에서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정당 정치보다는 인물 정치가 그
시대적 정당한 선택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국가의 공적 과제를 책임 윤리를 갖고
개인적인 도덕의 책임이 아니라 공의
세계에서 책임을지면서 경계 발전을
하고 국방을 하고 외교를 하고 하는에
그와 같은 정치가 인불 정치에 의해서
구현될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관점에서에 우리 한국 정치사를 다시
재정리를 해야 된다.이 이대적인
공해에 세계로서 국민 국가와 그리고
국가 이성이 성립하고이
공해 세계는 개인의 도덕 종교 윤리
그리고 법을 초월하는 윤리와 책임식을
요구합니다. 그게 바로 국가 이성의
영역 있죠.이 이 국가 이성의 영역을
출한 어떤 인물들에 의해서 담당하는
과정에서이 대한민국이 건립되어 왔다.
그게 한국 정치사의 역사적 정통성을
아 창조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정치가 지나고 나서
이런바 민주화 시대를 맞아서 정당
정치가 부활이 되었을 때 이것은 그
속에서도 아직도 순화되지 않는
전통적인 어떤 당쟁의 문화적 원리가
그대로 있어 가지고 지금 하나성운
당쟁으로서 정치사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그 당정의
역사가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본격화하지 않았는가? 노현 대통령이
사적 도덕에서 실패를 했습니다.
독직을 했습니다. 아 대통령의 권력을
이용해서 장관을 예명하고 청탁을 받아
주면서 그리고 한 700만 불 가까이
내물을 수술을 했죠. 근데 그것을
검찰이 테이비 후에 수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 다 저는 막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케아벨레직 그
공의 책임 윤리에서는 막아야 됩니다.
대통령의 사적 윤리가 실패를 했지만은
그 공적 윤리, 책임 윤리에서 그것은
덮어야죠. 그래야 정치가 상호간에
어떤 그 신뢰도 생기고 상호 협조하는
전통도 생길 텐데 이명박 대통령은
그걸 수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수치섭세을 감당할 수가
없어 가지고 전임 대통령으로서
공적인 책임가 없는 가운데 자살를 해
버렸습니다. 참고 견어야죠. 그리고
존경받는 정치인으로서 여생을 마감을
했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런 책임가
없는 채 사적인 어떤 미숙관 결단을
해서 자살을 하고 나니까 이후 전
국민이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독직
사건으로 자살한 사람을 정치적
서인으로 추항하는이 당장의
기술입니다. 능숙한 당쟁의 기술이고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때 박근혜 정부
시설에 참여했던 200여명의 어떤
공직자를 숙청을 했지요. 그 연장
선상에서이 윤성열 대통령도 숙청이
되는 겁니다. 명북백 그 배우자가
명북백 하나 받았다는 사건으로 그
정권이 실태를 했어요.이 적당한
당장의 부활입니다.이 부활한 당장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고 이전에 글출한
인불 정치에 의해서 담보되었던 국가
이성이 재건될 수 있을까? 아 이것은
참으로 힘든 우리 한국 정체가
당면하고 있는 역사적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예. 장시간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입니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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