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2

책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From Beirut to Jerusalem) - 각 장 요약



책의 각장을 80 단어로 요약해주세요.








제시된 책 <레바논의 어머니 의사 스웨이 앙: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From Beirut to Jerusalem)의 각 장(목차 기준 및 서문 포함) 내용을 요청하신 조건에 맞춰 한국어로 요약한 글이다. 나를 향하지 않은 글이므로 <해라> tenses를 사용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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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From Beirut to Jerusalem)


감사의 글 (Acknowledgements)

저자는 지난 6년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짚으며 책을 집필하는 데 도움을 준 편집자 스티브 새비지와 그래프턴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의료 지원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 MAP(Medical Aid for Palestinians)의 이사회 회원들과 의료진,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저자에게 인간이자 의사로서 큰 영감을 준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에 고마움을 전한다. 싱가포르의 가족과 외과 의사로서 성장하도록 편견에 맞서 싸워준 동료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가자의 상처 (The Wounds of Gaza)

2009년 1월, 저자는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폭격으로 1,400명이 사망한 가자 지구로 돌아온다. 저자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처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들의 따뜻함과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확인했다. 1987년 인티파다(민중봉기) 소식을 접한 후, 가자의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알 아흘리 병원에서 유일한 외국인 정형외과 의사로 헌신한다. 이스라엘 군의 삼엄한 감시와 통행금지 속에서도 가자 주민들은 굳건한 저항 정신과 불굴의 용기를 보여주었으며, 저자는 참혹한 파괴 속에서도 가자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목격한다. 2008년 가자 침공 당시 drop된 수많은 폭발물과 비인도적 무기(백린탄, DIME 등)의 참상을 직접 조사하여 의학 저널 란셋(Lancet)에 보고서로 발표하며 국제사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서론 (Introduction)

저자의 부모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수용소에서 처음 만났다. 어머니는 여성 교육을 반대하던 완고한 집안에서 자랐으나 스스로 학교에 등록할 만큼 주체적이었고, 항일 저항 운동을 하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결코 굴복하지 않은 강인한 여성이었다. 아버지 역시 안락한 삶과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싱가포르로 이주해 항일 언론 활동을 펼치다 수용소에 갇혔다. 전쟁 후 태어난 저자는 가족들의 보살핌 속에 싱가포르와 페낭을 오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 체계 아래 독서와 과학에 몰두했으며, 과학이 사회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 쓰여야 한다는 신념을 품고 싱가포르 대학 의학부에 진학한다. 의대 재학 중 기독교로 개종한 저자는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깊이 고민했으며, 1977년 변호사 프랜시스 쿠와 결혼하여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삶을 다짐한다.
제1부: 베이루트로의 여정 - 1982년 여름 (PART I: Journey To Beirut Summer 1982)

제1장 (Chapter 1) 1982년 여름, 영국에서 생활하던 저자는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베이루트 폭격 참상을 목격한다. 과거 이스라엘을 신의 선택을 받은 민간인으로 지지했던 저자는 민간인 밀집 지역에 가해진 무차별적인 무력 행위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신에게 이해를 구하던 중 베이루트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할 정형외과 의사를 찾는다는 국제적 외침을 듣고 자신의 소명을 깨닫는다.


제2장 (Chapter 2) 영국 의료계의 인종적, 성별 편견을 극복하고 외과 의사가 된 저자는 난민 여행 증명서만으로 레바논행을 결심한다. 공항을 거쳐 키프러스에 도착한 저자는 전쟁의 참상을 전해 들으며 이스라엘의 공격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남편 프랜시스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용기를 얻는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팔레스타인 대학교수로부터 고향을 빼앗긴 망명자들의 눈물겨운 역사와 PLO가 그들의 망명 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제3장 (Chapter 3) 저자 일행은 동베이루트의 주니 항구에 도착하여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으로 분열된 베이루트의 현실을 마주한다. 삼엄한 검문소를 통과해 서베이루트에 진입한 저자는 폭격으로 파괴된 도시의 참상과 진공 폭탄, 백린탄 등 잔인한 신무기의 흔적을 목격한다. 호화 호텔의 외국 특파원들과 대조되는 비참한 난민들의 처지를 보며, 팔레스타인 적신월사(PRCS)가 운영하는 가자 병원에서 무료 의료 봉사를 펼치기로 결심한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아카 병원의 지하시설을 둘러보며 전쟁의 잔혹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제4장 (Chapter 4) 새벽부터 들려오는 총성 속에 PLO 전사들의 베이루트 철수가 시작되고,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진주한다. 저자는 피난처에서 가족과 헤어지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슬픔을 목격하며 그들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평범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라후트 현장 병원에서 수많은 민간인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전쟁 상흔의 참혹함을 목격하고, 가자 병원이 점차 기능을 회복함에 따라 환자들을 이송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자신이 서베이루트 한복판의 사브라와 샤틸라 난민 캠프에 있음을 알게 된다.


제5장 (Chapter 5) 가자 병원의 정식 재개원과 함께 저자는 정형외과 부서를 맡아 밤낮없이 수술에 매진한다. 난민 캠프 주민들의 헌신적인 환대와 따뜻한 나눔을 경험하며 저자는 의사로서 깊은 인류애와 신앙적 고양을 체험한다. 전력과 식수 부족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병원 스태프들과 힘을 합쳐 응급 환자들을 살려내고, 전쟁의 포화가 멈춘 베이루트의 일시적인 평화와 Euphoria 속에서 주민들과 연대감을 다진다.
제2부: 사브라 - 샤틸라 학살 - 1982년 가을 (PART II: The Sabra – Shatila Massacre Autumn 1982)

제6장 (Chapter 6) 1982년 9월 15일, 이스라엘 군이 서베이루트를 포위하고 무차별 포격을 개시하자 저자는 가자 병원으로 급히 복귀한다. 병원은 밀려드는 총상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이스라엘 동맹군인 기독교 민병대(카타에브, 하داد)가 캠프에 난입해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한다. 지옥 같은 72시간 동안 저자는 밤샘 수술을 이어가며 부상자들을 살리려 애쓰지만, 국제적 고립과 자원 고갈 속에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낀다.


제7장 (Chapter 7) 학살이 끝난 후, 생존자들의 참혹한 시신과 파괴된 캠프를 목격한 저자는 정신적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다. 그러나 생존자들을 대변하고 학살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이어리를 바탕으로 한 증언 문서를 작성해 런던의 남편에게 telex로 전송한다. 폐허 속에서도 승리의 손짓을 하며 용기를 잃지 않는 사브라와 샤틸라의 아이들을 보며, 저자는 불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희망을 편지에 담아낸다.


제8장 (Chapter 8) 10월 1일 가자 병원이 재개원하지만 이스라엘 군의 지속적인 검문과 체포로 캠프의 공포는 계속된다. 저자는 친구 레이라 샤히드와 함께 학살 생존자들의 고통스러운 증언을 수집하며 가족과 사회 기반 시설이 파괴된 참상을 기록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다국적군의 도움을 받아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 반이스라엘 성향을 문제 삼은 스폰서 기관으로부터 계약 해지 및 출국 요구를 받게 된다.


제9장 (Chapter 9) 저자는 미국인 유대인 간호사 엘렌 시겔과 함께 남레바논의 고대 도시 사이다와 수르를 방문한다. 수많은 이스라엘 군 검문소를 통과하며 남레바논이 철저한 군사 점령 상태에 있음을 목격한다. 7만 명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철저히 초토화된 아인 알 헬웨 난민 캠프의 비참한 현장을 둘러보며 전쟁이 남긴 깊은 상흔과 잔혹함을 재확인한다.


제10장 (Chapter 10) 베이루트로 돌아온 저자는 이스라엘의 사브라-샤틸라 학살 책임 조사를 위한 카한 위원회(Kahan Commission)의 청문회 소식을 접한다. 엘렌 시겔의 설득으로 저자와 동료 의사 폴 모리스, 스웨덴 간호사 루이즈는 학살의 직접적인 목격자로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증언하기로 결심한다. 이는 스폰서 기관과의 갈등을 고조시키고 동료들의 거센 압박을 부르지만, 난민들의 목소리가 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제11장 (Chapter 11) 학살 40일째가 되는 날, 저자는 샤틸라의 대규모 무덤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가자 병원 스태프들과 주민들의 뜨거운 응원과 축복을 받으며,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 이삭 레오르의 안내에 따라 이스라엘 방위군(IDF)의 호위를 받으며 국경을 넘어 텔아비브에 도착한다. 화려한 호텔의 환경 속에서도 저자는 캠프의 아이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제12장 (Chapter 12) 카한 위원회 공청회에서 저자는 학살 기간 동안 가자 병원에서 목격한 이스라엘 군과 민병대의 연계성 및 민간인 학살의 진실을 숨김없이 증언한다. 이후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과 유대인 학살 기념관(야드 바셈)을 방문하여 나치 박해의 생존자이자 팔레스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유대인 교수와 인권 변호사 펠리시아 랑거를 만나 연대한다. 저자는 망명자들의 귀환 권리에 대한 깊은 사색을 안고 런던행 비행기에 오른다.
제3부: 예루살렘에서 영국으로 - 1982-1984 (PART III: From Jerusalem To Britain 1982-1984)

제13장 (Chapter 13) (참고: 원문의 파트 분류와 실제 텍스트 내용상 제13장은 Part III의 첫 장에 해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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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해 남편 프랜시스와 극적으로 재회한 저자는 영국 전역을 돌며 200회가 넘는 강연과 슬라이드 상영을 통해 사브라-샤틸라의 참상을 폭로하는 '로드쇼' 캠페인을 전개한다. 영국의 평범한 대중들이 보여준 따뜻한 연대와 지지를 바탕으로, 1984년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한 비정치적 인도주의 의료 자선 단체인 MAP(Medical Aid for Palestinians)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제14장 (Chapter 14) 학살 1주기를 맞아 미국 워싱턴 DC의 초청을 받은 저자는 유대인 회당의 대속죄일(Yom Kippur) 예배와 흑인 침례교회 예배에 참석하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린다. 뉴욕 UN 본부의 PLO 대표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비참한 현실을 상기시키고,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의 꿈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화와 자유를 향한 꿈을 향해 연대할 것을 다짐한다.


제15장 (Chapter 15) MAP의 활동은 순조롭게 성장하여 난민 캠프에 의약품과 장비를 지원하고 의료진 교육을 돕는다. 1982년 폭격으로 발꿈치를 잃었던 레바논 소년 밀라드 파루크를 뉴캐슬 병원으로 데려와 정형외과적 치료를 주선한다. 무력한 전쟁터에서 벗어나 영양을 공급받은 밀라드가 극적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며 저자는 인도주의적 지원의 소중함과 평화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제16장 (Chapter 16) (참고: 원문 텍스트 구조상 제16장은 Part IV의 Return To Beirut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전환점 역할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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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봄, 저자는 뉴캐슬의 드라이번 병원에서 정형외과 시니어 레지던트로 근무하며 일상으로 복귀하던 중, 베이루트의 난민 캠프가 아말(Amal) 민병대의 공격을 받아 다시 학살과 시제가 시작되었다는 절박한 전화를 받는다. 가자 병원이 파괴되고 아카 병원이 포위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저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베이루트 캠프로 돌아가 부상자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MAP 동료들과 자원봉사 팀을 조직한다.
제4부: 베이루트로의 귀환 - 1985년 여름 (PART IV: Return To Beirut Summer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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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Chapter 17) 저자 일행은 삼엄한 보안 속의 베이루트 공항에 착륙하여 레바논 구호 위원회(NORWAC)의 안내를 받는다. 아말 민병대의 공격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부르즈 엘 브라즈네와 샤틸라 캠프의 참상을 확인하고, 여전히 굳건한 태도로 하이파 병원의 재건을 지휘하는 PRCS 책임자 움 왈리드와 재회한다. 분열된 레바논의 내전 상황 속에서도 캠프 수호를 위해 무기를 든 어린 소년병들의 단호한 저항 정신을 목격한다.


제18장 (Chapter 18) 하이파 병원의 지하 시설을 정형외과 및 응급실로 개조하는 작업이 시작되고 저자는 몰려드는 총상 환자들을 돌본다. 소속 정파를 초월해 팔레스타인의 이름으로 뭉친 현지 의사들과 연대하고, 가자 병원의 영웅적이었던 스태프들과 극적으로 재회한다. 영국 대중들이 기부한 의료 장비와 구급차를 정리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의료 자급자족을 위해 분투하는 난민들의 놀라운 복원력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제19장 (Chapter 19) 저자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PRCS의 인도주의적 가치와 분열된 레바논 내전의 비극을 널리 알린다. 하이파 병원에서 M16 총상으로 불구가 된 수많은 청년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고립된 캠프 내부의 의료 시설 확충이 얼마나 절박한지 절감한다. 가자 병원의 외과 도구들을 기적적으로 찾아온 극장 감독 아부 알리와 현지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 손으로 Abdominal pack을 꿰매며 수술실을 세팅한다.


제20장 (Chapter 20) 영국 영사관을 방문해 대사를 만나려 하나 무산되고 캠프로 복귀한 저자는 아이들의 몸에서 수많은 파편을 제거하는 수술을 이어간다. 캠프를 수호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한 의대생 청년의 고뇌와 마주하고, 가족이 분열된 와중에도 팔레스타인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16세 레바논 소년 마크무드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 샤틸라 캠프의 순국선열 기념식에 참석하여 폐허 속에서도 승리와 희망을 노래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꺾이지 않는 영웅적 투쟁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며 연대를 다짐한다.

(이후 장의 요약은 제공된 소스 텍스트 분량 제한으로 인해 여기까지 서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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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1982년 런던에서 앙 의사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베이루트 폭격 장면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원래 친이스라엘적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었지만, 민간인 피해와 병원 폭격을 보며 혼란을 느낀다. 정형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듣고 베이루트행을 결심한다.

<2장>
앙 의사는 자신의 의학 교육, 이민자·여성·비백인 의사로서의 경험을 회상한다. 키프로스에서 처음 팔레스타인인을 만나고, 팔레스타인이 단순한 “테러리스트 집단”이 아니라 추방과 이산의 역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듣는다.

<3장>
베이루트에 도착한 앙은 동서로 갈라진 도시, 파괴된 병원, 난민의 고통을 본다. 민간 병원이 가난한 부상자를 거부하는 현실에 실망하고, 팔레스타인 적신월사 병원인 가자 병원에서 일하기로 한다.

<4장>
PLO 전투원들의 철수 장면을 보며 앙은 처음으로 “전투원”들도 가족과 삶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가자 병원과 사브라·샤틸라 난민캠프가 단순한 텐트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망명 공동체임을 배운다.

<5장>
앙은 가자 병원 정형외과 책임을 맡아 전쟁 부상자, 특히 아이들을 치료한다. 캠프 주민들의 환대와 강인함에 감동하고, 병원이 의료기관이자 공동체의 중심임을 본다. 그러나 바시르 제마엘 암살 소식이 다시 불길한 전환점을 만든다.

<6장>
이스라엘군이 서베이루트에 진입하고 사브라·샤틸라가 포위된다. 앙은 가자 병원 지하 수술실에서 72시간 가까이 부상자를 치료한다. 이후 병원 밖으로 끌려나가며 학살 현장을 목격하고, 캠프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살해되었음을 깨닫는다.

<7장>
앙은 떠나지 않고 증언문을 작성해 런던으로 보낸다. 생존자로서 말해야 할 책임을 느낀다. 캠프로 돌아가 시신, 실종, 약탈, 공포를 목격하고,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용기 속에서 절망 속의 저항 정신을 본다.

<8장>
가자 병원이 다시 문을 열지만 팔레스타인 직원들은 위험 속에서 일한다. 앙은 생존자 증언을 기록하고, 레일라 샤히드와 함께 학살이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파괴였음을 이해한다. 한 할머니의 애도는 책의 가장 비극적인 장면이다.

<9장>
앙은 유대계 미국인 간호사 엘렌 시걸과 남부 레바논을 방문한다. 파괴된 마을, 병원, 난민의 삶을 보며 전쟁의 범위가 베이루트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 장은 팔레스타인 고통을 유대인 양심과 연결한다.

<10장>
앙은 서베이루트에서 팔레스타인 남성들이 검문과 체포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본다. 가자 병원 환자들을 떠나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만, 부상자와 난민을 버릴 수 없어 갈등한다. 인도주의 활동과 정치적 현실이 충돌한다.

<11장>
학살 40일 추모일에 외국 의료진은 공개 추모를 시도하지만, PRCS가 폐쇄될 위험 때문에 취소한다. 앙은 기독교 활동가들과 팔레스타인 지원 네트워크를 만나며, 이 문제가 의료만이 아니라 증언과 연대의 문제임을 절감한다.

<12장>
앙은 이스라엘 카한위원회에서 증언할지 갈등한다. 후원단체는 위험과 정치적 파장을 이유로 말리지만, 앙은 침묵이 더 큰 배신이라고 느낀다. 기독교 신앙, 양심,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며 증언을 결심한다.

<13장>
앙과 엘렌은 이스라엘로 가서 카한위원회에 증언한다. 예루살렘, 야드 바셈, 이스라엘 병원을 보며 유대인의 고통과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함께 생각한다. 엘렌은 유대인의 “귀환권”과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 부정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14장>
런던으로 돌아온 앙은 남편 프랜시스가 자신이 죽은 줄 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국 언론은 그녀의 증언에 냉담하지만, 앙은 학교·교회·모임을 돌며 팔레스타인 현실을 알린다. 이 과정에서 Medical Aid for Palestinians가 탄생한다.

<15장>
앙은 미국을 방문해 사브라·샤틸라 1주기 추모 행사에 참여한다. 유대교 속죄일 예배와 미국 시민권 운동의 기억을 접하며, 팔레스타인 문제를 보편적 정의와 해방의 문제로 이해한다. 미국 언론의 무관심도 경험한다.

<16장>
MAP는 본격적으로 조직화되고,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의료 지원을 시작한다. 부상 아동 밀라드의 치료 과정은 전쟁보다 안정, 음식, 돌봄이 얼마나 치유적인지를 보여준다. 이 장은 연대가 제도적 활동으로 바뀌는 전환점이다.

<17장>
1985년 앙은 다시 레바논으로 향한다. 사브라·샤틸라가 또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다. 1982년에는 학살당했던 캠프가 이번에는 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앙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느낀다.

<18장>
앙과 의료팀은 베이루트에 도착해 NORWAC와 협력한다. 캠프 전쟁으로 사브라와 샤틸라가 다시 파괴된 현실을 본다. 하이파 병원을 수리해 기능하는 병원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시작된다.

<19장>
하이파 병원은 빠르게 정비된다. 팔레스타인 여성들과 의료진은 폐허 속에서도 침대, 수술실, 기구, 붕대, 수술포를 준비한다. 앙은 전쟁 속 병원이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 재건의 상징임을 다시 확인한다.

<20장>
영국 대사관과의 접촉, 현장 방문, 팔레스타인 여성 전사 나흘라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나흘라는 간호사가 되려다 캠프 방어에 참여한 인물로, 팔레스타인 여성의 희생과 결단을 상징한다.

<21장>
앙은 샤틸라 모스크의 순교자 묘지를 방문한다. 젊은 남녀들의 사진과 팔레스타인 깃발은 죽음과 저항의 기억을 함께 보여준다. 생존 가족들은 극빈 속에서도 앙에게 작은 선물을 주며 존엄을 잃지 않는다.

<22장>
아카 병원은 물리적으로는 살아남았지만 난민 수용소가 되어 있었다. 의료팀은 병원과 캠프 사이에서 계속 움직인다. 외국인 의료진도 점점 팔레스타인 현실에 깊이 들어가며, 단기 봉사를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23장>
앙은 나빌라 브리어를 추모한다. 나빌라는 팔레스타인의 고통뿐 아니라 문화, 역사,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여성이다. 이 장은 팔레스타인을 단지 희생자로만 보지 말고, 풍부한 문화와 인간성을 가진 민족으로 보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24장>
1985년 런던으로 돌아온 MAP는 더 큰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 후원금, 자원봉사자, 의료장비가 모이고,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지원이 확대된다. 그러나 현장의 요구는 끝이 없고, 앙은 조직 운영과 현장 책임 사이에서 분주해진다.

<25장>
MAP는 포위된 부르즈 엘바라즈네 캠프에 새 의료팀과 물자를 보내려 한다. 휴전, 안전통로, 교대팀 확보가 모두 불확실하다. 수혈팩, 마취제, 항생제, 수술기구 등 대규모 물자를 준비하며 인도주의 활동이 전쟁정치와 맞부딪힌다.

<26장>
앙은 장기 내전으로 파괴된 레바논 사회를 본다. 민병대 청년들도 근본적으로는 가난과 폭력 구조에 내몰린 사람들이며, 주민들은 전쟁에 지쳐 있다. 앙은 레바논 아이들이 총과 탱크 없이 자랄 수 있기를 절실히 바란다.

<27장>
샤틸라는 식량을 얻었지만 여전히 폐허와 포위 속에 있다. 앙은 나흘라와 캠프 방어자들을 생각하며 팔레스타인 저항의 비극성과 숭고함을 본다. 여성들이 탄약을 나르고 싸우는 모습은 생존 자체가 저항임을 보여준다.

<28장>
MAP 의료진은 하이파 병원과 샤틸라에서 일한다. 이탈리아, 호주, 영국 등 여러 나라 자원봉사자들이 팔레스타인 현실에 깊이 감염되듯 빠져든다. 그들은 단순한 외부 구호자가 아니라 캠프 사람들과 삶을 나누는 동료가 된다.

<29장>
사브라·샤틸라 5주년이 다가오고, MAP 활동은 말레이시아 등으로 확대된다. 국제 자원봉사자와 언론 관심은 늘었지만 캠프의 현실은 여전히 혹독하다. 앙은 기억, 의료지원, 국제연대가 모두 필요하다고 본다.

<30장>
말레이시아 의료봉사자 돌리 퐁의 활동이 중심이다. 부르즈 엘바라즈네의 사미르 알카티브 클리닉은 주민들에게 “돌리의 클리닉”으로 불린다. 이 장은 동남아시아 출신 여성 의료인들의 헌신과 팔레스타인 민중과의 정서적 친밀성을 보여준다.

<31장>
1988년에도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인티파다는 존엄과 희망을 주었지만, 레바논 캠프는 다시 봉쇄와 빈곤으로 돌아간다. 앙은 “낭만적 결말”을 거부하고, 친구로서 팔레스타인의 계속되는 상처 안에 머물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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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생은 단순한 의술의 집행이나 기술의 습득이 아닌, 보이지 않는 신의 섭리와 인간에 대한 거대한 사랑을 깨달아가는 기나긴 영적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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