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터뷰에 나오는 앙의 일생을 <앙이 직접 말하는> 영적 여정 spiritual journey으로 1,000 단어로 써주세요.
<나는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친구가 되었는가>
― 앙 스위 차이(Ang Swee Chai)가 직접 들려주는 영적 여정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 가정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신앙 속에서 자랐다. 내가 배운 예수는 사랑과 자비의 예수였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세계 정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던 것은 서방 언론과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뿐이었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이 세운 나라이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종종 폭력을 사용하는 문제적 집단이라는 이미지였다.
젊은 시절 나는 영국으로 건너가 의학을 공부했고 정형외과 의사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내 삶의 목적은 좋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길로 우리를 이끄신다.
내 영적 여정의 첫 번째 전환점은 키프로스에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만난 일이었다. 그들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그들은 가족을 잃고 집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노인과 아이들이 있었고, 평범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문제"가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었다.
1982년 레바논 전쟁이 시작되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베이루트가 불타고 있었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호소를 들었다. 정형외과 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매우 단순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내가 의사라면 왜 가지 않는가?"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이 누구인지 묻지 말고 도우라고 하셨다.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다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그래서 나는 베이루트로 갔다.
그 여행이 내 삶을 영원히 바꾸었다.
가자 병원에 도착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언론에서 보던 "테러리스트"들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아이들을 안고 울고 있는 어머니들, 부상당한 노인들, 가족을 찾는 청년들이 있었다.
나는 수많은 수술을 했다.
때로는 전기가 없었다.
때로는 마취제가 부족했다.
때로는 수술실 천장 위로 폭탄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고통을 보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것을 보았다.
나는 인간의 존엄을 보았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빵 한 조각을 나누어 주었다. 자기 가족도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들이 외국인 의사인 나를 가족처럼 대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복음을 보았다.
놀랍게도 나는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1982년 9월, 사브라·샤틸라 학살이 일어났다.
그 사건은 내 영혼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나는 병원 안에 있었다. 총성이 들렸고 사람들이 쓰러졌다. 부상자들이 끝없이 밀려들었다. 나중에 거리로 나갔을 때 나는 수많은 시신을 보았다.
여성들.
노인들.
아이들.
그들은 무장 전투원이 아니었다.
그 순간 나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나는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증언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떠나기를 원했다. 정치 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것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의 신앙은 개인적 경건의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정의가 없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성경을 다시 읽었다.
예언자들을 다시 읽었다.
예수의 말씀을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예수는 단지 개인의 영혼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었다.
그는 억압받는 자들과 함께하셨고,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셨으며,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말하셨다.
나는 이것을 "해방의 복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런던으로 돌아와 Medical Aid for Palestinians(MAP)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들은 내게 물었다.
"왜 팔레스타인인가?"
나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했다.
"나는 팔레스타인 편이 아니다. 나는 정의의 편이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서도 일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유대인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특히 사브라·샤틸라 이후 나는 여러 유대인 평화운동가들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그들은 나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다.
팔레스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유대인을 미워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깊이 울었다.
유대인들의 고통은 진짜였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도 진짜였다.
한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다른 민족의 상처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믿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신앙은 더욱 단순해졌다.
젊었을 때 나는 정답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는 질문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왜 인간은 서로를 두려워하는가?
왜 종교는 사랑보다 증오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는가?
왜 우리는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가?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하나님은 권력의 편보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에서 더 쉽게 발견된다.
나는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그것을 보았다.
부서진 병원에서 그것을 보았다.
아이를 잃고도 살아가는 어머니들의 눈에서 그것을 보았다.
나의 영적 여정은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것은 두려움에서 연대로,
편견에서 만남으로,
침묵에서 증언으로,
그리고 추상적인 신앙에서 살아 있는 사랑으로 나아가는 여정이었다.
이제 돌아보면,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도우러 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의사로 갔지만, 인간됨을 배우고 돌아왔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갔지만, 이웃 사랑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믿는다.
하나님은 국경이나 민족의 편에 서시는 분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의 편에 서시는 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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