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제1공화국 - 해방에서 4월 혁명까지
서중석 (지은이)역사비평사2007-08-13


























미리보기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2012년 두레)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독부 이승만 평전>은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생애와 정치적 궤적을 비판적 시각에서 집대성한 인물 평전이다. 저자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은 이승만을 독재자, 나아가 <독부(獨夫: 외딴 사나이, 즉 민심을 잃고 홀로 남겨진 독재자)>로 규정하며, 그의 집권 과정과 권력 행사 방식을 민주주의의 훼손이라는 관점에서 가혹하게 평가한다.
책은 이승만의 출생과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부터 시작하여, 미주 독립운동 시기, 해방 후 정국에서의 권력 투쟁, 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국전쟁, 그리고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와 하와이 망명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반을 시기별로 상찰한다.
저자가 제기하는 핵심 비판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임시정부 시절 탄핵과 미주 독립운동 단체 내에서의 분열에서 드러나듯, 그의 독선적·권위주의적 리더십이 독립운동 역량을 분열시켰다는 점이다. 둘째, 해방 후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친일파 세력을 정권의 기반으로 포섭하고, 제주 4·3 사건과 국민보도연맹 사건 등 민간인 학살과 정치적 반대파 제거를 방조·주도했다는 점이다. 셋째,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욕이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틀을 유린했다는 점이다.
<독부 이승만 평전>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인 이승만에 대한 진보·비판적 사학계의 시각을 정면으로 반영한 선명한 평론서이다.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이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칭송하는 보수 진영의 시각에 맞서, 그의 집권이 남긴 민주주의의 상흔과 역사적 과오를 1차 사료와 정사 기록을 바탕으로 매섭게 추궁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의의는 권력의 형성 과정과 통치 방식에 숨겨진 그늘을 집요하게 파헤쳤다는 데 있다. 특히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에서 발생했던 갈등과 주도권 싸움, 그리고 해방 후 반민특위 해체와 친일 경찰의 재용용 등 민족사적 정통성을 훼손한 지점들을 세밀하게 검증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국가 수립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민주적 절차의 파괴와 인권 탄압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고발한다.
또한, 이승만의 외교술을 <용미(用美)>나 <자주적 외교>로 평가하는 기존의 긍정적 담론에 대해, 그것이 실상은 자신의 정권 유지와 미국 의존적 냉전 대결 구도를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대립적 시각을 제시한다. 이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상적 대척점을 제공한다.
다만, 이 저작은 평전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인물의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다루기보다는 <과(過)>를 입증하는 데 집중된 정치적·사상적 비판서의 성격이 강하다. 6·21 한국전쟁 당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통한 안보틀 구축이나, 농지개혁을 통한 봉건적 토지 소유 구조의 해체 등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든 주요 정책적 성과에 대해서는 정당한 평가를 유예하거나 축소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저자의 강한 시각이 개입되어 있어 객관적 인물 평가라기보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진 민족주의적 비판 담론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한국 현대사에 남긴 중대한 영향력과 그로 인한 민주주의의 시련을 되돌아보게 하는 강렬한 사료이다. 이승만의 저작들과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서들과 비교하여 읽을 때, 한반도 근현대사의 복잡한 굴곡과 지도자 한 사람이 국가에 미친 빛과 그림자를 보다 명확히 파악할 수 있게 돕는다.
아래 글은 김삼웅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충실히 요약하면서도, 이 책이 반대 방향의 이승만 영웅화와 마찬가지로 결론을 미리 정해 놓은 평전이 될 위험을 함께 평가한 글이다.
<독부 이승만 평전> — 독립운동가에서 민주주의의 배역으로
김삼웅 지음, 2012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으로 기리는 전기와 정반대편에 서 있는 비판적 평전이다. 부제는 ‘권력의 화신, 두 얼굴의 기회주의자’다. 저자는 이승만의 젊은 시절 개혁운동과 반일 언론활동은 인정하지만,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 핵심 동력을 권력욕과 정치적 기회주의에서 찾는다.
책은 2012년 9월 출간된 422쪽 분량의 저술이며, 2020년에는 『이승만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다. 출판사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이승만의 공과를 대략 ‘공 3, 과 7’로 평가하며,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움직임을 반박하려 했다.
‘독부’는 단순히 독재자를 줄여 부른 말이 아니다. 맹자에서 유래한 말로, 민심을 잃어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된 외로운 지배자를 뜻한다.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인 김창숙은 이승만을 이 말로 비판했다. 김삼웅은 이 표현을 빌려, 이승만이 독립운동가와 초대 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얻었지만 결국 국민에게 버림받아 해외로 떠난 인물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이 책은 이승만의 생애를 중립적으로 소개하기보다는 하나의 명확한 논제를 증명하려 한다. 젊은 시절의 개혁가가 어떻게 권력지상주의자로 변했고, 독립운동가가 어떻게 독립운동의 분열을 초래했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 사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되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책의 중심이다.
김삼웅도 이승만의 초기 활동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는다.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 활동에 참여했다. 『협성회회보』와 『매일신문』 등을 통해 개혁과 자주독립을 주장했고, 전제군주제를 비판하며 입헌정치와 국민의 권리를 강조했다.
이 시기의 이승만은 상당히 급진적인 개혁청년이었다. 그는 일반 백성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국가가 소수 왕족과 관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갇힌 뒤에는 『독립정신』을 집필하여 교육, 법치, 개방과 국민의식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삼웅은 이러한 활동을 이승만 생애의 긍정적인 부분으로 평가한다. 책의 소개도 젊은 이승만의 선구적인 언론활동과 개혁정치 활동은 높이 평가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저자는 이 시기에도 이승만에게 강한 자기중심성과 명예욕, 동료와 타협하지 못하는 성향이 나타났다고 본다.
이러한 해석은 이승만의 훗날을 설명하기 위한 복선으로 기능한다. 초기의 개혁사상 자체가 거짓이었다기보다는, 공적 이상보다 자신의 지도권을 우선시하는 성향이 점차 강해졌다는 것이다.
출옥한 이승만은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대학교, 하버드대학교와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미국의 정치인과 종교계 인사들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외교독립론을 발전시켰다.
이승만은 한국이 일본을 군사적으로 물리칠 힘이 없으므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와 국제연맹에 기대를 걸었으며, 한국의 독립을 국제문제로 만들려고 했다.
김삼웅은 외교활동의 필요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승만의 외교독립론이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었으며, 국내 민중운동이나 무장투쟁, 독립운동 세력 사이의 협력보다 자신의 외교적 지도권을 앞세웠다고 비판한다.
특히 1919년 3·1운동 뒤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으로 선출된 과정과 그 이후의 갈등을 자세히 다룬다. 이승만은 미국에 머물면서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지 못했고, 상하이의 국무위원들과 자주 충돌했다. 국제연맹에 한국을 위임통치해 달라고 청원한 일도 신채호와 박은식 등 독립운동가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저자는 이 청원을 독립국가를 세우려는 노력이라기보다 한국의 운명을 강대국에 맡기려 한 사대주의적 행동으로 해석한다. 임시정부의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재정과 권한을 둘러싸고 갈등한 결과, 이승만은 1925년 임시정부 대통령직에서 탄핵되었다.
김삼웅에게 이 사건은 이승만의 ‘독부적’ 성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첫 장면이다. 그는 조직의 결정보다 자신을 앞세웠고, 동료를 협력자가 아니라 경쟁자로 보았으며,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배척했다는 것이다.
이승만은 하와이의 한인사회에서 교육·종교·언론 활동을 전개했다. 한인기독학원과 교회를 세우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으며, 잡지와 신문을 통해 한국 독립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러나 김삼웅은 이 활동의 긍정적 측면보다 하와이 한인사회의 분열을 더 강조한다. 이승만은 박용만 등 무장독립론자들과 대립했고, 대한인국민회와도 재정 및 지도권을 둘러싸고 충돌했다. 자신을 따르는 조직과 교회를 별도로 만들면서 한인사회를 분열시켰다는 것이다.
저자가 문제 삼는 것은 노선의 차이 그 자체가 아니다. 독립운동에는 외교, 교육, 군사 활동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승만이 다른 노선을 인정하거나 공동전선을 형성하기보다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는 데 있다.
김삼웅은 이승만이 실제 독립운동의 성과보다 자신의 정치적 지위와 명성을 유지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이 책에서 이승만의 장기간 미국 생활은 화려한 학력과 외교활동의 시대라기보다, 끊임없는 조직 분열과 권력경쟁의 시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부분은 김삼웅의 평가가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기도 하다. 미국 정부와 여론을 상대로 한국 독립을 꾸준히 주장하고, 일본의 대미전쟁 가능성을 경고한 활동까지 거의 권력욕의 표현으로 환원하면 이승만 외교의 실제 성과를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1945년 해방 뒤 귀국한 이승만은 강력한 반공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소련과 공산주의 세력을 신뢰하지 않았고, 미소협조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았다.
1946년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나 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발언은 이승만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승만을 긍정하는 쪽에서는 북한에 이미 공산정권이 형성되고 있던 현실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반면 김삼웅은 이를 분단정부 수립을 앞장서 추진한 행동으로 해석한다.
책에서 이승만은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과 남북협상을 추진한 김규식·여운형·김구와 대조된다. 김삼웅은 이승만이 반공을 이용하여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미국의 지원 아래 남한 단독정부의 대통령이 되려 했다고 본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도 이 책에서는 ‘건국의 위업’보다 분단체제의 고착이라는 측면에서 다뤄진다. 이승만은 제헌국회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지만, 이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회와 정당정치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당시 소련 점령지역에서 진행된 권력 집중과 북한 정권 수립, 미소공동위원회의 실패와 냉전의 구조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다룬다. 분단은 이승만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과 소련의 군사점령, 국제적 냉전과 남북 정치세력의 대립이 함께 작용했다. 이승만의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를 분단의 사실상 단독 설계자로 보는 설명은 지나치게 인물 중심적이다.
김삼웅이 이승만 정권을 가장 강하게 비판하는 부분 가운데 하나는 친일파 청산의 실패다. 해방 뒤 국회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일제강점기의 주요 친일행위자를 조사하려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는 반민특위의 활동을 방해했고, 경찰이 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승만은 국가건설과 공산주의 진압을 위해 일제하 관료와 경찰의 행정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 결과 독립운동가들이 배제되고 식민지 통치에 협력했던 경찰과 관료들이 새로운 국가권력의 핵심에 들어갔다.
김삼웅은 이를 단순한 현실적 타협으로 보지 않는다. 친일세력을 자신의 권력기반으로 삼고, 이들을 이용해 독립운동가와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한 반민족적 선택이었다고 평가한다. 2020년 개정판의 소개도 친일 경찰과 총독부 출신 사법 관료를 중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한 것을 이승만의 핵심 과오로 제시한다.
제주4·3, 여순사건과 국가보안법 제정 과정도 이러한 경찰국가 형성의 맥락에서 서술된다. 저자는 공산주의 반란과 폭력의 실체를 부정하지 않지만, 정부가 반공을 명분으로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반대세력 전체를 적으로 몰았다고 비판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문제의식은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대한민국의 존립 위기와 공산주의의 위협을 인정하더라도, 국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과 법치의 파괴까지 불가피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다루는 장에서 김삼웅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과 전쟁 준비 부족을 비판한다. 정부는 강경한 구호를 반복했지만 실제 군사력과 국민 보호 계획은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북한군이 서울로 접근하자 이승만은 서울을 떠났으면서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정부가 서울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알렸다. 한강 인도교가 조기에 폭파되어 미처 피난하지 못한 시민과 군인들이 피해를 입었고, 많은 서울시민이 북한군 점령 아래 남겨졌다.
김삼웅은 이를 지도자가 국민을 버리고 자신의 안전부터 확보한 사건으로 본다. 이후 서울 수복 뒤에는 피난하지 못했던 시민들 가운데 부역 혐의자를 가혹하게 처벌했다. 전쟁 전후의 국민보도연맹 학살과 민간인 희생도 이승만 정부의 중대한 책임으로 다뤄진다.
반면 이 책은 이승만이 전쟁 중 대한민국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미국의 지속적인 참전을 요구했으며, 휴전 과정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낸 외교적 역할은 충분히 평가하지 않는다. 반공포로 석방과 미국 압박은 전쟁을 확대할 위험이 있었지만, 그 결과 한국의 장기적인 안전보장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
김삼웅에게 이러한 행동은 민족을 위한 결단보다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도박에 가깝다. 그러나 이승만의 동기를 권력욕 하나로만 설명하면 국가안보에 대한 그의 실제 우려와 외교적 계산을 놓치게 된다.
이 책의 비판이 가장 확고한 근거를 갖는 부분은 이승만의 장기집권 과정이다. 국회에서 재선될 가능성이 낮아지자 이승만은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는 발췌개헌을 추진했다. 부산 정치파동에서는 계엄령 아래 국회의원들을 위협하고 체포하여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1954년에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없애는 개헌을 추진했다. 개헌안은 원래 필요한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했지만 자유당은 수학적 반올림 논리를 동원하여 통과를 선언했다. 이것이 사사오입개헌이다.
김삼웅은 이 과정을 이승만이 헌법과 법률을 국가의 기본규범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증거로 본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해 온 사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절차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진보당 사건과 조봉암 처형도 중요한 사례다. 조봉암은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을 주장하며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었다. 이승만 정권은 그를 간첩 혐의로 처형했다. 김삼웅은 이를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를 사법적으로 제거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언론 탄압, 야당 탄압과 관권선거가 계속되면서 이승만 정권은 점차 개인독재체제로 변했다. 반공은 국가안보의 원칙이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만능의 무기가 되었다.
1960년 이승만과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대규모 부정선거를 실시했다. 투표함 바꿔치기, 공개투표, 야당 참관인 축출과 투표수 조작이 광범위하게 자행되었다.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분노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9일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경찰의 발포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승만은 결국 4월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하와이로 떠났고 귀국하지 못한 채 1965년 세상을 떠났다. 김삼웅은 이 결말을 ‘독부’라는 말의 완성으로 해석한다. 국민의 자유와 독립을 주장했던 지도자가 민심을 잃고 국민혁명에 의해 축출되어 외국에서 생을 마쳤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4월혁명은 미국이 이승만을 버린 사건이 아니라 국민이 독재자를 몰아낸 민주혁명이다. 이승만의 퇴진은 그의 건국 공로를 잊은 배신이 아니라 스스로 파괴한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심판으로 제시된다.
『독부 이승만 평전』의 가장 큰 장점은 건국과 반공이라는 이유로 이승만 정권의 폭력과 민주주의 파괴를 가볍게 다루는 역사관에 강력히 맞선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수립과 한국전쟁기의 국가 생존이 중요하다고 해서 반민특위 해체, 민간인 학살, 부산 정치파동, 사사오입개헌, 조봉암 처형과 3·15 부정선거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김삼웅은 ‘공이 있으므로 과를 덮어야 한다’는 논리를 단호히 거부한다.
또한 이승만을 일관된 영웅이나 악인으로만 그리지 않고, 젊은 시절의 개혁적·계몽적 활동은 인정한다. 그가 처음부터 독재자였던 것이 아니라,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초기의 자유와 법치 원칙을 저버렸다는 것이 책의 핵심 비극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독립정신』과 함께 읽을 때 더욱 의미가 있다. 젊은 이승만이 주장한 국민주권, 법치와 자유의 원칙을 기준으로 대통령 이승만의 통치를 평가하면 그의 자기모순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러나 이 책 역시 결론이 지나치게 선명하다. 저자는 이승만의 거의 모든 중요한 선택을 권력욕, 사대주의와 기회주의로 해석한다. 독립운동기의 외교활동, 남한 정부 수립, 한국전쟁기의 대미외교까지도 부정적인 동기의 결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의 정치적 행위에는 권력욕과 공적 목적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이승만이 권력을 강하게 추구한 것은 분명하지만, 공산주의와 소련의 팽창을 실제 위협으로 인식했고 독립국가의 생존을 염려한 것도 사실이다. 모든 행동을 개인의 권력욕으로 환원하면 냉전과 분단이라는 구조적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다.
책은 김구·김규식·여운형 등 이승만의 경쟁자들을 상대적으로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들의 통일정부 구상이 실제 미소대립과 북한의 권력구조 속에서 실현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다.
‘분단정부’라는 표현도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1948년 대한민국이 한반도 전체를 통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의 성립 자체를 민족사적 잘못으로만 보면 자유선거와 제헌헌법, 의회정치의 역사적 의미를 놓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이승만 우상화를 교정하는 데는 강력하지만, 이승만의 국가건설과 외교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평전으로는 부족하다. 옹호론을 반박하려는 목적이 너무 강해 반대 방향의 단순화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독부 이승만 평전』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라는 한마디로 신성화하는 역사관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다. 김삼웅은 이승만의 생애를 독립운동, 국가건설과 반공의 업적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그가 파괴한 민주주의와 희생된 시민들의 역사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가장 설득력 있는 부분은 집권 이후다. 반민특위 해체, 경찰국가 형성, 정치적 경쟁자 제거, 위헌적 개헌, 언론과 야당 탄압, 부정선거는 단순히 시대가 혼란했기 때문에 발생한 실수가 아니다. 권력 연장을 위해 국가제도와 법을 의도적으로 훼손한 행위였다.
반면 독립운동기와 해방 직후의 이승만을 평가할 때에는 책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다른 연구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의 외교독립론과 반공주의에는 개인적 야망뿐 아니라 당시 국제정세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도 들어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한미동맹 형성에서 그가 수행한 역할도 부정할 수 없다.
따라서 이승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김삼웅의 『독부 이승만 평전』과 로버트 올리버의 『이승만의 대미투쟁』 같은 옹호적 기록을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올리버의 책이 이승만의 국가생존 외교를 강조하면서 독재를 축소한다면, 김삼웅의 책은 독재와 국가폭력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국가건설과 외교적 성과를 축소한다.
두 시각 사이에서 내려야 할 결론은 이승만이 위대한 건국자이거나 권력욕만 가득한 악인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동시에, 자신이 내세운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에 의해 축출된 권위주의 지도자였다.
한 문장으로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독부 이승만 평전』은 건국과 반공의 이름 아래 가려진 이승만의 권력욕, 국가폭력과 민주주의 파괴를 날카롭게 드러낸 중요한 비판적 평전이지만, 그의 외교독립운동과 국가건설의 성과까지 기회주의로 환원함으로써 이승만 우상화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단선적 평가에 빠지는 한계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