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5 '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5회 - YouTube

'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5회
법률방송
99,339 views  Nov 27, 2024  #한국인 #역사 #함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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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근대 조선 이야기에서 그 영역을 더 확대해 근대 동북아시아 관계를 살펴볼까 합니다.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를 맞이한 일본은 조선과 청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을까요? 
또 그 시기에 일본은 갑자기 왜 조선을 정벌하겠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했던 것일까요? 
일본의 아시아 정복 야욕은 과연 이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일까요?

19세기 일본 내에서 논쟁이 되었던 정한론! 
다양한 근대 사료를 바탕으로 2회에 걸쳐 입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그 첫 번째 내용은 대마도에서 시작된 근대 외교의 변화부터 다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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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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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 있니다 어 지지난 시간에는 제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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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어떻게 도입이 됐고 조선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는가 살펴봤고 지난 시간에는 이제 그걸 그 변화로 인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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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주사 성약을 두려고 제사를 도입하고 그러면서 이제 여성의 지휘가 어떻게 됐었고 특히 말기에 가서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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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삶이 어땠는가 이제 이런 거를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동안에 이제 그 조선의 어떤 내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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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의 문제 근대화 이전에 또 본건 사회의 모습 이런 거를 살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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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변화를 겪고 왔는가 또 일본이 봉건 사회에서 근대 국가로 어떻게 넘어오는 하는 과정도 좀 살펴봤고요
1:08
중국 역시 어 근대화의 과정을 어떻게 겪었는가 우리가 살펴봤습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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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동북 아시아에 우리 주우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 주변 국들이 근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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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맞이 했는가에 대한 부분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이제 그것이 그 변화가이 근대화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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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세 의 차원에서 봤을 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특히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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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원래 중국의 조공을 바치면서 어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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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질서 우리가 화의 질서라고 하죠 그 화이질서 속에서 살다가 중국의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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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방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대등한 근대 국가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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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과정 어떻게 우리가 그 거기까지 넘어오게 됐는가 그리고 특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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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 질서 사대 질서 중화 질서를 무너뜨리고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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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에서 일본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 역할을 하는 도중에 일어났던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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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중국과 조선과의 관 관계를 근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2:19
대내적인 커다란 논쟁이 그것이 정한 논입니다 우리가 정한론의 대해서 어
2:25
많은 분들이 들어보셨을 거고 정한론의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고 이해가
2:30
이해가 있겠지만은 정한론이라는게 진짜 뭐였고 그것이 왜 우리 동북아시아의
2:36
근대화 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가 그리고 우리 조선 한테도 어떤
2:42
결정적인 역할을 미쳤는가 이런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좀 우리가 깊이 들어가 봐야 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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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이고 해서 어 정론에 대해서는 이번 시간만이 아니라이어서 다음 시간
2:54
두 시간에 걸쳐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함재봉 한국 국인의 탄생 이제
3:04
[음악]
3:10
시작하겠습니다네 어 정론에 대해서는 역사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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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은 아마 다 나름대로 견해가 있으실 거고 어 의견이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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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말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이죠 한국을 정복하는 거에 대해서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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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논했다 우리가 도 아니고 일본 사람 본인들이 자기네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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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벌 문제를 가지고 격렬한 논쟁을 버렸고 사실 나중에 내전까지
3:40
치러야 되는 어 그런 상황이 벌어졌었는데 그거를 이제 일본말로 세이간 론 그래서 사실 세이한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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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발음으로 이제 정한 론이 되는 거겠죠 그래서 이제 많은 분들은 아 이게 이제 일본이 혹시 탐탐 조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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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하려고 어 노리 기회만 노리고 있었고 그리고 이제 결국 가서는 어
4:00
그 나중에 한일 합방까지 일어나면서 어 우리가 일본 제국의 식민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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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면서 결국은 이게 다 일본이 처음부터 쭉 계획했던 정한론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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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다 정한론이 결국 어 완성된 것이 이제 우리가 일본의 어 식민지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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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었다 이렇게 이제 일을 생각하시는데 사실 저는 그거보다는 조금 더 우리가 뉘앙스가 있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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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역사에 대해서 가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한국인의 탄생을 쭉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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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갖고 있었던 역사에 대한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대부분 틀린 것이 많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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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했던 어 그 측면들이 다 있었던 거고요 근데 저는 정한론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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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라고 어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선 그럼 정론이 뭔가 정론은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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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일본이 나라를 자기네 나라를 어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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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막부 체제에서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중앙 집권적인 나라로 만들고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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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계급을 없애면서 신분제를 다 철폐하고 다 남자고 여자고 천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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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 다 똑같은 교육을 받게 만들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폐번 치현 뭐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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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하면서 엄청난 대적인 변화를 겪습니다 그 변화를 겪으면서 동시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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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국가 부상하기 시작하는 근대국가 일본이 그럼 옆 나라들 하고 도대체 어떤 관계를 맺어야 되는 것인가 건
5:30
시대에는 전근대 시대에는 중국하고 일본하고 관계 밖에 없었던 거죠 완전히 개항을 해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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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국 독일 뭐 이런 데랑 러시아 모든 국가랑 국교를 수립하고 교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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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고 이러면서 그러면 전통적인 관계를 맺어왔던 중국 그리고 가장
5:51
오랜 깊은 관계를 맺어왔던 조선 하고의 관계는 그럼 어떻게 다시 설정을 할 것인가 어떻게 변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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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야 될 것인가 어떻게 근대화를 시 야 될 것인가이 문제에 이제 봉착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동북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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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들의 대내적인 근대화뿐만 아니라 대외 관계에 있어서도 이게 어떻게
6:10
근대화를 과정을 겪었는가 우리가 살펴봐야 됩니다 전통적인 동북 아시아의 근대국 질서가 있었습니다
6:17
문명의 중심은 중국이고 중국으로부터 중화 문명이 나와서 그 중화 문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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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받아들이는 나라들이 주변에 있는 거고 특히 대표적으로 조선이 그거를 굉장히 잘 받아들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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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화 작은 중국이다 이렇게까지 어 자칭 자임을 했던 것이고요 주작을
6:38
얼마나 잘 받아들였나 따라서 얼마나 더 문명국이고 더 야만국이고 이런 거를 결정을 했고 중국으로 더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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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바깥에 있던 일본은 이제 가장 천시 받는 그런 국가였습니다 자 그런데 그 질소 속에서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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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던이 세 나라가 일본이 가장 먼저 근대화를 하면서 메이지 유심까지
6:57
일으켜서 어 그러면 지금 조선하 그의 관계는 뭐야 어떻게 다시 바꿔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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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하고 관계는 어떻게 재조정을 해야 되는 거지 이런 인식을 갖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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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에 대해서 적극 나서면서 대내적인 근대화 가정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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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하고 조선과의 관계도 완전히 재설정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 그래서
7:19
우리가 그 문제를 거기서부터 이제 살펴봐야 되는 겁니다 조선하 1번의
7:25
관계가 근데 이전에는 어떤 방식으로 이어져 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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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근대화 시키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정환 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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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고 그 정론이 어떻게 해소가 되는지요 부분을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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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다음 시간에 걸쳐서 쭉 살펴보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지도를 하나 보시겠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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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제가 동그라미 쳐놓은 부분이 이게 대마도 정말 지도상으로 보면 우리가 대한해협의 한복판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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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있는데요 일본 사람들은 뭐 이제 대마도 해협이 그러고 스시마 해협이고 이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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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를 이제 대한 해협이 이름을 했었는데 보시면은 아주 정중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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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습니다 어느 쪽에 더 가냐고 얘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마도가 뭐 부산에서 날 좋 날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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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요 그니까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게 아니라 사실 대마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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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조선과 일본 관계를 전담하는 그러한 번 한 그래서 조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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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관계를 전담하는 속에서 융성을 했었던 거 번영을 했었던 것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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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어떻게 번영을 했는지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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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조선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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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꾸가와 막부가 도요토미 세력을 밀어내고 일본을 통일을 한 다음에 우리 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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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는 임진 전도 안 했었고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우리 다시 조선하 좀 잘 좀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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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포로들을 석방을 하고 어 조선 사람들을 그 포로를 잡아갔던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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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벌을 주고 조선에 넘기고 뭐 이러라 해서 그런 조건 하에서 기유 약조 아는 걸 맺었습니다 그 기유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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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조선하 일본의 모든 관계는 대마도를 통해서 한다 쓰시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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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서 한다 그리고 스시마에 대마도주의 인장을 받은 세견선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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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 외관 이라 데를 통해서 들어와서 조선하 무역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거를 이제 딱 설정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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놨습니다 자 그러면 그 내용에 따라서 대마도는 사실 굉장히 번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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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에 일본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것이 조선으로부터 들어오는 흰 비단이 있답니다 그리고 인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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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답니다 대마도에서 상인들이 세 연선을 타고 들어와서 그거를 사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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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죠 애도 이런데 가서 도쿄 지금의 도쿄 이런데 가고 오사카 이런데 가서 아주 엄청난 어 마진을 붙여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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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큰 돈을 벌었던게 그게 이제 어 대마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우리나라에 은이 일본 은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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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왔고 그 일본 저 은이 또 이제 중국으로 어 넘어가고 이제 그랬었습니다 자 그런데 19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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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기 시작하면서이 대마도가 아주 난처한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됩니다 왜냐면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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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토에서도 비단을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으로 일본도 자체적으로 생산을 하기 시작하고 인삼도 자체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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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조선 인삼과 그 비단에 대한 수요가 급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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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버리니까 대마도가 이제 경제난에 봉착 하기 시작합니다 그다음에 일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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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항을 합니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조선하 유일한 국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유일한 무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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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통해서만 돼 있으니까 사실 외국과의 교육하던 유일한 한구가 대마도 있습니다 스시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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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이 1853년에 개항을 하면서 페리 제도 요구서 개항을 하면서 뭐 뭡니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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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다 하코다테 가나가와 나가사키 니가다 효고 등 이런 항구들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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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개을 하면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상인들과 군함들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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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교육을 하고 와서 상주를 하기 시작하고 이러면서 갑자기 거기에 비해서 이제 쓰시마는 아무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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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인 가치가 없어져 버린 거죠 그래서 대마도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
11:25
됩니다 그랬는데 그야말로 참 어 대마도 입장에서는 구사 일생이었던게 뭐냐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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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적으로 전략적으로 아주 요충이 돼 버립니다 왜 그러냐면 이때 러시아가 바로 어떻게 합니까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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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동진을 시작해서 그 중앙아시아로 넘어가서 그다음에이 시베리아를 통해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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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1860년에 연해주까지 중국으로 또 빼앗고 그러면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만들어지면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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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내륙의 그 세력을 제국을 건설을 하는 거고 영국은 또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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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팽창을 해 나가니까 러시아가 남하해 오는 거를 막으려고 러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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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를 통해서 지중해로 내려오려 그러면 크림 반도에서 크림 전쟁을 일으켜서 막고 아프가니스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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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려면 또 막고 그리고 이제 마지막에 나중에 러일 전쟁에서 또 막는 거죠 일본을 이용해서 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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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 상황에서는 그 두 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경쟁을 하면서 팽창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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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갔는데 그걸 이름 하여서 우리가 더 그이 게이라고 불렀습니다 영국 사람들 이걸 엄청난 게임이죠 진짜 영국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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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끊임없이 경쟁을 하는 그 과정이었습니다 자 그래서 블라디보스톡까지 러시아가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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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이 극동 함대가 분명히 어떻합니까 동해를 통해서 내려올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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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은이 러시아 함대가 남아 하는 거를 막을 수 있는 요청은 뭐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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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죠 그래서 영국이 대마도로 갑니다 그리고 이제 사실 러시아가 먼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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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이제 영국이 가고 그러니까 이제 대마도 대마도가 다 다시 전략적으로 이제 중요하게 됩니다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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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이때부터 이제 스시마 중요성이 부각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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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메이지 정부가 정부가 그러면 이거 스시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 되지 이게 전략적 요청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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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하우스 뭐냐면 조선 하고의 관계를 터야 되겠습니까 조선 하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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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다시 만들어야 되는 거죠 자기네가 도구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를 일으켜서 메이지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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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섰으니 그럼 우리 다시 해야 되겠다 그래서 다시 그 조약을
13:34
맺으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다음에 계속해서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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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뭐라 그러냐면 아유 자기네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 메이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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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아이 외교관 좀 파견해서 조선에 우리 보내야 되지 않겠냐 그서 내가 그러면 그걸로 가면 되지 않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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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대마도 주가 이제 그러는 거죠 나를 보내라 그래서 기도 다가요 씨도 아 그러면 이 스시마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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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고 조선화의 관계를 재설정을 한 거가 아이 중앙정부 입장에서도 중요한 거구나 해서 이제 일본 정부가 사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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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대마도주를 통해 가지고 이제 외관으로 보내는 거죠 그랬더니 외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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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더니 거기에 외관의 훈도 있던 안동준 이런 사람들이 지금 와갖고 무슨 느닷 없이 뭐 너희가 뭐 정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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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었다 뭐 황제가 우긴 소리 하지 말고 그냥 원래대로 해 이러는 겁니다 지난 거의 300년 동안 해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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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해 이제 이러는 거 죠 세견선 밖에 못 들어와 20척 밖에 이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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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그래 갖고 이제 그때 기도가 기도 닦아 주시가 뭐냐 뭐라고 하냐면 야 이거 안 되겠다 그 우리 왕정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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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는데 이거 그대로 놔두면 안 된다 그러면서이 가서 정벌을 해야 된다 이제 이런 얘기가 나는 거예요 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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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내 줘야 된다 조선을 그래서 이제 이런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정부에서 뭐라 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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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우선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정확히 좀 파악을 하자 그래서 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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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번주 이런 명령을 내립니다 이번에 왕정으로 일신 돼요 그러니까 도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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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가 통치하던 거를 이제 메이주 신을 통해서 천왕이 직접 통치를 한다 그래서 이번에 왕정으로 일신되어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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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과의 교재는 조종이 담당할 것이다 그니까 이제는 통일된 중앙 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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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됐으니까 외교관계를 외무성이 걸 만들어서 외무성이 다 할 거지
15:22
시마가 담당하고 이런 거 없다 이제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모든 외국과의 교제는 조종이 담당할 것이 조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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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부터 왕래하던 나라이므로 더욱 위신을 세우자 하는 뜻으로 지금까지 대로 그니까 종가 종 시내가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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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시마에 다이묘의 집안 이름입니다 양국 통교를 가역 명하여 다시 하도록 하여 조선 국과의 교재는 외국 사무부
15:45
마음가지 가짐으로 행하라고 명하니 그니까 외교관의 관리의 마음가짐으로
15:52
하라 이거예요 이제는 대마 도주 보고 국기를 세울 수 있도록 진력하다 단
15:57
왕정 일신의 로 해외에 대해서 더욱 특별히 마음을 기울려 구를 척결하고
16:04
공하 그랬더니 스시마에 다이며 소 어
16:10
시기라 종 의입니다이 사람이 뭐라 그러냐면 이번 서류부터 조선에서
16:17
만들어 준 관인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우리 조종에서 새로 만들어 주는 관인을 사용함으로써 옛날부터 조선의
16:25
신하로 살아온 점을 잘못된 점을 뉘우치겠습니다 수백년간 조선으로부터
16:31
받은 국가적인 경멸과 모욕으로 점철된 잘못을 바로잡아 오늘부터 오로지 우리나라의 국채와 국기를 바로
16:38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뭐냐면 그 전까지는 대마 도주는 물론이 독구 가한도 충성을
16:45
했지만 조선하 관계가 중요하니까 조선에 또 조공을 바치고 했었던 거죠 근데 이게 갑자기 근대 국가라는 거는
16:52
아 그 그런 거 아니야 그 국익을 정확하게 그 주도해 나가는 것 그
16:58
극대화시켜 나가는 거 외교부가 해야 되는 거고 번은 외교부가 시킨 대로 해야 되는거다 그러니까 이제 번의
17:05
입장이 따로 국가 입장과 별다른 입장이 없어져 버리는 거죠 그게 이제 중앙 집권화가 일어나는
17:10
겁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따라서 이제 대마 도주는 여태까지 그 조선하 잘
17:18
이러고 살아왔는데 체제 자체가 바뀌니까 아 나의 내가 어느 나라에 누구한테
17:26
충성하는 정확해야 되는 거구나 조선은 까지는 외국이구나 그러니까 내가 도구가 테도 충성하고 뭐 조선에 조공
17:33
받치고 이거는 이제 말이 안 되는 시스템이구요 지금 사진에 나오시는게
17:38
왼쪽이 그게 이제 종의 달 마지막 대마도주요 그 옆에 있는 사진이 뭐냐면 대마도주 종의 달의 아들하고
17:47
그 옆에서 있는 여자가 덕해 옹주 순 저 고정의 딸이죠 덕해 홍주
17:54
대마도주 이제 폐번 치연 하면서 번들이 다 없어지면서 귀족들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귀족에 그리고
18:02
조선하 그래도 제일 오랜 관계를 맺었던 대마도주의 후손고 결혼을
18:08
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자 근데 이제 대마도주 입장에서 그렇게 방금
18:13
말씀드린 대로 완전히 이제 일본의 국민으로서 충성을 다해 갖고 조선에 가서 이제 우리 이게 바뀌었다 이렇게
18:19
얘기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그때에 내부적으로 써놓 기록이
18:25
있습니다 그 종의 달이 뭐라고 썼냐면 이번에 조일신의 전말을 대수를 통해
18:31
조선에 알리려 한다이는 일찍이 조명이 있어 지금의 로부터는 그 나라가
18:37
주조해 준 조선이 주조해 준 도서 인장을 고치고 일본 조정이 만들어
18:42
주는 새로운 도장을 신인을 사용하여 그들이 한이 신으로 그니까 그 조공을
18:48
바치는 한으로 우리를 대원 오류를 바로잡아 구의 구을고 오로지 국와
18:55
구기를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동네의 스패로 인하여 초공
19:01
철씨 단행하여 우리를 곤란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니까 아는 거죠 이런게 바뀌서 완전히 다시 해야 된다고
19:07
조선에 가져가면 조선이 웃긴 소리 하지 말라고 내 던져 버릴 거라는 걸 아는 거죠 그러나이를 무릅쓰지 않고
19:14
편한 길만 추구한다면 직물을 수행하 마가 되므로 사정을 벌리고 공의에
19:19
따라 단연히 오늘의 처지에 이르렀다 장내 설령 국명에 관계하는 곤란이 생긴다 하더라도 머지 하나 조정으로
19:25
부터의 보답이 있을 터이며 더욱이 왕토 왕 민의 입장에서 버려둘 수는 없을 것이다 어국 저 자기 내죠
19:33
대마도의 호칭이 이즈 하라로 바뀌었는데이는 양국의 석의 왕복과 관련이 있을 것이므로 지금 도쿄의
19:39
문의에 두었으므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는 계층에 대해 조선에 누설되지 않도록 하 하면서 자기네 조종 보고는
19:46
정부보고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조선한자 이거 큰일 호통 불호령이 떨어질 거
19:53
분명하고 우리하고 관계 끊어버린다 그러면 어떡하냐 이제 이러면서 일단 일단 이거 바꿨다는 얘기 하지 말라
20:00
이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은 완전히 시시가 이중 플레이를 지금하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20:07
얼버무려 가지고는 외관 훈도 테 갖다 새로운 서계를 바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20:14
외관 훈도 그걸 받아보고 조선 조정에 올린 겁니다 이제 처음으로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20:23
서류를 받아서 국서를 받아서 그거를 이제 조선 저정해 이렇게 전합니다 관수 외 그니까 외관 도가
20:30
말하기를 이게 폐방 일본 사람 입장에서 자기네 나라 방에는 이변이 많았으며 작년 11월에는 명치로
20:37
개하고 폐주 태수도 자기네 대마도주 승자 서로 서해와 로인의 근위 소장
20:45
조신 칭하였습니다 그니까 자기네가 이제는 대마 도주가 아니라 근위 소장
20:50
조신이 일본 정부가 내린 그 지위를 이제 얘기를 하는 거죠 그렇게 얘기를
20:56
했다는 거예요 그 그래서 외관 훈도 힐책 하기를 서해의 문자는 자기
21:02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므로 전례에 끝나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 개서 정립하라 원래대로 다시 고쳐서
21:09
오라라고 관수해 및 정권에게 체결하였습니다 도서를 살펴보니 예산
21:14
날과 다름 없어서 동석의 별폭 등분을 상송니다 또 이번에 대마도주 평
21:19
2달이 보낸 서계 중에 좌위 소장이라는 것은 혹 가원 질에
21:25
겠습니다만 평자 밑에 조신 두자는 일찍이 없었던 대격이므로 임들게
21:30
면하여 어미 체결하도록 하여 속히 계수 정립하도록 하였습니다 변정 관계되므로 변장의 관계되므로 따로
21:36
등본을 의정부 군부에 상송니다 얼마나 정확하게 보내온 서류를 면밀하게
21:44
검토해서요 부분 틀렸고요 부분은 새거고 요렇게 새로 했는데 이거 받아도 되겠습니까 하고 이제 예를
21:49
들어서 보내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기도 다가요 씨 같은 사람 막 이거 야 이거 혼내 줘야 된다 막 군대를
21:56
보내야 된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메이지 신을 일으킨 3대 뭐 유신삼걸이라고 이제 그
22:03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이데 세 명이 있는데 그게 사이고 다카모리 기도 다까 요시 오쿠보도시미치이 세
22:10
사람입니다 근데 지금 기도가 정한론을 일으켰었다 방금 말씀드렸던 거고
22:16
쳐들어가자 그랬던 거고 그때 이제 외무 외교를 일본의 외교를 맡았던 그
22:21
삼걸 중에 하나인 오쿠보이 대마도 사람이가 갖고 뭐뭐 외관 도가
22:26
이랬습니다 이거 안 되겠다 외무성 직원이 정확하게가 갖고 무슨 일이
22:31
벌어지고 있는지를 다 확인을 하고 와라 대마도도 가고 외관에도 가보고 와라 그래 갖고 세 사람을 보내서
22:39
조사를 시킵니다 그리고 조사를 시켜 갖고 와서 외무성에서 보고서를 작성을
22:44
합니다 조선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세 가지 대안이 있다 그러면서 세 가지 대안을 딱 정책 대안을
22:50
제시합니다 첫 번째가 뭐였냐면 이란이 뭐냐면 임시로 조선과의 관계를 단절자 아니 조선이 저렇게 말을 안
22:58
뭐 어떻게 지금 쳐들어갈 수도 없고이 그냥 내버려 두자 그런데 이란의 문제점이 뭐냐 우리가 조선 하고의
23:06
관계를 소홀이 하고 있으면 러시아가 분명히 남아에서 조선을 어 자기
23:11
편으로 끌어드려 그러고 그러면 안 된다 그니까
23:25
[음악] 과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는데 일을
23:31
하기 위해서 뭡니까 두 척의 전함과 군사를 대동해서 새 조약을 거절할 경우 부역을 사용하도록 하자 이렇게
23:38
하는 거죠 사실이 이안이 뭡니까 나중에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 그 그
23:43
안이 채택이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는 그러니까 그때 운 이호를 보내 가지고 강화도에 와서 일부러 자극을 시켜
23:51
갖고 강화도 포대가 대포를 쏘게해 갖고 이제 상륙을 하고 그래 갖고 이제 강화도 조약을 강 강제로 맺게
23:57
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 세 번째 안이 뭐였냐면 조선 대신 처의 사신을 보내자 그
24:04
왜냐면 지금 조선은 자꾸 중국하고 외교 문제를 논 나라고 자꾸 그러는데
24:09
그러면 청나라고 아예 중국하고 우리가 먼저 근대 조약을 맺어 버리면 근대
24:16
국가 끼리의 조약을 맺어 버리면은 그러면 그 속방이라고 하는 조선도 따라야 할 거 아니냐 이렇게 세안을
24:23
외무성이 처치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걸 왜 이렇게 자세히 말씀드리면요 벌써 저때
24:29
외무성에서 저런 문제를 가지고 이러 이러 이러한 안이 있습니다 위에다 딱
24:34
보고를 할 수가 있는 정도의 외교관들고 인적 자원이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 안을 딱 받아보고서 오보가
24:41
뭐냐면 사만으로 간다 우리는 일단 중국하고 먼저 조약을 체결한다 이렇게
24:48
되는 겁니다 청나라고 대등한 근대 조약을 체결하자 그랬더니 이제 중국에서 어떡하겠습니까
24:54
중국에 말하자면 위정척사파 서는 청의 파라 그랬는데요
25:00
청의 청의 사람들은 뭐라 그냐 감히 왜놈들이 와 갖고 뭐 우리랑 조약을
25:07
체결한다고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중에 이제
25:12
대표적으로 안희성 순무 안위성 순무 안성의 이제 장관이죠 안위성 순무
25:18
있던 잉한 만주족이 어 황족과 가까운 잉한이 그때 반대 상소로니다 외국은
25:26
개나 양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서양 얘기입니다 그들이 유일하게 추구하는
25:32
것은 이윤이 그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것은 권위입니다 그들은 중국을 유인하기 위해서 중국의 힘을
25:38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그들은 날뛰기 시작하면서 우리를 겁박할 것입니다
25:45
그것이 천진 교안의 본질입니다 천진 교환이 뭐냐면 천진에서 그때에 프랑스
25:52
선교사들 그 신부님들고 수녀들을 그 중국 사람들이 그 폭도들이 일어나서
25:57
다 죽이고 하는 그런 큰 사건이 한번 벌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6:03
말하자면 자꾸 그런 그 그 선교사들이 뭐고 이런 거 보내 갖고 자꾸 정탐이나 하고 앉아 있고 어 호시탐탐
26:11
우리 우리 체제를 전복시키려 하는 놈들이다 그래서 이번에 천진 교환이 일어나는 것 사실은 그런거다 그니까
26:17
폭도들이 선교사를 죄없는 폭도 선교사를 죽인게 아니라 당연하게 중국
26:23
사람들이 한 건데 결국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이제 이러는 거죠 이제 본 이 교육을 요청하고
26:29
있습니다 1번은 우리의 조공국이 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참조할 수 있는
26:34
명확히 쓰여진 조 조약을 갖고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와 다릅니다 선양하고
26:39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대등한 조약을 맺고 그렇죠 그랬지만 그거랑은 지금 차원이 다른 얘기입니다 주 1번은
26:47
이제 그들은 우리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갑자기 이러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26:53
없습니다 중국이 이들에게 양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따라서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일본은 외의
27:00
나라입니다 명대는 수백년 동안 우리 항구들을 약탈했습니다 그러니까 외구리 와서 약탈했다 거죠 그들이 우리나라에
27:08
발을 들여놓게 되면 영국과 프랑스와 또같이 또 하나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이는 아무리 걱정해도 부족함이
27:14
없는 일입니다 하면서 중국내 보수파들이 절대 반대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결국은
27:22
청나라가 결국은 일본하고 조약을 체결합니다 왜 그랬냐면 그 당시 중국의 외교를 주도하고 있던 이홍장
27:30
그리고 중국의 어 태평 천국의 난을 어 그 평정하는 영웅 그 중국본이라는
27:37
어 명신 두 사람이 다 일본하고 수결을
27:43
해야 된다라는 상소로입니다 정말 근데 이게 참 내용이 놀랍습니다 그래서
27:49
제가 일부러 자세히 말씀을 드리는데요 이홍장은 이렇게 얘기를랍니다 일본은
27:54
이미 원나라 시절부터 중국의 조공국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조선과 류규 월남과
28:01
다르다 그까 지금 잉한이 뭐라 그랬습니까 우리의 조공국 이냐 왜가 그랬더니 저 이홍장이 뭐라 합니까
28:08
원나라 때부터 아니었다 그 왜 원나라가 쿠빌라이칸이 와서 일본 정보를 하겠다 그래서 여몽 연권
28:15
일으켜서 고려해서 군대를 증발하고 해군까지 만들어서 두 번이나 일본의 정보를 시도했다가 실패하지 않습니까
28:22
이제 가미 가세가 나타나서 이제 그이 그 폭이대 폭풍이 나와서 함대가 다
28:28
뭐라 그래서 실패 했지만 어쨌든 그때 복속을 못 시켰거든요 그러니까 원나라
28:33
때 못했으니까 그때부터 우리 조고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지금 하는 겁니다 용장이 그러면서 일본이 외구의
28:39
나라였던 것은 사실이지만이 역시 명나라가 외화의 무역을 금지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라고 상수에
28:46
올리고 일본은 태평천국의 난이나 최근 청과 서구 열강 간의 전쟁을 악용하지
28:52
않았습니다 자꾸 잉한이 딴 나라하고 무슨 전쟁이면 일본이 또 와 갖고 그걸 이용할 우리가 약 진 틈을
28:58
이용할 거라 했더니 아니 이번에 난을 겪었는데 언제 일본이 와서 저걸 했느냐 이러면서 일본을 두둔하면서
29:04
일본하고 수교를 해야 된다 그러고 중국본 중국번호 아예 또 어 3월
29:09
9일 날 장소를 올려서 일본은 그냥 무역 하려 그러는 건데 왜 그걸 못 하게 하느냐 하면서 결국은 이홍 장고
29:16
중국보이 이겨서 어 1871년 9월 13일 청일 수호 조약이라는 대등한
29:23
근대 조약을 맺습니다 강화도 조약 6년 전입니다
29:30
인 이것은 동아시아 문명의 대전환점 있니다 화의 질서를 통해서 중국이
29:36
문명의 중심이었고 외 나라는 가장야만 국이 있다라고 그렇게 다들 생각하고
29:41
있던 데에서 중국이 어떻 하는 겁니까 외 나라를 자기 네랑 대등한 나라로
29:47
그냥 인정을 해 버리는 거죠 그래서 대청국 황제하 대일본국 황제가 조약을
29:53
체결하는 거죠
30:01
여러분 이게 일본이 얼마나 용의 주도했는지 어 조선은 전혀 지금 무슨
30:08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고 있고 그냥 중국에 조공 계속 바치겠다 그렇고 일본에서 자꾸 조약을 맺자고 근대
30:15
조약을 맺자고 하는 그 하기 위해서 사신을 보내면은 외관 훈도 아는
30:21
사람이 그냥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고 내쳐 버리고 이러니까 결은 이이 어떻
30:28
하니까 중국하고 아예 수결을 해 버리는 거죠 그리고 다시 이제 조선에 오는 겁니다 그래서 1872년 12
30:35
1월 22일 일본 외무상 대표단이 대마도에
30:41
도착을 합니다 이때 도착해서 어떡하는지 아세요 대마도주 나는 이제는 외무성 직원이 됐다 우리
30:47
완전히 바뀌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외무성 하고의 관계가 조선하 관계가
30:53
다 이제 관리가 되겠지만 앞으로도 여태 해왔듯이 우리가 참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편지를
31:01
써서 조선의 예조 참판 테 올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선이 근대화 하기
31:06
전에는 예조가 외교를 담당했었습니다 중국 하구에 것도 그래서 이때 처음으로
31:12
조선은 청일수 조약의 원본을 받아보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이 가져온 거예요
31:17
야 우리 청 나라하고 수고했어 이걸 가져오는 겁니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1본 내에서도 폐번 치원이 일어나서
31:26
번이라는 것이 다 없어지고 이제 다 통일된 중앙직 국가가 됐고 이런 얘기를 조선이 처음 알아봅니다 그래서
31:33
그거를 드디어 받아보더니 그때에는 뭐라고 답을 하냐면 조선이 뭐라 그러냐면 받기는 받겠다 근데 어
31:42
천천히 이거 좀 검토를 해야 되겠다 그러면서 받기는 봤대 답을 안 줍니다
31:48
언제 뭐 수교를 하자 뭐 이런 얘기를 안 하고 답을 안 줘 버립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일본이 어떡합니까
31:53
일본이 이건 안 되겠다 도저 안 된다 그래 갖고 외교관을 대마도로 파견해서
31:59
조선하 그의 관계를 담당하던 스시마에 관리들을 다 없애버리고 해임해 버리고
32:07
중앙에서 임명하는 외교관들을 이제 배치를 합니다 그러면서 조선학교의 광고는 이제는 완전히 바뀐다 중앙
32:14
정부가 다 관리를 한다라고 이제 바뀌어 버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32:20
외관에서 다 철수를 시켜 버립니다 그래서 1872년 9월 이후로 세선 는 더
32:28
이상 외관에 부산에 입항하지 않습니다 1609년에 기유 약조를 통해서
32:36
1년에 20척의 세견선이 대마도주의 인장을 받아서 외관에 와서 교육을
32:42
한다 그니까 전통적인 조일 관계의 그 틀을 깨 버리면서 이제는 대등한
32:49
조약을 맺어서 가야 된다라고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때부터 깼을 때부터 76년 강화도 조약까지 사실
32:57
조일 관계가 조선하 일본의 관계가 공중에 떠 있는 거죠 아무런 조약도
33:03
없는 체제로 그냥 어 가고 있는 어 그런 상태가 돼 버립니다 어
33:09
일본이 중국하고 대등한 관계를 맺고 기의 약조를 폐지해 버림으로써 동북
33:16
아시아에서 그 수천년 동안 수백년 수천년 동안 일본이 속해 있었던 그
33:22
위치에서 완전히 탈피하면서 중국과 대등한 관계 조선과 대등한 국
33:27
국가로서의 근대국가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이 바로 기호
33:34
약조 체제가 완전히 폐지되는 바로이 때였습니다 자 그래서 이제 일본이
33:39
이제 저렇게 해 갖고는 일본 외교관들이 와서 상주를 하기 시작하고 이제이 이렇게 되는 거죠 그 부산에
33:45
와서 그러니까 이제이 어떻게해야 되나 조선 정부 입장에서도 이거를 받아들여야 되냐 말아야 되냐 그래서
33:52
정덕이 가서 또 상황을 보고서 이제 조선 조종의 보고서를 올린게 있습니다 일본하고 관계 에 대해서 고민을
33:59
하면서 이제 쓴 보고서입니다 일 피아의 상지는 한마디로 타파할 수
34:05
있다 우리는 300년 약조를 따르는데 저들은 바꿀 수 없는 법을 바꾸고 있으니이는 유독 무슨 마음인가 일이
34:12
만약 전에서 벗어난다면 설육 설령 본국에서도 억지로 시행하기 어렵거나
34:18
하물며 인국의 옆나라에서 가서 오직 이을 시행하는데 뜻을 둘 수 있겠는가
34:23
그러니까 너희가 바뀌면 바뀌는 거지 왜 우리하고 관계까지 바꾸려고 그러냐 이제 이제 정인은 그러는 겁니다
34:29
저들이 비록 타국인 제압 당하고는 하나 그 형체를 변하고 풍속을 바꾼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일본이
34:46
서한테크 제압을 당했다 하더라도 어떻게 자기네 생긴 모습을 바꾸고
34:51
풍속을 바꿀 수가 있느냐 이렇게 보는 거죠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이는 일본인이라고 할수 없으니
34:58
우리 경에 왕래한 것을 허락할 수 없다 또한 외관에 와서도 왔다 갔다
35:03
못한다 또한 그 타고온 선박이 만약 일본의 옛 모양이 아니라면 우리
35:09
경내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대마인 우리와 교역하는 것은 본래
35:14
일정에서 바꿀 수 없는 법이다 일본이 서양배 근데 배를 타고 오는 것도
35:19
옛날식 세계선을 타고 와야지 그것도 안 된다 그것도 입항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수밖에
35:26
없다 다른 사람이 교역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법이 결코 허락하지 않으며 참화를 범하는 것이 것은 양국이
35:33
똑같이 금지하고 있다 밀수품을 드리는 거 근래 저들의 소행을 보니 무법
35:38
지국이 할 만 하거늘 또한이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법령이 따로 있어서 우리 경내에서
35:44
시행하고 있으니 외관에 있는 자들이 약조 내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모두 응당 들어줄 것이나 법조 외의 일을
35:52
기유 약조 이외의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영원히 이루어질 날이 없을 것이다 비록 물건 하나 나라도 매하
35:59
한다면
36:06
밀수하려던 또한 아마 다른 말이 없을 것이다 반드시 이러한 뜻을 저들의
36:12
두령게 분명히 타일러서 망발은 행동으로 사단을 빚어 후회에 이르지 않게 하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36:19
그러니까는 저런 거를 외관에 딱 붙여 놓고서 잡소리 하지 말아라 원래대로
36:25
한다 여러 그니까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일본이 어떻게 근대화를
36:30
하고 있고 중국이 어떻게 근대화를 하고 그 문제를 가지고 일본이 고민을 끝에 결국은 중국에 가갖고 중국하고
36:37
수결을 해 갖고도 와서도 하는데도 지금 조선의 관리들은 저렇게 대응을
36:42
어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이제 일본에서 사단이납니다 일본 정부가
36:48
드디어 중앙정부에서 이제 회의를 엽니다 메이지가 메이지 천왕이 산조
36:54
산네 더이 그 귀족입니다 당시 최고의 지후에 있었 했던 사람입니다 정부에서이 산을 산주 보고 레이지가
37:01
그래 아 안 되겠다 당신 직접 맡아라 그러니까 이게 대마도주부터 시작해서
37:07
대마도의 조선과의 교육에서 빠지는 거를 어떻게 막아 보려고 해 갖고 시작된 일인데 결국 가서는 이게 국익
37:14
차원에서 어 국가의 체면 차원에서 이거는 외무성에서 다뤄 갖고도 안
37:20
되고 아예 그냥 최고위층 이거는 한번 논해야 되겠다 그래서 그 산조 산네
37:25
더미가 어전회의를 이제 엽니다 그래서 1873년 6월에 열린 정관 태정관
37:31
정관이란게 최고 의정부 같은 겁니다 조선으로 말 의정부 회의에서 산조는
37:37
일본과 조선간에 있었던 불쾌했던 사 사건들을 쫙 정리해서 그동안 했던
37:42
일이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외무성도 알고 있고 대마도 사람들도 알고 있었지만 일본의 최고 2층이 다
37:49
공유하고 있었던 얘기는 아니거든요 조선하 그동안에 뭔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이거를 이제 공유를 하는
37:54
겁니다 그래서 1871년 번 정부가 부산에 사신을 보내서 변 폐번 치원이
38:01
일어났으며 이러한 변화가 양국간에 가져올 영향에 대해서 논하고자 했으나
38:06
당시 안동준 외관 훈도 20번이나 몸이 아프다면서 일본 사실을 만하는
38:12
것조차 거부했었다 온 후에는 정부에서 결정을 내려야만 만나줄 수 있다면서 기다릴
38:19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일본 사신이 얼마나 기도야 할지 묻자 외관 도는 6년 내지 10년이 걸릴 것이
38:27
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런 거죠 그랬더니 이제 어 산조 어가 이렇게
38:33
얘기를 합니다 명을 내린게 뭐냐면 그러면 지금 기유 약조 폐지됐고 새로운 조약은 체결을 못
38:40
했는데 분명 지금 외관 같은데 일본 사람들이 가서 살고 있는데 그러면 그 사람들은 지금 아무 조약도 없는
38:47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해야 되냐 그럼 가서 보호하도록 우리가 군대를 보내야 되겠다 구나하고 군대를 보내야
38:53
되겠다 산조가 그랬고 그때 이제 사이고 다까 머리가 가 나서는 거죠 사이고는 아까도 말씀드린 유신 삼걸
39:00
중에 하나입니다 사실 제일 유명했던 사을 아이고 어 메이지의 황군이 독구
39:06
가와 군을 격파한데 있어서 가장 협한 공을 세웠던 것이 바로 사고고 일본
39:12
사람들이 마지막 사무라이하 추앙을 하고 노 공원에 지금도 사이고의 동상이 있고 그렇습니다 근데 그때이
39:19
사고가 나서서 뭐라 그러냐면 조선에 파병을 한다 아 그럼 이거 괜히
39:25
문제만 더 커집니다 그러지 말 고 전권 대신으로 나를 보내 주면은 내가
39:30
가서 한번 그 사람들하고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조선에 가는게 더군다나 산조가 얘기한 대로 군대를 끌고 가는
39:37
것도 아니고 자기가 그냥 혈혈 단신 혼자 가겠다는 거예요가 갖고 말을 해 보겠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7월 29일
39:45
날 이따 아기한테 어 편지를 보내서 나 좀 밀어 달라 나 대신으로 만들어
39:50
달라 8월 3일에는 산조 산네 동이한테 또 편지를 보내고 또 직접
39:55
찾아가서 부탁을하고 정말로 놀라울 정도로 끈질기게
40:01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서 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조선에 까는 특명 정권 대사로 임명을 어 해 달라고 그럽니다
40:08
그래서 8월 19일에서 23일에는 결국은 산조 산의 때가 메이지 천왕
40:13
갑니다 가서 아니 배이이 친구가 계속해서 가겠다 그러는데 그럼
40:19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메이지가 아니 기다려 지금 이라사 절단이 외국에
40:25
나가 있어 그 이라사 절단 이와쿠라 오쿠보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지금
40:30
일본 정부에 제일 중요했던 사람들은 지금 배를 타고 지금 2년째 해외에 나가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고 있는
40:39
동안에 지금이 일이 벌어지니까 메이지가 안 돼 우리끼리 하면 안 되고이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40:47
그래서 전보를 보내 갖고 돌아와라 이제 굉장히 중요한 일이 벌어지고
40:54
있다 그러면서 이따가 아기한테 또 편지를 보냈는데요 그 편지에 이런
40:59
내용이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이 기회를 잃는다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41:07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뭐냐면은 특명 정권 대사로 가고 싶 가고자 하는
41:12
이유가 뭐냐면 자기가 가서 조선 사람들하고 협상을 하면은 조선 사람들이 여태까지 해온 걸 보면
41:17
분명히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그래서 무시를 할 거 아니냐 그럼 자기가 무시를 당하는 거에 대해서 화를 내서
41:23
대들면 분명히 싸움이 일어날 것이고 저 사람들이 나를 죽여 버릴 거 아니냐 그럼 나를 죽이면 그러면은
41:31
이제 조선을 쳐들어올 수 있는 명분이 생기니까 그때 쳐들어 와라 이러니까 여러분 이게 이제 정한 논이 이겁니다
41:38
그러니까 내가 가서 죽을테니까 그걸 빌을 해서 군대를 일으켜서 조선을 혼내 줘라 우리랑
41:45
근대 조약을 맺지 않겠다는 조선을 혼내 주는 방법은 그래서 조선을 여는 방법은이 방법밖에 없다 근데 명분
41:51
없이 열 수 없으니까 내가 가서 죽겠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게 이제 8월 17일 날 보낸 편제 더 자세하
41:58
나옵니다 조선이 일본의 사절을 분명히 죽일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라 전체가 조선을 정벌해 할 필요가
42:05
있음을 절감할 것이며 우리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이러한 사태는 반드시
42:10
일어나야 한다 자기가 가서 조선에서 죽임을 당하면 그때에 군대를 일으킬
42:16
수 있다 근데 군대를 일으킨다게 뭐냐면 일본 사람들이 다시 통일이 될 수 있다라는 거죠 그동안에 너무 지금
42:23
분열이 돼 있는데 다시 통일을 시킬 수 있다 일 는 건 전쟁이다 근데
42:28
여러분 이게 황당한 얘기 같기도 하기만 전혀 아닙니다 사실 어느 나라고 전쟁을 하면은 통일이 됩니다
42:35
그 자체 대내적으로는 대회 적이 생기기 때문에 통일이 됩니다 그게 대표적인 얘가 임진
42:41
외란이 도요토미 히데오 씨가 전국을 어렵게 통일을 했죠
42:46
수십만의 사무라이들이 총과 칼과 대포를 가지고 지금 100년 동안 전
42:52
전쟁을 했던 거 아닙니까 전국 시대 근데 아무리 평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통일을 했다 하더라도 원한을 갖고
42:58
있는 수 엄청난 많은 숫자의 군대가 있을 거고 아니면이긴 사람들 중에서도 내가 충분한 보상을 못 받았다 라든가
43:05
불만 세력들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거를 없애기 위해서 어떻게 하냐면은 옆에 나라를 정벌하고 하는게 그게 임진
43:11
나라입니다 임진 회란 일어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그런 거죠 대내적인 통합을 가져오는
43:17
역할을 분명히 합니다 그게 정확한 이해가 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냐면요 일본이 처음 개항을 해야 될
43:24
때 미국이 와서 페리 제도에 와서 개항을 하라고 자꾸 그러니까 그때
43:30
도구가 나리 아키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1854년 이죠 그러니까 막
43:37
패리스 조약고 이럴 때입니다 나한테 300명에서 400명의 로인 낭인들
43:43
낭인 사무라이들 하고 농부들의 막내아들로 구성된 특공대를 마련해
43:48
주면은 내가 얘네들을 끌고서 미국에가 갖고 전쟁을 해 갖고 미국에 가서
43:54
300명이 전쟁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몰를 당하지 냐 우리가 몰 사를 당하면 그때 일본 내의 모든
44:00
사무라이들이 분노를 하 갖고 드디어 미국하고 일전을 불사해야 된다라는 걸 알아 갖고 군대를 일으킬 것이다
44:07
그러면은 통합이 될 것이다 그래서 결국 미국하고 전쟁을 해서 우리가 질 수도 있다 근데 지더라도 우리는
44:15
통합은 될 것이다 통일은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농부의 막내 아들이라 했던 거는 막내아들을
44:20
보내야지 그러니까 형제가 많은 중에 막내를 보내야지 그 집안에 대가 안 끊기니까 막내를 보내라 그랬다는
44:26
겁니다 그니까 이런 얘기들이 일본에서는 미국이 와 갖고 강제로
44:32
나라를 열라 그럴 때 일어났던 거고 지금 여러 가지 문제를 통해 갖고
44:37
일본이 분열이 되고 계속해서 조선이 근대 조약을 거부하고 그러니까 이거를 어떻게 해볼까 하다가 결국은 내가
44:44
가서 죽으면 조선하 전쟁을 일으키면 조선을 여는 것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거
44:50
일본을 통합을 시킬 수 있다라는 거죠 그런 계산을 하는 겁니다 정한론을 적극적으로 일으키는게 사회고 닦입니다
44:57
그게 그 유명한 정입니다 자 그러면 사이고는이 정한론을 일으키는 이야기
45:04
이유 이유를 우리가 지금 잠깐 살펴봐야 됩니다 사이고는
45:10
사무라이 있습니다 사스마리 있었고 어 오쿠보도시미치고
45:15
같이 그다음에 조슈에 있는 기도 다가요 씨하고 그다음에 아까 그 이따
45:21
가게 다 있게 이런 사람들하고 젊은 하급 사무라이들이 산조 사네미 꾸라 도모미 이런 족들 하고 촌을 잡고서
45:28
도구와 막부를 무너뜨렸어 근데 그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이따 가게다
45:34
있게도 그고 사이고드 그렇고 전부다이 사람들이 뭐냐면 하급 사무라이들을이 사람들을 훈련시키고 조련을 시켜서 그
45:41
사람들을 황군 만들어서 독구 가와의 그 유명한 사무라이 군대를 격파를 한
45:47
겁니다 그러면이 사무라이들의 입장에서는 뭐냐면 아니 우리가 죽음을
45:52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싸워 가지고 세상을 바꾸고 정권 교체까지 이루 이루었는데 지금 어떻게 되는 겁니까
46:01
완전히 신분제를 철폐해 버리면서 사무라이를 없애버립니다 이때에 신분제를 패하면서 뭐를 합니까
46:07
단발령을 내리는 거죠 그러니까 단발령이 왜 일어나는 거냐 신분제는게
46:13
어디서 드러납니다 옷 하고 모발에서 드러나 거죠 그러니까 이제 그거를 없애 신분제를 철폐한다는 것은 먼저
46:20
두 발부터 짧게 잘라서 서양식으로 바꿔야 되는 거죠 사무라이의 직업은 전쟁을 하는 겁니다 근데 이제
46:26
전쟁하는 직업이 없어지고 1873년에 징병제라고 평민들을 다 징집을 해
46:34
갖고 평민들 훈련시켜서 군인을 만들고 사무라이들 너희들 필요 없어 이렇게 돼버리는 거죠 일본 사람들이 일본의
46:40
메이지유신을 특히 일으켰던 사람들이 제일 먼저 느꼈던게 일본이 약하고
46:46
상대적으로 상대적으로 프랑스나 독일이나 영국이나 미국이 강한 이유는
46:52
뭐냐면 그 나라 국민들은 똘똘 뭉쳐 있다는 겁니다 근데 일 이 조선이나
46:57
중국은 똘똘 뭉치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신분제 때문이라는 거죠 신분 신분제 맨 위에 있는 사대부들
47:05
사무라이들이 사람들은이 나라가 내 거라고 그래서 주인 의식도 있고 책임감도
47:11
느끼지만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 천대 받으면서 차별 받으면서
47:16
무시당하면서이 사람들 수이나 들고 있으니까이 사람들 입장에서 내 나라라는 느낌도 안 드는 거죠
47:23
그러니까는 이거를이 사람들이 알아고 신문제 를 철패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면
47:30
실질적인 경험이 뭐냐면이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사람들이 이때 아까도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도쿠가와
47:55
막부고교생 대가 뭐냐면요 번 역사상 처음으로 평민들고 천민들 아지도
48:02
사무라이들고 같이 섞어서 동네에서 군대를 만든 겁니다 그래서 복장을 보시면은 굉장히 평범한 복종도
48:08
사무라이 같지 않게 생긴 사람들도 있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평민들 하고 천민들 아지도 끼워넣어서 사무라이들고
48:15
같이 군대를 마을마다 일으켜서 그 군대를 가지고 도구가 막 부근을 이겼 그든 그러면서이 사람들이 절감을 하는
48:22
겁니다 아 신분 철패를 해서이 나라가 내 거라는 생을게 해야지만 강한
48:29
나라가 만들어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군대라는 것이 징병제를 건국을 하고 징병제를
48:36
통해서 전부 다 군대를 가는게 우리나라의 오랜 신문제 하는데 있어서
48:41
중요한 역할을합니다 고참 앞에서는 바깥에 사회의 신분이 뭐고 나이이고
48:48
학력이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 상관없지 않습니까 그니까 그런 평준화의 그 그 경험을 리게 해주게
48:55
하는게 사실 경제 군거 근대 국가들이 다 군대로 시작하는 이유가 그런 겁니다 군대야 말로 평준화의 최고의
49:04
장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그런 걸 기회 타이를 통해서 일본 사람들은 경험을 했고 그 경험한 사이고 구보 이따
49:11
가기 이런 사람들이 군대를 신분제를 철폐하는 것이 근대 강한 국가를 만드
49:16
것이 절대적이거나 해서 신분제를 철패를 합니다 자 그러니까 사무라이들
49:22
입장에서는 처참한 거죠 특히 사이고의 고향
49:27
스마의 그 유명한 사무라이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막부 도구가 막부가 타도를
49:34
했는데 상을 죽이는 커녕 권력을 죽이는 커녕 아예 신분제를 없 철해
49:40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이 사람들이 전부 다 사고한 와 갖고 어떻게 이럴
49:46
수가 있습니까 당신은 우리 편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우리한테 이렇게 싸우라고 해놓고 나서 어떻게 이런
49:52
토사 구을 할 수가 있습니까 이제 그러는 거죠 그래서 사이고는 아까도 잠깐
49:59
말씀드 굉장히 전통적인 사람이에요 전통적인 사무라이 이제만 우리나라의 선비 같은 거죠 일본의 일본의 사하는
50:07
사무라이가 시를 좋아했고 한실을 좋아했고 중국식 복제와 모든 거를
50:12
굉장히 좋아했었던 사람이에요 아무튼 사이고 입장에서는 자기가 이끌어서
50:19
전쟁까지 해 가면서 메이주 신을 켰는데 자기가 만든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은 굉장히 회의를 느끼 시작합니다
50:27
아 사무라이를 없애는게 이게 과연 맞는가 예이 징병제를 하는게 이게
50:32
과연 맞는가 번을 다 없애 버리고 그러면 스마 번도 없어지는 거고 특색도 사라지고 전통도 사라지고
50:39
가문들 다 사라지고 이러는데이 맞는 방향인가 굉장히 회의를 하기 시작을
50:44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사무라이들 살리고 결국은 분열된 나라도 통합하는
50:51
방법은 뭐냐면 내가 가서 죽는 거구나 내가 가서 죽으면 당장 군대를 이렇게
50:56
되니까 그러면은 사무라이들을 다시 쓸 거고 그러면서 나라는 통합이 되고 이럴 것이구나 하면서 특명 정권
51:04
대사로 조선에 보내 달라고 이제 그러는 겁니다 이런 계산이 있는 겁니다 이것이 정한 논이다 그래서
51:11
실제로 메이지가 결국은 임명을 합니다 임명을 해서 그래 이제 며칠 있으면가
51:18
거기까지 옵니다 그래서 며칠 있으면은 실제로 조선에 건너갈 준비를 채비를 다 사이고 하고 있는데 외국에 나가
51:25
있던이라 절단한 산조 산의 또미가 계속 전보를 치면서 빨리 돌아와라
51:31
사고가 조선에 간다 이러면 전쟁이다 이거 감당할 수 없다 빨리 와라
51:37
그래서 그때에 사이고 조선에 건너가기 며칠 전에 이와쿠라 사절단이 돌아와서
51:45
개입을 합니다 이와쿠라 하고 오쿠보도시미치 사이고의 중마고 구보가
51:51
돌아와서 결국은 사고하고 맞붙으면서 지금 정한이 이게 불가능하다 지금
51:58
조선을 쳐들어간다 가는 거 말이 안 된다라는 거를 얘기를 하면서 양쪽
52:03
세력이 격돌을 하는 것이 그게 정한론의
52:08
클라이맥스다 그 얘기를 바로 다음 시간에이어서 하도록 하겠습니다네 오늘은 정론이 어떻게
52:16
시작됐는지 왜 시작됐는지 그리고 정론이 어 우리 동북아시아 역사에
52:21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조선과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를 갔는지에 대해서 그 배경을 한번
52:29
어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이어서 드디어 이제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일본
52:35
내에서이 정한론을 갖고 군대를 파견해서라도 조선하 열어야 된다라는
52:41
파와 절대 안 된다는 파가 도를 합니다 어 나중에 결국은 세한
52:46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근대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그 장면은 다음
52:53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적 사건과 임무를 통해서
52:58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해 보는 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시청해 주셔서
53:05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음악]
53:26
C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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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5회 요약 및 평론

<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Ⅰ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5회 요약 및 평론

<요약>

본 영상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적 국제 질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정한론(征韓論)>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입체적으로 다룬다.

  1. 동북아시아 전통 질서의 균열과 일본의 대외 관계 재설정

    • 전통적으로 동북아시아는 중국 중심의 화이(華夷) 질서 및 사대·조공 관계로 유지되었다.

    • 메이지 유신으로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를 구축한 일본은 서구 열강 및 주변국(청·조선)과의 관계를 근대적 조약 체계로 재설정하고자 했다.

  2. 대마도(쓰시마)의 위상 변화와 세견선 체제의 종말

    • 조선과 일본 간의 전통적 외교·무역은 기유약조(1609년)에 따라 대마도를 매개로 이루어졌다.

    • 19세기 들어 일본 본토의 비단·인삼 자체 생산과 개항에 따른 서구 열강과의 직접 교역으로 대마도의 경제적·외교적 입지가 축소되었다.

    • 영국과 러시아의 거대한 서구 열강 경쟁(더 그레이트 게임) 속에서 대마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부각되자, 메이지 정부는 대마도가 전담하던 조선 외교를 중앙정부(외무성) 직할로 흡수했다.

  3. 조선의 거부와 일본·청의 대응

    • 메이지 정부는 '황제', '조신' 등 근대적 개념이 담긴 새로운 서계를 조선에 보냈으나, 조선 조정은 기존 약조와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리를 거부했다.

    • 일본 외무성은 대조선 정책으로 관계 단절, 무력 행사(군함 파견), 청과의 선 수교 등 3안을 검토한 끝에, 청나라와 먼저 근대적 조약을 맺는 방안을 추진했다.

    • 1871년 청일수호조규가 체결되면서 전통적인 중화 질서가 해체되고 청과 일본이 대등한 근대 국가로 입지를 재확립했다.

  4. 정한론의 본격적 등장 배경

    • 기유약조 체제가 폐지되고 조선과의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일본 내부에서 조선 정벌을 주장하는 정한론이 거세졌다.

    • 유신삼걸 중 하나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단순한 침략 야욕을 넘어 대내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한론을 추진했다.

    • 당시 일본은 신분제 철폐, 단발령, 징병제 실시 등으로 특권을 상실한 사무라이 계층의 반발과 내부 분열에 직면해 있었다.

    • 사이고는 자신이 특명전권대사로 조선에 건너가 살해당함으로써 전쟁의 명분을 만들고, 이를 통해 내부적인 사무라이 불만을 외부로 돌려 국가적 통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 이처럼 정한론은 단순한 외교적 마찰이 아닌,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의 내부적 모순과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 개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평론>

본 강연은 정한론을 단순한 '일제의 식민지 침략 전조'라는 결과론적 시각에서 벗어나, 근대 전환기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치적 맥락과 일본 내부의 사회적 역학 관계 속에서 다층적으로 조명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첫째, 대마도의 중개 외교 폐지와 청일수호조규 체결 과정에 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전근대적 '화이 질서'에서 근대적 '주권 국가 체제'로 전환되는 동북아의 격변을 명확히 보여준다. 일본은 서구 중심의 근대 외교 규범을 발 빠르게 수용하여 중화 질서를 해체하고 대등한 국교를 수립한 반면, 조선은 전통적인 '명분과 형식(기유약조 및 예법)'에 집착함으로써 급변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했다. 이러한 정세 인식의 차이가 향후 양국의 운명을 가른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둘째, 정한론의 본질을 '외교적 갈등'이자 '일본 내부의 대내적 정합성 확보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도한 정한론의 핵심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기득권을 상실한 사무라이 계층의 수용 문제와 신분제 철폐에 따른 대내적 분열을 국외 파병 및 외환으로 극복하려는 통치 전략이 작용하고 있었다. 이는 정한론을 단지 한국을 향한 일방적 침략 야욕으로만 보는 단선적 이해를 넘어, 근대 국가 형성기에 나타난 대외 모험주의의 구조적 원인을 명쾌하게 짚어낸 평가라 할 수 있다.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5회

<‘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Ⅰ> 요약 + 평론

이번 15회는 지금까지의 강의에서 시야를 조선 내부에서 동아시아 국제질서로 크게 넓힌다. 핵심 질문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은 왜 조선과의 관계를 재설정하려 했으며, 그 과정에서 왜 ‘정한론’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등장했는가?>이다.

함재봉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정한론을 단순히 <일본이 오래전부터 조선을 침략하려 했다는 증거>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는 정한론을 <중화질서의 붕괴, 일본의 근대국가화, 조일관계의 외교적 단절,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국내의 정치·사회적 혼란>이 한꺼번에 겹쳐 나타난 사건으로 설명한다.


1. 정한론은 무엇인가

<정한론(征韓論)>은 글자 그대로 하면 <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이다.

함재봉은 이 말 자체가 매우 자극적이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는 흔히

<일본은 일찍부터 조선을 정복하려 했다>
→ <정한론>
→ <강화도조약>
→ <청일전쟁>
→ <러일전쟁>
→ <1910년 한일병합>

이라는 직선적인 역사로 이해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결과를 알고 과거를 거꾸로 해석하는 것일 수 있다고 본다.

1873년의 정한론이 곧바로 1910년의 식민지배 계획이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의 2쪽에서 함재봉은 우리가 갖고 있던 역사상식 가운데 상당 부분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번 강의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다.


2. 출발점은 <중화질서의 붕괴>이다

함재봉은 먼저 전근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설명한다.

전통적인 동아시아에는 오늘날과 같은 주권국가들의 평등한 국제관계가 없었다. 중국이 문명의 중심이고 주변국들은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다.

조선은 이 질서에 매우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반면 일본은 중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조선과도 독특한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그런데 19세기에 서양의 국제질서가 동아시아에 들어오면서 이 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중국 중심의 화이질서>

<서구식 주권국가 국제질서>

로 전환되는 것이다.

함재봉에게 정한론은 바로 이 거대한 국제질서 전환의 산물이다.


3. 조선과 일본 사이에는 <대마도>라는 특이한 중개자가 있었다

이 강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다.

조선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오늘날처럼 서울과 도쿄의 중앙정부가 직접 담당하지 않았다.

대마도(쓰시마)가 중개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이 국교를 회복하면서 조선은 도쿠가와 막부와 직접 관계를 맺기보다 대마도주를 통했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외교,
무역,
통신사,
문서 전달

등을 중개했다.

함재봉은 이를 사실상 <조선-대마도-막부>라는 삼각관계로 설명한다.

대마도는 조선과의 무역에서 상당한 경제적 이익도 얻었다. 조선에서 들어온 인삼 등을 일본에서 판매하고, 조선의 은이 일본과 중국 사이를 움직이는 교역망에도 연결되었다.


4. 그런데 메이지유신이 이 체계를 없애버린다

1868년 메이지유신은 일본 국내 정치만 바꾼 사건이 아니었다.

막부가 없어지고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국가가 만들어졌다.

그러면 문제가 발생한다.

<조선과의 외교는 누가 담당하는가?>

예전에는 대마도가 했지만 이제 메이지정부는 외교를 중앙정부가 직접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함재봉은 이것을 근대국가 형성의 핵심적 특징으로 설명한다.

외교는 지방 영주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국가 → 외무성 → 공식 외교관>

이라는 중앙집권적 체계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메이지정부는 대마도에

<앞으로 조선과의 관계는 중앙정부가 직접 담당한다>

고 통보한다.


5. 대마도주의 처지도 완전히 달라진다

메이지유신은 대마도주에게도 충격이었다.

봉건제도가 폐지되고 다이묘들이 일본의 새로운 국민으로 편입된다. 대마도주는 더 이상 독립적인 외교적 행위자가 아니다.

함재봉은 여기서 매우 상징적인 사례를 소개한다.

대마도주는 조선과 오랫동안 특수한 관계를 맺었지만 이제 메이지정부에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을 조선과 일본 사이의 중개자가 아니라 <일본 국민>으로 재정의해야 했다.

즉,

<봉건적 신분과 지역적 충성>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에 대한 충성>

이라는 근대화가 일어난 것이다.

함재봉은 이것을 일본의 <국민 만들기> 과정으로 해석한다.


6. 조선에서는 이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갈등이 시작된다.

일본에서는 정권 자체가 바뀌었다. 막부가 사라지고 천황 중심의 새로운 국가가 등장했다.

그러나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일본 내부의 변화였다.

조선은 수백 년 동안 유지해 온 외교관계의 형식을 갑자기 바꿀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새 일본정부가 보내온 외교문서에는 조선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표현들이 들어 있었다.

<황(皇)>
<칙(勅)>

등 천황국가의 새로운 용어였다.

조선은 중국 황제와의 기존 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에 일본 천황이 중국 황제와 같은 방식의 황제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쉽게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본의 새 국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함재봉은 이것을 단순한 <쇄국정책>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국제질서의 언어가 충돌한 것>으로 본다.

이 점은 이번 강의의 중요한 장점이다.


7. 일본 입장에서는 이것이 <외교적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에서는 이미 근대국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선은

<우리는 옛 방식대로 대마도와 상대하겠다>

는 태도를 취한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새 정부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이 부산 왜관에서도 일본 측 관리와 조선 측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다.

메이지정부는 대마도의 기존 관리들을 철수시키고 중앙정부가 임명한 외교관을 파견한다.

그러면서 양국 관계가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진다.

함재봉의 표현을 빌리면 <조일관계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


8. 일본 외무성에는 세 가지 방안이 있었다

강의 8쪽에서 매우 중요한 대목이 나온다.

일본 외무성은 조선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검토하면서 대략 세 가지 방안을 생각한다.

첫째,

<일단 조선과의 관계를 단절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하면 러시아가 조선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둘째,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조선에 조약 체결을 강요한다.>

훗날 강화도조약으로 이어지는 방식과 비슷하다.

셋째,

<청나라와 먼저 근대적 조약을 체결하고, 조선도 그 질서를 따르게 한다.>

함재봉이 강조하는 것은 일본정부 내부에 처음부터 하나의 <조선 침략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정책 대안이 경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9. 청일수호조규는 동아시아 질서의 대전환이었다

1871년 일본과 청은 <청일수호조규>를 체결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본다.

중국과 일본이

<황제국과 주변국>

관계가 아니라

<대청국과 대일본국>

이라는 대등한 근대국가 관계로 조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동아시아의 수천 년 중화질서가 결정적으로 흔들리는 순간이다.

일본은 중국과 대등한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선과 일본의 관계도 더 이상 기존의 대마도-왜관 체계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 측의 논리가 된다.


10. 그런데 조선은 이 국제질서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함재봉의 조선 비판이 상당히 강해진다.

일본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청나라

등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국제정세를 직접 경험하고 있었다.

반면 조선은 여전히 중국과의 사대관계 및 제한된 일본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일본이 가져온 새로운 국서의 의미와 일본 내부의 정치변화를 조선정부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외교문서를 받아놓고 답변을 오랫동안 미루는 장면을 함재봉은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이것이 일본 내부의 강경파에게

<조선은 정상적인 외교로는 상대할 수 없다>

는 명분을 주었다고 본다.


11. 조선 내부에서도 일본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다만 함재봉은 조선이 완전히 무지했다고만 하지는 않는다.

강의 11~13쪽에서는 왜관의 조선 관리들이 일본의 변화를 관찰하여 조정에 보고한 내용을 소개한다.

그들은 일본 사람들이

상투를 자르고,
복장을 바꾸고,
서양식 선박을 이용하며,
기존 외교관례를 변경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했다.

그런데 조선 관리들은 이것을 <근대화>라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어기는 이상한 변화로 받아들였다.

한 보고에서는 일본인들이 타국인의 제도를 받아들여 머리 모양과 복장을 바꾼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매우 상징적으로 사용한다.

<일본은 세계질서의 변화를 따라가고 있는데 조선은 그 변화를 도덕적 일탈로 해석하고 있었다>

는 것이다.


12. 메이지정부 안에서도 논쟁이 커진다

일본 내부에서도 조선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여기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등 메이지유신의 핵심 지도자들이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가 중요하다.

함재봉은 정한론을 단순히 <사이고가 조선을 침략하려 했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이고는 자신이 직접 조선에 <특명전권대사>로 가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조선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이 일본이 조선을 공격할 명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정한론의 매우 특이한 구조이다.


13.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

사이고의 계산은 대략 이렇다.

<내가 조선에 간다>

<조선과 직접 협상한다>

<만일 조선이 나를 죽이면>

<일본이 전쟁을 할 명분이 생긴다>

<전쟁을 통해 일본 내부를 다시 결집시킨다>.

함재봉은 여기서 정한론의 <국내정치적 측면>을 매우 강조한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에서는 신분제가 철폐되고 사무라이의 특권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무라이들에게는 엄청난 불만이 쌓였다.

따라서 외부전쟁은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
+
<사무라이에게 새로운 군사적 역할을 주고>
+
<분열된 일본을 통합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즉 정한론은 조선만을 대상으로 한 외교정책이 아니라 <일본의 국민국가 건설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14. 함재봉이 특히 강조하는 <신분제 폐지>

강의 후반부의 상당 부분은 정한론 자체보다 메이지유신 이후의 사회혁명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메이지정부는

<폐번치현>
<신분제 철폐>
<징병제>
<평민의 군대 참여>

등을 추진한다.

함재봉은 특히 징병제를 중요하게 본다.

전근대 일본에서는 전쟁은 사무라이의 일이었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농민·상인·평민 → 국민 → 병사>

로 만든다.

함재봉에게 군대는 단순한 군사기관이 아니다.

<국민 만들기의 학교>이다.

신분과 지역을 초월하여 사람들이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국가를 위해 복무하면서 <나는 어느 번의 사람이 아니라 일본인이다>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15. 바로 이것 때문에 사이고는 메이지정부에 회의를 느낀다

여기에 정한론의 역설이 있다.

사이고 자신은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핵심 사무라이였다.

그런데 자신들이 만든 정부가

사무라이를 없애고,
상투를 자르게 하고,
칼을 빼앗고,
징병제를 도입하고,
전통적 신분질서를 파괴한다.

사이고는 점차

<우리가 만들려고 했던 일본이 이것인가?>

라는 회의를 품게 된다.

함재봉은 사이고를 단순한 군국주의자로 그리지 않고 <전통적 사무라이이면서 동시에 근대혁명을 일으킨 사람의 모순>을 보여준다.

이 점이 15회의 인물 해석에서 특히 흥미롭다.


16. 정한론의 숨은 목적 — 일본 통합

따라서 함재봉이 이번 강의에서 내리는 중요한 해석은 이것이다.

<사이고의 정한론은 조선을 정복하는 것 자체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사이고는 전쟁이 일어나면 사무라이들이 다시 군사적 역할을 갖게 되고, 메이지유신으로 분열된 일본사회가 외부의 적을 상대로 결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조선과 전쟁>

<사무라이 재동원>

<국내 불만 해소>

<일본 통합>

이라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함재봉은 미국의 페리 내항 당시에도 일본에서 <미국과 전쟁을 하면 오히려 일본이 통합될 수 있다>는 사고가 있었다고 비교한다.

이것이 정한론을 단순한 침략주의보다 복잡하게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17. 그러나 사이고의 계획은 좌절된다

사이고는 실제로 조선으로 건너가기 위해 준비한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 있던 이와쿠라 사절단의 주요 인사들이 돌아온다.

오쿠보 도시미치와 이와쿠라 도모미 등이 조선과의 전쟁에 반대한다.

일본은 아직 근대국가 건설 과정에 있고, 국내개혁과 산업·군사·행정제도의 정비가 우선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사이고의 조선 파견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함재봉은 여기서 15회를 끝낸다.

그리고 다음 회에서 정한론 논쟁의 절정과 그 후의 사태를 다루겠다고 예고한다.


평론

이번 15회는 <정한론 = 일본의 조선침략 야욕>이라는 한국의 익숙한 설명을 해체하려는 강의다. 함재봉의 가장 좋은 점은 정한론을 1910년 한일병합에서 거꾸로 읽지 않고 <1868~1873년의 일본 국내정치와 국제질서 변화> 속으로 되돌려 놓는다는 데 있다.

특히 세 가지가 설득력 있다.

첫째, <중화질서 → 근대 주권국가체제>라는 국제질서의 변화이다.

둘째, <막부-대마도-조선>이라는 전근대적 외교관계가 메이지 중앙집권국가의 출현으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셋째, 정한론을 <조선 문제>인 동시에 <일본 내부의 사무라이 문제>로 설명하는 것이다. 신분제 폐지와 징병제로 존재근거를 잃어가던 사무라이 문제를 고려하면 사이고의 정한론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진다.

그러나 함재봉의 설명에는 반대 방향의 위험도 있다.

<정한론을 침략주의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은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정한론의 침략적 성격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이고가 조선과의 평화협상을 원했다고 해도 <자신이 살해당하면 그것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는 발상 자체가 조선을 일본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사고이기 때문이다. 강의 14~17쪽에서도 사이고의 계산은 결국 조선과의 전쟁을 통해 일본을 결집시키는 방향으로 설명된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일본은 세계정세를 이해했지만 조선은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함재봉의 대조이다. 어느 정도 사실에 근거하지만 지나치게 선명하게 만들면

<근대화에 성공한 능동적 일본>

<중화질서에 갇힌 수동적 조선>

이라는 오래된 근대화론으로 되돌아갈 위험이 있다.

실제로 이 강의 자체에서도 조선의 왜관 관리들은 일본의 변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조정에 보고하고 있었다. 문제는 <정보가 없었다>기보다 그 정보를 어떤 개념과 전략으로 해석했느냐였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이번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한 문장

15회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다시 쓰면 다음과 같다.

<정한론은 일본의 오래된 조선침략 계획이 갑자기 표면화된 사건이라기보다, 중화질서가 무너지고 일본이 봉건국가에서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로 급속히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일 외교관계의 재설정, 사무라이의 몰락, 일본 국내통합 문제가 한꺼번에 충돌하면서 발생한 정치적 위기였다.>

이 해석은 상당히 유용하다.

다만 여기에 한 문장을 반드시 붙여야 균형이 맞는다.

<그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과 정한론에 포함된 대외적 강압과 침략 가능성을 축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리고 15회는 아직 <정한론 I>이기 때문에 평가를 확정하기에는 이르다. 특히 함재봉이 다음 16회에서 <1873년 정한론 정변 → 사이고와 강경파의 퇴진 → 대만출병 → 운요호 사건 → 1876년 강화도조약>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보아야 그의 정한론 해석 전체가 공정한지 판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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