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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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 있니다 어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여진족이 어떻게 청나라를 건설하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를 살펴봤는데요 오늘은이어서 예속 논쟁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청나라가 명을 멸망시키고 결국은 중원을 제패한 이후에 조선이란 나라는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 청을 받들어야 되는 것인가 명대신 청으로
그냥 충성을 갈아타면 되는 것인가 이서 서 이제 그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서 계속해서 우리는 명을 받드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결론이
나면서 조선은 쇄국 들어갑니다 즉 청나라의 모든
관계를 완전히 없애 버리거나 최소한 도로만 유지를 하고 일본하고는 이미
임진 회란 이후로 부산포 하나만 열어놓고 외관 하나만 열어놓고 닫아놓은 상황이었는데 이제 청나라
하고도 모든 거를 닫아 버리려고 해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조선은 이제 국으로 들어갑니다 근데 그 결정적인
어 과정에서 예송논쟁이 일어납니다 예성 논쟁을 흔히 그냥 허해 허식에
대한 아무 현실과 상관없는 선비들의 어 쓸데없는 논쟁이었다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사실이 중차대한 문명 전환기에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서는이 전환기에 조선이 그러면 명과 주자 성리학을
공유하는 어떤 그런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이 오랑캐들의 나라와도
공존하는 방법이 있을까이 문제를 사실 논하는 것이 예송 논쟁입니다
한국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청이 드디어 대륙을 정복하고 그리고 도르곤이 로
소현세자를 석방시켜 그래서 소현세자가 8년 만에 귀국을 합니다 그런데 한
달만에 독사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의 동생 어 봉림대군이 효정 적기를
합니다 효종은 사실 자기 형과 같이 포로로 끌려가서 심양에서 8년간 포로
생활을 합니다 소현세자는 어 그 포로 생활을 통해서 사실은 어 청태종
도르곤 어 순치제 이런 사람들과 가까워지면서 청나라가 건국해 가는
대청을 세워가는 과정을 다 목격을 하고 그리고 자금성에 입성하면서
아담샬 아지 만나면서 천주교 아지도 접하게 됩니다 사실 그때 그걸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 어 그러면서 넓은 세상을 본 소현이
어 그 그 조선에서 주기를 하면은 많은 어 것이 바뀔 수가 있었을 텐데
독사를 당한 후에 봉님 대군이 지휘하는데 봉 님은 형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합니다 끝까지 삼전도의 구력 자기 아버지가 청태종 테 고개 숙였던 그 구력을 잊지 못하고 어떻게서든지
보복을 하려고 그럽니다 봉림대군이 적기를 하면서 자기를 보좌해 달라고
청한 것이 자기가 대군 때에도 배웠던 스승 우암 송시열 있니다 그래서
송시열 보고 계속해서 와서 도와달라 그러지만 우암은 거절을 합니다
그러다가 끝에 가서 글을 하나 바치면서 전하께서이 글에 있는 대로만
해 주시기를 약속한다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오피를 하겠습니다 그럽니다 그 글이 기축 봉사입니다 그
기축 봉사는 그 당시에 우암 송시열이 그리고 주류 조선의 사대부들이이 명청
교체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기축 봉사를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공자가 춘추를 지어 대 1통의 의리를 천하 후세에 밝힌 뒤로 혈기가 있는
부위라면 모두 중국은 존중해야 하고 이적은 추하게 여겨야 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주자가 또 인륜을 추리하고 천리를 깊이 따져 부끄러움을 씻는
의리를 밝히기를 인류는 천리에 지극함이 천지의 사이에서 도망할 바가
없는 것이요 군부의 원수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무조건 존중해야 되는 거고 이적 여기서 누굽니까 여진족이 우리가 따를
수가 없다 그리고이 모든 것은 천륜이 이이 정해 놓은 이치다 아버지의
원수는 같은 하늘에 있을 수 없다 불구 대천의 원수 그렇듯이
우리는 청하고 같이 할 수 없다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는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태조 고황제 즉 명태조 주원장는 우리 태조 강헌 대왕
즉 이성 계조과 동시에 창업하여 곧 군신의 의리를 정하였으니 소국을
사랑하는 은혜와 충정의 저리가 거의 300년 동안 침체되지 않았는데
불행이도 저번에 추악한 오랑캐가 마구 흉악 보려 온 나라가 함락되어 당당한
예의 지극이 온통 비린내에 더럽혀졌어 이때 2를 참마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연이어 갑신년 1644년 나라가 멸망한 때죠의
변란을 만나서 환경이 전복하여 천하의 임금이 없게 되었으니이는 비록이
오랑캐의 소행이 아니라 하나 시기를 타서 악을 마구 부려 우리의 친미를 쓸어버리고 우리의 황족을
선별하였으며 여기에이는 비록이 오랑캐의 소행이 아니라는게 무슨 뜻입니까 그게 바로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숭정제가 자결하게 되는 거는 여진족 때문에 만주족 때문에가 아니죠 이자성의 나
때문에 이자성의 농민군이 자금성에 들어오니까 숭정제가 목을 맺던 거죠 그러니까 사실 정제를 죽인
거는 여진족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여진족이 오랑캐들이 들어와서 다 쓸어버리고 세상을 마고 짓밟고
어지럽혔다 홍광 황제에 이르러 남쪽에서 즉위하여 대통이 존재하고 있으니 우리나라가 비록 빙상의 예를
행한 일은 없으나이는 우리 신종 황제의 고인들 군신의 큰 의리를 어찌
멀리 있다고 하여 간격을 두겠습니까이 무슨 얘기냐 면요
명나라가 망하고 명나라의 황족의 일부가 저 남쪽으로 지금 월남
캄보디아 이쪽으로 도망을 갑니다 거기에 가서 남명을 세우는 거죠 그 남명을 세운 것이 홍광 황제입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직접 책봉을 받거나 그런 적은 없지만이 사람들이
어쨌든 신종 황제의 후손 아니냐 고이 아니냐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안 받들 수가 있겠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신종 황제의 은혜를 힘입어 임진년의 에 종사가
이미 폐허가 되었다가 다시 존재고 생이 거의 다 없어질 뻔하다가 다시 소되지만
폭이 나무 한구루 백성의 머리털 하나까지도 황을 입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크게 원통해 하는 것이 온 천하의 그 누가 우리와
같겠습니까 임준한 때 제조 지은 내 은혜를 입은 나라 우리만큼 명의
멸망을 슬퍼하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끝까지 끝까지 우리는 명을
지켜야 하는 거고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다 절대로 밖으로 표를 안 내면서
모든 거를 준비해서 언젠가 같이 명하고 손을 잡고이 오랑캐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이것을 할 것을
전하께서 약속을 해 주신다면 제가 피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효정이 적의를 하고 암송 시를
모시는 겁니다 1649년 그죠 명 망한지 5년 후에
인조가 승하고 그리고 이제 봉림대군이 정으로 어 직위를 합니다 청이 중원을
정복한 이후 주의하는 첫 임금입니다 그리고 2대 정종
이후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책봉을 안 받고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실
주기의 왕 중에 유일하게 외국에서 8년간 볼모 생활까지도 했었던 어
그런 왕입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지만 형 소현과 달리 그
치욕을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끝까지 서역을 하겠다
그러면서 송시열과 함께 10만 대군을 일으켜서 북벌 하겠다는 꿈을 꿉니다
그런데 즉위한지 10년 만에 북벌의 금을 이루지 못하고 효정이 승화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도이 북벌 얘기를 읽으면서 아 그때
효정이 조금만 더 살아 있으면은 우리도 대군을 이끌고 가갖고이 오랑캐들을 무찌를 수 있었을 텐데
하면서 그런 역사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던 기억이납니다 근데
사실 이렇습니다 과연 그 당시에 도대체 청이 팔기를 만들고 그런
경제력을 바탕으로 저렇게 대국을 휩쓸고 강대한 제국을 만드는데 그
제국고 과연 그 팔기군고 조선이 아무리 이완대장 밑에서 만 양병을
했든 뭐만을 했든지 에 과연 싸울 수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그런 의미에서 심각하게 북부를 꿈꿨던 건가
아니면 뭔가 정권의 명분을 이어가기 위해서 내놨던 캐치프레이즈 비슷한
거가 아니었는가 하는 그런 의심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효정은 자기는 하겠다 그랬고 그 북벌을 하겠다라는 그 뜻이 그 명분이
효종 의왕 왕위의 명분을 제공했던 것이고 그리고 인조의 인조 반정의
명분을 제공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런데 효정이 승하를 해 버립니다
그리고 북벌론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이미 천단에서 순치 제로 천자로
주기한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완전히 북벌론은 사라집니다 자
그러면 그다음에 오는 왕들은 그다음의 조선은 도대체
무엇인가이 조선은 뭘 명분으로 있는 거이 정통성의 근거는
무엇일까 인조 효정 끝까지 숙명 반청이었습니다 그런데 표정도 승하
있데 그럼 아직도 숙명 반청 해야 되는 거냐 아니면 이제는 청나라와 다른 관계를
맺고 다르 나가는 것이 옳지 않겠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에 터지 것이 예송 논쟁입니다 예은요양원
인조 인조가 소현 세자하 봉림대군 효종의 친모였던 인열
왕후가 돌아간 다음에 다시 중전을 맞이하는데 그때에 14살짜리 중전을
맞습니다 장렬 왕후를 맞습니다 새로 중공으로 맞습니다 인조 본인보다 새
중궁이 29살 어렵고요 아들보다 효보다 다섯 살이
그러니까 인조가 돌아가고 나서 그리고 또 10년 있다가 효종이 돌아갔는데
그 어머니가 계모가 살아 있는 거죠 그런데 세상에 계모가 돌아간
아들이자 왕에 대해서 상례를 어떻게 치느냐 대한 규정은 아무데도 없어요
중국의 어떤 문헌에도 없고 아무데도 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아무도 상상을 못 했거든요 그니까이 일도
사실 인조가 자초한 일입니다 9살이나 어린 중전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이일
이제 이런 사단이 벌어지는 거죠 효종이 승하 이제 그 뒤를 현종이 어봤는데 현종이 곧바로 두
찬선을 부릅니다 찬선이 누구냐 면은 김장생의 사계 김장생의 제자인
이조판서이 송시열과 우찬 송준길이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예학의
고수들이었다 자 그래서 찬선 테 도체 어떻게 장례를 지내면 되겠느냐
그랬더니 송시 하고 송준길이 이제 대신들을 모아 가지고 그 양성의
사회로이 문제를 논합니다 회의를 엽니다 그래 갖고 자이 대비가 아직도 살아 있는이 자이 대비가 1년 상을
치르면 된다 왜냐면은 어머니가 남편의 적자에 대해서 장례를 치를 때는
1년상 치른다고 경국 대전하고 대명률 규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자 그리고 결정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실록을 보면요 이렇게 간단하게 결론이 난게 아닙니다 격렬한 논쟁이 그 뒤에서
사실은 벌어졌었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록이 되 있습니다 처음에 국상이 나자 를
논의하는 자들이 각기 자기 예를 고집하여 왕대비가 대행대왕 상사에
당연히 장자의 복으로 3년을 입어야 한다고 말한 자도 있었고 혹은 임금을
위한 복으로 당연히를 입어야 한다고 말한 자도 있었는데를 주장한 자는
전지 윤휴의 예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얘기니까 그니까 우선 어떤 사람은
어떤 대신들은 3년상을 해야 된다 그 같은 사람은 뭐라 그랬냐면 상복
중에서도 참 복을 입어야 된다 그랬답니다 가장 슬프고 애통하고 비통한 부모가 돌아가시고 전혀
바느질을 하지 않은이 극생존 하는 거 그 상복 보시면 알죠
이렇게 그냥 대충 이거 쓰고 새끼 줄로 이렇게 묶어 버리고 허리띠 대신 새끼 줄로 묶고 하는게 그게 뭐냐면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이 슬픈 와중에 무슨 바느질을 하고 이렇게 옷을 꾀고 단추를 하는 옷을 입을 세가 어디
있냐 그러니까 아무 가공을 하지 않은 그냥 옷으로 그냥 몸만 가린다
걸친다는 뜻으로 그렇게 하는 거 그게 참취 복입니다 자 그러니까 1년상
갖고는 안 되고 3년 상은 치료야 되는 거고 거기에다가 대왕대비가 뭐를 입어야 되냐 참최복 가장 슬픔을
나타내는 참복을 입어야 된다 이렇게 이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나왔다라고 기록을 합니다 윤휴가 이런 얘기를
하니까는 그 얘기가 이제 그 영의정 정태한 이제 전달이 돼서 정태화 이걸
이제 송시하 논합니다 그니까 아니 1년 1년 상으로 다 정했는데 지금
사람도 기는데 3년상 얘기도 나 나오고 특히 거기에서 참최 복을 대비가 무조건 입어야 된다는 얘기가
하는데 이거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역시 예학의 대가인 송신한
물어보니까 이런 대화가 적혀 있습니다 저는 아 실록이 얼마나 정난 아게 그
당시 거를 진짜 있었던 그대로 적는다는 거를 제가 가장 강하 느끼는 것이 바로이 대목입니다 왜냐면 이렇게
극렬한 논쟁이 벌어지는 문제를 사관이 있는 그대로 적어 버린 거가 나옵니다
송시열과 정태의 대화입니다 태화가 송시열에게 묻기를 지금 눈이 되고
있는 자전 복제에 관하여 자전이 그니까대 비죠 자의 대비의 복제에
관하여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니 시이 말하기를 예문의 천자로부터
대부에 이르기까지 장자가 죽고 장자가 후계자가 되면 그의 복도 장자와 같은
복을 입는다고 하고서 그 아래에 또네 종의 설이 있는데 서자가 중한
경우에는 3년을 입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옛날 예대로 말하자면 장자
역시 자인데 위아의 말이 이처럼 서로 모순이 되고 있으며 또 의거에 정정할
만한 선들의 론도 없어서 이것은 버리고 저것은 취할 수가 없습니다 하자 태화가
말하기를이 종의 이란 무엇을 말하 겁니까 하니 시열이 하나하나 들어
해석을 하였다 그러는데요 이게 핵심이 무슨 얘기냐면 여기 이렇게 나오죠 장자가 죽고 차장 후계자가 되면 그의
복도 장자와 같은 복 복을 입는다고 효정이 장자가 됐었던 거 아죠 자
그래도 같은 옷을 입는다고 되어 있는데 그런데 또 서자가 중한
경우에는 서자라는게 뭡니까 장자 나머지는 다 다 서자라는 겁입니다 근데 서자가 했을 경우에는 3년을
입지 않는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은 그냥 왕의 동생이었으면 어머니는 장자 있든 차자
있든 똑같이 입는다는 것도 있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서자에 또 3년상을 안
입는다 그러니까 태화가 듣다가 이제 헷갈리니까 아 그게 도대체네 가지 소이 뭡니까 하고 이제 물어보는
거예요 그랬더니 체의 부정이라는 그 유명한 얘기가 나옵니다 뭐라 그러냐면 정의 불체 체의 부정
이라는에 대목에 와서 말하기를 인조 입장에서 말하자면 소현의 아들은 바로
정의 불체이고 대행 대왕은 최의 부정 임입니다 하자 태화가 깜짝 놀라 손을 흔들며
말을 못하게 하고 말하기를 예는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소현에게 아들이
있는데 누가 감히 그 설을 인용하여 지금 논의하는 예 증거로 삼겠습니다
예경의 깊은 뜻은 나는 깜깜합니다 국조 이래로는 아버지가 아들 상에 모두 1년을 입 들었습니다 내 뜻은
국제를 쓰고 싶습니다 하니 시열이 말하기를 대명 대명률 복제 조항에도
그 복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그대로 따르더라도 불과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태화가 국제의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는 장자 찾아를
가리지 않고 모두 1년 복을 입는다는 조항을 채택하여 자이 왕대비가 대행 대왕을 위하여 1년 복을 게끔
결정하였다 그어 왜 정태화 깜짝 놀 합니까 정의 불체 뭡니까 정통은
정통인 체 왕은 아니라는 거예요 정통이 뭐예요 소현 테 있다내는
거예요 그러면 대행대왕 지금 바로 돌아간 효정은 뭐냐 체의 부정이 채
뭐예요 왕은 왕인데 정통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니까 방금 돌아간 임금이
정통이 아니니까 1년 상만 하고 참복을 안 입어도 된다고 송시열이 그래 버리니까 정태와 영의정이
듣고서는 깜짝면서 아니 지금 당신 무슨 얘기를 지금 그런 얘기하면 어떡하냐고 소현의 아들 살아 있지
않냐고 왜냐면 소현의 아들 셋이 있 있었지 않습니까 그니까 인조가 소현
독살 시키고 인조의 저 소현의 빈 비도 사약을 내려서 죽이고 소현의 세
아들을 제주도로 다 귀향을 보내서 셋 중에 두 아들은 다 제주도에서 죽고 막내만 살아 있는 거를 복림 대군이
효종을 저기 하면서 살려줬던 거죠 그러니까 소현의 아들이 살아 있는데 그럼 소현이 정통이 있으면 걔가
정통인 그리고 지금 왕은 정통이 아닌데 왕만 됐다라는 얘기를 하면 당신 지금 무슨 얘기를 합니까
그러면서 아니 난 그런 얘기 전혀 모르 모르겠고 그냥 우선
1년 상으로 치르자 이러고 넘어가는 겁니다 자 그래서 체의 부정 이게이
뜻입니다네 가지가네 가지 설이 있다는 거죠 장자이지만 건강상 이후로 대통을
이어받지 못한 경우 둘째는 정의 부채 손자 서선 같이 대통을 이어받았으나
장자가 아닌 경우가 두 번째 셋째 체의 부정은 후궁의 아들 서자로서 장자가 아니었음에도 대통을 물려받는
경우도 체이 부죠 그리고 넷째는 대통 물려 왔지 못해 체가 아닌 경우
이렇게네 가지가 있다라고 그러 거 정태화 아 안 된다 그런 얘기 절대로
어디 가서 꺼내지 말라 이러면 이거 정말 큰일 난다 그 효정이 정통이 아니고 그럼 지금 현종 새로 주게하는
현종은 또 정통이 아니라는 얘기냐고 이게 도대체 무슨 무슨 얘기냐 그러면서 이제 절대 못 하게 어
합니다 그래서 그러고 나니까 이제 윤휴가 극도 반발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연연은 뭐라 그러냐면 아니 장자 찾아든 이거는 지금 보통 지안
얘기가 아니라 왕실의 기면은 큰 아들이었던 작은 아들이었던 대통을
이어 받으면 그게 당연히 정이지 왕이 됐는데도 정통이 아닐 수가 있고 이런
얘기를 어떻게 끝나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러면서 반발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걸 다 억누르고 결국은 자 대비는 효종의
상례를 1년상 재 최복 입고 참 최복이 아닌 재 최복 입고 약간
가공을 할 수 있는 한 옷을 입고서 자이 대비가 상을 치릅니다 이렇게
해서 1차 예송이 끝납니다 문제는
1674년 2차 예송이 터집니다 2차 예송이 왜 터지냐 면요 이번에는
효종의 부인이 대비가 돌아가요
그런데 효종의 계모인 자이 대비가 아직도 살아 있는 겁니다 자 그러니까
이번에는 왕비였던 며느리가 죽었으면 그 계모는 어떻게 상을
치느냐 하는 문제가 또 이제 대두가 되는 거죠 그런데 1차 예송 때는 야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다 어머니 돌아갔을 때는 1년상 치르는 거야 하면서 그냥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며느리가 죽었을 때는요 부인이 죽었을 때 그 남편의 지위가 뭐였냐게
정확해 져야지 그 지위에 따라서이 사람이 정말
왕이었으며 9개월 상을 치릅니다 그런데
예조에서 논 논해 가지고 뭐냐면 구개월 상을 치 다 그러는 거예요
그때 얘기 1차 예성 때 얘기했듯이 효종은 사실은 서자 그러니까 제복에
1년 상만 치른다 그랬으니까 그 부인이 죽었을 때는 이제는 아예 그냥
개월상품이 아니었고 서자였다 있구나 하는 거를 어쩔 수
없이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 밖에 없습니다 이게 14년 후입니다 효종 비가 죽은게 효종이 승한지 14년이
지난 전에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제는 체의 부정이 뭐냐라는 거를
이제 확인을 해야 되는 거죠 이때에 송신하고 송길은 여전히 장자
아니다 서자라고 했던 거고 허목 그다음에 윤휴 이런
사람들이 무슨 소리냐 왕은 왕이다 왕이 정통이 아닌 왕이 어디 있냐
자든 자든 이게 무슨 상관이 있는 소리냐 그러면서 절대로 아닌다 1년상
치료된다고 그러면서 이제 9개월 상 얘기가 올라옵니다 그런데 이때에
도신이 사람의 상소가 올라옵니다 뭐냐면은 서자의 부인이었고 때문에
9개월 상만 치른 겁니다 그런 것을 고하는 상소가 올라가는 거를 현중이
봅니다 드디어 그니까 총은 13년 전에 자기 아버지 돌아갔을 때
승하했다 거죠 근데 이번에는 장소를 읽어봤더니 거기서 뭐라 그러냐면
이번에 9개월로 결정된 것이 효종이 서자기 때문에 그렇다 정통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를 처음을 합니다 경로를 합니다 현 경로를 하면서
너희들 무슨 말도 안 소리를 하지 말아라고 그러면서 뭐 송이 반대 누군
반대는 무조건 밀어붙여 갖고 자기 어머니 1상을 치르도록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이차 예송을 넘기고 1개월 만에 현종 본인이 승화를 합니다 현종의
아들이 숙입니다 그런데 숙종이 여러분 숙종이 나중에 송을 죽여버립니다
저는이 송을 죽이는게 자기 할아버지 효고 하고 전부 다 정통이 아니라는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죽였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가설입니다
저는 충분히 어 그런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을
[음악]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게 놀라운 이유가요이 예송 쟁의 가장 놀라운
점이 뭐냐면은 그러면 송시열은 효종을 싫어했나 정말 송시열은 효종을
정통성이 없는 왕으로 실제로는 소현이 진짜 정통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느냐
아니에요 왕조의 어떤 역사에서도 효정고 송시열만큼 가까울
수가 없을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정말로 송시열은 극진하게 효종을 보필을 했고 대군을
때부터 가르쳤었다 올려서 그걸 받아 줌으로써
같이 국사를 논하면서 북부를 꿈꿨었던 효정이
승하했는데 그 시호를 효종이 짓는 것도 송시열 있니다 남송의 효종이
끝까지 북벌을 하려고 하다가 했던 그게 그 사람이 효정이 있거든요
남성의 효정이 금나라와 싸우면서 어떻게든지 그걸
지키려고 하면 했듯 거와 같이 송시열은
효종을 모시고 그 효종이 지금 그 금나라의 후에 후금 청과 맞서서
싸우는 거를 보필을 한다 그러면서 더 이상 가까울 수가 없고요 조선 왕조
실록의 독대 조선에서는
임금하락 하고 그 사초 기록한 사초는 는 임금들은 절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임금이 돌아간 다음에
그걸 정리를 해서 실록을 정리를 만드는 거죠 그만큼
철저하게 독대가 안 됐는데 딱 독대가 두 번 기록인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효정고 송시 레독 됩니다 실록에 그대로 나옵니다이 순간
이때에 임금이 상이 모든 신하들 물리치고
시과 독대를 했다라고 아예 실록이 기록이 [음악]
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그렇게 가까웠는데 그러면
왜 송시열이 굳이 참 제복은 안 되고 제 최복 어대고 3년 상은 절대 안 되고
1년 상을 취한다고 그 분쟁을 일으키고까지 왜 주장을 했을까요 이게
사실 그냥 허 허식에 빠진 일부
신하들 그리의 정치 싸움이었다 물론 당연히 모든 정쟁이 그렇지만 정치적인
고려도 있었겠죠 그렇지만 그거 말고 그 내용상에 어떤 원칙을 지키려고이
사람들이 이런 논쟁을 버렸을까 왜 송시은 자기가 그토록 아끼고 따르고
받들던 효정이 굳이 자라 그고 1년상
밖에 안 된다고 했을까 그 부분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만 예송이 이해가
됩니다 예 에는요 세 가지 논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왕실과 사대부 집안의 관계
둘째 왕실 아고 국가의 관계가 정확히 뭔가 셋째 명이 멸망한 다음에 조선의
정통성의 근거는 무엇인가이 세 가지가 논점 있니다 그 세 가지를 간략하게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요 왕신하이츠빌라
사대부 집안에서는 일찌감치부터 종법 제도를 들여와서 조선 초기부터 그렇죠
뭐 세종이 제사를 지니게 하고 친형을 하게 하고 주자 성리학 대로 바꾸면서
거기에서 정확하게 하게 뭐냐면 종법제도 장자 상속합니다 그래서
무조건 모든 사대부집 안에서는 모든 것을 제사도 당연히 장자가 지내야
되는 거 재산도 장자가 대부분 상속을 받게 되는 거고 모든게 장자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니까는 사대부집 안에서는 장손이 죽으면 어떡합니까 그
집안에서 어떻게 돼요 조카도 데려와서 그래서 양자를 삼아서 그래서 종통을게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사대부들은 전부 다 그렇게 오고 있는데 근데
왕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사실은 생각해 보시면요 조선
초기부터 장자가 왕위를 상속한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태종은
다섯째 아들이었고 세종은 셋
째였다 남이었던 명종은 중종의 남이고 선조는
명종의 이복 조카로 서자 출신입니다 광해군은 선조의 서자 출신 차남이
인조는 선조의 서선 효종은 차남이 그러니까 주자
성리학을 받들고 그것을 이어가겠다는 주자 성리학의 사제라고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주자 성리학의 목사님이고 주자 성리학의 신부님이라고 할 수 있는이 사대부들의
입장에서는 특히 그 종법 제도를 철저하게 연구한 고도로 연구했던 사계
김장생의 가장 애제자였던 송시열의 입장에서 봐서는 왕실이 이러면 안 되는
거죠 창자 상속을 해야 되는 거예
그러니까 효정은 찾아다 나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장난 빼놓고 다 자라고 그럽니다 첩실 후만이 아니라 째부터는
다 자라고 또 불렀어 그러면 여러분 이게 왜 이랬을까 왜 사대부를
따라하지 않느냐이 문제만이 아닙니다 저는요 부정의 핵심적인게 뭔지 아세요
나라입니다 대륙은 정복을 했죠 지네가 천자로 적기를 했어요 체는 체해요 왕이에요 근데
뭐예요 정통이 아니죠 왜 명나라가 정통이죠 그러니까 숙명 반청 하려
그러면 뭡니까 청나라가 최 이부 정이야 돼요 자기내 왕실고 자기네
나라 안에서도 그 원칙을 정확하게 지켜야죠 사대부들의 원칙이고 그 그
공자와 주자의 원칙이고 지금 그걸 더 지켜야 된 이유가 뭐예요 중국 자체에서 지금
안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청나라를 욕하고 비판을 하려
그러면 정통이 아니다 얘기를 하려 그러면 효정이 정통이 아니라는 얘기를
해야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사실은 송시열은 대단한 종법 제도의 원칙
주사 성약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끝까지 관철하고자 했던 사람입니다
니다 자 두 번째는요 이런 거죠 왕실 아고 사대부 지바은 같은 것인가
이번에 무슨 얘기냐면 집안에서는 아무리 사대부가 자기가 영의정이 되든 뭐 이조판서가 되든 해도 집에
들어가면 자기 모친이 계시면은 모친 앞에서는 어떡합니까 어머님 모친 어떡합니까 하대를 하죠
아들이니까 자 그런데 지금 여기서 문제가 뭡니까 그러면 왕실에서는 그럼 대비를 봤을 때
대비가 얘야 아들아 이래야 되는 겁니까 아니면은 아들이 임금이며
임금한테 뭐라 그래야 돼요 전하 이래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그러니까 사대부들의 입장에선 송시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똑같다 그러니까 사대부 집 안에서 아들이 죽으면
어머니가 1년 상 치르는거다 왕실도 그냥
사대부 집 연 집안의 연장이 아들이 죽면 아들이 비록 왕이라고 하더라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니까 1년 상이라는 거죠 그런데 윤휴 허목 윤선도 이런
사람들은 아니라는 거죠 아무리 퇴청 집안에 들어가서 자기네 집안
식구들끼리 있을 때도 왕은 끝까지 왕이어야 어떻게 거기 들어가면 갑자기
아들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남편이 돼 버리는 거죠 끝까지 어머니한테도
아버지한테도 아내한테도 자식들한테 전하가 돼야 된다는 거죠 왕이 돼야 된다는 거죠 사실이 문제는 히 심각한
문제죠 사대 부지하고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대통을 이어온 왕실의
모습을 송시열 같은 사람은 바로 잡으려고 하는 거고 사실은 어떻게지 모든 측면에서 왕실은 그냥 사대부
집안의 연장선상이다라고 보려고 했었던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윤휴 허목 윤선도
이런 사람은 아니다 왕은 왕이다 전혀 다른 카테고리다 이렇게 얘기를
해버리는 겁니다 자 그리고 세 번째 논점은 이겁니다 명나라가 사라졌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 같이 건국을 했고 명나라와 같이 주사 성리학을 받들면서
그걸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같이 임진한 때 싸우고 하면서 완전히 정말 같은
문명으로서 쭉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문명이 명나라가 사라졌습니다 모든 왕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종
이후로는 효정 때까지 인조 때까지 다 명예 책봉을 받았는데 명예 책봉을 안
받는 그 조선의 왕은 그럼 누구로부터 책봉을 받고 누구로부터
정통성을 부여 받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는 거죠 그때에 송시열은 뭐라
그럽니까 송시은 그러니까 우리는 비록 명이 없어졌더라 그 명의 정신을
이어가야 된다 명이 없어졌다고 그 정신도 없어진 것이 아니다 그 문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대륙 전체가 오랑캐의 땅이 됐다 하더라도
우리만큼은 우리 안에서 그 중화를 지켜야 된다는 거죠 그 이념은 끝까지
받들어야 되겠다 그러면서 송시열이 어떡합니까 두발 의복 모든
거를 그대로 명나라 거를 따릅니다 그리고 송시은 끝까지
글을 쓰고 나면 끝에다 연를 꼭 정이라고죠 정이 안 죽은 거 같이 정
40년 50년 60년 70년 계속 내려가는 겁니다 나중에
고종이 재 권에서 대한제국을 만들면서 자기가 광무제가
될 때까지는 정이라 연어를 조선의 선비들은 계속해서 썼던 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송은 은퇴 가서 사는 동네 이름을 뭐라고 이름을 짓습니까 화양
동이라고 짓습니다 여러분 화양이 뭡니까 화는 중화의 화예요 양은
뭡니까 태양 양자 중국 명나라의 태양이 소중화 태양이 비치는
내가 있는 여기만큼은 소중화 명나라를 이어가겠다는 겁니다 중국의 빛이
비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게 화양동 거기에는 화양 구곡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개곡 따라서 아주 절경으로 이어져 있죠 그거는 주자가 무이산의 중국 무이산의 그걸 보면서 노래를
지었는데 무의 국억이라는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을 따라서 이름을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에
있었던 모든 그 중화를 심지어는 계곡고 절벽 기암 절벽 강 모든
것까지도 다 조선의 작은 규모로 옮겨 나았다 이런 거고요 그리고 순정이란
연어를 쓰고 만동 지어가고 고 끝까지
끝까지 중국 황제들의 제사를 지냅니다 반면에 허목 윤휴 윤선도 이런
사람들은 다른 주장을 합니다 명나라가 사라졌으면 더 이상
명예 기댈 필요가 없다 명이 우리의 조선 문명의 정통성의 근거가 될
필요가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기자조선 때부터 기자 동네서 아닙니까
조선의 사대부들은 또 그걸 믿었거든요 은나라가 주 나라에서 때문에 망했기 때문에 그 은나라의 왕자인 기자가
조선에 와서 조선을 세웠다 그래서 기자 동네서 믿는 겁니다 그러니까이
사람들은 뭐라 하냐면 이미 기자 때 그때에 건너왔고 때문에 사실은 뭐예요
주나가 못지 않은 정통성을 자체적인 정통성이 있다 우리 뿌리가 있다
거기에 정통성이 있는 것이지 왜 송원명청 있느냐 주자학은 송원 명이
든요 주자가 남성에서 나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면 뭡니까 주자 나오기 전에 원래 있었던
문명에 우리 뿌리가 다 있는 것이고 기자 때문에 더해서 이제이 부분이
송시하 윤휴 격돌을 하게 되는 거
송원명청 때문에 원래 선진유학 공자 맹자의 그
유학이 타락을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거 송시열은 주자 때문에 완성이
됐다라고 하는 건데 그래서 그 완성된 문명을 우리가 건드릴 수가 없고 버릴
수도 없다라고 하는 건데 주자 성냥 나오기 전에 그 유학이 진짜 유학이었다 성은 그거를 오히려
타락시켰다 퇴보시킨다 이러면서 하나도 더 아름다운 문명이 아니다라 그 이전
시대에 진짜 있었 시대의 그 모든 제도들이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했던 황금기였다 그 이후로는 오히려 다
타락을 한 것이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자 그렇게 얘기 하니까 뭐라 그니까
노에 대한 주자의 집도 읽을 필요가 없다 그 주자 성하라 거는 송명의 문명은
주자가 사서 맹자 대학중 을 거기에다가 자기의 해석을 다른 주를
다른 집를 한 그걸 가지고 모든 관리들이 그거를 외우고 그 그 한
가지 해석만 갖고서 세상을 보고 건설하고 그랬었는데 지금 연는 그
집주 그냥 여러 해석 중에 하나고 별로 그렇게 대단한 집도 아니다 그리고
나도이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얼마든지 내가 줄을 달 수가 있다 외세의
필요가 없이 우리 독자적인 문명의 기반과 지식의 기반이 모든 걸 다
갖췄다고 윤은 이제 주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니까 송이 어떡합니까
그때까지 그렇게 친했고 사실 윤을 굉장히 워낙 똑똑하니까 윤을 높이
봤었는데 송이 이때부터 윤을 가리켜서
사문난적 그러면서 그때부터 적의
라고 부르면서 이때 이제 사문 난이라는 것이 처 나오기 시작합니다
윤휴가 그만큼 주자 성리학이 아닌 전혀 다른
기반의 새로운 기반의 조선 조선을 세우려고 했던 거죠 어차피 명나라
망했고 어차피 청라 들어 그러면이 상을 어떻게 할거
문명의 근원을 그럼 다시 찾아보자 우리가 새로 집주 해 갖고 새로 노노 이런 거를 다시 해석을 해 갖고
우리끼리의 문명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라고 했던 거고함은 절대로 안
된다 그러면서 사문난적으로 규정을 해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속 논쟁은
이런 겁니다 이런 일이이이 없기를 바라지만 예를 들어서
미국이 멸망을 한다 중국이 러시아가 미국을 이기고 영국을 이기고 유럽을
이겨버려 갖고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 경제 체제가
없어진다 우리는 어떡할 것이냐 그러면 중국하고 러시아의 그 체제를 따라갈
것이냐 아니면 우리 거를 지키겠느냐 이런 논쟁이 말하자면 어떤 사람은 끝까지 자유민주 자유성 경제
지켜야 되겠다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야 그래 이미 사라진 거 그럼 우리
나름대로 우리나 로운 체제를 만들어보고 이념을 만들어보고 정통성을
만들어보자라고 얘기를 하는 거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정확한 비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사실 그만큼
그야말로 중국 사람들이 천지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명나라가 무너지고 청나라가 들어서는
거 그래서 명말청초 명라 말기
청라초 했 중국의 학자들은 고중 이런 걸 통해서 선진 유학으로 가고 금석학
이런 거를 통해 가지고 새로운 문명의 근거를 찾아보려 그러고 꼭 명을 따를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오히려 주자
성리학과 양명학에 대한 극명한 반성을 합니다 중국은 그러면서 고중
나갑니다 조선은 반대 반응을 보이는 거죠 우리는
끝까지 명을 지키겠다 명을 사수를 하겠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명이
이미 인류 문명의 최 고점을 찍었기 때문에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이미
완벽에 경제 도달했으나 문제는 고대로 유지하는 것뿐이다 하나도 안 바꾸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거죠 여러분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외부로부터 오는 어떠한 새로운 변화가 됐든 내부로 부어 오는 어떠한
이견이 됐든 그거를 다 막고 물리치고 하면서 기존의 거를 지켜내는 겁니다
그것이 송시열이 꿈꿨던 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버렸던 것이 예송
논쟁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송시열이이기는 거죠 비록 숙한 사약을
받고 죽지만 결국은 조선 후기는 송시열의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는 거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임진 외란으로 본과 끊고 명의 망함 청나라와 끊고 그러면
지리적으로 문명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완전히 조선은 고립됩니다
그렇게 조선이 고립되면서 200년을 가면서 나중에 또 나온 것이 화서
이로가 나오면서 나는 송을 따른다 송자 선생을 따른다 그러면서 정사
송자가 그렇게 애를 써서 명청 교체기를 겪으면서까지 지켜냈던 그
명예 소중화 그거를 우리가 이제 천주 교하고 서양 오랑캐들이 온다고 이걸
어떻게 내 주느냐 그걸 척결해야 된다 그러면서 위정 척사 세국 정책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우리 근세사 이해한데 있어서 세국 정책을 이해하려 그러면은
송시열을 이해해야 되는 거고 송시려 그러면 명청 교체기를이어야 되는 거고 그걸 기면 청나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되는 거고 그래서 지난 시간과 이반 시간에이어서 청나라가 어떻게 일어났고 교체가
일어나면서 명청 교체가 일어나면서 문명 교체가 일어나면서 조선이 자기의
정체성을 갖고 고민하는 예속 논쟁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네 이번 시간에는 어 예송 논쟁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아
기존의 해석과 많이 다르고 그냥 이게 허해 허식에 대한 헛된
논쟁이었다다는 그 엄중했던 문명 교체기의 상황을 봤던가 국내 사정을
봤을 때에 그냥 허 허식 때문에 했던 논쟁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이 사람들이 뭐를 갖고 했느냐 문명 교체기에 조선의 정체성을 어떻게
다시 정립시키는 문제를 갖고 버렸던대 논쟁이었다 그 말씀을
드립니다 다음 시간에는 어 그렇게 해서 누루하치
청태종 도르곤 순치제 강희재 옹정제 이런 사람들이 일으켰던 그 청나라
그리고 그 청나라 때문에 조선이 자기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이예송
논쟁을 하고 숙명 반청 정책을 굳히면서 소중화 가겠다 명을 이겠다
하면서 수국으로 들어가면서 갑니다 그러고 나서 150년 200년이 지나고 어떻게
됩니까 그 대청 제국이 영국에 유인 되면서 아편 전쟁에서 패퇴하면서
소위 개항을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내부적으로
태평천국의 난이라는 거 일어 것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청나라가 흔들립니다
간신히 명청 교체기를 겪고서 수국으로 근근히 버텨내던 조선이 그러면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규정할 수가 있는가 사실 그것이
우리가 조선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재규정 해야만
되는 시대적 요구를 맞닥들이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어 아편전쟁과 태평 전구의 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임무를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아보는
함재봉 한국인 의 탄생 이번 시간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C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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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송논쟁(禮訟論爭)>이란 무엇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8회 요약 및 평론
<요약>
본 강연은 조선 후기 당파 싸움이나 당위적 허례허식으로만 치부되어 온 예송논쟁(禮訟論爭)을 명청 교체기라는 동북아 대격변기 속에서 조선이 스스로의 국가적 정체성과 문명적 이념을 재정립하고자 했던 깊이 있는 사상적 대논쟁으로 재조명한다.
소현세자의 독사와 효종·송시열의 북벌 명분
청나라에서 8년간 포로 생활을 하며 서구 문물과 천주교를 접했던 소현세자가 귀국 직후 독사당한 후, 봉림대군(효종)이 즉위했다.
효종은 스승인 우암 송시열을 영입했고, 송시열은 <기축봉사(己丑封事)>를 통해 중국(명)을 존중하고 오랑캐(청)를 배척하는 <존화양이(尊華攘夷)>와 임진왜란 당시 은혜에 보답한다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의리를 국정 철학으로 제시했다.
효종과 송시열은 북벌(北伐)을 국정 명분으로 삼았으나, 즉위 10년 만에 효종이 승하하면서 북벌론은 현실적 기반을 잃고 소멸했다.
1·2차 예송논쟁의 전개
1차 예송(기해예송, 1659년): 효종 승하 후 계모인 자의대비의 상복 착용 기간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송시열과 서인은 효종이 둘째 아들(차남)이었음을 들어 왕실도 사대부의 예법(종법)을 따라야 한다는 1년상(제체복)을 주장했고, 윤휴 등 남인은 왕위를 계승한 임금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3년상(참체복)을 주장했다.
2차 예송(갑인예송, 1674년): 효종비(인선왕후) 별세 후 자의대비의 상복 기간을 놓고 서인은 효종을 차남으로 보아 9개월상(대공복)을, 남인은 1년상(기년복)을 주장했다. 현종은 효종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서인의 논리에 분노하여 남인의 1년상을 채택했다.
예송논쟁의 3가지 핵심 사상적 논점
왕실과 사대부의 관계 (종법의 적용): 송시열과 서인은 왕실 역시 사대부 집안의 종법 원칙(장자 상속)을 예외 없이 따라야 한다는 '국제(國制)/사대부예'를 강조한 반면, 윤휴·허목 등 남인은 왕권의 특수성과 신성성을 내세워 왕실의 예법은 사대부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국가의 정통성 및 체의부정(體而不正) 논쟁: 송시열은 명나라라는 문명적 정통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체(왕위)는 가졌으나 정통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통해 청나라가 중원을 차지한 현실을 부정하고, 조선 내부에서도 엄격한 원칙을 관찰하려 했다.
명의 멸망과 조선 정체성의 근거: 명나라 멸망 후 문명의 정통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송시열은 대륙이 오랑캐에게 더럽혀졌으므로 조선이 명나라의 문명을 그대로 계승한 <소중화(小中華)>이자 유일한 문명 보루라는 입장에서 '정통 연호 사용'과 '화양동 구축' 등 폐쇄적 사수를 지향했다. 반면 윤휴와 허목 등은 기자조선 등 자국 고유의 정통성과 선진 유학으로의 회귀를 통해 독자적 문명관을 정립하고자 했다.
예송의 결과와 조선 후기 쇄국 노선의 형성
정치적 승패를 떠나 사상적으로는 송시열의 주자학적 유일체제와 '소중화' 의리론이 조선 후기의 주류 이념으로 정착했다.
이는 외부적으로 청나라 및 일본과의 교류를 극도로 제한하고, 내부적으로 사문난적(斯文亂賊) 단죄를 통해 독자적 개혁 시도를 막아서는 강력한 <위정척사(衛正斥邪)> 및 쇄국(鎖國) 체제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평론>
본 강연은 예송논쟁을 복상(服喪) 기간에 관한 소모적 당파 싸움이라는 기존의 식민사학적·공리주의적 폄훼에서 벗어나, 근대 이전 조선 지식인들이 직면했던 최대의 '문명 전환기적 정체성 위기'에 대한 철학적 대답으로 승화시켜 분석했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통찰을 제공한다.
첫째, 예송의 본질을 '세계관의 붕괴에 대응하는 국가 이념의 재구성'으로 규명했다. 17세기 중엽 명나라의 멸망은 조선 사대부들에게 단순한 이웃 나라의 교체가 아니라 '지구가 망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문명적 파국'이었다.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 세력이 상복 기간과 원칙에 집착한 이유는, 세계의 중심(명)이 사라진 상황에서 도덕적·예학적 원칙마저 무너지면 조선이라는 사회 자체가 해체될 것이라는 철학적 위기의식 때문이었음을 입체적으로 증명한다.
둘째, 주자학의 철저한 원칙주의가 초래한 비극적 귀결을 명확히 짚어낸다. 송시열이 구축한 '소중화 자의식'은 명나라의 유산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존한다는 도덕적 자부심을 제공했으나, 동시에 윤휴처럼 독자적 학문과 문명관을 정립하려 한 혁신적 시도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억압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외부 정세의 변화(청의 번영과 서구 문물의 유입)를 정면으로 수용할 수 있는 영연함과 개방성을 상실했다.
셋째, 예송논쟁에서 구축된 이념적 틀이 향후 조선 근대사의 성격을 규정한 뿌리였음을 보여준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과의 관계를 최소화하고, 병자호란 및 예송을 거치며 청나라와의 문명적 단절을 선택함으로써 조선은 완전한 고립(쇄국) 상태로 들어갔다. 이러한 '소중화 위정척사론'은 훗날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등장이라는 또 다른 문명적 대격변기에서 조선이 유연하게 개항하고 근대화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서는 가장 강력한 사상적 장애물로 작용했음을 깊이 있게 성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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