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9 아편전쟁은 왜 일어났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9 아편전쟁은 왜 일어났나? 

아편전쟁은 왜 일어났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9회
법률방송
72,340 views  Jan 22, 2025  #한국인 #역사 #함재봉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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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판을 바꾼 사건, 아편전쟁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부도덕하고,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이 전쟁은 어떻게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청나라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이 전쟁의 결과가 갖는 함의는 무엇일지 상세히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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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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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
있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 조선의 그 대부들의
허 허식 논쟁이라고 생각되던 예속 논쟁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사실
예송논쟁은 명청 교책이라는 정말로 국제정세
조선으로서는 세계가 완전히 바뀌는 그러 중대한
시기에 그러면 명이 없어지고이 오가 운 나라가 만들어졌을
때 그러이 도대체 어떻게 조선은 어떤 사상적 어
철학적 이념적 제도적 좌표를 갖고 나가야 되는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어
조선 사람들끼리 논쟁했던 어 것이 바로 예속 논쟁이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조금 시대도 좀 바뀌고 하지만은 사실 역시이 동아시아
전체의 그 역사에 있어서 근 세사에 있어서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했던
전환점이었던 아편 전쟁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아편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어 정말로 명나라가
청한 무너질 때 못지 않게 그야말로 천분 지혜라는 말들을 썼다 그랬었는데
하늘이 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변화라 그랬었는데 아편 전쟁
역시 중국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 조선 사람들한테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놀라운 어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에 있어서 우선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을 했었고 왜이 사건이 일어났었고 그것을 어
보면서 일본 조선은 어떤 교훈을 얻었고 근대화를 어떻게 준비해
나갔는가 이런 문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함재봉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편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를 살펴보려면 우선 그 당시에 국제 경제 체제를 좀 알아야
됩니다이 결국은 편이라는
어 마약이 어쨌든 제품을 영국이 중국에 자꾸 팔려고 했던 거고
중국에서는 그게 싫으니까 반대를 하다가 결국은 아편 전쟁이 일어나거든요 그럼 도대체 영국은 왜
아편을 자꾸 중국에다 팔려 했었던가 이런 문제를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 왜
이런 사건들이 터지는지 알 수가 있고요 자 그러면 그거를 알기 위해서는 편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이 대영제국이 중국하고
영국 동인도 회사라는 한 회사가 있습니다 동인도 회사라는게
뭐냐면 영국에서 영국의 왕이인가를 해 주는 겁니다 차타는 걸
내려줍니다 그래서 인도에 가서 무역하는 모든
거는이 회사가 독점권을 갖는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근데 그럼 왜 그렇게 하느냐 사실 인도나 중국이나
이런데 아직 시장 개척 못한대 를 가서 처음부터 시장을 열고 뭐 도시를
만들고 항구를 만들고이 모든 과정을 겪으려면 나라가 그 군대와 어 관료들과 이거를
참 파견할 수 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그거를 일개 회사에다 주는 거죠 그
모험심 있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이 오히려 경쟁적으로 가서
거기서 그 회사를 차려 가지고 이제 장사를 시작하는 겁니다 사실 그러니까
초기에 제국주의 시대가 날 때에는이 동인도 회사라는 회사들이 네덜란드도
그랬고 영국이 가장 앞서서 갑니다 그래서 사실
중국의 무역을 여는 것도 동인도 회사가 갑니다이 동인도 회사라는
건요 정말 최고 전성기 때는 영국의 무역에 뭐 70% 차지했었고
그다음에 군대도 자기 의 군대도 25만 대군을 갖고 있었고 정말 놀라운 어 그 회사였습니다 어 여기
그 사진에도 옛날에 원래 있었던 그 영국의 1800년대에 있었던 동인도
회사의 본부가 있는데 정말로 거대한 어 장엄한 그런 건물을 갖고
있었습니다 자 그래서이 동인도 회사가 17세기 말부터 이제 인도에 가서 어
통치를 저 저 무역을 하기 시작하고 그다음에 이제 어 중국과도 중국
남부로 가서 이제 교육을 시 시작을 합니다 자 그러면 이제 처음에
중국에가 중국에 갔을 때 영국은 뭐를 하느냐 영국은 당연히
중국의 굉장히 화려한 사치품들 이런 것이 굉장히 많았죠 예를 들어서 비단
도자기 향료 심지어 한약제 그리고 차를 드옵니다 이건
사실 마르코폴로 이런 사람들 때부터이 중국의 영화 무기 영화 사치품 목들
대해서 유럽 사람들이 다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이런 것들을 들려오는 거죠 그래서 미국이나 그
영어로 뭐라 그럽니까 아직도 그 접시들 식사할 때 쓰는 모든
그릇들을이 사람들이 차이나라 그럽니다 그 차이나라 그런 이유가 이게 다 중국에서 들여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렇죠 자 그런데 가장 중요했던게 뭐냐면 차입니다 차 티 영국 사람들
아직도 티 오후에 티 타임이라는게 따로 있지 않습니까 이건 뭐 우리가 알고 있는 뭐 무슨 티 아침마다 티
마시고 하는 거죠 전음부 다 영국 사람들이 중국으로부터 배워서 하는 겁니다 근데이 티라는 게요 지금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와 갖고 진짜 뭐 전 국민이 커피를 하루에도 몇
잔씩 마시고 있듯이 유럽 전체지면 특히 영국에 들어가서 차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전부 다 영국 사람들은 차를 마셔야 되는 걸로 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때 통계에 의하면
영국 사람들이 자기네 의 5% 최소한 5% 차에다 소비했다
그럽니다 그래서 17세기 말에는 한 연간 200파운드 정도 한 100km
밖에 안 됐었는데 수입하는게 중국으로 수입하는 차가 18세기 초에는 40만
파운드 그러니까 한 20만 km 되더니 19세에 오면요 2,800만
파운드가 됩니다 그럼 한 글쎄 한 1,00
1300만가 되는 거죠 놀라운 양의 수 그 그 그 차가 나오는 거죠 저
차를 수입을 합니다 자 근데 문제가 뭡니까 중국에서 그러면 영국 물건들을
사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지 무역 역조가 안 생기는데 중국에서는
영국으로부터 살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영국에서는 중국에서 비싼 것들 차를 포함해서 엄청난 양을
사갔는데 중국에서 영국 걸 아무것도 안 사니까 끊임없는 무역 적자가 이제 쌓이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그 무역 적자가 쌓이니까 이제 동인도 회사 입장에서 이거 큰일났습니다 이거를 어떻게 적자를 메울까 그러면
중국에 갖다 팔 수 있는 물건들을 찾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시작하는 거는 뭐냐면
인도에서 목화를 재배를 해서 그거를 가지고 중국에 갖다 주면 중국이 이제
간내 공업이 발달되 있는 나라니까 그걸 수공업을 통해 갖고 그걸 이제 옷을 만들어서 판 팔기로 했는 그런
이제 무역을 시스템을 만듭니다 그러니까 인도하고 그 중국하고 연결시키는 그러한 무역
체제를 구축을 하는데 문제는 뭐냐면 그것도 얼마 하다가 중국 자체에서
목화이불 들여올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그러면서이 체제도 완전히 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정말로 몰리다 몰리다 몰리다 해서 마지막으로 영국
사람들이 중국에 갔다 팔겠다 한게 뭐냐면 인도에서 나는 목화가 아니라
편입니다 그래서 아편을 인도에서 와가지고 재배를 해서 와서
그거를 중국에 팔기 시작하는 거죠 무역 역조를 이제 만해 보려고 이제
굉장히습니다 한 가지 그 차에 대해서 아주 굉장히 우리 역사적으로 재밌는
어 얘기가 있는데 그게 뭐냐면은 영국이 그 처음에는 가 계속 일어나니까 스페인
때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중남미에서 이제
은들이다 그 은을 이제 이용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무슨 말씀 있냐면 이렇게 되는 거죠 중국의 차를 사
가지고 와서 그걸 미국의 자기네 식민지에 파는 거죠 그러면 그 미국의
식민지에서 그걸 어떻게 사냐면 남미로 올라오는 은을 가지고 그거를 사는
거죠 그래서 은하고 차를 받고 거죠 그럼 이제 그거를 동인도 회사는 또
이제 중국에 갔다 은을 주는 거죠 그니까 차는 미국이고 영국이 유럽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거고 그 값을 치르던데 사용했던 은은 중국으로
다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이 중국의 근대화에 대해서 말씀드릴 때 제가 잠깐 말씀드렸었는데
중국이 전 세계 은혜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은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거고
사실 그 은의 큰 부분을 누루하치 라는 사람이 사실은 인삼 장사를
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그러면서 이제 그 새로운 국가를 청을 일으킬
수 있는 그 그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고도 말씀을 드렸었는데 아무튼 이런 이제 무역 체제가 이제
생겨나는 거죠 그래 갖고 역사에 하나 재밌는 장면이면 미국에서 미국에서
미국 혁명이 일어날 때 독립 혁명이 일어날 때 가장 큰 중요했던 기폭제가 되는게 뭐냐면 보스턴 차 사건이라는게
있습니다 보스턴 티 파티라는게 있습니다 영국 배들이 중국 차를 싣고
지금 말씀드린 그 은으로 이제 바꾸기 위해서 보스턴 항구에 들어와 있었는데
미국 식민지 사람들하고 영국하고 무슨 문제가 생기냐 면은 차들이 들어오는 거에 대해서 관세를 매기기 시작하는
거예요 영국이 미국 사람들은 야 우리한테서 왜 이걸 왜 세금을 걷느냐 그러면서 이제 반대를 하기 시작하고
사실은 뭐냐면 자 그럼 세금을 우리한테서 거두면 그 대신 영국 의회의 우리의 의원들도 대표 보낼 수
있게 하라 참정권을 달라 세금을내는만큼 참정권을 달라 영국한테 그랬는데 영국이 이걸 거부를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미국 사람들이 식민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기 시작해서 사실 독립까지 가는 이유가 그래서 되는
건데 근데 그 사건의 기폭제가 되는게이 보스턴 티파티이 배에 잔뜩
차를 싣고 들어온 거를 미국 식민지 사람들이 인디언으로 아메리칸
인디언으로 분장을 하고는 몰래 들어가고 거기 들어가서 그 차들을 다
바다에다 그냥 한국에다 쏟아 보는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 영국 그 군하고 이제 막 그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결국은 그게 이제 미국 독립 혁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는데요 이때 거기에 왜 차가가 있었느냐 이게 바로 동인도 회사가
만들어 놓은 중국 차와 은을 바꾸는이 엄청난 무역 구조 속에서 그런 일이
어 벌어진 겁니다 저는 항상 궁금했던게 미국 사람들은 차 안 마시거든요 근데이 보스턴 티파티
사건에서 보면은 분명히 미국 사람들도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엄청난 차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됩니까
독립을 하고 사실은 중국으로 차가 들어오는이 동인도 회사가 주도했던
무역 구조가 깨지면서 미국은 그다음부터 차를 안 마신 거고 영국은 계속해서 차를 마셨던 걸로 저는
그렇게 어 지금 역사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 아무튼 그래서 이제 은도
계속 쏟아 볼 수가 없고 그러니까는 결국은 아편을 팔기 시작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편이 사실 이미
당나라 때부터 중국의 아편이 소개됐습니다 그런데 약재로 주로 쓰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게 완전히
그 동인도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중국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아편의 양이 18세기 말 19세기 초를고 사이에 무려 배가
늘어납니다이 1860년대에 이면은 영국 왕실이 이 대형 제국을
운영하면서 벌어들이는 돈의 수익의 16분이 중국 무역을 통해서 얻는
수익이 영구 강실이 대부분 앞편 무역을 통해서 빅토리아 여왕의 그
모든 것을 유지해 할 수 있었던 것은이 편 무역 때문이었습니다이
도표를 보시면요 150년에 50턴이었던 것이
1880년에 6,500 톤으로 늘어난 걸 볼 수가 있습니다 그고 옆에 그림을 보시면이 그림은 뭐냐면 그
당시에 영국 사람들이 인도의 아편 수출 기지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이
편들을 다 가공을 해서 이제 수출 지금 이게 선적하기 직전에이 편들이
만들어 놓은 겁니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앞편 무역을 영국이 시작을 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청에 가만이
안 있죠 그래서 청은 이미 옹정 때부터 그 17 18세기 초입니다
때부터 이제 금지를 시킵니다 그런데 19세기가 되니까 영국이 들여오는
앞편 때문에 인구의 무려 10% 아편 중독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편
중독이 가장 높은게
군인하면 쉽게 중독이 됐었는지 미스터리 중에 하나입니다만 아무튼
이제 그러면 이거를 막으니까 정부에서 이걸 막으니까 그때 이제 삼하 같은
대규모 범죄 조직들이 이제 생기기 시작하고 그리고 이제 마약 때문에
중국이 이제 영국 하고의 무역에서 엄청난 적자를 보기 시작을 합니다 그 8대
황제가 나왔을 때에 도광제 때 대규모 경제 공황을
겪거나 편무역 때문에 그랬다고 아직도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는데 그다음에는 이제 완전히 다른 또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게
뭐냐면 영국이 19세기 들어오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합니다 그 산업혁명이 뭐냐면 다 아시죠 맨체스터
이런데 엄청난 방직 공장들이 생기면서 가내공업 수공업으로 옷을 만들고 이러든 거 이제 기계들이 엄청난 양의
옷들을 만들어는 거죠 이제이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 영국에서는 이제 자기내 공장들이
쏟아내는이 물품들을 파는 시장을 찾아다녀야 되는 거죠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최대 시장 어디냐 그러면
중국이었다 옷들을 이제 팔려고 하는 그렇게 이제 시도를 하기 시작을 하는 거죠 그니까 그동안에는 그냥
편하고 그 사치품 아고 바꾸고 차하고 바꾸고 이제 했었던 무역 구조가
이제는 영국이 오히려 산업 혁명으로 나오는 산업 물품들을 산품을 중국에다
본격적으로 팔려고 하는 중 영국 중국 무역의 다른 국면이 이제 전계가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나폴레 전쟁 하느라고 이제 영국 유럽이 중국의 신경을 못 쓰다가 딱 끝나고 나니까
워터로 전 전투에서 이기고 영국이 다시 중국으로 와서 그 사이에 이제
더 발전한 산업혁명의 품들 팔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계속해서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래서 이때 유명
유명한 에머스트 경 네이피어 경 이런 사람들이 이제 가서 어 협상을 하려고
그럽니다 에머스트가 갖고 북경에 가서 황제를 알현하다
그랬더니 황제를 연하면 너희가 와서 삼괴 구고 두레를 해야 된다 그건 못
하겠다 그래서 이제 실패를 하고 네이피어 그다음에 갔던 사람은 아예
베이징에 들여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는 영국이 처음에는 편을 팔다가 그다음에는 다른
산업 제품까지도 팔아야 되니까 이거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중국하고 협상을 하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아 좀 많은
한구 좀 열어주고 우리가 시장 개척할 수 있게 하자 뭐 이제 이런 협상을 하려 그러는데 중국은 다 이제 거부를
하는 거죠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를 하는 거죠 그니까 영국에서는 편보다 이제는 이런 공산품들이 팔려고 하는
거였지 지만은 어쨌든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제 아편이 인구 10% 아편 중독이 되는 거고 특히 이제
광동 지역 같은 데는 정말 아주 심각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러니까 그때 이제 도광제 황제가 10대 황제가
임칙서는 유명한 대신을 이제 보냅니다 가서 어떻게 되는지 이거 편을 이걸
막아라 어떻게 쓰는지 그래서 이제 임칙서 도착을 해 갖고는 다 조사를
해보고는 밀수하고 있던 편들을 다 뺐고 그렇죠 영국 상인들이 갖고 있는
아편 까지도 전부 다 압수를 해 버리고 회기를 해 버립니다 이게 1839년 아예 날짜도 있습니다
3월에 광동에 광동에 도착해서 다 조사를 하고 6월 25일 날 편들을 몽땅 몰수해 폐기 처분을 해버립니다
그때 이제이 그 폐기 처분하고 있는 그 광경도 어 그때 그림에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어 이제 영국 상인들이 야 폐기했는데 그럼
보상이라도 해라 그랬더니 임선 이제 그것도 그 거부를 합니다 사실 임칙서이 때요 어 빅토리아 여왕한테
편지도 씁니다 그 편지 서신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게 빅토리아 영한테 전달은 안 됐다 그러는데 거기에
임칙서 참 멋있게 얘기를 합니다 왜냐면 내가 잘은 모르지만 당신들도
사실 편이라는게 국민들한테 들어오면은 그거 나쁜 걸 이제 알지 않느냐 그러면서
그걸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여왕께서 남의 나라한테 이런 아편을 파는 거를 그냥 좌시할 수가
있겠습니까 라면서 굉장히 점잖게 그 빅토리아 영한테 호소를 하는 그런 그
편지도 지금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국 사람들이 엄청난 압력을 넣는데도 끝까지 거부를 하고는 모든 그 아편
어 상인들을 다 그 가게들을 폐쇄해 버리고 몰수해 이제 폐기 처분하고
이럽니다 임칙서는 아직도 지금도 중국 사람들한테 영웅입니다 미국의 뉴욕의
차이나타운 입구에 가면요 거기에 임칙서 동상이 있습니다이 정도로 임칙서는 끝까지 편을 막으려고 어쨌든
저항을 했던 어 그 마지막 훌륭한 신하였다 중국 사람들이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되니까 영국이 드디어 1839년 11월에
군대를 파견하면서 앞편 전쟁이 시작됩니다 뭐 사실 전혀 중국군이
상대가 안 됩니다
여러분이 팔기군 기억나시죠 당대 세계 최강의 군대였던 기구는 사실 이때쯤
되면 흔적도 없습니다 아무런 힘을 못 씁니다 한 나라가 무너진다는게 이렇게
무섭다라는 것을 너무나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무튼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영국의 남들 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중국 전함들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궤멸이 됩니다 그리고 조선 때도 뭐 임진란
이럴 때 보면은 관군 다도 의병들이 일어나서 더 잘 싸웠는데 중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의병들은 오히려 용맹하게 싸워서 가끔 전투에이기는 적은 있었지만 결국은
전혀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1840년 7월에 저장성의 하이라는
정해라는 데를 점령을 하고 이제 8월이 되니까 완전히 베이징에 입성할 때가 한 지경까지 이릅니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기선이 아는 사람을 저리 어 그 총독을 보내 가지고 급파 해
가지고 영국하고 이제 협상을 결국은 합니다 그러데이 기선이
사람이 설득을 해서 이제 돌아갑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왜 설득을
당해서 돌아갔 하면은 그때에 기선이 홍콩을
영국한테 완전히 양도하기로 약속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막대한 보상금도
주겠다라고 사실을 하니까 영국이 물러났던 거죠 그걸 나중에 안
조정에서는 당장 기선이 사람을 불러 드려라 그래서 기선을 이제 쇠사슬에
묶어 가지고 이제 압송 어 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기선이 협상에서 했던
약속을 다 깨뜨리 다시 영국군이 양측을 이번엔 거슬러 올라가면서 서
아예 남경을 점령을 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청이 어쩔 수 없이 1842년 8월 난징 조약을
체결하면서 1차 앞편 전쟁이 끝납니다 자 그러면 난징 조약은이 그림에서도 보시듯이 영국
전함 함상에서 체결을 하는 겁니다 중국 사람들이 배에 올라가서 배에서
이제 함장실 이겠죠 제일 큰 방에서 이제 하는 겁니다 그래서 청은 영국에
4년에 걸쳐서 총 2,100만 달러 상상을 초월하는 돈이었습니다
보상금으로내는 거고요 그리고 어 홍콩 섬도 영국에 하량 하는 거죠 그래서
이때부터 이제 어 100년 동안 1942년까지 하량 하는 거고 이제
또 그걸 연장을 하고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뿐만 아니라 그때는
홍콩만 열려 있었는데 광동 샤먼 푸조 닝보 상하이 등 다섯 개항을 추가로
개항을 하고 그리고 관세 주권을 포기합니다 즉 중국이 영국 물품들에
관세를 얼마를 먹이냐 중국이 못하는 거고 영국이 정하도록 그래서 이게
불평등 조약의 가장 핵심 조항 중에 하나가 관세 주권 폭입니다 그리고 어
영국 사람들은 개항장에서 상주할 수 있고 그리고 모든 법 재판이나 이런
거는 중국 사람들이 못 하고 영국 사람들의 경우에는
영국 법원에 재판을 받도록 소위 말한 치외법권을 인정을 합니다 이러면서
간신이 아제 1차 앞편 전쟁이 [음악]
끝납니다 자 그러면 계속해서 그니까 앞편 전쟁
1차 앞편 전쟁이 끝났는데도 이게 참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지만 이게 무슨 문제냐면이 조약이라는 거에 대한 개념입니다 외국하고 조약을
맺는다는게 그게 무슨 뜻인가를 중국 사람이 몰라요 그 무슨 말씀이냐 면은
조약을 체결하는 다음날 영국군은 다 철수를 해 버립니다 그러면서 이제 조약들 하자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중국 사람들은 아니 전쟁을 해서 져서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해서 조약을 체결을 했는데 어 제 책이라고 하니까
이제 군대도 가버리고 아무도 없는 거예요 어 그래 그럼 왜 편 이제 아 팔지 마 앞편 이제 다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는 조약을 지키질 않습니다 조약 내용을 그 지키는게 뭔지를
모르는 거죠 강제로 해소했을 때는 뭐 어쩔 수 없이 지키지만 강제할 세력도 군대도 없어졌으니까 안 지키기
시작하는 거예 그러면서 이제 막 그 앞편 무역을 이제 다시 제재를 하기
시작을 하는 거죠 이때에 마침 어 중국에서 황제가 바뀝니다도
제가 죽고서 함풍제가 아주 젊은 나이에 이제 적기를 하는 게하는 거죠이 한한
풍제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어 아직도 중국이 강한 줄 알고 보수 대신들
말만 드는 겁니다 아 우리가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이거 다 쫓아 놔야 됩니다 이제 조약 같은 거 다 필요
없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조약을 오히려 맺은 놈들 영국
사람들하고 너무 쉽게 조약을 맺어 줘서 뭐 홍콩도 내주고 뭐 무슨 아편 팔 수 있 다 해주고 이런 이런
놈들은 허약한 놈들이다 이거 가만놔두면 안 된다 그서 그런 사람들 수청을 시키고 소위 강경파들은
이제 조정을 메꾸기 시작합니다 그때 특히 이제 어 명이라고
예천이이 사람이 이제 그 그 광동에서 어 총독을 하면서 아주 강력하게이
앞편 무역을 제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마을 그 동네 있었던
대부들 하고 같이 어 없애려고 이제 노력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을 하고 있을 때
또 영국은 처음에는 가만히 있습니다 왜 영국은 이때 바로 크림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제일 컸던 전쟁 러시아하우스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손을 쓸 겨을이 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지 면은 1850년에 태평 난이 일어납니다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서 태평천국군이 쫙 청군을 휩쓸러 가니까 사실 처음에
영국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서양 사람들 뭐라 했냐면 야 이거 태평 천국이 이했는데 그러니까 이렇게
관망을 합니다 그러다가 1854년이나 돼서야 언젠가는 청이
다시 태평 정국을 난을 평정할 거 같다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다시 그때
이제 아이 그래 그러면 다시 청하고 협상을 하면서 원래 우리 약속했던
대로 다 남경조약 난징조약대 같이 다 지켜라 이런 이제 요구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안 되는 거예요 조약을 해놓고는 이제
지키지 하는 거죠 그 현재는 관리들은 전혀 무시를 하고 계속해서 앞편 장사를 이제 규제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연명 침 하고는 도저히 협상이 안 되니까 영국 상인들 하고이
사람들이 전부 다 들고 일어나 안 되겠다 베이징 정부하 협상을 하자 그래서 한 풍지 계속해서 부탁을
합니다 예를 그렇지만 한 풍제 안 돼 너 연명하고 나랑 하지 마 안 돼
그러면서 다 거절을 합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보고 계속해서 이거 약속 안
지킨다 약속 안 지킨다 이랬는데 2차 편 전쟁이 터지게 되는 계기가 뭐냐면은
1855년에 됐을 때 팔머스 경이라는 사람이 수상에 당선이 됩니다 근데이
사람이 누구냐면 1차 아편 전쟁 때 외무상이 굉장히 강경파 있었고 사실
1차 편 전쟁을 일으켰던 실었던 장본인이 이번에 나예 수상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1842년에 간신이 앞편 전쟁 1차 앞편 전쟁을 통해 가지고 그래도 이런 협정을 맺어 갖고 난중 조행을 맺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수상이 됐는데 와서 보니까는 바뀐 거 하나도 없고 똑같은
상황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협상 더 이상 못 하겠다 이거는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입장에서는 아주 뭐라 그럴까요
적시의 사건이 하나 터집니다 뭐냐면 그게 에로 사건이라는게 터집니다 로라는 건요 이게 사건이 1856년
10월에 터지는데 이게 뭐냐면은 그 서양식 배데 거기에 중국식 도을 달아놓은 배입니다 그걸 이제 로카라이
배가 아편을 싣고 있으니까 중국 관원들이 들어가 갖고 을 뺏어 갖고 이제 또 압수를 하고 바다에 던지고
이제 이런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소유주는 홍콩에 사는 중국 상인이었던 선장만 영국 사람이었어요 영국 배라고
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그 배의 영국 선장이 뭐라 그랬냐면 아이 중국 관원들이
올라와 가지고는 대영제국의이 국기도 끌어내리고 그러면서 우리를 모욕을
했다 우리 나라를 모욕했다 이런 보고를 합니다 그래 갖고 이제 영국
정부에서는 이제 전부 다 이제 격강이 되기 시작해서 그랬는데 문제가 뭔지 아세요
그래서 영국이 영국 영사 있던 해리
파스라도 조사를 합니다이 에로 사건이 났을 당시에 아예 영국 선장은 배에
있지도 않았답니다 영국 깃발 개항한 적도 없었답니다 그 배가 그니까 완전히 조작이 되는 거죠 근데 그
해리 팍스의 보고서는 올라가질 않습니다 해리 파스가 보고를 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원했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은 영국을 모욕했다 불법적으로 수색을 해 갖고
조약을 위반을 했다라고 해서 영국군이 광조 어 홍콩을 포격을 하기 시작하
합니다 이러면서 2차 아편 전쟁이 벌어집니다 자 그래서 이렇게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마침 그 해 5 2월 달에 또 무슨 사건이 벌어지면
그때 중국에서 선결을 하고 있던 프랑스 신부 샤델리 신부가 있었습니다이
신부가 중국 관원들 테 잡혀서 철창 속에 갇혀 갖고 심하게
매지를 당하고 고문을 당하고 참수를 당합니다이 사건이 벌어지니까 이제
프랑스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뭐 아유 영국이 또 뭐 중국하고 이렇게 또 청나라 하고 티격 대각 하고 있는구나
하고 있었는데 이제이 사건이 어 벌어진 벌어지니까 이제 프랑스도가
갖고 이거 어떻게 된 거냐 그랬더니 연명 침이 그냥 둘러댑니다 아이 사실
샤틀레 신부를 죽인 것도 아니고 전혀 딴 사람을 죽였다 뭐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말로 이제 둘러대기 시작을 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 1857년 12월 28일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이번에 들어갑니다 5700명 연합군이 광조이를 포격을 하고 그리고 58년
1월 4일 날 영국군 하고 프랑스군이 연명을 체포를 해가지고는 영국이
통치하던 인도의 콜로 보냅니다 그래서 명은 콜에서 쓸쓸하게 영국의 포로로
거기서 명사를 합니다 대신 이제 영국하고 프랑스가 자기네 꼭두각시를 앉혀놓고 이제 조를 그 통치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아까 함풍제가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어떻게해서든지 하 그래서 이제 의병도 일어나고 그러니까 아 의병들을 이용해서 이거를 이기자 저항을
계속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영국 프랑스군이
1858년 4월 티엔진 그니까 관문이죠 베이징의 관문인 티엔진
우리나라 처 광화도 포대 같은 걸 거기 딱구 대인데 그 포대를 돌파를 하고서는 베이징으로 이제 들어가기
시작하니까 그때 이제 놀래가지고 안 되겠다 그래갖고 그래서 이제 협상을
해갖고 조 을 체결을 합니다 그런데이 텐진 조약에서 58년에 이제 한
[음악] 조약이 첫 번째 외교 사절이 베이징에
상주할 수 있다 이게 저는 굉장히 중요한 거였 지면서도 끝까지 중국이 거부했던 거 뭐냐면 어떤 나라도
자기네 외교관이 베이징에 와서 상주할 수 없다 여기는 황제의 도시인데이
황제는 동양 어캐든 서양 어캐든 아무 오랑 캐들도 와서 살 수 없다 사신들이
와서 다녀갈 순 있죠 연행사 조선의 연행사이 다녀는 가지만 상주는 할 수
없었던 거죠 근데 이제 유럽 사람들은이 당시만해도 어떡합니까 국교를 틀면 상대방의 수도에 가서
상주를 하면서 공사관을 열고 대사관을 열고 그러면서 그 나라의 국가 원수와 만나고 협상을 하고 이제 이러면서
양국 관계를 유지하는 거죠 지금 우리나라에 수많은 서울에 수많은 대사관들이 와 있는 거 그리고 우리
대사관이 각 전 세계 각국의 수도에가 있는거나 마찬가지죠 이게 다 유럽 식입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제 중국은
그 거부를 했던 거죠 그런데 이제 드디어 텐진 조약을 통해 갖고 야
베이징에 상주할 수 있다라고 이제 약속을 하는 겁니다이 부분이 사실 중국의 입장에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이제 뭐 추가로 열개 항구를 개방하고 외국 배들이 이제 드디어 양자강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게 하고 아 아편을 합법화하는 새 무역 조항을 만들고 기독교가 이제 마대로 선교할
수 있게 이제 완전히 여는 그런 조약을 이제 맺습니다 자
그래서이 조약을 맺고서 다시 또 영국군고 프랑스군이 다 철근을 합니다
근데 문제가 또 생깁니다 그래서 결국은이 조약을 맺었으니 그럼 조약을
비준 하기 위해서 그래서 베이징으로 가야 할 거 아닙니까 근데 가는
길에 진에 있는 다쿠 거 그 기지에서 전투가 떠 전혀 뜻하지 않는 전투가
벌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다쿠 성을 지키고 있었던 승고 CU
신이라는 맹장이 있었습니다이 사람이 팔기군 몽고 팔기군 후회입니다 아주
유명한 장군이었던 근데이 사람이이 이거를 지키고 있었는데 역시 이게
협정이라는 거에 대한 이게 서로가 잘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와서 전투가 붙어 버립니다
근데이 전투에서 영국군이 프랑스군이 전혀 준비가 안 돼 있었는데 청군이 공격을 하니까
거기에 맞서다가 수백명이 430명의 사상자가 나고 그러면서
영국군함 척이 격침이 돼버립니다 그러니까는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함풍제 뭐냐면 환호성을 지립니다 야 드디어 승린 치이 명장이 맹장이이
영국놈들이 이겼구나 하면서 다시 강경으로 돌아서 우리 협정 안에 이렇게 돼 버리는 거죠 이번엔
1860년 여름에 대규모 원정군을 보냅니다 영국하고 프랑스가 그래서
수송선 143 이에 00명의 병력을
영국이 보내고 프랑스는 60척에 군함에 6300명 병력을 파견하고
홍콩의 지하세계에서 모집한 쿨리 군이라고 하는 500명까지 포함이 돼서이 사람들이 이제 베이징으로
진격을 해갑니다 그러니까 이제 진짜 엄청난 대군이 진격을 해 오니까 또
다시 이제 협상단을 보내요 그런데 저 홍콩 영사 라던 해리 박스부터
시작해서 영국군의 대장이었던 긴경 개인비서 해리 로크 헨리 로크 영국
타임지 기자 토머스 볼비 아는 사람을 포함해서 영국인 25명 프랑스인
133명으로 구성된 연합군 협 협상단이 베이징으로 먼저 향합니다
군대와 따로 그러니까 당연히 이제 협상단이 안 건드릴 줄 알았죠 근데
쓴글 린 친이 중국식인 거였죠 그 당시만 해도 본건 적군이 그냥 잡아
버립니다 잡고서는 다 감옥에 집어놓고 고문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이 사람들이 풀려 나옵니다 풀려 나오는데 풀려났을 때는 이미 그중에
20명이 고문을 못 이겨서 정말 사지가 다 찢기고 그러면서 죽었습니다
이걸 보고서 이제 긴경이 영국군의 사령관이던
인경이 경로를 하는 거죠 협상이고 뭐 다 필요 없다 그러면서 베이징으로
진격이 그래서 영불 연합군이 그냥 베이징으로 밀고 들어갑니다 이때에 한
풍제 놀라서 그때에 열하에 있는 피서 산장으로 다
도망을 가버리는 거고 협상은 자기 동생한테 맡기고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때에 베이징에 입성한 영불 연합군이 그때 긴이 그러는 거죠
이렇게 야만적이고 잔혹할 수가 없다 이거는 가만 놔둬서 안 된다 본때를
보야 된다 그러니까 음성이나 원명원 둘 중에 하나 이게 두 개 대표적인
궁이 둘 중에 하나를 골라서 완전히 불태워 버린다 그럽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금성을 놔두고 원명을 불기로 합니다 자금성에 비해서 몇 배가 컸었던 어 그
놀라웠던 원명이대 약탈이 어 벌어지는 거고 어
정말로 완전히 이때 초토화가 돼 버리는 거고 그때 이제이 원 명원이
탑니다 자 그래서 그 원명이 타니까 이제 결국 이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거기에 있었던 그 상상을 초월하는 보물들을 전부 다
씻고서 돌아옵니다 영국 사람들하고 프랑스 사람들이 거기에 그 원정군에 갔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친한
친구가 당대 최고의 문호 빅토르 위고를 친구로 둔 대위가 있었어요이
사람이 자랑을 하면서 빅토리한테 야 우리가 가서 이렇게 중국을 쳐부수고
청나라를 깨뜨리고 개선했다 이러니까 토리 거가 그때 자기
친구한테 답을 하는데 공개편지 를 씁니다 그때에 영국과 프랑스가 한
짓을 전 세계에 폭로하면서 비난하는 놀라운 편지를 씁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경께서는 저에게 중국 원정에 대한 저의 견해를 물어보셨습니다 경께서는 이번 원정이
명예롭고 영광스러웠다 여기시는 저의 의견을 중요시 생각하시면서 물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경께서 이번 중국 원정은 빅토리아 여왕과
나폴레 황제의 공동 기치하에 이루 광을 영국과 프랑스가 함께 누야
한다고 생각하시면서 저에게도 영국과 프랑스의 승리를 지지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의를 물어보기에 아래같이 답합니다이 상 한곳에 경이
있었습니다이 로움은 명이라고습니다 예술에는 두가지 원칙
있습니다 이아는 유럽의 예술을 낳는 낳
이를 본으로 하는 예술의 였다면 원명은 환상 예술의
치였습니다 거의 초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상상력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필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건축물을 상상해 보십시오 달나라에
있는 건물 같은 건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명원이었습니다 대리석과
옥청기로 을고 그을 짜고 뒤덮고 비단으로
휘감아서 한 곳에는 안식처를 다른 곳에는 후궁들의 침실을 다른 곳에는
성을 그곳에 신들을 집어놓고 괴물들도 놓고 광택을 내고 애나를 바르고
물감을 칠하고 건축가들과 시인들에게 1천 1일 밤에 일개 꿈을 짓게 하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원과 궁궐의 얼굴을 가진 환상에 눈부신 동물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그런 건축물이었습니다 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몇대 걸친 인고의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한개의 도시만큼이나 거대한이 위대한
건축물은 몇 세계에 걸쳐서 건설되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였 인류를
위해서였습니다 볼테르도 늘 얘기했습니다 인류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이집트의 피라미드 로마의 콜로세움 파리의 노트르담 동양의 원명을
말했습니다 직접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상상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아무도 보지
못한 신비로운 걸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멀리서 언뜻 보일듯 말듯 어스름 속에 유럽 운명의 지평선에
비친 아시아 문명의 실루엣이었습니다 이제이 경이로움은
사라졌습니다 어느날 두 강도가 원명원 들어갔습니다 하나는 약탈했고 또 다른
하나는 불을 질렀습니다 승리의 여신은 도둑질하는 여자도 될 수 있는 모양입니다 명원의 파괴는 두 승리자가
함께 한 일입니다이 모든 것에 얽혀 있는 것이 이란 이름입니다 파르테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파르테논의 저질러 것이 원명원
저질러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더 철저하게 더 잘 말입니다 우리의 모든
성당의 모든 보물을 다 합쳐도이 엄청나고 화려한 동양의 박물관에 비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는 예술의 작품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보석이 있습니다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얼마나 엄청난 입 두 승리자 중 한명이 자신의 주머니를
가득채웠습니다이를 본 다른 한 명은 자신의 금고를 가득채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손에 손잡고 큰소리로
웃으면서 유럽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두 강도의 기입니다 역사는 그 두
강도 중 하나를 프랑스라고 부를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항해합니다
그리고 저에게이 기회를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지도자들의 죄는 그들에이
을 당하는 사람들의 죄가 아닙니다 정부는 때로는 강도이지만 국민은 아닙니다 저는 언젠가 구원받고 정화된
프랑스가이 전리품들을 약탈당한 중국에 돌려줄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는 도둑질이 일어났고 두 명의 도둑이 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중국 원정을 저는 이만큼 지지합니다 자 그러면 기는 어떻게
됐느냐 기는 청황제 옥자 원명원 있었던 그 옥자 아지도 약탈을
해서 막대 봄을 들고 개선을 합니다 그런데 아까 그 빅토르 유고의
편지에서도 이건 기이한 짓이다 라면서 그 파르테논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그
왜 그런지 아세요 엘긴 경의 아버지 7대 엘긴
백작은 오토만 주제 연국 대사를 하면서
그때에 장인들을 동원해서 파르테논 신전에
파르는 신전에 있었던 벽화들을 절반을 뜯어냅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그 기가막힌 부 조각품들을 전부 다 뜯어냅니다 그래서
그거를 전부다 영국으로 가져와서 직금 대형 박물관의 가장 유명한 전시품이
바로 엘긴 대리석 있니다 이게 뭐냐면 파르테논 신전에서 뛰어온 겁니다
그러니까 빅가 하는 기가 뭡니까 아버지는 건축
정수라고는 파르 파르테논의 벽화를 뛰어오더니
아들은 가서 동양 예술의 극치인 원명을 약탈하고 불태우고 파르테논은
남겨놓기 됐는데 아예 원명 싹 불태워서 없다라는 얘기를 했던 겁니다 이런 그
역사적인 배경을 우리가 이해하면서 중국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명에 대해서 저렇게 분노를 하고 치옥의 100년의 역사를 극복해 보겠다라는 얘기들이 왜 나오는지
우리가 아편 전쟁 원명원 약탈이 모든 것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지만 그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국 베이징 조약을 맺음으로써 어 열하루 도망간 피소
선장으로 도망간 한 풍제 이복동생 혁이 1860년 10월 24일 베이징
조약을 체결을 합니다 난 조약 때 약속했던 것을 모든 것을 다 어 그
이행을 그대로 하겠다 샤틀레 신부를 죽이고 하면서 몰수 했던 프랑스의 모든 카톨릭 재산들 다 환수를 하겠다
그리고 홍콩 선만이 아니라 구령 반도까지 영국에 하향을 하겠다라고
합의를 합니다 그리고 텐진조차도 이제 개항을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1860년 11월 죄악이
체결된 직후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베이징의 개 부대만 남기고 모두
철군을 합니다 베이징 조약 체결 이후에도 한 풍제 베이징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거기에 상주하기 시작한 영국
사람들이 프랑스 사람들이 고국의 도에도 하지 않는 체 있는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고 정말로 원명원이 불탔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풍제 결국은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추운 피서 산장에서 겨울을 나면서 그리고 그다음 봄에 죽습니다
피서 산장은 말 그대로 여름에 시원하라고 피서를 가는 답니다
베이징으로 진격하고 있는 영물 연합군을 피해서 갔을 때 잠깐 갔다
올 생각을 했지 거기 가서 그렇게 오래 있을 생각을 안 했던 거죠 황제가 겨울을 날 수 있는 월동할 수
있는 아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피사 선장에서 겨울을 나면서 결국은 어 병에 걸려서 어 이듬해에 죽습니다
1861년 8월에 세상을 떠는데 30세에 불과했고 죽으면서 자기 아들
어린 다섯살짜리 아들한테 옥자를 넘겨 주면서 보정 팔 대신이라고 자기가
가장 믿는 사람들한테 우리 아들을 잘 보필해 달라고 하고는 숨을 거둡니다
다섯 살짜리 아들이 동치제가 되는데 그 동치제의 생모가 바로 태우죠
그래서 그 서태후가 보팔 대신을 물 치고 결국은 공친왕 근하고 손을 잡고
그러면서 어 중국을 근대로 밀고가 버립니다 보수주의자들을 다 없애버리고
중국의 근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 바로 동치의 통치 기간이
시작되면서 어 그 중국이 근세 세계로 들어갑니다 아편 전쟁은
이렇게 원치 않던 중국을 어 이끌어서 결국은 근대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편 전쟁은
동아시아를 전 근대에서 근대로 강제로 이끌어냈던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아편 전쟁의 내용을 살펴보는 영국이 강제로 아편을 팔기
위해서 일으킨 전쟁입니다 정말로 도덕적으로 모든 면에서 너무나
나쁜 짓이었죠 근데 모든 역사가 그렇 그렇게
아프고 정말 잘못됐고 치욕스러운 측면이 있지만은 그러므로 해서 청이
어쩔 수 없이 계곡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개을 하는 거죠 그리고 그 개을
하면서 개항 과정에서 다시 사실은 청이 일어나기 시작을 합니다 동치중흥
우리가 양무 운동이라고도 부르는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전통이
합치면서 근대화 과정을 밝기 시작하는 것도 모두 아편 전쟁이 계기가 됩니다
사실 아편 전쟁이라 그러면은 중국 사람들한테는 아직까지도 극복해야 될
역사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미국하고
유럽하면 깔려 있는 것은 바로이 앞편 전쟁에 대한 기억입니다이 앞편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 이후로 벌어진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동북 아시아의 외교
안보 그리고이 문명사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국에 엄청난 충격이 됐던 거 뭐 이로 말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일본은 아편 전쟁에
형편없이 어 중국이 무너지는 걸 보고서 페리 제독이 나타나니까 일본은
거의 저항을 하지 않고 계곡을 해버립니다 그래서 1853년 되면
미국하고 본격적으로 해리스 약을 맺어 갖고 아예 개항을 해버리는 거죠 아편
전쟁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걸 봤기 때문에 조선은 편 전쟁을 봤으면서도
사실 그 하의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의 기대에서 청의
기대 갖고 끝까지 개을 하지 않으려 그러고 중국도 아니고 사실 일본의 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 강화도 조약을 맺고 그야말로 개 개국을 하게
됩니다 아편 전쟁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사실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의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편 전쟁과 거의 동시에 일어납니다 1850년에 태평천국의 난 이생이
일어납니다 그 사실 이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인데이 태평천국의 난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야지 청이 극복을 하면서 진압을 하면서 동치 중공으로 근대화로
본격적으로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었는가를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거고
그러니까 개항을 하고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거기에 저항하는 태평천국의
난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조선에서는 동학이라는 것이 일어납니다 굉장히
비슷한 상황이 삼국에서 또 벌어집니다 우리가 이런 맥락 속에서 동학을 이해를
해야지만 조선의 역사를 근 세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어 태평천국의 난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임무를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모색해 보는
한국인의 탄생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악]
===

세진님, 요청하신 강좌 19회 내용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나를 향하지 않은 본문(요약 및 평론)은 <해라> 체를 사용하고, 각 사실적 정보에는 출처 각주를 붙였으며 강조 기호는 < >로 표기했다.

<아편전쟁은 왜 일어났나?> 요약 및 평론

1. 내용 요약

강좌 19회에서 함재봉은 동아시아 근대사의 판도를 뒤바꾼 아편전쟁(1·2차)의 경제적·외교적 배경과 그 경과, 그리고 원명원 파괴라는 문명사적 비극을 다루며, 이 전쟁이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 향방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1) 무역 역조와 아편의 이식: 보스턴 차 사건부터 아편 밀매까지

  • 영국의 차(Tea) 소비와 은(銀) 유출: 18~19세기 영국에서 차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19세기 연 2,800만 파운드 수입) 대중국 무역 적자가 극심해졌다. 영국의 차 수입 대금으로 쓰인 남미산 은(銀)이 청나라로 쏟아져 들어가며 중국은 '전 세계 은의 무덤'이 되었다. (미국 독립혁명의 기폭제가 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 역시 동인도 회사의 이러한 차 무역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아편 밀매와 임칙서의 결단: 무역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인도산 아편을 청나라에 밀수출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아편 수입량이 10배나 늘고 인구의 10%(군인과 관료 포함)가 중독되어 재정과 사회가 마비되자, 도강제는 임칙서를 광동에 파견했다. 임칙서는 1839년 아편을 몰수하여 전량 폐기했고 빅토리아 여망에게 도덕적 서한을 보냈으나, 영국은 이를 빌미로 1839년 11월 1차 아편전쟁을 일으켰다.

(2) 1·2차 아편전쟁과 비극적 전개

  • 1차 아편전쟁과 난징조약(1842년): 청나라 팔기군의 무력함 속에 참패한 청은 2,100만 달러의 보상금 지불, 홍콩 할양, 5개 항구 개항, 관세 주권 포기, 치외법권 인정 등을 골자로 하는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했다.

  • 2차 아편전쟁과 원명원(圓明園) 소실: 조약 이행을 둘러싼 갈등과 에로호 사건(1856년), 프랑스 샤프델랭 신부 처형 사건이 결합하여 영·프 연합군이 베이징으로 진격했다. 청군의 협상단 고문·살해에 분노한 영국 사령관 엘긴(Elgin) 백작은 1860년 동양 예술의 극치이자 자금성의 5배 규모였던 황실 궁전 <원명원>을 3일 밤낮에 걸쳐 약탈하고 불태웠다. 당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는 이를 "두 강도(영국과 프랑스)가 저지른 야만적 도둑질"이라며 격렬히 비판했다.

(3) 베이징 조약과 동아시아 3국의 엇갈린 운명

  • 함풍제의 사망과 동치중흥: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외국 공사의 베이징 상주와 아편 합법화, 추가 개항이 허용되었다. 피서산장으로 도망쳤던 함풍제가 충격과 추위 속에 사망하자, 서태후와 공친왕이 쿠데타를 일으켜 보수파를 제거하고 약무운동(동치중흥)을 개시했다.

  • 동아시아에 준 교훈: 일본은 청나라의 허무한 무너짐을 목도하고 1853년 페리 제독 방문 시 저항 없이 개항(메이지 유신으로 직행)한 반면, 조선은 아편전쟁의 문명사적 함의를 깨닫지 못한 채 청나라에 의존하며 쇄국을 고집하다 늦게 개국하게 되었다.

2. 평론: 제국주의의 야만성과 한반도 근대사의 복선

강좌 19회는 아편전쟁을 단순히 '중국이 오랑캐에게 당한 불행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19세기 세계 자본주의 상업 네트워크와 동아시아 3국의 근대화 운명을 가른 '문명사적 대전환점'으로 정밀하게 해부한다.

첫째,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탄에 대한 직시이다. 대영제국이 자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한 국가의 인구를 마약에 중독시키고, 이를 막으려는 정당한 조치에 무력으로 대응했던 역사를 세계 경제 체제(차-은-아편의 삼각 무역) 속에서 선명하게 입증했다. 빅토르 위고의 편지를 인용하여 서구 문명이 자랑하던 '문명화'라는 명분 뒤에 숨겨진 약탈과 야만성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둘째, '원명원 파괴'라는 문명사적 상처의 맥락 규명이다. 자금성보다 훨씬 화려했던 약무·휴양의 공간 원명원이 영·프 연합군에 의해 상실된 사건을 부각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국인들의 '치옥의 100년(백년국치)' 서사와 서구에 대한 깊은 불신의 사상사적 기원을 매끄럽게 설명해 낸다.

셋째, 정보 해석 능력이 가른 동아시아 3국의 상반된 선택에 대한 통찰이다. 동일한 '아편전쟁'이라는 충격을 접하고도, 일본은 이를 자강과 즉각적 개항의 계기(메이지 유신)로 삼았던 반면, 조선 지배층은 세계 정세의 대변혁을 직시하지 못하고 유교적 명분론에 가려진 쇄국을 고집하다 주도적 근대화의 골든타임을 놓쳤음을 서늘하게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함재봉의 19회 강연은 아편전쟁이 단순한 외국과의 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를 전근대에서 근대의 격랑 속으로 강제로 끌어당긴 거대한 문명적 폭풍이었음을 입증한다. 이 전쟁이 남긴 충격과 교훈을 어떻게 해석했는가가 향후 한·중·일 3국의 근대 성패를 가른 결정적 분수령이었음을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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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9회

<아편전쟁은 왜 일어났나?> 요약 + 평론

이번 19회에서 함재봉은 아편전쟁을 <영국이 중국에 마약을 팔기 위해 벌인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통념에서 출발하되, 그것만으로는 전쟁의 전모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그의 핵심 관심은 <왜 영국은 중국과 무역갈등에 빠졌고, 왜 청은 그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어떻게 무너졌는가>이다. 강의는 무역구조, 동인도회사, 차와 은, 아편, 산업혁명, 임칙서, 난징조약, 제2차 아편전쟁과 원명원 파괴까지 한 흐름으로 설명한다.

요약

1. 아편전쟁은 동아시아 질서를 뒤집은 사건

함재봉은 먼저 아편전쟁을 단순한 중국사 사건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근대 질서와 근대 국제질서가 충돌한 결정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명·청 교체도 동아시아에 큰 충격이었지만, 아편전쟁은 차원이 달랐다.

이번에는 중국이 또 다른 동아시아 세력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군사·경제·법적 질서를 가진 서양국가에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함재봉은 이것을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 조선 사람들에게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충격>이었다고 표현한다.

2. 출발점은 영국 동인도회사와 세계무역

전쟁을 이해하려면 먼저 국제무역구조를 보아야 한다고 함재봉은 말한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와 아시아 무역에서 막대한 권한을 가진 회사였다. 단순한 상사가 아니라 군대와 행정력까지 가진 준국가적 조직이었다.

영국은 중국과의 교역을 확대하면서

차,
비단,
도자기,
약재

등 중국상품을 대량으로 수입했다.

특히 차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강의 2쪽에서 함재봉은 17세기 말에는 영국의 차 수입량이 작았지만 18~19세기로 가면서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설명한다. 차는 영국인의 생활문화 자체를 바꿀 정도로 중요한 소비재가 되었다.

3. 문제는 영국이 중국에 팔 물건이 없었다는 점

중국인은 영국제품을 별로 원하지 않았다.

반면 영국인은 중국상품을 계속 사고 싶어 했다.

그래서 무역수지가 중국에 유리하게 기울었다.

영국은 중국에 은을 지불해야 했고, 막대한 은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다.

함재봉은 당시 중국이 세계적인 <은의 흡수국>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이 무역불균형을 영국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핵심 문제가 된다.

4. 처음에는 목화가 해결책이었다

영국은 인도에서 생산한 목화를 중국에 판매하려 했다.

중국의 면직물 산업과 연결되면서 일정한 시장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역적자를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가장 수익성이 높은 상품으로 아편이 등장한다.

5. 아편무역의 확대

아편 자체가 19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약재로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동인도회사를 중심으로 아편이 대규모 상품으로 조직적으로 생산·유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팔고,

중국에서 받은 은으로 차를 사고,

그 차를 영국과 유럽에 판매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즉,

<인도 → 아편 → 중국 → 은 → 차 → 영국>

이라는 삼각무역 체계가 형성된다.

함재봉은 동인도회사의 수익 중 상당 부분이 중국과 아편무역에 연결되었다고 강조한다.

6. 중국에서는 아편중독과 은 유출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다

18세기 말~19세기 초 중국에서 아편 소비가 급증한다.

함재봉은 일부 지역에서 인구의 상당수가 아편을 사용했다고 설명한다.

사회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편중독이다.

다른 하나는 은의 흐름이 역전되었다는 점이다.

전에는 은이 중국으로 들어왔는데 이제는 아편값을 지불하기 위해 중국의 은이 해외로 빠져나간다.

이것은 청나라 재정과 경제에도 심각한 부담을 준다.

7. 임칙서의 등장

도광제는 아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칙서를 광동으로 파견한다.

함재봉은 임칙서를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는 청나라의 부패한 관리들과 달리 강력하고 원칙적인 관리였으며, 아편을 단속하기 위해 상점과 창고를 폐쇄하고 외국 상인들에게 아편을 모두 넘기도록 요구했다.

1839년 임칙서는 몰수한 아편을 호문에서 대량 폐기한다.

강의 4쪽에서는 이 장면을 아편전쟁의 직접적 발화점으로 설명한다.

8. 함재봉은 임칙서에게 상당히 공감한다

함재봉은 임칙서가 영국 빅토리아 여왕에게 편지를 보내

<당신 나라에서는 해로운 아편을 금지하면서 왜 중국에는 파느냐>

는 취지로 항의했다고 소개한다.

여기서 함재봉은 아편전쟁의 도덕적 성격을 분명히 인정한다.

영국이 아편을 팔기 위해 무력을 행사한 것은 <도덕적으로 매우 나쁜 전쟁>이었다고 평가한다.

즉 이번 강의는 영국을 정당화하려는 강의는 아니다.

9. 그러나 영국과 청의 충돌은 단순히 아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함재봉은 문제의 층위를 넓힌다.

영국은 중국과

정상적인 외교관계,
상업거래,
법적 보호,
항구 접근

을 원했다.

반면 청나라는 광저우 중심의 제한된 무역체제를 유지했다.

영국 상인은 중국의 일반인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없었고, 특정 상인조직과 제한된 지역을 통해서만 거래해야 했다.

함재봉은 여기서

<중화질서의 제한무역체계>
vs.
<서구의 자유무역과 조약체계>

가 충돌했다고 본다.

10. 제1차 아편전쟁

1839년 긴장이 전쟁으로 확대된다.

영국 해군과 청군의 군사력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함재봉은 이때 청나라의 대규모 군대가 전혀 상대가 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팔기군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 있었고, 영국은 증기선·근대 함포·조직된 해군력을 가지고 있었다.

의병과 지방군이 용감하게 싸운 사례도 있었지만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청은 패배한다.

11. 기선의 실수와 청의 외교적 혼란

강의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청 측 협상대표 기선의 사례다.

그는 영국과의 협상에서 홍콩 양도 등 중대한 조건을 사실상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청 조정은 이를 문제 삼아 기선을 처벌한다.

함재봉은 이를 청의 외교·정보·의사결정 체계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사용한다.

협상과 중앙정부의 판단이 서로 연결되지 못했고, 일관된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다.

12. 난징조약

1842년 청은 영국과 난징조약을 체결한다.

함재봉은 이를 <불평등조약의 출발>로 설명한다.

주요 내용은

홍콩 할양,
상하이 등 추가 개항,
배상금,
관세 자주권 제약,
영국 상인의 활동 확대

등이었다.

이후 치외법권 등 서구 열강의 특권도 확대된다.

13. 조약의 의미를 청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함재봉은 여기서 자신의 반복적인 주제를 다시 꺼낸다.

청은 근대적 국제조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조약은 한번 강요받아 서명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법적 의무를 발생시키는 문서다.

그러나 청의 관리들은 외국과의 조약을 전통적 외교문서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함재봉은 비판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약속한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기존 통제정책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14. 제2차 아편전쟁

제1차 전쟁 이후에도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함재봉은 1850년대 태평천국운동과 겹치면서 청나라가 더욱 약해졌다고 설명한다.

1856년 <애로호 사건>이 제2차 아편전쟁의 계기가 된다.

영국은 중국 관리가 영국 국기를 모욕하고 조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군사행동에 들어간다.

함재봉은 이 사건에서 영국 측 주장에도 상당한 억지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즉 제2차 아편전쟁 역시 서구 열강의 강압적 팽창과 밀접했다.

15. 프랑스까지 참전한다

프랑스 선교사 처형사건을 계기로 프랑스도 영국과 함께 참전한다.

1857년 말 영·프 연합군은 광저우를 공격한다.

이후 북쪽으로 진격하여 톈진 조약을 강요한다.

중국은

외국 외교관의 베이징 주재,
항구 추가 개방,
선교활동 확대,
외국인의 이동 확대

등을 받아들이게 된다.

16. 청이 다시 조약을 거부하면서 전쟁이 재개된다

청 조정은 체결한 조약을 제대로 이행하려 하지 않았다.

함재봉은 이것을 다시 <근대 조약질서를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한다.

영·프 연합군은 1860년 다시 북경으로 진격한다.

이 과정에서 다구포 전투, 포로 억류와 고문, 영·프 연합군의 보복이 이어진다.

17. 원명원 파괴

강의 후반부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루는 사건이다.

영·프 연합군은 북경 근교의 원명원을 약탈하고 파괴한다.

함재봉은 원명원을 단순한 황실 별궁이 아니라

중국예술,
건축,
보석,
정원,
동서양 예술교류

가 집약된 엄청난 문화유산으로 설명한다.

원명원의 파괴는 중국인들에게 지금까지도 깊은 역사적 상처로 남아 있다.

함재봉은 이 약탈을 명백한 문화적 야만행위로 비판한다.

18. 빅토르 위고의 비판

함재봉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원명원 약탈을 강하게 비판한 편지를 소개한다.

중국 원정에 참가한 군인을 축하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위고는 영국과 프랑스를 <두 도둑>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함재봉은 이를 통해 서양 내부에서도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 존재했다고 강조한다.

19. 원명원 파괴는 중국의 근대적 역사기억을 만든다

원명원은 단순한 과거 유적이 아니다.

오늘날 중국에서

<서구 열강에게 당한 치욕>
<백년국치>
<국가가 약하면 어떤 일을 당하는가>

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함재봉은 중국 사람들이 왜 지금도 아편전쟁과 원명원에 강한 감정을 갖는지를 이해하려면 이 역사적 기억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20. 동치중흥과 중국 근대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운동 이후 청 내부에서도 변화가 시작된다.

동치제 시기부터 서양의 무기·기술·제도를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강의 마지막에서 함재봉은 이를 이후의 양무운동과 연결한다.

즉 아편전쟁은 중국을 무너뜨린 사건이면서 동시에 중국이 근대화를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기도 했다.

21. 일본과 조선에 끼친 영향

함재봉에게 19회의 진짜 목적은 여기 있다.

중국이 영국에 처참하게 패한 것을 본 일본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일본은

<우리도 문을 열지 않으면 중국처럼 된다>

는 인식을 강화한다.

그래서 1853년 페리 내항 이후 비교적 빠르게 개항한다.

반면 조선은 아편전쟁의 충격을 알면서도 여전히 중국을 통해 세계정세를 보았고, 적극적으로 근대질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함재봉은 평가한다.

이 차이가 이후 일본과 조선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평론

이번 19회는 상당히 균형이 좋은 편이다.

함재봉은 아편전쟁을 단순한 <자유무역의 승리>로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국이 아편이라는 해로운 상품을 군사력으로 중국에 강요했고, 원명원을 파괴한 것은 명백한 제국주의적 폭력이었다고 분명하게 평가한다.

그럼에도 그는 동시에 청나라의 문제도 본다.

<제한적 광저우 무역체제>
<근대 외교제도의 부재>
<조약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
<군사기술 격차>
<정치적 의사결정의 혼란>

등을 함께 설명한다.

이 점은 좋다.

다만 역시 함재봉 특유의 구도가 나타난다.

<서양은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고 있었다>

<청은 낡은 중화질서에 머물러 있었다>

라는 대비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자유무역이라는 말만으로 당시 영국의 요구를 중립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영국이 요구한 자유무역은 군사력, 식민지 인도, 독점회사, 아편이라는 구조와 결합되어 있었다. 즉 <근대 국제질서> 자체도 처음부터 평등한 질서가 아니라 제국주의적 권력관계 속에서 형성되었다.

또 <청이 조약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설명도 조금 조심해야 한다. 문제는 단순한 지적 무지가 아니라, 청이 군사적 패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조약을 국내정치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복합적인 문제였다.

그래서 아편전쟁을 가장 정확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의 산업·무역 팽창과 아편경제, 청의 제한무역체제와 중화적 국제관, 압도적인 군사력 격차가 충돌하면서 발생한 전쟁이며, 그 결과 중국은 강제로 서구 중심의 조약체제에 편입되었다.>

함재봉의 중요한 통찰은 이 사건을 <중국의 패배>에 그치지 않고 <일본과 조선이 같은 충격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했는가>로 연결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19회는 <한국인의 탄생> 전체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앞선 강의들이

<청은 왜 강해졌는가>
<조선은 왜 주자학적 정통에 더 매달렸는가>

를 설명했다면,

19회부터는

<서양이 동아시아에 들어왔을 때 중국·일본·조선은 각각 어떻게 반응했는가>

라는 비교가 본격화된다.

다음 태평천국 강의까지 보면 함재봉이 중국의 위기와 일본의 메이지유신, 조선의 동학을 어떻게 하나의 19세기 동아시아 위기구조 속에서 묶는지가 더 분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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