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1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0 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0 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나? 

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나?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0회
법률방송
54,733 views  Feb 5, 2025  #한국인 #조선 #사이비종교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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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다룬 아편전쟁에 이어 동아시아 근대사를 바꾼 또 하나의 사건인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홍수전에 의해 시작된 이 사건은 단순한 난이 아니라 근대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청이 어떤 변화를 선택하는지 알 수 있는 변곡점이 되었는데요. 또 그 중심에는 후난 지방의 한 서원이 자리합니다. 별 연관이 없어 보이는 태평천국과 서원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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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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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
있니다 지난 시간에는 그 아편 전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는데요 태평천국 에나는 1차
앞편 전쟁이 일어난 1842년 그리고 2차 앞편 전쟁이 일어난 1860년 딱 중간쯤 되는
1850년에 어 일어납니다 사실 아편 전쟁이 일어나고 태평 천국의 난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청나라는 완전히 무너질 그런 위기에 처합니다
근데 지난 시간에 아편 전쟁이 어떻게 어 결국은 마무리가 되었다는 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은 어떻게 보면은 어 외부의 적하고 어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특히 내부로부터 반란 어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나면서 청이 그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사실은 어 놀랍습니다 아무도
그 정도의 저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 놀랍게 그 힘을
다시 모아서 완전히 몰락해 가고 있었듯한 나라가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편 전쟁이 끝나고 어 태평천국의 난을 어 평정을 하면서 그
동치중흥이라는 어 양무 운동으로 들어가면서 근대화에 그 과정을 겪게
됩니다 오늘은 어 태평천국의 난 어 동학란 어 또는 동학 농민 운동하고
굉장히 유사한 시대적 배경과 사상적 배경과 국제 정세의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어 난입니다 그래서 조선에 미쳤던 직접적인 어 영향도 있지만은
어 나중에 조선이 동학을 어 대하게 되는 그런 부분에서도 보다 깊은
이해를 도망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 청은 아편 전쟁을 겪고
어 정말 그 체제가이 근대 국제
체제랑 맞닥뜨리면서 휘청하고 있는 사이에 또 1850년에 어 태평천국의
난이 어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내우 외환 있니다이 태평천국의 나는 홍수전이
사람이 어 일으키죠 홍수전은 학가 그러니까 객가 출신이죠 우리가 객가
그러면은 황하에 살던 사람들이 이제 자꾸 남아를 해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사람들인데 광동성 광주 어 북쪽 30km 있는 조그만 마을에서 어
태어납니다 굉장히 공부를 잘했고 야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14살 때
먼저 과거를 한번칩니다 광 주현 이제 그 현에서 근데 이제 나가서 낙방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또 공부를 해 갖고 9년 후인 1836년에 또 한번 응신 하는데
역시 또 낙방을 합니다 근데 이제이 두 번째 그 과거를 보기 위해서 광주에 머무는 동안에 이렇게 길을
지나가다가 외국인 선교사가 막 그 설교하는 거를 어 이제 듣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듣고 그 그 사람들한테 그 설교하는 사람한테 권세
양언이란 아홉 권짜리 기독교 소책자를 봤습니다 권세 양원이 걸 보면은 어
양원이 제가 봤을 때는 복음이란 뜻인 거 같습니다 가스펠을 저렇게 번역을 했었던 거 같은데 아무튼 근데이 권세
양언이라는 것은 그 초기에 그 중국 선교에 나섰던 모리슨이 로버트
모리슨이 유명한 선교사가 있습니다 정말 여러 중국의 여러 도시에 가서 그 당시에 초기에 굉장히 성공적으로
어 선결을 를 어 했던 사람입니다 여기 그 이제 로버트 모리슨의 전도로
중국에서 최초로 개신교 목사가 나오는데 그중에 한 사람이 양발 파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근데이 사람이
1832년에 써서 출판한 그 그 책이 기독교 서적이 권서 양언 있데 이제
이거를 홍수전이 산 거죠 그러니까 과거 처 치러갔다가 과거는 떨어졌는데
지나가다가 누가 이제 설교를 하고 있고 있으니까 가서 듣고 이제 나눠주는 책자를 이제 받아 갖고 이제
온 겁니다 1837년 이제 세 번째 과거를 또칩니다 근데 또 떨어집니다
완전히 이제 지쳤 세 번이나 10년에 걸쳐서 세 번 쳤는데 이제 다
떨어지고 완전히 이제 그 탈진을 해 갖고 집에 돌아와서 이제 환각 증세에
시달립니다 며칠 동안 그리고 언제 혼수 상태 빠집니다 근데이 혼수 상태
빠져 있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이제 환영을 보는 거죠 그니까 꿈을 꾸는
건지 환영을 보는 건지 그럽니다 그때의 꿈속에서이 환영 속에서 자기가 하늘로 올라가서 오장육부를 완전히
새롭게 받고 그리고 완전히 순결한 존재로 자기가 다시 태어난 그런
환영을 봅니다 그리고 또 금색 수염을 한 노인이 나타나서 홍수전 왕족을
표시 표시하는 칼 이런 거를 주면서 네가 나가서 세상에 악을 어물리 치고
세상을 바린 길로 인도라 자기한테 명령을 했답니다 그래서 꿈속에서 어
홍수전은 그이 할아버지의 명령대로 우주를 돌아다니면서 이제 악령들을
물리치고 이제 악을 상대로 전쟁을 버립니다 성전을 버립니다 근데 그때
이제 꿈결 자기 옆에 누군가가 어떤 중년의 남자가 이렇게 가끔
따라다니기도 하고 그랬는데 자기가 꿈속에서 생각하기를 아이 사람은 나의
형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답니다 환각 증세에 시달리다가 이제 다시 깨어나서 이제 건강을 회복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6년 후에 1843년에네 번째 과거를 참이
사람도 끈질기다 이제네 번째 과거를 보기 위해서 어 이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때 이제 과거를 보러 가기
직전에 6년 전에 그때 사놨던 권세 영원이란 책이 그때 사놨던 거가
생각이 나서 그거를 꺼내서 그걸 보기 시작을 한답니다 그래서 그거를 보면서
그때의 6년 전에 자기가 혼수 상태에서 꾸었던 그 꿈을 기억을 해냅니다 홍순이 뭐를 그때 깨냐
men 꿈속에서 나타난 그 금빛 수염을 한 그 할아버지가
여호와 하나님이고 그리고 내 형인 거 같다라고 중년의 남자가 나를
따라다녔다고 했는데 그 형 남자는
나의 임무는 세상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섬기게 하는 것이다라고 믿게 됩니다이 사람이네 번째 과거를 보러 가기 전에
6년 전에 사는 책을 읽고 옛날 6년 전에 던 꿈을 다시 기억하면서 그러고
나서 이제 가서 시험을 쳤는데 과거를 쳤는데네 번째도 또 낙방으로 돌아옵니다 돌아와서는 이번에는 다시
과거 준비를 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자기가 세례를 주고 그리고 자기 절친한테 친구한테도
세례를 줍니다 그러고 나서는 10년 동안
자기 마을부터 시작해서 광동성 광서성 여기를 계속
돌아다니면서 전결을 합니다 근데 내용이 재밌습니다 유교를 배척을 합니다이
청나라도 만주족이 세운 거기 때문에 이거는 이적이 세운 거라서 악의
나라로 규정을 하고 청나라도 거부를 합니다 1849년에 부친상을 당하고는 아예
만주식 변발 있죠 변발을 거부를 해버립니다 그러면서 1850년 6월에
광동화 광시성 광동 광서성 기근이 덮칩니다
이때에 드디어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킵니다 처음에 난을 일으켰을
당시에는 사실 한 만 명밖에 안 됐답니다 그리고 계림을 공격을 하지만
이제 실패를 합니다 그러면서도 세를 점점 모아가면서 1851년 9월에
광성의 용이라는 데서 자기 자신을 천황이라고 이제 어 천 왕이라고
칭합니다 1853년이 되선 드디어 태평천국군이
우한을 함락시키고 양장각 유역의 주장 구강이 안경 남경 전강 양주 차례를
함락을 시킵니다 1853년 3월에 대서는 경을 난징을 태평천국의 수도로
선포하고 그다음부터 남경을 수도로 해서 태평 천국이 10년 동안 갑니다
53년에 왕을 칭하고 남경에 도을 정하고 10년 동안이니까
1863년 가는 거죠 그러니까 1848년에 1차 편 전쟁이 일어나고
53년에 태평천국의 난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1860년에 제 2차 하편 전쟁이 일어나고 63년에 가서야 태평천국의 난이
진압이 됩니다 베이징을 함락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청군이 간신이
막아냅니다 그렇지만 1850년에 60년 10년 동안 평천
국군이 어디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남경을 중심으로 한 양자강 그렇죠
장강 유역 강남 농법이 일어난 가장 비옥한 곡창 중에 곡창 그러면서 그
때문에 중국 경제가 초토화가 됩니다 자 그러면이 난이 어떻게 진압되는 이게
참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까지 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다시 중원을
하는 거 같지만 역시 청은 일본 같은 완전한 근대화를 같 가지 못하고
실패하는 그 원인도 사실은이 태평천국의 난의 진압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사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거는 팔기군이 아니었습니다 앞편 전쟁을 할 때에도 팔기군이라는 거는 아무 역할을 못 합니다 그 용맹의고
그 중원을 제패했던 그 팔기군이 불과 중원 제패한지 한 200년 지나고
나서는 아무런 힘을 못 쓰는 그러한 오합 지절 전락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팔기군 이외에 중국
한족들을 동원했던게 노경구이라고 있었는데 그것도 정규군 있니다이 팔기군 노경은 태평천국 의 연전
연패를 해버립니다 그러면 누가 이거를 하느냐 하느냐 태평천국 난을 누가 지압을 하느냐 대부들이 합니다
조선에서 임진 외란이 일어나든 무슨 동란이 일어나든 했을 때에 동네
양반들이 들고 일어나서 의병을 일으켜서 격퇴하고 왜적들을 격퇴하다이
태평천국군 테 유린당하는 지역에 대부들이 의병들을 일으켜서 향토를
일으켜서 맞서기 시작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실은 태평 정국
난이 진압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지금의
후난성 대부들이 일으킨 그 군대 그 군대가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을 합니다
훈 한에는 상강이 어 상강이 강이 있어 샹장이라는 강이 있고 거기에
상탄 현이라는 데가 있는데요 그 지역에 사대부들이입니다이 상장 유역은
전통적인 곡 곡창이었습니다 쌀을 많이 재배해서 거기서 이제 양자 강으로
흘러갔고 양주 이런 데에다가 이제 쌀을 팔고 그러면서 굉장히 분홍이
많이 생겼고요 그래서이 사람들이 이제 애향심이 굉장히 강한데 사실
자기네들이이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중국 사람들의 원조라 그럽니다 왜냐면 전설에의 하면은 요순 할 때 순임금의
왕비가 된 요임금의 딸 둘이 있었는데 아황 아고 여영 있었는데이 둘이이 상
의 수호신이라 그럽니다 그래서 자기네가이 사람들은 이지역 사람 자기네가 중국인의 원조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또 이쪽 지역의 사족 사대부들이 유난히 보수적인 주자
성리학자들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상강 지역에이
사대부들의 서원이 있었는데 그 서원이이 악록서원 예루 서원이라는
서원이 있었습니다이 서원이 태평천국 을 진압을 하고 청을 다시 세워서
양무 운동까지 동치 중음까지 끌고 가는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전부 다 한
서원에서 나옵니다 악록서원이란 한 서원에서 저는이 대목을 볼 때마다 무슨 생각이 나냐며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조슈아의 사무라이들이 소가 촌
주구 요시다 쇼인의 조그만 촌 합격 촌 숙해 다 자한 같이 공부 동문
수학했던 한줌의 인물들이 메이 주신을 일으킵니다 청에 부흥을 가져오는 동치
중흥을 일으키고 양무운동을 일으키는 그 핵심 세력은 전부 다 악록서원
출신이고이 사람들이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을
합니다 어떤 나라를 세우고 나라가 중흥을 하고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필요한게 아니라 뜻을 모을 수 있는 정말 한줌의 사람들만 있어도 나라가
일어날 수가 있고 무너지고 있던 나라가 중흥을 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이
악록서원이 중국 근대사에서 하는 역할을 굉장히 주목을 하고 이거를 빼놓고 나서 우리가 중국의 근대사를
논할 수가 없습니다이 악록서원 북성의 태조 그니까 송 태조조 조강윤
16년인 976회 백록동서원 숭양서원
응천부 서원 그리고 록 서원까지
합쳐서 천하 4대 서원이라고 읽었었습니다이 악록서원 가장 유명했던
학자가 장식이라는 주자의 주시의
절친이었다 악록서원 와서 자기 친구인 장식하고 성리학에 대해서
경론을 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이 훈한 사람들은 악록서원
거두였던 장식이 절친 주자와 함께 그 성약을
했다라는 이런 전통에 대해서 무한한 어 긍지를
느끼면서 자기의 학파 주시하고 자기 장식 이름을 따서 주장 학을 어 만개
시켰던 그 서원이다 이런 자긍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근데 사실 청 말에
이을 때까지 그 이후로는 록이 별다른 임무를 배출하지 못합니다 록 서원이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이 바로 태평 천국에 난 때문입니다 마침 악록서원는
18세기 말부터 시작해서 경세학이 제대로 된 경세학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실제로 국가의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런 유체 유용 지학 몸체가 있고 내용이 있고 그죠 쓸모가 있는 그런
학문을 해야 된다라는 학풍 불면서 악록서원이 거기에 이제 앞장을 쓰기 시작하 하면서 굉장히 실질적인
학문들을 합니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 이제 분홍이 있으니까이 분홍이 악록서원 보내서 공부 시키면서
그리고 과거에 급제를 해서 중앙 조정의 대신들이 되면은 재정적으로 여러 가지로 끈끈하게 지원을 해
주면서 대신이 된 다음에도 자기 고향 하고에 끈끈한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막강한 어 그 네트워크을 이제 어 형성을 하기 시작하고이
과정에서 걸출한 인들을 배출하기 시작합니다 우선 악록서원이 배출했던
인물 중에는 바로 태평 천국에 난을 평정하는 증국번 그죠 증고 이홍장의
스승이 이홍장의 이장을 불러서 어 그 태평천국의 안에 같이 그 진압에 같이
참여하게 만들면서 이장을 끌어올린 사람이 중국입니다 그 중국의
스승이면서 경의 거두로 장영이 사람이 있습니다이 사람은 가뭄이 들어갔고 어
대운하가 막히고 그랬을 때 그 운하로 수송대 야 되는 그 엄청난 물 물자들을 갖다가 바다를 통해 갖고
수송하게 만들 하는 등 정말로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이런 일어나고 있던
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대학자이며 어 신화가 있었 있었습니다
또 그다음에 어 도주 타오주 아는 또 유명한 개혁가가 있었고요 어 어
우리한테도 잘 알려진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해국 도지는 책을 쓴 위원이라는
사람도 바로 악록서원 출신입니다 위원의 해국 도지는 책은 청나라 중국
사람으로서 최초로 해양 방어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외적은 저 내륙으로
터 오는게 아니라 바다로 이제 올 것이다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해군을 길러서 해양 방어를 해야 된다라는
책을 쓴게 그게 위원이고 그 책이 해국 도지데이
개화파의 태두인 박규수가 그 책을 들여와서 서울의 자기 집에서 북촌의
자기 집에서 김옥균 박영효 이런 나중에 개화파가 되는 그런 젊은
사대부 지안 자재들을 불러 갖고는이 해국 도지를 가르쳤었다 그럽니다 그
해국 도지를 쓴 사람 위원도 바로이 악록서원 있니다 그러니까 한 서원에서
참 놀라운 사람들이 어 나오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초기에
난을 평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호리 믹 어 초대 주영 천국 대사를
하는
곽도라에몽 까 청나라에 망하니까 명실 방에서 홍광제 그랬죠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캄보디아 월람 쯤에가 갖고 이제 남명을 세웁니다 왕부지
학자는 젊어서 여기에 그 남명을 가담을 합니다 그런데 내부 분열로
멸망해 버리는 거를 보고서는 상탄 돌아와서 악록산 기술계 들어가서
은거를 하면서 책 읽고 저술하는 걸로 여생을 마칩니다 40년 동안 중국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명이 왜 망했을까 명이 멸망한 이유가 무엇일까 이거를
정말로 깊이 들어가면서 정말로 심오한 저술들을 많이 합니다 근데 문제는
워낙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저술이 사실 제대로 남아 있는게 그때 없었다
그럽니다 그러니까 종이하 붓을 이런 걸 빌려 주잖아요 그럼 그걸 갖고 쓰고 나서는 그 자기가 쓴 거를 그냥
그 빌려준 사람들에 줘버리고 그랬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관한게 없었다 그럽니다 자 그런데 애향심 강하고이
악록서원 대한 프라이드데이 엄청 강한 이제 소원들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그중에 이제 등현 아이라는 사람이 어 있었는데 1839년 됐을 때에 어느
날 두 젊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 중에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내가
왕부지 집계 손인데 우리 그 할아버지의 저술들을 엄청 많이 갖고
있는데 이거를 록 서원에서 당신들이 좀 다시 인쇄를 해 줄 수 없겠냐고
모든 사람들이 왕부지 저술은 다 사라져서 없어졌었다 걸로 했는데
갑자기 엄청난 양의 저술들을 갖고 나타난 거 그니까 자기가 써 놓고 나서는 두지는 않고 다 나눠줬다는 거
아닙니까 받은 사람들이 그걸 다 보관을 하고 있어 갖고 이제 후대까지 계속 내려왔던 거죠 그래서 그때에 악
서원에 있던 사람들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부지의 저술들이 쏟아져 나온 거예요 여기서 우리가 해야 될게
왕부지 저술이 없어진 거는 자기가 가난해 없었던 것도 있지만은 사실
청나라가 명나라의 충성을 끝까지 하면서 청에 저항했던 사람들의 저술들을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다
없애 버립니다 청이 그러니까 본인도 저술을 안 남겼고 그냥 써서 나눠
주은 것밖에 없고 있는 것마저도 사실은 대부분 청에서는
자꾸 없애려 그러는 거죠 다만 하도 중요한 학자가 몇 가지 남아서 수록을
청도 갖고 있었지만은 그 대신에 반청 요소들은 이제 싹 빼버린 굉장히
순화시킨 이제 그런 작품들만 남아 있었던 거죠 이게 이게 우리가 중국사를 중국의 지성사를 이해하고이
악흑 선과 훈한 학파를 이해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뭐냐면은
제가이 사고 전서는 거를 씁니다 사고 전라는 거는 중국 최대의
백과사전입니다 1773년에 1781년 사이에 중국의
제자 백가 시대부터 하여튼 중국의 글로 쓰여진 모든 학문을 완전히
하나로 묶겠다는 엄청난 작업을 한게 사고 전설입니다 총서 특히 학문을
사랑했던 건재가 즉위 직후부터 전국에서 희귀하거나 특이한 책들을
전부 다 모으기 시작하고 예를 들어서 전국 관리자한테 명을 내려 서 네가 지금 다스리고 있는 지역에 중요한
책들 다 해서 올려라 새로운 이제 말하지면 도서관 같은 거를 이제 만들기 시작하는 거죠 그러다가 권제
전 이걸 다 모으면서 갑자기 무슨 생각을 했냐면 그전까지는 중국 최대
백과 사전이 명예 3대 황제인 영락제가 만들었던 영락 대전이라는
엄청난 또 백화 사진이 있었습니다 140 2년에서 1907년에 걸쳐서
269명의 한림원 학자들이 함께 참여해서 편찬을 했는데 그것도
그때까지 중국의 모든 학문을 집대성한 겁니다
2,27 7권 목차만 6권에 달했다 그럽니다 유교의 고전 역사 제도 예법
법전 군사 철학 불교 도교 천문 수학 지리 의학 중국에 있었던 모든 거를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을 그러니까 뭐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저리가라는
영락제가 이미 명나라 때 엄청난 걸 만들었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영락제가 만들어서 여러 부를 찍어서 배포를 한게 아니라 어떡 한 겁니까 몇 부 안 만듭니다 그리고 다
황실에서 보관을 합니다 명이 망하고 어떻게 하는 과정에서 전부 다
유실되고 딱 한부만이 간신이 그래도 남아 있었습니다 근데 이것조차도
굉장히 오류가 많고 그래서 제가 아 내가 이런 거를 영락 대전을 수정
보안을 해야 되겠다 그러지 않아도 새로운 학문들과 이런 거를 다 모으기 시작하는데 이제이 두 가지가 합쳐지기
시작하면서 아 영락 대전을 완전히 수정 보완해 갖고 제대로 된 걸 한번 만
만들겠다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서 그걸 이름에서 사고전서 아고 이름을 봅니다
중국의 모든 책을 경전 역사 철학 문학 이렇게네 부분으로 나눈 거죠
그래서 영락 제전을 수정 보완한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합니다
1773년에 1782년 거의 10년 동안 책을
모으고 수정 보안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이 모아서 교정을 보고 복사를
하는 과정이 1792년 그러고 나서는 전국에서 엄선된 명필
1400명을 불러가지고 각자 하루에 자씩 본에 대한 필사를 시킵니다
36천 권에 470만 쪽에 이르는 그야말로
놀라운 백화 사전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영락 대전의 규모에 세부에
달한다 그랬어 그런데이 사고 전설 만드 데는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바로 뭐냐면 아까 말씀드렸던 그겁니다 명을 칭송하고 청을 부정하는 그러한 일체의 책들을
없애버리려고 했던 거죠 사실 그러니까 전에서 걸 올려라고 하는 미명에 사실은 자기네가 봤을 때 불원
서적들을 제거를 시키려는 그런 의도가 거기에 같이 있었던 겁니다 강희재 옹정제 자기까지 오면서 정말 강건의
치세 놀라운 중흥의 부흥이 일어나고 세계 최강국이 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도 청을 부정하는이 한족들이 있어 명예 충성해 이런 거가 이런 거
이제 굉장히 분노를 했었던 겁니다 그때에 사고 전서에 책을 모을 때도 이래요 내가 너희들 야단 안 칠테니까
불런 적까지도 올 려라 근데 그렇게 해서 0을 내려가고 칙령을 내려 갖고 불런 서적들 올리라고 그랬더니
6개월이 지났는데 단 한 권도 안 올라 오더랍니다 그러니까 이제 권제 이렇게 신령을 내립니다 명말 비방과
유원 비어 이단을 담고 있는 불법 역사서들이 쓰여졌다이 중에는 우리
청조의 비판적인 것도 많았다 이러한 것들이 발견될 경우에는 완전히 없애
버림으로써 이단이 퍼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랬더니 어떻게 됩니까 1774년
엄청나게 이제 불런 서적들이 쇄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때에 수많은 책들이
모아져서 그중에 2,900 종의 책들이 불태워진 그 불태워진 2900
종 중에는 왕부지 저서도 아홉 정이나 포함돼 있었습니다 사고 전서에네
개인가 왕부지 저술이 수록은 됐지만 그거는 불런 색채 싹 빼버린 그런
것들만 실었던 거죠 그러면 1839년에 왕세정이라는 왕부지
대선이 왜 갑자기 악록서원 나타나느냐 이때쯤이면 분위기가 바뀌는 거죠 왜
바뀌는지 아세요 사고 전서를 완성을 하고 나니까 거제가
영락 전설을 능가하는 정말 중국 최고의 백화 사자를 만들어내는 걸
보고는 중국의 모든 사대부들이 그냥 걸 능주 테 항복을 합니다 그러고
나니까 건제 자신도 명예 충 충성했던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합니다 전에는 명예 충성하고 청에
반대했던 사람들은 다 역적이라 그랬었는데 이제는 두 임금을 섬긴 신하들이 아니다 오히려 충절이
가상하다 그래 갖고 아 역시 주자 성리학의 정신에 의하면 끝까지 충성하는게 아름답다 비록 내 왕조는
반대를 했지만 역시 한 인공을 끝까지 섬긴게 그게 얼마는 정신이다 이제 이렇게까지 되는 거죠 끝까지 명예
충성했던 왕부지 고연무 황종희 이런 사람들이
다시 복권이 되고 청 나라에서도 조정해 인정하는 국사의 유림 장의
유림으로 제대로 된 학자로서 이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왕부지
후손들이 아 이제 우리의 육대주 할아버지의 그 책들을 이제는 좀
내놔서 출판을 해도 되겠구나 싶어서 숨 숨겨놨던 것이 드디어 나와서 악에
이제 가져오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이 얘기를 왜 이렇게 당황스럽게 말씀드리면요이 부지가 악록서원
사람들한테 중요했던 것뿐만 아니라 그 자기네 이제 조니까 그런데
사실은이 사람들이 부지의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라는게 뭐냐면요
명나라가 여진족이 오랑케 테 유린을 당하고 있을 때에 악록서원 숨어서
우리가 어떡하면 명을 지킬까 아니면 왜 명이
망했을까 어떻게 제대로 된 나라를 다시 세울까는 거를 평생을 고민하다가
돌아갔는데 자기네가 지금 태평천국의 난 때문에 청이 흔들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고민하는 지식인으로 고민하는 것과 너무나도 겹치기 시작합니다
똑같은 고민을 합니다 그래서 굉장한 호소력을 갖기 시작을 합니다 왕부지
그러면 왜 명이 무너졌느니 무너졌고 특히 예가
무너져서 그랬다고 사실 전형적인 성리학적인 해석입니다 예가 무너져서
명이 망했었다 이서원의 학자들도 자신들도 난세를 극복하는 길은 예다
밖에 없다 그럽니다 그러면서 예법을 알아야 된다 그래 갖고 특히 예기를
중시를 합니다 근데 이게 왕부지이 얘기를 중시를 합니다 근데 정말로 재밌는게 뭐냐면요
얘기는 주자가 주석을 잘지 않은 유일한 경전입니다 얘기에서 한 장인 대학 거기에 또 한
장인 중형을 떼어내서 사서 중에 만든 거죠 노노 맹자 대학 중형이 대학고
중 얘기에서 나온 겁니다 그런데 예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줄을 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 왕부지 명나라가 망한 이유가
주자성리학고 양명학 같은 것 때문에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군다나 얘가 무너져서 나라가
망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붙잡고서 거기에 그렇게 많은 공부를
그 쏟아붓습니다 그래서이 모든 거를 록 서원에서
드디어 출판 작업을 합니다 제 1차 아편 전쟁이 발발한 직후에
1842년 책 15권으로 구성된 선산 유서가 출판이
됩니다 근데 사실 여기에도 왕부지 예에 대한 가장 깊은 연구 있는 예기
장구는 그거는 포함이 안 됩니다 성리학이 그 주류인 상황에서 불 서
이것까지는 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이 선산 유소가 나온지 10년이 안 돼서 불에
탑니다 태평천국의 난이이면서 태평천국군 손에 불리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간신이 양록 서원에서 그거를 출판을 했더니 태평천국군 일어나서 어디로
옵니까 탄으로 쳐들어옵니다 그래서 서원을 덮칩니다 그래서 그때에 악
그 서원들이 곽도 증국번
좌종당 나중에 중국을 일으 다시 청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그때에 쳐들어오는
태평정 국군을 피해서 왕부지 예기 장구 서를 들고서 악록산 산속으로
숨어들어 가지고 자기 앞에서 금 악이 불태워지고 가 간신히
만들었던 그 목판 선산 유서가 불타는 장면을 목격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때이 사람들이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 해야겠다 우리의 정신적 지주인
왕부지 그때 고민했던 모든 고민 그때 당하고 있던 시대 상황이 지금 우리의
시대 상황 똑같다 우리가 나서야 되겠다 그러면서 악록서원이 나서면서 드디어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을 합니다 1852년 9월
태평천국 군이 창사 바로이 악록서원 이의 창사로 쳐들어옵니다
그때에 학자였던 악록서원 출신이었던
곽성도는 좌종 좌종당 형제와 함께 악록산 피신을 합니다 여러분 좌종
좌종당 누구냐 면은 나중에 신장 위구 회복하는 청의 영토인 그 신장 구루를
만들어내는 완전히 청의 걸로 그 복속시키는 그게 그 사람이 바로
좌종당 있니다이 사람도 바로 악록서원 출신이고 나중에 초대 주영 대사를 지내이 곽도 다 기기들입니다 그까
정말 대단한 사람들을이 서원에서 배출했던 거죠 그니까 아무튼 고향에 가서 있다가 지금 태평이 들어오니까
급히 산속으로 숨어들었던 그러면 순도는 왜 거기 있었냐면
1847년에 진사시에 그니까 진사 시라는게 최고입니다 중국에서는 최고였고 한림원 학사가 된다 한림원
학사는 거는 중국의 과거에서 최고 중에 최고 복입니다 그래서 장원급제
같은 겁니다 그래서 한림원 학사가 됐었습니다 그런데 모친상을 당해서
마침 고향에 내려와 있었던 거죠 태평 정군이 들어오니까 거기에 같 와 있었던 좌 좌종당이 좌종 친구들 하고
같이 이제 피신을 어 갑니다 그래서이이 좌시 형제들은 바로
작업하던 책 몇 권을 들고 간신이 곽성도 뒷산으로 악록산 피신을 하는
거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제 눈앞에서 악록서원이 유린을 당하고 어 선산 유서의 목판이 다 불태워져
버리고 그럽니다 그러면서 이때 산속에 숨어서
곽승은 그 좌시 형제가 가져온 그 왕부지 저자 예기 장구를 탐독을
합니다 40년 후에 1890년에 어 그 책을 쓰게
있습니다 곽가 거기 기질의라는 책의 서문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써놨습니다 1852년 나는 난을 피해서 산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생을 마칠 것을 확신하고 왕부지 예기 장구를 읽으면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말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 장를 읽으면서
명이 청에 멸망 멸해 가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던
그 왕부지 지금 청이 태평 정국에 유린당하고 있는 모습을 대비를 하면서
진짜 어 시공을 초월해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자기 스승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유루산 속에서 숨어서 한 달을 지냈는데요 드디어 창 수도에서
종한 사람을 보내고 보고 와서 창사 방어를 도와달라 그럽니다 그래서
곽도 좌종당 설득해서 가라 그러고 자기는 근데 산속에 남습니다 그래서
1850년 겨울에 결국은 태평천국군이 창사 창자를 하락한데 실패를 합니다
그래서 북쪽으로 기술을 돌려 버리니까 그때에 곽도은 산속에서 나와서 선남
쪽에 있는 상향이라 대로 향합니다 근데 거기 왜가 냐면요 자기의
한림학사 동기 같은 악록서원 출신인 증국번이 모친상을 당해서 거기에 또
와이스 고향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자기같이 그런데 이때에 바로 중청의
조종에서 중국 번보고 뭐를 부탁한 상태였 면은 향토 그을 모집해서
태평천국군 하고 싸 싸워 달라고 청 조종이 중국본 부탁을 하는 상태였어요 근데
중국본 진짜 독실한 주자 성리 학자로서 모친 상을 당했는데 내가
무슨 나가서 전쟁을 하느냐 라면서 조정의 명을 거역을 하고서 나 모르겠다 그러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곽성도 그래서 찾아가는 겁니다 물론 문상도 가는 거지만 친구의 문상도가 갖고는 중국 번의 아버지한테 가서
그래요 아버지한테 가서 지금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달렸는데 지금
모친상 때문에 나가서 나라를 위해서 싸우지 못하는 거 말이 됩니까
아버님의 아들을 설득하시오 그래 갖고 결국은 국번을 설득을 합니다 그래서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향토 그을 조직을 하겠습니다 바로 상탄
현의 그 향토 그을 조직을 하는 거고 그것이
상군이라는 태평천국의 나을 평정하는 군대가 되는 겁니다 1852년 10월
청 조종이 중국본 테 방판 호남 달련 이라는 이제 직위를 주면서 중국
중부의 향토를 조직하라는 조직을 내립니다 그래서 그 상군이 하는 것이이 상탄 현의 상강 유역의 상탄
현의 그 상자입니다 자 근데 이게 왜 중요한
거냐면요 주자 성리학적 전통에 의하면 가장 강한 군대는 향토 있니다 의병이
의병 그 지역의 대부들이 그 지역민들을 이끌어서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군대라고 생각을 했죠 그런데 청의 입장에서는 뭡 청은 팔기군고 노경근
갖고 있었지 않습니까 향토 그이 생긴다는 건 뭐냐면 만주족이 다스리는
한족의 사대부들이 자기 고향에서 군대를 일으키게 되는 거죠 그럼
어떻게 됩니까 이게 커지면 당연히 청하고 맞설 수가 있는 거죠 원래는
청이 들어서면서부터 철저하게 향토 그을 못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니까
사대부들이 자기 고양하고 관계를 갖는 거를 어떻게든지 끊으려 그랬던 거죠 아까
그 훈한 사람들이 유난히 애향심이 강하고 한림 학사까지 높은 사람이 된
사람들까지도 끊임없이 연결을 해고 연결을 하고 악록서원는 저렇게 곽성도 됐든
중국보이 됐든 과거 급제를 하고 했던 사람들 끊임없이 고향에 내려오고 그랬던 사람들이죠
그러니까는 사실은 절대로 지역에 강한 기반을 갖고 있고 중앙정부에서 높은
최고의 관직을 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청 조정이 군대를 조직하라 할 이기가 없습니다 평상시 같으면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태평천국군 앞에서 아무런 힘을 못 쓰니까 청 조정이
정말로 다급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사는 방법은 향토관 의병
사대부들에게 고향의 군대라도 일으켜서라도 싸워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하면서 그중에 가장
자기네가 믿고 정말 괜찮다고 생각한 증국번 테 그 부탁을 하는 거고요
증국번 마치 모 진상이라고 못 하겠다라는 거를 같은 악록서원 동기이고 같은 한임
학사인 곽성도 와서 돌아가신 거 슬프고 그렇지만 나라를 살립시다
그래서 조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태평 천국 난 또는 아편 전쟁 때도
자꾸 지역의 유지들이 의병을 조직해서 영국군 하고도 싸우고 태평 정국하고 싸우고 그랬다는 건 그런 건 항상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거를 훨씬 더 큰 차원에서 자금 면에 있어서 중앙
조종에 지원을 받으면서 그래서 그때에 세금까지 거둘 수 있는 권한까지
줍니다 중국한테이 금세라도 그걸
가지고이 상문을 조직을 하고 일으킬 수 있게끔
어 만들어집니다 학원에서 서원에서 동문 수학했던 학지 이연 혈연이
끈끈하게 뭉쳐져서 막강한 전투력을 과실을 합니다
상군이 연전 연승을 하면서 태평 천국을 무찔러 나가기 시작을 합니다
근데 이제 상군이 것도 사실 한 동네 중국권이 자기 고향 사람들을 동원한
건데 이제 전쟁이 오래 가면 갈수록 자꾸 거기도 이제 부상자도 나오고 전사자 나오고 그러니까 점점 힘이
약해지니까 그다음에 중국본이 누구한테 갔느냐 하면은 자기 한림학사 동기의
의 아들인 이홍장이 젊은 친구한테 갑니다 사실
이홍장이 할림 학사가 되고 난 다음에 정부가 형편 없이 지금 아무것도 못
하니까 정부의 관직을 그만두고 증국번 자기 아버지 친구한테 갑니다 저한테
일 좀 주십시오 그랬더니 그때 중국보이 이홍장 복고 뭐라 그러냐면 너 지금 내가 상군 조직하는 거
봤지 너 고향인 안희성 가서 똑같이 조직을 해 그래서
이홍장이 자기 고향의 안휘성 가서 중국보이 하는 거랑 똑같은 방식으로
안휘성의 향토 그을 만듭니다 그거를 회군이 그럽니다 그래서 유명한 회군이
생기는 겁니다 그 회군이 뭔지 아세요 그게 북양군이 되는 거고 그
북양군이 나중에 원 세계가 북양군 원수가 되는 거고 중국의 군벌 시대로
들어가고 하는데 아무튼 북양군 원조가 되는 군을 만드는 것을 중국보이
권장을 해서 상군 만드는과 똑같이 만들게 하는 거죠 그래서 그 회군을
가지고 이홍장이 또 한쪽에서 그쪽에서 태평 천궁을 무찔러 나가고 특히
영국의 고든이라는 사람을 고용을 해서 영국식 근대 군부대를 하나 만듭니다
고든이 다 훈련을 시키고 모든 무장을 하면서 영국의 첨단 무기로 무장을
하면서 회군 하고 군하고 같이 싸우면서 연전 연승을 합니다 그래서
하두 연전 연승을 해서 회군 밑에 있는 서양식 군대의 이름이
상승군 끊임없이이기는 군대 영어로에 victorious 아미라는 거가
생겨납니다 그러면서 이때에 이홍장고 중국보이 처음으로 서양
무기의 위력 서양식 군대 훈련의 위력 이런 거를 배우면서 나중에 태평
국난이 평정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양무운동을 시작할 때 서양식의 그
모든 거를 들여오면서 기기창 만들고 군함들 만들고 대포들 만들고 하는
것이 서양 것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서양의 무기 체계를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버릴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갖고 어 태평 정국의 난을 평정을 합니다 거의
이제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해 가는 마지막
전투였습니다 중국 번의 동생 중국 전이 상군 3만 명을 이끌고 난징 어
태평 국군의 수도였던 난징을 이제 공략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 난중에는 태평 국군이 30만이 남아 있었고 그
소주로 태평정 국군의 지원군 20만 명이 또 오고 있었습니다 그니까 3만
명이 이걸 공략하는데 이제 양쪽으로 포가 될 아주 절체 명의 순간이 되는 거죠 이럼 급한 상황에서
중국은 지금 아직도 악록서원 선산 유서를 다시 발간을 하는 작업에
대해서 그 작업을 주도하고 있었던 구양 조이라는
후배한테 편지를 보내요 뭐라 그러냐면 내 동생 중국전이 왕부지 전수를 출판한 작업을
도와달라고 나한테 그랬다 그래서 자기는 물론이고 후난성 출신
지도자들이 전부다 이 비용을 대기로 했다 기쁜 소식을 전한다 그러면서
편지를 보냅니다이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전투를 하고 있는
중에서도 자기 스승과 자기 서원과 자기
학문에 근간이 되는 거를 다시 인쇄를 하는
문제를 고민을 하고 그거에 대해서 서신을 주고받고 그럽니다 선산 유소의
재발간 진행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만큼이 증국번 숭도 좌종당이
사람들은요 나라를 지켜내야 되는 건 당연히 군사력이 그거 못지 않게
우리가 지키려는 문명이 어떤 문명이고 그 문명의 좌표가 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거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전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승의 책을 출 하는
얘기를 앞에 수십만의 적군이 쳐들어오고 있는데도 그런 편지들을
주고받고 할 수 있었던 그런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2년에 걸쳐 난징
포위 작전이 1864년 6월에 끝나고
홍수전이 자살을 했다는 설도 있고 뭐 병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64년에 홍수도 죽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7월에 중국 중국의 동생
중전이 지하는 상군이 난징에 진입해서 태평천국군 난 백성들을 모두
사람으로서 태평 천국에 나는 평정이 됩니다 이번 시간에는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저는 그 모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어 송하
향숙 그 조슈번의 조그만 시골에 조그만 학교에서 나온 한줌의 학생들이
주신을 일으켰습니다 저 시골에 불과했던 후난성의 있는 탄현에 있는
악록서원 이름이 다 쓰러졌던 그 서원에서 동문 수학했던 몇 명
사람들이 무너져가는 청을 다시 일으킵니다 편 전쟁을 종결짓고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을 하고 그리고는 중국 이홍장이 서태후 같이 신유 정변을
일으켜서 청을 개국을 시키면서 근대화로 급격히 몰고 가서 양무운동을
하고 동치 중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는 사람들이나 동치 중을 중국에서 청에서
일으킨 사람들이나 배경이나 그 그 구조가 너무너무너 비슷합니다 그런데
메이시는 일본을 근대화로 이끌었고 중은 끝납니다 그
차이는 악록서원 출신들은 어디까지나 유학자들이 청 주류의
주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유교가 갖고 있는 모든 가능성은 다
쥐어 짜냅니다 태평천국의 난을 결국은 유교적인 사대부들이 의병을
일으켜서 무찌르는 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봤을 때는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하는 악록서원이 사대부들은 유교
체제가 갈 수 있는 끝까지를 갔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은 근대의 파오를
넘지 못합니다 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정도로 나라를 다시 되살리는 듯
했었지만 결국 가서는 어 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체제에 정말 어 마지막
마지막의 가능성을 쥐어짜서 영향을 발휘해 보고 스러져가는 그러한
모습이었다고 어 생각을 합니다이
과정을 일본이 어떻게 보고 그리고 조선이 이걸 어떻게 봤는지 굉장히
중요합니다 어떻게 그 과정을 이해를 했고 세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저는
조선이 나가는 정 역할 하는데 박교수 같은 사람은 이거를 이해를 했습니다 그지만
대부분의 조선의 조정과 사대부들은이 부분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태평천국의 난과 유사한 동학 난이 일어났을 때에 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그런 역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 사건과 임무를
통해서 한국인의 정성을 탐구해보는 함봉 한국인의
탄생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음악]
뵙겠습니다 Ah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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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나?> 요약 및 평론

1. 내용 요약

강좌 20회에서 함재봉은 19세기 중반 청나라의 체제를 뿌리째 흔들었던 태평천국의 난(1850~1864년)의 기원과 전개 과정, 그리고 만주족 정규군(팔기군)이 아닌 후난성(호남성) 악록서원(嶽麓書院) 출신 사대부 지식인들(증국번, 좌종당, 곽송도 등)이 주도한 성리학적 향토군(상군·회군)에 의해 반란이 평정되는 중흥과 한계의 역사를 해부한다.

(1) 홍수전의 환영과 태평천국의 성립

  • 과거 낙방과 기독교의 변용: 광동성 객가(학가) 출신 홍수전은 과거 시험에 거듭 낙방(4회)한 후, 로버트 모리슨의 전도 책자 <권세양언>과 혼수 상태에서 본 환영을 결합하여 자신을 '여호와의 둘째 아들이자 예수의 아우'로 착각하는 신앙 체험을 했다.

  • 반청·반유교 폭동과 남경 점령: 홍수전은 만주족 청나라를 오랑캐이자 악의 축으로, 유교를 배척 대상으로 규정하고 '배상제회'를 조직했다. 1850년 광서성에서 일어난 태평천국의 난은 1853년 곡창 지대인 남경(난징)을 점령하여 수도로 삼으며 10년간 청나라 경제와 체제를 초토화시켰다.

(2) 악록서원(嶽麓書院)과 상군(湘軍)의 등장

  • 정규군의 무력화와 사대부 의병의 출현: 청나라 최고의 정규군이었던 팔기군과 녹영군은 아편전쟁에 이어 태평천국군에게도 연전연패했다. 이에 상강 유역의 성리학적 거두이자 악록서원 출신인 증국번, 좌종당, 곽송도 등이 지역 공동체를 수호하기 위해 의병(향토군)인 <상군(湘軍)>과 <회군(淮軍)>을 창설했다.

  • 왕부지(조경) 사상의 부활: 이들은 명청교체기 끝까지 명에 충성했던 학자 왕부지(선산)의 <예기장구>와 성리학적 '예(禮)' 사상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왕부지의 서적을 인쇄·발간할 만큼 유교적 질서 수호에 목숨을 걸었다.

(3) 진압과 '동치중흥(양무운동)'의 시작

  • 상승군과 태평천국의 파국: 증국번과 이홍장은 영국인 고든(Charles Gordon)의 용병대(상승군) 등 서구의 선진 무기와 체제를 접목하여 1864년 난징을 함락시키고 태평천국의 난을 완전히 평정했다.

  • 동치중흥의 유교적 한계: 서태후와 결합한 증국번·이홍장 세력은 이 성과를 바탕으로 <양무운동(동치중흥)>을 단행했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일본의 '쇼카촌주쿠(松下村塾)' 세력처럼, 중국은 '악록서원'이라는 단 한 줌의 사대부 엘리트 집단이 무너져가는 청나라를 일으켜 세웠으나, 성리학적 주류 질서 자체를 부정하지 못했기에 근대화의 완전한 성공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2. 평론: 유교적 체제 역량의 극대화와 근대적 한계

강좌 20회는 태평천국의 난을 단순한 '사이비 종교의 농민 반란'으로 축소하지 않고, 동아시아 3국이 서구 문명의 충격을 맞이하여 내부 체제를 개조해 나가는 사상사적 지형 속에서 분석한다.

첫째, '악록서원 사대부'라는 지적 네트워크의 역할 재발견이다. 일본 메이지 유신의 인적 기반이 되었던 요시다 쇼인의 '쇼카촌주쿠'에 비견하여, 청나라 말기 동치중흥과 양무운동을 주도한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곽송도, 위원 등이 모두 후난성 <악록서원>이라는 단 하나의 사상적 학파에서 배출되었음을 입증했다. 이는 한 사회의 거대한 전환이나 중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 줌의 지적 엘리트 결사체에 의해 주도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둘째, '왕부지 사상'과 성리학적 주체성의 재평가이다. 증국번과 상군 지도부가 난징 포위라는 절체절명의 전란 속에서도 명말청초의 학자 왕부지의 <예기장구> 판본을 출판하고 탐독했던 에피소드를 통해, 이들이 단지 군사적 무력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유교적 예(禮)와 정통성'이라는 강렬한 사상적 신념으로 뭉쳐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셋째, 유교 체제가 도달할 수 있었던 '최종 한계선'의 제시이다. 함재봉은 악록서원 사대부들이 무너져가던 청나라를 구원하고 양무운동을 이끈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성리학이라는 유교적 틀(중체서용)에 갇혀 있었기에 무사 계급을 해체하고 전면적 개혁으로 나아간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달리 근대화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었음을 엄정하게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함재봉의 20회 강연은 19세기 중반 기독교적 오판이 낳은 내부적 대란(태평천국의 난)을 성리학적 자강(상군)으로 극복해 낸 청나라의 역사적 궤적을 해부함으로써, 훗날 한반도에서 일어날 '동학농민혁명'과 이에 대한 조선 위정자들의 대응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결정적 비교사적 열쇠를 제공한다.

===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0회

<태평천국의 난은 왜 일어났나?> 요약 + 평론

이번 20회는 아편전쟁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함재봉은 태평천국의 난을 단순한 대규모 농민반란으로 보지 않고,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가 내부에서 어떻게 무너질 뻔했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엘리트·군사조직·근대화 노선이 등장했는가>라는 문제로 다룬다. 동시에 홍수전이라는 종교적 지도자와 증국번·이홍장 같은 유교적 사대부 엘리트를 대비시켜, 청말 근대화의 두 가능성을 보여준다.

요약

1. 태평천국은 아편전쟁과 제2차 아편전쟁 사이에 일어난다

함재봉은 먼저 시간적 위치를 강조한다.

제1차 아편전쟁이 1842년에 끝나고, 제2차 아편전쟁이 1856~60년에 벌어지는데, 그 사이 1850년부터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난다.

즉 청은 서양 열강과 싸우는 동시에 내부에서 거대한 반란에도 직면했다.

함재봉은 이것을 청나라가 거의 붕괴 직전까지 갔던 복합위기로 본다.

2. 홍수전은 과거시험 낙방생이었다

태평천국의 핵심 인물은 홍수전이다.

그는 광동성 객가 출신으로 과거시험에 여러 차례 응시했지만 계속 낙방했다. 이 경험이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꾼다.

강의 1~2쪽에서는 홍수전이 시험 실패 뒤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위기를 겪고 환상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신적 존재를 만나고, 악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3. 기독교 소책자의 영향

홍수전은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중 선교 관련 소책자인 <권세양언(勸世良言)>을 접한다.

강의에서는 이 책이 로버트 모리슨 계열의 초기 중국 개신교 전도와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홍수전은 이 책을 읽은 뒤 과거 자신의 환상을 기독교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둘째 아들>
<예수의 동생>
<세상의 악을 제거하도록 선택된 사람>

이라고 믿게 된다.

이 지점에서 유교적 과거시험 낙방생이 종교혁명가로 변한다.

4. 배상제회와 반청운동

홍수전은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배상제회>를 조직한다.

그는 우상숭배를 공격하고, 유교적 제사와 만주족 지배질서를 거부한다.

1849년에는 청에 대한 반란의 색채가 더욱 강해지고, 1851년 광서성 금전에서 본격적으로 봉기한다.

홍수전은 자신을 천왕이라 칭하고 태평천국을 세운다.

함재봉은 여기서 태평천국이 단순한 종교운동이 아니라

<종교혁명>
+
<반만주 민족운동>
+
<농민반란>
+
<새 국가 건설>

이 결합된 운동이었다고 본다.

5. 태평천국의 급속한 팽창

태평천국군은 매우 빠르게 세력을 확대한다.

1853년에는 양쯔강 유역의 핵심 도시인 난징을 점령하고 이를 수도로 삼는다.

태평천국은 이후 약 10년 동안 난징을 중심으로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청의 통치력이 얼마나 약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본다.

6. 그런데 태평천국을 진압한 것은 팔기군이 아니었다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다.

청나라의 전통 정규군인 팔기군과 녹영군은 태평천국을 제대로 진압하지 못한다.

오히려 지방의 한족 사대부들이 새로운 군사조직을 만든다.

대표적인 인물이 증국번이다.

함재봉은 이 점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중앙정부의 정규군이 실패하자 지방 엘리트가 자기 지역의 사람들을 직접 조직하여 군대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상군이다.

7. 증국번과 악록서원

함재봉은 증국번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악록서원>을 길게 다룬다.

악록서원은 호남의 오래된 유학 교육기관이었고, 주자학 전통이 강했다.

증국번 역시 이 지적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았다.

함재봉은 여기서 뜻밖의 논리를 제시한다.

<태평천국은 기독교적 혁명운동이었지만, 그것을 진압하고 청을 구한 것은 주자학적 사대부들이었다.>

즉 청말의 정치적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전통 성리학의 엘리트였다는 것이다.

8. 악록서원은 단순한 낡은 유학기관이 아니었다

함재봉은 악록서원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곳에서는 주자학을 공부했지만 동시에 경세치용, 즉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을 중시했다.

정치,
경제,
군사,
지리,
수리,
해양

같은 실제 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풍이 있었다.

함재봉은 이것을 조선의 일부 성리학과 대비한다.

중국의 성리학이 모두 공리공론에 빠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용적 국가경영으로 연결되는 학맥도 있었다는 것이다.

9. 위원과 <해국도지>

강의 4쪽에서는 악록서원 출신의 중요한 인물로 위원을 소개한다.

위원은 <해국도지>를 쓴 사람이다.

이 책은 서양의 지리, 해군, 국제정세를 소개하면서

<서양의 기술을 배워 서양을 제압한다>

는 사고를 제시했다.

함재봉은 이 책이 이후 일본 개화파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강조한다.

즉 중국에서 나온 위기의식과 서양 연구가 오히려 일본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10. 청말의 사상적 네트워크

악록서원을 중심으로 증국번, 위원, 좌종당 등 여러 인물이 연결된다.

함재봉은 이들을 단순한 보수 유학자가 아니라 <국가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가진 실용적 사대부>로 본다.

이 네트워크가 훗날 태평천국 진압과 양무운동의 핵심 인력으로 이어진다.

11. 사고전서와 악록서원의 보존

강의 중반에서는 매우 긴 문화사적 설명이 나온다.

함재봉은 청나라가 편찬한 <사고전서>를 소개한다.

이는 중국의 고전, 역사, 철학, 문학 등을 집대성한 거대한 총서였다.

그런데 청 조정은 책을 모으는 동시에 반청·반만주적 내용을 담은 문헌을 삭제하거나 파괴하기도 했다.

악록서원에는 이 과정에서 사라질 뻔한 여러 고서와 학술전통이 보존되었다고 함재봉은 설명한다.

이 부분은 악록서원이 단순한 지방서원이 아니라 중국 지성사의 중요한 보존소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12. 왕부지의 재발견

함재봉은 왕부지도 중요하게 다룬다.

왕부지는 명청 교체기에 활동한 유학자로, 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면서 명 멸망의 원인을 깊이 고민했다.

그의 저술은 오랫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청말 위기 속에서 다시 읽히기 시작한다.

함재봉은 왕부지의 핵심을

<왜 나라가 망했는가?>
<어떻게 국가를 다시 세울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으로 설명한다.

이것이 태평천국과 서양열강이라는 새로운 위기를 맞은 청말 사대부에게 매우 큰 자극이 되었다.

13. 태평천국이 악록서원까지 파괴한다

1852년 태평천국군이 장사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악록서원도 큰 피해를 입는다.

강의 7쪽에서는 좌종당과 곽숭도 등 악록서원 계열 인사들이 서원의 자료와 문헌을 보호하려 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함재봉에게 이것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다.

<기독교적 혁명군이 전통 유교 문명의 지식기관을 불태우고, 유교 사대부들이 그것을 지키며 국가를 구한다.>

그는 이 역설을 강하게 강조한다.

14. 증국번의 상군 창설

청 조정은 결국 증국번에게 지방군을 조직하도록 허락한다.

증국번은 호남 지역의 사대부·농민을 기반으로 상군을 만든다.

이 군대는 기존의 팔기군이나 녹영군과 달랐다.

군인들은 지역·혈연·사제관계로 묶여 있었고, 지휘관에게 강한 충성심을 보였다.

또 지방에서 세금을 걷고 군비를 조달할 권한도 갖게 된다.

함재봉은 이것을 중앙집권적인 청나라가 지방군벌화되는 중요한 시작으로 본다.

15. 이홍장과 회군

증국번의 조직방식을 본 이홍장은 자신의 고향 안휘에서 비슷한 군대를 만든다.

이것이 회군이다.

함재봉은 이홍장이 이후 중국 근대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홍장은 서양식 무기와 훈련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태평천국군과 싸운다.

이후 회군은 북양군으로 발전하고, 청말의 근대군대와 군벌체제의 중요한 전신이 된다.

16. 서양식 군사기술의 도입

태평천국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청의 지방군은 서양식 무기와 훈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함재봉은 특히 이홍장 등이 영국인 군사고문을 활용하고 근대무기를 구매했다고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인 사대부는

<서양의 군사기술이 왜 강한가>

를 직접 경험한다.

태평천국 진압이 곧 양무운동의 실험장이 된 셈이다.

17. 태평천국의 최종 패배

증국번, 이홍장 등의 지방군과 서양식 무기를 갖춘 군대가 태평천국을 점차 압박한다.

1864년 난징이 함락되고 홍수전도 사망하면서 태평천국은 사실상 붕괴한다.

함재봉은 태평천국의 난을 19세기 최대 규모의 내전 가운데 하나로 보고, 엄청난 인명피해를 낳은 사건으로 설명한다.

18. 그런데 누가 청나라를 구했는가

함재봉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태평천국을 진압하고 청나라를 구한 것은

만주족 팔기군이 아니라
<한족 사대부 엘리트>

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증국번,
좌종당,
이홍장,
곽숭도

같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모두 유교교육을 받은 사대부였지만 동시에 매우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이었다.

19. 함재봉이 보는 중국 근대화의 출발점

태평천국의 난 이후 이들이 양무운동을 이끌기 시작한다.

함재봉은 이 점에서 일본 메이지유신과 중국의 양무운동을 비교한다.

흥미로운 것은 두 나라 모두 전통적 엘리트가 근대화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는 사무라이,
중국에서는 사대부가

자신들이 지키던 전통질서의 한계를 깨닫고 서양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20. 조선과의 비교

강의 마지막에서 함재봉은 다시 조선을 끌어들인다.

중국의 사대부 가운데 일부는

<전통을 지키려면 오히려 서양을 배워야 한다>

고 생각했다.

반면 조선의 상당수 사대부는 외부 문물을 배척하며 기존 주자학 질서를 더 강하게 지키려 했다는 것이 함재봉의 평가다.

따라서 그의 질문은

<왜 같은 주자학을 공부한 중국 사대부 가운데서는 증국번·이홍장 같은 근대화 세력이 나왔는데, 조선에서는 그런 세력이 훨씬 약했는가?>

로 이어진다.

평론

이번 20회는 <태평천국의 난>이라는 제목과 달리 실제로는 <청나라를 누가 구했고 중국 근대화의 주체는 어떻게 등장했는가>가 더 중요한 강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함재봉이 성리학을 일률적으로 반근대적 사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선 조선 강의에서는 주자학이 예송논쟁, 명분론, 폐쇄성을 낳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유교 전통에서 증국번·위원·좌종당·이홍장 같은 실용적 개혁가들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즉 함재봉의 실제 논지는

<주자학 자체가 문제였다>

라기보다

<주자학을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했는가가 문제였다>

에 가까워진다.

악록서원은 이 점의 상징이다.

그곳의 사대부들은 전통 유학을 공부하면서도 국가가 왜 망하는가, 해양방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양 군사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이것은 함재봉이 앞서 비판한 조선 후기의 정통주의적 성리학과 매우 다른 모습이다.

다만 태평천국 자체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강의에서는 홍수전의 종교적 환상과 기독교적 이단성이 크게 강조되지만, 태평천국이 그렇게 거대한 대중운동이 된 배경에는 인구 증가, 토지 부족, 세금 부담, 객가와 본지인의 갈등, 광서·광동 지역의 사회불안, 아편전쟁 이후의 경제적 혼란 같은 구조적 요인도 컸다. 이를 더 다뤘다면 <왜 수백만 명이 홍수전을 따라갔는가>가 훨씬 잘 설명되었을 것이다.

또한 증국번·이홍장 등의 지방군이 청을 구한 것은 맞지만, 그 대가로 중앙정부의 군사독점이 약화되고 지방군벌화의 길이 열렸다. 함재봉도 이를 언급하지만, 근대화의 긍정적 계보를 강조하면서 그 장기적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덜 부각한다.

이번 강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오히려 조선과 비교할 때 나타난다.

함재봉이 제시하는 대비는 대략 이렇다.

<중국 사대부>
→ 전통 유학을 공부함
→ 국가 위기를 경험함
→ 현실 문제를 연구함
→ 서양 기술을 받아들임
→ 양무운동

반면

<조선 사대부>
→ 주자학적 정통성 강화
→ 명분론·위정척사
→ 외부 문물 배척

이다.

이 대비에는 상당한 설명력이 있지만, 역시 지나치게 선명할 위험이 있다. 조선에도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개화파와 실학의 계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정확한 질문은

<왜 조선에는 개혁적 지식인이 없었는가?>

가 아니라

<왜 조선의 개혁적 지식인들은 증국번·이홍장처럼 국가권력과 군사·재정 자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는가?>

일 것이다.

그렇게 질문을 바꾸면 함재봉이 계속 강조하는 <사상의 차이>뿐 아니라 국가구조, 권력관계, 국제환경까지 함께 볼 수 있다.

결국 20회의 핵심은 다음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태평천국의 난은 청나라를 거의 무너뜨렸지만, 그 위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전통 유학을 배운 한족 사대부들이 지방군과 서양기술을 결합하여 새로운 국가경영 엘리트로 등장했고, 그들이 이후 중국 근대화의 핵심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함재봉의 관심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 이제 <전통을 버릴 것인가 지킬 것인가>보다 <전통을 가지고도 현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이 질문은 곧 다음 단계에서 중국의 양무운동과 조선의 동학·개화파를 비교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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