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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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봉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이어서 정한론의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정한론이라는 어 일본 내에서 일어났던 어대 정치적 어
외교적 군사적 논쟁이었다 것이었고 그리고 어 동북
아시아 국제질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아주 중요한 어 계기였고
때문에 그 배경을 자세히 살펴봤고요 오늘은 이제 실제로 그 세관 론이
정한론이라는 것이 어떻게 전개가 되면서 어 메이지 정부 최고의 층
내에서 커다란 격돌이 일어났고 격돌이 일어남으로써 결국은 어떻게 해서 어
조선을 당장 정복하자 어 정벌하자는 그 세력이
결국은지고 그리고 정벌 대신 외교로 조선을 열어 보자라는 쪽이 어 그
승리를 하게 됐는가 그내용 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정이 갖고 있는 어
뭐 한국에 대한 조선에 대한 어떠 의미만이 아니라 동목 아시아의 질서 우리가 살고 있는이 근대 국제 질서의
탄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이제
[음악]
시작하겠습니다네 그 정는 우리가 살펴본 대로 어 조선이
아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근대 국가를 설립을 하고 정부와 직제를
모두 다 바꾸고 그러면서 이제 우선 첫 번째로 조선 하고의 관계를 그럼
재설정하지 근대 국가의 관계로 재 설정하자 따라서 1609년에 맺었던
지유 약조를 폐기하고 그 대신에 이제 근대 국가끼리 하는 근대 조약을 맺자
그렇게 결정을 하고서는 이제 조선에 어 사신을 보내 가지고 외관으로 사신을 보내서 새로운 조약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조선에서는 무슨 소리냐 우리 기후 약제 대로만 해야 되지 새로운 방식 다 필요 없다
이러면서 이제 다 거절을 합니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여러 가지로 이제 의논이 분분하며 결국에 가서는 어
일부에서는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이 이거는 우리나라에 대한 모욕이다 우리 사신조 안 받고 이런 거가 있을 수
없다 그러면서 이제 어 조선을 정벌을 해야 된다 이런 논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이제 정한 론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본말로 세카론 이러는데요 자 그러면 그렇게
해서 일어나기 시작한 정한론이 일본 정부의
최고위층을 갈라놓는 그런 계기가 됩니다 메이 주신에 성공하고 어 메이
주신을 일으켰던 그 동지들끼리 어 새 정부를 일으키고 일부는 이와라
사절단이 걸 꾸려서 어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세상을 공부를 하고 10년
전에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재협상을 하고 이제 이런 과정을 겪고 있었고
나머지는 또 남아서 어 국내에서 여러 가지 뭐 폐번 치현 그리고 징병제
도입 등 여러 가지 개혁을 또 이제 이어 나가고 있고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바로이 정론이
일어나면서 일본 내에 남아 있었던 그 정부의 제일 높았던 힘든 사이고 다까
머리가 나를 조선으로 가는 의 임명을 해라 그래서 내가 조선에 가서 어
결국은 협상을 하다가 죽임을 당할 거니까 그렇게 되면 군대를 일으켜서
조선을 정보를 하라 이제 이런 이런 입장을 취하면서 결국은 그 조선
대사에 임명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제 정한 론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일본 정부 내에 또 산조 산네 더미 같은 사람은 급히 외화 그라사
절단으로 나가 있던 대신들 테 이제 전보를 쳐서 큰일났다 빨리 귀국하라
그래서 이제 이꾸라 대신은 물론이고 오쿠보도시미치 기도 다요시 이또
이로이 이런 사람들이 귀국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 귀국하는 장면에서부터
오늘 말씀을 드리고 귀국한 다음에 이제 일어나게 되는이 사이고 측과이
오쿠보 이와쿠라 측의 격돌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보를 받고서는 거기에서 나가
있었던이 우 아고라 사절단 내부에서도 이제 여러 가지 그 이견이 나오기
시작을 하고 사실 갈라집니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거의 2년 동안 같이 해외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국내를 개혁하는 방식 속도 이런 거에 대해서 서로가
이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지 유신을 일으켜서 혁명 동지였던 그 사이들이 갈라지기 시작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때에 더군나나 정한론 아지를 일고 있다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에 대해서 서로가 이제 완전히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기도 다과 역이 본인은
자기가 조선에 대사로 자기를 보내 달라고 했었던 적이 있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기도 같은 사람은 사실은 지금 사고가 가겠다 그래서
정한론을 일으킨 거에 대해서 제가 봤을 때 심정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었고 이와쿠라 또는 오쿠보 같은
현실 주의자들 굉장히 냉철한이 사람들은 지금 그럴 것이 아니다 그럴 시대가 아니라고 이제 어 주장을 했고
그래서 갈라집니다 네 그 이와쿠라 사절 때 내에서도 그래서
사실은 그 세 사람이 따로따로 귀국을 합니다 아해 귀국 날짜까지
바꿔서 서로가 다른 데를 더 들려서 귀국을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참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던 유신 삼거리 갈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조선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정한론을 갖고 어 또 갈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어 조선
하고의 관계가 중요했었다 거고 어떻게 보면 자기네가 앞으로 나갈 큰 외교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가장 중요했던 문제였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자 그래서
구보은 어쨌든 귀국길에 올라서 5월 26일 날 귀국을 하고요 기도는 그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거쳐서 7월 23일 날 귀국을 하고
이와쿠라 이또 히로부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과 스리랑카 사이공 홍콩
상하이까지 거쳐서 9월 13일이나 귀국을 합니다이 먼저 이제 기도하고
쿠보가 귀국을 하는데 기도는 전혀 논쟁에 개입하지 않고
오쿠보도시미치 성원 못 하겠고 그러니까 이제 가지를 않습니다 어 그런데 이와쿠라 9월 9월 달에
뒤늦게 도착을 하고는이 와보라는 도착하는 즉시 뒤늦게 도착하지만 즉시
논쟁이 이제 뛰어듭니다 오버가 이제 그동안에 오쿠보 도시 미치가 자기랑 같이 정한론을 반대하는 사람이었는데
오쿠보도시미치이라는게 그 태정 대신 좌대신 우 대신이 있고 나머지가 상기 그 직책이 있는 사람들만 이제
어전회의이 태정관 회의에 참여를 할 수가 있는데 오쿠보는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고 그 참이라는 호칭은 안 갖고 있 직책 안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나는 차이도 아니니까 난 안 가겠다 사실은 이제 사이고 하고의 관계도 불편하고 그러니까 안 갔었던
건데 그런데 이제 꾸라가 오자마자 자기랑 같이 정한론을 반대할 것이
분명한 쿠보를 당장 참의에 임명을 해버리고 나오시 당 도 그래서
오보도 드디어 이제 태정관 회의에 어 참석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10월
10일 날 쿠보가 드디어 참미 직을 수락을 합니다 그런데 참미 직을
수락할 때 오보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이와쿠라 하고 산조 좌대신 우대신
제일 높은 사람들이죠이 사람들 목숨을 걸고 자리를 수락한다 그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거기에 가면 자기 중고인
사고하고 도를 해야된다는를 알았기 때문에 그 그러면서 태정관 회에
처음으로 참여하는 날 아들한테 써놓고 간 편지에도 이렇게 했습니다 나
말고는이 책임을 질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목숨이 걸린지만 받아들인다
내가 죽더라도 나에게는 영예로운 죽음이 될 것이다 내가 죽은 후 아버지의 애국심을 이어받고 나라의
유용한 사람이 되고 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거라 드디어
오보가 정 회에 참여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딱 정한론의 전선이
형성이 됩니다 이때에 당시에 메이지유신을 같이 일으켰던 조슈 사츠마 이런데 도사
이런 번에 제일 핵심적인 번에 제일 핵심적인 인물들이 다 정부를 같이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 혁명동지 세력이 완전히 반으로 조선을 정해야 된다는 파와
조선을 정벌하기 시 상조하는 그런 8로 경론 이제 정한론을 시작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이 어 벌어집니다 사실 정한론 그러니까 어 국내정치 어 국내
개혁의 문제 거기에 따른 외교 관계의 문제가 되면서 사실은 국가의 정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어 사실 근본적인 논쟁이었다 같은 전통
보수주의자들이 있는 거고 어 오쿠보 기도 특히 이와쿠라 이런 사람들은
2년 동안 이와쿠라 사절단을 되서 해외까지 다 보고 왔습니다이 혁명의 시기에 2년이란 기간 동안 떨어져서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전혀다른 세상을 보고 개혁의 문제를이 중대
문제들을 똑같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사실 거의 불가능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이때부터 어
목숨을 걸고 어 그 그 토론을 합니다 저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과정을
보면음 부터 끝까지 수없이 목숨을 걸고 어 자기가 옳다고 생각을 한
고에서 어 행동으로 옮기고 실제로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습니다 그러면서도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 거에 대해서 양보를 하지 않고 같은 혁명 동지들끼리 경론을 버리고 목숨을
걸면서 토론하면서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합니다 자 10월
14일 날 이제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래서 어 그 자리에서 이제 사이고는
그런 거죠 당신들 없었을 때 이미 8월 달에 다 결정났다 천왕의 재가하지 받았으니까 그대로 다시 나를
조선의 특명 정권 대사로 보내라 말대답을 하고 반 반대 의견을 낼 수 있는 거는 거의 어 오쿠보 밖에
없었던 거죠 쿠보가 안 된다 시기상조다 이제 이렇게 반대를 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때 이제 제일 높았던
산조는 아유 뭐 어쨌든간에 이미 결정이 난 거고 당신들 옮는 사이에
천왕 제까지 받았으니까 그냥 우리 이렇게 가야 된다 그대로 사유 거를 보내야 된다 어 이래 이럽니다
그러면서 쿠보가 아 나 그러면 나는 반대다 근데 내 의견 안 받으면 난
참이 직을 사표를 내다 방금 임명을 했는데 그 저 이와쿠라 임명을 했는데
나 내 던지면서 안 하겠다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막 논쟁이 벌어지니까 그때 오꾸마 오꾸마
시게노부 같은 혁명 동지입니다 오꾸마 나중에 외무 장관까지 하고 우리 저
조선의 그 갑옥 경장 당시에도 외무장관을 지면서 우리랑 굉장히 오랜
관계가 있는 거고이 오마가 오쿠마 시게 노보가 거기에서 하도 격렬하게
눈쟁이 벌어지니까 쿠마가 슬쩍 일어나서 아 사 사실 외국 사람들하고
만찬 약속 있어 나간다 그러니까 사고가 불러 가고 아니 지금 나라에 이렇게 중요한 어 그 논쟁을 하
논의를 하고 하지 당신은 뭐 외국 사람하고 밥 먹다 나간다면서 이제 거기 호통을 치니까 이제 쿠마는 또
찔끔해서 도로 안고 이러면서 진짜 이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기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그날은 이제 경론 버리다가 어 뭐 그만두겠다 뭐 난 뭐 어 가지 마라 뭐 이제 이런
논쟁이 벌어지면서 이제 결론이 안 내고 또 회의가 이어집니다 그래서
10월 15일 날 사고가 이번에는지가 안 나갑니다 자기가 안 나가면서 어
산조 산네 더미 대신한 편지를 보내서 산조는 이제 회의에 나가 갖고 아이
사고가 이렇게 편지까지 오고 그랬는데 안 보낼 수 없다 다 결정하니까 보내야 된다 또 이렇게하는 거죠
그래서 17일 날 그다음에 이제 또 회의가 열립니다 이틀 후에 또 회의가 열립니다 그랬더니 이때는 이보라 옥보
기도 등이 전부 다 사표를 주한테 내버리고 회의에 참석을 안 해버립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오보가 자기가 왜 정한 론에 반대하는지에 대한 장문의 의견서를
써서 보냅니다 근데 저는이 의견서가이 당시에 대
중반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식견 국내정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국제 정세에 대한 그 식견이 얼마나 놀라고 그거를
이용을 해서 그걸 바탕으로 해서 왜 지금 정한론을 안 일으켜야 되겠다는 얘기를 자세하고 일목요연하게 저벅저벅
들어놓은 아주 명 문장입니다 그 부분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론에 관한 오쿠보 도심 미치의
의견입니다 무릇 국가를 다스리고 강토와 인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깊이
숙고 널리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나아감과 물러남 취함과 지킴은
반드시 그 기세를 보아 움직이며 불가함을 보면 멈춘다 치욕을 느껴도
참으며 의리가 있어도 취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 경종을 따지고 시세에
비추어 후일에 크게 기대하는 이유이다 그만해 조선 사절에 대한 논의가 있다
아직 급히 서둘러서 안 된다고 보는 것은 돌아보고 두게 살펴야할 점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취지를 아래에 들었다 첫 번째
이유 황상의 지극한 덕에 의해 천운을 만하여 비상한 공과 업적을 세워
오늘날에 성함을 이루었다고 할지라도 천왕의 친정이 아직 오래되지 않았다
유신한지 지금 얼마 안 됐다 정부의 기초가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또한
일단 번을 폐지하고 현을 설치하는 등 실로 고금에 드은 대변혁이 지금
수도의 상황을 가지고 말하자면 이미 그 일이 마무리 지어진 것처럼 보여도
사방 구석구석에 이르러서는이 때문에 땅을 잃고 생업을 빼앗겨 크게 불만을
품은 도당이 실로 적지 않을 것이다 혹은 반포된 법령의 의미를 오해하고
혹은 조세에 증가하는 것을 의심하여 변방의 어리석은 인민이 쉽게 고무되고
선동되어 소란을 일으킨 일에 일을 막지 못하고 선혈을 땅에 흘린 일이
이미 몇차례나 되었다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첫번째
이유다 수십차례의 농민 전쟁들이 일어나 농민 밀란이 일어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모든게 바뀌고 세금 제도도 바뀌고 이러니까 엄청난 혼란이 뭐 증병 하고 이러니까 굉장한
혼란 일어났었던 거죠 이렇게 국내 상황이 안정이 안 돼 있는데 지금 어떻게 정환을 하느냐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정부의 비용이 이미
막대하여 세비 항시 세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우한이 있다 하물며 지금
재난의 시초를 열어 수만 병사를 외국에 보내게 되면 하루에 거만에 재를 소비하고 전쟁이 오 오래될
때에는 그 비용 또한 막 대질 것이다 혹은 중세를 거두거나 혹은 변제의 보장이 없는
혹은 감당할 수 없는 집회를 대량으로 발행할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외치가 이미 500만
이상으로 상환의 방법에 있어서도 아직 확연한 예산이 없으며 또 예산이 있다고 하더라도 조선 출병해 거로
인해 심의 목적의 차지를 빚어 구제 불가능한 재난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이는 심이 우려할 점으로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이유다 전쟁비용 어떻게 충당할 거냐
이거죠 또 금을 거더라고 지금 그러지 않는데 세금 때문에 난리가 나고 있는데 세금을 또 거냐 아니면 그럼
또 화폐를 만 뭐 뭐죠 경복궁을 권한다고 당백전 하듯이 그렇게 그런
건 안 된다는 거 아는 거죠 지금 우리가 이렇게 급히 모든 거를 바꾸고
새로 투자를 하고 그러하고 그러지 않아도 외국으로부터 돈 빌린게 이렇게 많고 그런데 이걸 상환할 방법도
제대로 없는데 무슨 전쟁을 지금 일으켜 갖고 어떻게 하려 그러는 거냐 그서 두 번째 이유를 대는 겁니다
세번 번째 이유는 다음 거 같습니다 지금 정부가 여러 사업을 일으켜 부강의 길을 꾀하고 있는 대다수의
사업은 수년 후를 기다려 성공을 기대하는 것으로 즉 해륙 문부 사법
공부 개척 등과 같은 여러 사업은 모두 일조일석에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약간의 세월을 두고 순서를 밟아 그 성공을 거두는 것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지금 불필요한 전쟁을 일으켜 헛되이
정부의 심력을 허의 면 지금 창조의 사업이 전쟁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는 것이며 그 성공에 늦고 빠름을
논하자면 수십년의 차이를 낳을 것이며 후일에 이르러 크나큰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이 또한 잘 고려해야 할 점으로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된다는 세 번째 의다 다방면에
있어서 교육에서부터 기관 산업에서 모든데 우리가 투자를 하고 있고 지금 그 들어간 투자는 평화가 유지되면서
그게 열매를 맺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을 줘야 되고 계속해서
꾸준히 투자를 하고 안정과 평화를 유지해 나가야지 된다 근데 지금 전쟁을 일으키자는 거 절대 안 된다
세 번째 이유다네 번째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출입의 총계를 살펴보면
수출에 매년 대략 100만 양의 결핍이 있다 그 결핍은 금화로 상하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금화가 해외에 유출될 때에는 국내에도 국내의 금화도
감소할 것이다 제조 산물은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서 수출 기 때문에
혹은 이것을 제조하고 혹은 이것을 타인에게 운송함으로써 나라 사람이 그
덕분에 금전을 얻어 의식주를 구입할 수 있다 지금 홀연이 전쟁을 개시한다
men 국내의 장정들은 징집되어 근면하게 일래 종사할 뜻이 없어지고
따라서 국내의 산물이 감소되며 또한 선함 전함 어 탄약 총기 군복 등의
대부분을 외국에 의지 하을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더욱 수출입의 비례 큰 차이가 생겨서 국내의 피폐를 심히
조장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네
번째 이유다 산업화를 간신히 시작해서 이제부터 수출을 조금 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항상 수입이 훨씬 더 많다 맨날 무역 적자다 지금 저 무역
적자로 이러고 있고 그리고 일을 해야 될 젊은이들을
갖다가 전쟁터로 또 데리고 나가면 누가 일을 할거요 지금 시장 경제 얘기를 사람이 하는 거죠 여러 사람이
분야에서 일을 하고 생산을 하고 이래 갖고 그래서 각자한테 먹을 것이 돌아오고 이러는이 시장 경제를 우리가
지금 하고 앉아 있는데 여기에서 또 인력을 빼돌려서 전쟁해 한다 절대 안
된다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다섯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외국의 관계를
논할 때 우리나라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상대는 러시아와 영국이다 러시아는 북방에 위치하며 군대를 보내
사할린을 점령하고 있으면서 일거에 남정하늘 그뿐만 아니라 현재 불쾌한 사변이
발생하여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관계가 양호하지 않다 가령 당장에 그 결국에
이르러서 홀연이 국가의 큰 우한을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원래 우리나라에는
독립 불패의 확연한 불가침의 기초가 있기 때문에 후 후일에 그 재난을
피할 수 없음은 세상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바이다 따라서 지금 군대를 일으켜 조선과 전쟁을 한다면 바로 방
지쟁 같은 상태로 러시아는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이는 깊이 주의할
점으로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다섯 번째 이유
이건 외교 안보 정책에 대한 얘기죠 지금 우리가 조선하 전쟁을 일으켜
봐라 러시아가 어떻게 갈 거냐 아마 분명히 조선 편을 들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러시아가 조선을 차지하게 되는 거죠 조선이 고마워 갖고 러시아 편을
들테니까 일본으로부터 지켜 주면은 그리고 러시아하우스 사할린을 점령 이때까지는
아직 사할린 문제가 해결이 안 됐을 때였습니다 지금도 러시아고려인 문제가
되는 북방 사사해 사계 도서 문제 이게 이때부터 이제 일어나는 겁니다
그때 일본의 땅이었던 사할린을 러시아가 이제 차지하게 되면서부터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바로 지금 이때입니다 이때에 그런 일까지 겪고 있는데 러시아가 가만히 안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뭐 조선을 쳐들어 간다고 러시아는 당장 조선 편을 들고서 살린 차지하고 호카이도
차지하고 다 차지할 것인데 지금 전쟁 못 일으킨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입니다 아시아
대륙 중에서 영국은 특히 강성하여 여러 대륙의 식민지를 점유하고 국민을 이주시키고 군대를 주둔하고 함대를
띄워 도연이 뜻하지 않는 변에 대비하여 호시탐탐 아침에 고하면 저녁에 나타나는 기세가 있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의 외체인 영국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지금 우리나라에
뜻하지 않는 재난이 발생하 발생하여 창고 가 비어버리고 인민이 빈약해
빠져 그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게 된다면 영국은 반드시이를 구실로 삼아
결국에는 우리의 내정에 간섭하는 재난을 초래할 것이며 그 폐에는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속히
국내 산업을 일으켜 수출을 증가하여 부강의 길에 전념하여 부채를 상환할 것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이는 실로
현재의 급선무이며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여섯 번째
이유다 러시아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라이벌인 영국이 있는데 영국은 영국은
지금 우리가 모든 돈을 빌린게 다 영국으로부터 빌렸고 우리가 전쟁까지 일으켜서 더 빛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려서 상화 능력이 능력이 없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영국이 들어온다 영국이 이집트를 그런 식으로 식민지를
만들었는데 우리가 힘도 빠지고 빚은 점점 늘어나고 따라서 영국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깊어지면 영국이 지금 여태까지 전 세계 달면서 식민지 만드는 걸 봐 우리 분명히 식민주
된다 영국에 지금 전쟁할 때가 아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일곱
번째입니다 우리나라가 구미 각국과 이미 체결한 조약은 본래 평균을 얻지
못한 것으로 조약 대부분이 독립국의 체제를 잃은 것이 적지 않다 그
때문에 속박을 받고 있으며 이익이 되는 부분에서도 오히려 손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내정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그들의 국민을 보호하는데 부족하다는 구실로 현재
육지의 병영을 설치하여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 우리나라를 보는 눈이
자신의 식민지를 보는 듯하다 아 밖으로는 외국에 대해 안으로는
우리나라에 대해 심이 부끄럽지 않은가 또한 그 조약 개정의 시일이 이미 가까워져 있다 나라의 대신은 심사
숙고하여 그 속박을 풀고 독립국의 체제를 다하기 위한 방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과의 전쟁을 아직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일 번째 이유 1852년에 개국을 하면서 전부 다
불평등 조약을 맺었습니다 관세를 마음대로 먹길 수 없고 완전히 불평등
조을 맺었고 치회 법권 인정을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뭐라 그러냐면 일본에 와서 살고 있는 상주하고 있는
영국 사람들 프랑스 사람들 외국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아예 군대를 지금 보내서 주둔을 시키고 있다 일본에 그러니까는
일본에도 도쿄 한복판에 영국군 군대 막사가 있는 거고 프랑스 군대 막사가
있는 겁니다 나가사키 이런데 항에는 항상 외국 해군들이 들어와 있고요 그러니까 이건 독립 국가가 아니다
우리 아직도 이런 거를 지금 다 재협상을 한다 우리가 이와쿠라 사절단이 나갔던 이유도 이제 불평도
조약을 맺은지 20년이 돼서 개혁 재협상을 해야 되니까 그 재협상을 어떻게 할 건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나가서 공부를 하고 오고 그랬는데 진정한 독립국가로서의 모든 체제를 갖추고 군대를 갖추고 체제 제도를
갖추고 그래야 되는데 안 그러면은 지금 여기 아예 주둔지 하고 있는
영국이나 프랑스가 당장 우리 식민지로 만다 거기 우리 부채 같은게 얼마냐 분명히 이걸 믿기로 해서 우리를
민화를 시킬 것이다 너무나도 정확하게 보고 있는 거죠 너무나도 세상을 정확하게 보는
거고 일본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너무나 정확하게 보고 있는 것이고 일본 내부의 정치경제 사회의 문제 무역의
문제 안보의 모든 문제 국제 정세 모든 거를 꿰뚫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30대 중반에
1870년대 일본의 지도자들이 일했습니다 이렇게 면밀하게 세심하게
모든 거를 보면서 정책 결정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겁니다 자 이제는 정한 눈이 왜 불가한지 일곱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그 일곱 가지 이유가 정한론 정하고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 아니죠 국내
사정 국제 사정 외교 안보 사정 이런 거를 쭉 들면서 지금 어떤 전쟁이든
전쟁을 일으켜서 안 된다는 얘기를 했던 건데 자 이제는 마지막으로 정한 자체가 조선을 쳐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를 내가 또 들겠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습니다 정한이 불가능한 첫 번째 이유 앞에 그래서 이미 조선과의
전쟁을 서둘러서는 안 될 것을 논하였다 여기에서는 바로 조선을 정벌 는 것에
대한 논의에 대해 논했다 조선이 우리의 국에 개의치 않으며 방만하고
무례하게 구는 것은 절대 과할 수 없는 사태이다 그러나 지금 군대를
보내이를 정벌하는 분명한 명분이 없기 때문에 현재 특히 특명 사절을
파견하여 그 접대의 태도에 따라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논의가 있다 지금
조선이 우리나라에 대하는 것과 미국의 사절에 대한 행동을 보면 그 접대가
좋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사절을 보낸다고 한다면 먼저 개전
준비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때는 밖을 정벌하고 안을 지키는 군대를 적어도 10만 이상
모집해야 한다 또한 그 사역에 수반되는 수만 명의 정민을 소집하여
탄약 총기 선함 운송 그 외에 각종 막대한 비용에 대해 미리 예산을
세우기 어렵다 하더라도 지금 이을 대략 계산해 보면 하루에 약 1만
양으로 계산해야 할 것이다 만일 전쟁으로 인해 즉시 이익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액수는 이런
액수를 아마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전쟁 기간이 길어짐에 있어서는 비록 결과적으로 승리를 얻어 혹은
전국을 점령하거나 혹은 화의를 맺어 배상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수년간 항시
군대를 주둔시키는 요소를 지키면서 그들의 위약을 예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욱이 전국을 점령하게 될 때는 반드시 나라의 불평 분자들이 많이 생겨 사방에서 늘 소란 을 일으켜
국도를 보유하는 남은 날이 얼마 없는 지경에 이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벌과 보유에 드는 비용을 계산해 보면 아마도 조선 전국의 물품으로 일을 감당하기에 부족하다 또한
러시아나 중국의 한두 사람의 관료의 약속이나 혹은 무과에 의해서 조선
사건에 간섭하지 않음을 논하고 있지만이를 확증하는 실증이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실증이 있다고 해도 양국
정부는 모략을 꾀해 틈을 타서 그 기세에 편승하여도 뜻하지 않는 재난을 초래하는 일이
있을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앞서 약속을 맺을 때
성명을 요구하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것을 막연히 생각하면서 이해 대하고 있다 졸지에
큰 일을 행하는 것은 장내에 커다한 후회를 알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는 북방에서 우리나라와 인접하고 있으면서
이미 종종 분쟁이 발생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재난을 일으키 이이 실로 접지 않다 따라서 지금 조선의 땅을
침략하여 더욱 러시아와 인접해다면 현재 국내의 형사를 뭐아 논한다면 실로 득체이 아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자세하게 얘기를 듣는 거죠 그 준비는 물론이고 뭐 뭐 10만을 양병을 해야 되는 거고
그것도 후방에서 그거를 다 지원에 대한 수만을 수십만을 또 양성을 해야 되는 거고 그래 가서 전쟁 이긴다
치자 그러면 어떡할 거냐 그 점령을 한다고 그럼 상주 시킨다고 군대를 거기에 그 몇 명이나 상주 시킬 거고
그 사람들 가만히 있을 거냐 처음에 전쟁을 지더라도 뭐 게릴라전 일으키고 그거를 어떻게 감당하라고 언제까지
이게 갈 거냐 결론이 언제 나느냐 아무리 거기 가서 점령하고 세금을 꺾고 뭐 막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치르는 비용에 비해서는 절대 안돼 그리고 이제 더군다나 러시아가 중국이 뭐 지금은 자기네가 뭐 아 가만히
있을 거라는 거 같이 얘기를 하지만 알게 뭐냐 거기 개입하기 시작하면 어떡하냐 여러분 지금 러시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을 해 갖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며칠이면 끝난다고 생각해고 갔던 일
아닙니까 그리고 미국 나토 개입 안 할 거라고 생각했죠 당연히 그래서
들어간 거 아닙니까 지금 2년째 전쟁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경제 완전히 붕괴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전
세계로부터 왕따에서 고립되어 있습니다 다시는 회복하지 못합니다 근데 지금
일본이 지금이 말을 하고 있는 오쿠보 일본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일으켰던
러시아에 비해서 강했으니 절대 아닙니다 오쿠보는 이미 이런 거를 다
내다보면서 지금 우리나라의 입장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조선이 우리나라를 모욕하는 분개를 참아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있으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절에 의해 일어날 바를 살펴보면 지금 특명
사절을 보내서 그 적대가 만일 방만하고 무례하다이를 이후로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확연한 명분을 부유하는
것이므로 정보를 하여 그 죄를 묻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일 과연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명예를 더럽히고
국채에 관련되는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다른 일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현재
국가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인민의 이해를 고려하지 않으며 기꺼이 사변을
일으켜 굳이 물러감 나아감의 기세를 상세히 살피지 않은 것은 실로 양해할
수 없는 점이며 따라서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눈위에 수긍할 수 없는
이유다 여러분 저 푸틴 옆에 저런 사람이 있었어 있어서 그래서 가나서
전쟁을 안 켰으면 아마 지금 러시아 굉장히 잘되고 있을 겁니다 저런
정도의 세상을 볼 줄 아는 눈은 있어야지 나라의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1870년대 19세기 중반에 일본의 지도자 중에 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결국 10월 18일 날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산조 산에이 최고 대신이
어떡합니까 양쪽에서 사이에서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신경 쇠약에
걸려서 쓰러져 버립니다 이것도 드라마입니다 쓰러지니까 그때에 곧바로
웨이지 천왕이 산조의 집에까지 갑니다 문병을 천왕이 직접 갑니다 가서는 뭐라
그러냐면 병세를 보고도 하지만은 그 대신 곧바로
산조가 더 이상 직물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러니까 이라한 시켜서 태정 대신에 역할을
하라 그러라 그러 그러니까 산조 산의 또미가 좌대신이었고 우 대신이 이꾸라
있었던 거죠 좌 대신이 몸이 아프니까 우 대신은 이제 그 자리를 메꾸라 이제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뭡니까 글쎄 메이지가 알았겠죠 굳이 결정을 하라 그러면 이미 결정된 대로이 저 사고를 보내야
된다 조선에 보내야 된다라는 입장을 취어 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해필 쓰러져 버리니까이 와꾸를 시켜 버린
거죠 근데이 꾸라는 처음부터 결사적으로 반대하던 사람이고 쿠보를
굳이 참의에 임명을 시켜서이이 정한론의 참여를 시켰던 바로 그 장본인 테 당신이 대신해서 태정 대신
서리를 맡으라 그럽니다 그래서 자신이 이제 태정 대신 됐으니까 자기가 그
적게 냈던 사표 있죠 자기가 냈던 그리고 자기 동지들이 냈던 그 사표를 수리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놔두는 거죠 그러면서 10월 22일 날 이제 정론이 스톱 되는 거
같으니까 사이고 있 기 애도도 이런 사람들이 이라를 찾아가서 원래 결정
내렸던 하라고 그렇지만 이와 꾸라가 딱 이런 지하에 거절을 합니다 결국
10월 23일 날 그니까 본격적으로 세론이 시작된지 딱 열흘째 되는 날
마지막 정한론 회의가 열립니다이 그림에서도 그 당시에 그
격렬했던 론의 장들이 당시 의 여러 그림으로 어 생생이 지금 어 묘사가
되고 있는데요 회의에서 이학 보라가 이제 자기가 태정 될수 서리가 돼서 이런 거죠 내가 내일 메이지 천왕을
련을 하고 지난번에 사고를 조선의 특명 정권 대사를 보내겠다고 내리셨던
결정을 번복하라고 내가 건의를 드리게 드릴 것이다 이렇게 아예 딱 선언을
해버립니다 그랬더니 이제 예또 신이라는 저쪽 편이죠 어 정 파가
이제 와서 또 말을 바꿔서 두 가지 전혀 다른 얘기를 천 왕께 어떻게
드리냐 그 자체가 불충이다 이러면서 이제 반대를 하는 거죠 그랬더니 어 이와쿠라 그럽니다 아니다 내 의견 두
의견 다 같이 올려서 천왕 보고 그 결정하시라고 할 것이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했 그랬더니 이제 최고 일본 당대 최고의 검개 유명했던 어 기리노
도시 아키가 그 또 칼까지 뽑아 갖고 학골 테 겨누면서 당장 그대로 정한론
한다 이제 이렇게 그랬더니 이와 꾸라가 딱 두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라면서 반대를 어
끝까지 자기 그걸 지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이 정한론을 지지하던 사고부터
시작했던 모든 정한론 지지파의 국내 문제를 감당하고 있다가 결정을 하고서
천왕에 재가하지 바꿔서 다 결정을 내려놨던 사람들이었는데 뒤늦게 돌아와서는 개입을 해서는 이거를
막아버리고 오히려 거꾸로 이게 돼버리니까이 사람들은 자기네가 사표를
내고 전부 다 어 낙향을 합니다 그렇게 회의가 결국은 사고를 조선에
보내지 않는다 정한은 조선 정벌은 안 한다라고
결정이 딱 나온 다음에 이라가 곧바로 천한 가서 메이저한 가서 회의록을
보이고 정부가 우선적으로 내정을 튼튼히 된다 오보의 말대로 애정을
튼튼히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 정화는 지금 안 됩니다라고 보고를 드리고 어
그 그 제가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일본은 우선 국력을 키워야 열강들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으며 왕정 복구를 이룬지 4 5년밖에 안 된 시점에서 외국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조선의 사신을
보내기 전 우선 일본이 강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면서 어 오쿠보 오보가 일곱가지 정환을 하면 안 된
이유 실제로 조선에 쳐 들어갔을때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는 그 그 내용들을 이제 요약을 해서 메이한테
보고를 합니다 정하는 정한론 이렇게 끝이 나는 겁니다 정론은 이렇게 끝이
나고 구보가 이때부터 권력을 완전히 잡고 어떻게 자
원래대로 외교를 통해서 한다 그러면서 16년에 은요 사건을
일으켜서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을 정벌 해서 조선을 여는게 아 아니라 어떻합니까 중국하고 했듯이
아니면 다른 서양 국가들 아고 했듯이 조약을 맺으면서 조일 수업 조약을
맺으면서 결과적으로 뭡니까 조선하 일본이 사상 최초로 근대 조약을 맺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 조선의 근대화를 이룹니다 일본에서는 그럼 무슨 일이
벌어졌 정론이 이렇게 73년에 끝나 버리고
애도 심페이 어 사고 다까머리 이런 사람들이 다 내려갑니다 애토 심페이
어 자기 고향 사가던 자기 고향으로 가고 사이고는 스마로 내려가는 거죠
그래서 내려가서 그 사무라이 군대 철로 할 일 다 모든 걸 뺏긴
사무라이들이 도심하고 사이한 다 몰려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전부 다
사무라이들이 몰리기 시작해서 먼저 에토신 베이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사과의 난을 일으켜서 거기에 사무라이들이 반을 일으켜서 나라와
싸우다가 결국은 오쿠보 어 그 평정을 당하는 거죠 그래서
에토는 일본의 근대 교육을 도입한 사람입니다 참 이로 있으면서 이와쿠라
사단이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에 엄청난 개혁을 통해 갖고 수백개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를 일본에 세우면서
일번 교육 근대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인데이 사람은 정환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결국은 이와쿠라 하고 오쿠보고 반대해 고향으로 내려갔다가
사무라이들이 몰려 드니까 사무라이들을 일으켜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랬다가 나중에 결국은 참수를 당하고 그 목이
효수 당하는 그런 어 일이 있습니다 근데 이것도 일본 내에서는 어쨌든
근대화 했지만 자기 원칙에 충실했던 또 사무라이의 그 전형에 하나로 로서 어 기리는 그런 어 그런 사람이 또
애도 신배 있고요 이제 진짜는 이제 그 사이거 다까머리 사고가 메이지
정부를 세운 1등공신 1등공신 세명 중에서 사실 무장으로서 최고의 공을 세웠던 그
사고가 정부와의 내분 때문에 결국은 낙향을 해 버리는 거죠
여러분 텀 크루즈가 만든 라스 사무라이라는 영화 기억나시죠 그
영화가 바로이 사이고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그 그 텀 크루스가 찾아가는 그 주인공이 정한론 때문에
그때에 거기서 지구서 자기 고향에 어 낙향해 했는 그 외국 군인이가 갖고
어 거기에 참여를 하게 돼서 그 얘기가 이제 라스 사무라이도 그 라스 사무라이가 바로 사이고 다까머리 보고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마지막 사무라이라는 그래서 이제 사이고 거기에 있으면서 어 사츠마 개혁을
시키고 군대를 기르고 이러면서도 끝까지 반란까지 못 갑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에 가서 77년에 1877년에 그러니까 강화도 조약이
맺어져서 일본이 막 조선 하구의 모든 걸 시작하는 바로 하기 시작한 바로 다음 해에 결국은 사고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게 사츠마 반란이라고 그러기도 하고 서남
전쟁이라 그러죠 그러니까 스마가 서남쪽에 있으니까 세이난 전쟁이라고
그러는데 그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때에 그
라스 사무라 영화에서와 같이 어떻게 됩니까 오쿠보는 그 사이에 징병제를 통해서 서양식 군대 훈련 집청 훈련과
모든 거를 다 훈련시키고 개틀린 간 같은 자동 어 화기 같은 거를 다
동원을 해 갖고는 자기 친구를 평정하러 자기 고향으로 내려가는 거죠
그 스마로 그래서 가서 그 사무라이들이 칼차 무서운 복장하고 오면은 처음에는 안 되는 거 같은데
전쟁이 안 되는 거 같은데 근대 군대는 아무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량이 사무라이만화지 몰라도 그
훈련을 받은 근대 군대는 대단한 전통을 가진 사무라이 군대라도 적수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
완패를 어 당하고 어 사고 다가 머리도 어 자결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서 서남 전쟁이 막을 내립니다 자 근데 같은 해에 같은 해에 기도
다가 유시가 올해 앓고 있던 그 신병이 있었는데 병으로 인해서 병사를
또 합니다 전부 다 40살 41살 38살 이랬습니다 그리고 오쿠보는
그다음에 유신삼걸 중에 자기가 남아서 내부 대신으로 해 갖고 모든
거를 이제 다
외교고문 아이의 잔재들이 최청 마차를 타고 가고 있던 쿠보를 습격을 해서
쿠보를 죽입니다 암살이 됩니다 그래서 1년 간격을 두고 사고 기도 옥보
유신 삼거리 다 죽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까 그다음 그다음 세대가 조금 더
어렵고 오쿠보 기도 사이고의 지도를 받았던 그다음 세대 특히 구보가 제일
아꼈던게 이도 로보이 그래서 이도가 그대로 오보의 모든 거를 이어받고
오보의 정책을 이어받고 그러면서 다음 가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열어갑니다
지방간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절대로 지방간의 싸움이 아니라 진짜 오쿠보는 사츠마 출신이고
이쪽은 이도는 조수 출신인데 그쪽한테 모든 거를 넘겨 주는 거고 그리고 기가 막힌게 사고가 죽잖아요 나라의
말을 발랄 일으키고 했는데 사이고의 동생이 있습니다 사이고 도시 밑인데이 사람은 해군의 최고로 대만 정벌하고
이럴 때 완전히 해군을 는 메이지 정부의 핵심 요인이 또 됩니다 그니까이 사람들은 전혀 그런 지방색
같은 거 갖고 차별하는게 아니라 정말로 실력 위주로 해 갖고 그런 그 나라를 만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그런
모습이 곳곳에서 지금 어 보이는 거고요 아무튼 지금이 정한론이라는
거는 이렇게 해서 막을 내리지만 일본이 결국은 그 당시로서는 쿠보가
독일에 이꾸라 사절단으로 독일에 가서 비스마르크의 연설을 듣고 비스마르크가
얘기를 해보면서 비스마르크가 오크 보보고 그럽니다 프러시아 나라도 제일
조그맣고 제일 보자 것 없고 제일 촌스러운 뒤떨어진 그렇죠 신성로마 제국의 독일 지방 중에서도 제일
뒤떨어진 나라였는데 우리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전쟁은 최소화하면서 외교와
이런 거를 통해 가지고 결국은 통일을 일어났다 너희도 뒤늦게 시작하는
거지만 이렇게 따라오면 강한 국가를 만들 수 있다 이거를 그대로 받아들여
온 거죠 그래서 아까 오쿠보 지금 오쿠보 사진을 보시면요 쿠보가 수염이
이렇게 길고 한 거 있죠 그게 비스마르크의 수염 있니다 아예 비스마르크의 수염이라고 했습니까 그러니까 자기는 동양에 비스마르크가
되겠다라는 거죠 사이고 같은 사람은 그냥 쳐들어가서 옛날 식으로 임진란
일으키듯이 그냥 가서 부시고 하겠다라는 거를 오쿠보는 독일 가서
보고 유럽을 다 보고 와서는 아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구나 근대 국가라는 이렇게 만들고 근대 국제
질서라는 건 전쟁은 최소화하면서 꼭 필요할 때만 전부 다 나머지는 외교를
통해 가지고 관계를 형성을 해 나가고 묶어 놓고 이러면서 영토를 넓혀가면서
평화롭게 번영을 할 수 있는 그런 국가를 건설해야 된다라는 그 알아들은 구보가 이거를 이제 시작을 하는 거고
사실은 정론으로 가느냐 외교를 통해서 평화적인 조약을 통해서 가느냐는 그
길에서 일본은 결과적으로는 오쿠보 이와쿠라 같은 사람 때문에 조약을 통해서 협상을 통해서
근대 국제질서를 동아시아에 놓자 그런 쪽으로 일본을 갑니다 나중에 정한
론이 끝나고 나서 어 1번에 건너가는 조선 사절들이 꼭 가서 이와쿠라
만나겠다 그럽니다 이와쿠라 정한론을 막아 줬기 때문에 고마워서 이와쿠라한테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 그런다 러면서 그러니까 사실 정한 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걸 조선에서 알았었던 거죠 이와 그한테
고마움을 표시하겠습니다 이제 이랬다는 그 기록들도 남아 있고 그렇습니다
일본은 이렇게 해서 완전히 중화질서 화이질서 동아시아의 전통 국제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중국하고 평등 조약 맺고 조선하 평화적인 방법 물론 강화도
조약이라는게 운어 사건을 일으켜서 그런 사건을 일으킨 거는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 대안은 정한이 조선 정벌이
그걸 하지 않고 협정을 맺어 갖고 개을 시켜서 부산 재물포 원산을 열고
그래서 교육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해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 정세를 근대 국제
정서로 재편해 나가는 과정을 걷기 시작을 합니다 정론이 보여주는 것은
어 전통적인 그 동부가 국제질서가 있었는데 중화 질서라고 하는
거기에서는 그러면은 사이고 같은 사람이 조선을 역시 말을 안 들으니까
정보를 해야겠다 이러는 것은 정복 전쟁을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던 전근대 본건 체제 본건 국제 질서 속에서의 사고 방식입니다
선택이죠 그런데 전혀 그런 방식이 아니라 근대 국가 질서는 뭡니까
장사를 해야 되는 거죠 무역을 해야 되는 거죠 무역을 해야지 나라가 강해지는 거지 전쟁을 해서 강해지는게
아닙니다 지금 거듭 말씀드리지만 러시아의 푸틴이 계속해서 러시아의
수많 그 엄청난 자원 계속해서 팔면서 지난 2년을 저렇게 허비하지 않고
했었으면 얼마나 러시아가 부강해진 있습니까 더 엉뚱한 짓을 하는 거죠
저게 우리 영토였다 우리의 고토 있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가 갖고 우리 걸로 만들어야 겠다라는게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그걸 뺏어서 뭐를 합니까 그러니까 거기에 소프트웨어 개발하고 이런 걸 해야 될 젊은이들
거기에 내버 해 갖고 식민지나 지키고 있게 하는 이런 짓을 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방식이 전혀 말이 안
된다라는 거를 똑같은 일본의 사무라이 였고 똑같은 지방에서 똑같은 시골에서
같이 자랐던 오쿠보는 그걸 정확하게 이해를 해 버린 거예요 아 그러면서
이렇게 가면 안 되는 거구나 우리가 전통적으로 정벌을 하고 정복을 하고
이거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까 오보가 일곱 가지 이유를 쭉
나열하는게 뭡니까 전부 다 자유무역 국제 질서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부급 강경을 해야 내가 해야 되는 거를
명확하게 이해를 한 거의 일본에서도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던 거죠
근대 국가를 운영해 나가는 것은 대외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구력이 것도 참아야 되는 거고 그런 거를 잘
판단을 해야 되는 것이지 아이 기분 나쁘게 욱하고 이런게 아니라는 거죠
왜냐면 진정한 근대 국가의 강한 국가라는 것은 그런 무력을 마음대로
행사 할 수함으로써 폼을 잡는 국가가 아니라 내실을 다져 갖고 국민의 생
생활이 윤택해지고 부강해진 것이 진정한 국가의 목적이고 그게 진정한
국가라는 거죠 진정한 근대로 가느냐 아니면 봉건적인 거를 유지하느냐에 마지막 갈림길이였던 것이 바로 정한
론이고 금연에 있어서는 근대로 가는 길을 주장했던 오쿠보 이와쿠라 이런
사람들이 결국은 전통적인 질서를 여전히
희구했음에도 정한론 있었었습니다네 오늘은 어 정한론의 두
번째 시간으로서 정한론의 그 드라마틱했던 어 장면을 저희가 다시 한번 어 살펴보면서 정론이 갖고 있는
의미 어 우리 동북 아시아 국제질서에 갖고 있는 의미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서 갖고 있는 의미 근대화 본건
내로 가느냐의 그 길목에서 일어났던 그 논쟁의 의미를 한번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와 같이 아주 구체적이고
1차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조선이 어떻게 근대화의 과정을 겪어 나가는가
하는 것을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다음 시간에 다시찾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음악]
[음악]
감사합니다 h
===
<정한론(征韓論)>이란 무엇인가 Ⅱ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16회 요약 및 평론
<요약>
본 강연은 일본 메이지 정부 최고위층 내에서 벌어진 정한론(征韓論)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노선 투쟁과 그 결말, 그리고 이것이 동북아시아 근대 국제 질서 형성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사절단의 귀국과 지도부의 분열
해외 순방 중이던 이와쿠라 사절단(이와쿠라 도모미, 오쿠보 도시미치, 기노 다카요시 등)은 사이고 다카모리 중심의 남아있던 지도부가 조선 정벌(정한론)을 추진한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이로 인해 메이지 유신을 함께 이끈 '유신삼걸'을 비롯한 혁명 동지 세력이 '조선 정벌파'와 '시기상조(내정 우선)파'로 양분되어 격돌했다.
오쿠보 도시미치의 정한 불가론 (7가지 대내외적 이유와 정한 불가의 구체적 이유)
참의로 복귀한 오쿠보 도시미치는 목숨을 걸고 정한론에 반대하며 장문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7가지 대내외적 원인: ① 유신 직후 국가 기초 미비 및 농민·사무라이의 대내적 불만, ② 막대한 세출과 외채 상환 부담 등 재정적 위기, ③ 추진 중인 각종 근대화 사업의 차질, ④ 무역 적자와 전쟁으로 인한 생산 인력 유출, ⑤ 정벌 시 러시아가 어부지리를 얻을 위험, ⑥ 영국의 재정적·정치적 내정 간섭 위험, ⑦ 불평등 조약 개정이라는 시급한 과제 잔존.
정한 불가의 구체적 원인: 전쟁 명분의 부재, 10만 이상 병력 파병 및 상주에 따른 막대한 비용 감당 불능, 점령 후 게릴라전 및 반발 통제 불능, 러시아·청의 개입 가능성 등 실익이 없음을 정밀하게 도출했다.
정변의 결말과 내정 중심 노선의 승리
태정대신 산조 사네토미가 중압감으로 쓰시자,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가 대리를 맡아 메이지 천황에게 건의하여 사이고의 조선 파견 결정을 번복시켰다.
사이고 다카모리, 에토 신페이 등 정한파 지도부는 사직하고 낙향했다.
이후 정한파의 반발은 사가의 난, 세이난 전쟁(서남전쟁) 등 사무라이 반란으로 이어졌으나, 징병제와 신식 무기로 무장한 메이지 정부군에 의해 모두 평정되었다.
근대적 국제 질서로의 재편
정한론 정변 이후 권력을 잡은 오쿠보는 전면적 무력 정복 대신 '외교를 통한 개항' 노선을 취했다.
이는 운요호 사건을 거쳐 1876년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 체결로 이어졌으며, 조선과 일본이 사상 최초로 근대적 조약을 맺고 전통적 화이·중화 질서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평론>
본 강연은 정한론 논쟁의 결말을 단순한 '침략 시기의 연기'라는 프레임을 넘어, '전근대적 정복 패러다임'과 '근대적 국익·무역 중심 패러다임' 간의 충돌이라는 문명사적 시각에서 명쾌하게 분석했다.
첫째, 오쿠보 도시미치의 의견서 분석을 통해 근대 국가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현실주의적 안목과 냉철한 국익 계산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오쿠보는 단순한 명분이나 감정적 분노가 아니라, 재정, 무역 구조, 산업 투자의 연속성, 열강(영국·러시아)의 세력 균형 등 복합적인 요소를 종합하여 전쟁의 불합리성을 증명했다. 이는 근대 국가의 본질이 무력 과시가 아닌 '내정의 충실'과 '자유무역을 통한 부국강병'에 있음을 간파한 정밀한 국정 철학의 산물이다.
둘째, 일본 내부의 유신 세력 분열과 세이난 전쟁까지의 과정을 다룸으로써, 근대화 과정에서 수반되는 구체제(사무라이 계급)의 수용 및 해체 잔재가 대외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입체적으로 규명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한론이 봉건적·무인적 사고방식에 기초한 대외 모험주의였다면, 이와쿠라와 오쿠보의 승리는 일본이 봉건적 정복 국가가 아닌 근대적 법치·외교 국가로 이행했음을 의미한다.
셋째, 이 정변의 결과가 조선에 미친 파장을 다루며 동북아 국제 질서의 대전환을 짚어낸 점이 탁월하다. 정한론의 무산이 조선의 안전을 보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 열강식 '압박을 통한 조약 체결'이라는 더 정교한 근대적 침략/개항 외교(강화도 조약)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근대적 외교 규범과 국력을 갖추지 못했던 조선 외교의 한계를 정면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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