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4

공자 평전 | 안핑 친, 김기협 (옮긴이)2010

공자 평전 | 안핑 친 | 알라딘


공자 평전 -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
안핑 친 (지은이),김기협 (옮긴이),이광호 (감수)돌베개2010-11-05
원제 : The Authentic Confu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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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공자의 삶과 사상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 안칭 친은 서양에 중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저명한 중국학자인 조너선 스펜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중국계 미국인인 안핑 친은 청대 고증학을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꼼꼼하게 고대 문헌들을 정독해가면서 가장 믿을 만한 인간 공자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이제까지 사마천의 공자전은 공자의 삶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저자는 공자의 삶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보다 더 오래된 문헌에 근거하여 공자의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야심찬 시도를 했다. 이 작업에서 저자가 가장 크게 의지하는 문헌은 <논어>와 <춘추좌씨전>, <맹자>, &l;순자>, <장자> 등이다.

저자는 이 작업을 하면서 주로 공자의 만년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노나라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죽기 전 5년간과 공자가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폈던 유랑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 인물을 온전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공자 시대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공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목차


감사의 말 5
프롤로그 9
2,500년의 세월 19
우울한 출발 35
공자 시대의 정치 57
젊은 길동무들 85
고달픈 유랑 117
돌아오는 길 161
가르친다는 일 191
삶과 죽음의 예법 233
두 사람의 후계자 259
에필로그 295
옮긴이의 말 299
주 304
집필 자료에 관한 한마디 314
참고문헌 316
찾아보기 322


책속에서


공자는 이와 다른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행위까지도 성찰과 토론의 좋은 주제로 여겼다. 이런 말을 한 일이 있다. "하루 종일 모여 앉아있어도 의로움에 관한 얘기는 없이 조그만 지혜를 과시하기에나 바쁜 사람들, 참 딱한 사람들이다."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고찰 대상으로 삼은 사람, 공자)-86쪽 접기 - 무해한모리군
공자는 백성에게서 노동력 아닌 물자를 거두는 것은 호혜적 관계를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통치자가 재물을 쌓아놓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그칠지 한도가 없을 것이고, 백성은 불만을 가지게 되어 필요한 일이 있어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되리라는 것이었다.-168쪽 - 무해한모리군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답답하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182쪽 - 무해한모리군
극도의 참상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어진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온나라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을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이다.

(초나라왕이 자기 군대가 포위하고 있던 지역에 자반이라는 사람을 보내 성안 사정을 살피게 하였다. 그런데 성안에 들어가보니 자식을 서로 바꿔 잡아먹을 지경의 참혹한 사정이라 왕에게 돌아와 '우리군대가 군량이 떨어져간다고'는 것을 적에게 알려줬다고 이야기해 초나라왕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위의 글은 그런데 왜 초나라왕이 자반을 처벌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동중서의 대답이다.)-196쪽 접기 - 무해한모리군
사람에게는 다섯가지 못된 재간이 있는데, 강도질과 도둑질은 거기 끼지도 못한다. 첫째는 통찰력이 있으면서 독을 품은 마음이다. 둘째는 편파적이면서 행동이 완고한 것이다. 셋째는 거짓을 말하며 논쟁을 즐기는 것이다. 넷째는 기억력이 좋으면서 추악한 것만 담아놓는 것이다. 다섯째는 잘못을 잘 저지르면서 변명이 궁색하지 않은 것이다. 이 못된 재간 가운데 하나만 가진 사람도 종당 군자에 처형당하지 않을 수 없다.

(소정묘라는 군둥에게 연설하며 다니는 자를 공자가 처벌한 이유를 설명한 대목)-211쪽 접기 - 무해한모리군
공자는 자식 입장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받았던 것을 되돌려줌에 있어서는 부모에게서 받았던 절대적 사랑을 잊어서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식에게 불가능한 수준의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모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한 배려를 잊지 말 것 하나만을 공자는 요구했다. 자식이 그 한가지만 지킬 수 있다면 어진 자식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222쪽 접기 - 무해한모리군
자식이 예를 지킬 수 있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감정이나 어떠한 도덕적 충동도 없다면 "예는 무엇에 쓸 것인가?"라고 공자는 묻는다. 그러나 예법의 절도에서 도움을 얻지 못한다면 따듯한 사랑과 착한 마음을 가진 똑같은 자식이라도 태도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끝에 효를 이루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223쪽 접기 - 무해한모리군
공자 스스로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까?(중략)

나는 어렸을때 신분이 비천하였기에 천한 일에 재간이 많다.
나는 관직에 등용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예에 능하게 되었다.

내게 지식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 천한 사람이라도 나에게 성심으로 물으면, 나는 양쪽 긑을 다 두드리며 정성을 다하였다.

누구 못지않게 노력해왔지만 군자의 도리를 실천하는 데는 아직도 미치지 못했다.

나가서는 대신들 섬기는 일, 들어와서는 어른들 모시는 일, 장례 치르는 일을 감히 게을리하지 못하며 술 때문에 곤란을 당하지 않는 것. 이런 것들이 어찌 내게 문제 이겠는가.

거친 밥을 먹고 맹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 삼는 그 곳에 즐거움이 또한 있도다. 의롭지 못한 길로 얻는 재산과 신분은 내게 한낱 뜬구름이로다.

재산을 구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면 저자 바닥에 채찍을 들고 서 있는 경비 노릇이라도 나 또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 -254~255쪽 접기 - 무해한모리군
내 사람됨이 힘을 쏟을 때는 먹을 일을 잊고, 즐거울 때는 근심도 잊어 늙어가는 줄도 모르는 그럼 사람이라고 하지 그랬느냐.

성인과 어진 이를 내가 어찌 자처하리오. 다만 행함에 지쳐하지 않고 가르침에 싫증 내지 않는다는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내가 잘못하는 일... 더보기 - 무해한모리군
사람들의 도덕적 품성과 감정은 메말라가고 있다. 이 도가 이 시대 이 나라에서 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천하만대에 통할 것을 바라겠는가. 나는 그때 깨달았다. [시경]과 [서경]도, 예와 악도 천하를 혼란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내가 해온 것보다 더 좋은 길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천명을 알고 천도를 맞이하는 ... 더보기 - 무해한모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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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그 거대한 명성과 달리 공자는 인간 자체의 모습은 명확하지 못했다. 안핑 친은 가장 믿을 만한 자료를 통해 수많은 억측 속에서 공자의 참 모습을 조탁해냈다.

-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0년 11월 12일자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0년 11월 13일자 새로나온 책
중앙일보
- 중앙일보(조인스닷컴) 2010년 11월 13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안핑 친 (Annping Chin, 金安平)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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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건 주립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콜럼비아대학에서 중국사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웨슬레이언대학을 거쳐 예일대학 역사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유교, 도교와 중국 사상 전통 등을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Children of China: Voices from Recent Years』 『Tai Chen on Mencius』 『Four Sisters of Hofei』 등이 있다. 남편인 조너선 스펜스와 『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1-중국의 세기』를 함께 쓰기도 했다.

최근작 : <공자 평전>,<20세기 포토 다큐 세계사 1> … 총 2종 (모두보기)

김기협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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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학자. 경북대에서 석사논문으로 중국 고대 천문학을, 연세대에서 박사논문으로 마테오 리치의 적응주의를 다룬 후 동아시아 문명권 안팎의 교섭관계를 연구해왔다. 저서로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아흔 개의 봄』 『해방일기』 『냉전 이후』 『오랑캐의 역사』 『뉴라이트 비판』 이 있다. 근년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작 : <뉴라이트 비판>,<오랑캐의 역사>,<냉전 이후> … 총 47종 (모두보기)

이광호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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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동서철학을 배우고, 민족문화추진회 한학연수과정과 한국고등교육재단 태동고전연구소 한학연수과정을 수료했다. 《주자의 격물치지설에 관한 고찰》로 석사학위를, 《이퇴계 학문론의 체용적 구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림대학교 철학과 교수,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퇴직했다. 서암학술(SBS) 재단 해외파견교수로 선발되어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방문교수가 되었고, 절강대학교 한국연구소 초빙교수를 지냈다. 태동고전연구소 소장,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부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한국동양철학회 회장, 국제퇴계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송문화재단의 주자학술상과 퇴계학연구원의 퇴계학술상을 수상했다. 《성학십도》, 《근사록 집해》, 《이자수어》, 《퇴계와 율곡, 생각을 다투다》, 《국역심경주해총람》, 《대학공의·대학강의·소학지언·심경밀험》, 《역주 대학·중용》(예기정의), 《대학·중용집주》, 《퇴계집》, 《퇴계의 사람공부》, 《고경중마방》 등의 역서와 저서, 그리고 다수의 논문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퇴계의 길에서 길을 묻다>,<다산학 공부>,<고전 강연 3> … 총 34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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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동물의 향기, 인간의 풍경>,<웹툰이라는 전쟁터>등 총 614종
대표분야 : 역사 3위 (브랜드 지수 940,558점), 음악이야기 5위 (브랜드 지수 26,867점), 한국사회비평/칼럼 8위 (브랜드 지수 63,91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오늘의 중국을 읽는 핵심 코드, 공자
최근 중국 공산당 5중 전회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선출되면서 2012년 등장할 중국의 새 지도체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시진핑의 정치적 모토는 ‘포용과 조화’로 정리되는데, 이는 후진타오의 정치적 구호를 잇는 것이다. 조화사회 구현이라는 정책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유교의 현대화를 통해 ‘평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유교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도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유교는 중국이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포장하여 전달하기에 여러모로 유용한 수단이다. 따라서 이 유교의 창시자이자 아이콘인 공자를 부각시키려는 중국의 노력은 자연스럽다. 중국이 최근 전 세계 54개국 156곳에 공자학원을 개설하면서 자국의 문화, 역사뿐 아니라 언어를 전파하기 위해 애쓰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파악이 가능하다. 중국어 교육을 주목적으로 하는 이 단체의 이름이 ‘공자’라는 사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중국이 공자를 이렇게 자국의 정치적 아이콘으로 삼아 다각도로 활용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공자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공자’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옛 사극에서 고리타분한 훈장이 늘어놓는 “공자왈, 맹자왈” 시작하는 경전의 낡은 구절들, 봉건, 충효, 전통 등의 관념들뿐인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중국이 2,500여 년 전의 인물을 현재에 부활시킨 것은 공자라는 인물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모호한 관념들에 파묻혀 제대로 읽어볼 기회가 없었던 ‘인간’ 공자 본연의 모습을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 오랜 시공을 거슬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공자를 만나려고 시도한 학자가 있다. 그녀가 바로 안핑 친이다. 그녀는 서양에 중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저명한 중국학자인 조너선 스펜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중국계 미국인인 안핑 친은 청대 고증학을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꼼꼼하게 고대 문헌들을 정독해가면서 가장 믿을 만한 인간 공자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그 역작이 바로 『공자 평전』이다.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된 공자의 삶과 사상
이제까지 사마천의 공자전은 공자의 삶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안핑 친은 공자의 삶에 대한 사마천의 기록이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보다 더 오래된 문헌에 근거하여 공자의 인생을 재구성하려는 야심찬 시도를 했다. 이 작업에서 저자가 가장 크게 의지하는 문헌은 『논어』와 『춘추좌씨전』이다. 또한 저자는 사마천의 이전의 『맹자』, 『순자』, 『장자』 등 수많은 문헌을 통해 공자의 삶을 재구성한다. 게다가 곽점본이나 상해박물관의 죽간 등 최근 발굴된 고고학 자료까지 활용했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작업은 공자 시대에 근접할수록 더 충실하게 공자의 인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저자는 이 작업을 하면서 주로 공자의 만년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노나라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죽기 전 5년간과 공자가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폈던 유랑기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저자는 공자의 삶을 재구성하기 위해 입체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역사적 인물을 온전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 공자 시대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할 뿐 아니라 공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수많은 인물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하게 공자가 자신의 인생에 걸쳐 만난 인물과 사건의 단편적인 모음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공자가 살았던 중국의 ‘축의 시대’Axial age를 온전하게 그려내려는 시도에 더 가깝다. 주변상황과 사건을 분리하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을 온전히 파악한 아래서 사건과 인물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같은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기록에는 공자가 14년간 7개국을 돌아다니고 어떤 나라는 몇 차례 방문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저자는 『논어』나 『장자』를 근거로 공자가 7개국이 아니라 4개국을 유랑했으며 그의 루트가 같은 나라를 두 번 방문해서 겹치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해준다.
2천 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공자는 중국사에서 떼어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그 거대한 명성과 달리 그 인간 자체의 모습은 명확하지 못하다. 안핑 친은 『공자 평전』에서 가장 믿을 만한 자료들을 통해 수많은 연의演義와 억측 속에서 공자의 참 모습을 조탁해냈다.
저자는 공자가 살던 시대의 정치적?사회적 분위기를 우선 그려낸다. 그러고 나서 그가 조정을 떠나 유랑의 길에 나서는 곡절, 인간성에 대한 관점을 갈고 닦으면서 도덕적 정치 질서의 원리를 정리해내고 스스로 바람직하지 않게 여기던 직업적 교사의 역할을 맡게 되는 곡절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공자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생각을 한 사람인지 알려주는 흥미롭고 참신한 책 하나를 만들었다. 공자의 습관과 취향, 사람들과의 관계, 스승과 조언자로서 그의 역할, 세태와 장래에 대한 그의 걱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공자가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의 도덕 이념, 그리고 가정과 정치, 문화와 학문에 관한 자신의 가르침을 직접 전해주게 한다. 『공자 평전』은 지금의 세상에까지 힘찬 가르침을 남긴 한 사상가의 생애와 지적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유랑과 가르침의 길에서 읽어낸 인간 공자의 질박한 삶

프롤로그
삶과 도덕의 탐구자 공자를 연구하는 목적과 과정, 전체 내용 요약을 기술한다. 저자는 중국을 대표하지만 제대로 된 이해를 얻지는 못하고 있는 공자라는 인물을 과장되지 않게, 철저히 수집된 자료에 근거해 연구하고자 한다.

2,500년의 세월
공자는 주나라의 봉건체제가 흔들리고 제후와 귀족이 자신들의 야심을 위해 움직이던 시기에 활동했다. 엄격한 계급체제가 느슨해지면서 사士 계층의 진출이 잦아졌는데, 공자는 그런 사 계층에 속했다. 기존과 달리 새로운 역사의 규칙을 마련할 수 있는 변환기이므로, 잠재력은 높았지만 그만큼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주나라 무왕의 동생인 주공을 자신의 지표로 삼았고, 자산이나 관중 같은 이를 참고하고자 했다. 그런 공자에게는 그의 그런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그중 존재가 두드러지는 사람은 자공, 안회, 자로이다.
상인의 활동과 역할이 확대되기 시작하던 춘추시대에 자공은 상인으로 태어났다. 사 계층인 안회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기는 하지만 높은 이상을 지난 사람이었다. 한편 자로는 새로이 국가 체제에 편입된 외부인으로 공자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다.
공자는 그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즐겼다. 대화를 하며 가르침을 베풀기도 했지만 배우기도 했다. 어떤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차별이 없었지만 차이는 두었다.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대화를 풀고 이해한 공자의 태도 때문에 훗날 그의 문장은 여러 관점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송대에 이르러 주희와 정이의 학설로 확장되고, 이 학설은 나중에 청대 말기에 강유위와 담사동으로 이어진다.

우울한 출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난 이유를 탐색한다. 공자가 왜 노나라를 떠났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논어』에는 제나라에서 여자와 말을 보낸 뒤 계환자가 사흘간 조정에 나오지 않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저자는 제나라의 여자와 말이나 제사 고기를 받지 못한 이야기 등은 사실이라기보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는 데 쓴 핑계이기 쉽지 않나 생각한다. 이때의 노나라는 귀족 가문의 횡포가 극심했고, 공자의 노력만으로는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 시대의 정치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을 천자가 주재하고 도가 없으면 제후가 주제하되, 제후가 주재하면 10대를 지키기 힘들고 대부가 주재하면 5대를 지키기 힘들며 가신이 주재하면 3대를 지키기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저자는 이 말을 장 앞에 두고 주나라의 몰락과 제후들의 야심을 간략히 설명한다. 주나라 초기 역사의 왕들은 노력해서 봉건제도를 만들어 주나라의 체제를 유지했지만 결국 유왕이 살해되면서 서주의 시대는 끝난다. 이후에 제후들의 도움으로 주나라는 명맥만 유지한다.
공자는 예악과 전쟁을 제후가 주도하는 자신의 시대를 도가 행해지지 않는 시대라고 믿었다. 그러면서 주나라의 반석을 다진 주공을 흠모했다. 주공은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으로, 일찍 죽은 무왕의 후계자 성왕을 보필했다. 반란을 일으킨 형제들을 처리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다.
이 장에서 저자는 공자의 시대 전후의 역사 배경을 설명한다. 노나라의 3대 가문이 생겨난 배경과 그들의 횡포, 그로 인해 무너지는 원칙들. 그것을 걱정하는 공자. 춘추시대의 변화를 촉진했던 계무자의 이기적인 정책과 월권행위들, 그런 그와는 달리, 동시대를 살면서 좀 더 성실하고 충실했으나 무력했던 숙손목자. 숙손목자의 비극적인 최후와 뜻하지 않게 후계자가 되어 합리적으로 일처리를 도모한 숙손소자와 근신 두설 이야기가 나오고, 공자가 높이 평가했던 정나라의 자산이 잠깐 언급된다.
그 뒤로는 계무자의 뒤를 이은 계평자의 행패, 그런 모욕을 견디지 못한 소공과 다른 가문의 ‘반란’이 어떤 식으로 실패했는지 기술한다. 거기에 어리석고 옹졸한 소공의 측근 자가자의 충성을 대비하며, 공자는 자가자나 두설 같은 이가 실패한 사람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젊은 길동무들
공자의 유랑길에 함께했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먼저 영리하고 언변이 좋지만 행실에 문제가 있어 공자의 걱정과 근심을 불렀던 재아가 나온다. 낮잠을 자다가 야단맞은 일화, 애공과 사당의 나무에 대해 나눈 대화, ‘어진 사람’에 대한 공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행실에서는 공자를 흡족하게 하지 못했지만 공자의 사고에 자극을 준 제자였음을 설명한다.
자공은 공자가 대화 상대로 가장 좋아했던 제자다. 공자는 자공이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 보았고, 침착하면서도 과장하지 않는 그와의 대화를 즐겼다.
공자는 안회를 자신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사람으로 생각해, 인간의 도덕적 품성의 완성을 보여 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따라서 오히려 안회와는 사고를 깊이 하기 위한 대화가 적었다. 안타깝게도 안회는 요절했고, 공자는 크게 상심한다.
중궁은 천한 신분이지만 훌륭한 소질과 특성을 지니고 있어, 공자로부터 ‘남쪽을 향하고 앉게 해도 될 사람’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그럼에도 그에 관한 언급은 『논어』에 거의 없다. 그가 공자의 유랑에 함께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고달픈 유랑
공자는 기원전 497년부터 기원전 484년까지 노나라를 떠나 유랑했다. 이 세월 동안 그의 행적에는 많은 공백이 있다. 저자는 자료들을 모아 최선을 다해 이 기간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 이 조각난 사실들을 하나의 연속으로 엮고자 시도한 사람은 사마천이다. 다만 그는 지나치게 과장하고 공자의 명예를 지키려는 열성으로 현실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의 글은 활동과 모험으로 가득한 이야기가 되었고, 공자는 그 이야기 속에서 쉼 없이 계속 움직인다. 공자의 시대에 좀 더 가까웠던 장자의 서술은 다소 간략하고 복잡하지 않다. 저자가 보기에, 사마천의 공자보다는 장자의 공자가 더 그럴듯하다. 그래서 장자를 기조 삼아 진행한다.

돌아오는 길
위나라의 대신 공문자와 친하게 지냈으나 그의 옳지 않은 행동을 보고 떠나려고 한 공자에게 마침 노나라에서 돌아오라는 요청이 전해졌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제자 중 염구와 자공의 출세가 공자의 귀국에 도움을 주었다. 염구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자공은 훌륭한 언변으로 계손씨를 위기에서 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노나라는 더욱 혼란해져서 계손씨는 공자가 긍정적으로 보는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백성에 전부田賦를 부과하고 싶어 했다. 염구가 조언을 청했지만 공자는 세금을 매기는 기본 원칙만을 넌지시 일러주었다. 염구는 스승의 말을 따르지 않았고 공자는 염구에게 몹시 화를 냈다.
노나라 애공에게는 아무런 권력이 없었다. 제나라의 대신 진항이 제나라 간공을 죽인 일이 일어나자 공자는 애공에게 제나라 백성들과 힘을 합쳐 진항을 치자고 하지만, 애공은 계손씨(혹은 3대 가문)에게 물으라고 대답한다. 공자는 애공의 말대로 그들에게 가서 말하지만 거부당한다. 이 일화는 주군의 명을 거역하지 않는 공자의 기본 원칙을 보여준다. 그리고 공자 역시 하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정치에서 느낀 무력함이 교육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젊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더욱 교육에 집중했다. 새로운 제자의 대표는 자장과 자하로, 한 사람은 지나치다는 평을 듣고 한 사람은 모자라다는 평을 들었다. 저자는 자장을 솔직하고 분명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말만 앞세운 재아와 다르게 공자가 자장을 아끼고 성심껏 가르쳤다고 말한다. 반대로 글자 하나하나를 장인처럼 파고든 자하 쪽을 갑갑하게 보았다. 똑같이 『시경』에 대해 대화를 하더라도 자공과는 달리 자하와는 대화를 피했다고 생각한다.
만년의 공자는 체념 속에서 교육과 자기 세계로 파고들었다. 악사마저 노나라를 떠나는 마당이지만 공자는 떠나지 않았다. 체념을 통해 얻은 평정심으로 젊은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몰두했다.

가르친다는 일
공자는 교육자이기를 바란 적이 없었다. ‘스승’이라는 사람을 존경하기는 했지만 배움은 스스로 닦고 스승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가르치는 일이 하나의 직업이 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깨우쳐주고 밝혀준다는 의미에서의 교육을 행하는 데는 싫증내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일방적인 가르침보다 빛을 던져줌으로써 스스로 깨닫게 하는 가르침을 좋아했고, 자신이 전해주는 사람이지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음악과 예법이었다. 『시경』의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다치지 않는 노래와 순 임금의 〈소〉 음악을 좋아한 공자는 시에서 일어나 음악에서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런 그가 싫어한 사람은 ‘명망가’의 평판을 가지면서 덕을 해치는 자들이었다. 그는 노나라의 재상을 대행하던 중에 소정묘라는 유명한 선비를 처형했다. 이에 따른 후대의 철학자 순자의 설명에는 그와 비슷한 사람으로 등석을 꼽으며, 사회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라고 지적했다. 사람을 깊이 아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물에 대해 함부로 단언하지 않던 공자가 소정묘를 죽인 이유는 소정묘가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흐리게 하는 짓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정묘는 그저 사람의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 데 취미를 가진 사람일 뿐이었다. 공자에게 이것은 중죄 중의 중죄였다.
이렇게 선으로 흐르는 마음을 가로막는 무엇인가가 인간의 본성의 하나이므로, 공자는 그것을 잡아주는 매개체로 예를 주장했다. 공자는 ‘예는 붙들어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 혹은 예법은 명확한 구조와 규칙을 가져서 기본적인 인간성을 유지하게 해 준다. 공자는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예법을 강조해 가례나 예라는 이름으로 따로 격식을 갖추었다. 그리고 자신을 억제하고 예로 돌아감으로써 인仁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통해 절도를 지키면, 지나치게 감정을 드러내 너무 기뻐하거나 너무 슬퍼하는 일이 없고 판단력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공자의 가르침은 결국 그 자신에게 하는 가르침과 같다. 공자에게 가르침과 삶은 하나였다. 삶이 자연스럽듯 가르침도 그에게는 자연스러웠다.

삶과 죽음의 예법
살아서의 예와 죽어서의 예에 대한 얘기가 전개된다. 대부분이 『논어』에서 관련 대목을 인용한 것이다. 마지막 부분은 공자가 죽은 후 공자의 제자들 사이에 있던 갈등과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한 말을 역시 인용으로 채운다. 공자의 삶을 다루는 실질적인 마지막 장이다.

두 사람의 후계자
저자는 마지막 장을 맹자와 순자에게 할애한다. 먼저 공자 사후에 어떤 제자들이 그 뒤를 이었는지, 문제는 없었는지 서술하고, 공자의 시대에 상대적으로 가까웠던 맹자가 어떻게 학통을 이었는지 살핀다.
맹자는 공자의 직전 제자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공자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며, 증자의 제자 자사가 가르친 제자에게 배웠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맹자는 논쟁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논점을 밝히는 데 공자의 이야기들을 효과적으로 뽑아 썼다. 그에게 공자는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공정하고 온정 있는 길을 밝혀줄 안내자였으며, 공자의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을 얹어 모든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과장에 능했고, 묵자나 양주 같은 경쟁자를 지나치게 의식했으며 자신의 직업을 너무 고상하게 여겼다. 냉정과 명민함이 부족했던 그의 모호한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사람은 순자였다. 현실적인 인물인 순자에게 신화적 인물과 이야기를 끌어들인 맹자의 논설은 교활한 선택으로 보였다. 전국시대 말기를 몸으로 겪었던 순자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으로 지켜지는 정의를 신봉했다. 그는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고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힘이 지성이라고 믿었다. 그럼으로써 폭력이 난무하고 일상화돼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전국시대의 개혁을 역설했다.
세상을 보는 냉철한 눈으로 지나친 타협에 주의했던 지닌 공자와 순자에 비해, 좀 더 유화적인 맹자는 중국 역사를 통해 많은 군주의 애호를 받았다. 맹자 자신은 군주와의 시간을 불편해했지만,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사상과 군주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의 사상은 국가 이념의 핵심을 이루었고, 송대에 이르러 다시 한 번 각광을 받아 근대까지 이르렀다. 반면 순자는 맹자의 부흥과 더불어 몰락했다. 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추악한 것’으로 본 그를 인정하지 않았고, 마침내 16세기에 이르자 공자의 사당에서 그의 위패를 치웠다. 18세기 청대에 이뤄진 잠시의 복권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절대왕정의 옹호자라는 비난과 함께 사그라지고, 그 모습은 현재에 이른다. (그러나 공자는 순자가 자신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말할 것이다.)

에필로그
저자가 곡부를 방문하면서 보았던 장면을 가볍게 스케치하면서 마무리하는 이 글에서 저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공자라는 인물이 무엇을 찾았는지 간략하게 정리한다.
그에 따르면 공자가 찾은 것은 ‘모든 것을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걱정하며 모든 것을 하는 것’이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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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의 신화적 사상가 공자의 생애를 청명한 하늘로 올려놓은 완벽한 연구서다
gidon 2010-12-1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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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 대해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논어에서 만난 공자보다 좀더 세부적으로 공자를 만난 기분이다
라니 2017-03-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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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린의 중용23장 인용부분에 매료되어 중용을 읽으면서 배경지식을 구하고자 함께 샀습니다.중용 20장 힘없는 (공자나라) 노나라의 어린왕 애공이 정치가 무언지 물음에 공자의 대답은 참으로 애절합니다. 공자평전 덕에 중용을 제대로 이해할수 있었어요. 추천 추천 합니다.
공짜는 없다 2016-08-1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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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공자의 삶은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한 책

공자란 인물은 그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청나라의 멸망으로 유교로 대표되는 전 근대적 봉건 왕조 국가가 멸망하기까지 수 천년간 중국의 정치,사회 제도, 문화와 역사의 구조 등 중국의 어제와 오늘을 만드는 초석을 다진 인물임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건 중국 문화의 영향권 아래 있던 동 아시아 국가 모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로 한국도 마찬가지다.조선시대까지 국내에는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무수히 많았고 많은 선비들이 공맹의 도에 무조건적으로 매달려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공자는 20세기 들어와서 화석화된 존재였다.공자의 유교는 민주주의와 상반되는 봉건 왕조 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으로 매도되었고,동 아시아 국가에서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그는 서서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그리고 공자의 모국인 중국에서마저 공산당 정부가 수립되면서,특히 구체제 파괴’를 독려하며 문화 혁명을 일으켰던 마오쩌둥의 시대에 공자는 철저히 파괴되고 매장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공자는 화려하게 되 살아났다.자본주의가 상당히 진행된,그래서 백만장자도 1억명 이상이라는 중국은 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빈부 격차가 심각하게 증대됨에 따라 상당한 정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 사실이다.
중국 공산당은 덩 샤오핑의 개방 개혁 정책으로 13억 인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했지만 빈부•지역 격차, 서구문명의 범람, 소수 민족 문제 등으로 사회는 여전히 불안하고 더 이상 공산당의 정치 이념만으로 중국 대중을 설득할 수 없어졌고 이념보다는 돈이라는 가치관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공산주의 이념과 더불어 중국 민족을 하나로 묶을 소프트웨어로 공자를 선택하게 된다.중국 사회가 점차 이성을 회복하면서 공자와 유학에 대한 재평가와 연구가 이루어 졌고 감정이 배제되자 공자 비판이 사라지게 된다. 덩샤오핑이 집권한 79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취푸의 공자묘를 재건되었고,94년 9월 공산당 중앙서기처는 대중학술단체인 중국공자기금회를 만들었으며 99년 장쩌민 국가주석은 중국공자기금회와 유네스코가 공동으로 거행한 ‘공자 탄신 255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 참가자들을 접견했다.가장 하이라이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으로 공자의 3000제자들이 논어 경전을 암송하며 등장하는데 본격적인 공자 부활의 상징적인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대중 사이에서도 이중톈과 위단이 중국중앙방송의 교양프로그램 ‘백가강단’이 커다란 인기를 얻을 정도로 공자는 국민적인 스타로 되돌아 온다.

그런데 우리는 공자라는 인물에 대해서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에 대해서는 논어등의 책을 통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다.사실 제자들이 후대에 저술한것이자만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논어나 그의 유학 사상에 대해서는 무수히 많은 연구서등이 출간되었지만 공자란 인물 그 자체를 파헤친 책은 드문 편이다. 이제까지 이천년이니 더 전에 나온 사마천의 공자전은 공자의 삶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기록으로 여겨졌을 정도다.

중국의 이런 공자 열풍을 타고 인간’ 공자 본연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공을 거슬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공자를 만나려고 시도한 학자가 있는데 서양에 중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저명한 중국학자인 조너선 스펜스의 아내이기도 한 안핑 친이다.
저자가 인간 공자를 재 구성하기 위해 논어,춘추좌씨전,맹자,순자,장자 등 수많은 문헌을 통해 공자의 삶을 파헤치고 곽점본이나 상해박물관의 죽간 등 최근 발굴된 고고학 자료까지 활용하면서 가장 믿을 만한 인간 공자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공자 평전은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란 부제에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삶에 중점을 두었는데 54세의 공자가 고향인 노나라를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 후 자신의 도덕적 정치적 가르침을 폈기 위했던 14년간의 방랑 생활과 귀환 이후 노나라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죽기 전 5년간의 만년 모습을 마치 독자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직접 돋보기를 들고 살펴 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자에 대해서 느끼게 된 것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만 있던 동아시아 3국이유교의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하던 공자는 어찌보면 허상이 아니었나 하는 것이다.
공자는 14년간 4개국-사기에서는 7개국이지만 작가의 연구조사 결과는 4개국이라고 한다-항상 그가 논하던 인과 예는 즉각적인 기술이나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부국 강병의 이론이 아니어서 그 당시 군주들이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기에 여기 저기로 떠돌아 다닐수 밖에 없었고 그런 스승을 모시는 제자들은 그를 따르기 힘들다고 속으로 불평을 할 정도로 요령부득의 당시로서는 명성을 얻기 힘든 사람이었다.
하지만 책속에서는 그런 공자의 솔직 담백한 모습들이 드러나 있다.어찌보면 “인간 공자”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공자에게서 권위의 옷을 홀랑 벗겼다고 할 수 있어 오리려 논어등에 보였던 유교 시대의 근엄한 공자의 모습보다 훨씬 친밀하게 현재의 독자들에게 다가선다.

사실 이 책을 읽기전에 주윤발을 주인공으로 한 공자란 영화를 본적이 있다.공자의 일생이 너무 압축되어 있어 그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었지만 영화속 내용이 고스란히 책속에 있어 읽기가 무척 수월했었다.
공자 평전은 자로,안희와 같은 공자의 제자들과 그 밖의 역사적 인물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고 공자 시대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우리가 얼핏 예상하는 딱딱한 인문서적이 아니므로 읽는게 겁을 낼 필요는 없다.정 부담스럽다면 영화 공자를 비디오로 빌려보고 공자에 대해 흥미가 생긴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마치 영화의 장면과 오바래핑되면서 쉬이 읽을 수 있기 떄문이다.
중국을 비롯해 다시금 전세계에 불어닥치는 공자 열풍을 이해하고 인간 공자에 대해 알고 싶다면 필히 일독을 해야될 저서라고 여겨진다.

by cas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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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2-09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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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사상사와 결합이 느슨해보여



물론 이 책이 공자의 평전이지만, 그가 고대 동아시아 문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사상사와의 연관이 좀 더 있어야 하지 않나, 이 점만 아쉽다.

접근가능한 문헌을 통해 공자 생애와 그 시대에 대한 큰 그림을 짜고, 그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문장들을 인용하며 눈에 보이게 풀어내고 해석한다.

공자가 겪었을 인생살이가 차분하게 펼쳐진다.

지은이가 들었던 학문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다른 고대 사상가들과 구별되는 공자만의 특징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거 같다. 그와 같은 태도는 다른 제자백가 인물들도 겸비하고 공유한 특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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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2011-10-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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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물러섬의 예술을 완성한 자


무해한모리군 2011-01-11 공감(1)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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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평전 / 안핑 친

1. 2,500년의 세월
1) 공자 시대의 현인들이 賢•尙•德 등의 가치 우위적인 개념어들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 이유는 혈통 중심의 사회질서를 깨뜨리기 위해서였다.
2) 공자는 제후들과는 정치 원리를, 대신들과는 인간 본성을 토론하였고, 서민들을 성심으로 대하였고, 은자들을 자기 비판의 거울로 삼았다.

2. 우울한 출발
(앞의 2권과 반복되는 내용)

3. 공자 시대의 정치
1) 공자에게 주공은 이상화된 정치가였고, 주나라는 이상화된 국가였다. 즉 도덕을 체현한 군주(와 그를 보필하는 바른 신하)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인 것이다.

4. 젊은 길동무들
1) 자공은 주어진 상황에 체념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기민함을 가졌으므로 공자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주제의 다른 측면을 이끌어내곤 하였다.
2) 안회는 영민함만으로 도를 얻으려 하지 않고 높이 바라보고 깊이 파고드는 자세와 사라질 듯 멀어지는 진리를 향한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깨달음을 구했다.
3) 자로는 信•直•勇•剛을 갖춘 우직한 사람이지만, 공자는 그의 이러한 덕목들이 배움의 자세를 겸비하지 않으면 그른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

5. 고달픈 유랑
1)위나라는 노나라와 兄弟之國의 관계였기 때문에 공자는 그곳에서 정치적 부름을 기대하였지만 영공은 예법과 덕치보다 부국강병에 관심이 많았다.
2) 세상의 외면에 대해 자로는 스승의 모자람을 탓하고, 자공은 세상의 그릇에 스승이 맞추기를 바랐으나 안회는 스승의 도가 세상보다 넓음을 자부하였다.
3) 자신의 도를 널리 펼 수 없는 세상임을 알면서도 공자가 관직을 구하는 일에 부단히 노력한 것은 흙탕물에 뒹구는 일의 의로움을 이해하기 때문이었다.

6. 돌아오는 길
1) 염구는 전쟁에 임하여 승리하고 전부田賦를 시행하여 주군의 곳간을 넉넉히 채웠지만 이를 시행하면서 백성을 헤아리지 않아 의로움을 희생하였다.
2) 후진後進 제자였던 자장은 도덕적 명제들을 탐구하면서도 출세지향적인 반면, 자하는 사소한 가르침을 두텁께 쌓아올려 배움을 이루고자 하였다.

7. 가르친다는 일
1) 만년의 공자는 스승의 직분에 충실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敎)이나 말로 하는 것(訓)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일(誨)이었다.
2) 예란 형식의 엄격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격식을 지키려는 마음의 바탕에 있는 것이므로 매사에 양 극단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찰 그 자체이다.

8. 삶과 죽음의 예법
(본문 인용)

9. 두 사람의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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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4-05-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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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누구였나!



정치활동의 고비에 이르렀을 때 공자는 갑자기 관직에서 물러나 여행길에 올랐다. 기원전 497년의 일이다. 54세의 공자는 조국 노나라에서 법무를 담당하는 대사구자리에 있었다. 대사구 자리는 그리 높은 자리는 아니었다. 바로 윗사람은 재상이었다.




노나라 임금은 정공이었고, 재상은 계환자였다. 공자는 계환자 가문의 창고 담당과 가축관리인으로서 시작했다. 지방관인 중도재와 토목 담당인 사공을 거쳐 대사구의 자리에 이른 것이다.




중국사의 이단계에서는 봉급을 받는 관직도 꽤 만들어져 있었지만, 중요한 자리는 세습 녹봉을 가진 귀족층의 차지였다. 공자는 귀족의 자격을 겨우 걸친 신분으로, 특권층의 범주에 들 만한 출신은 못되었다.




공자의 조상들은 송나라에서 대신 여럿을 배출한 명문가였다. 그러나 기원전 7세기 중엽에 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후로 행세하지 못햇다. 그래서 집안 몇 사람이 노나라로 옮겨 왔는데 그 중 증조부가 있었다. 공자가 태어날 무렵에는 집안 전체가 노나라가 백성이 되었다. 몰락한 양반이 되어 평민을 겨우 면한 사 계층에 속했다.



사마천의 시대에 중국이 오랜 끝에 통일되어 있었고 공자의 가르침이 새 질서의 수호자와 관리자들에게 메우 쓸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마천은 개성이 강한 사람이었지만 유교식 관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같은 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공자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뒤져 자기가 바라는 바를 공자 전기에 적었던 것이다. '15.6.27.




2,5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공자의 사상에 배울 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동아시아 사유의 한 축인 '유학'을 연 위대한 스승, 공자(기원전 551~479)는 성이 공이고 이름이 구이며 자가 중니다. 17세기 이후 '공 선생님'이란 뜻의 '공부자'란 호칭이 서양에 알려져 'Confucius'라 적히게 되었다. 맹자의 고향인 노나라 추성은 공자의 곡부에서 남쪽으로 20km밖에 안되는 곳이다.



공자는 굳건한 마음으로 자신에게 전해진 역사, 시, 예법, 음악 등 모든 지식을 알뜰하게 갈고 닦아,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서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요소가 무엇인지 이해함으로써 '큰 허물 없이' 살고자 애쓴 사람이었다.



20세기 중엽까지 중국은 공자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치.사회제도, 자아와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문화와 역사의 구조 등 중국의 모든 현상이 공자의 생각으로부터 자라나온 것처럼 보였다. 저자는 공자에 대한 판단 기준을 '논어'에 둔다.



공자는 인간답게 사는 길은 오직 문명의 원칙과 질서를 지키는 길뿐으로 질서는 사람들의 외적인 법이 아닌 마음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으로 '예'를 강조했다. 공자는 스스로 반성하고 올바름을 향해 실천하는 내적인 힘을 믿었다. 이 내적인 힘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인'이다. 공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사회 운영이나 국가 정치의 핵심적인 가치로 생각했다. 마음에서 비롯된 올바른 원칙과 준칙에 따라 행동하는 도덕적인 힘이 사회를 안정시킨다고 믿었다. 공자가 생각하는 문명을 이끄는 진정한 힘은 '도덕성'이다.



정치적 안정은 공자가 평생 매달리는 문제였다. 공자는 '어떻게 해야 정치를 잘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즉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만이 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신분이 아닌 도덕적 능력이 위정자의 자격이라 믿었다.



공자나 공자를 대표하는 '유학'을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상으로 여긴다면, 그것은 공자의 문제라기보다는 공자의 권위를 정치에 이용하려 한 사람들의 문제였다. 공자는 '개인을 발견한 철학자'이다. 봉건적인 고대 중국에서 현대적 의미인 '개인'을 발견했으나 현대에서 말하는 '법적, 경제적으로 자율적인 주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자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밝히고 닦아야 할 '내면'이 있음을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밝힌, 최초의 철학자이다. 개인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 철학자로 이 능동적이며 자율적인 도덕적 주체를 '군자'라고 일컬었다. 공자는 자기반성 능력을 갖추고 타인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진정한 개인'을 주체 세력으로 한 '군자'의 출현을 바랬다. 1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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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생 2023-10-2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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