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김옥균,신채호,이광수,이승만,최익현,한용운,서재필,황준헌,여운형,박헌영,김병국,이만손,홍영식,조소앙,프레드 돌프,최원순,김성숙 (지은이),이주명 (옮긴이)필맥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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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알기 위해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1876년과 1945년 사이에 씌어진 28건의 글이 실려 있다. 봉건적 구질서 붕괴, 외세의 내침, 국권 상실, 국내외 독립운동, 독립 성취, 좌우익 분열 등 그 시대 우리 민족의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당대인들의 생생한 글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목차
편역자의 머리말
1876, 최익현, <지부복궐척화의소>
1880, 황준헌, <사의 조선책략>
1880, 김병국 등, <여러 대신이 의견을 올림>
1881, 이만손 등, <영남만인소>
1883, 홍영식, <미국 방문 보고>
1884, 김옥균, <갑신일록>
1896,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사>
1919, 조소앙 등, <대한독립선언서>
1919, 이광수 등, <2.8 독립선언서>
1919, 김인종 등, <대한독립 여자선언서>
1919, 조선민족 대표 33인, <기미독립선언서>
1919, 한용운, <조선독립의 서>
1919, 여운형, <일본 관리와의 대담>
1919, 여운형, <도쿄에서의 연설>
1921, 프레드 돌프, <한국을 위한 변론 취지서>
1922, 이광수, <민족개조론>
1922, 최원순, <이 춘원에게 문하노라>
1923, 신채호, <조선혁명선언>
1928, 코민테른 집행위, <12월 테제>
1931, 신채호, <조선상고사 총론>
1932, 조소앙, <한국 혁명운동 추세>
1934, 서재필, <회고 갑신정변>.;<체미 50년>
1938, 김성숙, <왜 전민족적 통일전선을 건립해야 하는가>
1941, 임시정부, <대한민국 건국강령>
1942, 임시정부, <23주년 3.1절 선언>
1945, 박헌영,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
1945, 이승만, <건국과 이상>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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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41 아! 슬프고 슬프도다! 시세의 절박함은 위태롭고도 위태로우며 기회가 오는 것은 은미하고도 은미하다. 이 기회를 지나쳐버리면 알거나 모르거나 친숙하거나 소원한 오대부(五大部)의 종족들이 모두 조선을 위태한 나라로 보는데도 조선 저만이 절박한 재앙을 도리어 알지 못하고 있을 터이니, 이것이야말로 처마의 제비가 불이 붙은 것도 모른 채 아무 근심 없이 즐겁게 지저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41쪽, <사의 조선책략>) 접기
P. 117 날이 환히 밝았다. 서재필 군으로 하여금 여러 장사들에게 영을 내려 환관 유재현을 정전 위에 결박해 놓게 했다. 이어 그의 죄목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책망하고 뭇 칼날이 번득이는 가운데 곧 육살했더니 그제야 모든 사람이 실색하고 다들 숨을 죽였다. 곧바로 궁녀와 환관들 가운데 쓸모없는 자들을 모두 내쫓았다. 이어 크게 개혁을 실행하고 중대하거나 필요한 임무들을 먼저 실행했다. (117쪽, <갑신일록>) 접기
P. 185-186 중국에 대한 일본의 정책을 보면 동양평화라는 미명을 빌려가지고 제국주의, 침략주의를 실행하여 여지없이 침략하니, 이런 까닭으로 사억만 중국인이 고루 일치하여 일본을 원수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동양 내부가 분열쟁투하여 단결할 수 없는 원인이니, 어떻게 서세동침(西勢東侵)을 막을 것인가? 그런데 일본의 총민(聰敏)한 정치가는 속으로 중국의 내란을 기뻐하며 기화(奇貨)로 알고 있다. (185~6쪽, <일본 관리와의 대담>) 접기
P. 297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 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 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 민중이 한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一致)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297쪽, <조선혁명선언>) 접기
P. 383 본 정부의 민족 문제에 대한 해석은 극히 간단 명백하다. 한 마디로 단정하여 말하면 ‘삼균제도를 시행하고 각 민족의 요소 회복을 주장하는 것’이다. 삼균제도란 정치적으로 인민에게 균등한 참정권을 주고, 경제적으로 인민에게 균등한 수익권을 주고, 교육적으로 인민에게 균등한 수학권을 주는 것이다. 민족의 요소는 영토ㆍ주권ㆍ언어ㆍ문자ㆍ경제ㆍ문화와 정기이다. 일개 민족마다 그 고유 요소를 회복하고 인민에게 정치ㆍ경제ㆍ교육의 균등을 실현하면 삼균제도 하에 민족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383쪽, <23주년 3.1절 선언>)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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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옥균 (지은이)
조선 말기의 정치인이자 혁명가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고 개화당을 조직하여 근대국가 수립에 진력했다.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한 뒤 중국 상해에서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저서로 『기화근사』 『치도약론』 『갑신일록』 등이 있다.
최근작 : <갑신정변 회고록>,<김옥균·유길준·주시경>,<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10종 (모두보기)
신채호 (지은이)
역사가이자 언론인이며 독립운동가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 1880년 충청남도에서 출생했다. 호는 단재丹齋, 가명은 유맹원劉孟源이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18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가 되던 1905년 성균관박사가 되었다.
그해 《황성신문》의 기자가 되었고, 이듬해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되었다. 1907년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참여했고 시론, 논설 등을 쓰며 애국계몽운동과 항일언론운동을 펼쳤다. 또한 〈독사신론〉을 포함한 역사관계 논문과 다수의 영웅전을 써서 민족의식과 독립정신 고취에도 힘썼다. 1910년 신민회 동지들과 중국 칭다오로 망명한 후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에 전념하는 한편 답사와 저술 등을 통해 상고사 연구에 힘썼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으며, 1927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약했다. 1928년 4월 무정부주의동방연맹대회에 참석한 그는 5월, 타이완에서 체포되어 다롄으로 이송되었다. 1930년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으로 이감되었으며, 1936년 옥중에서 뇌일혈로 순국했다. 접기
최근작 : <신채호의 을지문덕>,<한용운·신채호>,<조선혁명선언 1923> … 총 317종 (모두보기)
이광수 (지은이)

1892. 3. 4. 평북 정주 출생. 호는 춘원(春園).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람.
1905. 일본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해 《소년》 지 발행.
1910. 귀국해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음.
1915. 다시 일본에 가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매일신보〉에 연재.
1919. 도쿄 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한 후 이를 전달하기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도산 안창호를 만나 민족독립운동에 공감하고 여운형이 조직한 신한청년당에 가담.
1921. 귀국. 1910년 중매로 결혼한 백혜순과 이혼하고 1918년 결핵 치료에 도움을 준 의사 허영숙과 결혼.
1928-1929. 〈동아일보〉에 『단종애사』 연재.
1937.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
1950.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자강도 만포시에서 병사.
『개척자』 『선도자』 『재생』 『마의태자』 『단종애사』 『군상』 『흙』 『무정』 『유정』 『이순신』 『그 여자의 일생』 『이차돈의 사』 『그의 자서전』 『사랑』 『원효대사』 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 수필,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다. 접기
최근작 : <일본어 시가·수필·좌담·서간 외>,<필요한 서사>,<단종애사 (무삭제 현대어 편역본)> … 총 1379종 (모두보기)
이승만 (지은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한국 현대사에 획을 그은 주요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48년부터 1960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해왔다.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요, 정치가의 면모를 갖춘 그는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중 하나로, 프린스턴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한국의 독립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재임 당시 대한민국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었는데 이때 그는 국가의 존립과 자유를 지켜냈고 전쟁 후에는 국가의 재건과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정치적 억압이나 선거 조작 같은 논란이 4‧19혁명으로 비화되자 그는 대통령직에서 내려와 하와이로 떠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은 한국의 정치‧사회 및 국제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귀감이 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이승만 스피치 1950>,<리승만박사 휘호집>,<독립정신> … 총 34종 (모두보기)
최익현 (지은이)
1833에 태어났다. 조선 말기 애국지사로 호는 면암. 1855년 명경과에 급제, 승문원 부정자로 벼슬길에 오른 후 1870년에 승정원 동부승지를 지냈다. 1876년에는 '병자지부소'를 올려 강화도 조약을 반대하다가 흑산도로 유배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조약에 참여한 박제순 등 5적의 처단을 주장했다. 1906년 윤4월에 전라북도 태인에서 궐기하여 8도 사민에게 포고문을 내고 항일투쟁을 호소하여 순창에서 의병을 이끌고 일본군과 관군을 상대로 싸우다가 체포되어 쓰시마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적이 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단식하다가 1906년 세상을 떠났다. 지은 책으로 <면암집> 40권, 속집 4권, 부록 4권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고전 읽기의 즐거움 2> … 총 8종 (모두보기)
한용운 (지은이)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이다. 속명은 정옥, 법명은 용운, 호는 만해였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여 한문과 경전을 통달했고, 14세에 조혼했으나 집을 나가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설악산 백담사와 오세암 등에서 불교를 공부하며 출가했다. 일본을 방문해 신문물을 접한 뒤 불교 개혁을 주장하며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독립선언서 수정과 공약삼장 작성에 기여했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3년간 복역했다. 1920년대에는 『유심』지를 창간하고, 1925년 시집 『님의 침묵』을 집필해 상징적 언어로 독립정신을 노래했다. 1927년 신간회 창립에 참여해 사회운동을 이끌었으며, 불교를 통한 민족 계몽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1933년 성북동에 심우장을 짓고 은거하였으며, 1944년 영양실조로 입적했다. 그의 삶은 수행자이자 저항시인,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의 길이었다. 접기
최근작 : <쓰면서 채우는 필사 시리즈 1~3 세트 - 전3권>,<한용운·김영랑>,<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 … 총 385종 (모두보기)
서재필 (지은이)
본관은 대구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서재필은 1882년 과거에 합격한 뒤 개화당 인사들과 교류하여,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펜실베니아주 해리 힐맨 아카데미를 마치고 1893년 컬럼비아 의과대학(현 조지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1890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1894년 뮤리엘 암스트롱Muriel Amstrong과 결혼하였다. 1895년 말 귀국하여,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고, 독립협회의 결성과 독립문의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배재학당의 협성회를 지도하였다.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인쇄 및 문구사업에 종사하다가 3ㆍ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설립하고 Korea Review를 발간하였으며, 한국친우회를 결성하였다. 1921년에는 구미위원부 임시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2년부터 국내와 미주의 한국언론에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병원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1947년 7월 미군정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미군정 최고고문 및 남조선 과도정부 특별의정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후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1977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4년 유해가 봉환되어 서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의 개화와 독립, 정부수립에 기여하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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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헌 (지은이)
호는 인경려주인人境廬主人이며, 광동廣東 출신. 초대 주일공사 하여장을 수행하여 일본에서 활동. 당시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대한 대책으로는 한 ·중 ·일 3국이 협력하여 미국과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했으며, 조선 통신사 김홍집과 만나 국제관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뒤,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제공함. 총 11권에 1천여 편의 시를 수록한 《인경려시초(人境廬詩草)》를 남김.
최근작 : <조선책략 대청흠사필담>,<조선책략>,<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8종 (모두보기)
여운형 (지은이)
(呂運亨, 1886~1947)
일제강점기와 광복 후에 활동한 독립운동가·정치가. 경기도 양평 출생. 조선시대 양반사회와 계급주의를 신봉하는 부친과 달리 동학에 가담한 조부와 증조부에게 큰 영향을 받음. 1900년 배재학당에 입학하여 기독교를 접하고, 홍화학교와 우무학당에서 수학. 1906년 부친이 사망하자 집안 노비문서를 모두 불태워 그들을 해방시킴. 1907년부터 선교사 보조원 생활을 했으며 고향집에 광동학교를 세워 청년들을 계몽하는 데 앞장섬. 이후 강릉 초당의숙에서 평등사상과 신학문을 가르쳤으나 총독부에 의해 1년 만에 폐쇄. 1914년 중국으로 건너가 신학문 공부, 1918년 상하이에서 장덕수를 만나 정치와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일대 전환기를 맞음. 1920년 조선 독립을 지원받을 수 있다는 제안에 공산당에 참여했으나 와해됨. 1922년 모스크바에서 레닌과 트로츠키를 만나 조선의 사정을 논의, 중국 상하이로 돌아와 쑨원과 중국 공산당 인사들과 교류, 1925년부터 중국혁명운동에 적극 참여. 1929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혐의로 상해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부에 체포됨. 이후 중국에서 실패한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 허망한 날을 보냈으나 국내에 서 일약 유명인이 됨. 1933년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되며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으로 취임, 그의 명성에 힘입어 번창했으나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1936년 폐간됨. 1944년 조선건국동맹 조직. 1945년 광복을 맞아 건국 준비위원회 조직, 임시정부 지사들과 대립. 1946년 민주 주의민족전선을 결성, 반대파에 밀려 탈퇴. 1947년 근로인민당을 조직했으나 극좌, 극우로부터 소외당한 채 좌우 합작운동을 추진하던 중 극우파에 의하여 암살되었다.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 조선건국동맹 위원장,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조선인민당 당수, 조선체육회 (대한체육회 전신) 제11대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대통령장(2005), 대한민국장(2008)을 수상했다. 접기
최근작 : <김구·여운형>,<여운형 작품집>,<해방의 날은 왔다> … 총 39종 (모두보기)
박헌영 (지은이)
공산주의 혁명가. 1925년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했고, 1946년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하고 초대 부위원장을 맡았다. 같은 해 입북하여 남노당을 지도하다가 김일성에게 숙청됐다.
최근작 :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조선 인민에게 드림> … 총 4종 (모두보기)
김병국 (지은이)
조선 말기의 문신.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황준헌의 <사의 조선책략>에 따라 미국과의 수교에 찬성했다.
최근작 :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2종 (모두보기)
이만손 (지은이)
조선 말기의 유학자. 상주와 안동 지방의 유생들과 함께 <사의 조선책략>에 반대하는 소를 고종에게 올렸다.
최근작 :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2종 (모두보기)
홍영식 (지은이)
조선 말기의 문신. 개화파의 일원으로 갑신정변에 참여했다가 정변이 실패하면서 청군에게 피살됐다.
최근작 :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2종 (모두보기)
조소앙 (지은이)

1887년(고종24)~1958. 조선 후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본명은 용은(鏞殷), 자는 경중(敬仲)이며 소앙(素昻)은 호이자 필명이다. 아버지는 조정규(趙禎奎)이고 어머니는 박필양(朴必陽)이며, 경기도 파주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1904년(광무8) 성균관을 수료하고 황실 유학생에 선발되어 1912년까지 일본 도쿄부립제일중학교(東京府立第一中學校),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등에서 근대 교육을 받았다. 1913년 중국에 망명하여 항일 단체인 대동당(大同黨)을 조직하였고, 1917년 대동단결선언(大同團結宣言)을 발표하였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임시 헌장을 기초하였으며, 임시정부의 외무부장(外務部長)으로서 외교 활동을 펼쳐 한국의 자주독립을 역설하였다. 1930년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을 창당하고 삼균주의(三均主義)를 창시하였다. 1941년 삼균주의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기초하였다. 광복 후 1950년 5?30총선에 서울 성북구에서 출마하여 제2대 국회에 진출하였으나 6?25전쟁 중 납북되었으며 1958년 서거하였다. 1989년 임시정부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장에 서훈(敍勳)되었다. 접기
최근작 : <조소앙>,<유방집>,<소앙집> … 총 6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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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변호사. 1919년 임시정부가 대미외교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에 설치한 외교기관인 구미위원부의 법률담당 고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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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동경 유학 중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논박하는 글을 발표했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927년 신간회 결성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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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지은이)
독립운동가. 1930년대 중국에서 조선민족해방동맹을 조직했고, 광복 후에는 좌우합작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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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옮긴이)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겨레> 기자, <이코노미 21> 편집장,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아시아경제>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 《아시아보고서》, 《손바닥 금융》(공저), 《손바닥 경제용어》(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전염성 탐욕》, 《자유문화》,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자유에 대하여》,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톰슨의 쉬운 미적분》,《상대성의 특수이론과 일반이론》이 있다.
최근작 : <손바닥 경제용어>,<월스트리트 누구를 위해 어떻게 움직이나>,<아시아 보고서> … 총 3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사에서 근대가 언제부터 언제까지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는 개항의 해인 1876년부터 광복의 해인 1945년까지를 한국 근대사의 시점과 종점으로 보는 가장 일반적인 관점을 취하여 그 사이에 씌어진 글 중에서 한국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아 시간순서로 배열했다.
세계사에서 근대는 중세를 지배하던 신분제의 구속을 떨쳐내고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사상과 제도의 개혁을 추구한 시대였다. 그것을 떠받치는 물질적 토대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한 생산력의 확대로 형성됐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내발적 근대화의 자체 추동력을 갖추기 전에 제국주의의 침탈에 의해 초장부터 왜곡됐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침탈에 이어 일본 제국주의의 국권찬탈에 의해 그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한국 근대사는 ‘근대 아닌 근대’의 연속이 돼버렸다. 이는 민족적으로 크나큰 불행을 초래했다. 일제 치하에서 피지배민족으로서 겪은 고통도 그렇지만, 그 뒤로 오늘날까지 분단민족으로서 겪는 고통도 그러한 불행의 연장선에 있다.
현재를 과거와 연관시키는 대목에서도 많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일제시대 한국 경제발전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그나마 학술적 토론의 외양을 갖추고 있으나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의 성격 규정, 독립운동 분파별 노선 평가, 광복 이후 남북분단의 원인 분석 등은 여전히 구시대적 이념논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사 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갈등도 미래지향적인 토론보다 과거회귀적인 편견의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1차 사료로 돌아가는 것이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하나의 길이 된다고 본다고 편역자는 말한다. 역사적 사건을 교과서나 해설서로 전달받기보다는 해당 사건에 대한 당대인의 기록을 통해 직접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엮어진 책이기에 독립운동가의 글도 들어있지만 친일행위자의 글도 들어있다. 또 좌파가 쓴 글도 있고 우파가 쓴 글도 있다. 편역자는 독자들에게 “마음속 칸막이를 걷어내고 읽어 달라”고 당부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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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출간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리드미 2023-03-12 공감 (1) 댓글 (0)
무엇보다 직접 원문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이 지름길.
낮에뜬별 2015-02-19 공감 (0) 댓글 (0)
마이리뷰
[마이리뷰] 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민족해방을 위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들의 노력이 대단하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진심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당시 자기 입장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한 흔적이 보이는것 같습니다.
jhlee 2016-06-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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