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3

나의 한국 생활 회고와 에세이들 (영문) | 서재필 | 알라딘

My Days in Korea and Other Essays (영문) | 서재필 | 알라딘
My Days in Korea and Other Essays (영문)
서재필 (지은이)연세대학교출판부1999





목차

FOREWORD

INTRODUCTION

Part Ⅰ: "My Days in Korea"

Part Ⅱ: "Korea for the Koreans"

Part Ⅲ: "Random Thoughts"

Part Ⅳ: "The Way to Freedom and Democracy"

Appendices: Dr. Philip Jaisohn, the Man




저자 및 역자소개
서재필 (지은이)


본관은 대구이며, 호는 송재松齋이다.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이라는 미국 이름을 가지고 있는 서재필은 1882년 과거에 합격한 뒤 개화당 인사들과 교류하여, 1884년 갑신정변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펜실베니아주 해리 힐맨 아카데미를 마치고 1893년 컬럼비아 의과대학(현 조지 워싱턴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의사가 되었다. 1890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1894년 뮤리엘 암스트롱Muriel Amstrong과 결혼하였다. 1895년 말 귀국하여, 1896년 ??독립신문??을 창간하였고, 독립협회의 결성과 독립문의 건립을 주도하였으며, 배재학당의 협성회를 지도하였다. 1898년 미국으로 돌아간 뒤 인쇄 및 문구사업에 종사하다가 3ㆍ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설립하고 Korea Review를 발간하였으며, 한국친우회를 결성하였다. 1921년에는 구미위원부 임시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22년부터 국내와 미주의 한국언론에 논설을 기고하였으며, 병원을 개업하기도 하였다. 1947년 7월 미군정의 초청으로 귀국하여 미군정 최고고문 및 남조선 과도정부 특별의정관으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후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1977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1994년 유해가 봉환되어 서울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한국의 개화와 독립, 정부수립에 기여하였다. 접기

최근작 : <한국 산문선 1~10 세트 - 전10권>,<한국 산문선 : 근대의 피 끓는 명문>,<원문 사료로 읽는 한국 근대사> … 총 10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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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Je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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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7, 2025
This is a very specialized deep-dive into Korean history. It is a collection of the English writings of Philip Jaisohn (So Jae Pil), an influential first-generation Christian modernizer and independence activist. His life spanned some of the most interesting and unfortunate aspects of modern Korean history and thus some parts of it might be useful to different students depending upon their research interest.

First, Philip Jaisohn was born into an elite Korean family in 1864. As part of Korea’s drive to open and modernize, he was one of the first fifty students sent to Japan to study in the military academy there. Upon their return, however, these students found the conservative faction in power and themselves uninfluential and frustrated.

Their response was the 1884 Gapsin Coup, which the editor of this volume called “ill-fated”, but I would call disastrous. Led by Kim Okkyun, these students and others of similar mind took over the royal palace, killed several conservative officials, and kidnapped the King and Queen to force them to initiate reforms. They convinced the Japanese legation to lend them 140 soldiers for support. After a few days, the Queen sent word to the Chinese troops in Seoul for help, and so 1500 Chinese soldiers stormed the building where the King and Queen were being held. The result was the defeat and death of Japanese soldiers and Korean reformers. Philip Jaisohn and a few others managed to escape to Japan. The other results were the King and Queen became even more adverse to reform and hated the Japanese.

Philip Jaisohn had an eventful next twelve years. He made his way to America where he learned English, became the first person of Korean ethnicity to become an American citizen, became a medical doctor, and married an American.

In 1896, Philip Jaisohn returned to Korea where he advocated for liberal democracy, educational reforms, Christianity, government transparency, and an independent Korea. He did this by founding a newspaper, The Independent, which was published in English and Korean; by establishing the Independence Club, a hall in Seoul where he and others would discuss and advocate for these ideas in front of crowds; and he had erected the Independence Gate, which still stands today. Unfortunately, these ideas made him so unpopular with the Korean court that he had to leave again in 1898.

Back in America, he first went to the Spanish American war, became a clerk, and then was involved in medical research and practice. In the meantime, Korea had become a colony of Japan, and when the March First Movement for independence sprang up, Jaisohn became involved in various congresses, organizations and publications advocating for Korean independence. He worked with figures such as Rhee Syngman and Ahn Chul So.

Finally, he was asked to come back to Korea as an old man by the United States Military Government after World War Two. He was involved in various political issues and gave speeches until his return to the USA in 1948. He died in 1951.

These documents are various pamphlets, letters, editorials, and speeches that Jaisohn wrote from 1896 to 1950. Some of them are quite interesting as they detail life and politics in late Chosun Dynasty Korea from the vantage of an insider on the outs. Large parts of his narratives oppose what would now be considered as the dominant narrative of the period. On the other hand, much of what he wrote during the 1920s and 30s is less interesting to me. He writes many letters and editorials on the need for Korean independence in which he often repeats the same points because he is addressing different audiences. He comments on the issues in Asia, particularly the Japanese war in China, as a contemporary figure. But he also writes about other issues such as the advantages of democracy, why citizens need to be educated, or why hygiene is important. Because the writings span so many years, you will find contradictions to some of the earlier things you wrote. So I would not recommend reading this from cover to cover unless you really want to research Philip Jaisohn.

I admire Philip Jaisohn not just for his advocacy of democracy, liberalism and independence, although those are the reasons he is buried in the Seoul National Cemetery. I also think of him arriving in San Francisco, penniless and having been called a traitor to his home country. He was a great immigrant success story. Imagine how most white Americans looked at him. He worked hard, made friends, and got a great education. He was an example for others. And he did not forget about his homeland. It is evident in his writing that he believed America to be a place of justice and prosperity, and he only wanted Korea to be as just and prosperous. I think he would be very proud of the place in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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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진님, 요청하신 서재필(Philip Jaisohn) 박사의 영문 저술 집대성집 <나의 한국 생활 회고와 에세이들>(원제: )에 대한 1,000단어 안팎의 요약 및 평론이다.

<나의 한국 생활 회고와 에세이들> 요약 및 평론

1. 서론: 제3의 시선이 담긴 근현대사의 영문 기록

1999년 연세대학교 현대한국학연구소를 통해 정식 편집·출간된 <나의 한국 생활 회고와 에세이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몸소 관통한 서재필(Philip Jaisohn, 1864~1951) 박사가 1930년대부터 194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해외 언론, 신문, 방송, 연설문 등에 영문으로 기고하거나 남긴 글들을 한데 모은 사료적 문집이다.

이 저작은 단순한 회고록의 범주를 넘어선다. 한문과 조선 고전에 능통했던 청년 양반이자 갑신정변의 주역, 미국으로 망명해 의학도를 거쳐 최초의 한인 미국 시민권자가 된 언론인, 그리고 해방 후 미군정청 최고고문으로 다시 고국을 찾았던 철학적 정치가로서의 서재필이 지닌 다층적 면모가 영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선명히 드러난다. 서재필은 한국인이라는 출생적 정체성과 미국인이라는 법적·사상적 정체성 사이에서, 특정 국가의 국수주의나 맹목적 애국심에 갇히지 않고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한국의 현실을 지시하고 있다.

2. 본론: 책의 주요 구성 및 핵심 요약

본 도서는 총 4개의 부(Part)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재필의 생애 주기와 정치적 활동의 궤적을 그대로 반영한다.

(1) 제1부: 나의 한국 생활 ()

제1부는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던 <신한민보>(The New Korea) 영문판 등에 연재되었던 서재필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1884년 갑신정변 전후의 상황과 1896년 <독립신문> 창간 및 독립협회 운동에 이르는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서재필은 조선 말기 왕실과 척족 정권의 무능, 외세의 침탈에 맞서 왜 십대 후반~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이 과격한 정변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냉철하게 회고한다. 또한, 정변 실패 후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고 미국으로 망명하게 된 과정, 이후 고국에 돌아와 한글·영문 <독립신문>을 만들어 민중의 계몽과 민주적 의식을 깨우치려 했던 독립협회 시절의 의도와 한계를 객관적 어조로 담아냈다.

(2) 제2부: 한국인을 위한 한국 ()

제2부는 1919년 3·1 운동 직후, 서재필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서재필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를 주도하고 한국통신전(Korean Information Bureau)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서구 사회를 향해 발표한 각종 선언문과 논설, 기고문을 모은 것이다. 그는 서구 언론과 정계, 지식인층을 향해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논리적으로 폭로했다. 동시에 한국인은 자치 능력과 민주적 소양을 충분히 갖춘 민족임을 강조하며, 국제 사회가 한국의 독립을 지원해야 하는 당위성을 설득력 있는 영문으로 피력했다.

(3) 제3부: 시사 논평과 사유 ()

제3부는 1937년 중일전쟁 발발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미주 한인 사회와 미국 지식인층을 대상으로 쓴 시사 칼럼과 정치 철학적 에세이들이다. 이 시기 서재필은 단순한 한반도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동아시아 정세, 세계 문명의 흐름, 국제법과 국제관계, 경제 및 종교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제국주의의 파시즘적 속성을 비판하고, 개인의 자유와 법치, 합리적 이성이 어떻게 세계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 통찰을 제시한다.

(4) 제4부: 자유와 민주주의로 가는 길 ()

제4부는 해방 후인 1947년부터 1948년까지, 80세가 넘은 노구의 몸으로 미군정청 최고고문(Special Korean Counselor) 자격으로 귀국했을 당시 한국 민중과 정치인들을 향해 했던 라디오 방송 연설문과 담화문을 담고 있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과 분단의 징후를 목도한 그는 모국어와 영문 담화를 통해 맹목적인 이념 투쟁을 경계하고, 타협과 협력, 그리고 법치에 기반한 현대적 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함을 호소했다.

5. 평론: 경계인의 유산과 현대적 사상 가치

(1) 근대적 개인의 탄생과 ‘세계인’으로서의 서재필

<나의 한국 생활 회고와 에세이들>이 지닌 가장 큰 사상적 가치는, 이 글들이 전형적인 민족주의적 서사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서재필의 문장들은 조선 후기의 전근대적 신분제와 무능한 전제왕권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한다. 그가 꿈꾼 '독립'은 단지 특정 왕조나 집권 세력의 권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신분적·사상적 압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민으로서 권리를 누리는 '근대 국가의 수립'이었다.

미국 시민권자이자 의사로서의 삶을 통해 서구의 합리주의와 법치주의를 온전히 내면화한 그는, 한국을 바라볼 때 애증이 섞인 냉철한 관조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이는 그를 단순한 '한국의 애국지사'라는 단편적 틀에 가두기 어렵게 만들지만, 동시에 한 나라에 대한 국수주의적 충성심을 넘어 보편적 인권과 합리성을 지향했던 선구자적 '세계인'의 면모를 명증하게 증명한다.

(2) 언어적 격조와 사료적 독창성

서재필의 영문 텍스트는 당대 미국 지식인층이 쓰던 격조 높은 문체와 정교한 논리를 자랑한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동양의 한학을 깊이 이수한 인물이 서양의 고등 학문과 언어를 완벽히 체화하여, 동서양의 문명을 비교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독보적이다.

특히 제1부의 회고록은 정변과 망명이라는 극적인 사건을 과장된 영웅주의 없이 덤덤하고 정교하게 복원해 냈으며, 제4부의 연설문들은 이념적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해방 공간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려 했던 한 늙은 정치가의 외롭고 고결한 투쟁을 보여준다. 비록 그의 구상이 당대의 현실 정치 속에서 완수되지는 못했으나, 그가 남긴 영문 기록들은 한국 근현대 지적 사상사에서 매우 희귀하고 귀중한 자산이다.

4. 결론: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나의 한국 생활 회고와 에세이들>은 시대의 거센 풍파 속에서 고국과 이방, 한학과 서양의학,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경계에 서야 했던 서재필의 평생에 걸친 지적·정치적 궤적을 정직하게 담아낸 문집이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반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주의적 틀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보편적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유를 요구한다. 한 사람의 근대적 개인이자 세계인으로서 시대를 앞서 고민했던 서재필 박사의 영문 유산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정체성과 자유, 그리고 인류 보편의 가치에 관한 강렬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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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My Days in Korea and Other Essays》

《나의 한국 시절과 기타 논문》 — 1,000단어 요약·평론

《My Days in Korea and Other Essays》는 서재필(Philip Jaisohn, 1864–1951)의 일반적인 자서전이라기보다, 자신의 한국 경험을 회고한 글과 한국의 정치·사회·독립 문제에 관한 여러 글을 모은 저작이다. 따라서 앞서 본 채닝 리엄(Channing Liem)의 《Philip Jaisohn: The First Korean-American》이 <타인이 서재필을 바라본 전기>라면, 이 책은 <서재필 자신이 자신의 경험과 한국을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보여주는 1차 자료라는 점에서 훨씬 중요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서재필이 자신의 청년기를 수십 년 뒤 미국에 정착한 사람의 눈으로 회고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두 사람이 겹쳐 있다. 하나는 1880년대 조선의 혁명적 개화청년 <서재필>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시민이 되어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언어로 조선을 되돌아보는 <Philip Jaisohn>이다.

1. 조선이라는 사회에 대한 기억

서재필의 회고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통 조선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한 조선을 낭만적인 고향으로 회상하지 않는다. 신분제, 양반의 특권, 관료의 부패, 백성의 정치적 무력함, 근대적 교육과 과학의 부족을 강조한다.

그에게 조선의 위기는 단순히 일본이나 청나라 같은 외세가 침략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외세가 침투하기 이전부터 국가 내부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이것은 서재필의 역사인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라가 약해서 외세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독립을 지키려면 먼저 국민과 국가가 변해야 한다.>

따라서 그의 민족주의는 후대의 반일 민족주의와 상당히 다르다.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지만 한국이 당한 모든 불행을 일본 탓으로 돌리는 방식은 아니다. 한국인의 자기개혁과 책임을 동시에 요구한다.

2. 갑신정변 — 실패한 혁명에 대한 자기해석

1884년 갑신정변은 그의 생애를 완전히 바꾼 사건이었다.

젊은 서재필은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과 함께 급진개화파에 참여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조선을 근대국가로 급속히 개조하는 것이었다. 신분적 특권을 약화시키고, 행정과 재정을 개혁하며,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국가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정변은 불과 사흘 만에 실패했다.

서재필의 회고에서는 이 사건이 <시대를 너무 앞서간 개혁의 실패>로 나타난다. 자신과 동료들은 조선을 구하려 했지만 구체제의 저항과 국제정치의 현실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독자는 여기서 약간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갑신정변은 분명 근대적인 개혁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일본군의 지원에 의존한 소수 엘리트의 정변이기도 했다. 또한 농민을 비롯한 대중적 기반이 거의 없었다. 서재필의 회고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보다는 개혁파의 선의와 목표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책은 역사책이라기보다 중요한 <회고록적 1차 자료>로 읽어야 한다.

3. 미국은 그에게 무엇이었는가

갑신정변 실패 후 서재필은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이것은 단순한 장소 이동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그는 거의 처음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영어를 배우고 학교에 다니고 의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으며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변화는 정신적인 것이었다.

서재필에게 미국은 <시민이라는 인간형>을 발견한 곳이었다.

조선에서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출생과 신분에 의해 크게 결정되었다. 반면 그가 이해한 미국의 이상은 법 앞에서의 평등, 개인의 권리, 언론의 자유, 시민의 정치 참여, 선거와 공론이었다.

물론 당시 미국 현실에는 흑인 차별, 중국인 배척, 여성의 제한된 정치적 권리 등 심각한 모순이 있었다. 서재필의 미국관은 실제 미국보다 상당히 이상화되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가 미국에서 습득한 <공화국의 시민>이라는 개념은 이후 그의 한국관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4. 《독립신문》과 ‘국민 만들기’

1895년 말 귀국한 서재필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독립신문》과 독립협회였다.

여기서 그의 사상은 가장 명료하게 드러난다.

한국의 독립을 지키려면 강한 왕 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국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이 중요했다.

한글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일반 사람들이 정치와 국제정세를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정부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국민이 공공문제를 토론하도록 해야 했다.

이 점에서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단순한 정치단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서재필에게 그것은 일종의 <민주주의 학교>였다.

백성이 정부의 대상에서 시민으로 변해야 국가도 근대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서재필의 ‘독립’에는 두 층위가 존재한다.

<외국으로부터의 국가독립 + 권력으로부터의 시민적 자립>

두 번째가 없으면 첫 번째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5. 다시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

1898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뒤 서재필은 오랫동안 한국 정치의 중심에서 떨어져 살았다. 그러나 1910년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면서 그는 다시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그의 방법은 무장투쟁보다는 미국 여론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필라델피아의 한인대회, 한국친우회, 강연과 출판 등을 통해 한국 독립을 미국 사회에 알리려 했다.

여기서 그의 독립론에는 중요한 특징이 나타난다.

한국 독립은 <한국인만의 민족적 요구>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원칙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에게 일본 제국주의가 잘못된 이유는 일본인이 본질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자유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민족주의가 인종적·혈통적 민족주의보다는 시민적 민족주의에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6.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문제 — ‘한국인 서재필’과 ‘미국인 제이슨’

이 책의 진짜 매력은 역사적 사건보다 <저자의 시선>에 있다.

서재필은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산 뒤 과거의 조선을 회고한다.

따라서 그는 더 이상 1884년의 서재필이 아니다.

미국의 자유주의적·공화주의적 가치관을 내면화한 Philip Jaisohn이 과거의 한국을 해석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글에서는 때때로 전통 조선에 대한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와 미국에 대한 지나치게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난다.

이것은 이 책의 약점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역사적 가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사람이 이민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다시 해석하는 과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7. 평론 — 이 책은 ‘독립운동가의 회고록’ 이상이다

《My Days in Korea》를 단순히 서재필의 독립운동 회고록으로 읽으면 책의 절반밖에 읽지 못한다.

더 흥미로운 질문은 이것이다.

<미국인이 된 조선인은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게 되었는가?>

그가 조선의 신분질서와 정치문화를 가혹하게 비판하는 것은 단순한 자기혐오가 아니다. 미국에서 획득한 시민적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출생사회를 다시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위험도 있다.

19세기 말 미국 역시 인종차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사회였다. 필리핀을 식민지화했고 아시아계 이민자를 차별했으며 흑인에게 실질적 시민권을 보장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재필이 받아들인 ‘미국’은 상당 부분 <미국이 스스로 주장한 이상>이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서재필에게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던질 수 있다.

첫째, 그는 어떻게 조선의 신민에서 근대적 시민으로 변했는가?

둘째, 그는 왜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적 모순을 충분히 보지 못했는가?

이 두 질문을 함께 놓을 때 서재필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훨씬 흥미로운 근대인이 된다.

종합 평가

앞서 본 채닝 리엄의 전기와 이 책을 함께 읽으면 차이가 선명하다.

<채닝 리엄은 서재필을 ‘잊힌 영웅’으로 복원한다. 서재필 자신은 ‘왜 한국이 실패했고 어떤 국민이 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후자의 문제의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재필에게 한국 근대사의 핵심 문제는 결국 <일본>만이 아니었다. 조선이 왜 스스로를 개혁하지 못했는가, 왜 국민이 정치의 주체가 되지 못했는가, 독립국가를 유지할 시민적 역량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이 때문에 《My Days in Korea and Other Essays》는 독립운동사뿐 아니라 <한국 근대 시민사상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읽을 가치가 큰 책이다.

그리고 서재필이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채닝 리엄의 전기보다 오히려 이 책이 먼저 읽혀야 한다. 전기는 <서재필이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주지만, 이 책은 <서재필이 한국과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My Days in Korea》는 한 조선인이 미국인이 되어 과거의 조선을 다시 바라본 기록이며, 그의 독립론이 결국 ‘나라를 되찾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시민을 만드는 것’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서재필 사상의 핵심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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