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 조선 엘리트 파워
안승일 (지은이)연암서가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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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열정의 천재들, 광기의 천재들>의 작가 안승일의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저자는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 소용돌이치는 그 역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젊은 그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그 역사적 사례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조선 엘리트 파워 급진 개혁파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적인 행동과 치열한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제도권에서 조국의 앞날을 위해 분골쇄신한 김홍집, 어윤중 등 온건 개화파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거사에 대한 이해와 반성 및 재인식, 그리고 내일을 향한 지혜와 슬기를 모으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김옥균과 주요 등장인물들의 활동과 당시의 긴박한 시대상황을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직조하여 독자들의 이해와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 각 인물들의 실상과 허상, 특히 김옥균의 실체를 소상하게 벗김으로써 인간 김옥균의 장점과 단점, 그에 대한 맹목적인 편애나 편견, 그리고 오해를 가급적 불식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목차
〔프롤로그〕격동의 시대 격정적인 삶을 살다 간 ‘젊은 그들’의 꿈과 좌절
제1장 새 물결 새 바람, 그 이름 개화사상
개화의 선각자, 서울 ‘북촌’ 박규수와 그의 집 ‘사랑방 손님들’
개화사상의 원류 실학파의 ‘북학’과 박제가의 북학사상
제2장 역사의 전면에 나선 ‘젊은 그들’
총체적 난국에 빠진 후기 조선왕조
김옥균, 운명의 마을 서울 ‘북촌’에서 뜨다
젊은 그들, ‘불온서적’을 탐독하고 ‘불온서클’을 조직하다
대원군의 집권과 이에 맞서 이긴 민비의 세 불리기
일본의 조선 침탈 신호탄 운요호 사건
갑신정변의 전주곡 임오군란
고종과 개화파, 일본 미국을 벤치마킹하다
제3장 ‘3일 천하’로 끝난 허무한 꿈
난관에 부닥친 1단계 ‘거사’ 계획
심기일전 ‘거사’ 세부계획을 재수립하다
정변 가담자 포섭 및 행동대원 동원 준비
‘운명의 날’ 1884년 12월 4일, ‘정변’을 결행하다
신정부 조각과 정강 공포
신정부, 청국 군 개입으로 3일 만에 무너지다
수구파의 반격과 잔혹한 보복
예견된 실패-디테일이 부족한 스케일
잃은 것과 얻은 것
제4장 참담한 망명 생활-그 ‘잃어버린 10년’
후쿠자와 유키치를 다시 만나다
박영효의 김옥균 콤플렉스
거듭되는 신변위협과 재기의 몸부림
절해고도 오가사와라 섬으로 추방되다
두 번째 추방지 홋카이도에서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좌절 속에서의 문란한 사생활
피할 수 없는 선택, 거부할 수 없는 유혹-상하이 행
제5장 혜성처럼 떠오르다 운석처럼 떨어지다
더욱 암담해진 조국의 현실
동학농민군 진압과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 지배권을 선점한 일본
상하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다
김옥균 암살은 조중일 ‘3국 합작 모살’
암살자 홍종우의 그 뒤 행적
제6장 망국의 길에서 다시 만난 ‘북촌’ 개화파들의 험난한 행로
재기와 좌절을 반복하며 친일파로 전락한 박영효
정계 복귀 후 미국에 재 망명하여 쓸쓸히 생을 마감한 서광범
자기실현과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다채로운 삶을 살다간 서재필
전통과 근대화를 아우른 중도 개화 주창자 유길준
죽음 앞에서도 의연했던 ‘조선의 마지막 개화파’ 김홍집
도피 중 전설 같은 죽음을 당한 올곧은 재정 전문가 어윤중
망국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천수天壽를 다한 현실주의자 김윤식
〔에필로그〕인간 김옥균의 빛과 그림자-왜 이 시대에 김옥균을 다시 이야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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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18 당시 박규수 집에 가장 빈번히 출입하는 사람은 중인 출신 역관 오경석과 같은 역관이며 한의사인 유대치(본명 유홍기)인데 이들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소위 새 물결·새 바람 개화사상의 선각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해서 만나고 만나야만 했는가? 박규수가 처음 만난 사람은 역관 오경석이었다. 오경석은 박규수를 만나기 전인 1853년부터 10여 차례 역관 자격으로 사신을 따라 북경을 왕래하며 서양 문물의 눈부신 발전상에 큰 자극을 받고 각종 신학문 자료를 입수하거나 필사筆寫하여 국내에 가지고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오경석은 서양의 발전상과 선진문물에 관심이 많은 박규수를 접하게 되었으며,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만나 뜻을 같이한 시기는 대략 1869년 4월 박규수가 상경한 이후부터였다. 이무렵 오경석은 자신과 동년배(1831년?)이며 신분이 같은 역관이자 한의학자인 유대치를 자주 만나 그에게 신학문을 소개하였다. 두 사람은 중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정치일선에 나설 수 없었으므로 오경석은 유대치와 함께 박규수를 만나 개화의 필요성을 건의하였으며, 세 사람은 만남이 거듭되면서 자연스럽게 의기투합하였다. 첫 상면부터 유대치의 인품에 매료된 박규수는 그 뒤부터 두 사람을 자기 집 사랑채로 자주 불러 이들과 밀회를 거듭하고 위기에 처한 조선의 참담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개화가 절실하다는 인식을 함께하게 되었다. 접기
P. 34 조선 왕국과 조선 민족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데, 이 위기는 일차적으로 서양열강의 동양침탈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고, 이러한 사태가 조선에도 곧 불어 닥칠 것이다. 이러한 민족적 대 위기 속에서 조선의 정치는 부패해 있고 조선의 사회와 경제는 세계의 대세 속에서 매우 낙후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대 혁신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대 혁신은 조선 왕조의 부분적인 개혁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일대 경장·개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개화사상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며 위기를 타개하려는 위정척사파들의 사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대 혁신은 반드시 자주적으로 단행해야 하며 붕괴해가는 중국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일대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조선도 세계 대세에 보조를 함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선진 과학 기술을 도입하고 근대 시민사회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조선 왕국의 고질적인 병폐인 양반 신분제도를 폐지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나라 안의 각계각층에서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은 국방력 강화의 필요성에 인식을 같이하였는데 박규수의 관서지방 해안 방위책과 오경석의 화륜선(군함) 개발 역설은 국방력 강화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들은 대원군과 위정척사파의 쇄국정책이 시대착오적인 맹목적 국수주의에 기인한다고 판단하고 하루속히 자주적 실력을 배양한 후 개항·개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밖에 이들은 오경석이 주장한 바와 같이 외국과 통상을 하되 중국처럼 외세의 압력에 속아 넘어가 일방적인 교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무역을 해야 하며 조선의 금은을 외국의 물품과 교역하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접기
P. 87 임오군란 후 청국의 태도가 더욱 노골적으로 조선을 얕잡아보며 사사건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자 급진 개화파는 이에 반발, 일본에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는 1882년 8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일환으로 박영효를 특명전권대사로 하여 일본에 사절단을 파견하는데, 종사관 서광범과 김옥균이 고문 자격으로 동행하였다. 여기에는 실세인 민영익도 끼여 있었는데 그는 사실상 사절단 감시자 역할이었다. 사절단이 일본을 방문한 이때 처음으로 국기인 태극기를 만들어 게양함으로써 우리나라 국기의 효시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이견이 있기도 하다. 그런데 당시 조선의 사절단은 말이 사절단이지 너무도 초라한 모습이었다. 출장비도 부족한데다가 당초 목적인 배상금 탕감을 놓고 비굴한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절단은 외무성 이노우에와 협상하여 앞서 언급한 배상금 50만 원에 대한 상환 기한을 당초 5년에서 5년 더 연장하여 10년으로 하고 매년 5만 원씩 분할 납입키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차관 교섭을 벌인 끝에 17만 원을 받았지만, 그 가운데 5만 원은 앞서 약속한 일본인 관리 유족 피해 보상금조로 공제하고 나머지 12만 원을 받았으나, 이 역시 사절단 경비와 유학생 학비 지원 등에 충당해버렸다. 이렇게 볼 때 말이 차관 도입이지 실속이 없는 빈손 차관 도입이었다. 접기
P. 122 일이 이렇게 되자 더욱 불안해진 왕과 왕비는 더 적극적으로 청덕궁 환궁을 고집했다. 그러나 ‘거사’ 주도세력은 경우궁에서의 불미스러운 일도 불식하고 경우궁보다 넓으며 지대가 높아 소수 병력으로 적을 방어하기 편리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오전 10시경 고종을 계동 이재원 집 계동궁桂洞宮으로 이어移御시켰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민비는 좁다고 투정을 하며 창덕궁으로의 환궁을 더 드세게 주장하였다. 김옥균이 다른 계책을 꾸미고 점검하기 위하여 홍영식·이재원 등과 함께 잠시 외청外廳으로 나간 틈을 타 민비의 부추김을 받은 고종은 일본 공사에게 환궁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일본 공사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으나 왕의 뜻이 워낙 완강한지라 김옥균과 사전 상의도 없이 왕을 창덕궁 내 관물헌觀物軒으로 옮기기로 하고 박영효로 하여금 창덕궁 궁내 동정을 살피도록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지시였다. 이쯤 되면 정변의 주도권은 일본 쪽으로 넘어간 셈이었다. 오후 5시경 마침내 왕은 관물헌으로 옮겼다. 그런 뒤 밤이 늦어 창덕궁 문을 닫으려 하자 때마침 청국 진영으로부터 문을 잠그지 말라는 통보가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터질 것이 터지게 된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개화당원으로 가장한 경기감사 심상훈의 역할이 지대했다. 접기
P. 131 무릇 혁명이나 모반은 성공하면 역사의 주인이 되지만, 실패하면 반역이라는 족쇄가 채워져 가혹한 징벌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고종이 위안스카이의 병영으로 옮긴 10월 20일(양력 12월 7일) 아침, 수구파 대신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신하들의 불찰이라며 머리를 조아리고 사후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조치로 이들은 지난 3일간의 사태에서 일본군이 보인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 항의하는 서한을 작성, 공식 사과할 것을 일본 정부에 요청하기로 하였다. 이어서 다음날에는 김옥균·박영효·서광범·홍영식·서재필을 ‘5대 역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림과 동시에 지난 3일간 정변 주동세력이 왕의 재가를 받아 내린 일체의 정강과 제반 조치도 모두 무효임을 선포하고, 정변 세력에 의해 관직이 박탈되었거나 강등된 대신들의 직책을 원상복구하거나 새로 임명하는 인사 조치를 단행하였다. 접기
P. 141 망명객 김옥균 일행을 태운 우편선 치도세마루가 포말을 일으키며 검푸른 현해탄을 건널 때,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김옥균과 망명객 일행은 지난 일을 되돌아볼 생각도 없이 깊은 잠속에 빠져버렸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문사였지 무사가 아니었고 전략가는 더 더욱 아니었다. 삶의 나이테가 켜켜이 쌓인 경륜이나 경험도 없이 나름대로의 좋은 환경에서 사서삼경 등을 공부하여 과거에 급제한 후 그런대로 출세가도를 걸어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론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이론은 실제를 실현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었다. 이런 그들이었기에 개혁도 아닌 혁명적 변혁을 성공시키기에는 경험이나 경륜이 너무도 부족했고, 의욕과 열정만 넘쳐흘렀다. 명분은 훌륭했고 발상도 좋았다. 하지만 모든 크고 작은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세밀함 즉 디테일이 부족한 상태에서 변혁이라는 거창한 스케일만 가지고 중대한 대사를 감행했다. 기업 경영에서 ‘디테일(detail)이 없으면 스케일(scale)도 없다’는 말이 있다. 즉 아무리 사업 목표가 거창해도 사전에 세밀한 준비와 전략이 없으면, 그 사업은 필패하게 마련이다. 하물며 목숨을 건 ‘큰일’을 결행함에 있어서 사전에 치밀한 준비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다만 때를 놓칠 정도의 머뭇거림이 지나치게 지속된다면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김옥균이 죽기 바로 전 상하이에서 읽고 있던『자치통감』은 정변 실패에 대한 회한을 곱씹으며 읽은 책일 것이다. 정변의 실패 원인을 놓고 관련 학계와 전문가들은 다양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들에게 그 당시 시점에서 왜 그렇게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와 답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후 ‘약방문’격이라도 분석은 분석으로서 필요하다. 접기
P. 157 정변은 비록 단기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장기적인 역사적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한반도에 대한 침략 기색이 점차 노골화하자 시대를 앞서가는 신진 엘리트 파워 ‘김옥균과 젊은 그들’은 민족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위로부터의 자주 근대화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 당시 집권 실세인 민비 척족들의 시대착오적인 대외 인식과 민중에 대한 수탈을 강 건너 불구경처럼 좌시하기에는 그들의 피는 너무 뜨거웠다. 역사에서는 모순에 찬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서는 젊은 그들이 있었기에 그 나라 그 역사는 그래도 발전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갑신정변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혁파하려는 젊은 엘리트들의 ‘행동하는 양심’, ‘행동하는 지성’의 선례를 보여줌으로써 특히 후세의 젊은 세대에 대한 민족적 자각의식과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었고, 방법론에서의 잘못은 하나의 ‘반면교사’ 역할도 했다고 볼 수 있다. 접기
P. 170 김옥균·박영효와의 불화는 그 뒤에 더욱 심해져 1890년 초부터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망명객들 사이에서도 김옥균파와 박영효파로 나뉘는 불미스러운 결과가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유혁로를 비롯한 상당수의 행동대원들은 도량과 인간미가 있는 김옥균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당시 김옥균 곁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유혁로였다. 유혁로는 그가 스물다섯이던 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1881년경부터 김옥균과 동지가 되어 박영효와 함께 일본을 방문할 때에도 그들을 수행, 경호했다. 정변 준비 때에도 그는 탑골 승방 모임 등에 참여하여 중간참모 역할을 했으며, 정변 당일 안동별궁 방화 소식을 김옥균에 상세히 보고하고 민영익 처단 시도에도 앞장섰다. 정변 후 김옥균과 함께 일본에 망명하여 그를 항시 곁에서 호위했으며, 김옥균이 절해고도 오가사와라 섬으로 유배될 때에도 그를 수행하려 했으나 일본 당국의 저지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후에 은밀히 김옥균을 가끔 찾아가 시국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함께하기도 했다. 그 무렵 박영효 집 청지기였던 이규완도 김옥균이 홋카이도에서 농장을 개척할 때 그 곳에 찾아가 체류하며 김옥균의 농장 일을 거들기도 했다. 박영효는 이런 이규완이 못마땅하여 그를 불러들였다. 이런 저런 일로 박영효는 1892년 그를 찾아온 김옥균과 절교를 선언했다. 접기
P. 203 갑신정변 후 조선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었을까? 한마디로 말해서 더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우선 정변 실패 후 다시 개편된 조선 정부의 조각組閣 내용을 보자. 고종은 영의정에 심순택, 좌의정 김홍집, 우의정 김병시, 전영사 겸 해상공국당상 이교헌, 후영사 이봉구, 좌영사 이규석, 우영사 민영익, 독판교섭 통상사무 조병호, 한성판윤 민종묵, 이조판서 이재원, 예조판서 김만식, 병조판서 겸 강화유수 김윤식, 호조판서 김영수등을 임명하였다. 신 조각 인물들은 대부분 고종친인척과 민비의 측근들로 채워졌으며 한마디로 ‘그 얼굴에 그 얼굴’, ‘그 물에 그물’, ‘회전문 인사’이며 ‘땜질 인사’로 국정쇄신 의지가 전혀 없는 구태의연한 조각 내용이었다. 수구세력들은 정변 주동세력들의 거사를 ‘철없는 젊은 것들의 분별없는 소행’으로 규정하고 집안 단속과 내부 결집을 더욱 강화하였다. 이제 한동안 개혁이나 개화라는 말은 조선 정치권에서 입 밖에도 꺼낼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들 수구세력들은 왜 정변이라는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은커녕 차제에 개혁의 싹과 뿌리가 더 이상 자라나지 않도록 잔존 개화세력과 관련자들은 물론 그 가족 일가 친척까지 색출하여 처단해버렸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청국과 일본은 ‘톈진 조약天津條約’을 체결하여 자신들의 숨고르기 작전으로 일단 조선에서 철수하자 순진한 조선 정부는 잔소리 많은 두 시어미가 일거에 퇴거하여 한시름 놓게 된 며느리처럼 쾌재를 부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 정세는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민비와 그들 수구세력들은 지금부터 산 넘어 산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접기
P. 220 한편 아침부터 한복으로 갈아입고 옆방에서 김옥균의 동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던 홍종우는 일각이 여삼추, 초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매시각 비장한 각오로 기회를 엿보며 와다가 잠시라도 방에서 나가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그는 오른쪽 호주머니에 탄환을 장전한 권총을 집어넣고 방안을 서성거리며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혔다. 권총을 쥔 오른손은 땀에 촉촉이 젖어 있었으며, 목은 바싹바싹 타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김옥균의 방문이 열리고 와다가 계단으로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김옥균이 와다를 시켜 이 여관 사무장도 함께 시내 관광에 동행하자고 내려 보낸 것이다. 마침내 홍종우가 그토록 기다리던 때가 온 것이다. 홍종우는 심호흡을 한번 한 후 방문을 살며시 열고 곧장 노크도 없이 김옥균 방문을 열어젖혔다. 김옥균은 무방비 상태로 책을 손에 쥔 채 불시의 침입자를 쳐다봤다. 이때 홍종우는 김옥균과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권총을 허리춤에서 꺼내들고 첫발을 김옥균의 얼굴을 향해 쏘았다. 총탄은 김옥균의 왼쪽 볼을 뚫고 머리에 박혀 들어갔다. 김옥균은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홍종우에게 달려들 기세였으나 곧바로 주저앉았다. 홍종우는 뒤로 멈칫하다가 두 번째 총탄을 가슴에 쏘았다. 김옥균이 비틀거리며 등을 돌리는 순간, 홍종우는 확인 사살이라도 하려는 듯 이번에는 마음 놓고 세 번째 총탄을 쏘았다. 그러고 나서 홍종우는 황급히 나가버렸다. 그래도 김옥균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지 않고 방밖으로 기어 나와 건너 방 8호실 앞 복도에 쓰러져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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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안승일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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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와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한국은행에서 근무한 후 현재는 자유기고가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조선 엘리트 파워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열정의 천재들 광기의 천재들』(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회 추천도서), 『비운의 혁명가들』(KBS ‘화제의 책’·교보문고 ‘내일이 기대되는 좋은 책’ 선정) 등이 있으며, 주요 연구논문으로는 『소외의식의 극복-프란츠 카프카의「변신」을 중심으로』, 번역문은 고트프리트 A. 뷔르거의 「레노레(Lenore)」 등이 있다.
최근작 : <김홍집과 그 시대>,<비운의 혁명가들>,<열정의 천재들 광기의 천재들>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선 개혁파들 실체 벗기기와 김옥균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
어느 시대 어느 국가든 그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있으며, 지도층이 그 정신을 솔선수범 실천에 옮길 때만이 그 나라 그 역사가 바로 설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이들이 수사학적 언어유희나 반복하며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로 재미를 독점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찌 되겠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 소용돌이치는 그 역사의 현장에는 언제나 ‘젊은 그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그 역사적 사례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조선 엘리트 파워 급진 개혁파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적인 행동과 치열한 삶을 재조명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제도권에서 조국의 앞날을 위해 분골쇄신한 김홍집, 어윤중 등 온건 개화파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과거사에 대한 이해와 반성 및 재인식, 그리고 내일을 향한 지혜와 슬기를 모으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기존의 김옥균 관련 저작과 비교해서 다음과 같은 차별성을 가지고 기술함으로써 동시대에 대한 인식의 지평과 관련 인물들에 대한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있다. 즉 저자는 김옥균과 주요 등장인물들의 활동과 당시의 긴박한 시대상황을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직조하여 독자들의 이해와 흥미를 더해주고 있으며, 각 인물들의 실상과 허상, 특히 김옥균의 실체를 소상하게 벗김으로써 인간 김옥균의 장점과 단점, 그에 대한 맹목적인 편애나 편견, 그리고 오해를 가급적 불식하려고 노력한 점이 돋보인다. 그리고 역사적 ‘큰 일’을 도모하는 데 있어서 ‘젊은 그들’의 스케일은 원대하고 이상은 숭고했으나 디테일, 즉 치밀함이 부족한데다가 민심을 간과한 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을 성급하게 추진하였으며, 특히 리더인 김옥균은 작전을 지휘, 수행하는 데 있어서 유능한 참모를 두지 못한 점이 패인이었다고 분석하였다. 저자는 이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 『주역』의 다음 말을 상기시키고 있다. “용이 때에 이르지 않았다면 성급히 뜻을 펴지 말고, 용이 때가 왔을 때는 큰 조력자를 만나야 하며, 용이 하늘을 나를 때도 이 역시 큰 조력자를 만나야 한다(潛龍勿用, 見龍在田 利見大人, 飛龍在天 利見大人).” 레닌의 러시아 혁명은 냉철한 작전 참모 레온 트르츠키,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은 명 지휘관 체 게바라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호치민의 베트남전도 보구엔 지압 같은 명장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그러나 무사가 아닌 문사로서의 천재인 김옥균은 무릇 천재들이 범하기 쉬운 독단적인 상황인식과 매사를 자기 식대로 유리하게 판단하는 낙관론의 함정에 빠져 ‘큰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김옥균은 정치적 이상주의자이며 혁명적 로맨티스트였지만 전술적 리얼리스트가 되지는 못하였다. 인간적으로는 다재다능하고 흡인력이 강한 사나이였지만, 이러한 약점들이 혁명가로서 그의 한계요,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특히 작전 수행에서 별 도움도 되지 못한 소수 일본 병력지원 요청과 청국군 개입의 단초를 제공함으로써 외세의존에 따른 후유증과 후세의 부정적인 평가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시대에 김옥균을 다시 이야기하는가? 김옥균은 임오군란을 통해서 경험한 바와 같이 외세의존이 후에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충분히 알았음에도 그 자신도 그런 우행을 답습하였다. 그리고 그런 우행을 그 뒤 조선 당국자들도 갑오동학농민전쟁 때 또다시 반복하였으며, 분단시대의 남한과 북한도 그때와 다를 바 없다. 포스트 김정일 체제 이후 한반도에서의 정세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예민한 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어떤 패러다임으로 개선되어야 하며, 21세기 ‘조선책략’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인가? 남북은 역사적 아픔을 거울로 삼아 상호간 명분도 실리도 없는 기 싸움을 버리고 낡은 이대올로기의 미망에서 벗어나 대승적 차원에서 화해와 협력체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남쪽의 한국은 소득의 양극화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계층 간의 갈등구조를 최소화하고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결집하여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복원, 상호 소모적인 대결구도를 조속히 탈피해야 한다. 그것만이 외세의존의 폐단을 줄이고 민족의 동질성과 자주권을 회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냉엄한 국제질서에서 볼 때 외교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한 겨울의 얼음 석자가 하루 사이에 굳어진 것은 아니다(氷凍三尺 非一日之寒)”라는 말처럼 한국과 미국의 관계,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단기간에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지금까지의 대미 우호관계를 견고히 하되, 초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는 물론 인접 러시아에 대해서도 실리적이고도 세련된 등거리 외교전략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점들이 김옥균과 그 시대를 타산지석과 반면교사로 삼고 김옥균을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의 하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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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에겐가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김옥균! 김홍집!
이들의 이름을 들으면, 복잡한 생각이 교차한다. 영웅으로 보기에는 모자라고, 소인배로 보기에는 그들이 우리역사에 남긴 족적이 너무도 컸다. 그들을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이들에 대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나의 평가는 부정적인 것이 약간 기울여져 있었다. 특히 외세를 끌여들여 개혁을 하려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도가 아무리 고귀했더라도 절대! 그들을 영웅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며, 이들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다. 그래서 이 책을 빼들었다.
김옥균! 그의 묘지명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오호라 비상한 재주를 타고나
비상한 시대를 만났으며
비상한 공적을 이루지 못하고
비상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유길준이 지은 이 비문은 김옥균의 삶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김옥균! 그는 시대가 낳은 천재였다. 그리고 노론 명문가의 아들이다. 그가 원했다면 시대의 안락에 취하여 수구파와 손잡고 세월을 달관하며 편안히 살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 젊은 친구들과 혁명을 준비했다. 화려하게 불꽃을 태웠고, 그 불꽃이 3일을 가지 못하자, 일본으로 망명하여 다시한번 찬란한 불꽃을 피워보려 몸부림쳤다. 그러다 한중일 삼국의 모살로 상하이에서 비운에 가게된다.
그가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을 읽어보면, 빨리 근대화를 이루지 않는다면 국가의 패망이 있음을 깨우치려는 강렬한 열망이 느껴진다. 그러나 시대를 내다보고, 혁명에 버금가는 대 개혁을 해야하는 시기에 이를 놓치고, 기존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우유부단한 고종은 그의 상소문에 미동도하지 않는다.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이라는 단서를 붙어 그가 조선 전기, 혹은 중기의 왕이라면 그정도 통치했다면 중간정도는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시대에 속박된 존재이다. 시대와 인물을 떨어져 놓고 평가할 수 없다. 고종은 우리 조선의 운명이 누란의 형세인 시기에 조선의 왕이었다. 일본의 메이지와 동갑네기이고, 메이지보다 먼저 왕이되었으나, 메이지의 나라 일본에게 고종은 자신의 나라 대한제국을 빼앗겼다. 고종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종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면, 김옥균은 어떻게 봐야할까? 그의 치밀하지 못한 거사계획과 갑신정변 실패로 인한 열강의 조선 침략가속화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갑신정변의 긍정 부정적평가이전에 김옥균을 바라보고 싶다. 그는 노론 명문가의 아들이다.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자신의 재능과 지위를 걸고 조국을 위해서 도박을 했다. 헬조선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지금의 젊은이들은 과연 김옥균과 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자신의 열정을 화려하게 불사를 수 있는가? 혹시, 건물주가 되기를 꿈꾸지는 않는가? 아니면 안정된 공무원이 되려고 자신의 재능, 흥미, 적성을 무시고 공부만하지 않는가? 윗사람의 말을 잘듣기만하고, 자신의 주장은 하지 못하는 소위 '착한 학생'이지는 않는가? 철없는 어른이 잘못하면 호되게 그들을 꾸짓을 용기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나의 열정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기득권과 맞서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라고 자신있게 소리칠 수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김옥균은 3일 뿐이지만 자신의 열정을 빨갛게 태워 조국을 데우려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이러한 모습은 김홍집이 비장한 어조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뿌리치며 한 마지막말이 나의 귀에 쟁쟁하게 들린다. "나는 조선의 총리대신이오. 내가 조선인을 위해 죽는 것은 천명일 것이오. 다른 나라 사람의 손에 구출되는 것은 오히려 떳떳치 못한 일이오" 심장을 고동치게하는 이 말을 남기고 고종을 만나러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했다가 경무청 안환에게 체포되어 참형을 당하고 성난 민중들에 의해서 그의 시체는 갈기갈기 찢긴다.
일제의 강요이지만 이를 통해서라도 근대화를 이루어 자주독립군가를 지킬 수 있다면 치욕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한 유길준과 그는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개혁을 추진해서 하루빨리 근대국가를 건설해야하는 시기에 나이 많은 수구파와 우유부단한 고종을 달래며 개혁을 추진하려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개화파!! 헬조선을 외치며 한국을 떠나겠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신은 이들 개화파 처럼 대한민국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개혁하려하지 않고 왜? 떠나려하는가? 당신은 연탄재만도 못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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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6-09-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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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나라의 위기속에 활동하였던 김옥균의 삶과 철학 등이 남긴 책이다. 시대적인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김옥균과 이 시대의 지성인들간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주권을 가진 국가관을 새롭게 정립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일제치하에 아픔과 고통을 안고 태생한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두웠던 시기에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그 변화를 주도하였던 김옥균, 저자는 이 책에서 김옥균과 함께 했던 지성인들의 활동과 역활 등을 심층분석하고 있다. 조선후기에 여러 정변의 현장속에서 김옥균은 새로운 개화를 주도하고자 했다. 조선의 암흑기에 김옥균의 역할이 시대적 정당성을 갖는지를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책은 김옥균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김옥균의 활동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요청을 바라보고자 한다. 이 책이 왜 세상에서 주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를 함께 했으면 한다. 독도는 우리땅이라 외치는 국민 뒤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시대를 분별하고 읽지 못한 조선후기에 수많은 관료와 국민들은 결국 국가를 잃은 참담함속에 36년을 살아간다. 주권이 없는 국민들은 허수아비요 노예가 된 것이다. 세계적인 흐름과 정세에 따른 변화를 주도록하고자 했던 김옥균은 조선의 앞날에 득이 되었을까 실이 되었을까. 득과 실앞에 모두는 자유롭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시대적 요구에 따른 변화였다. 개화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다. 조선왕조의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개화사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신세계를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세계와 동떨어졌다. 결국은 김옥균은 3일 천하의 실패와 망령 등으로 개화의 꿈을 접어야 할 중대 위기앞에 섰다. 그는 실패에 대한 망령 생활은 포기한 삶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개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조선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그의 삶에 묻어나왔다. 많은 이들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활로를 찾고자 망명의 길에 들어섰다. 망명한 이들은 하나의 목표였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뜻을 모아 의기투합하는 과정에서 김옥균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긴밀한 교제를 나누게 됨으로 김옥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시대에 낳게 된 계기가 되었다. 김옥균은 실패자이다. 그러나 김옥균의 마음까지 실패자였을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다시금 김옥균을 통해 시대에 아픔을 말하고자 한다. 분별력이 없는 관료와 백성들이 결국 나라를 잃게 했던 것처럼 이 시대 지성인들이 하나가 되어 나라의 흥망을 조명하게 하는 목적이 이책에 담겨있다. 시대를 읽도록 하는 저자는 김옥균을 선택했다. 지성의 아픔을 안고 살았던 김옥균을 다시금 바라보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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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미소 2012-11-1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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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조선 엘리트 파워)
김옥균은 우리 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쇄국정책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여 새로운 문화 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선진문물의 조속한 수용, 국토개발과 수산업 육성, 국가재정의 건전화 등 각종 혁신적인 개혁방안을 국왕에게 직간접적으로 건의하였으나, 그때마다 수구파의 강력한 견제로 어느것 하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김옥균은 이런 퇴행적인 정치풍토에서 더 이상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 뜻을 같이하는 급진 개화파 동료들과 함께 쿠테타적인 방법으로 정치판을 새롭게 짜는 모험을 감행하게 된다. 김옥균이 일으킨 갑신정변은 청나라의 지나친 내정 간섭과 이들을 무턱대고 지지하던 민씨 일파의 사대당을 꺾어 버리고 우리 나라가 자주 독립 국가라는 것을 온 세계가 알리려는 것이 본래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행동프로그램의 미약으로 3일 만에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망명 초기부터 겪어야 했던 일본 정부의 냉대와 자객들의 암살위협, 현실 도피적인 문란한 사생활과 이로 인한 동지들의 비난과 불화로 인해 김옥균의 정채성과 자긍심을 실추시켰으며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인간 김옥균은 우국지사라는 고고한 이미지를 벗어나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낭인의 신세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의 10년 동안의 일본 망명생활은 어찌보면 잃어버린 세월이라고 볼 수 도 있다. 를 극복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의 위험한 길을 택하게된 김옥균은 수구파가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당하였다. 이 책은 김옥균의 어린시절부터 역사의 전환기에 과거 급제, 조선의 근대를 설계하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과정, 일본으로 추방되면서 김옥균의 죽음까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양육강식의 자본주의 물결이 밀려드는 역사적 전환기, 전통과 근대라는 이중의 부조리와 모순이 조선사회를 짓누르던 시대에, 매국적 반역자에서 애국적 혁명가에 이르기까지 양극단에 서있던 김옥균의 삶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무거운 시대의 무거운 주제인, 김옥균 그 시대, 그 아픔이 그대로 담고 있다. 읽다 보면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게 만드는 흥미롭고 유려한 흐름과 이제껏 알려지지 않았던 김옥균애 대한 새로운 내용으로 인해 후회없이 읽어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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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 2012-04-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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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
조선의 국운이 기울어가는 구한말 19세기는 조선왕조의 구태의연한 정권유지, 오래된 외척의 세도, 외세의 개방 압력 그리고 외세의 지배로 이어지는 힘없는 조선의 역사에 울분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소수의 권세와 유지를 위해 국가의 개혁과 혁신은 뒤로 한 채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위해 관료들은 부패 할 수밖에 없었고 백성들은 정말로 어려운 삶을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조선은 어지러웠고 이웃 열강들에겐 조선을 삼킬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였다.
과연 조선의 정치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꼭 그래야만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나도 그들의 실각에 화가 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쩌면 조선왕조대대로 내려온 썩은 정치가 곪고 곪아서 나타난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결국은 기득권이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여 하는 정치가 그 기득권 자체를 무너뜨리는 계기를 제공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천천히 말이다.
대학교때 역사를 전공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배우지 않은 터라(사실 별관심이 없었다.)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책을 읽자마자 소설과 같은 디테일한 내용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고 작가는 구한말의 시대상황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말 슬프기도 하였고 예나 지금이나 늘상 당파싸움하고 권력을 쥐는데 눈이 멀어서 민생을 돌아보지도 않는 건 어쩜 그리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 속에서 한줄기 빛이 있었으니 개혁파들이었다. 하지만 천재적인 그들이었지만 힘이 너무 미약했다는 것 그리고 그들 또한 외세를 힘입어 개혁을 하려고 했다는데에 안타까움을 금할수 없었다. 천재적인 김옥균이었지만 인생의 말로는 비참할 수 밖에 없었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손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구세력들의 무능으로 인해 주권을 빼앗기게 되는 통한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지금 또한 정치인들은 돈과 명예, 권력의 밥그릇 챙기기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 수구세력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정치인들이 있는 이상 대한민국의 앞날이 그리 밝지 못함을 또 국운이 구한말과 같이 풍전등화같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겠는가? 아픈 역사를 교훈으로 삼고 인내력과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고 다시는 이런 치욕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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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2-04-1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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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을 읽고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을 읽고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한 국가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제대로의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그래서 학창시절에 국사라는 교과목을 통해서 의무적으로 공부를 하게 한다. 그러나 솔직히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만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개 겉핥기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바로 이런 역사 관련 책을 보게 되면 정말 많은 것을 되새기면서 공부하게 된다. 명확한 개념 정리와 함께 많은 교훈을 통해서 더 나은 발전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사의 흐름이나 사건 등을 통해서 확실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서 진정한 국민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주 흥미 있게 읽었다. 역사 속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이야기는 당시 시대 분위기 안에서 느끼고 보아야만 제대로 조명할 수가 있다고 한다. 단편적으로 인물 이야기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서 훨씬 더 가깝게 만들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당시 김옥균을 포함한 젊은 엘리트 지식인들 이야기는 물론이고 당시 시대적인 상황까지 자세히 알 수가 있어 우리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도 되었다. 조선말과 개화기 시대의 모습을 상세하게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물의 사진은 물론이고, 필요한 자료와 이해하기 쉬운 어투로 쓰여져 있어서 읽는데 잘 넘어갔다. 역시 관심과 함께 참여하였을 때 얻어지는 기쁨이라 생각하였다. 어떤 사안을 처리할 때 바로 이런 긍정적인 사고와 실천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기도 하였다. 기울어가는 조선 말기에 여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소수의 권세와 배부른 독재를 위한 활동으로 관료들의 부패와 민생도탄 등으로 국가를 어렵게 하는 상황이었다.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서양 선진 문물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박규수 사랑방에 오경석, 유대치 등이 모여서 개방과 개혁에 대한 논의를 하였던바 이것은 왕실과 특히 수구파인 민비 측근에게는 반체제집단으로 몰면서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 탄압, 강화도조약, 임오군란 등으로 청나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상범, 서재필 등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혁파가 일복 쪽으로 접근하면서 드디어 갑신정변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추진하면서 기본적인 내용조차 무시했기 때문에 3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김옥균은 일본으로 망명을 가게 되고, 결국 청나라 상하이에서 자객인 홍종우에게 암살당하게 된다. 비록 개혁을 통해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혁파하고 단행한 김옥균과 젊은 그들의 모험적인 도전정신에 대해서는 개혁이 비록 실패에 끝났다 할지라도 올바른 역사의 길을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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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박사 2012-05-3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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