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4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명섭 | 알라딘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명섭 | 알라딘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 정답이 없는 시대 홍종우와 김옥균이 꿈꾼 다른 나라
정명섭 (지은이)추수밭(청림출판)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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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의 전환점에서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낸 이들의 극적인 삶은 이야기가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김옥균과 그의 이름에 가려진 홍종우에 얽힌 숨겨진 역사 또한 십여 년 전부터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이미 다뤄진 역사를 정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 십여 년간 업데이트된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주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홍종우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 유학을 떠나면서 여권(집조)을 위조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나, 김옥균이 사망한 장소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방 안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주변에 일본 해군의 고위장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김옥균 암살의 배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다시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 밝히는 김옥균 암살의 배후는 조선 정부가 아닌 범죄의 결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측인 일본이다. 실제로 김옥균 암살 사건은 일본이 동아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결정적인 빌미로 작용했다.

또한 김옥균과 홍종우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관련 사료만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역학이 작용된 시대별 인물 평가부터 역사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관련 창작물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자료를 취합해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또 왜곡되었는지를 다시 밝히고자 했다.


목차


문 안의 남자, 문 밖의 남자

들어가는 글 서투르고 치열했던 우리들의 한국사

1장 | 홍종우 또는 김옥균
홍종우, 민낯을 보려면 발자국을 봐야 한다
김옥균, 달은 비록 작으나 천하를 비춘다
홍종우, 알려지지 않은 행적
김옥균, 조선을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어야 한다
홍종우, 위조 여권을 사용한 제1호 프랑스 유학생
김옥균, 다른 나라를 꿈꾸다
홍종우, 유럽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다
김옥균, 갑신정변
갑신정변이 남긴 이야기

2장 | 홍종우 그리고 김옥균
홍종우, 프랑스에서 조선으로
김옥균, 또는 이와다 슈사쿠
홍종우, 유학생에서 암살자로
김옥균, 비상을 꿈꾸다
홍종우와 김옥균, 그들의 동상이몽

3장 | 홍종우 그러나 대한제국
벼슬길, 살아남은 자의 길
러시아의 등장, 친러파로 변신하다
조선, 제국을 선포하다
상소, 소란스럽고 완고한 직언
1898년, 뜨겁고 길었던 여름
독립협회, 그 대척점에 선 홍종우
구본신참, 그러나 여전히 과거

4장 | 그 이후의 이야기
이승만, 홍종우와의 특별한 인연
제주목사, 남쪽으로 간 홍종우
기억 너머로 사라지다
이몽, 그들이 꿈꾸던 다른 나라

나오는 글 꿈의 기억

부록
갑신정변에 참여했던 이들을 불러보다
와다 엔지로의 기억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문 안의 남자, 문 밖의 남자
“난 꿈을 꾸고 있었네.”
“그건 꿈이 아니라 욕심이었어.”
문 밖의 남자가 냉정하게 대꾸하고는 팔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난 조선을 조선이 아니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욕심인가?”
“지금 자네와 조선 꼴을 보게. 그건 꿈이 아니라 악몽일세.”
“난 꿈이 있었다니까!”
문 밖의 남자는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키며 외치는 그를 향해 겨눈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접기
제1호 프랑스 유학생,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하지만 홍종우가 지닌 여권에는 그를 누구에게 소개해 준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홍종우가 지니고 있었다는 여권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이나 혹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위조 증명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는 프랑스에 조선 외교관이 부임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여권을 지녀야만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가짜 여권을 만들었을까? 접기
유럽의 한복판에서 좌절한 홍종우
“프랑스에서 뭐가 나빴습니까?”
“이기주의였소.”
펠릭스 레가메는 머나먼 타국에서 신세를 지고 살았으면서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던 이방인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홍종우 처지에서 보자면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광대 취급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정치적 야심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조선의 문학을 유럽에 알리는 데 공헌을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호구지책일 따름이었다. 접기
유학생에서 암살자로
많은 학자들이 홍종우가 김옥균의 암살을 실행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했다. 정치적 신념 혹은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암살을 결심했다고 추론하지만 가장 단순한 이유가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홍종우는 프랑스에서 몇 년 동안 지낸 경력만 가지고는 조선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몸이 아픈 상태가 겹치면서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이 그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접기
김옥균 암살 사건 용의자 3, 일본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김옥균의 암살 당시 정황이다. 하지만 와다 엔지로의 증언은 약간 다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옥균이 2층 8호실 앞 복도에서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2층 8호실의 주인은 일본 해군 군령부 제2국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 해군 군령부 국장이라는 요직을 맡은 인물이 하필 같은 여관의 같은 층을 썼고, 그의 방 앞에서 죽었으며, 암살 사건의 최초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일본 정부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으며, 일본 신문들 역시 김옥균이 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암살당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접기
하나의 이름으로 정의될 수 없는 근대
오늘날 대부분은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대립을 진보와 보수의 충돌쯤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진실은 좀 더 복잡하고 내밀하다. 황국협회가 독립협회와 갈등을 벌인 것은 고종을 비롯한 대신들의 배후 조종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립협회는 독립이라는 이름과 조정에 외세를 배격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반외세를 주장하는 단체로 오인된다. 하지만 ‘헌의 6조’에 나온 것처럼 이들은 외국과의 조약이나 협정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대신들과 중추원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도약소와 건의소청에서 외국 상인들을 도성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할 때에도 시대를 거스르는 짓이라며 반대하는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접기
지독한 원칙주의자
박영효의 역모와 연관되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권총을 가지고 탈옥을 했다는 죄목을 가진 이승만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박영효와 관련이 없으며
탈옥 시에도 다른 두 사람의 권유와 협박에 못 이겼다는 증언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질품서를 올린 평리원 재판장은 다름아닌 홍종우였다. 독립협회라면 이를 갈던 그였지만, 그는 원칙대로 판결했다. 이승만 자신도 홍종우가 재판장으로 있는 한 살아남기 어렵다고 각오한 듯 훗날의 자서전에서 이때의 일을 “야릇한 인생의 역전”이라고 표현했다.
홍종우의 삶을 바라보면 묘한 궤적과 마주친다. 외부의 시선이 섞이면서 다소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는 기득권과 불화한 지독한 원칙주의자였다. 이처럼 홍종우는 이승만을 처형해서 두 사람처럼 고종의 신임을 받을 기회를 저버렸다. 홍종우가 갑자기 7월 27일 평리원 재판장에서 법부사리국장으로 좌천된 것은 이승만의 재판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정명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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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역사 추리 소설 『적패』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픽션과 논픽션, 일반 소설부터 동화, 청소년 소설까지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빙하 조선』, 『기억 서점』, 『미스 손탁』, 『어린 만세꾼』, 『유품정리사- 연꽃 죽음의 비밀』, 『온달장군 살인사건』, 『무덤 속의 죽음』 등이 있으며 다양한 앤솔러지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그 밖에 웹 소설 『태왕 남생』을 집필했으며 웹툰 『서울시 퇴마과』를 기획했다. 2020년 『무덤 속의 죽음』으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20년 한국추리문학상
최근작 :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의 기술>,<굿 게임 굿 럭>,<사랑에는 돈이 들어> … 총 533종 (모두보기)
SNS : https://www.instagram.com/runsema_cms


출판사 소개
추수밭(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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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한자가 삶의 위로가 될 때>,<성공의 배신>,<사람의 마지막 직업>등 총 112종
대표분야 : 심리학/정신분석학 19위 (브랜드 지수 59,157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럼에도 우리는 왜 다른 세상을 원하는 것일까?

1884~1894
서투르고 진지한 현대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의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그 비범함을 두려워해 죽이려 하자 아이는 유언으로 콩과 팥 닷 섬을 함께 묻어달라고 청했다. 시간이 지난 후 관군이 찾아와 아이의 무덤을 파헤치자 무덤 안의 콩과 팥이 병졸들로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아이는 부활 직전에 들켜서 실패하고 만다.”

승자의 해석이 역사라면 패자의 기억은 설화가 된다. 그래서 설화에는 현실에서 소외된 대부분의 좌절과 바람이 들어 있다. 그리고 가장 전형적인 한국적 설화는 바로 앞에 나온 ‘아기장수 이야기’다.
되짚어보면 우리 역사는 다른 세상을 꿈꾸다가 좌절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특히 한국 현대사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어설프지만 진지한 이들이 만들어낸 서투르고 치열했던 시간들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뚝딱거리면서 갈등하고 흩어지고 뭉쳤던 우리들의 좌절과 바람을 거슬러 올라가면 두 사람이 나온다. 바로 홍종우와 김옥균이다.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는 다른 세상을 꿈꿨던 이들에게서 시작된 과속과 저속의 부조화가 어떻게 지금 여기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더듬어보는 시도다.

‘홍종우의 발견’ 이후 십여 년,
1894년 그 날에 대한 새로운 해석
역사의 전환점에서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낸 이들의 극적인 삶은 이야기가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김옥균과 그의 이름에 가려진 홍종우에 얽힌 숨겨진 역사 또한 십여 년 전부터 많은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서는 이미 다뤄진 역사를 정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지난 십여 년간 업데이트된 김옥균과 홍종우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주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홍종우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에 유학을 떠나면서 여권(집조)을 위조했을 것이라는 추정이나, 김옥균이 사망한 장소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방 안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주변에 일본 해군의 고위장교가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김옥균 암살의 배후를 마치 추리소설처럼 다시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 밝히는 김옥균 암살의 배후는 조선 정부가 아닌 범죄의 결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측인 일본이다. 실제로 김옥균 암살 사건은 일본이 동아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결정적인 빌미로 작용했다.
또한 김옥균과 홍종우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관련 사료만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역학이 작용된 시대별 인물 평가부터 역사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관련 창작물들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자료를 취합해 그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또 왜곡되었는지를 다시 밝히고자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가 도달하는 지점은 왜 한국 현대사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고 변화를 시도했던 노력의 대부분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다. 즉 홍종우와 김옥균을 통해 서둘러 진행된 변화의 노력들이 어떻게 끝났으며, 왜 실패했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짚어봄으로써 지금 여기 2010년대 한국을 돌아보고자 했다.
무엇보다 거대한 역사에 휘말려 증발된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본 것은 이 책이 가진 큰 성과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이 실패했어도 김옥균을 비롯한 정변의 주역들은 삶을 이어나가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뜻을 함께했던 민초들은 예외 없이 처형되었고 이름마저 빼앗겼다.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근대인,
홍종우와 김옥균
여기 널리 알려진 김옥균과 동료들의 사진이 있다. 우리는 한국사 교과서 등에서 이 사진을 보며 갑신정변의 주역들이 멋을 낸 채 카메라 앞에 섰다고만 생각하지만, 사진이 촬영된 때를 더듬어보면 이들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조선에서 단발령이 시행된 때는 1895년인데 김옥균은 그 전해인 1894년에 사망했다. 즉 갑신정변을 일으킨 이들은 단발령이 시행되기 훨씬 이전부터 상투를 자르고 양장을 했던 것이다. 그만큼 김옥균은 제국 열강들을 바라보면서 조급했고, 정체된 조선과 불화하며 다른 조선을 꿈꿨던 몽상가였다.

김옥균의 대척점에는 홍종우가 있다. 여전히 홍종우는 김옥균 암살범이나 황국협회의 주역인 수구파로만 기억되지만, 한국사상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으로 한국의 근대문학을 유럽에 알린 번역가였으며, 파리의 사교무대에서 한복을 고집한 민족주의자였다. 동시에 당대 조선인들에게 가장 급진적이라고 평가받은 개화파로 프랑스 체류 시절 제국주의의 위험함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던 현실주의자였다.
이 둘은 모두 근대의 격랑에 휘말린 조선이 취할 수 있는 두 반응의 양극단에 위치한 개혁가였다. 그러나 조선이 조선을 버리고 다른 나라가 되기를 동시에 꿈꿨던 그 둘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고, 끝내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개화기 당시 김옥균의 미숙함과 홍종우가 취했던 복잡한 태도가 아니라 ‘왜 김옥균은 성급하게 개혁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으며, 왜 홍종우는 김옥균을 살해할 수밖에 없었는가’일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는 개화기를 대표하는 두 문제적 인물만을 추적하는 인물사를 넘어 후쿠자와 유키치에서 이승만에 이르기까지 그들과 얽힌 동아시아의 굵직한 인물들을 모자이크처럼 연결함으로써 근대 한국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지독하게 폄훼되고
철저하게 왜곡된 이름, 홍종우
“김옥균의 생존은 동양 삼국의 평화를 깨뜨릴 우려가 있었다.” 홍종우가 친구처럼 지냈던 김옥균을 살해한 다음 밝힌 동기다. 그러나 홍종우는 처음부터 암살이라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치밀하게 준비해 김옥균에게 접근했으며, 와다 엔지로 등의 회고에 따르면 김옥균 또한 홍종우가 자객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어울렸다.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 홍종우가 김옥균의 암살을 실행한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정치적 신념 혹은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암살을 결심했다고 추론하지만 가장 단순한 이유가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홍종우가 김옥균을 죽인 동기는 결국 입신양명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어떤 행동을 취한 동기를 단 하나로 선명하게 재단할 수만은 없다. 홍종우가 벼슬길에 오르는 것만을 추구했다면 굳이 프랑스까지 가 이방인들 사이에서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수차례 홍종우를 복원하려 했음에도 대한제국 선포에 크게 기여하고 고종의 칼이 되어 만민공동회를 부수던 전력 때문인지 여전히 홍종우는 지독하게 폄훼되고 훼손된 이름이다. 마치 ‘락스타’처럼 시신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묘가 세 군데나 모셔진 김옥균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프랑스 화가 레가메를 비롯해 홍종우를 회상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그를 외로운 늑대나 호랑이에 비유했다. 그는 김옥균을 살해하고 그토록 바라던 벼슬길에 올랐지만 직언을 고집하다가 다른 관료들과 자주 충돌을 빚는가 하면 수시로 상소를 올리며 조선의 변화를 촉구했다. 고종이 사형을 바랐음에도 한직으로 좌천되는 것을 각오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판결을 내려 한 청년을 살린 강직한 법관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가 왕의 뜻을 거스르고 구한 청년은 훗날 한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제주목사 시절에는 제주도의 기득권 세력과 충돌하고, 또 제주도민을 수탈하는 중앙 정부, 나아가 제주도 상권을 흔드는 일본 상인들과 갈등을 빚은 끝에 탐관오리라는 누명을 받기도 한 반골이었다. 홍종우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시대와 불화한 근대인이었다. 그가 좌충우돌하던 김옥균을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은 어쩌면 동족혐오였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세상을 꿈꾼 이들의 충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두 근대 청년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엇갈린 꿈을 꿨다. 조선을 버리고 싶어 했던 김옥균은 일본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현실적 수단을 어설프게 흉내 내다 그들의 힘에 말리고 말았다. 조선을 버리고 싶어 했던 홍종우는 주체적인 근대화를 꿈꿨지만 기득권이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스스로의 구상을 제시하기도 전에 좌초하고 말았다. 그들의 바람처럼 조선은 조선이 아니게 되었지만 이후 전개된 한국 현대사는 그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홍종우와 김옥균의 삶처럼 우리들의 현대사는 지독하게 서투르고 치열했던 시간들의 반복이었다.
탈조선이니 헬조선이니 하는 구호가 요란한 한편으로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다수결로 선출될 이에게 굉장히 많은 변화를 일임하고자 하는 바람들로 아우성치고 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각각의 기대와 바람들은 때로 상생이 아닌 극렬한 갈등으로 치닫기도 한다. 마치 홍종우와 김옥균이 끝내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었듯이 말이다.
신념과 신념이 맞부딪쳐 생기는 갈등은 지금 여기에서 절실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숙제다. 어느 것도 정답일 수 없는 다양한 생각들이 대립으로 치달을 때 역사는 항상 그 서투른 진지함에 복수했다. 우리가 역사에서 정답을 찾았던 두 근대청년들이 빚어낸 비극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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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조선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나라를 꿈꿨던 김옥균과 그를 암살하고 조선에서, 또한 대한제국에서 신하로서 살아간 홍종우. 너무나 다른 듯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 그 둘이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에 사로잡힌 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도 그것이 아닐까 싶다.



김옥균이야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지만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갑신정변으로 유명한 인물이라서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테지만 그를 암살한 홍종우는 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보았더니 열에 5-6명은 홍종우가 누구인지 잘 몰랐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저자의 중심도 홍종우에 쏠려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김옥균과 홍종우를 다루는 비중이 거의 비슷했지만 책의 중반 이후에서는 김옥균을 암살한 이후의 홍종우를 다루는 데 할애하여 홍종우라는 인물에 중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저자가 그렇게까지 홍종우라는 인물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홍종우라는 인물 역시 나라의 앞날을 깊이 고민한 그 시대의 선각자임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김옥균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지만 홍종우에 대한 평가도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김옥균을 살해했다는 평가도 있고, 정치적 신념을 위해 그를 살해했다는 설도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그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기에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그에 관한 자료를 토대로 판단한다면 단순히 자신의 영위를 위한 행동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옥균을 암살한 이후 홍종우는 조선 왕실에서 고종의 측근으로 활동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는 그가 바라던 세상이 김옥균과는 달리 조선 왕실을 기반으로 한 개혁이었음을 알려주는 증표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프랑스 유학까지 하고 우리 문학을 프랑스에 소개한 인물이었던 홍종우이기에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너무 다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는 김옥균과는 달리 조선과 왕에 대한 충성이 여전히 남아있었던 듯하다.



그들이 꿈꿨던 세상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원한 개혁이라는 시대적 흐름은 그렇게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행동했던 동지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그들처럼 이 시대를 사는 누군가도 역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김옥균과 홍종우의 꿈이 조선 시대에 새로운 불씨를 던졌듯이 누군가의 꿈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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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to4 2017-05-08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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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역사책 아니라 모든 인문서적, 혹은 책 일체의 소명이, 당대의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궁금해할 만한 질문에 대고, 그 가려운 부분을 긁어 주는 해답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현대사를 배우며 항상 당혹스럽게 다가왔던 대목이, 1) 대체 갑신정변은 왜 시도되었으며 또 무참히 실패하였는가 2) 갑신정변의 주모자 중 아이콘처럼 후세에 전하는 김옥균은 왜 "그 사람"에 의해 암살되었으며, 배후가 혹 있었다면 누구인가 등이었습니다. 2)와 관련해서는 해방공간에서 안두희에 의한 백범의 암살이라든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의 죽음, 나아가 (앞의 두 사건 사이에 시기적으로 우연히 낀 먼 바다 저편의) 케네디의 비극 등이 함께 연상되는 면도 있습니다.

20세기 전반을 인접국에 의한 치욕스러운 병탄으로 채웠기에 우리는 보통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주요 사건과 그 속의 인물들에 대해 아주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선/악 이분법으로 색깔 칠하기를 시도하는 어리석은 버릇이 있습니다. 이하응에 대해서는 대개 개방과 개혁을 반대하고 조선의 발전을 가로막은 "쇄국정책"의 화체처럼 인식한다거나, (이 책의 주제 중 하나인) 갑신정변과 그 주동자들을 놓고는 "친일파, 준비부족, 단견, 성급함" 등의 특성을 들어 역시 부정적인 범주에 마구 편입한다거나 같은 태도가 있죠. 헌데 1880년대의 친일 행적과, 이후 삼십 여 년이 지나 동족과 고유문화를 말살하며 철저한 사익 추구에 몰두한 행위는 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것만은 아닙니다. 흔한 결과론을 가지고서야 무슨 말을 못하겠으며, 오히려 갑신정변이 당시 행여 성공(거의 가능성 없지만)이라도 했다면 향후 조선의 행로가 또 어찌 바뀌었을지는 아무도 모르기에 우리는확정된 팩트 위주로 지난 역사를 반추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옥균의 경우 저자의 평가는 후한 편입니다. 책 전체에 걸쳐 자주 등장하는 표현대로, 명문가 출신인데다 일찌감치 관직에 오르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 첫걸음을 밟았고, 그냥 자연스러운 경로만 밟았어도 어느 정도는 성공과 부귀영화가 보장된 인생이 구태여 모험을 한 데에는 뭔가 남다르고 비상한 각성과 각오가 내면화한 면이 있지 않았겠냐는 겁니다. 실제로 그는 귀공자다운 풍모에 영민한 지성을 지녔으며, 무슨 소외된 하층민 분자들이 막판에 몰려 무모한 도박을 시도하듯 무리수를 밟을 필요가 전혀 없는, 차라리 기득권 금수저에 속한 편인 처지였지요. 변혁은 수세에 몰리거나 불리한 진영, 계급에서 더 목청을 높여 옹호하는 법이니 말입니다.

반면 홍종우의 경우, 몰락 양반이라는 아슬아슬한 신분치레라 해 봐야 사실상 상민에 가까운 빈한한 처지였으며, 강점기 초반 독립투사들 사이에서 백범이 내내 하시(배운 바 없고 학식이 일천하며 신분이 낮다는 등)되었던 분위기를 연상시키듯, 그 부류 안에서는 2급으로 치던 보잘것없는 인물이었습니다. 과거 급제 등을 통해 변변한 관직에도 오른 바 없고, 다만 체구가 크고 억센 기질에 비범한 기상을 지녀 타인에게 위압감을 주는 풍모이긴 했나 봅니다. 가까운 촌수는 아니었으나 같은 문중 출신인 홍영식 등이 갑신정변의 핵심 지도층이었듯, 그 역시 김옥균 등과 망명지에서 일정 부분 고락을 함께하던 개화파였습니다. 이런 그가 왜 김옥균을 암살하였는가? 책에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청 제국, 고종(과 민자영) 측, 일본 등 여러 경우의 수를 놓고 배후를 짐작합니다. 배후 세력 중 하나로 조선 개화파의 적극 후원 세력을 자처했던 일본이 끼어 있음에 우리는 주목해야겠죠. 하긴 일본은 이미 갑신정변 당일에도 뒤통수를 친 바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긴 하지만.







홍종우에 대해선 우리 독자들이 잘 몰랐던 면모를, 저자는 한 챕터를 할애해 자세히 소개해 줍니다. 우선 그는 혈혈단신이나 마찬가지로 프랑스에 건너가(책에도 나오듯 여러 현지인들의 후원이 있긴 했습니다) 선진 문물을 배워 조국의 개화에 도움이 되려 했으며(그의 역량과 영향력의 현실적 한계가 어느 정도건 무관하게, 본인 딴에는 매우 진지한 의도로 시작한 듯합니다), 이 와중 해외에는 최초로 "춘향전", "심청전" 등의 번역 소개에 큰 공로를 남기기도 했다는 점이 (저자께서 누누이 강조하듯) 매우 인상적입니다. 책에는 그 번역서들의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요약되었는데, 우리가 아는 표준적 스토리와는 천양지차로 차이가 나 오히려 더 흥미롭습니다. 홍종우가 설령 엉터리로 저런 고전(당시에는 고전 취급도 안 했겠으나)을 알았다 쳐도, 오늘날같이 구비/기록 문학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고 그를 대중 교육을 통해 보급하던 시절이 전혀 아닌지라, 그리 이상할 건 없습니다. 양반은 눈길도 주지 않던 비루한 학문(점성술 등)의 번역(여기에 오히려 프랑스인들은 큰 관심을 주었죠)에 치를 떨며 지겨워하던 그였다면, 고전 문학에 대해선 어떤 태도였겠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죠. 그가 만약 저승에서 현대의 한국을 주시한다면, 자신의 이런 행적(춘향전 등의 불어 번역에 기여)가 후손들의 관심을 끄는 사실에 오히려 놀라워했을 겁니다.

김옥균이, 강점기 동안에는 총독부 당국을 통해 과장되이 미화되었다면, 해방 이후에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어설픈 혁명가 흉내를 내다 망한 친일파 정도로 흉한 이미지가 씌워진 면이 있습니다. 정/부정, 흑/백의 이분법 범주로는 전혀 유리한 평가를 못 받을 그이지만, 이 사람을 암살한(친분과 의리로 교유하다 느닷 배신했다는 점에서 반인륜 요소까지 있는) 홍종우는 그럼 이미지가 긍정적이냐, 그건 또 전혀 아닙니다(그 전에, 아예 이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을 듯). 만약 정부 당국의 매수와 감언이설에 넘어가 "거사"를 결행한 소인배라면, 그의 이후 긴 행적에는 그런 "나쁜 인격"과는 잘 매치가 안 되는 기이한 발걸음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첫째 옥균을 갓 처치하고 돌아온 후 과거 급제(요식행위), 당상관 부임 등 평생의 한풀이 소원성취를 다해 본 그로서는, 이상하게도 정해진 코스라 할 여흥 민씨 척족의 하부로 냉큼 편입되지 않고, 오히려 소신 발언을 일삼아 주위를 무안하게 하거나, 엇박자 행보를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이는 물론 마냥 긍정적으로 볼 건 아니고, 그로선 보다 먼 정치적 장래를 내다보고 내디딘 신중한 정치 술수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저자께서 정리, 제시한 여러 팩트들은, 혹시 그가 (참으로 보기 드문 유형의) 괴짜 소신파(어느 세력으로 분류하기 힘든), 그 나름 마음에 순정과 대의를 간직한 진짜 의기지사였을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이는 제주 목사로 부임하고 난 후 여느 탐관오리처럼 가렴주구에 몰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뚜렷이 부각되긴 하네요.

홍종우의 생과 각종 사건의 중심에 섰던 그 진짜 의도가 완전한 암흑에 싸여 있다면, 김옥균은 그보다는 덜 심해도 여전히 많은 행적이 의문을 남기는 게 사실입니다(저자의 표현을 다소 변형하자면). 비(非)학자 출신 인기 대중서 저술가인 저자는 내내 이런 주제를 골라잡아 우리 독자들과 소통해 왔으며, 그의 독자들이 호응을 보내 온 이유도 이런 주제의식에 아마 크게 기댈 겁니다. 옥균은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듯) 보장된 출세를 멀리하고 구태여 목숨을 건 가시밭길을 택했다가 진짜 목숨도 날리고 역적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자신뿐 아닌 가문과 친우들의 안위마저 위협한 꼴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진정성, 사상적 깊이"에 대해 더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견해는 물론 타당합니다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른바 궁정 쿠데타류의 정변이란 대부분 "시스템의 중추적 일부, 권귀 중의 권귀"들에 의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아주 특이할 건 없다고 봅니다. 옥균뿐 아니라, 철종의 부마였던 박영효 등 정변 주체세력 대부분이, 곱상하고 뽀얀 얼굴을 한 귀공자풍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홍종우 역시 특별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기보다, 어느 정도의 선의를 품은, 힘깨나 쓰던 협객형 인물이었을 뿐 탁월한 경세가 반열에 끼기란 어렵다고 봅니다.

책은 대체로 재미있게 쓰여져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만, 1) 묄렌도르프 (목참판)의 이름이 내내 "뮐"렌도르프로 쓰여져 그 점이 의아했습니다. 철자가 Möllendorff이므로, ü가 아닌 이상 "묄"이 맞겠습니다(현지인 발음이나 현행 외래어 표기법 규칙 등 어떤 기준에 의해서도) 2) 예컨대 다음 사진처럼, 일일이 원어(여기선 러시아어 키릴문자)를 병기해 주시는 성의는 감사하지만, 띄어쓰기가 안 된 부분이 있어서 좀 불편했다고나 할까요?






파벨(이름). 표도로비치(부칭). 운테르베르게르(성)



거사 직후 왜 개화파들이, "쇄국 정책의 대명사인" 흥선대원군을 자측에 끌여들였는지는 참 의문인데, 저자께서는 "텐진에 억류된 노인이 이후 현실적으로 정치에 영향을 끼치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대중의 호응과 관심을 끌기 위해 이름을 넣었다고 합니다. 이에 동의하지만(이하응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포퓰리스트스러운 면이 많았죠. 유능하긴 했으나), 사실 대원군이 골수에 박힌 수구파도 아니었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한때 큰 원성을 샀던) 유림의 지지를 얻으려 일종의 아젠다 선점으로 그런 정책을 취했을 뿐으로, 너무 도식화한 노선에 고정시킬 필요가 애초에 없다고 봅니다. 임오군란 때에는 왜 그런 스탠스였겠습니까? 제 생각에는 개화-수구의 노선 분류보다는, 민씨 척족에 대해 이에 영합하느냐 아니면 모조리 축출하고 새 질서를 마련하느냐 쪽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개화파들이 공연히 이하응을 끌어들이는 인상을 주어 결과적으로 민자영의 반감을 불렀다"는, 인과 관계가 뒤바뀐 주장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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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 2017-06-07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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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정명섭/추수밭/홍종우와 김옥균은 왜 그랬을까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정명섭/추수밭/홍종우와 김옥균은 왜 그랬을까











19세기 말, 정답이 없는 시대였지만 그래도 나라를 마음은 누구보다 컸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풍전등화같은 나라였지만 나라를 위한 마음이 누구보다 컸기에 목숨을 담보하는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평소에 별생각이 없다가 이런 책을 읽으니 홍종우과 김옥균이 꿈꾼 나라가 어떤 나라였을까 싶어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이 책은 소설같은 한국사이기에 읽기는 쉽다. 하지만 해석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책이다. 친일파로만 알려졌던 김옥균이 자신의 국가를 위해 일본을 도우미로 삼았다니 말이다. 김옥균의 스승이자 개화파인 박규수와 오경석은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김옥균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었을까. 개화파가 될 수밖에 없는 김옥균에게 우편 총국의 거사는 조선을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고자함이 아니었을까. 부국강병을 이루겠다는 꿈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고종과 병사철수 하겠다는 다케조의 고집 사이에서 허물어졌기에 권력의 비애를 맛보지 않았을까.

도한 홍종우는 왜 개화파인 자신이 개화파인 김옥균을 암살하려 했을까. 조선을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려던 같은 꿈을 꾸고 있던 김옥균에게 말이다. 김옥균을 암살해 누명을 벗고 일신의 영달을 꾀하려고 했을까.



이 책에서는 김옥균이 태어나던 시기부터 시작해 한말의 폭풍우 속으로 들어간다.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 홍종우의 행적과 김옥균의 행적을 추격한다. 이를 통해 조선을 버리고 다른 세상을 선택한 죽고 죽이는 관계가 나온다. 읽고 있으니 그 시대적 열망과 풍랑이 느껴질 정도다.











조금은 색다르지만 홍종우가 프랑스에서 기메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 배경과 심청전와 춘향전, 별주부전, 구운몽, 유층렬전 등을 프랑스 입맛에 맞게 소개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고종의 칼이 되어 김옥균 총살에 혈안이 되고......



3일천하로 끝나야 했던 우정국에서의 갑신정변.

갑신정변 실패를 보며 약육강식에 내몰린 조선의 운명인 듯해서 처참하기 그지없다.





















한국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19세기말에 벌어졌던 이야기를 통해 때를 잘못 만난 혁명가 김옥균과 김옥균을 신화로 만든 암살자 홍종우의 삶을 추적해 보는 책이다. 두 개화파 청년이 왜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어야 했을까를 짚어본다. 정답이 없던 시대를 산 자의 아픔이 느껴져서일까. 정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구슬프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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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7-05-11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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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



조선시대에 대해 많은 역사서를 집필한 작가이면서 또한 추리소설, 역사소설, 역사동화 등 다양한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정명섭 작가의 신간 『그래서 나는 조선을 버렸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망해가던 구한말의 시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두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표적 개화파이자 3일천하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옥균. 그리고 김옥균을 암살한 홍종우. 이 두 사람에 대해 책은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역사서다. 하지만, 마치 소설을 읽는 듯 재미나게 읽게 된다. 아마도 당시 시대상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고, 때론 말도 안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김옥균과 홍종우를 생각할 때, 누가 옳은가 라는 접근은 아니다. 이 둘 다 자신이 꿈꾸던 조선을 위해 행동했던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 둘을 이렇게 평가한다. “방향은 같지만 길이 다르다.”



김옥균을 암살했다고 홍종우가 수구파일 수 없듯이 개화파라고 해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추구했던 것도 아니다.(125쪽)



물론, 홍종우의 행동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여전히 명쾌하진 않다. 또한 김옥균의 행동(일본의 힘을 빌어 행동했던 일들)이 과도하게 어느 한쪽으로 해석되는 것도 옳지 않다. 작가의 말처럼, 당시대는 “정답이 절실했던 시기였지만 아무도 정답을 알지 못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정답이란 것이 있을까? 무엇보다 큰 문제는 당시엔 진정한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 아닐까? 아내의 치마폭에 휩싸인 왕. 친정 식구들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도록 해준 왕후. 자신의 권세로 민중의 삶은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뱃속 채우기에만 급급한 민씨의 왕조였다는 것이 문제 아닐까?



만약 김옥균의 혁명이 3일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되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새로운 세상이 열렸을까? 물론,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무의미할 게다.



홍종우가 영웅이거나 아니면 수구세력의 앞잡이이던지. 김옥균이 친일 역적이거나 아니면 선각자이던지. 작가는 말한다. 이들 “두 사람이 꿈꾼 나라는 사라졌다. 그리고 두 사람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288쪽)



그렇다. 이들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각기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다른 행동을 이끌어 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오늘 우리도 똑같은 모습으로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울러 우리 역시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말이다. 이제 우린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요 며칠 행복하고, 희망의 눈물에 울컥할 때도 많다. 책 제목과는 반대로 대한민국을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을 그런 나라다운 나라가 세워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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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 2017-05-13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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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꿈 꾼 두 사나이



"난 꿈을 꾸고 있었네."
"그건 꿈이 아니라 욕심이었어. 조선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욕심말이야"
문 밖의 남자가 냉정하게 대꾸하고는 팔을 들어 그를 겨누었다.
"난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욕심인가?"
"지금 자네 꼴을 보게. 지금은 상하이로 와서 그들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건 꿈이 아니라 악몽일세"
"난 꿈이 있었다니까!"
문 밖의 남자는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키며 외치는 그를 향해 겨눈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 '문 안의 남자, 문 밖의 남자' 중에서











혁명을 꿈꾼 두 사나이







책의 저자 정명섭은 역사 교양서 저술가로 햇빛처럼 선명하게 기록된 역사 속에서 그 빛을 받아 밤을 비추는 달과 같은 이야기를 찾는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소외되었던 중요한 사실들을 발굴하거나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들여다봐 낯선 모습을 발견하는 데 관심이 많다. 역사 교양서로는 <일제의 흔적을 걷다>, <스승을 죽인 제자들>, <조선백성실록>, <조선의 엔터테이너>,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생중계>등을 썼다. 복잡한 현실의 사정이 작용된 역사에서 배 제되어왔던 이들의 간절한 꿈을 쓰고자 역사소설 또한 꾸준하게 내고 있다. 지은 소설로는 <별세계 사건부>, <사라진 조우관>,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 <적패> 등이 있다.







1895년에 살았던 조선인들은 이로부터 10년 후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또다시 5년 후에는 나라가 통째로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해에 나라의 왕비가 일본인들의 손에 비참하게 난도질 당할 것이라곤 꿈에서조차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당시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서양과의 두 차례 무력 충돌 후 그들의 강력함을 깨닫고도 나라의 문만 꽁꽁 닫아 걸더니 급기야는 밀려드는 외세에 굴복, 야금야금 나라는 좀먹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라의 왕만 탓하기에 앞서 그 때는 무엇이 정답인지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했다. 뭘 알아야 해결책이 나올텐데 남의 나라를 배울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으니 그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이미 훨씬 오래 전에 "너 자신을 알라"라고 그렇게 외쳤건만 우리 조선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도 몰랐던 것이다. 과거부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는데, 조선에는 이도 해당되지 않았다. 유능하고 탁월한 지도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조선의 정치에 일일이 간섭하던 선비라는 족속들은 자기네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했기에 그 여파는 정말 지긋지긋하게도 이어져 내려왔다. 오늘날의 정치판에까지 침투해 있으니 말이다. 소위 '패거리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자기들만 옳고 남은 다 그르다는 그런 식의 사고방식으로 나라의 정치에 나아가 살림살이에 관여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다시 당시로 돌아가 보자. 외국에서 물 건너 온것이라면 청淸나라의 돈조차 안 된다고 왕고집을 부렸던 최익현 같은 선비들, 아예 조선은 싹수가 없다고 결론 내린 윤치호 같은 개화파 인물들이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다. 아예 정답을 모르던 이들은 투쟁을 벌어야만 했다.



























두 사람은 어떤 꿈을 꾸었나?







홍종우와 김옥균, 두 사람은 암살과 죽음이라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다. 단순히 암살자로 알려진 홍종우를 그렇게 단편적으로 규정 내리는 것은 몰지각의 극치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파였으며 우리의 고전들을 번역해서 해외에 알린 문인文人이기 때문이다.







후세인들로부터 친일파라는 낙인을 뒤집어 쓴 채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김옥균, 그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의 출세길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내팽개치고 개화개화에 자신의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했다. 아무나 이런 용단을 내릴 수 있는가? 그가 단순히 출세를 위해서 친일을 했다는 설명은 논리가 부족해 보인다.











위조 여권을 사용하다







'제1호 프랑스 유학생'으로 불리는 홍종우는 실제로 유학생이 아니었다. 웅지를 품고 프랑스러 건너간 것은 맞지만 교육 기관에서 학문을 전공한 흔적이나 중도에 포기한 사실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1890년 12월 24일, 그는 일본의 정치가 이다카기 다이스케가 프랑스 총리에게 써 준 소개장과 여권을 지참하고 파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홍종우가 지닌 여권에는 그를 누구에게 소개해 준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홍종우가 지니고 있었다는 여권은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이나 혹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위조 증명서일 가능성이 크다. 그때까지는 프랑스에 조선 외교관이 부임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여권을 지녀야만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가짜 여권을 만들었을까? 아마도 프랑스 내의 유력인사를 만날 때 스스로의 신분을 증명할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맨 처음 방문한 곳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였다. 그는 뮈텔 신부에게 보내는 보레 신부의 추천장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뮈텔 신부는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미 출발한 직후엿다. 그래서 그는 신부들의 주선으로 성 니콜라스 학교 기숙사의 다락방에 거처를 정했다. 며칠 후 그는 대문호 빅토르위고의 초상화를 그린 화가 펠릭스 레가메를 만났다.







펠릿스 레가메의 증언에 의하면 홍종우는 조불수호통상조약 당시 조선에 왔던 외무장관 꼬고르당과의 만남에서 조선을 위해 유럽문명을 배우고 싶고, 이를 통해 일본처럼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했으며, 러시아와 미국 등지에 흩어져 있는 소수의 동지들과 함께 조선의 완전한 독립과 조선을 외국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정책의 폐지 등을 추진할 꿈을 밝혔다고 전한다. 하지만 더 이상의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의 정치적 행보는 여기서 끝이 난 듯 보인다. 이후 그는 기메 미술관에서 일하게 된다.



















당시 프랑스는 동양학이 대유행이어서 중국과 일본 서적들이 연이어 번역되고 있었다. 홍종우는 한문에 능통했고, 일본어도 어느 정도 가능했기에 기메 미술관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메 미술관이 조선에서 수집해온 서적들을 번역했다. 첫 번째 책이 바로 <춘향전>이다. 일하는 방식은 일본어로 구술하고 이를 다시 프랑스어로 옮겨 적는 순서로 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좌절하고 조선으로 돌아가다







어렵사리 프랑스에 온 지 3년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홍종우는 귀국을 위해 배를 타려고 마르세유 항구로 갔다. 때는 1893년 7월 22일이었다. 펠릭스 레가메의 기록에는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이렇게 적혀 있었다.







"프랑스에서 뭐가 좋았습니까?"



"말들이오. 마르세유에 도착해서 봤는데 크고 튼튼해 보였소"



"나빴던 것은 뭐였습니까?"
"이기주의였소"






펠릭스 레가메는 타국에서 신세를 지고 살았으면서도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던 이방인에 대해서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홍종우 입장에서 보자면 프랑스에서의 시간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서커스 광대나 중국인으로 취급하는 백인들 사이에서 정치적 야심을 펼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조선의 문학을 유럽에 알리는 데 공헌을 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호구지책일 뿐이었다.











김옥균을 살해하다







많은 학자들이 홍종우가 김옥균의 암살을 결행한 이유에 대해서 분석했다. 정치적 신념 혹은 가문의 복수를 위해 암살을 결심했다고 추론하지만 가장 단순한 이유가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즉 고종의 밀명을 받고 도쿄에 온 자객 이일직을 만난 그는 아마도 거사가 성공되면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다짐을 받았을 것이다.







홍종우는 프랑스에서 몇 년 동안 지낸 경력만 가지고는 조선에 돌아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여기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과 몸이 아픈 상태가 겹치면서 극도의 불안감과 초조함이 그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 일조를 했을 것이다.























김옥균은 그렇게 죽지 않았다.







3일 천하로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김옥균의 신볍은 매우 위험해졌다. 급히 일본으로 피신했지만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이에 그는 중국 상하이로 가기로 결심한다. 1894년 3월 9일 밤 9시 58분, 그는 와다 엔지로, 사진사 가이 군지 등과 함께 시나가와역을 출발했다. 이후 상하이까지의 여비를 확보하기 위해 오사카에 열흘 동안 체류했다.







3월 21일, 이일직이 김옥균에게 일본 돈 600엔과 상하이에 위치한 천풍전장錢莊에서 현금으로 교환할 수 있는 5천원짜리 어음을 제공하면서 교환은 이일직 본인과 홍종우만 가능하다고 설명한 후 2천원을 여비로 사용하고 나머지 3천원은 홍종우를 통해 돌려달라고 했다. 물론 김옥균은 이일직과 홍종우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여비 때문에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3월 24일, 고베항에서 상하이로 향하는 배에 승선했다. 재기를 노리는 김옥균, 죽일 기회를 노리는 홍종우,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 시작되었다.







3월 28일, 김옥균은 홍종우에게 천풍전장에서 어음을 교환해 오라고 부탁하고 산책에 나섰다. 한편, 홍종우는 시간을 벌기 위해 마차를 빌려 상하이 시내를 둘러보았다. 오후 1시에 돌아와선 전장 주인이 없어서 오후 6시에 다시 가야한다고 둘러댔다. 그런데, 오후 4시쯤 홍종우에게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다. 와다가 김옥균의 심부름으로 1층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홍종우는 총을 꺼내 들고 김옥균의 방으로 들어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김옥균의 암살 당시 정황이다. 하지만 와다 엔지로의 증언은 약간 다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옥균이 2층 8호실 앞 복도에서 쓰러져서 죽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2층 8호실의 주인은 일본 해군 군령부 제2국장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일본 해군 군령부 국장이라는 요직을 맡은 인물이 하필 같은 여관의 같은 층을 썼고, 그의 방 앞에서 죽었으며, 암살 사건의 최초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일본 정부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으며, 일본 신문들 역시 김옥균이 방에서 낮잠을 자다가 암살당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했다.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대립







오늘날 대부분은 독립협회와 황국협회의 대립을 진보와 보수의 충돌쯤으로 이해하지만 진실은 좀 더 복잡하고 내밀하다. 황국협회가 독립협회와 갈등을 벌인 것은 고종을 비롯한 대신들의 배후 조종 때문만은 아니었다. 독립협회는 독립이라는 이름과 조정에 외세를 배격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것 때문에 반외세를 주장하는 단체로 오인된다. 하지만 '헌의 6조'에 나온 것처럼 이들은 외국과의 조약이나 협정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대신들과 중추원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외국 군대의 주둔이나 외국 상인들의 도성 안에서의 활동 역시 조선의 힘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물론 독립협회에서는 조정 대신들에게 함부로 외국과 협정을 맺어 나라에 손해를 끼쳤다고 맹비난했다. 도약소都約所와 건의소청에서 외국 상인들을 도성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할 때에도 시대를 거스르는 짓이라며 반대하는 다소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외국 상인들의 침투는 보부상들에게 위기감을 조성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이들은 외국 상인들의 활동을 묵인하는 독립협회와 마찰을 빚게 되었다. 민권民權 운동 측면에서도 10월 12일 민선의원을 선출하자는 <건백서建白書>를 제출한 황국협회 측의 견해가 중추원을 확대 개편하자는 독립협회 측 의견에 비해 훨씬 더 진보적이었다.











이승만의 야릇한 인생 역전







박영효의 역모와 연관되었다는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권총을 가지고 탈옥을 했다는 죄목을 가진 이승만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했다. 하지만 박영효와 관련이 없으며 탈옥 시에도 다른 두 사람의 권유와 협박 때문이었다는 증언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그리고 이런 내용의 질품서를 올린 평리원 재판장은 다름아닌 홍종우였다.







독립협회라면 이를 갈던 홍종우였지만, 그는 원칙대로 판결했다. 이승만 자신도 홍종우가 재판장으로 있는 한 살아남기 어렵다고 각오한 듯 훗날의 자서전에서 이때의 일을 "야릇한 인생의 역전"이라고 표현했다.







홍종우의 삶을 바라보면 묘한 궤적과 마주친다. 외부의 시선이 섞이면서 다소 혼란스러울 때도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는 왕권 강화론자의 길을, 법관으로선 지독한 원칙주의자의 길을 걸었다. 이처럼 홍종우는 이승만을 처형해서 고종의 신임을 받을 기회를 저버렸다. 홍종우가 갑자기 7월 27일 평리원 재판장에서 법부사리국장으로 좌천된 것은 이승만의 재판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1904년 8월 7일 이승만은 사면령을 받고 출옥했다. 마침내 그는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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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17-05-1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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