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2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1 개화승 이동인은 누구인가?

개화승 이동인은 누구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1회 - YouTube

개화승 이동인은 누구인가?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1회
법률방송
41,509 views  Feb 19, 2025  #스님 #한국인 #불교
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I: 친일개화파』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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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몰아치던 근대화 바람이 조선에 다다르면서 벌어진 이야기를 살펴볼까 합니다. 

봉건 사회에 머물던 조선이 근대 사회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시기, 이를 가장 먼저 깨닫고 변화하는 근대 국제 사회를 배우려던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조선의 사대부도 학자도 아닌 불교 승려였는데요.
바로 조선 최초의 개화승 이동인입니다.

조선 시대 가장 핍박받는 계층인  승려였던 그는 왜 일본의 개화 사상을 받아들이려 했을까요? 
그리고 그를 통해서 조선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인 이동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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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승 이동인은 누구인가> 요약 및 평론

1. 내용 요약

강좌 21회에서 함재봉은 쇄국 체제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조선이 근대 국제 사회로 진출하고 친일 개화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결정적 교량 역할을 한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자 개화승 이동인의 진취적 삶과 비극적 몰락을 재조명한다.

(1) 신분적 차별을 넘어선 진취적 탐구

  • 부산 개항과 스님 이동인의 만남: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이 개항하자, 범어사 출신 승려 이동인은 일본인 정착촌과 근대식 상점·병원 등의 출현을 지켜보며 새로운 문명에 눈을 떴다. 조선조 내내 도성 출입조차 금지당하던 최하층 천민 신분이었던 스님이 배타적 유교 질서를 넘어 근대화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직감한 것이다.

  • 동본원사(東本願寺) 부산별원과 오쿠무라 엔신의 접촉: 1878년 이동인은 부산에 설립된 일본 불교 사찰(동본원사)을 찾아가 사찰 포교사 오쿠무라 엔신(奧村圓心)과 교류를 시작했다. 그는 불교 교리보다 서구의 과학·지리·국제 정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2) 개화파의 탄생과 일본 밀항

  • 봉원사(세절)에서의 사상 전파: 이동인은 오쿠무라에게 얻은 일본·서구 관련 서적과 사진 첩을 가지고 한양 봉원사로 올라가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젊은 사대부 지식인들에게 보여주었다. 서재필의 회고처럼, 이들은 1년 넘게 비밀리에 이 책들을 독파하며 "우리나라도 인민의 권리를 세우자"는 개화 사상을 품게 되었고, 이동인은 개화파의 인도자가 되었다.

  • 금괴 지원과 밀항: 이동인의 보고에 감복한 김옥균과 박영효는 금괴를 여비로 내주었고, 이동인은 1879년 오쿠무라의 도움으로 벙어리 거지로 변장하여 일본으로 밀항했다. 교토 동본원사에서 일본어를 익히고 '아사노 도진(朝野東人)'이라는 이름으로 득도식(입산)을 거친 후, 도쿄로 넘어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물론 주일 영국 영사 사토(Ernest Satow) 등 외국 외교관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서구의 대화·사진 자료를 수집했다.

(3) 고종의 등용, 제물포 개항, 그리고 비극적 암살

  • 2차 수신사 김홍집과의 극적 만남: 1880년 2차 수신사로 도쿄에 온 김홍집이 일본의 제물포(인천) 개항 요구에 난색을 표하자, 이동인이 양복 차림으로 나타나 "조선을 계명에 이르게 하는 것뿐"이라며 인천 개항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김홍집은 그의 개화 지식에 감탄하여 그를 정식 일행으로 동행시켜 귀국했다.

  • 고종의 밀사와 신사유람단 기획: 고종을 접견한 이동인은 등유 램프, 성냥, 시계 등 근대 문물을 선보이고 <조선책략>의 연미(聯美)·자강 논리를 전달했다. 고종은 그를 최초의 근대 외교 기구인 통리기무아문 주사(관료)로 전격 임명하고 인천 개항을 단행했으며, 일본에 대규모 신사유람단을 파견하는 기획을 이동인에게 맡겼다.

  • 암살과 역사적 유산: 이동인은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유학생(유길준, 윤치호 등) 위탁 교육을 미리 부탁하는 등 사절단 파견을 완벽히 준비했으나, 1881년 3월 위정척사파나 보수 파벌에 의해 의문의 암살을 당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 평론: 변방의 천민이 연 근대성의 서막과 사상사적 의의

강좌 21회는 기존 사학에서 사대부 엘리트 중심(김옥균, 박영효 등)으로만 기술되던 개화파의 역사에, '아래로부터의 개화 승려' 이동인이라는 숨은 주역을 발굴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뛰어난 역사적 통찰을 보여준다.

첫째, 신분제 사회의 한계를 뚫어낸 '변방의 근대인'에 대한 조명이다. 조선 성리학 체제에서 사대문 출입조차 통제받던 최하층 천민 승려가, 국가의 쇄국 벽을 깨고 가장 먼저 외부 세계(부산 개항장과 일본)를 주체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근대인'이었음을 선명하게 입증했다. 기득권에 안주하던 사대부보다 억압받던 변방의 민중이 오히려 근대 문명을 신속하고 주체적으로 수용했다는 역설은 매우 서늘한 사상사적 통찰이다.

둘째, '사상 전이의 파이프라인'으로서의 공간적·인적 네트워크 발견이다. 부산 개항장에서 시작되어 교토·도쿄의 동본원사, 한양의 봉원사(세절), 그리고 김옥균·박영효·서재필이라는 양반 엘리트로 이어지는 사상 전파의 파이프라인을 정밀하게 복원해 냈다. 이동인이 없었다면 김옥균이나 서재필 등의 개화파가 근대적 세계관을 갖추기까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거나 불가능했을 것임을 밝혀낸다.

셋째, 개화의 기틀을 다지고 스러져간 선각자의 비극적 운명 고발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를 미리 만나 유길준과 윤치호의 유학 기틀을 마련하고, 통리기무아문과 인천 개항, 신사유람단을 사실상 독력으로 기획했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척사라는 성리학적 보수성의 광풍 속에서 암살당한 이동인의 말로는 조선 말기 기득권 체제가 자초한 자멸적 한계를 극적으로 상징한다.

결론적으로, 함재봉의 21회 강연은 개화승 이동인이 단지 개화파의 보조자가 아니라, 닫혀 있던 조선을 근대 세계 질서로 이끌어내고 '한국인의 탄생'을 위한 사상적·인적 네트워크를 직접 개척한 독보적인 개혁의 전령사였음을 명쾌하게 증명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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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21회

<개화승 이동인은 누구인가?> 요약 + 평론

이번 21회는 앞선 중국·일본 근대화 이야기에서 다시 조선으로 돌아온다. 함재봉의 핵심 주장은 <조선의 개화가 처음부터 김옥균·박영효 같은 유명 개화파 인물들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앞서 일본의 변화와 근대사회를 직접 보고 이를 조선에 전달한 이동인이라는 승려가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동인을 <조선 최초의 근대인 또는 최초의 개화인>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한다.

요약

1. 이동인은 왜 중요한가

함재봉은 이동인이 오늘날 거의 잊힌 인물이라고 지적한다. 조선 말 개화사를 이야기하면 보통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유길준 등을 떠올리지만, 이동인은 그들보다 먼저 일본의 변화를 직접 관찰하고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그 내용을 전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조선의 사대부가 아니라 불교 승려였다. 함재봉은 이것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조선의 지배적 성리학 질서에서 가장 억압받고 주변화된 종교집단 가운데 하나였던 승려가 오히려 외부세계를 가장 먼저 배워 개화를 촉진했다는 역설이다.

2. 부산 개항이 이동인의 세계를 바꾼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부산이 개항한다.

이동인은 당시 부산 범어사 계열의 승려였던 것으로 소개된다. 부산에 일본인이 들어와 정착하고 상점, 병원, 학교, 도로 등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된다.

함재봉은 이 경험을 이동인의 결정적인 각성으로 본다.

조선 사람에게 부산은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근대적 국제질서를 처음 직접 접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동인은 일본인이 만드는 새로운 도시생활과 상업·의료·교육시설을 보면서

<일본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갖게 된다.

3. 승려라는 신분이 오히려 일본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

함재봉은 이동인이 일본의 불교 승려와 접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일본 승려들은 개항 이후 부산에 들어와 일본인 거류민을 위한 종교활동을 했다.

조선 승려였던 이동인은 일본 승려들과 종교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연결될 수 있었다.

즉, 당시 사대부 관료가 공식 외교를 통해서만 일본을 접했다면 이동인은 불교 네트워크를 통해 보다 비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일본의 정보를 접했다.

이 점을 함재봉은 조선 개화의 흥미로운 출발로 본다.

4. 이동인의 특징은 ‘직접 알아보려는 태도’였다

강의 초반에서 함재봉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것은 이동인의 호기심이다.

그는 일본이 무엇을 하는지 소문으로 판단하지 않고, 실제 일본 승려들에게 찾아가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를 물었다.

함재봉은 이를 근대적 지식인의 중요한 태도로 본다.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을 때 그것을

<사악하다>
<오랑캐다>
<전통을 파괴한다>

라고 규정하기 전에 먼저

<무엇인지 알아보자>

고 접근했다는 것이다.

5. 이동인은 일본 서적과 사진을 받아온다

일본 승려들과 접촉하면서 이동인은 일본의 역사·지리·물리·화학 등을 다룬 책과 사진을 접한다.

당시 일본 책은 한자와 일본어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한문교육을 받은 조선인이라면 일정 부분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동인은 이 책들을 읽으며

<일본은 이미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조선 역시 일본처럼 국제사회에 진입하고 새로운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6. 이동인과 김옥균·박영효·서재필의 연결

함재봉은 이동인이 한양으로 올라가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 당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젊은 지식인들과 접촉했다고 설명한다.

그들에게 일본에서 얻은

책,
사진,
정보,
근대사회에 대한 지식

을 보여준다.

함재봉은 바로 이 장면을 <조선 개화파의 실질적인 시작> 가운데 하나로 본다.

즉 이동인이 하나의 <중개자>가 되어

<일본의 근대화 정보>

<조선의 젊은 개화지식인>

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7. 이동인은 개화파에게 일본으로 가라고 권한다

이동인은 단순히 책을 가져다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에게

<일본을 직접 가서 보아야 한다>

고 권한다.

함재봉은 여기서 이동인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한다.

일본에 대한 지식은 책으로만 배울 수 없으며, 직접 가서 도시·학교·병원·군대·산업을 보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이 이후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의 일본 방문과 연결된다.

8. 부산은 조선 최초의 근대도시 경험 장소였다

강의 3~4쪽에서 함재봉은 부산 자체를 중요하게 다룬다.

개항 전 부산은 매우 작은 도시였지만 일본인 거류지가 생기면서

도로,
상점,
병원,
학교,
근대적 건축

등이 빠르게 들어선다.

조선인이 처음으로

<근대적 도시란 이런 것이다>

라고 체험할 수 있는 장소였다.

함재봉에게 부산은 조선과 일본의 경계이면서 동시에 전근대와 근대의 경계였다.

이동인은 그 경계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9. 불교의 역설적 역할

강의 중반에서 함재봉은 조선 불교의 처지를 길게 설명한다.

조선시대 내내 불교는 성리학 국가의 억압을 받았다.

승려들은 서울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제한되었고, 사회적 지위도 매우 낮았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불교가 새로운 국가체제 속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일본 승려들이 조선에 들어와 사찰을 만들고 종교활동을 하는 모습을 본 이동인은

<불교가 반드시 이렇게 천대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도 깨달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함재봉은 본다.

즉 이동인에게 개화는 단순한 산업·군사 문제뿐 아니라 자신의 종교적·사회적 지위와도 연결된 문제였다.

10. 오쿠무라 엔신과의 만남

함재봉은 이동인과 일본 승려 오쿠무라 엔신의 관계를 중요하게 다룬다.

오쿠무라는 일본 불교계 인물로 부산에서 활동했고 이동인과 접촉했다.

그는 이동인에게 일본의 변화와 국제정세를 알려주고 일본 방문을 돕는다.

함재봉은 이것을 <국가 간 공식 외교 이전에 종교 네트워크를 통해 이루어진 근대지식의 전달>로 본다.

11. 이동인의 첫 일본행

1879년 이동인은 일본으로 건너간다.

공식 허가를 받은 사절이 아니라 사실상 비공식적으로 일본에 들어간 셈이었다.

함재봉은 이를 매우 대담한 행동으로 평가한다.

당시 조선인은 해외여행 자체가 매우 어려웠고, 일본 방문은 정치적으로도 위험했다.

그럼에도 이동인은 일본에 가서 언어를 배우고 일본사회를 직접 관찰한다.

12. 일본에서 이동인의 신분과 이름도 변한다

이동인은 일본에서 도식을 하고 일본어를 익힌다.

그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 적응하고 조선의 승려라는 기존 신분에서 벗어나 보다 국제적인 인물로 변한다.

함재봉은 이 변화를 단순한 외모의 변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실험하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그에게 개화는 책 몇 권 읽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과 세계관까지 바꾸는 일이었다.

13. 이동인은 도쿄에서 일본 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을 만난다

강의 후반부에서 이동인의 활동 범위가 크게 넓어진다.

그는 도쿄에 가서 일본 정부 인사뿐 아니라 외국 외교관들과도 접촉한다.

대표적으로 영국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와의 만남이 소개된다.

사토는 일본어와 한문에 능통하고 동아시아 정세를 잘 아는 외교관이었다.

이동인은 그에게 조선 상황을 설명하고

<조선도 국제질서에 들어가야 한다>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
<미국 등과 연결해야 한다>

는 문제를 논의한다.

14. 이동인은 국제정세를 조선에 전달한다

함재봉은 이동인이 단순히 일본의 제도만 배운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일본에서

러시아,
중국,
미국,
영국,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동아시아 전략을 접한다.

그리고 그것을 조선의 왕과 개화파에게 전달한다.

즉 이동인은

<일본의 근대화 소개자>
를 넘어
<국제정세의 해설자>

가 된다.

이 점에서 함재봉은 이동인을 조선 최초의 근대적 국제정치 지식인에 가깝게 평가한다.

15. 김홍집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1880년 김홍집이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이동인은 그와 만나 조선이 일본과 서양을 배워야 한다고 설득한다.

강의에서는 이동인이 조선책략과 같은 국제정세 자료의 전달에도 연결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시기에 개화파의 문제의식은

<일본을 배울 것인가?>

라는 수준에서

<러시아·중국·일본·미국 사이에서 조선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라는 국가전략 문제로 확대된다.

16. 이동인의 적극성

함재봉은 이동인이 매우 적극적인 인물이었음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그는

부산에서 일본 승려를 찾아가고,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정치인을 만나고,
서양 외교관을 만나고,
책과 사진을 모으고,
조선의 젊은 지식인을 설득하고,
왕에게까지 국제정세를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행동력 때문에 함재봉은 이동인을 단순한 승려가 아니라 <조선 최초의 근대적 행동형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17. 1880년 귀국과 고종과의 접촉

이동인은 일본에서 돌아와 고종에게 일본과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함재봉은 이것이 고종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일본이 얼마나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지, 러시아가 남하하고 있으며 조선이 국제사회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이동인이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후 조선정부가 통리기무아문 같은 근대적 행정기관을 만들고 일본에 조사시찰단과 유학생을 보내는 흐름이 시작된다.

18. 이동인의 두 번째 일본행과 자금 조달

이동인은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서양 문물과 자료를 더 가져오려 한다.

강의에서는 그가 일본에서 돈을 빌려

케로신 램프,
시계,
서양 물품,
책과 자료

등을 구입했다고 설명한다.

함재봉은 이것을 단순한 물품 구입이 아니라 <조선인에게 서양 근대를 눈앞에서 보여주려는 노력>으로 해석한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 물건과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19. 조사시찰단과 유학생 파견의 배경

1881년 조선은 일본에 조사시찰단을 보낸다.

함재봉은 이 결정의 배후에도 이동인의 활동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그가 개화파와 고종에게

<직접 일본에 가서 배워야 한다>

는 생각을 계속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은 일본에 대규모 조사단과 유학생을 파견하고, 일본의 군사·교육·산업·행정체계를 조사한다.

20. 이동인의 갑작스러운 실종

그러나 이동인의 삶은 갑자기 끝난다.

1881년 3월 무렵 한양에서 흔적이 사라진다.

그 뒤 정확히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함재봉은

암살설,
정치적 제거설

등 여러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확정할 자료는 없다고 한다.

이동인은 당시 매우 눈에 띄는 인물이었고, 개화에 강하게 반대하던 위정척사파에게는 위험한 존재였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누가 왜 그를 제거했는지는 미스터리로 남는다.

21. 이동인의 역사적 역할

함재봉의 결론은 매우 강하다.

그는 사실상

<이동인이 없었다면 조선 개화파의 출현도 훨씬 늦어졌을 것>

이라고 본다.

이동인이 만든 네트워크를 통해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유길준

등이 일본과 연결되고 국제정세를 배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함재봉은 이동인을

<조선 최초의 근대적 인간>

으로까지 평가한다.


평론

이번 21회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전체에서 보기 드물게, 유명 정치지도자가 아니라 거의 잊힌 <중개자>에게 역사의 주도적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이 좋다.

가장 중요한 통찰은 <근대화는 아이디어가 저절로 퍼지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책·사진·물건·여행·번역·인맥을 통해 전달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동인은 바로 그런 <매개자>였다.

<일본 승려>
→ 이동인
→ 김옥균·박영효·서재필
→ 고종·조선정부

이라는 연결망이 만들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개화는 어느 날 갑자기 갑신정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부산의 작은 항구에서 한 승려가 일본인에게

<당신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물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두 번째 장점은 <불교의 위치>를 다시 보게 한다는 점이다.

조선 성리학 국가에서 주변화된 승려가 오히려 근대문명의 전달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상징적이다.

기존 체제에서 혜택을 가장 많이 받던 사대부는 변화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지만, 체제에서 배제된 승려에게는 오히려 변화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였을 수 있다.

이 해석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다만 몇 가지 유보가 필요하다.

첫째, 함재봉은 이동인의 역할을 상당히 크게 평가한다. 이동인이 김옥균·박영효 등에게 일본정보를 전달하고 일본 방문을 연결한 것은 중요한 사실이지만, <이동인이 없었다면 개화파가 없었다>고까지 말하면 개인의 역할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

이미 박규수·오경석·유홍기 등을 통한 북학·개화의 지적 계보가 존재했고, 청나라의 양무운동, 일본의 메이지유신, 개항이라는 국제환경 자체가 조선의 변화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동인을 <개화의 창시자>보다 <개화 네트워크를 급속히 연결하고 촉진한 중요한 매개자>라고 평가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둘째, 강의에서 일본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부산의

도로,
병원,
학교,
상점,
근대 도시

를 보고 이동인이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근대적 부산은 강화도조약이라는 불평등조약과 일본의 경제적 침투 속에서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했다.

즉 부산은

<근대문명의 창구>

인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으로 들어오는 전초기지>

이기도 했다.

두 측면을 동시에 볼 필요가 있다.

셋째, 함재봉이 이동인의 불교적 배경을 매우 흥미롭게 활용하지만, 이동인이 실제로 <불교 개혁> 자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생각했는지는 이 강의 자료만으로는 확실하지 않다. 이동인이 일본 불교와 접촉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개화의 목적을 불교 부흥으로 보았는지, 국가 근대화로 보았는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넷째, 이동인의 실종은 매우 흥미롭지만 사료가 부족하다. 따라서 암살이나 위정척사파에 의한 제거를 확정적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강의에서도 여러 설을 언급할 뿐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이번 강의가 보여주는 함재봉 역사관의 변화

21회는 앞 강의들과 비교하면 조금 다른 함재봉을 보여준다.

그동안에는

<청나라>
<일본>
<영국>
<국가와 제도>
<거대한 문명체계>

를 중심으로 설명했다.

이번에는 한 사람의 <호기심과 이동>이 역사를 바꾸는 모습을 강조한다.

이동인이 한 일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낯선 것을 보고>
→ <질문하고>
→ <직접 찾아가고>
→ <책을 읽고>
→ <사람을 만나고>
→ <다른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함재봉은 바로 이 태도를 근대적 인간의 특징으로 본다.

그래서 이번 강의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이동인의 역사적 중요성은 완성된 개화사상을 만들어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막혀 있던 정보·사람·책·아이디어의 통로를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열어젖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함재봉의 전체 <한국인의 탄생>에서 꽤 중요한 메시지다.

<새로운 한국인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먼저 밖으로 나가 보고 묻고 배우는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탄생했다.>

21회는 바로 그 <최초의 행동형 개화인>으로 이동인을 복원하는 강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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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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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25 seconds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 있니다 지난 시간에는 어 우리가 아편
0:3333 seconds전쟁하고 태평천국의 난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사실 중국이 근세와 맞닥뜨리면서 가장 큰 위기를 맞는데
0:4242 seconds그때마다 중국본 어 이홍장 곽성도 이런 그 지도자들이 어 부상을 하면서
0:5050 seconds어떻게 그 위기를 넘기고 어 그리고 소위 말하는 동치 중까지 걸거 왔는가
0:5656 seconds그 부분을 좀 살펴봤습니다 오늘 하고 다음 시간에는 이제 계속해서 그럼
1:041 minute, 4 seconds조선에서 개화파 그이 일본하고는 도대체 어떻게 접촉을 하게 되었을까 그 완전히 쇄국의
1:121 minute, 12 seconds상태였었다 이유로 극단적으로 제안하고 어 그 끊어 놓은 상태에서 일본이
1:191 minute, 19 seconds급속한 개국을 하고 어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근대화를 해 나가는 그런 과정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그
1:281 minute, 28 seconds어떻게 접촉을 하게 돼서 그 있는지 사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우리 그 근세사의 장면들입니다 특히 그
1:371 minute, 37 seconds장면에서 역할을 하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하나가 이동이라는 화입니다 스님인데 불교 스님인데 어 처음으로
1:461 minute, 46 seconds개화를 문명을 그 맞이하는 제가 봤을 때 어떻게 보면 조선 최초의 근대인
1:541 minute, 54 seconds이라고까지 볼 수 있습니다 초로 근대화를 는 외국 이번이 경우
2:012 minutes, 1 second일본이에 나가서 아 근대 사회라는게 이렇게 바뀌고 있 있구나라는 거를 몸서 처음으로 취득하고
2:102 minutes, 10 seconds배워서 와서 그다음에 또 말씀드릴 김옥균 이런 사람들하고 접촉을 하면서 일본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그러니까
2:192 minutes, 19 seconds우리도 빨리 따라가야 겠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중차대한 역할을 한 사람이 어 개화성 이동입니다 우리
2:282 minutes, 28 seconds역사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죠 않고 어 사실 비극적으로 역사의 장에서 사라지는 인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
2:362 minutes, 36 seconds사람이 남긴 어 그 족적 그리고 그 사람이 어 시작한 조선의 문명개화
2:432 minutes, 43 seconds저는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오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이제
2:532 minutes, 53 seconds시작하겠습니다
2:562 minutes, 56 seconds[음악]
3:053 minutes, 5 seconds어 이동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하고 접촉을 하기
3:123 minutes, 12 seconds시작하면서 어 일본측 기록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 전까진 사실 부산에 있는
3:203 minutes, 20 seconds범어사에서 출가한 어 불교 승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3:273 minutes, 27 seconds1878년부터 기록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합니다 부산의 보호사 출신 스님 이동인이
3:353 minutes, 35 seconds사실 그 당시에 우리가 생각해 보면 이렇죠 그니까 부산 사람이면 강화도 조약을 통해서
3:423 minutes, 42 seconds1876년에 개항을 하거든요 근데 개항하는 데가 어디를 하냐면 부산을 하거든요 그니까 그 개을 하는 부산에
3:513 minutes, 51 seconds있는 스님의 입장에서 한번 야이 일본이 도대체 뭐를 하는 나라일까
3:583 minutes, 58 seconds어떻게 해서 산 이란 데를 굳이 열어서 개을 하라고 그렇게 날서 와서는 그럼 도체 뭐를 하는 건가이
4:064 minutes, 6 seconds사람들이 뭐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임진란 때 그랬지만 이번에는 개을 하자 하자 해
4:134 minutes, 13 seconds갖고 와서 하는 거를 보니까 어이 사람들이 와서 장사를 하기 시작하고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하고 무슨 병원을
4:224 minutes, 22 seconds짓고 이제 이런 일들을 하면서 전혀 자기가 생각했던 거와는 다른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이 알고 있었 던 것과는
4:304 minutes, 30 seconds전혀 다른 형식의 어떠한 상업적인 삶을 본격적으로 꾸려나가는 걸이 사람들이 이제 보는
4:384 minutes, 38 seconds거죠 이동인 이제 그중에서 보는 겁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자기가 이거는 공부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4:474 minutes, 47 seconds들어서 마침 일본 사람들이 불교 신자들 아닙니까 그때에 거기에 일본
4:544 minutes, 54 seconds사람들의 종교 생활을 위해서 일본에서 또 스님이 와서 저를 열 그죠 일본 스님이 와서 저를 열고서
5:025 minutes, 2 seconds포교를 하고 그러니까 조선의 스님으로서 궁금하지 않겠습니까 뭐
5:105 minutes, 10 seconds궁금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겠지만 정말 이동인이라 사람은 실제로 찾아가서 그 일본 스님을
5:185 minutes, 18 seconds찾아가서 자 나 좀 리켜 주시오 당신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고 일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
5:255 minutes, 25 seconds이제 이런 거를 물어봅니다 알아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한 진취적인 굉장히 진취적인 정신이
5:345 minutes, 34 seconds놀랍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어 대사들을 보낼 때
5:415 minutes, 41 seconds그때 후쿠아 기지가 따라가 가지고 샌프란시스코에가 갖고 왔다 갔다 하다가 거기에 있는 사진관에 가서
5:495 minutes, 49 seconds사진사에 딸하고 사진을 찍게 해 달라 해서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는 말씀을 드렸고 사진도 어 보여 드린 적이 있는데요 사실 전 굉장히 그런 거
5:585 minutes, 58 seconds같습니다 아 이게 나라가 어떠한 점프를 할 때 새로운 단계로 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거는 이런
6:076 minutes, 7 seconds진취적인 사람들이다 뭐 가능성들 새로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걸 그냥 피상적으로 피동적으로 보는게 아니라
6:146 minutes, 14 seconds찾아가서 이거 뭐 하는 거요라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되는데 저는 그런 의미에서이 동인이
6:226 minutes, 22 seconds부산에 일본 절이 열리니까 거기를 찾아간다는 거 저는 이거는 우리 개화사 있서 결정적 전이었다고 생각을
6:316 minutes, 31 seconds합니다 그때에 이동이 거기서 그 절에서 배운 거를 그 절에 가서 일본
6:396 minutes, 39 seconds스님하고 여러 가지 얘기를 하면서 배운 거를 갖고서 한양에 올라가서 김옥균 서재필 박용효 당시 아주 젊은
6:496 minutes, 49 seconds뭔가 나라 걱정을 많이 하는 거 같고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는 거 같은 그런 젊은이들을 접촉을 해서 그 사람들하고
6:576 minutes, 57 seconds만나서 부산에 있는 스님으로부터 얻은 일본 관련 서적들 사진들 이런 거를
7:057 minutes, 5 seconds박영 서재필 김한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 저는 우리 개화의 시작이라고 어 생각을 합니다 자 그때 이제 기록을
7:137 minutes, 13 seconds보시면 서재필이 이렇게 얘기를 하죠 이동인 역할에 대해서 분명하게 얘기를 합니다 그때 가져온 책이 여러 권인데
7:217 minutes, 21 seconds역사도 있고 질의도 있고 물리 화학 같은 것도 있어 이것을 보려고 선달 동안 그 절에 다니다가 그때는 이런
7:287 minutes, 28 seconds책을 보다 들키다 men 들키기 하면 사악 즉 사문 난 적이죠이라 해서 중보를 받게 되므로 한 군데서
7:377 minutes, 37 seconds오랫동안 볼 수가 없어 그다음에는 동대문 막 그게 무슨 절이라 영도사 가서 아마 얼마 동안 보다가 다시
7:447 minutes, 44 seconds봉원사 이렇게 하기를 1년 이상이나 걸려서 그 책들을 다 읽었지 그때 그 책이 일본말로 쓴 것인데 우리가
7:527 minutes, 52 seconds한문은 대게 짐작하게 한 문자만 연달아 읽어보면 뜻은 모두 통한다 말이야 그래서 그 책들을 다 읽고
7:597 minutes, 59 seconds나니까 세계 대세를 대강 짐작할 거 짐작할 것 같거든 그래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처럼 인민의 권리를
8:088 minutes, 8 seconds세워보자는 생각이 났단 말이야 이것이 우리가 개화파로 첫 번 나서게 된 근본이 된 것이야 다시 말하면
8:168 minutes, 16 seconds이동이라는 주흥이 우리를 인도해 주었고 우리는 그 책을 읽고 그 사상을 가지게 된 것이니 세절 절이
8:258 minutes, 25 seconds우리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여기서 세절이라는 것은 지금 그 그 봉원동이란 제가 잘한 동네입니다
8:348 minutes, 34 seconds어려서부터 1959년부터 어 살았던 동네인데 그 봉원동 봉원 사란 절이
8:418 minutes, 41 seconds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 절이 뒷산에 있어서 놀러 맨날 놀러갔었는데 그걸 세절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그랬어요
8:488 minutes, 48 seconds그래서 왜 세절이라 그러는지 몰랐는데 여기도 보니까 그거를 세절이라 그러더라고요 서재필 씨가 절이라 그래요 그러니까 이동인이 거기에서
8:588 minutes, 58 seconds책을 갖고 와서 거기서 김옥균 박영 서재필과 함께 일본 책들을 읽은 거죠 일본말로 돼
9:069 minutes, 6 seconds있어서 다 아는 문 있지만 그래도 뭐이 분들이야 워낙 한문에 출중한 통통한 분들이니까 나가나 이런 것만
9:169 minutes, 16 seconds조금 알면은 대충 넘어가면 뜻을 알았다 이거죠 그렇게 해서 자기네가 개화를 해야 되겠다라고 나서게
9:239 minutes, 23 seconds됐답니다 자 그러면이 동인이 일본을 배우게 된다는 건 저는 결코 의연이 아닙니다 아까도 말씀드 지만 우선이
9:309 minutes, 30 seconds부산이라는 데가 놀라운 데죠 여러분 지금은 한국의 대한민국의 제 2의
9:379 minutes, 37 seconds도시라 그럽니다 그때는 부산이라는 것은 동네 부라는 조그만 관청이 있는 마을
9:469 minutes, 46 seconds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외진 곳이었고 거의 인구가 천명 2천명 밖에 안 되는 곳이었고 그리고 거기
9:549 minutes, 54 seconds외관 초량지점 만들어서 이제 거기에 일본 어 수시아 섬에 대마도에 배 20척
10:0110 minutes, 1 second세견선 1년에 그 20척 man 들어오게 했었던 바로 그 동네입니다 조선 임진 내란 이후 내내 일본
10:1010 minutes, 10 seconds사람이 그나마 조선하 접촉할 수 있는 데가 초량제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강화도 조약을 통해서 일본이 조선
10:1910 minutes, 19 seconds보고 개항을 해라 해라 하면서 그러면 제일 가까운 데니까 그럼 우리가 초량제 하자 초량제 그 대신 그동안에
10:2610 minutes, 26 seconds이렇게 철책이 이런 걸로 가둬 왔는데 그걸 다 치워 버리고 이제 마음대로 일본 사람들이 와서 정착도 할 수
10:3410 minutes, 34 seconds있게 하고 건물도 질 수 있게 하고 상점도 짓고 장사도 할 수 있게 하자 이게 강화도 조약입니다
10:4210 minutes, 42 seconds그러니까는 부산은 일본 사람들이 만드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그 일본 사람들이 근대 도시를 처음으로 만들어
10:5010 minutes, 50 seconds가면서 이쪽에는 상가들이 있고 저쪽에 뭐 병원이 있고 뭐 학교도 있을 거고 그리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절도
10:5810 minutes, 58 seconds지어놓고 이제 이런 쭉 근대 도시의 모습이 쭉 나오는 거를 제일 먼저 경험하고 목격한게 부산 사람들이고 그
11:0611 minutes, 6 seconds중에서 이동인이 그걸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일본 하고의 근대 무역의 발상
11:1411 minutes, 14 seconds지구 일본하고 무역관의 발상지가 아니죠 사실은 조선이 개국을 해서
11:2011 minutes, 20 seconds근대 국제 질서 속에 들어오게 되면서 그야말로 근대 국 세계 질서와
11:2711 minutes, 27 seconds접촉하게 되는 첫 만나는 지점이 그게 부산이 됩니다 그때에 고기에 이동이 있었던 거죠 자
11:3511 minutes, 35 seconds그리고 두 번째는 불교 승이었다 겁니다 저는이 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여러분 아시죠
11:4311 minutes, 43 seconds불교는 조선시대 내내 탄압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스님들은
11:5111 minutes, 51 seconds천민이 조선 도성에 4대문 안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금지가 돼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도성에 들어온지
11:5911 minutes, 59 seconds아세요 갑보 경장 때 들어옵니다 1895년 6년이 돼서야 그때에
12:0712 minutes, 7 seconds96년에 스님들이 진정서를 내서 누구한테 내느냐 그때에 조선의 2차 갑보 경장을 주도하기 위해서 왔던
12:1612 minutes, 16 seconds인호의 가오루 공사한 우리 스님들도 사대문 안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때 그걸 허가를
12:2412 minutes, 24 seconds해줍니다 일본 사람 불교신자였던 면 이동인이라는 분의 입장에서 이런
12:3312 minutes, 33 seconds거 아닙니까 자 조선에서는 불교는 이루 만 말할 수 없이 탄압받던 종교입니다 불교라는 거를 나라에서
12:4012 minutes, 40 seconds해주는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불교 사찰들 전부 다 쇠락 됐습니다 여러분 불국사 이런 사진들 보시면요 옛날
12:4912 minutes, 49 seconds사진들 보시면 정말 처참합니다 그죠 석구라 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거를 일본
12:5712 minutes, 57 seconds학자들이 가서 발굴을 하고 하게 되는 거고 신라에 있는 모든 어 고분들
13:0413 minutes, 4 seconds이런 것들이 일본 학자들이 와서 다 고고학자들이 와서 발굴하기 시작하고 그러는 거죠
13:1113 minutes, 11 seconds그랬었는데 어 일본이란 나라가 와서 하는 거를 보면 일본이 놀라운 변화를
13:1813 minutes, 18 seconds겪고 있고 정말로 경천동지할 새로운 문명을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자기네가
13:2613 minutes, 26 seconds부산에서 직접 목격을 하는데 해필이면이 이게 뭐냐면 불교 문명이 유교 문명인 조선 자기네를 천시하는
13:3413 minutes, 34 seconds유교 문명은 완전히 쇠락을 하고 있고 불교 국가인 일본에서는 나라가 흥하면서 하도
13:4413 minutes, 44 seconds흥하다 못해서 이제 조선까지 개국을 시키고 와서 부산이란 도시를 만들면서
13:5013 minutes, 50 seconds거기에서 근대 사회의 도시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게 되는 거죠
13:5713 minutes, 57 seconds불교신자 불교 이 동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근대화라는게 뭐냐 대화라는게 뭐냐 아 유교를
14:0614 minutes, 6 seconds무너뜨리고 불교 쪽으로 가야지 오히려 불교가 데랑 저 잘 맞는 것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분명히 저는 했을
14:1414 minutes, 14 seconds거라고 생각하고 따라서 조선 체제의 가장 큰 혜택을 받는 사대부들과는 전혀 달 다르게 조선
14:2414 minutes, 24 seconds체제로부터 가장 탄압을 받는 불교 스님의 입장에서는 빨 근대화로 가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그 사명감을
14:3314 minutes, 33 seconds갖게 되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어 일본이 와서 적극적으로 부산을
14:4114 minutes, 41 seconds개발하기 시작합니다 상점들 짓고 창고들 짓고 한구 짓고 재판소 짓고 병원 짓고 이제 이러면서 자기네가
14:4914 minutes, 49 seconds거기서 자치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모든 기반을 마련하면서 어 장사를 하면서 그 상업도시로 이제 부산이
14:5814 minutes, 58 seconds나오기 시작을 한 거죠 그런데 이제 일본 사람들이 불교 신자들이 그 불교
15:0515 minutes, 5 seconds신자로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종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이제 일본 정부가 그 오쿠보
15:1315 minutes, 13 seconds도시 미치가 당시 모든 일본의 정책을 이끌고 나갔던 유신삼걸 중에 하나죠
15:1815 minutes, 18 seconds오쿠보 어 그 조선에도 가서 포교를 해 달라 그러면서 당시 일본 최대
15:2715 minutes, 27 seconds불교의 최대 종파 아인 정토진종의 본산인 동본원사 히가시
15:3515 minutes, 35 seconds홍간지의 조선 포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근데 그래서이 히가시 홍간지 동본원사
15:4315 minutes, 43 seconds오쿠무라 엔진이라는 스님한테 당신이 좀 조선에 건너가서 포교를 해 주십시오 그럽니다
15:5015 minutes, 50 seconds그런데이 사람들이 그냥 막연히 오쿠무라 인신을 뽑은게 아닙니다 오쿠무라 신은 그 멧돼지
16:0016 minutes할아버지가 사실은 조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본의 전국 시대 말기에
16:0716 minutes, 7 seconds오다노부나가 그죠 오다노부 나가가 사실은 암살 당하지 않았으면 일본을 통일했을 전국 시대를 끝냈을 사람인데
16:1416 minutes, 14 seconds오다 노부나가가 암살을 암살이 되면서 그 밑에 있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실은 오다가 거의 다 이뤘던 그
16:2316 minutes, 23 seconds천하 통일을 마지막 단계를 완성을 하는게 도요토미가 되는 거죠 도미씨 그 나가가 사를 당하니까 그 밑에 있었던
16:3316 minutes, 33 seconds신하였던 오쿠라 카노스라는 사람이 불교의 귀의를 합니다 불교 승이 되 버립니다 자기
16:4116 minutes, 41 seconds어 그 주인이 죽으니까 그러고 나서 조신이 법명을 받고서 1588년 선조
16:4816 minutes, 48 seconds21년에 혼간지 10대 주지 교인이라 사람으로부터 황금과 아미타 열상을
16:5616 minutes, 56 seconds받아갔고 조선으로 건 조선의 고독사는 저를 창건을 합니다 신는
17:0417 minutes, 4 seconds그 조신의 후손입니다 직계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본 사람들은요 사실
17:1217 minutes, 12 seconds조선학교의 관계를 면밀하게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거죠 그니까 옛날부터 관계가 있었던 히가시 홍간지 다시
17:2117 minutes, 21 seconds가서 200년 전에 고독사란 절까지 관 참관했던 사람을 그 후손을 찾아내서
17:2917 minutes, 29 seconds가서 포기를 해 주십시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오쿠무라 인신이 부산으로 건너와서
17:3717 minutes, 37 seconds부산에서 히가시 홍간지 부산 별원 동본원사 부산 변론을 창건을
17:4517 minutes, 45 seconds합니다 그래서 그게 1877년 있니다이 절에 이동인이 나타나는
17:5417 minutes, 54 seconds거죠이 절에 이동인 나타나서이 오꾸라 인신을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 일본 사람들은 뭐 그때나 지금이나
18:0218 minutes, 2 seconds철저하게 기록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에 오쿠무라 인신이 매일같이 기록을 하고 자기 동본원사 본부에 늘 보고를 했던
18:1218 minutes, 12 seconds그 보고서의 그 포교 일지라게 있는데 거기에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부산 변론이 개설된 다음해인 메이지 11년
18:2018 minutes, 20 seconds1878년 12월 1일 살을 에이는 추운 아침이었다 통도사의 승이라고 하는 이동이 은근 이 오쿠라의 지도를
18:3018 minutes, 30 seconds받겠다고 결론을 방문하여 왔다 품격도 있고 문필 뛰어나 지금까지 오쿠무라
18:3618 minutes, 36 seconds만난 승려와 취향이 달라서 오쿠무라 씨를 정중이 맞아 한동안 얘기를 하고
18:4218 minutes, 42 seconds씨는 같다 그 후 신은 오쿠라의 후위에 힘입어 자주 내방하고 혹은
18:4918 minutes, 49 seconds벼원에서 수일간 체제하 언제나 시사를 말하고 국제간의 정세를 말하지 불교는
18:5518 minutes, 55 seconds말하려 하지 않는다 오구라는 날로 더욱 씨가 보통의 승려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몰래 씨의 참 모습을
19:0319 minutes, 3 seconds간파하고 하였으나 씨는 용이하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러분 한번 상상을 해 보세요 그냥
19:1119 minutes, 11 seconds그야말로 거지 같은 행색을 하고 천민으로 차별 받으면서 그러고 다니던
19:2019 minutes, 20 seconds이동인이 보니까 어느 날 새로 생기는 부산이란 도시
19:2619 minutes, 26 seconds한복판에 아주 멋진 화려한 절이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가서 들어가 왔더니 뭐
19:3519 minutes, 35 seconds다 갖췄어 사실 불경 이런 거 언제 구경이나 제대로 된 불경 세트 같은 거 구경해 받겠습니까 너무나 안락하게
19:4319 minutes, 43 seconds모든 거 편하게 해 놓고 나서 깨끗하게 해놓고 불 공들 들리고 있고 불교 공부를 하고 있고 참선 하고
19:5019 minutes, 50 seconds이런 모습을 보고서는 얼마나 이동이 놀랐겠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들어가서 얘기를 시작하 말을 걸었던
19:5819 minutes, 58 seconds거죠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이제 불교 얘기를 좀 했답니다 그래도 불교 성이니 당연히 근데 가은 갈수록이 보고서에 나와
20:0720 minutes, 7 seconds있듯이 뭡니까 국제 정세 이런 거에 관심이 오히려 많고 가면 갈수록 불교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답니다 그러니까 벌써 오쿠무라인 씨도 아
20:1520 minutes, 15 seconds이거 보통 사람이 아니다 생각을 했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 몇 달을 지냈는데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또
20:2220 minutes, 22 seconds나타나서 아유 나 단 분간 못 오겠습니다 그리고 홀연이 사라졌답니다
20:3020 minutes, 30 seconds1879년 초여름에 나 경성 좀 다녀 올테니까 당분간 못 오겠습니다 하고
20:3720 minutes, 37 seconds이제 사라졌답니다 그러고 나서는 8월 중순이 되니까 몇 달 있다가 갑자기
20:4520 minutes, 45 seconds다시 나타났다는 거죠 그러면 이게 언제입니까요 사이에 뭡니까 이동인이 오쿠무라 인신부터 받은 책들 조선의
20:5520 minutes, 55 seconds근대화 개화 뭐 이런 거에 대한 자료들을 뭐 진 책도 있었을 거고 사진 첩도 있었 이런 거를 다 가지고
21:0221 minutes, 2 seconds한양에 올라가서 거기에서 김옥균 박영호와 접촉을 해서 봉원 사에 모여서 자기가 가지고간 책들 보여 준
21:0921 minutes, 9 seconds거죠 그러면서 그때에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이 와 이거 너무나 놀라운
21:1721 minutes, 17 seconds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거 큰일났다 우리 이거 따라가야 된다 어떻게든지 배워야 된다 근데 이걸 어떻게 배워요
21:2421 minutes, 24 seconds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지금 일본에 누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항은 했다지만 일본 사람들이
21:3121 minutes, 31 seconds건너오는 것이지 부산에 건너오는 것이지 조선 사람들이 일본에 건너갈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여권도 없고 뭐
21:3821 minutes, 38 seconds배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런데 이거 건너가야 된다 그러면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이
21:4721 minutes, 47 seconds이동인 테 임무를 줍니다 우리가이 사진하고 책으로 이제 봤는데 너무나 놀라운데 당신이 눈으로 보고 배워와야
21:5521 minutes, 55 seconds된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그래서 다시 이동이 웃의 신한테 나타납니다 8월
22:0222 minutes, 2 seconds중순이 되자 연이 경성에서 내방하여 사람들을 멀리 하고는 지금까지 속마음을 말하기 꺼려 하였으나 이제야
22:1022 minutes, 10 seconds그 시기가 도달하였다고 하고는 신은 박영효 김옥균 양씨의 의을 받고 일본의 정세 시찰에 몸을 바치기로
22:1922 minutes, 19 seconds결심했음 말하고 차제에 일본의 태도를 시찰하고 문물을 연구함으로써 조선의
22:2622 minutes, 26 seconds문화 개혁에 공하고 싶다고 말하며 또한 박영혁 김옥균 양씨가 여비로 주었다고 하는 2천이 넘는 순금의 봉
22:3522 minutes, 35 seconds네개를 보이면서 여행의 준비를 상담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내가 이런 이런
22:4322 minutes, 43 seconds사람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나한테 가르쳐 준 일본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 다 얘기를 했더니 이분이 나한테 어떻게서든지
22:5022 minutes, 50 seconds일본에 건너가서 좀 일본을 정세를 살피고 와 달라 그러면서 자기한테이 금덩어리가 이제도 줬다 그러니 나중 1번에 보내 주십시오 그러는 겁니다
22:5922 minutes, 59 seconds그래서 어떡합니까 오쿠무라 인신이 교도의 동본원사 본부에 다 연락을 하고 다 논의를 한 끝에 그래
23:0723 minutes, 7 seconds대단히 위험한 일이지만 이거는 우리가 모험을 해서라도이 사람을 어떻게 쓰지 이렇게까지 일본을 배우겠다 그랬는데
23:1523 minutes, 15 seconds우리가 일본에 가도록 해 줘야 되겠다 그래서 벙어리 거지로 변장을 시켜서
23:2323 minutes, 23 seconds배에 태워서 1879년 6월에 일본으로 밀항을 시킵니다 그래서
23:2923 minutes, 29 seconds일본에 도착을 한 다음에 교도의 동본원사 가시 관제에 가서 거기에서
23:3623 minutes, 36 seconds일본말을 배우고 그리고 아예 일본의 승려로서 일본에서 이제 공 일본에서 도식을 해야 되니까 제대로 승려가
23:4523 minutes, 45 seconds되려면 그러면 어차피 일본말도 배우고 일본말로 불경도 읽고 그러기 위해서 도식을 준비를 해서 1년에 걸쳐서
23:5423 minutes, 54 seconds공부를 해서 1880년 4월 5일 도의 동보원 사에서 어 도식을 합니다 이때 도식을
24:0224 minutes, 2 seconds하면서 본식 이름을 갔는데 그때 조야 동인 조선의 야인 아사노 도진이랑
24:1024 minutes, 10 seconds이름으로 어 도식을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득도 시까지 하고 나니까 이제는 완전히 일본 말도 하게 되고
24:1924 minutes, 19 seconds이가시 간지에서이 사람은 교도에 지금 둘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어떡합니까 도쿄에 있는 자기네 지원으로 보내는
24:2824 minutes, 28 seconds거 그래서 도쿄에 보내서 이동인이 도쿄로가 가지고는
24:3624 minutes, 36 seconds거기에서 모든 중요한 인물들을 다 만났다 일본의 지도자들을 다 만나고 일본의 지도자들만 만나는게 아니라
24:4524 minutes, 45 seconds도쿄에 와 있는 상주하고 있는 서양의 외교관들도 다 만나고 그리고 그때
24:5324 minutes, 53 seconds벌써 본이 조직을 해서 서세동점의 파고를 우리가 같이 힘을 합쳐서
24:5924 minutes, 59 seconds막아야 되겠다라는 취지로 만든 흥하라 조직이 있었습니다 그 흥해에 어
25:0725 minutes, 7 seconds이동인 참석을 하면서 부산 동네에 구석에서
25:1525 minutes, 15 seconds차별받고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이동이라 인물이 사진과 그림 책을
25:2325 minutes, 23 seconds통해서 일본에 대해서 알게 되고 그리고는 직접 본으로 건너와서 일본
25:3025 minutes, 30 seconds말을 배우고 일반의 문화를 다 익히고 그러고는 아예 도교로 가서 도교에
25:3625 minutes, 36 seconds있는 모든 정재계 인사들과 외국 사절 단들 아지도 다
25:4425 minutes, 44 seconds[음악]
25:5025 minutes, 50 seconds만납니다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근데 굉장히 적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기록들을 해
25:5725 minutes, 57 seconds놓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그 당시 일본에어와 있었던 영국 어 외교관이
26:0426 minutes, 4 seconds스 세터라는 사람입니다 미스 토라는 사람은 정말 어 일본에서 20 몇
26:1026 minutes, 10 seconds년간 근무를 하면서 일본 부인도 없고 일본말 한문을 능숙하게
26:1826 minutes, 18 seconds완벽하게 하게 되고 그럽니다 자 그래서이 세터도 가서 어 이동이 만납니다 그 만남의 장면을 세터는
26:2726 minutes, 27 seconds이렇게 기록을 하 오늘 아침 아사노 조야는 이름을 가진 조선인의 예방을 받다 그는 아사노
26:3626 minutes, 36 seconds조선의 야만을 또한 의미한다고 기지에 차게 설명하고 자신은 자기 나라 사람들을 몽시 목적으로 세계를 보기
26:4426 minutes, 44 seconds위해 이곳에 몰래 왔노라고 말하다 그는 서툰 일본어를 구사하였으며
26:5826 minutes, 58 seconds이들을 갖고 가서 외국의 위대함에 관한 얘기가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싶다고 하고 또한 영국을 방문하고 싶다고
27:0727 minutes, 7 seconds말하다 다음 일요일 아침 다시 오겠노라고 약속하다 그러니까 구한테 받았던 책자만이 아니라 아예 이제
27:1627 minutes, 16 seconds영국 외교관 테 가서 영국의 발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이 놀라운 산업 혁명을 우리가
27:2327 minutes, 23 seconds직접 알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사진들이랑이 자료들 좀 달라 내가 서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라는
27:3127 minutes, 31 seconds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안 믿을 텐데 허황된 얘기 말라고 안 믿을 텐데 거기 증거로 보여 줄 자료들이 필요하다 그러면서 그걸 받아냅니다
27:3927 minutes, 39 seconds이렇게 적극적으로 일본을 배우고 그 조선에
27:4527 minutes, 45 seconds절 전파 궁리를 하고 놀라운 인맥을 만들어 내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자
27:5327 minutes, 53 seconds그런데 그럼 이걸 어떻게 조선에 전파를 합니까 조선에 전파하는게 문제가 되는 거죠 근데 초선에 전파할
28:0028 minutes기회가 생깁니다 그게 언제 뭡니까 바로 1880년에 일본에 누가 옵니까
28:0728 minutes, 7 seconds김홍집이 2차 수신사로 1876년 강화도 조약 직후에 김기수가 1차 수신사로 왔었죠
28:1728 minutes, 17 seconds아무것도 그때 안 보겠다 그러고 모든 걸 거부하고 돌아가서 아 일본이 하고 있는이 개화하고 이거 다 쓸데없는 짓이라고 고정한 보고했던 그
28:2628 minutes, 26 seconds김기수가 다녀간 이후로 로 4년 만에 2차 수 신사를 이제 보냈던 거죠 그래서 어 뭐 보낸 이유는 여러 가지
28:3428 minutes, 34 seconds이제 뭐 세금 문제 이런 것 때문에 어 그 가지만 어쨌든 그래서 1880년에 8월에 김홍집이 2차
28:4328 minutes, 43 seconds수신사로 일벌이 그러니까 이때에 이동인고 만나게 됩니다 자
28:5028 minutes, 50 seconds근데 만나게 되는게 이것도 극적입니다 사실이 동이는 지금 미을 해서 온
28:5728 minutes, 57 seconds사람입니다 아직도 나라에서는 국입니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허락해 주는 것도
29:0529 minutes, 5 seconds없습니다 그죠 뭐 수신사 이런 특별한 사람들 빼놓고는 자 그런데 자기는 허학도 안 받고 지금
29:1329 minutes, 13 seconds일본에서 1년씩이나 있었는데 뭐 섣불리 나설 수가 없는 거죠 사실은
29:2129 minutes, 21 seconds그랬는데 조선의 수신사 그전에 통신사 모두가 다 교도에 먼저 오면은 히가시
29:2829 minutes, 28 seconds간지에 다 먹었습니다 그래서 김홍집 히가시 홍간지
29:3929 minutes, 39 seconds머니다시보기 벌어지고 있었냐면 김홍집이 왔으니까
29:4629 minutes, 46 seconds일본 측에서는 자 우리가 강화 도작 하면서 분명히 우리가 약속한게 세개 항구를 개항을 하겠다라고 조선이
29:5429 minutes, 54 seconds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산은 개을 했습니다 그럼 이제 나머지 두 개를 더 개을 해야 되는데 4년이 지나서
30:0130 minutes, 1 second1880년 됐는데도 조선은 더 이상 개을 안 해요 다른 항구를 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 일본은 계속해서
30:1030 minutes, 10 seconds두 개 항구를 열어 달라고 그런 거죠 하나는 재물포 어쨌든 서울로 항상 가야 되니까 그 서울을 가기 위해서는
30:1830 minutes, 18 seconds재물포 인천이 열려야 됩니다 그래서 재물포 열어달라 재물 또 하나 이제 산이죠 반대쪽에서 원산을 열어 달라고 이제 했던 건데 자 조선에서는 아직
30:2830 minutes, 28 seconds시기상조다 재물 보는 우리 한양에서 너무 가까워서 절대 안 된다 이렇게 오히려 이제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죠 그때에 그 설득을 한하고 있는데
30:3730 minutes, 37 seconds김홍이 말을 안 듣고 있는데 그때 옆에서 이동인 그걸 보고서 어그마 심 보고 일본 사람들고 내가 한번
30:4530 minutes, 45 seconds들어가서 설득을 해보겠어 그래요 그랬더니 일본 사람들이 거꾸 아니 당신 지금 미에서 왔는데 김홍집이 너
30:5330 minutes, 53 seconds너 이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이러면 어떡 하려 그럽니까 아니라고 그래도 이동인 내가 어떻게 서든지 이건 설득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31:0131 minutes, 1 second이동인이 들어가서 김홍집 만납니다 그때에 일본 사람이 안 된다 그러니까
31:1031 minutes, 10 seconds이동인이 이렇게 말을 하고 일본 사람들한테 이렇게 말을 하고 김홍집 만났다고 합니다 동인이 말하기를 내가
31:1931 minutes, 19 seconds일본에 들어온 것은 구근에 보답하고 불은에 부흥하고자 하는 것인데 나라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조치가 있어도
31:2731 minutes, 27 seconds우려하지 않 바라건데 수사를 배도록 하여 달라고 하다 하나부사 스기 모두 탄복하여 수사에게도록 하였다 동인이
31:3631 minutes, 36 seconds일번 옷을 입고 조선말을 하니 수사가 상이 여겨 자세한 것을 물었다 동인이 무릎을 가까이 하여 지난해 나라를
31:4431 minutes, 44 seconds위해 이곳에 와 교도 도쿄에 있으면서 일본의 귀관은 물론이고 제야의 뜻이 있는 사람들을 접하여 그 의도하는
31:5331 minutes, 53 seconds바를 탐지하여 보니 조선에 대하여 다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우리 나라를 계명에 이르게 하는
31:5931 minutes, 59 seconds것뿐이라 말하다 그런데 이번에 하나 부사의 말을 용납하여 수신사 이렇게서 귀국한 후에 적절한 주선이 있기를
32:0632 minutes, 6 seconds바란다고 온갖 말을 다하여 설득하다 수신사 무릎을 치며 오호라 여기에 기나 아가 있어 구근에 보답하려 하니
32:1432 minutes, 14 seconds감명 바이다라고 하다 그러니까 김홍집 하고 일본 사람들하고 앉아서 동본 원사에 앉아서 이러고
32:2332 minutes, 23 seconds계속해서 일본 사람들은 설득을 하고 있는데 말을 안 듣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일본 옷을 입은 웬 사람이
32:3232 minutes, 32 seconds들어와 갖고 한데 아니이 사람 뭐야 그런데 잠깐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하고는 김홍집한테 가까이 와서는 사실
32:4132 minutes, 41 seconds저 조선 사람입니다 작년에 몰래 미에서 와서 일본에 대해서 배우려고 그랬습니다 이거 빨리 우리 조선에서도
32:5032 minutes, 50 seconds따라야 됩니다 알려야 됩니다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이제 이렇게 얘기 하는 거죠 그랬더니
32:5632 minutes, 56 seconds김홍집이 릎을 치면서 아 세상에 내가 지금 와 갖고 일본에 와서 몇 달 있으면 이렇게 답답하고 사실은 서양
33:0533 minutes, 5 seconds사람들은 볼 생각도 못 하고 그냥 누구 만납니까 하여장고 황준원 만나 갖고 조선 책략 이런 책들 받아가고
33:1333 minutes, 13 seconds그러지 않습니까 사실 그때에이 사람이 조선책략 책을 받아가면서 빨리 열어야 되겠다 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33:2033 minutes, 20 seconds것에 큰 역할을 한게 또 이동인 이죠 이동인 만나 보니까어야 조선 사람인데도 일본 사람 라고 이렇게 할 수가 있고 서양
33:2933 minutes, 29 seconds사람들하고 이렇게 막역하게 지르면서 이런 거를 다 알 수가 있는 거구나 교류를 할 수 있는 거구나 걸 김홍집이 처음 안 거죠 자기는
33:3733 minutes, 37 seconds못했는데 그러니까는 가자 내가 데려가겠다 그래서 정말로 드라마틱하게 일본
33:4633 minutes, 46 seconds사람들 오히려 김홍집이 화를 내면서 미랑 한 놈 뭐야 하면서 잡아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야 같이 가자 이거 알려야 되겠다 너 대단한
33:5533 minutes, 55 seconds사람이다 웬 젊은 청년이 이렇게 멋진 사람이 있느냐 그러면서 데려갑니다 그때이 동이는 그냥 가지 않습니다
34:0334 minutes, 3 seconds정말 대단합니다 일본에 히가시 간지로 천엔을 돈을 빌려서 등유 등불을
34:1134 minutes, 11 seconds케로신 램프를 가져갑니다 여러분 그 일본이 개항을 할 때에 뭐 페리 제독이 오게 되는 것이 미국이 고래
34:1834 minutes, 18 seconds잡이를 해서 왜냐면 고래의 기름이 산업 혁명의 등유 역할을 했었다는 거 근데 그것이 없어지게 된 것은 펜슬
34:2734 minutes, 27 seconds에서 석유가 나기 시작하면서 로크텔라 같은 사람이 석유를 발견해서 그거를 정지해서 등유는 거 만들어서 이제는 케로신 램프를 켤 수가 있는 거죠
34:3634 minutes, 36 seconds등유 이런 그 촛불 밖에 못 키는 조선에 이런 거를 보여주겠다 그래서 히가시 간지에서 돈을 빌려 갖고
34:4434 minutes, 44 seconds케로신 램프를 사고 성냥 시계 이런 물건들을 사는 한편 일본의 근대 과정에 대한 정보를 다 수집을 하고
34:5334 minutes, 53 seconds따라가겠습니다 김홍집 따라가겠습니다 그랬더니 오쿠무라 그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한번 극비로
35:0135 minutes, 1 second귀국해야 할 사정을 말하고 뭐지 하나 다시 오겠노라고 하니 말릴 수도 없는 일이어서 지난날 수신사 일행과 같은
35:0835 minutes, 8 seconds배를 타고 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출발을
35:1435 minutes, 14 seconds합니다 이때에 일본 신문에 이동인이 조선에 다시 간다라는 거에
35:2135 minutes, 21 seconds대한 기사를 씁니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조선을 어떻게해서든지 열려고 그고 조선에서
35:2935 minutes, 29 seconds수사가 김기수 187에 왔었는데 아무 효과 없었고 1880년에 또 김홍집
35:3635 minutes, 36 seconds왔는데 김홍집이 와서는 김홍집 서양 사람들은 하나도 안 만나겠다 그러고 재물도 열지 않겠다 그러고 그런데
35:4435 minutes, 44 seconds이동이 나서서 설득해 보겠다 그러면서 건너가게 됩니다 그랬더니
35:5035 minutes, 50 seconds1번 신문이 이렇게 기사를 썼습니다 작년 9월 다녀간 조선사람 이이는 귀국했다 그는 발 하고 유럽 옷을
35:5835 minutes, 58 seconds입었다 그는 일본말을 유창하게 하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계몽시키다 한다 지난 9월부터 일본에 머무르고 있으며
36:0536 minutes, 5 seconds조선의 문명화를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주장하는 이동이 치토세 마르르 호를 타고 12월 1일 부산에 도착하여
36:1236 minutes, 12 seconds육로로 한양으로 향했다 유럽 옷을 입고 허리에는 번쩍이는 금식의 줄을 차고 머리도 유럽식으로 한 그는 일본
36:2136 minutes, 21 seconds사람처럼 도쿄 사투리를 쓴다 아무도 그를 조선 조선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매우 지적이 한 정을
36:2936 minutes, 29 seconds가진 사람이다 그니까 이제 빌린 돈으로 산 시계 금시계 같은 거 이렇게 탁 그 서양 신사들이 하듯이이
36:3536 minutes, 35 seconds포켓에 넣고서 이제 금줄 늘어뜨리고 이런 거를 다 하고서 서양 정장을 하고
36:4236 minutes, 42 seconds그 조선으로 건너갑니다 자 그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김홍집이
36:4936 minutes, 49 seconds동인을 정한테 소개를 했고 그래서 고종이 그때 아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36:5636 minutes, 56 seconds있구나 디어 설득을 당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일본하고 열어야 되겠다 그러면서 일본을 배우자 이때 통리
37:0537 minutes, 5 seconds기모 암문이 새로운 조직을 만들죠 여태까지 외국하고 외교를 하는 예조 통해서 하는 외교 이런 건 안 되겠다
37:1237 minutes, 12 seconds조선 최초의 근데 정부 기구적 그걸 만들어서 거기에 그것이 청하고 일본하고
37:2237 minutes, 22 seconds그다음에 다른 나라들 고의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역할을 하라고 그럽니다 그리고 거기에이 동인을
37:3037 minutes, 30 seconds주사로 임명을 합니다 스님이 관리로 임명이 되는 거죠 사실 때까지만 해도 고정이 굉장히
37:4137 minutes, 41 seconds개방적이었다 말을 수영을 하면서 빨리 조선에 건 일본에 건너갈 방법을 어
37:4837 minutes, 48 seconds생각해라 그러면서 이때 이동이 주도를 해서 뭐를 만듭니까 신사유람단 꾸리기 시작을 합니다 조선의 4대부 들이
37:5737 minutes, 57 seconds대거 아예 그냥 대규모 사절단을 차려서 일본에 가서 일본에 곳곳
38:0438 minutes, 4 seconds샅샅이 한번 보고 오자 배우고 오자 이런 걸 해서 신사유람단 꾸리게
38:1138 minutes, 11 seconds합니다 다 이동인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때에
38:1938 minutes, 19 seconds고정이이 정말로 우리도 개화를 해야 되겠다 1번을 배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조정회의 때 이런
38:2638 minutes, 26 seconds얘기를 합니다 우리나라의 풍습이 본래부터 이러하므로 세계 웃음거리가 된다 비록 서양 나라들에 말대 말하더라도 본래 서로
38:3638 minutes, 36 seconds은혜를 입은 일도 원한을 품은 일도 없었는데 애당초 우리나라의 간사한 무리들이 그들을 끌어들임으로써 강화도와 평양의 분쟁을 일으켰으니
38:4538 minutes, 45 seconds병인 양육하고 신미 양육 뭐 이런 얘기들이 분쟁을 일으켰으니이는 우리나라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38:5338 minutes, 53 seconds바이다 몇 년 전에 서양 사람들을 중국에 들여보낸 것은 중국의 의 자문에 의하여 좋게 처리하였다 대체로
39:0039 minutes양선이 서양 배가 우리 경에 들어오기만 하면 대뜸 사학을 핑계대는 말로 삼지만 삼은 난적이다 사이다
39:0839 minutes, 8 seconds이런 얘기를 맨날 하는데 서양 사람이 중국에 들어가서 사는데도 중국 사람들이 모두 사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 이른바
39:1639 minutes, 16 seconds사악이란 배척해야 마땅하지만 불화가 생기기까지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얼마나 놀라운 변합니까 특히 나중에
39:2439 minutes, 24 seconds고정하고 사실 다르죠 나중에 이모 고 갑신 정병 걷고 하는 그 그다음부터
39:3139 minutes, 31 seconds위축되고 줄어드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걱정하는 그런 고정이 아니라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어 이거 우리 한번 해보자 서양이 우리한테 뭘
39:3939 minutes, 39 seconds잘못했다고 맨날 사이라고 단정해 버리고 괜히 심미 양하고 병인 양 때 싸움이나 하고 그 그럴 일이 뭐가
39:4839 minutes, 48 seconds있느냐 자 그러지 말자 그러면서 이동인 보고 당신 우리 진짜 이제 간다 4대를
39:5639 minutes, 56 seconds이제 신 라고 들겠습니다 그 신사들이 다 건너가면이 사람들이 뭐를 보고 어디 가서 뭐를 어떻게 할 건지 일정을 쭉 한번 일본 사람들하고
40:0540 minutes, 5 seconds일정을 다 논의해서 만들어 갖고 돌아오라는 명을 받고 이동인이 같은 개화성 무블 탁정
40:1440 minutes, 14 seconds10이라는 개화성고 같이 일본으로 건너가기도 합니다 이제는 어명을 바꿔서 가는 겁니다 근데
40:2240 minutes, 22 seconds사실 이때에 부산을 통해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왜냐면 조선은 아직도 위정 사파가 꽉 잡고 있었습니다
40:3040 minutes, 30 seconds그러니까 함부로 부산에 건너가서 일본 건너간다 이런 소리 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 눈초리를 피하기
40:3740 minutes, 37 seconds위해서 어떻게 합니까 원산으로 갑니다 동본원사 원산에 결론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40:4440 minutes, 44 seconds원산이 개강될 것을 생각해서 그래서 이번에는 원산을 통해서 원에 원산에
40:5040 minutes, 50 seconds있는 동본원사 원을 통해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일본으로가
40:5840 minutes, 58 seconds갖고 또 예를 들어서 뭐 다 정부 사람 다 만나고 그러지만 세터를 다시 찾아갑니다 영국 영사 세터를 다시
41:0641 minutes, 6 seconds사합니다 세터의 기록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아산호 이동인지 지금 막 도착하여 여행 가방을 들고 밤늦게
41:1441 minutes, 14 seconds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그는 국왕이 계몽되어 좋은 뉴스를 전하면서 국왕으로부터 받은 여권을 소지하고
41:2141 minutes, 21 seconds있었다 국왕은 그의 나라가 러시아에게 노출된 위험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수주일 이내 의 자유당이 현재 국
41:2941 minutes, 29 seconds내각을 전복할 것이라고 하다라고 1880년 11월일 세터의
41:3741 minutes, 37 seconds일기에 나옵니다 어 그리고 자기가 어 그 김홍집이 일본에 건너갔을 때 서양
41:4641 minutes, 46 seconds외교관들 안 만났지만 중국 외교관 공사 하 여장하고 참사관 황준 만났습니다
41:5441 minutes, 54 seconds그리고 그때에 빨리 열어야 되고 미국하고 연계하고 어떻게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된다라는 그 중국
42:0242 minutes, 2 seconds사람들의 전략을 또 전달을 했었습니다 그게 조선 책략이 그래서 그 조선 책략을 김홍집이 가지고오고 이동인
42:1142 minutes, 11 seconds데리고 올 때 같이 왔던 거죠 그러니까 한쪽에서는 조선 조종에서 조선 책략을 읽으면서 와 러시아가 저렇게 블라디 보스까지 만들고 이게
42:1842 minutes, 18 seconds남아에서 우리를 먹으려고 그러는 거구나 중국도 이렇게 경계를 하고 있고 일본도 경계를 하는 거구나 그러니까 같이 힘을 합쳐서 이거를
42:2642 minutes, 26 seconds정신을 차 겠다 그 얘기를 고종이 다 읽 알았던 거죠 이제 드디어 조선 책략을 읽고서 그러니까 이제 그
42:3442 minutes, 34 seconds얘기를 이동인 해서 이동인 그거를 이제 세트한테 가서도 야 우리 국왕도 화만게 아니라 이제 국제 정세도 알게
42:4242 minutes, 42 seconds됐어 러시아의 남아를 막아야 된다는 거 이거 다 알게 됐다 그런 겁니다 그리고 그때에
42:5142 minutes, 51 seconds김홍집이 이동이 일본을 밀명을 받고 고정의 밀명을 받고 본에 간다니까 한테는 나의 편지를 전달해 다오
42:5942 minutes, 59 seconds그래서 하여장 테 전할 편지를 김홍집이 써서 이동한 줍니다 그 편지까지 동이는 세트한테 보여주면서
43:0743 minutes, 7 seconds율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실제로 진짜 이렇게 변하고 있다라는 거를 증거로서 세트한테 그 길도 어 그 글도 보여
43:1543 minutes, 15 seconds줍니다 자 그래서 1880년 12월 1일 이동이 이번에는 히가시 홍간지 가서
43:2343 minutes, 23 seconds2만엔을 빌립니다 지난번에는 1천엔 빌려 갔는데 이번에 이제 판이 졌으니까 2만 엔이나 빌려가서 여러
43:3043 minutes, 30 seconds가지 근데 물품들을 전부 다 사 가지고 귀구를 합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또 세터가 이렇게 썼습니다 아사노
43:4043 minutes, 40 seconds오늘 아침 조찬 후 떠났다 그의 가장 최신 구상은 조선에서 가장 앞선 인사들로 구성된 사절단을 이곳에
43:4743 minutes, 47 seconds데리고 와서 외국 사절들을 맺는 것이다 그리고 어
43:5443 minutes, 54 seconds옵니다 1881년 1월 4일이 되니까 고정은 청에도 조선 학생들을 이제 보내겠다
44:0344 minutes, 3 seconds발표를 하고 그리고이 나라들의 관계를 하기 위해서 통리 기무 화문을 만들고 거기에 이제
44:1244 minutes, 12 seconds아까도 말씀드렸지만이 이동인 그 참모 여튼 주사 참모로
44:1944 minutes, 19 seconds이제 임명을 하고 더 놀라운게 뭔지 아십니까 1881년 1월 16일 재물 를 개항을 합니다 인천을
44:2844 minutes, 28 seconds개항을 합니다 그러니까 김홍집이 몇 달 전에만 갔을 때만 해도 절대 안 된다고 그러던 거를 이동인이 들어가서
44:3544 minutes, 35 seconds설득을 하고 그 이동이랑 같이 와서 조선 책략을 들고 고정을 만나서 고정이 그걸 다 읽고 조선 조종이 그걸 다 읽어보고 야 이렇게 해야
44:4444 minutes, 44 seconds되는 거구나라고 하면서 통리 기문 암문을 만들고 청에도 유학생들을 보내겠다 그러고 일본에 대고 사절단을
44:5344 minutes, 53 seconds보내겠다 그러면서 이거를 탁 꾸리기 시작하고 제물포도서관
45:0245 minutes, 2 seconds일이 진행이 되니까 일본 측에서 깜짝 놀랐고 외국 사람들이 깜짝 놀랐답니다 여러분 다 이동인이라 사람 때문에
45:1045 minutes, 10 seconds이게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조선은
45:1745 minutes, 17 seconds철저하게 지금 의정 착사 파들이 잡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때 김홍집이
45:2545 minutes, 25 seconds이동이라고 귀국하면 조선이란 황준이 쓴 책을 갖고 옵니다 그래서 그 책을 읽습니다 조정해 전부
45:3245 minutes, 32 seconds다 대신들이 같이 고정이라 읽습니다 그런데 그 얘기가 바깥으로 나가서 어떻게 됩니까 영남 만인 소라는게 일어나는
45:4245 minutes, 42 seconds거죠 조선에 대부들이 유림이 대거 들고 일어나는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45:5145 minutes, 51 seconds지금 뭐 서양 놈들하고 뭐를 하고 일본하고 뭐를 하고 뭐 러시아가 우리한테 뭐를 잘못했다고 러시아를 경를 하고 무슨 소리 하면서 영남
46:0046 minutes만인 만명의 대부들이 연해서 상소를 올리고 홍재학이란 사람이 홍학 상소가 올라고
46:0946 minutes, 9 seconds그러면서 엄청난 개국 반대 운동이 벌어집니다 지금 강화도 조약을 통해서
46:1646 minutes, 16 seconds이런 연 것도 부족해서 지금 당신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절대 안 됩니다 라면서 불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이거
46:2646 minutes, 26 seconds지금본 가서 배우자 않는 사람들 어떻게 됩니까 청나라에 건너가서 하는 거야 워낙 조선 사대부들이 4대를
46:3346 minutes, 33 seconds하는 중국에 대해서 4대를 한 사람들이니까 뭐 청나라의 유학생들 파견한다는 거에 대해서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일본에 도대체 조선의 신사들이
46:4246 minutes, 42 seconds건너간다 이게 도대체 무슨 당신 무슨 말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이제 반대가 일어나는 거니까 신사유람단 꾸리는
46:4946 minutes, 49 seconds사람들이 야 이거 진짜 들키면 큰일이다 그러면서 조심 아예 일본 나간다는 소리도 못해요 그냥 동래부
46:5746 minutes, 57 seconds이런데 시찰하러 간다 부산 시찰하러 간다 그러면서 그것도 각게 전투 한 사람 한 사람 따로따로 단체로
47:0547 minutes, 5 seconds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어느 날 어디로 집결해 이래 갖고 간신이 모여서 몰래 배를 타고 그러고 일본에 건너가는게
47:1347 minutes, 13 seconds그게 신사 유란다입니다 그런데 1800 81년 3월이 동인이
47:2247 minutes, 22 seconds행방불명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다시는 우리가 그 흔적을 못 봅니다 얼마나 적이 많았겠습니까 뭐
47:3047 minutes, 30 seconds대원군뿐만 아니라 뭐 사실 그 당시에 유림 사대부 전부 다가 이동인 저것
47:3647 minutes, 36 seconds왼 천한 어 중놈이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렇게 했겠죠 그러니까는 어 표적이 됐을
47:4547 minutes, 45 seconds건데 또 그 당시에 또 어떤 사람들은 사실 김홍집이 그랬다 뭐 이런 얘기들도 있는데 어 김웅이 너무
47:5247 minutes, 52 seconds시생을 해서 자기가 소개를 다했는데 자기보다는 형이랑 이런 사람들을 추정을 하니까 이제 뭐 죽였다 뭐
48:0148 minutes, 1 second이런 이런 설도 있습니다 근데 다만 뭐가 됐든지 이동이라 사람이 그 진취적인 기상 겁없이
48:0948 minutes, 9 seconds오구라 엔신 찾아가고 겁없이 일본 미을 하고 겁없이 김홍집 앞에 나타나고 겁없이 와서 또
48:1948 minutes, 19 seconds신사유람단 꾸리고 하는 그 그 기질 때문에 사실은 아무것도 꺼리지 않았죠 위험하다 위험하다 다 할텐데이 사람이
48:2848 minutes, 28 seconds전혀 꺼리지 않고 숨지도 않고 그러고 다녔답니다 그러니까 누가 사를 하려고 했었으면 사실 굉장히 쉬운 표적이었던
48:3648 minutes, 36 seconds것이고 뭐 불교 스님 중인데 뭐 천민인 사라지는 거에 대해서 죽이는
48:4348 minutes, 43 seconds거에 대해서 누가 수사를 할 것도 아니고 어 그러니까 그렇게 어
48:5048 minutes, 50 seconds비극적으로 우리 역사에서 어 사라집니다 그 대신 이동인이 만들어 놓은 신사들이
48:5948 minutes, 59 seconds건너오면 어 어떻게 어떻게 해 주십시오 뭐를 구경시키고 했든 그대로
49:0549 minutes, 5 seconds신사유람단이 건너가서 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소개해 주는 거 다 구경하고 서양 사람들 다 만나보고 중국 사람들
49:1349 minutes, 13 seconds다 만나보고 내무성 농무성 뭐 전부 다 배 만드는데 철도 모든 거 다 구경을 하고
49:2149 minutes, 21 seconds그리고 일준 윤치호 이런 사람들을 최초의 유학생으로 남기는데 그게 누가
49:2949 minutes, 29 seconds해 줍니까 후크 사와 키치가 해주는 거죠 후쿠사 키치가 왜 그걸 해 줍니까 이동인이 수차에 와서 부탁을
49:3649 minutes, 36 seconds해서 우리나라에서 유학생들이 올테니까 당신이 지금 개어 의숙 개혁 대학 이게 전신이 만들어서 학생들
49:4549 minutes, 45 seconds훈련시키고 있는데 거기서 좀 가르쳐 주십시오 해서 다 후구가 치가 받아주는 거죠 일주는 개 의수에
49:5349 minutes, 53 seconds그리고 윤치호는 어 친구한테 부탁을 동임 사라고 영웅 교육하는 때 또 어 그
50:0150 minutes, 1 second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조선이 열리기 시작하고 어 그렇지만 이동인 그
50:0950 minutes, 9 seconds모습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이동인이 없었으면 조선의 개화파는
50:1650 minutes, 16 seconds없었습니다 물론 뭐 훨씬 나중에 생겼을지 모르겠지만 이동인이
50:2450 minutes, 24 seconds과감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전혀 막혀 있던 그 통로를 다
50:3150 minutes, 31 seconds뚫으면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일본하고 조선을 오가면서 설득을 하고 모든 기회를
50:4150 minutes, 41 seconds만들어 놓음으로써 조선이 본격적으로 일본하고 열리고
50:4750 minutes, 47 seconds그때에 김옥균 서재필 박용효 윤치호 일준 이런 사람들이 다
50:5650 minutes, 56 seconds건너가서 동인이 만들어온 네트워크를 통해 가지고 거기서 공부하고 일하고 교류하게
51:0451 minutes, 4 seconds됩니다 이동인이 후쿠사 기치를 처음 만난 거는 1880년
51:1251 minutes, 12 seconds4월이었다 기치를 만나서 독립정신을 배우게 되는 것은 1882년 6월 1일이니까 사실은
51:2051 minutes, 20 seconds이동민이 2년이나 먼저 후자를 만나고 개화사상을 흡수를 합니다 그 해서
51:2751 minutes, 27 seconds조선의 최초의 화인 화승이 아니라 어 화인 근대 사회라는 것이 무엇이라는
51:3551 minutes, 35 seconds것를 최초로 경험한 조선 사람은 바로 이동인이라는
51:4151 minutes, 41 seconds화승이 이번 시간에는 어 이동인이라는 참 길이나 우리 근세사의 어 정말
51:5051 minutes, 50 seconds놀라운 역할을 해준 인물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동을 설해 일본에 건너가게 했던 바로 그
51:5951 minutes, 59 seconds김옥균 또 하나의이 근대의 길이나 어 김옥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김옥균은 어떻게 보면이 동인이 열어
52:0852 minutes, 8 seconds놓은 그 길을 그 길을 그대로 밟으면서 그다음 단계에 개화파의 형성
52:1552 minutes, 15 seconds조선의 근대화 담론을 활짝 여는 어 역할을 하는 그런 일입니다 다음 시간에 김옥균에 대해서 또 살펴보도록
52:2552 minutes, 25 seconds하겠습니다
52:2652 minutes, 26 seconds[음악]
52:2852 minutes, 28 seconds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해 보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은 여기까지
52:3652 minutes, 36 seconds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2:4252 minutes, 42 seconds[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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