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4

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 2008

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 | 알라딘
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은이)돌베개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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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랫동안 학계 바깥에서, 또 한반도 바깥에서 한국사를 고민해 온 결과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한국사’란 한반도 안팎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이념적 논박으로부터도, 민족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옹호와 극단적인 부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시야를 강조한다.

지은이는 역사학자이자 번역자로, 또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90년대에는 ‘미국’을 화두로 삼아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고찰하는 작업을, 2000년대에는 중국 연변에 거주하며 중국을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간의 성과를 한 권으로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목차


1
한민족의 공간
만주와 반도 사이에 울타리가 없던 시절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유혹
문명의 블랙홀, 중국의 출현
화이부동의 전통

2
고조선에 드리워진 신화의 그림자
한 무제의 예방전쟁
낙랑군, 중국문명의 송유관
농업문명의 새 터전 삼한 지역
해협을 건너 맺어진 가야- 왜 복합체
반도 안에 중심을 둔 대륙국가 고구려

3
신라 통일, 반도국가의 탄생
고구려 유산, 반도국가의 성장
천리장성, 반도국가의 완성
무신정권에 대한 오해 더보기



책속에서


신라의 통일이 외세에 의존한 것이었다고 불만스러워하는 이들도 있고, 고구려 고토를 차지하지 못했으니 '2국'통일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비판은 욕심이 앞서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당시의 현실에서 신라 통일은 이런 한계를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또 어찌 보면 민족의 발전을 위해 다행스러운 면도 있는 일이었다. 통일의 규모가 굉장한 것이었다면 일시적 영광은 컸겠지만 민족의 형성과 발전을 위한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통일이 임박한 시점까지 신라의 국력은 고구려는 말할 것도 없이 백제에 비해서도 미약한 실정이었다. 648년 김춘추가 당나라에 입조入朝해 원병을 청한 것은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었지 통일의 위대한 포부가 아니었다.
당시 신라는 백제에게 대야大耶와 당황을 빼앗기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옛 가야 땅인 대야는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저울추가 걸려 있는 곳이었고, 당항은 당나라와의 연결을 위한 교두보였다. 그런데 신라의 생존이 고구려 평정이라는 당 태종의 지상과제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반도 귀퉁이의 미약한 세력에 불과하던 신라가 통일의 주역으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107~108쪽, '신라 통일, 반도국가의 탄생' 중에서) 접기
최영은 이인임의 반명反明정책을 이어받아 요동정벌군을 일으켰다. 요동 정벌은 대외적 긴장을 통해 내부 모순을 미봉하려던 술책으로 보인다. 당시 이미 천하를 석권했던 명나라와 군사적 대결을 벌인다는 것은 정상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없다.-170쪽 - 느티나무



저자 및 역자소개
김기협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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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학자. 경북대에서 석사논문으로 중국 고대 천문학을, 연세대에서 박사논문으로 마테오 리치의 적응주의를 다룬 후 동아시아 문명권 안팎의 교섭관계를 연구해왔다. 저서로 『밖에서 본 한국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아흔 개의 봄』 『해방일기』 『냉전 이후』 『오랑캐의 역사』 『뉴라이트 비판』 이 있다. 근년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작 : <뉴라이트 비판>,<오랑캐의 역사>,<냉전 이후> … 총 47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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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퍼펙트패밀리 주식회사>,<동물의 향기, 인간의 풍경>,<웹툰이라는 전쟁터>등 총 614종
대표분야 : 역사 3위 (브랜드 지수 940,558점), 음악이야기 5위 (브랜드 지수 26,867점), 한국사회비평/칼럼 8위 (브랜드 지수 63,910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물 안 개구리’ 식 역사 읽기는 이제 그만!!
안과 밖의 열린 눈으로 읽는 한국사

“남을 깔보지 않으면서도 우리 뿌리에서 아낄 만한 미덕을 찾고, 이웃을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떳떳함을 잃지 않는 ‘교양’의 정신을 이 책에 담고자 했다. 이웃 간의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투쟁의 무기보다 교양의 샘을 역사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해방 이후 60년, 지금 우리의 역사관은 얼마나 성숙해 있는가? 우리 안에 갇힌 ‘국사’의 테두리 너머에서 보는 한국사라는 열린 시선을 제시하는 『밖에서 본 한국사』는, 편협하고 단선적인 역사 서술을 지양하고 합리적이고 유연한 역사 읽기를 보여준다. 동아시아 세계사의 흐름을 함께 살피고 역사의 물적 조건을 중시하는 넓은 시야가 한국사의 흐름을 보다 객관적이고 포괄적으로 사고하게 한다.

오늘, ‘한국사’를 쓴다는 것

이 책은 오랫동안 학계 바깥에서, 또 한반도 바깥에서 한국사를 고민해온 저자가 쓴 ‘한국사’이다. 오늘날 한국사를 제대로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사적인 흐름에서나 정치경제적인 필요에 의해서나 동북아시아 3국의 관계가 점차 긴밀해지고 있는 반면, 3국의 역사 인식은 과거의 갈등과 긴장으로 인해 거의 소통 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 독도 분쟁, 동북공정 등 익숙한 분쟁의 이슈들이 여전히 온당한 역사적 설명과 해석을 얻지 못한 채 시시때때로 신문지상을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에 대한 이해는 단군으로부터 오천 년 동안 이어져온 자랑스러운 영웅적 서사로 한국사를 이해하려는 민족주의적 욕망과, 이러한 기계적이고 단선적인 역사 인식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는 비판적 욕망 사이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후자는 이제 ‘국사 해체’를 주장하는 데까지 수위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의 우파 국가주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가 ‘대안’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등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또 이 논란의 와중에 민족주의를 둘러싼 감정적 과잉의 소용돌이가 객관적 사실과 평가를 집어삼키며 정당한 성찰을 가로막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사를 쓴다는 일은, ‘(한)국사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또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이자 그에 대한 대답을 내어놓는 일이기도 하다.

안과 밖의 열린 눈으로 한국사를 읽는다

저자 김기협은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한국사’란 한반도 안팎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금껏 안에서 보는 시각에만 갇혀 있었던 한국사 인식의 편협함을 ‘바깥’의 관점을 통해 넓혀보자는 것이다.
‘안’에서만 보는 시각이란 무엇이었는가. 식민사관에 억눌려왔던 민족 정체성을 선양하고 영광스러운 민족사를 지켜내려는 노력은 분명 지나간 시대에는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해방 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똑같은 자격지심에 빠져 우리 민족의 뛰어남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우리’ 안에 갇힌 미성숙한 역사인식일 뿐이라고 저자는 꼬집는다. 그것이 여전히 민족/반민족의 도식과 패권주의, 양적 척도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밖’에서 보는 한국사란, 한국사를 국외사와의 관련 속에 놓고 보아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국수주의를 배제하는 것, 타자를 폄하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의 자긍심을 잃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이념적 논박으로부터도, 민족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옹호와 극단적인 부정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시야를 강조하는 것이다.

통상적인 한국사 서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포괄적이고 합리적인 서술

<밖에서 본 한국사>의 서술이 지닌 장점은 많은 부분 저자의 다채로운 이력에서 비롯한 것이다. 저자 김기협은 대학에서 물리학과 사학을 공부했고, 경북대와 연세대 대학원에서 동양과학사와 근세동서교섭사를 연구했다. 그의 부친인 고 김성칠 선생은 뚜렷한 민족의식을 담은 『조선역사』와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성찰적인 기록인 『역사 앞에서』를 저술한 역사학계의 거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번역자로, 또 칼럼니스트로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90년대에는 ‘미국’을 화두로 삼아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고찰하는 작업을, 2000년대에는 중국 연변에 거주하며 중국을 통해 동아시아의 역사를 문명사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밖에서 본 한국사>는 그 성과를 한 권으로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하며, 덕분에 통상적인 한국사 서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강점들을 지니게 되었다.

- 첫째는 세계사와 중국사의 흐름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사를 전체 동아시아 역사 가운데에 적절히 위치 짓는다는 점. 그 결과 한중관계사와 한일관계사를 포괄하는 한국사 서술이 가능해졌다.
- 둘째는 역사적 사실이 바탕하고 있는 물적 근거와 변동에 주목하여 관념적인 정신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는 점. 덕분에 예컨대 만주와 한반도의 고대국가 형성에 관해 서술할 때에도 동아시아 금속문명의 전개 과정과 농업문명의 정착이라는 거시적인 맥락에 무게를 두고 있다.
- 셋째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당면한 문제를 교직해내는 시사적인 문제의식으로 현재적인 역사 서술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 더불어 무게감 있는 사론을 펼치는 때마저 명료하고 속도감 있는 시사칼럼처럼 읽히는 것도 특징이다.
- 넷째는 개개의 역사적 사실에 구애받기보다는 관점의 넓이와 깊이를 중시하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 교과서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가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안팎을 아우르면 다르게 보인다

역사 초기 한반도의 모습
『밖에서 본 한국사』는 청동기시대 만주와 한반도를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다양한 계통의 종족들이 뒤섞여 산 모습으로 그린다.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던 가야와 왜 또한 일종의 복합체적인 양상으로 이해된다. 고정된 민족성을 강조하기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농업문명에 기반한 사회 문화를 공유하던 집단들이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문명과 기술을 받아들이면서도 독립성을 지켜나가는 과정 속에서 민족을 바라보는 것이다.

반도국가로서의 정체성
따라서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유한 정체성이 확보된 것은 신라 통일로 반도국가의 틀이 형성된 이후로 보아야 한다.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복합적인 대륙국가였던 고구려의 유산은 고구려 멸망 후 중국과 발해, 신라로 나누어 흡수되었으며, 한민족이 그 가장 뚜렷한 계승자로 남은 것은 천리장성과 서희의 담판으로 상징되는 고려 북방정책의 성과였다.

화이부동의 전통
만주와 한반도의 많은 종족집단들은 때로는 중국에 정복되거나, 때로는 중국을 정복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중화문명에 흡수되는 길을 걸었다. 그와 달리 한민족이 오랫동안 고유한 정체성을 지켜온 까닭은 군사력보다는 문화력을 바탕으로 중국문명을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는 ‘화이부동’의 길에 있었다.
한글 창제 역시 화이부동의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훈민정음>은 독자적인 문자체계로서의 의미보다는 <동국정운>과 짝을 이루어 조선의 말과 중국의 글을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었다. 문화적 보편성과 개별성을 조화시키는 노선이라 할 수 있는 것.

성장의 한계와 근교원공의 시대
나아가 현대 세계를 조망할 때도 저자는 문명의 판도와 생산력이라는 거시적인 근거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냉전 이후 지역 블록의 강화를 전망하고 동아시아 연대를 강조하는 주장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저자는 이를 전국시대 진나라의 근교원공책에 빗대어 자원의 한계에 따른 성장의 둔화라는 조건과 연관시킨다. 요컨대 무한경쟁 질서는 생산력의 팽창이라는 조건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앞으로의 세계가 당면할 긴축의 시대에는 그와는 다른 질서가 필요해지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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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았는데 의미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서향 2008-06-2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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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대학생인 조카들에게 다 사 수고 싶을 정도의 책입니다~
램브란트 2009-12-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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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바깥에서 자신을 객관화하여 관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명사적 시각에서 크게 한국사의 흐름을 논하고 있습니다. 압축된 정제된 문장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시각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올챙이 2012-08-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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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국사 서적과 비교해봤을 때 분명히 신선한 접근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사에 관심이 있든 아니면 새로 한국사를 접하려고 하는 사람이든 부담감없이 접할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네요.
cjtheman 2014-11-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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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쯤 읽어 볼만한 책
jajuhappy 2009-03-0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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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도대체 뭘 봤단 말이지?



이 책을 열심히 봤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오랫만에 역사책을 본다는 설레임으로 봤다. 제목도 "밖에서 본 한국사"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무지 힘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책을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더라. 350페이지가 안되는 책을 읽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딴짓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마음이 없다는 것이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김기협이 도대체 누구냐? 결론이 뭐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서평을 찾와 봤다. 마음에 꼭 드는 책이라고 하는데 난 왜 이리 마음이 불편하지? 내가 고정관념에 박혀 있는 것일까?

국사의 해체를 바란다고 하면서 한국사는 동아시아사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말을 하더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동아시아사에서만 한국사를 바라보다 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다 보니 내용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논점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한국이 살아남은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고, 그 문화에서도 고구려의 것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강대국들과의 관계 가운데에서 모질게 살아남은 것이 한국사라는 의미인가? 만일 내가 파악한 것이 옳은 것이라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한 순간에 한국사가 축구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사가 내 것이 아닌데도 마치 그것이 내것인양 붙잡는 파렴치범이 되는 것이요, 주체 의식 없이 이리저리 채이는 축구공 신세가 되는 것이요, 문화로 오늘까지 살아남은 별종 중의 별종인 것이다. 과연 이것이 한국사인가? 국사라는 국수적인, 애국적인 모습을 버리고 동아시아사에서 바라보는 바람직한 한국사의 모습인가? 웃기는 일이다.

뉴라이트에서 나오는 한국사 교과서가 문제가 극우적이라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교과서나 이 책이나 그렇게 차이가 없다.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국사의 국수주의적 모습을 벗어버린다고 하나 책의 중간중간에 던지는 이야기들이 요즘 보수층들이 말하는 논리와 교묘하게 겹치고 있다. 친일파에 관한 문제들이 그것이다. 항일운동한 사람들을 무작정 영웅으로 볼 것도 아니고 친일파들을 무작정 매도할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얼마전 친일 인명 사전이 발표된 뒤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똑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외 4.19 민주화 운동, 군사 정권에 대한 평가들을 보면서 어이없어서 픽픽 웃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사의 위치, 세계화에서 화이부동이라는 말이 이 책의 논점이라 말하는데 왠지 합종연횡으로 들리는 것이 무엇일까? 합종연횡의 마지막이 어떠했는가? 교묘한 말로 국가들의 연합을 꾀했고,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마지막은 어땠는가? 그렇게 경계했던 진에 의한 통일로 합종연횡이 얼마나 실패한 정책이었는지 드러나지 않았는가? 밖에서 본 한국사를 외치다가 그나마 안에 있는 것도 잃어버릴까 두렵다. 더구나 요즘은 국사마저 선택으로 배우는 시대 아닌가? 르네상스도 모르는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무슨 동아시아사요, 국사요, 세계사인가? 동북공정, 독도 문제 이걸 도대체 어떻게 풀 것인가? 책을 덮는 마음이 씁쓸할 따름이다.

ps.역사 에세이가 도대체 뭔지? 논란거리를 피하기 위해 살짝살짝 말만 던지는 비겁함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욕먹어도 당당하게 적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한다. "이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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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8-05-06 공감(1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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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제대로보기..>>



<< 밖에서 본 한국史 >>




▶ 國史 와 韓國史의 가장 큰 차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게 그거 아닌가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국사는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내부에서 보는 역사이고 한국사란 외부에서 보는 역사라고 할까 그럼 그게 뭐가 다른가? 이책은 바로 그점에서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국사와 한국사의 차이는 다름아님 역사라는 객관적인 지나간 사실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좀더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내 몸에 백의민족, 단일민족, 단군의 소생이라는 피가 흐리고 있는 이상은 약간은 거북한 표현들도 있지만, 저자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기술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생각에 한번즘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 세계최초의 강우량 측정기 발명등 세계최초라는 별칭이 달린 문화유산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그래서 자긍심 또한 타 민족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다. 오쳔년 역사이래 타민족을 침탈한 적이 거의 없는 오로지 침략을 받았지만 역사의 주인공으로 버저히 존재하는 그런 민족에 대한 자긍심들... 현재가지고 있는 국사에 대한 가장 큰 모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에 대한 반문은 감히 할 수 없었던 아니 해야할 이유도 없는 그런 현실이다. 독도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불거져 나오면 나라전체가 난리가 난다. 엄연한 우리역사를 자기꺼라 우기는 민족들을 보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그럼 정작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반문하면 할말이 없어지니다. 고구려의 제대로 된 강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학계를 비롯해서 각종시험에 점수따기용으로만 알았던 국사교육의 문제점들 너무도 많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역사란 미래의 거울이다는 말이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느 민족보다 더 뼈저리게 느꼈을 민족이지만 이제 다 잊어버린것 같다. 왜 그런 역사가 있었던가를 생각치 않고 그냥 큰 역사의 줄기중에 하나라고 감춰버리는 그런 집단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역사의 상고시대인 선사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기 까지의 큰줄기만을 언급하고 있다. 세세한 각론의 역사까지 따진다면 이이화선생님의 불후의 명작인 한국사이야기정도의 분량은 되야할테니... 그 중에서 우리가 치욕스럽게 여기는 고려시대 몽골지배의 시기와 조선의 사대정책을 역사라는 큰 줄기에서 새롭게 보는 시각이 눈에 띤다.

지금도 학설은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고구려라는 제국의 강역은 반도를 벋어난 대륙에 까지 미쳤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나 수긍하는 바이다. 그런 고구려가 반도의 한쪽 구석에서 겨우 국가라는 특을 잡은 신라에 의해 쇠망할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여하튼 신라는 최소한 반도의 일부를 병합했다. 그후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발해와 남북국시대를 거치면서 고려라는 진정한 고구려계승자에게 진정한 반도의 통일주인공역활을 넘겨주게 된다. 고려는 국호에서도 알수있듯이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만천한에 천명하고 그 의지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희라는 띄어난 외교관으로 인해 강동6주를 획득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획득이 아니라 많은 준비끝에 가져온 고구려의 반환이라고 봐야할것이다. 이렇듯 초창기 부터 고구려계승정신이 고려에게 있었다.

비록 고려중기에 가서 왕권의 약화와 지주층의 거대로 인해 무신정변을 필두로 한 최씨무신정권이 자리잡지만 그들의 최대 모토도 고구려계승이라는 점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당연히 원과의 충돌을 피할길이 없었고 그렇게 대몽항쟁이 시작된다. 비록 항쟁의 패배로 원의 사실상 지배를 받게 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다른 면도 있다. 과연 몽고의 지배기간동안 역사가 후퇴했느냐 아님 진보했는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당시 고려는 원으로부터 정치 경제등 다 방면에 걸쳐서 내정간섭을 받았으나 그에 상응하는 시대의 큰 흐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폐자인 고려는 독립성을 잃었지만 20세기의 한민족만큼 정체성에 대한 위협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성을 한단계 높일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있다. 예를 들어 원의 지배시기에 고려는 노비제도가 부모중 한사람이 천민이면 천민이 되는 일천즉천의 제도였다 하지만 원의 지배시대에는 일량즉량이라는 제도가 도입된다. 물론 기득층의 강력한 로비로 유야무야되기는 하지만 그 만큼 사회전반에 걸쳐 많은 충격들이 있었고 그 충격들을 서서히 소화해내면서 사회는 또 다른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대외정책중 우리에게 부끄럽게 비쳐지는 모습이 중국에 대한 사대정책이 아닌가 싶다.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오히려 중국보다 더 성릭학에 매진했던 그런 부분들 말이다. 하지만 역시 사대를 민족의 자존감도 없는 정책으로만 비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당시 원의 멸망과 명의 창궐에서 조선이란 신생국의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였다. 물론 중국제국의 전통적인 통치철학의 하나인 근공원교라는 방식에 의해서 조선을 하나의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조공이라는 외교관계를 설립하는게 명제국의 입장에서도 유리한 면도 있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도 부정적인 요인보다는 긍정적인 요인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반도국인 조선의 경우는 천년전의 고구려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대륙국가 아닌 반도국가라는 맹점때문에 선전문화의 유입현상이 늦어지므로 제때 반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면에서 많이 불리했던 것이다. 크게 보면 조선의 사대정책은 그런한 문명의 흡수라는 입장에서 탁원한 외교정책으로 봐야할 것이다. 비록 명,청교체기에 광해군같은 군주를 배척하고 안주해버린 면은 있지만 당시로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그런 종속성이 아닌 반도국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정책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 역사란 되풀이 된다는 말도 있다. 물론 똑같이 반복될 수는 없지만 그 만큼 역사를 통해서 현시대와 미래를 가늠하고 조절할 수 있는 거울이라는 소리일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반문해 볼 수 있는 책인것 같다. 물론 역사에 대해서 자긍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자긍심을 가져야 만 타 민족의 역사왜곡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동안 우리 근 현대사부분의 경우 많은 점에서 객관적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계기가 있었고 지금의 세대는 또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멀리도 아니고 천년전 이천년전의 역사에 대해선 너무마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점 또한 사실일 것이다. 진정한 우리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같아 다시금 역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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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 2008-06-3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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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다시 찾아야 할 우리의 전통












<밖에서 본 한국사,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과거는 변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국사가 세계사가 그닥 재미있지 않았던 건 변하지 않는 과거

사실만 나열해 배웠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과거의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찾지

못했기에 그저 암기과목으로 받아들였던 거 같다. 때로는 국가가 가르치고 싶어하는 사실만

배웠기에 주체적 역사관을 갖기도 어려웠을 테고.



학교 밖, 책을 통해 만나는 역사는 역사가에 따라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게 해주기에 읽을수록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이 책 <밖에서 본 한국사>는 역사 에세이란 부제로 '밖에서'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고 국가보다

'민족'차원에서 서술했다는데, 솔직히 그 차이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책 전체를 관통하

고 있는 우리의 화이부동 和而不同 전통은 매우 인상깊었다.



그가 말하는 한민족은 '한반도에 농업국가를 이루고 살아오면서 형성된 민족' 이다. 원류는

만주의 선진문명을 수백 년 시차를 두고 받아들이는 후진지역으로 시작했다. 청동기시대

만주와 한반도에 알타이어계 언어를 가진 수많은 종족집단 중 대부분은 중국문명에 흡수된

반면, 한민족은 궁극적 정체성을 지켜왔는데 그 정체성의 바탕이 바로 화이부동이라 한다.

즉, 중국문명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또한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던 것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

라 한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고구려. 학교에서 배운대로 고구려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 통일신라로 이어지는

흐름에 있는 우리의 고대국가로 다른 나라가 설 틈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고구려를 계승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란다. 신라는 당시 제 코가 석자였기에 고구려의

작은 영토와 백성의 일부만 넘겨받았던 반면, 중국 (당시 당나라)은 고구려의 핵심요소를 계승

받았다. 그러나, 신라는 작게 계승받은 고구려를 반도국가 (고려)로 크게 발전시켰고, 크게

계승받은 만주지역은 뒤쳐져 야만의 땅으로 전락했다.



그 후 고려시대. 몽골이 유라시아를 휩쓸던 때 고려처럼 작은 나라가 30년 동안이나 버티고,

그 후 100 여년 간 몽골 지배를 받았지만, 한편으로 문명수준을 높여 적응력 강한 정체성을

만든 기회로 삼은 것 역시 화이부동의 전통이다.



그리고, 조선시대.

조선 건국자들이 문명수준이 높은 중국과의 관계를 풀기 위한 답으로 '사대'를 내놓았다. 이는

힘에 눌려 억지로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 천하질서에 능동적으로 공헌한다는 명분으로 약자

는 자존심을 지킬 수 있고, 강자는 약자의 태도가 일시적 득실에 따라 바뀌지 않으리라 신뢰할

수 있는 길이었다.

우리가 하대했던 '사대주의'는 19세기 말 일본이 조선의 독립성을 부정하고 청나라와의 관계

까지 폄하하려는 그네들의 나쁜 관념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동화를 열심히 한 우리는 독립국으로 남아 있지만 거부한 지역들은 정복당했는데,

이런 모순된 상황이 바로 '화이부동'의 원리 탓이다.

중국문명에 동화되지 않은 곳은 '정복'의 대상이었고, 동화수준이 높은 곳은 안정된 관계를

자발적으로 추구해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동화란 단어는 불편하다. 우리가 가장 높은 문명국이 아니었다는 세삼스런 자각, 단지

살기 위해 같아지려 노력했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대신 동화란 단어를 '변화'로 치환하면

훨씬 수용이 쉬울 것 같다.

거대흐름의 변화를 외면한 채 자신의 고고함만을 지키려 하면 부러지거나 꺽히기 쉽다. 변화

흐름 속에 자신의 것을 추구해야만 온전하게 살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이 어느날 갑자기 해방을 맞아, 그동안 부끄러움의 대상 속에 같이 묶여

있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전통을 찾아야 할 때다.

새로운 흐름이 겹쳐지고 있다. 시장 만능의 경제통합이 대다수 인류에게 바람직한 상황을

가져다 줄 것인지 의심되는 거대한 변화 속에 매몰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우리의 정체성 -

화이부동을 찾아야 할 때다.

남을 깔보지 않으면서도 우리 뿌리에서 아낄만한 미덕을 찾고, 서로를 존중하면서도 우리의

떳떳함을 잃지 않는 '교양'의 정신, 서로간의 경쟁보다 '협력'을 해간다면 온전히 찾아지리라.









신영복 선생님의 작품



읽은 날 2011. 11. 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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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의일상 2012-05-02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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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항일 독립군 vs 친일파의 긍정적인 면~




























굴곡진 한국 현대사에서 한가지 잣대로 세상을 보는 것은 편협하고 맹목적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그래왔고요~
실제로, 한국에서는 좌파란 용어와 친일파란 용어는 극단의 세력이 서로서로 미워하고 저주하는 대표적인 문구일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좌파나 친일이 무조건 나쁘고 무조건 배척받아야할 것일까요 ? 최근의 역사서는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낍입니다~


밖에서 본 한국사

역사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특히나 한국같이 역사적 질곡이 있고, 현재도 그 후유증이 있는 나라에서는 더 그렇겠지요.

한국 역사는 크게 일제에 의한 식민사관과 이에 과대하게 대응하는 민족사관이 주류가 되 온것이 사실로 보입니다.
즉 너무 한국역사를 비하하거나 아니면 너무 과장하는 그런 역사관이 주류였다는 것이고 진정한 객관적인 역사는 쉽지 않았던 것이 진실이 아닌가 합니다.
다행히 최근에 객관적으로 한국사를 볼려는 시도가 많아서 긍정적인 방향은 되고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이번에 본 책, '밖에서 본 한국사'는 그런 시도의 책이고, 꽤 좋은 책이라 평가하고 싶군요~

물론, 제 자신이 꽤 진보적이라서 평소 제가 알고 있던 사회의식이나 한국사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앞선 평가라, 이 책의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나,
한국사를 기존 중-고교 학교에서 배운사람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당히 쇼크하고 진보적인 내용이라고 감히 말하고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조선시대 이후의 내용이 60%가 된다는 점입니다. 즉, 근-현대사에 대해서 과감하게 상황을 쓰고 있어서, 고리따분한 내용이 주로 있는 타 역사책과는 차별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 고대사나 중세사 역시, 기존 역사책보다는 재미있고 의미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우리가 기존에 배웠던 중고교 역사책의 그 무의미하고 건조하고 재미없는 역사책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현실/현재과 연관시키는 역사책이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현재의 초중고교 역사책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이 책과 함께 비교하면서 공부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중-고-대학다니는 제 조카들에게도 사줄 예정입니다. 현재 40%할인 중이라 부담도 없네요~ ^
무미건조한 외우기식의 중고교 때 역사책을 기억하고 있는 분이라면은, 이 책은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고, 현재와 이렇게 연관시킬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몇가지 제가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을 적어 볼까 합니다.

1. 가야(임나 일본부 )와 일본 왜와의 관계는 밀접한 관계(공동체)로 보고 있으며, 초기에는 가야쪽에 비중이 크고, 후기 때는 왜쪽에 비중이 컷을 것으로 본다.

2. 몽골 지배시의 고려는, 나라를 아예 몽골제국(원나라)과 합치기를 원해서, 병합청원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몽골정부의 거부로 원나라(중국)와 고려가 통합되지는 안됐다고 합니다.

3.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때, 신라의 역할은 아주 미미했었다고 합니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방해만 안해주면 좋을 정도로 신라의 역할은 미미했으나, 백제-고구려가 망한 후에는 신라와 당나라가 대결을 몇십년간
전쟁을 벌여서, 여기서 극복한 신라가, 백제땅 모두와 고구려 땅 일부(지금의 황해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4. 중국을 점령했던 민족, 즉 돌궐,거란,여진,몽골 민족이 지금은 나라도 없고, 그 세력이 거의 없어진데 반해, 한국은 살아남고 고유한 문화를 지킨 것은, 화이부동(和而否同)- 중국 문명과 교류는 하나, 중국과 같지는 않게 하는 정책. 때문이라고 합니다.

5. 변한(가야) 지방이 철산업이 발전한 것은, 철(철광)이 많이 생산이 되기보다는, 철 제조기술이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6. 신라는 백제-고구려에 비해 국력이 형편없이 약한 나라였는데, 6세기 초, 즉 520 전후로 부터 고대국가로 발전하여(고구려-백제보다 200여년이 늦음) 150여년만에 삼국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즉, 신라의 나당 연합은,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상황에서 나온 신라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7. 조선 건국 시에, 시행된 토지조세제도인 과전법은, 현재 기준으로 하면 거의 공산주의 식의 개혁이었다. 즉, 모든 토지를 국가가 소유하고 과세를 하는 것이었다.

8. 정약용등의 실학자들은 학문적으로 서학을 접했지, 종교적으로 접한 것은 아니었다.

9. 보통 민족주의는 우파의 역할이 큰데, 한국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민족주의는 주로 좌파쪽의 역할이 컸다.

10. 이승만 정권은, 민족-국가의 발전보다는, 자신들의 권욕독점 욕심이 더 강했던 기회주의 집단이었다.

11. 민비(명성황후) 세력은 집권을 위한 집권에 집착할 뿐, 국가 진로를 능동적으로 열어 나가려는 노력을 보인 바 없었다.

12. 1876~1985년까지는, 이 무렵 조선에서는 '독립'의 주장은 '친일'과 그리 멀지 않은 것이었다. 독립문 현판을 '매국노' 이완용이 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독립협회의 독립이란 이미 패퇴한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확인하는 것이지, 당시 늘어나고 있던 일본과 러시아의 힘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13. 독립 무장 투쟁의 본산이었던 만주의 경우는 일본의 조종을 받는 만주국이 들어선 후 국민당의 외면으로 인해 공산 세력과의 연결 없이는 독립 활동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 즉, 한국에서는 좌파가 독립운동 세력의주체였다.

14. 과거 청산의 지체에 대한 반발은(친일파의,미 군정에 의한 복귀로 인한 과거 청산 지체 및 불이행은) 친일을 무조건 죄악시하고 항일을 무조건 영웅시하는 흑백론의 분위기를 낳았다. 이것이 또한 균형잡힌 성찰을 어렵게 해왔다. ==> 친일파들의 대한 긍정적인 면도 살 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15. 고려 무신정권이 내부 모순이 아니라 몽골 침략이라는 외적 요인으로 인해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지금까지의 통념과 달리 정상적 정치 현상으로 해석할 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6. 이승만 정권은 일본 경찰 출신 경찰요원을 앞세워 빈미특위를 습격하는 등 탄압 끝에 1949년 8월까지 반민특위를 무력화했다. 결국 반민족행위 혐의를 조사받던 680 여명 중 1950년 3월까지 단 7명이 실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들도 1년내에 모두 풀려났다.

17. 일본은 조선 개항 때부터 만국공법체제를 조선에 강요하며 전통적 사대관계를 부정했다. 만국공법 체제는 허구의 평등으로 현실의 불평등을 가림으로써 제국주의 시대의 약육강식 정당화에 이용된 논리였다. 오늘날의 시장만능주의와 같은 틀이다.

18. 자원의 한계를 의식할 수 없던 19세기에 시장 기능을 강조한 자유주의는 하나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자원의 한계가 분명해진 21세기에 시장 만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는 일부 세력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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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브란트 2009-12-1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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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 정벌


느티나무 2010-10-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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