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Philip Jaisohn)의 <한수의 여정: 한국 이야기(Hansu's Journey: A Korean Story)>에 대한 요약 및 평론입니다.
<한수의 여정: 한국 이야기> 요약 및 평론
서재필이 1921년부터 1922년까지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던 <코리아 리뷰(The Korea Review)>에 연재한 후 단행본으로 출간한 <한수의 여정: 한국 이야기(Hansu's Journey: A Korean Story)>는 재미한인 문학사에서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한인 이민자가 영문으로 발표한 초기 소설 중 하나이자, 일제강점기 한국의 비극적 현실과 독립운동을 서구 사회에 알리기 위해 집필된 계몽적 문학이다.
1. 줄거리 요약
작품의 주인공 한수(Hansu)는 평안도 출신의 가난한 농가의 소년이다. 배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서울로 향하던 한수는 기차역에서 일본인 직원의 부당한 행패에 맞서 주먹을 날렸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출옥 후 한수는 목사의 추천장을 들고 평양의 미국 선교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신학문과 선진 문물을 배운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역량을 키우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여 러시아군에 입대해 복무한다.
전쟁이 끝난 후 한수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1919년 3·1 운동의 현장을 목격한다.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 단체 형성을 도운 한수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독립을 돕기 위해서는 선진 학문과 정치를 배워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2. 작품 평론
계몽주의적 프로파간다와 서사 문학의 결합
<한수의 여정>은 순수한 미학적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팜플렛'이자 문화 외교의 목적을 띤 서사다.
기독교와 서구적 근대화의 열망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또 다른 핵심 축은 기독교 신앙과 미증유의 근대 문명이다.
한계와 문학사적 의의
문학적 관점에서 이 소설은 평면적인 인물 구도와 성급한 결말, 계몽적 메시지의 과도한 노출이라는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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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s Journey: A Korean Story』(『한수의 여정: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 서재필) / 필명 N. H. Osia, 1922
— 1,000단어 요약·평론
『Hansu’s Journey』는 문학적 완성도만으로 읽기보다 <식민지 조선·기독교·민족독립·미국이라는 네 요소가 서재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결합되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정치소설로 읽을 때 훨씬 흥미로운 작품이다. 1921년 필라델피아에서 발행되던 <Korea Review>에 연재되었고, 1922년 서재필 자신의 출판사 Philip Jaisohn & Co.에서 69쪽짜리 책으로 출판되었다. 표지에는 N. H. Osia라는 필명이 쓰였다. 오늘날 연구자들은 이 작품을 한국계 미국인이 영어로 쓴 최초기 소설, 나아가 한국계 미국문학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1. 전통적 조선 청년에서 식민지의 반항자로
주인공 한수 박(Hansu Park)은 평안도 지방의 비교적 넉넉한 농부 길민의 외아들이다. 열여덟 살인 그는 유교 경전을 읽으며 서울에 가서 관립학교 입학시험을 볼 준비를 한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대신 시키지 않고 아들의 교육에 모든 희망을 건다. 한수의 출발점은 이처럼 <효·교육·출세>라는 전통적인 유교적 세계다.
그러나 서울로 향하는 여행은 곧 식민지 현실과의 충돌로 바뀐다. 기차역에서 일본인 직원이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수를 때리고, 한수가 반격하자 경찰이 그를 구타하여 체포한다. 일본인 판사는 조선인이 일본어를 알아야 한다는 논리로 태형 90대와 강제노동을 선고한다. 이 장면은 작품 전체의 기본 구도를 설정한다. <일본 제국=폭력·자의적 법·굴욕>, <조선인=억압받지만 인간적 존엄을 지닌 존재>라는 대비다.
2. 감옥에서 만난 기독교
한수의 인생을 바꾸는 것은 감옥이다. 심한 태형을 받은 뒤 옆 감방에서 장로교 목사 상설 김(Sangsul Kimm)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듣는다. 증오에 사로잡혀 있던 한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처음으로 예수에게 도움을 청한다. 목사는 성경과 구원을 설명하고,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 구원뿐 아니라 나라를 위한 희생과 연결한다.
석방된 한수는 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평양의 학교에 들어간다. 세 해 동안 공부하면서 기독교인이 되고 영어를 배우며, 장차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아 조선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갖는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기독교→교육→근대적 시민→민족봉사>는 하나의 연속된 길이다.
이 부분에서 서재필 자신의 사상적 세계가 강하게 드러난다. 『Hansu’s Journey』는 엄밀한 자전소설은 아니라고 연구자들이 지적하지만, 전통사회에서 출발한 한국 청년이 서양교육을 받고 세계를 경험한 뒤 교육받은 국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구조는 서재필 자신의 생애와 개화사상을 분명히 연상시킨다. 김욱동의 연구 역시 이 작품을 단순한 자전적 기록보다는 본격적인 허구적 소설로 분류한다.
3. 세계전쟁을 거쳐 민족주의자로
한수의 다음 행로는 놀랄 만큼 장대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독일 군국주의와 일본 군국주의를 같은 현상으로 이해한다. 군국주의를 세계에서 제거해야 약소국 조선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러시아군에 입대하고 기관총병이 된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유럽 전선까지 가서 전쟁을 경험하고, 러시아 혁명과 혼란을 거쳐 1918년 말 동아시아로 돌아온다.
이 설정은 사실주의 소설이라기보다는 <한 조선 청년을 세계사의 무대에 올려놓는 정치적 성장소설>에 가깝다. 한수의 여행은 ‘시골→평양→서울→시베리아→유럽→조선→만주→상하이→미국’으로 확대된다. 개인의 지리적 이동이 곧 민족의 의식 확대를 상징한다.
4. 3·1운동과 비폭력의 이상
귀국한 한수는 평양에서 길(Gill) 목사를 만나 서울로 동행한다. 기차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독립선언서를 읽는다. 한수가 무기를 묻자 목사는 독립운동이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작품은 독립선언의 핵심 정신을 <No Violence>라고 강조한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한수는 수천 명의 군중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것을 목격한다. 일본 경찰과 군대의 탄압이 이어지고, 미국 선교학교 출신의 젊은 여성 마르셀라 정(Marcella Jumg)은 태극기를 놓으라는 명령을 거부한다. 일본군이 칼로 그녀의 손을 잘라버리지만, 마르셀라는 절단된 손에 여전히 태극기를 움켜쥔 채 독립의 상징적 순교자로 묘사된다.
그런데 여기서 작품에는 중요한 모순이 발생한다. 한수는 비폭력 독립운동에 감동하면서도 일본군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을 목격한 뒤 권총을 주워 일본군 지휘관을 사살하고 또 다른 일본인을 죽인다.
이 모순은 오히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기독교적 비폭력>과 <식민지 폭력에 대한 무장저항> 사이의 긴장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공존한다. 서재필은 3·1운동의 도덕적 우위를 비폭력에서 찾으면서도, 극단적인 폭력 앞에서 조선인이 무력으로 저항하는 것까지 비난하지 못한다.
5. 만주와 상하이—독립운동의 방법은 교육이다
한수는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탈출한다. 그곳에는 일제의 억압을 피해 온 많은 조선인이 살고 있다. 그는 이들을 조직하여 독립연맹을 만들고, 약 14개월 동안 만주 각지를 돌아다니며 독립운동 조직을 확대한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사업은 군사훈련보다 <학교 건설>이다. 주민들은 곡식과 가축까지 내놓아 학교와 교회를 세운다. 한수 자신도 결국 더 공부해야 민족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1920년 상하이로 간 한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방문한 뒤 미국 유학을 시도한다. 미국 영사는 일본 여권이 없으면 미국 입국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한다. 한수는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며 미국에 가기 위해 일본 신민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그리고 한미조약과 미국의 자유·정의의 전통을 들어 미국 정부의 모순을 지적한다.
바로 이 장면이 사실상 소설 전체의 정치적 목적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한수가 미국 영사에게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재필이 미국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6. 미국으로 가는 배—이 소설의 ‘미국’
한수는 결국 미국행 배의 웨이터로 취직한다. 배에서 뜻밖에도 옛 은인인 미국인 선교사 미스 노먼과 마르셀라를 다시 만난다. 마르셀라는 잃은 손을 슬퍼하기보다 조선을 위해 희생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미국에서 교육학과 가정학을 공부해 조선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
한수는 미국 대학 총장 휴스턴 박사에게 조선의 현실을 설명하고, 그는 미국이 조선에 도덕적·법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며 한수에게 대학 교육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다. 하와이에 들른 한수는 현지 한인 공동체와 학교도 방문한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샌프란시스코 도착을 하루 앞두고 한수와 마르셀라가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마르셀라는 조건을 붙인다.
개인의 사랑이 조국의 독립과 민중교육이라는 사명을 방해한다면 <사랑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연애조차 민족적 사명 아래 놓인다.
평론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문학성보다는 역사적 위치>에 있다. 1921~22년에 미국에서 영어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설명하고 미국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쓰인 소설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실제로 서재필은 3·1운동 이후 미국에서 한국정보국과 <Korea Review>를 통해 한국 독립문제를 미국 사회에 알리고 있었다. 『Hansu’s Journey』 자체가 그 활동의 일부였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은 심리적으로 복잡한 인간이라기보다 정치적·도덕적 유형에 가깝다. 일본인은 거의 모두 잔인하고 거만하며 비인간적으로 묘사된다. 반대로 미국인 선교사·교사·영사·대학총장은 대부분 친절하고 정의롭다. 한수 역시 지나치게 용감하고 도덕적이며, 마르셀라는 거의 성녀에 가까운 애국자로 그려진다.
이것이 문학적 약점이다. 특히 일본인을 때때로 인간 이하의 존재처럼 표현하는 문장은 오늘날 읽기에 매우 거칠다. 식민지 지배의 폭력을 고발하는 것과 일본인 개인 전체를 악마화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가해 제국을 비판하면서 그 제국의 적대적 인간관까지 닮아가는 위험>이 작품 속에 존재한다.
또 하나의 한계는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이상화다. 미국 정부가 실제로 조선 독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현실과 달리, 소설 속에서는 ‘진실을 알게 된 선량한 미국인’은 거의 자동적으로 조선을 돕는다. 이것은 서재필이 미국을 순진하게 몰랐기 때문이라기보다 <미국인을 설득해야 하는 선전문학의 전략>이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Hansu’s Journey』는 귀중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1920년대 초 해외 독립운동가가 미국 사회에 어떤 조선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볼 수 있다.
그 조선은 <유교적 과거에서 깨어나고, 기독교적 도덕을 받아들이며, 교육받은 국민을 만들고, 비폭력적 독립운동을 수행하여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 할 조선>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한수 개인이라기보다 <근대적 한국인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서재필의 생애를 관통하는 신념이 압축되어 있다.
<독립은 단순히 일본을 몰아내는 일이 아니다. 독립할 자격과 능력을 가진 시민을 교육하여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 점에서 『Hansu’s Journey』는 뛰어난 소설이라기보다 <서재필의 독립·기독교·교육·미국관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압축한 정치적 문서>로 읽을 때 가장 가치가 큰 작품이다.
특히 식민지기의 실제 생활경험을 알고자 읽는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김은국의 『잃어버린 이름』처럼 어린이가 식민지 일상을 어떻게 체험했는지를 섬세하게 복원하는 작품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Hansu’s Journey』가 보여주는 것은 <식민지 조선인의 일상>이라기보다 <1921년 미국에 있던 독립운동가 서재필이 식민지 조선을 미국인에게 어떻게 설명하고 싶어 했는가>이다. 이 차이를 염두에 두고 읽을 때 이 작은 69쪽짜리 작품은 의외로 매우 중요한 사료가 된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Hansu’s Journey』는 한국계 미국문학의 초기 작품인 동시에, 3·1운동 이후 서재필이 꿈꾼 ‘기독교적·교육적·민주적 한국인’의 탄생을 그린 독립운동 소설이다. 문학적으로는 선악 구도가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바로 그 단순성 속에 1920년대 해외 독립운동의 세계관이 놀랄 만큼 선명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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