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시대의 불침번 | 정경모 2010

시대의 불침번 | 정경모 | 알라딘
시대의 불침번 - 정경모 자서전
정경모 (지은이)한겨레출판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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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찢겨진 산하>의 저자, 마지막 재일 망명객 정경모의 자서전. 저자는 문필 활동을 통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지원, 1989년 역사적인 문익환 목사와의 방북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에 직접 서 있었고, 민주화 이후 자수서 작성 거부로 한국 방문이 무산되어 일본 땅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겠다고 결심한 살아 있는 한국 현대사이다.

애초 자서전 집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저자는, 2년 동안 온힘을 다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못다한 이야기, 잊고 있던 삶의 연결고리, 그리고 어떠한 배경도 없이 붓 하나에 의지해 시대에 맞섰던 고독했던 삶의 응어리까지, 자신의 인생 전모를 이 책을 통해 털어놓는다.


목차


추천글

우리 현대사가 잊을 수 없는 이름 _ 임재경
정경모 선생과 나 _ 황석영

머리글

1. 나는 조꼬만 봉사씨외다
2. 해방군이 몰고 온 전쟁
3. 서울의 이방인
4. 망명시대
5. 씨알의 힘으로
6. 미국과 일본의 본질을 묻다
7. 모든 통일은 선이다
8. 껍데기는 가라
9. 나는 원래 민족주의자 아니오이까
10. 아무 유한도 없소이다


책속에서


P. 30-33 내가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을 맞이한 것은 미국 유학생으로 에모리 대학 대학원에서 연구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소이다. 식민지 시대에 경기중학을 나오고 일본으로 가서 게이오 대학 의학부에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여 잠시 서울대 의학부에 적을 두고 있었으나 1947년 8월 미국 유학길로 떠난 것인데, 에모리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화학 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바로 그때 6·25전쟁이 터진 것이지요. 당시 주미대사가 4·19학생혁명 뒤 제2공화국 국무총리가 되는 장면 박사인데, 그분으로부터 워싱턴에서 긴급 전화가 걸려왔어요. “지금 우리 신생 대한민국이 공산군의 침략으로 존망지추(存亡之秋)에 있는데 그렇게 한가하게 실험실에서 시간을 보내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프란체스카 부인의 특명이니만치 가타부타 잔소리 말고 곧 도쿄로 떠나 맥아더 사령부로 들어가라!”
그때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간 이후 학비로 곤란을 겪을 때 참으로 기적적인 연유로 이승만 대통령의 알선을 통해 미국의 육영자금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프란체스카 부인과는 대사관 행낭(파우치)을 통해 수시로 서신을 교환하고 있던 처지였어요. ……
문 목사 얘기를 해놓고 새삼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것은 맥아더 사령부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훗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 사람이 셋이었는데, 바로 문익환, 박형규, 그리고 나 정경모였고 셋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이에요. 두 분은 목사님이시니까 물을 필요도 없으나, 나 자신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고 한때 목사가 될 생각도 있었으니 지금은 비록 주일날이라고 해서 성경.찬송 옆에 끼고 예배당에 가는 식의 기독교인은 아니나마 정서의 바탕은 지금도 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접기
P. 81-85 그런데 이상스러워요. 팔십 평생을 살아온 지금 일생을 되돌아보면 열아홉 살 나이에 하숙집을 찾느라고 히요시 마을, 그 집 현관문을 연 그 순간, 내 인생역정의 전부가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오이다. 예정론 그대로예요. 다음 날 또 갔어요. 아주머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딸하고 의논하니 괜찮다고 하니까 어느 날이고 이사를 오라 그러시더군요.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내일 이삿짐을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는 집을 나왔소이다. 그 집 따님을 만나볼 생각도 하지 않고 말이외다. 그때 얼굴도 안 보고 문밖으로 나온 그 집 따님 지요코(千代子)가 오늘까지 백년해로로 인생길을 같이 걸어온 현재의 아내이며, 나를 극진히 귀여워해주시던 아주머님이 장모님이셨던 것이외다.
그때 지요코가 살며시 내 어깨에다 머리를 얹더니 잠시 후부터 훌쩍거리기 시작합디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줄 수가 있었겠소이까. 처음으로 지요코를 가슴에 안고 귀에다 대고 약속을 했소이다. 꼭 다시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요.
다음 날 집을 나서는데 도쿄 역까지 배웅하러 나가겠다던 지요코는 눈이 퉁퉁 부어 도저히 외출할 형편이 아니었소이다. 대문 앞에서 작별 인사를 하고 도쿄 역으로 향한 것인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죠. 정말로 그날부터 5년 4개월 만인 1950년 11월 초 약속한 대로 돌아서 돌아서 태평양을 건너 히요시의 옛날 그 집을 다시 찾게 되는 것이오이다. 기적이란 이런 일을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니겠소이까. 접기
P. 187-188 약속한 날 아사히신문사 식당에서 그분을 만났는데 투고란은 원래 정년이 가까운 노련한 기자가 담당하는 것이 상례이듯, 당시 40대이던 나보다 훨씬 연배가 위이고 퍽 세련된 용모의 인물이었소이다.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미 6년 전인 한일협정 당시 한국 학생들의 반대운동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또 협정 이후 일본으로부터 흘러 들어가는 정치자금이 한국 권력층에 어떠한 형태의 부패를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신문기자인 그분에게조차 놀라운 뉴스였던 것이외다. 비단 그분만이 아니라 일본 언론 전반에서 한국 문제는 흥밋거리가 아닌 시대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었지만 말이외다.
얘기 끝에 그분이 묻습디다. 투고문 이외에 써둔 원고는 없는가, 있으면 보여달라고 말이외다. 그래서 며칠 후 400자 원고지 100장가량의 원고를 가지고 다시 만났는데, 도노 씨가 원고를 훑어보고 그 자리에서 말을 건네주더이다. “이거면 됐다. 계속 써달라”고 말이외다.
이렇게 해서 내 책 『어느 한국인의 감회』(ある韓?人のこころ, 朝日新聞社, 1972)가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인데, 그때가 바로 7.4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인 1972년 9월이었소이다. 접기
P. 329-330 ‘케넌 설계도’는 다음과 같은 것인데, 간단히 말해서 조선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본의 구식민지는 다시 한 번 일본에게 통치를 맡기는 편이 미국에는 이득이라는 것이 그 내용으로 되어 있소이다.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생각한다면 일본의 영향력과 제반 활동이 조선에서 만주에 이르는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반대할 이유가 없게 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인데, 그날은 우리 예상보다 더 빠를 수도 있다. 이 지역에 대한 소련의 압력을 완화하고 저지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이 현실적인 유일한 방도인 까닭이다. 힘의 균형을 이용한다는 구상은 미국의 외교정책상 새로운 것은 아니며, 현재의 국제 정세에 비추어 이와 같은 정책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이러한 정책을 채용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바람직하다는 것이 우리(국무부 정책기획본부)의 일치된 견해이다.”
케넌이 작성한 이 ‘설계도’는 그가 본부장으로 있던 국무부 정책기획본부 제13호 파일 상자에서 내가 늘 말하는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처음 찾아낸 것으로, 발견하자마자 즉시 내게로 보내 온 것이 1985년 가을이었소이다. 태프트-가쓰라 밀약의 재판인 이 문서를 읽고 내가 얼마나 놀라고 또 분개했겠는지 짐작이 갈 것이나, 더 부아가 터지는 것은 그 후 근 20년 동안이나 글로 또는 말로 소리 높여 떠들어대며 이에 대해 주의를 환기하려고 안간힘을 다 했소이다만―내 역부족 탓이겠으나―여기에 관심을 품어주는 사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소이다. 내가 아는 한 일본인 학자들이 서술한 조선 문제에 관한 책 중에서 ‘케넌 설계도’를 언급한 것은 하나도 없었소이다. 접기
P. 397-399 문익환 목사 일행이 평양을 떠난 것이 1989년 4월 2일 오후였는데, 그날 아침 문 목사가 기자단 앞에서 낭독하신 선언문이 오늘 우리가 ‘4.2남북공동성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오이다. 이 성명문은 27일서부터 30일까지 나흘 동안에 걸친 김 주석과 문 목사 사이의 회담을 담은 것이었고 9개 항목에 걸친 상당히 장문의 것이지만, 알맹이만을 뽑아서 요약한다면 다음 세 가지의 항목이 아닐까 하오이다.

①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니만치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이다.
②통일에 관한 남북 간 대화의 창구는 널리 개방되어야 하며, 당국자들 사이의 독점에 맡기지 않는다.
③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진대 연방제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경로인데 이의 실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 문서를 작성하느라고 나와 안병수(훗날 안경호로 확인) 동지는 31일 밤을 꼬박 새웠지요. 통일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우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이룩되어야 한다는 표현은 아마 김 주석의 말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었겠으므로 나는 약간 미소를 머금으면서 안병수 동지의 원안을 수락한 표현이었고(제4항), “남북 쌍방은 문화적 정신적인 공통성과 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을 재확인한다”는 부분(전문)은 내 제안을 안병수 동지가 받아들여 삽입된 표현이었소이다.
아무튼 4.2공동성명은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날의 동지 문익환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후 발표된 6.15공동성명으로 직결되고, 또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때의 10.4공동성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공동성명의 시발점은 문 목사의 평양 방문이었음이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지요. 접기
P. 520-522 그러니까 그게 아마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쯤의 일이었겠는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계시던 박형규 목사께서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오셨소이다. 박 목사는 나보다 한 살이 위이시고 말하자면 형님뻘 되시는 분인데, 사는 곳 영사관으로 출두하면 아무 소리 안 하고 여권을 발급해줄 터이니 한번 고국 여행을 하라는 말씀이셨소이다. 그래서 국적이 한국인 아내와 같이 요코하마 영사관으로 여권을 받으러 출두하지 않았겠소이까.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다음 날 다시 한 번 오라고 취조관이 그럽디다. 하라는 대로 또 한 번 출두했소이다. 그랬더니 자기들이 미리 작성해두었던 서류를 내밀면서 서명을 하라고 그럽디다. 서명하면 여권을 내주겠다는 것이지요. 그 서류는 ‘자수서’라고 되어 있고, 평양에 간 것은 실정법을 어긴 범죄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러저러하게 행동할 것을 서약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소이다.
‘자수서’라는 것은 간첩에게 쓰는 말일 터이고 내가 스스로 간첩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뜻인데, 이건 보통 ‘준법서약서’보다도 더 고약한 내용이 아니오이까. 여기에다가 서명을 한다면 스스로 자기 존재를 짓밟는 것이며, 또 문 목사가 취한 행동을 범죄행위였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지 않겠소이까. 아무리 초야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필부라 할망정 삼군(三軍)의 힘으로서도 빼앗을 수 없는 뜻[志]이 있다는 말이 있소이다.(『논어』) 나는 그것을 취조관에게 돌려주고 밖으로 나왔는데 무슨 영문인지 영사가 손수 운전하는 자기 차에다 나를 태워 역까지 바래다주었으며, 영사관 직원들이 모두 나와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배웅해주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소이다.
이듬해 꽃철이 되어 나는 아내와 더불어 근처 다마가와 강변 큰 둑으로 벚꽃 구경을 갔소이다. 둑에는 2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꽉 메우도록 벚나무가 서 있어 철마다 화려한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꽃구경으로는 맞춤한 곳이오이다. 화창한 봄날이었고, 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다마가와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또 상류 쪽으로 멀리 단자와 산맥의 수려한 산봉우리들이 서 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다가오더이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한강의 푸른 물결과 어릴 적 뛰놀던 양말산의 아지랑이 낀 넓은 벌판이 머리에 떠오릅디다. 그 순간 나는 나란히 서서 다마가와의 풍경을 보고 있던 지요코에게 말했소이다.
“여보 여보, 난 한국에는 안 가. 여기서 죽어 당신하고 같이 일본 땅 흙이 되는 거야.” 접기


추천글
독실한 개신교 가정에서 자란 명민한 자연과학도 정경모는 십대에서 삼십대 초반에 이르는 20년 동안 일본 유학 중 해방을 맞고, 미국 유학 중에는 6.25전쟁이 일어나 맥아더 사령부(GHQ)의 직원으로서 판문점 휴전 회담에 참가하는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 현장들을 목격했다. 또한 1989년 국내 재야의 문익환 목사를 도와 평양 방문에 동반한 정경모의 행동은 남북 분단으로부터 평화 통일에 이르는 지평 위에서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역사 불침번의 금자탑이다.
- 임재경 (언론인)

정경모 선생은 운명적으로 독립적이고 소수적인 국외자의 삶을 살아왔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농담으로 그를 ‘야간’이라고 부른다. 주간부가 주류의 넓은 길을 걷는 삶이라면 야간부는 역행하면서 뒤안길을 걸어야 하는 삶을 의미한다. 선생은 웃으면서 나의 농담을 받아들였다. 선생은 약삭빠르게 선택하고 처신했다면 얼마든지 순조롭게 평탄한 삶을 살았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선택의 순간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지성과 양심에 기대어 스스로 야간부의 삶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 황석영 (소설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0년 10월 15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정경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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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교 의학부, 서울대학교 의대에 다니다가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미국 유학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주미대사 장면의 요청으로 도쿄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GHQ)에 소환되어 문익환, 박형규 등과 함께 근무했다. 휴전회담 당시 통역업무를 맡는 등 한국에서 지내다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 40년간 망명객의 신분으로 문필활동을 통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을 지원했다.

일본에서 1981년 한국문제 전문지 <씨알의 힘>을 발행했고, 1991년에는 일본의 평화와 조선의 통일을 생각하는 ‘씨알의 힘’ 모임을 발족하여 기관지 <씨알>을 펴내왔다.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 역사적인 평양 방문을 결행하여, 6?15남북공동성명의 초석이 된 4.2공동성명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요코하마에서 50년이 넘는 세월을 아내와 함께 해오다 2021년 2월 향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접기

최근작 : <시대의 불침번>,<찢겨진 산하>,<이제 미국이 대답할 차례다>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찢겨진 산하』의 저자, 마지막 재일 망명객 정경모의 자서전

“유한은 없소이다.”
지난 1970년 일본 망명 이후 40년 동안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있는 여든일곱의 노 망명객 정경모 선생이 2년에 걸쳐 직접 원고지 2000매에 꼭꼭 눌러쓴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의 마지막 문장이다.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과 미국 유학, 맥아더 사령부(GHQ) 직원으로서 판문점 휴전 회담 참여, 일본 망명, 문필 활동을 통한 민주화 운동과 통일 운동 지원, 1989년 역사적인 문익환 목사와의 방북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에 직접 ‘서 있었고’, 민주화 이후 ‘자수서’ 작성 거부로 한국 방문이 무산되어 일본 땅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겠다고 결심한 ‘살아 있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선생’의 삶이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을 통해 세상에 선보인다.
애초 자서전 집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는 선생은, 2년 동안 온힘을 다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정리하면서,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못다한 이야기, 잊고 있던 삶의 연결고리, 그리고 어떠한 배경도 없이 붓 하나에 의지해 시대에 맞섰던 고독했던 삶의 응어리까지, 자신의 인생 전모를 이 책을 통해 털어놓는다.

의학도에서 붓 하나로 세상과 맞서는 문필가가 되다

선생은 본래 의학(게이오 의대, 서울대 의대)과 화학(에모리 대학)을 공부하던 자연과학도였다. 하지만 20세기 한국사가 지나온 격변의 시대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미국 유학 중 발발한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당시 유엔대사였던 장면 박사의 긴급호출이 그를 역사의 현장에 끌어들여 도쿄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GHQ)의 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판문점 휴전 회담에 통역관으로 참여하기도 하지만, 전쟁 후 미 사령부에 의해 ‘기피 인물’로 낙인찍히고, 이승만.박정희 독재 정권을 거부하며 일본으로의 망명을 선택한다.
어떠한 조직이나 배경도 없고, 일본 사회에 비판적이며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던 그야말로 아웃사이더 재일 망명객이었던 그가 일본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신문사 독자 투고로 시작한 문필 활동 때문이었다. <아사히신문> 출판부에서 출간된 『어느 한국인의 감회』를 계기로 그는 일본의 대표적 진보 잡지〈세까이世界>의 필자로 활동하게 되었고, 김대중 납치 사건을 통해 급격히 관심이 커진 한국 정치 관련 전문가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뒤 나중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빌미가 된 단체 ‘한민통’의 기관지 <민족시보>의 주필로 열성적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조직 내 갈등으로 탈퇴하고, 1979년 비로소 선생의 문필 활동의 본거지가 될 사숙 ‘씨알의 힘’을 열어 잡지 <씨알의 힘>과 기관지 <씨알>을 펴내며 한국 민주화 운동을 외곽에서 지원한다.
정경모 선생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책 『찢겨진 산하』(1986) 역시 1983년 <씨알의 힘> 6월호에 발표했던 원고를 번역한 것이었다. 여운형과 김구, 장준하 등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었던 세 인물이 저승의 구름 위에서 만나 정담을 나누는 독특한 형식을 취한 이 책은, 남북 분단의 과정을 강대국 간의 이데올로기 다툼이 아니라 친일 행위와 농지 소유관계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세력과 그것을 지키려는 세력 간의 현실적 갈등에 주목함으로써 해방 공간 역사에 대한 시각을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은 문제작이었다.

어떠한 역사책도 알려준 바 없는, 우리 현대사에 대한 생생한 증언

이 책 『시대의 불침번』은 단순한 자서전이라 하기엔, 정경모 선생이 겪은 삶이 너무나 비범하고, 그가 체험한 한국 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의 밀도가 높다. 책 제목으로 쓰인 ‘시대의 불침번’은 그의 오랜 동지이자 막역지우인 소설가 황석영이 그에게 붙여준 별칭인데, 그가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자니, 그 의미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소이다” “~이외다” “~소이까?” 등의 종결어미로 끝나는 특이한 구어체로 서술되어, 마치 옛이야기를 듣는 듯 감칠맛 나는 가락 속에 담겨 있는 선생의 삶과 오직 그만이 알고 있는 우리 현대사의 장면들은 드라마틱하다. 1945년 9월 초 ‘해방군’ 미군을 맞으러 영등포 네거리로 플래카드를 써서 마중나간 이야기며, 미국 유학 중 이승만.프란체스카 여사와의 직접 서신 왕래를 통해 학비를 도움 받은 일, 훗날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었던 문익환.박형규 목사와의 맥아더 사령부에서의 교유, 판문점 휴전 회담의 생생한 풍경, 4.19를 촉발한 3.15 부정 선거의 주동자 최인규 내무장관과의 인연,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에 고문으로 참여했던 이야기, 일본에 망명해 있던 김대중과의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한 역사적인 방북.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에 얽힌 뒷이야기 등은 놀랍도록 생생하다.

한반도 현대사에 대한 전방위적 시선

이러한 기록들이 한 개인이 겪은 특별한 체험담으로 끝나는 않는 것은, 선생의 개인사가 오랜 세월 다듬어온 역사적 안목과 관점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일본 유학과 미국 유학을 통해 언어만을 익힌 것이 아니라, 시대를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 즉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에 대해 일찍이 눈을 떠왔다. 게다가 오랜 문필 활동을 통한 자료 수집, 『한국전쟁의 기원』(선생이 이 책의 일본어판 역자이다)의 저자 브루스 커밍스, 동아시아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개번 맥코맥 호주국립대 명예 교수, 와다 하루끼, 전 이와나미서점의 야스에 료스케 사장 등과의 오랜 교류를 통해 ‘한반도의 근현대사에 대한 다자적 시점’을 가질 수 있었다.
선생은 미국과 일본의 패권 세력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국익’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고, 그 역사적 뿌리가 미국의 필리핀 지배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상호 승인한 1905년의 ‘태프트-가쓰라 밀약’에 있으며, 불행하게도 ‘미국과 일본의 거대한 커넥션’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직 지성과 양심에 기대어, 스스로 선택한 야간부의 삶”

책 속에 소개되어 있지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주관해 도쿄에서 열린 한 심포지움(2006)에서 백낙청 교수는 정경모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가 있다.

“그는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해오셨다. 그러고도 남한의 상당수 민주화 운동가들이 영달의 길에 오르고, 해외 통일운동가들 대다수 남북을 드나들며 예우를 즐기게 된 오늘까지 여전히 일본 땅에서 외롭게 당신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신다. 나는 이런 상황이 되도록 빨리 바뀌기를 충심으로 기원하지만 그의 완강한 고독이 불의와 굴종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불명예를 씻어내는 데 크게 일조했다고 믿는다.”(523~524쪽)

마음만 달리 먹었다면 대한민국 땅에서 누구보다도 더 영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정경모 선생은 오직 “자신의 지성과 양심”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을 걷는 ‘야간부’의 삶을 선택했다. 그 대신 역사의 뒤안길에 서서 ‘은폐된 역사’를 밝혀내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를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특별한 1인 사관이 되었다. 그리고 세상의 회유에 타협하지 않고 ‘완강한 고독’을 견뎌냄으로써, ‘우리 현대사가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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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젠간 아침에 맞이하겠지만 그 나마 밤을 지켜준 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skchamcn 2010-12-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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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시대의 증인이 되자



찢겨진 산하의 저자로만, 멀게만 느껴졌던 정경모.

우리나라에 살지 못 하고 일본에 살고 있어서일까.

그와 동시대를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가 살아온 시대를 우리도 살고 있는데.

그가 바라본 시대의 모습과 우리가 바라본 시대의 모습이 같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시대를 바라보는 눈. 그냥 있는 그대로 본다고 보이는게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바른 눈, 그 눈을 지니고 있어야 시대를 바라볼 수 있고, 시대의 불침번, 증인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지녀야 할 자세는 무엇일까?

옳음을 찾으려는 노력, 사물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노력, 시대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

그가 살아온 시대, 우리나라의 격변기.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모르고 있었던 것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경험한 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한국현대사의 여러 숨어있던 일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전기문을 읽은 이유.

그 사람 멋있다. 훌륭하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성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린 격변기를 살고 있다. 정경모의 삶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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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ye91 2010-12-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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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시대의 불침번

문익환 목사님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여 4.2공동성명을 탄생시킨 정경모 선생님의 자서전. 민족주의자이자 반제국주의자로서 살아온 일생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름난 논객인 만큼, 여전히 경청해야 할 여러 역사적 사실들도 많이 담겨 있다. 어쩌면 가시밭길이었던 자신의 생을, 웃으며 ˝아무 유한이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삶의 기품이 아름답다. 시대의 불침번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패기와 자신감이 인상적이다.
ENergy flow 2015-08-1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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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의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 요약 및 평론입니다.

<도서 개요 및 중심 배경>

<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자서전>은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며 민주화와 자주통일 운동에 일생을 바친 사상가이자 통일운동가 정경모(1924~2021)의 삶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저자는 게이오대학과 미국 에모리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촉망받던 과학자이자 휴전회담 통역장교 출신 관료였으나, 조국의 분단 구조와 군사독재의 잔혹함을 목도하고 1970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도쿄를 거점으로 <통일평론>, <씨알의 힘> 등을 창간하여 해외 민주화·통일 운동의 이론적·실천적 기틀을 놓았다. 이 책은 한 개인이 권력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시대의 어둠 속에서 깨어있는 '불침번'으로 살아간 치열한 궤적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핵심 내용 요약>

  1. 청년기와 전쟁의 참상 목격 정경모는 일제강점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귀국 후 한국전쟁 당시 판문점 휴전회담 통역관으로 복무하면서 강대국들의 패권 논리에 조국이 분단되는 모순과 전쟁의 잔학성을 직접 확인하였다. 전후 정부 관료로 재직했으나 5·16 군사정변과 박정희 정권의 독재화, 한일회담 굴욕 외교를 지켜보며 내적 갈등을 겪는다.

  2. 망명과 해외 민주화·통일 언론 활동 1970년 조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한 그는 <민족시보> 주간, 월간 <통일평론> 주간을 맡으며 독재 정권의 폭력성을 국제사회에 폭로했다. 김지하 구명 운동, 김대중 납치 사건 진상 규명 등 해외 망명 지식인들의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그는 '씨알 사상'을 확장하여 민중 중심의 역사관과 평화주의를 전파하고, 분단 체제의 극복 없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는 통일 담론을 정립했다.

  3. 1989년 평양 방문과 4·2 공동성명 저자의 생애에서 가장 상징적인 분기점은 1989년 문익환 목사와 함께한 평양 방문이다. 그는 문 목사의 방북을 막후에서 기획하고 수행하며 김일성 주석과의 회담을 이끌어냈다. 이 회담을 통해 발표된 '4·2 남북 공동성명'은 훗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연합제' 절충안의 모태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 잠칭 등의 죄목으로 수배되어 끝내 고국 땅을 밟지 못하는 망명객으로 남게 된다.

  4. 비타협적 지식인의 고독한 성찰 자서전의 후반부는 타협하지 않는 지식인이 짊어져야 했던 고립과 인간적 고뇌를 다룬다. 남한 정권뿐만 아니라 북한의 체제 경직성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며, 오직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 공존을 위해 타협 없는 비판자의 자리를 지킨 내면의 결단이 서술된다.

<비평 및 평론>

  1. 분단 체제의 경계를 넘나든 디아스포라적 사유 <시대의 불침번>은 남북한 국가 권력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경계인(Outsider)의 시각에서 한반도 현대사를 재해석한다. 정경모의 사유는 남한의 반공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을 뛰어넘어, 민중의 평화적 생존과 자주성을 중심에 둔다. 그의 망명지는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한반도의 냉전을 제3자적 객관성과 지식인의 엄격한 잣대로 조망하는 최전선 관측소였다.

  2. 이론과 실천의 유기적 결합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면모는 관념적 비판자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통일평론>이라는 언론 매체를 통해 대중을 설득하는 이론가인 동시에, 문익환 목사와의 평양행을 직접 실행에 옮긴 실천가였다. 4·2 공동성명이라는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낸 과정은 지식인의 사상이 역사적 현실을 어떻게 바꾸어낼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3. 서술의 강직함과 한계 저자의 문체는 직설적이고 타협이 없다. 권력자와 타협한 지식인들에 대한 가차 없는 질타와 역사에 대한 책임감은 독자에게 강한 도덕적 울림을 준다. 다만 자신의 정치적·사상적 선택에 대한 확신이 워낙 확고하여, 자신과 견해를 달리했던 현실 정치 세력이나 다른 노선의 운동 진영에 대한 평가가 다소 완강하고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다.

<종합적 결론>

정경모의 <시대의 불침번>은 20세기 격동기 한국 현대사의 이면을 밝히는 귀중한 사료이자,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역사의 새벽을 기다린 한 지식인의 지조를 담은 증언록이다.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고독한 타향에서 민족의 앞날을 지켜보며 불침번을 섰던 그의 생애는, 여전히 분단과 대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오늘의 한반도에 평화와 자주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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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 『시대의 불침번: 정경모 자서전』 — 1,000단어 요약·평론

첨부하신 책은 정경모(鄭敬謨, 1924~2021)의 자서전 『시대의 불침번』(한겨레출판, 2010)이다. 525쪽 분량으로, <나는 조꼬만 봉사씨외다>에서 시작해 <해방군이 몰고 온 전쟁>, <망명시대>, <씨알의 힘으로>, <미국과 일본의 본질을 묻다>, <모든 통일은 선이다>, <나는 원래 민족주의자 아니오이까>, <아무 유한도 없소이다> 등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이번에 첨부된 것은 책의 표지뿐이므로, 아래 글은 책의 공개된 목차와 출판사 소개, 정경모가 『한겨레』에 연재했던 회고록 자료, 안병욱의 동시대 서평 등을 종합해 재구성한 요약·평론이다. 따라서 책 전 문장을 직접 대조한 장별 정밀 요약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1. 자서전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이 몸으로 통과한 한국 현대사>

『시대의 불침번』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의 성장담보다 <한국 현대사의 현장을 목격한 한 사람의 증언>에 가깝다는 점이다.

정경모는 192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의학부에서 공부했고, 해방 후 서울대 의대를 다니다 미국 에모리대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장면의 요청으로 도쿄의 맥아더사령부(GHQ)에서 일했으며, 문익환·박형규 등과 교류하고 판문점 휴전회담에서는 통역 업무에 참여했다. 이후 한국 산업계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지만 박정희 체제와 충돌하고 1970년 일본으로 건너가 사실상 장기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따라서 그의 생애는

<일제 식민지 → 해방 → 미군정 → 한국전쟁 → 이승만 정권 → 박정희 개발독재 → 재일 망명 → 민주화운동 → 남북통일운동>

이라는 20세기 한국사의 주요 단계와 거의 정확하게 겹친다.

이것이 이 책의 힘이다. 역사책에서 몇 줄로 읽는 사건들이 정경모에게는 자신의 청춘과 친구, 직업, 국적, 가족, 귀국 가능성을 결정한 현실이었다.


2. 해방은 왜 그에게 곧바로 <분단>의 문제로 변했는가

정경모는 처음부터 반미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1945년 미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했고 미국에서 유학했으며, 유학시절에는 이승만과 프란체스카 여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도움을 받은 경험도 있었다.

그런 사람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게 된 결정적 경험은 해방 이후와 한국전쟁이었다.

특히 휴전회담 현장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조국을 바라본 경험은 그의 일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안병욱은 이 자서전을 평가하면서 정경모가 판문점에서 한반도가 분할되는 현실을 마치 자신의 혈육이 생체해부되는 광경처럼 받아들였다고 지적한다.

이때부터 그의 역사인식의 중심에는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보다 훨씬 근원적인 질문이 자리잡는다.

<도대체 누가 한민족을 둘로 갈랐는가?>

정경모에게 한국 현대사의 원죄는 무엇보다 <분단>이다.


3. 미국과 일본을 하나의 역사적 연속선에서 본다

정경모 역사관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미국과 일본을 별개의 나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와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이 1905년 태프트-가쓰라 관계에서 이미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해석하고, 전후에는 미일동맹이라는 형태로 다시 이어졌다고 본다. 따라서 식민지배가 1945년에 완전히 단절되었다기보다는 미국 중심의 냉전체제 속에서 상당 부분 다른 형태로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의 불침번』뿐 아니라 정경모의 거의 모든 저술을 관통하는 관점이다.

그의 대표작 『찢겨진 산하』도 분단을 단순히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로 설명하지 않고, 친일 문제와 토지개혁, 기존 사회경제적 권력의 보존 문제까지 끌어들여 해석했다.

즉 정경모에게 해방은 완성된 해방이 아니었다.

<일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었으나 민족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는 것이 그의 기본 판단이었다.


4. 일본 망명과 <씨알의 힘>

1970년 이후 정경모의 생애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는 일본에서 안정된 전문직 엘리트로 살아가기보다는 한국의 독재와 분단을 비판하는 문필가가 된다.

『아사히신문』 독자투고에서 시작한 그의 글은 일본 지식인 사회의 주목을 받았고, 『세카이(世界)』 등에도 글을 쓰게 되었다.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에는 김대중 구명운동과 한국 민주화운동에 관여했고, 김지하 석방운동에도 참여했다. 한민통 계열 기관지 활동을 하다가 조직 내부의 갈등으로 물러난 뒤에는 자신의 독립적 활동공간인 <씨알의 힘>을 만들었다. 1981년에는 일본어 잡지 『씨알의 힘』을 창간하여 한국 민주화운동과 일본의 한국 이해를 연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씨알>이라는 말이다.

함석헌의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정경모는 어떤 정당이나 남북 어느 정권에 충성하기보다 자신을 <민족의 한 사람>으로 규정하려 했다. 『씨알의 힘』의 발간 취지에서도 특정 개인이나 정파가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의 조국’을 향한 충성을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정경모에게 망명은 단순히 해외생활이 아니라 <남과 북 어느 국가의 논리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겠다는 정치적 위치>였다.


5. 문익환과 평양 — <모든 통일은 선이다>

자서전 후반부의 절정은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다.

정경모는 문익환·유원호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고, 문익환은 김일성과 회담했으며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장과 4·2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당시 노태우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국내에 강한 공안정국을 불러왔다.

정경모에게 이 방북은 자신의 평생 문제가 행동으로 옮겨진 순간이었다.

<모든 통일은 선이다>

라는 문장이 이 정신을 압축한다. 실제로 이 표현은 남한에서 “그렇다면 적화통일도 선이라는 말인가”라는 강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정경모와 문익환이 강조하려 한 핵심은 북한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라기보다 <분단을 영구화하는 모든 사고에서 벗어나 우선 남북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읽는 편이 더 적절하다.


6. 평론① — 이 책이 가장 뛰어난 곳은 <증언>이다

『시대의 불침번』의 역사적 가치는 대단히 크다.

정경모는 한국 현대사의 중심권력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를 끊임없이 이동했다.

서울 사람이면서 일본 유학생이었고, 한국인이면서 미국 유학생이었고, 미군기관에서 일하면서 미국정책에 비판적이 되었으며, 남한 출신이면서 남한 정부에 의해 귀국하기 어려운 망명자가 되었고, 북한을 방문하면서도 북한 주민이 된 적은 없었다.

바로 이 <경계인의 위치>가 특별한 관찰점을 제공한다.

이승만과의 인연, 미군사령부, 판문점, 일본 지식인 사회, 김대중, 문익환, 김일성 등을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연결할 수 있는 인물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안병욱이 이 책을 단순한 회고록보다 현대사의 생생한 증언으로 높이 평가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7. 평론② — 그러나 <증언자 정경모>와 <역사가 정경모>는 구별해야 한다

이 책의 강점이 동시에 약점이 된다.

정경모는 자신이 목격한 사실을 기록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들을 하나의 거대한 역사해석으로 묶는다.

그 핵심은 대략

<일본 식민주의 →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 한반도 분단 → 남한의 반공체제 → 미일동맹>

이라는 연속성이다.

이 틀은 한국 현대사에서 외세의 영향과 식민지 권력구조의 지속성을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그러나 이것 하나로 한국 현대사를 지나치게 많이 설명하면 문제가 생긴다.

남한 내부 정치세력의 선택, 북한 지도부의 선택, 소련과 중국의 정책, 한국전쟁의 복합적 기원, 남북 각각의 권위주의와 폭력 같은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모의 글은 <정설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강력한 반대편 시각>으로 읽을 때 가장 가치가 높다.


8. 평론③ —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북한에 대한 비판의 비대칭성이다

또 하나 주의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있다.

정경모는 일본 제국주의, 미국의 한반도 정책, 이승만·박정희 체제에 대해서는 매우 날카로운 비판적 언어를 사용한다. 반면 공개된 책 소개와 그의 방북 관련 글에서 나타나는 북한에 대한 태도는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다. 그는 1989년 방북에서 북한 주민들의 민족애와 통일의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시대의 불침번』 전체에 북한 비판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책 전체 원문을 이번 자료에서 확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평론의 관점에서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 남한 권력의 책임을 따지는 것과 같은 강도로 북한의 권력과 책임도 물었는가?>

이 질문에 충분히 답하지 못한다면 정경모의 ‘민족주의적 사관’에는 중요한 맹점이 남는다.


9. <민족>이라는 개념의 힘과 위험

책 제9장의 제목 자체가 <나는 원래 민족주의자 아니오이까>이다.

정경모에게 민족주의는 배타적 우월주의라기보다 <외세에 의해 자신의 운명을 결정당하지 않을 권리>에 가깝다.

이 점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남한의 승리도 북한의 승리도 아니라 분단체제 자체의 극복이었다.

그러나 여기에도 위험이 있다.

<민족>을 지나치게 도덕적인 실체로 만들면 국가 내부의 계급, 개인의 자유, 인권, 정치적 다원성보다 ‘통일’이 더 높은 가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통일은 선이다>라는 표현은 정경모의 사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동시에 그 사상의 위험까지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문장이라 할 수 있다.

통일은 그 방식과 통일 이후의 사회가 어떠한가에 따라 선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 총평 — <기록자로서는 매우 강하고, 역사해석자로서는 논쟁적이다>

『시대의 불침번』을 한 문장으로 평가한다면 이렇다.

<정경모의 삶 자체는 한국 현대사의 귀중한 사료이고, 그의 역사해석은 반드시 검토해야 할 하나의 강력한 문제제기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정경모의 정치적 결론보다 그의 <삶의 일관성>일지도 모른다.

그는 미국 유학까지 한 엘리트였고 권력과 인맥을 활용한다면 훨씬 안락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판단과 타협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 일본에서 수십 년간 망명객으로 살았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귀국을 위해 요구된 ‘자수서’를 거부했다. 그는 결국 2021년 일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황석영이 붙였다는 <시대의 불침번>이라는 이름은 상당히 정확하다. 불침번은 부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 잠들었을 때 깨어서 이상이 없는지를 살피는 사람이다.

정경모 역시 한국 현대사의 주류를 대표한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류의 역사에 질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가장 좋은 독법은 정경모의 모든 판단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왜 이 사람은 해방을 겪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군사령부에서 일하고, 한국전쟁과 휴전회담을 직접 경험한 끝에 이렇게 강한 반미·반분단 민족주의자가 되었는가?>

이 질문을 가지고 읽는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시대의 불침번』은 단순한 통일운동가의 자서전을 넘어 <1945년의 해방이 왜 어떤 한국인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으로 남아 있었는가>를 이해하게 해주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 된다.

그리고 이 책의 핵심적 역설도 보인다.

<정경모는 분단을 거부함으로써 평생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이었다.>

바로 그 역설 때문에 그의 자서전은 한 개인의 성공담보다 훨씬 무거운 한국 현대사의 증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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