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Park Yuha - 지식인의 책임

Park Yuha - 지식인의 책임
 광복절이 지났으니 조용해지려나 기대했더니 이번에는 나에 대한 ’점잖은 ‘비판이... | Facebook


지식인의 책임
광복절이 지났으니 조용해지려나 기대했더니 이번에는 나에 대한 ’점잖은 ‘비판이 페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걸 알았다.
언급해 주신 페친 말씀대로 <대체로 사실상 박유하 선생이 줄곧 펼쳐온 논지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박유하는 틀렸다거나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 비판이라 무시해도 되겠지만,
좋아요 누르고 공유한 사람중에 페친도 몇분 계신데다(페친된 지 오래된 분도 계셔서 더 아쉽다) ,
그런 점잖은 비판이 경박하거나 악의적인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도착하면 이 며칠 내가 받은 혐오행위가 당연한 듯 여겨지며 증폭되기도 하니,
모처럼의 일요일 아침이지만 귀찮음을 물리치고 써 본다.
비판자는 내가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썼는데,
내가 아는 “지식인의 책임”이란
<자신의 글이나 말이 ’지식인의 권위’로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음을 아는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선동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이를,
나는 ’지식인’이라 하지 않는다.
어젯밤 이 글을 모르고 잤는데, 다시 보니 팔로우를 하고 있는 분. 잊어버렸지만 아마 우연히 좋은 글을 보고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쉽다.
이하는 간단한 반론.
———————-
<박유하 선생은 최근 페이스북에 대략 이런 취지의 글을 썼다. 일본은 조선인에게만 불임수술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고, 처음에는 일부 의사들에 의해 법적 근거 없이 행해지던 수술이 1948년 우생보호법을 통해 오히려 합법화되었으며, 이 법은 1990년대까지 존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조선인을 겨냥한 일본인의 폭거’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당시의 우매함,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사고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요약.
<강제불임과 낙태를 단순히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은 이렇게 단순화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야기이다. >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한 게 아니라 그런 구도로 보면 안 된다고 나는 썼다.
<일본이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를 폐지한 것은 무려 1996년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우생보호법에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불임·낙태 관련 조항도 사라지고, 우생학적 조항들 역시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내 글 어디에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있나? 96년에 일본에서 폐지된 걸 내가 모르고 썼겠는가?
내가 표현한 시대적 ”우매함“ 이 바로, 시간이 지나면 문제를 알 수 있다는(혹은 동시대에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쓴 표현이다. 이 10여년 나에 관한 논란처럼.
이렇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하지 않은 ”질문“을 굳이 만들어 던지면서 <그런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우생학과 결합한 세균설은 이 복잡한 질문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전문가“의 폐해라 해야 할까.
그러니까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 글이 말해주고 있는 건 이 분이 나를 모른다는 사실 쁀이다.
내가 탈식민주의/젠더 이론을 사용해 첫 논문을 쓴 건 90년대 초반이고,”우생학적 차별“ 인식 같은 건 그런 이론공부 안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한센병은 오래도록 ‘비문명’의 질병, 유색인종과 열대지역의 질병으로 표상되었다. 그 결과 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위생이고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

내가 구체적으로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을 비판한 논문을 쓴 건 2000년대 초반이고 일본어 책을 낸 건 2007년. 그러니까 무려 20년 가까이 전 일이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소세키를 비판한 책에서다. 한국어판은 2011년에 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시대의 무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에게 무지와 우매함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 전문가의 책임은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뿐 아니라, 그 지식에 대한 반론에도 귀를 기울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과 증거를 외면했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으로 물어야 할 책임이다. >

따라서 이런 식의 오독(나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만든) 에 대해선 시간낭비하셨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하 이어지는 안부호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내 소관이 아니니 생략.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박유하 선생의 글을 단순히 틀렸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에는 분명 역사적 맥락이 있다. 다만 그 표현이 자칫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읽힌다면 문제가 있다.>

이건 나에 대한 비판인가. 그렇게 “읽”은 독자에 대한 비판인가.
나에 대한 비판이라면 틀렸고 독자에 대한 비판이라면 맞다. 이 글 쓰신 분을 포함해서.
결국 내가 “전문가의 역사적 책임” 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한, “비판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결국 비판하고야 마는 ‘고상한‘ 비판을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지만,
그래서 기쁜 듯 이 글을 가져가 다시한번 ”2차 오독“을 통한 가해를 하고 마는 이 시대의 똑똑한 여성판사님의 댓글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지만,
그럼에도 작년 가을에 나에 대한 ’비판‘의 이름으로
온갖 혐오를 쏟았던 정준희나 김동규나 주진오(모두 ‘학자’의 이름을 달고 있다) 보다는 훨씬 나은 글이니,
그래도 시간이 흐른 만큼 나아졌다고,
여전히 낙천적인 나는 희망을 가져 보는 것.
Jaehyung Kim
류영재










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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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를 비판한 게 아니라 제 머릿속에나 있는 박유하라는 허수아비를 열심히 반박하는 꼴>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신 변정수 샘의 글. 긴 글 부담스러우시면 이 글만 읽으셔도 된다.
https://www.facebook.com/share/19aHbgipX8/?mibextid=wwXIfr





Reply

Edited



고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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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hor

한편으로는. 교수님이 유명인사고 두나라 이슈에는
교수님 의견이 반드시 인용될것 같슴다.
교수님의 무게지요.
늘 잘보고 갑니다.





Reply



Park Yu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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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글의 원문.
https://www.facebook.com/share/p/1MBqatk2f9/?mibextid=wwXI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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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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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hor

무한정 시비를 위한 시비론자들..
무시하시고 건너뛰십시요
어차피 그들의 사고체계일뿐이니!





Reply



이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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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hor

다른사람의 글을 비판하지 말고
그냥
자신의 생각을 쓰면 될텐데
누군가의 명성에 기대
비판해야 읽어줄 거라 생각하는 거 같아요.

다른 이의 생각까지
멋대로 판단하면서...
=====


==



변정수's post

변정수

r͏e͏n͏S͏o͏d͏t͏s͏o͏p͏u͏4͏8͏9͏3͏g͏7͏m͏0͏i͏m͏9͏t͏1͏u͏d͏0͏a͏8͏s͏7͏:͏c͏i͏2͏ ͏8͏2͏a͏t͏1͏Y͏m͏1͏e͏3͏e͏t͏0͏2͏4͏ ͏t͏r͏6͏6͏y͏2͏t͏1͏ ·


씁쓸하다...
박유하 선생의 논지를 비판하는 스탠스의 글을 너댓 편쯤 봤다. 생각이 다르면 비판할 수도 있으니 그게 문제는 아니다. 내가 뜨악한 건, 대체로 사실상 박유하 선생이 줄곧 펼쳐온 논지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박유하는 틀렸다거나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둘 중에 하나다. 애당초 박 선생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전혀 모르(혹은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으레 '틀렸거나 한계가 있는' 주장이겠거니 부당하게 전제했다는 뜻이거나.. (아.. 오해 없기를 바란다. 박유하도 틀린 말 할 수 있고 당연히 한계도 있을 터이다. 문제는 그래서 박유하와 뭔가 다른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어라? 이게 박유하가 주장하는 내용인데 싶은 내용을 심지어 매우 준엄하게 나무라는 말투로 펼쳐놓더라는 거다. 박유하를 비판한 게 아니라 제 머릿속에나 있는 박유하라는 허수아비를 열심히 반박하는 꼴이다) 아니면 같은 논지의 주장이라도 내가 해야지 박유하가 하는 건 기분나쁘다는 뜻이거나...... 어느 쪽이든... 참 답답한 일이다. 요컨대 '마녀 사냥'은 끝나지 않았다...
덧) 아닌데.. 확실히 다른 주장을 하면서 비판하던데...? 갸웅뚱스러우신 분들은 그저 서로 접한 글이 다른가부다.. 그냥 지나가시길...

최병현
by author

(박 선생의) 같은 글을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고(?) 삼아..
https://www.facebook.com/share/p/1E6mh61jYA

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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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최병현 이 글도 '너댓 편' 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중 양반(?)에 속하는 글로 사료됩니다... 이보다 더 심한 글들도 있어군요..
==

Jaehyung Kim

e͏o͏d͏S͏p͏n͏r͏t͏o͏s͏g͏7͏t͏9͏ ͏y͏d͏1͏5͏1͏4͏a͏5͏r͏0͏9͏t͏a͏s͏1͏5͏6͏ ͏t͏7͏1͏:͏t͏g͏3͏3͏1͏1͏9͏e͏7͏7͏3͏6͏h͏2͏e͏2͏Y͏i͏5͏a͏u͏9͏u͏ ·

최근 배우 하영의 조부인 안부호의 소록도 경력을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오늘은 우연히 박유하 선생의 글을 봤다.
박유하 선생은 최근 페이스북에 대략 이런 취지의 글을 썼다. 일본은 조선인에게만 불임수술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고, 처음에는 일부 의사들에 의해 법적 근거 없이 행해지던 수술이 1948년 우생보호법을 통해 오히려 합법화되었으며, 이 법은 1990년대까지 존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조선인을 겨냥한 일본인의 폭거’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당시의 우매함,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사고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글의 사실 관계에는 동의하면서도 마지막 주장은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불러일으킬 오해가 있어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 그리고 강제불임과 낙태를 단순히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은 이렇게 단순화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야기이다.
일본이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를 폐지한 것은 무려 1996년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우생보호법에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불임·낙태 관련 조항도 사라지고, 우생학적 조항들 역시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유하 선생이 말하는 문명은 취사선택된 것이고, 그것에 대한 반대는 의도적으로 무시되었고, 그 결과 1996년까지 강제격리와 단종/낙태가 이어졌다고 이해하는 게 맞다.
즉 20세기 초중반에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균이 감염병의 원인이라는 세균설 자체는 당시에도 합리적인 과학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한센병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곧바로 ‘환자를 평생 격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감염력은 어느 정도인지, 치료를 통해 감염 가능성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격리가 환자와 사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판단과 논증이 필요하다.
그런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우생학과 결합한 세균설은 이 복잡한 질문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한센병은 오래도록 ‘비문명’의 질병, 유색인종과 열대지역의 질병으로 표상되었다. 그 결과 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위생이고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한센병과 비슷하지만 치명률을 더 높은 결핵 환자에게는 이러한 격리정책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결핵은 유럽의 백인도 걸리는 감염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비판은 당시에도 존재했다. 국제 한센병학계에서도 격리의 범위와 효과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일본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일본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강력한 격리정책을 장기간 유지했고, 식민지 조선과 해방 이후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식과 제도를 거의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였다. 그들이 생각하는 문명은 취사선택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시대의 무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에게 무지와 우매함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 전문가의 책임은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뿐 아니라, 그 지식에 대한 반론에도 귀를 기울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과 증거를 외면했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으로 물어야 할 책임이다.
안부호의 경우도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내가 본 자료에서 안부호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세균학자이자 병리학자에 가깝다. 실제로 그의 커리어는 그렇게 흘러갔다. 때문에 '평생'이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고, '치료'라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그가 남긴 글 가운데 내가 확인한 것은 대한나학회의 창립과 활동을 회고한 글, 그리고 1960년과 1965년 『대한나학회지』에 발표한 한센병의 병형과 병리에 관한 글 등이다. 그는 대한나학회의 창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록도에서 환자들에게 의학 교육을 실시해 치료 업무에 종사하도록 했던 ‘녹산의학강습소’의 병리학 강사이기도 했다.
이 정도 자료만으로 한 사람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오랫동안 한국 한센병의 역사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보자면, 안부호는 환자의 일상적 치료나 소록도의 행정보다는 한센병균을 어떻게 발견하고, 병형을 어떻게 구분하며, 병리학적으로 질병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둔 기초의학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무과장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소록도의 모든 의료행위, 특히 단종수술에 직접 관여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현재 내가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안부호가 직접 단종수술을 했다고 말할 근거도 없다. 그런 행위가 있었다면 증언이나 자료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더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안부호 개인은 내 연구의 주요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전의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그가 소록도에 있었던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초는 소록도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지속되던 시기였다. 그 상황에 대해 안부호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그것을 비판했는지, 동조했는지 판단할 자료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침묵’을 곧바로 동조의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침묵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그에게 소록도는 어떤 공간이었을까. 어쩌면 그곳은 수많은 한센병 환자가 살아가는 생활공간이기 전에, 한센병 환자와 한센병균을 쉽게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는 거대한 임상적·병리학적 연구 공간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환자의 인권이나 삶의 문제는 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나는 오히려 여기에 한국 한센병사의 중요한 비극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이 환자를 미워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전문가들은 한센병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더 좋은 진단법을 만들고, 균을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하면 언젠가 이 질병을 없앨 수 있다고 믿었다.
나치 독일처럼 환자를 죽여 없애려 했던 우생학적 방식은 아니다. 환자를 격리해 놓고 연구하고 치료하면서 더 나은 의학적 지식을 통해 한센병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바로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한센병 정책은 독일의 우생학과 분명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인간의 사회적 삶을 생물학적 문제로 환원하고, 전문가의 지식을 통해 그 문제를 관리하고 제거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자료를 보면서 느낀 바로는, 한센병을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보려 했던 의사 가운데 매우 드문 사람이 세브란스의 유준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에게 한센병 문제는 먼저 세균의 문제이고, 감염의 문제이며, 치료와 방역의 문제였다. 그래서 한센병의 역사는 생물학적 환원주의가 어떻게 우생학과 결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박유하 선생의 글을 단순히 틀렸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에는 분명 역사적 맥락이 있다. 다만 그 표현이 자칫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읽힌다면 문제가 있다.
당시에도 다른 지식은 존재했다. 다른 선택도 가능했다. 격리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고, 환자의 자유와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전문가도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그때는 다들 몰랐다”가 아니라, 왜 어떤 전문가들은 여러 지식 가운데 특정한 지식만을 선택했고, 왜 다른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는가 하는 것이다.
전문가의 역사적 책임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박유하 선생의 논의에서 아쉬운 것도 이 부분이다. 친일이라는 민족주의적 잣대만으로 안부호를 공격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비판 역시 여전히 ‘일본인인가 조선인인가’, ‘친일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센병의 역사를 그렇게만 보면 더 중요한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한 개인이 얼마나 친일적이었느냐만이 아니다. 식민지와 해방 이후를 관통하면서 의학과 국가가 어떤 인간을 ‘위험한 몸’으로 규정했고, 전문가들은 그 과정에서 어떤 지식을 선택했으며, 그 지식이 환자의 자유와 삶을 파괴할 때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안부호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 역시 결국 그 질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Jo Myeongrae

by author

소록도에서 정관수술 대부분은 자격있는 의사가 아닌 직원과 의강출신 환자들의 보조에 이루어집니다 의사를 직접 볼수있는 시간은 드물었습니다.

Shinho Lee

by author

말씀하신 부분와 과학적태도와 닿아있네요. 우리사회가 과학적 방법론을 과학외에 여러방면에서 널리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Claire Munich

by author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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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선생이 내 글에 반론을 쓴 것을 보았다. 몇 가지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첫째, 나는 박유하 선생이 제국주의나 인종주의, 우생학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쓴 것이 아니다. 과거에 어떤 논문을 썼고 어떤 책에서 무엇을 비판했는지도 내 글의 논점이 아니었다. 내가 문제 삼은 것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 페이스북에 쓴 짧은 글의 설명 방식이었다. 따라서 “나는 예전부터 이런 문제를 알고 있었고 이미 이런 글을 썼다”는 답변은 불필요한 설명이지 않을까 싶다.
둘째, 내 글은 애초부터 박유하 선생의 글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오독의 가능성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나는 박유하 선생이 “당시에는 몰랐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표현이 자칫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읽힌다면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썼다. 많은 이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내 서술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의 짧은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 글을 쓴 사람의 과거 논문과 저서를 모두 알고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역사적 책임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논쟁적인 문제가 벌어지고 있을 때, 단정적으로 압축된 설명은 저자의 의도와 달리 여러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나는 바로 그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다. 공적인 글은 저자의 의도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셋째, 그런 점에서 내 글 전체를 박유하라는 연구자 개인에 대한 평가나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내가 제기한 문제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한 독해라고 생각한다. 내가 비판한 것은 박유하 선생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무엇을 연구했고 이야기했는가가 아니라, 이번 글에서 제시된 설명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내가 알지 못하는 박유하 선생의 과거 연구를 열거하며 “나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 비판”이라고 답하는 것은 논점을 조금 비껴간다.
넷째, 중요한 오해인데, 나는 박유하 선생이 “지식인의 책임”이나 “전문가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쓴 적이 없다. 내가 글에서 말한 ‘전문가의 역사적 책임’은 박유하 선생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 당시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와 불임수술·낙태를 의학적으로 정당화하고 정책으로 만들고 실행했던 의사와 전문가들을 지칭한 것이다. 이 역시 오해를 불렀다면 내 책임이다.
당시 그것이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그렇지 않다면 당시에도 존재했던 반론과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정책을 추진했던 전문가들에게는 어떤 역사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것은 2026년의 박유하 선생에게 역사적 책임을 묻는 이야기가 아니다. 페북의 글로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단죄되어야할까.
마지막으로 내가 “그 비판 역시 여전히 ‘일본인인가 조선인인가’, ‘친일인가 아닌가’라는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쓴 뜻은, 박유하 선생이 이 문제를 단순한 친일·반일의 구도로 보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한 것은 그 반대편의 역설이었다.
‘일본인 대 조선인’, ‘친일 대 반일’이라는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벗어나기 위한 논증이 계속해서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 환자에게도 같은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친일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분석의 기준점은 여전히 그 구도에 놓여 있게 된다.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어떤 이분법을 비판하는 것과 그 이분법 자체를 분석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라는 점이었다. 친일인가 아닌가를 더 정확하게 판정하는 데 머무르기보다, 왜 근대의 국가와 의학이 특정한 사람들의 신체와 재생산을 통제할 수 있었는지, 식민주의·우생학·공중보건·전문가 권력이 그 과정에서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묻는 쪽으로 질문 자체를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글의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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