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지났으니 조용해지려나 기대했더니 이번에는 나에 대한 ’점잖은 ‘비판이... | Facebook
지식인의 책임
광복절이 지났으니 조용해지려나 기대했더니 이번에는 나에 대한 ’점잖은 ‘비판이 페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걸 알았다.
언급해 주신 페친 말씀대로 <대체로 사실상 박유하 선생이 줄곧 펼쳐온 논지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박유하는 틀렸다거나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 비판이라 무시해도 되겠지만,
좋아요 누르고 공유한 사람중에 페친도 몇분 계신데다(페친된 지 오래된 분도 계셔서 더 아쉽다) ,
그런 점잖은 비판이 경박하거나 악의적인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도착하면 이 며칠 내가 받은 혐오행위가 당연한 듯 여겨지며 증폭되기도 하니,
모처럼의 일요일 아침이지만 귀찮음을 물리치고 써 본다.
비판자는 내가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썼는데,
내가 아는 “지식인의 책임”이란
<자신의 글이나 말이 ’지식인의 권위’로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음을 아는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선동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이를,
나는 ’지식인’이라 하지 않는다.
어젯밤 이 글을 모르고 잤는데, 다시 보니 팔로우를 하고 있는 분. 잊어버렸지만 아마 우연히 좋은 글을 보고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쉽다.
이하는 간단한 반론.
———————-
<박유하 선생은 최근 페이스북에 대략 이런 취지의 글을 썼다. 일본은 조선인에게만 불임수술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고, 처음에는 일부 의사들에 의해 법적 근거 없이 행해지던 수술이 1948년 우생보호법을 통해 오히려 합법화되었으며, 이 법은 1990년대까지 존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조선인을 겨냥한 일본인의 폭거’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당시의 우매함,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사고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요약.
<강제불임과 낙태를 단순히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은 이렇게 단순화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야기이다. >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한 게 아니라 그런 구도로 보면 안 된다고 나는 썼다.
<일본이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를 폐지한 것은 무려 1996년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우생보호법에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불임·낙태 관련 조항도 사라지고, 우생학적 조항들 역시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내 글 어디에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있나? 96년에 일본에서 폐지된 걸 내가 모르고 썼겠는가?
내가 표현한 시대적 ”우매함“ 이 바로, 시간이 지나면 문제를 알 수 있다는(혹은 동시대에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쓴 표현이다. 이 10여년 나에 관한 논란처럼.
이렇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하지 않은 ”질문“을 굳이 만들어 던지면서 <그런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우생학과 결합한 세균설은 이 복잡한 질문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전문가“의 폐해라 해야 할까.
그러니까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 글이 말해주고 있는 건 이 분이 나를 모른다는 사실 쁀이다.
내가 탈식민주의/젠더 이론을 사용해 첫 논문을 쓴 건 90년대 초반이고,”우생학적 차별“ 인식 같은 건 그런 이론공부 안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한센병은 오래도록 ‘비문명’의 질병, 유색인종과 열대지역의 질병으로 표상되었다. 그 결과 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위생이고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

내가 구체적으로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을 비판한 논문을 쓴 건 2000년대 초반이고 일본어 책을 낸 건 2007년. 그러니까 무려 20년 가까이 전 일이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소세키를 비판한 책에서다. 한국어판은 2011년에 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시대의 무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에게 무지와 우매함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 전문가의 책임은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뿐 아니라, 그 지식에 대한 반론에도 귀를 기울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과 증거를 외면했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으로 물어야 할 책임이다. >

따라서 이런 식의 오독(나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만든) 에 대해선 시간낭비하셨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하 이어지는 안부호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내 소관이 아니니 생략.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박유하 선생의 글을 단순히 틀렸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에는 분명 역사적 맥락이 있다. 다만 그 표현이 자칫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읽힌다면 문제가 있다.>

이건 나에 대한 비판인가. 그렇게 “읽”은 독자에 대한 비판인가.
나에 대한 비판이라면 틀렸고 독자에 대한 비판이라면 맞다. 이 글 쓰신 분을 포함해서.
결국 내가 “전문가의 역사적 책임” 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한, “비판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결국 비판하고야 마는 ‘고상한‘ 비판을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지만,
그래서 기쁜 듯 이 글을 가져가 다시한번 ”2차 오독“을 통한 가해를 하고 마는 이 시대의 똑똑한 여성판사님의 댓글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지만,
그럼에도 작년 가을에 나에 대한 ’비판‘의 이름으로
온갖 혐오를 쏟았던 정준희나 김동규나 주진오(모두 ‘학자’의 이름을 달고 있다) 보다는 훨씬 나은 글이니,
그래도 시간이 흐른 만큼 나아졌다고,
여전히 낙천적인 나는 희망을 가져 보는 것.
Jaehyung Kim
광복절이 지났으니 조용해지려나 기대했더니 이번에는 나에 대한 ’점잖은 ‘비판이 페북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걸 알았다.
언급해 주신 페친 말씀대로 <대체로 사실상 박유하 선생이 줄곧 펼쳐온 논지와 다를 바 없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박유하는 틀렸다거나 한계가 있다는 식으로 말한> 비판이라 무시해도 되겠지만,
좋아요 누르고 공유한 사람중에 페친도 몇분 계신데다(페친된 지 오래된 분도 계셔서 더 아쉽다) ,
그런 점잖은 비판이 경박하거나 악의적인 언론이나 일반인들에게 도착하면 이 며칠 내가 받은 혐오행위가 당연한 듯 여겨지며 증폭되기도 하니,
모처럼의 일요일 아침이지만 귀찮음을 물리치고 써 본다.
비판자는 내가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썼는데,
내가 아는 “지식인의 책임”이란
<자신의 글이나 말이 ’지식인의 권위’로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음을 아는 일>이다,
물론 처음부터 선동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이를,
나는 ’지식인’이라 하지 않는다.
어젯밤 이 글을 모르고 잤는데, 다시 보니 팔로우를 하고 있는 분. 잊어버렸지만 아마 우연히 좋은 글을 보고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아쉽다.
이하는 간단한 반론.
———————-
<박유하 선생은 최근 페이스북에 대략 이런 취지의 글을 썼다. 일본은 조선인에게만 불임수술을 시행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한센병 환자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고, 처음에는 일부 의사들에 의해 법적 근거 없이 행해지던 수술이 1948년 우생보호법을 통해 오히려 합법화되었으며, 이 법은 1990년대까지 존속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조선인을 겨냥한 일본인의 폭거’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개인의 악의라기보다 당시의 우매함,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졌던 사고가 만들어낸 비극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맞는 요약. <강제불임과 낙태를 단순히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하는 것은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은 이렇게 단순화하기에는 너무나 큰 이야기이다. >

<‘일본인 대 조선인’, 혹은 ‘친일 대 반일’의 구도로 설명>한 게 아니라 그런 구도로 보면 안 된다고 나는 썼다.
<일본이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를 폐지한 것은 무려 1996년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우생보호법에서 한센병 환자에 대한 불임·낙태 관련 조항도 사라지고, 우생학적 조항들 역시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단순히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을까. >
내 글 어디에 ”그 시대에는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있나? 96년에 일본에서 폐지된 걸 내가 모르고 썼겠는가? 내가 표현한 시대적 ”우매함“ 이 바로, 시간이 지나면 문제를 알 수 있다는(혹은 동시대에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쓴 표현이다. 이 10여년 나에 관한 논란처럼.
이렇게 너무 당연해서 내가 하지 않은 ”질문“을 굳이 만들어 던지면서 <그런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우생학과 결합한 세균설은 이 복잡한 질문을 건너뛰게 만들었다. >고 주장한다.
전형적인 ”전문가“의 폐해라 해야 할까.
그러니까 내가 그런 사실을 모른다는 걸 전제로 한 ”질문“일 수 있는데 이 글이 말해주고 있는 건 이 분이 나를 모른다는 사실 쁀이다.
내가 탈식민주의/젠더 이론을 사용해 첫 논문을 쓴 건 90년대 초반이고,”우생학적 차별“ 인식 같은 건 그런 이론공부 안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한센병은 오래도록 ‘비문명’의 질병, 유색인종과 열대지역의 질병으로 표상되었다. 그 결과 환자를 사회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위생이고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이 강력한 힘을 갖게 되었다. >

내가 구체적으로 “문명이며 근대화라는 믿음”을 비판한 논문을 쓴 건 2000년대 초반이고 일본어 책을 낸 건 2007년. 그러니까 무려 20년 가까이 전 일이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소세키를 비판한 책에서다. 한국어판은 2011년에 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시대의 무지’만으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문가에게 무지와 우매함은 충분한 답이 될 수 없다. 전문가의 책임은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뿐 아니라, 그 지식에 대한 반론에도 귀를 기울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책과 지식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을 줄 수 있다는 다른 전문가들의 주장과 증거를 외면했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으로 물어야 할 책임이다. >

따라서 이런 식의 오독(나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만든) 에 대해선 시간낭비하셨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하 이어지는 안부호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내 소관이 아니니 생략.
<이런 맥락에서 나는 박유하 선생의 글을 단순히 틀렸다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에는 문명적이고 합리적인 조치로 여겨졌다’는 말에는 분명 역사적 맥락이 있다. 다만 그 표현이 자칫 “당시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읽힌다면 문제가 있다.>

이건 나에 대한 비판인가. 그렇게 “읽”은 독자에 대한 비판인가.
나에 대한 비판이라면 틀렸고 독자에 대한 비판이라면 맞다. 이 글 쓰신 분을 포함해서.
결국 내가 “전문가의 역사적 책임” 을 다하지 않은 것처럼 주장한, “비판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결국 비판하고야 마는 ‘고상한‘ 비판을 보면서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지만,
그래서 기쁜 듯 이 글을 가져가 다시한번 ”2차 오독“을 통한 가해를 하고 마는 이 시대의 똑똑한 여성판사님의 댓글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지만,
그럼에도 작년 가을에 나에 대한 ’비판‘의 이름으로
온갖 혐오를 쏟았던 정준희나 김동규나 주진오(모두 ‘학자’의 이름을 달고 있다) 보다는 훨씬 나은 글이니,
그래도 시간이 흐른 만큼 나아졌다고,
여전히 낙천적인 나는 희망을 가져 보는 것.
Jaehyu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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