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못난 개항 -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
문소영 (지은이)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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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876년 개항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34년간의 조선은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좌충우돌했다. 망국을 향해 폭주하는 조선이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들은 마차를 끌던 마부라 기차를 어떻게 움직여가야 할지 몰랐다. 마부 수준의 기관사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을 압박하는 중국.일본.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이 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과 일본의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을 시작했지만, 하급무사와 지식인이 결합해 구체제를 해체하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조선은 개항 이후 34년간 허송세월을 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저자는 조선이 개항기에 허송세월을 한 이유와 원인을 낱낱이 규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조선의 개항과 일본 개항의 차이를 밝히고, 나아가 조선은 국가개조에 왜 실패했고 일본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흥선군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나
최익현의 상소와 무위로 돌아간 흥선대원군의 개혁들
1차 아편전쟁에 위기를 감지한 일본, 허송세월한 조선
요시다 쇼인과 문하생들 VS. 박규수와 사랑방 손님들
조선과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 세계를 보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은 누구의 책임일까
외세를 등에 업은 고종과 고메이 천황의 저항
일본의 하급무사와 조선의 유림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한 일본 VS. 무능한 주류가 존속한 조선
김옥균은 왜 사카모토 료마가 되지 못했나
이완용은 왜 이토 히로부미가 되지 못했나
일본과 조선 개혁의 문화적·경제적 차이
글을 마치며 | 참고문헌
책속에서
P. 20 당대 지식인들의 고종에 대한 혹독한 평가와 달리,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덕수궁 앞에 수천 명의 백성들이 몰려와 곡을 했다. 고종이 독살당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더 격분한 이 백성들은 일제에게 나라를 넘겨주고도 9년이나 더 살았던 군왕의 부재가 그렇게 슬프고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왕은 ‘백성의 아버지’라는 유교적 관념의 영향으로 무능한 왕이더라도 살아서 여전히 백성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든든하고 믿음직했던 것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고종이 죽자 못난 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백성들은 1919년 3월 1일 기미년 만세운동으로 결집했다. 고종은 죽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던 역설을 남긴 것이 아닐까. _ 20쪽, <흥선군은 왜 스스로 왕이 되지 않았나> 중에서 접기
P. 63 결국 제1차 아편전쟁에서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 조선은 2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필요성이 라는 것이 급박한 위기라기보다는 반석처럼 딛고 서 있던 중화주의적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고 감지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조선 대외정책의 진정한 변화는 제2차 아편전쟁이 끝나고, 다시 20년이 흐른 1882년 《조선책략》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_ 63쪽, <1차 아편전쟁에 위기를 감지한 일본, 허송세월한 조선> 중에서 접기
P. 113 우리에게는 독자적으로 ‘조선의 길’을 제시해줄 만한 조선의 사상가가 부재했다. 개화의 필요성을 지식층인 양반과 선비들이 받아들이고, 선비와 양반들의 각성이 백성들에게 스며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이 만약 후쿠자와 유키치처럼 유럽과 미국을 주유했더라면, 최소한 1847년에 예정대로 중국에 사신으로 라도 다녀왔더라면, 그의 대외정책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_ 113쪽, <조선과 일본의 젊은 지식인들, 세계를 보다> 중에서 접기
P. 120 개항기인 19세기 중엽부터 따져볼 때 조선 식민지화에 누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물어보면 책임자로 고종을 지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고종을 그 나름대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야욕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이고,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이 되기 위해 외교적인 수완을 발휘한 훌륭한 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적지 않다. 고종에게 감히 ‘식민의 책임’을 어떻게 지우냐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국왕으로서 권리를 누리던 사람이 망국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맞는 거 아닐까?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고종에게 책임을 묻는 데 주저하는 것일까. _ 120쪽,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은 누구의 책임일까> 중에서 접기
P. 171-173 막부와 존왕양이파의 충돌이 격화되는 시기에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를 돌아다니며 세계의 정치 지형을 이해하기 시작한 하급무사들이 나타났다. 하급무사들 사이에서 ‘서양 따라잡기’ 식의 인식의 전환이 일어난 것은 후쿠자와 유키치처럼 1860년부터 외국을 돌아본 인재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중략) 100번 들어도 한 번 본 것만 못하다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격언처럼 이들의 눈으로 목격한 서양의 발전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쇄국을 강조한 존왕양이론에서 개화론?개국론으로 사고를 전환했다. _ 171~73쪽, <일본의 하급무사와 조선의 유림> 중에서 접기
P. 209 다 부질없는 짓이지만, 고종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하지 말고, 동학농민운동의 교조신원운동을 받아준다든지, 탐관오리의 학정을 척결하고 내정개혁에 매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500년 동안 가장 많은 수탈을 받아왔던 농민들이 주체가 돼서 조선의 개화가 진행되지 않았을까? 고종이 이들이 주장했던 ‘폐정개혁’에 손을 들어줬다면 동학농민군은 고종과 조선을 지키는 튼튼한 세력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여기에 김옥균이나 유길준, 윤치호, 서재필, 이승만 등 일본과 서양의 개화문명을 경험하고 학식이 있는 인재들의 방향성이 결합됐더라면 새로운 세계의 출구가 열렸을 텐데 말이다. _ 209쪽, <비주류가 주류를 전복한 일본 VS. 무능한 주류가 존속한 조선> 중에서 접기
P. 231 왕을 중심에 놓고 개혁을 추진하려는 김옥균의 노력은 실패했다. 김옥균의 실패는 고종만 바라보고, 고종의 결단으로 대부분이 결정되는 왕조국가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고종이 변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계산에 넣지 못했고, 힘으로 밀어붙일 만한 독자적인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개혁당이라고는 하나 김옥균과 그를 따르는 세력은 권력 내부의 소수에 불과했다. 개화를 믿고 실행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부재했던 것은 시대적인 한계였다. _ 231쪽, <김옥균은 왜 사카모토 료마가 되지 못했나>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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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문소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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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이면 자전거로 국경을 넘어 여행하는 유럽의 대학생을 부러워하던 20대에는 젊음을 희생하고 맹렬하게 살면 20년 뒤쯤엔 세상이 바뀔 줄 알았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나의 생각도 변하지 않았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조선사와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에서 22년째 기자로 일한다. 국회 여당반장과 청와대 출입기자, 금융팀장으로 일했고 현재 문화부 학술·문화재 담당이다. 2005년 미국 듀크대학 아시아안보연구프로그램(PASS)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2010년 조선과 일본의 16~18세기를 비교한 대중역사서 《못난 조선》을 저술했다. 접기
최근작 : <못난 조선>,<조선의 못난 개항>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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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우리가 배운 백제는 가짜다>,<사람은 어떻게 처신하는가>,<조선 지식인이 세상을 여행하는 법>등 총 25종
대표분야 : 역사 19위 (브랜드 지수 122,37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이 책은
격동의 시기, 조선과 일본의 개항 풍경을 비교하다
1876년 개항하여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기까지 34년간의 조선은 어수선하고 무질서하게 움직이며 좌충우돌했다. 망국을 향해 폭주하는 조선이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들은 마차를 끌던 마부라 기차를 어떻게 움직여가야 할지 몰랐다. 마부 수준의 기관사들은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워 조선을 압박하는 중국·일본·러시아를 ‘활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고 혈안이었다. 그러다보니 기차는 더욱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과 일본의 역사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을 시작했지만, 하급무사와 지식인이 결합해 구체제를 해체하고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면서 단숨에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조선은 개항 이후 34년간 허송세월을 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저자는 조선이 개항기에 허송세월을 한 이유와 원인을 낱낱이 규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조선의 개항과 일본 개항의 차이를 밝히고, 나아가 조선은 국가개조에 왜 실패했고 일본은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비교 분석한다.
▶ 출판사 서평
지도력의 차이가 개항기 조선과 일본의 명암을 가르다
1876년 개항 이후 조선은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갑오개혁 등 대내외적 혼란과 무질서 속에 좌충우돌했다. 조선이란 기차를 자국에 유리하게 몰고 가기 위해 일본과 청나라가 전쟁으로 충돌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임오군란 이후 조선에 군대를 상주시키고 간섭의 수위를 높여가던 종주국 청나라를 몰아냈는데도 러시아·프랑스ㆍ독일의 삼국간섭으로 조선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자 1895년 경복궁에 난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853년 개항한 일본은 1867년에 도쿠가와 막부가 천황에게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한 대정봉환을 시작으로 판적봉환, 폐번치현, 폐도령과 질록처분 등의 봉건질서 해체 과정을 거쳐 기득권층인 무사들의 몰락, 1885년 내각제로 전환, 1889년 메이지 헌법 공포와 시행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개항 37년 만에 국체를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누군가의 기득권을 빼앗아오는 일은 쉽지 않아, 일본도 개항 이후 40년은 극심한 내부 혼란을 겪었다. 막부파와 존왕양이파의 갈등이 심해 암살이 빈번했고, 메이지 천황의 왕정복고가 선언된 직후 메이지 정권과 막부 사이의 보신전쟁, 무사들의 칼 착용을 금지하는 폐도령에 반발한 게이신토의 난, 개화론자들 간의 갈등으로 인한 세이난 전쟁 등의 내란 발생으로 인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겪는다.
개항기에 극심한 내부적 혼란과 사회적 동요를 겪은 것은 같지만 개항의 결과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과 동북아의 강국 부상한 일본으로 명암이 극명하게 갈렸다. 일본은 어떻게 내부의 갈등과 혼란을 뚫고 개혁성과를 내게 된 것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어떻게 국민의 역량을 통합해서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내느냐의 문제, 즉 지도력의 차이에서 찾는다. 일본은 대체 어떤 지도력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또 지도력을 가진 인재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그런 인재들은 조선의 인재와 어떤 차별성이 있었을까? 그리고 수백 년 동안 누적된 사회·경제·문화적인 기반과 환경은 어떻게 인재를 성장시키고 지도력의 차이를 가져왔을까?
개화기 조선에는 일본 하급무사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개화파가 없었다
일본의 개화에는 하급무사 출신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구체제 해체의 주체로 지식인과 결합하여 무혈혁명으로 메이지 유신에 성공하여 메이지 신정부를 40여 년간 운영한 하급무사들은 정치참여를 금지한 막부의 오랜 관행을 깨고 나왔고, 서양 오랑캐를 물리쳐야 한다는 양이론의 세계관도 깨고 나왔다. 그리고 역시 하급무사 출신인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지식인들이 내놓은 개화사상과 만나 중세적 질서의 일본을 근대적 국가로 변화시켰다. 끊임없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자신의 한계를 깨고 나온 것이다. ‘메이지 유신’의 설계자라 불리는 사카모토 료마도, 안중근의 손에 죽은 이토 히로부미도 하급무사 출신이다.
고종은 1863년에 즉위해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이 빌미가 돼 퇴위하기 전까지 43년이나 조선을 통치했다. 똑똑한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회수한 스물한 살의 고종이 과연 국정을 잘 운영했는가? 친정체제로 돌아선 고종이 한 일은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펼친 국내 개혁정책을 모두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개혁의 전면 부인이었다. 고종은 시기에 따라 친일파, 때론 친청파, 때론 친미파, 때론 친러파 대신들과 함께 행보했다. 개화적인 군주였다가 보수적 군주였고, 다시 개화적으로 변신했다가 또 다시 보수화됐다. 정책적 방향을 바꿀 때마다 그전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을 인재들의 씨를 말리곤 했다.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자 박영효의 형인 박영교와 홍영식은 바로 살해됐고, 고종은 일본에 망명한 김옥균?박영효?서광범 등에게는 대역부도죄인으로 능지처사를 선고했다. 갑신정변의 실패로 당시 한성에서 개화에 관심이 있었던 주요 인물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위 직후부터 1873년까지 대원군 집권 시절을 빼도 33년의 길고 긴 세월 동안 집권한 고종이 그 시기를 현명하게 통치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온 힘을 쏟았더라면 상황은 다소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일제 식민지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도 있었다. 식민지 시절이 짧았더라면 조선의 지식인들이 훼절하고 부역하는 일도 적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세월 동안 대체 고종은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 그리고 그를 둘러싼 조선의 인재들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하는 안타까움을 담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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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의 통찰력을 능가하는 기자의 시선으로 개항기 조선의 선택을 역사가들의 수평적 시선과는 다르게 대국굴기와 같은 수직적 시선으로 뚜렷하게 분석해내고 있다.
syjiclinic 2013-03-2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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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미화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결국 잘못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언론에서 보도하는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가 어쩐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여기 열불나지만 한편으론 속이 시원한 진짜 역사가 있다.
mizuaki 2013-12-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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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조선 보다 짧은 시기를 다뤄 딸리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싱그럽다. 뒷 힘이 달리는 건 우리가 채워야 할 몫이다. 충분히 음미해 볼 만 프레임을 담고 있다.
눈너머 살림살이 2017-11-01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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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못난 개항- 조선 양반들의 리더십의 부재와 타이밍의 실패
조선의 못난 개항- 조선 양반들의 리더십의 부재와 타이밍의 실수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고 싶은 우리 역사, 한 발자국만 일본을 앞서 갔더라면 하는 안타까운 역사, 제대로 개혁에 성공했더라면 지금 일본과 우리의 처지는 달라졌을 텐데 하는 미련과 아쉬움을 남기는 역사는 과연 무엇일까?
처음 이 책을 받아든 날, 나는 평소에 읽고 싶은 책이어서 무척 기뻤다.
평소 마음속에 느끼던 궁금한 것들을 속 시원히 풀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개인적으로 한국역사에 있어서 가장 아쉬운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바로 개항 전후부터 시작해서 일제 식민지 시대까지였다.
대구에 있는 근대 문화골목길 투어를 가다보면 청라언덕, 3.1만세 문화 운동 길과 이상화고택, 서상돈고택, 근대문화체험관을 구경하게 된다. 근대문화유산을 둘러보다가 가슴 아픈 역사의 장면들을 사진으로, 비석으로, 건물로 맞닥뜨리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온다. 동학혁명과 천도교의 이야기를 담은 <여울물소리>, 정약용 형제와 천주교의 박해를 담은 <흑산>, 윤동주이야기를 담은 <별을 스치는 바람>, 김소월 이야기를 담은 <소월의 딸들> 등의 그 시절에 관련된 역사나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최근에 혁신과 관련된 경제 경영서적을 여러 권 읽으면서 눈앞에 아른거리던 생각도 130여 년 전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개혁의 시기가 제대로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그 시절은 바로 나의 할머니의 할머니가 사시던 시대여서 그 분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니 더욱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과거에 대한 미련을 갖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하지만 E. H Carr 의 말처럼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요, 오늘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이며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창이다. 그러므로 아쉬웠던 우리의 역사를 부지런히 재조명해서 현재와 미래에는 그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그 시절을 자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한 발 더 전진하고 싶은 마음이 하늘같다. 그러하기에 잠시 시간여행을 해보면서 우리 민족의 삶의 뿌리를 더욱 튼튼히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자인 문소영은 역사학자가 아닌 기자이다. 기자로서의 예리한 눈과 통찰력으로 조선개항 시점의 역사를 집요하게 연구하여 분석해 놓았다. 이 책의 부재처럼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 에 대한 이리도 깊이 있는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다. 그 시절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남다름을 느끼게 된다.
고종이 즉위한 1863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는 47년 동안 조선이 이것만 일찍 했더라면 하는 것이 개항과 개화의 시기이다. 일본보다 한 발 앞섰더라면 그 당시 정치가들에게 미래세계의 판도가 읽혀졌을 것이고 그런 선견지명으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오랫동안 민족 전체가 고통의 세월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라의 규모나 인구, 지리적 위치 등이 비슷했던 두 나라 한국과 일본.
조선과 일본의 역사는 130 여 년 전의 개항, 개국을 시점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간격이 벌어지면서 21세기 한국과 일본의 정치 경제에까지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말처럼, 누군가는 꾸준히 현미경을 들이대고 관찰해야 할 과거가 바로 개항과 개화기라는데 깊은 동감이다. 도대체 일본의 성공요인은 무엇이고 조선의 실패요인은 무엇인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조선보다 23년 일찍 개항한 일본은 당시의 막부 통치권이 천황에게 이양되면서 내각제와 천황체제를 공고히 한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게 된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의 잇따른 승리로 조선에 대한 우선권을 영국, 미국, 러시아로부터 각각 부여 받게 되면서 아시아에서의 위치가 점점 강력해진다. 중국의 제 1차 아편전쟁 때 일본은 위기감을 느낀 반면, 조선은 18년 뒤 제 2차 아편전쟁 때에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일찌감치 시작된 네덜란드 무역상들과의 교류는 일본에게 서양문물과 세계흐름에 대한 정보통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본은 외부 정보에 민감하게 되고 국제사회질서에 적응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일본이 유럽 열강만큼 눈부시게 발전한 시기는 1905년 전후이고 조선은 점차 합방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간다.
일본의 하급무사들이 혁명을 통해 부단히 변화를 이끌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킬 때 조선의 양반들은 주자학을 고수하고 명나라를 사대할 것이냐 청나라를 사대할 것이냐로 다투며 외부의 변화는 오랑캐의 일이라고 무시하곤 했다. 일본이 서양의 근대화 문물과 산업시설을 발 빠르게 받아들이고 부국강병을 꾀하는 사이에 조선은 사회적 혼란과 가난 속으로 백성들을 몰아넣었다.
일본이 유럽과 미국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유학 보내거나 선진 문물을 견학할 때 조선은 기껏 일본과 청에 수십 명의 유람단이나 사절단을 보내는 데 그쳤다.
일본은 개혁의 필요성이 전 지식층과 서민들에게 발 빠르게 확산되어 책출판과 독서인구의 확대로 이어졌고 반면에 조선은 일부 북학파와 실학자들이 개화의 필요를 느꼈지만 실학자들이나 역관들은 정치적 세력이 아니었기에 정책으로 연결되지도 못했고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변혁을 일으키려면 수많은 지식인들이 필요하고 그들에 의한 학문과 사상의 저변확대가 필요하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1866년에 쓴 <서양사정>이 당시 25만부 팔렸고 <학문의 자유>는 370만 부 이상 팔렸다. 그 외에도 <만국공법>, <문명론의 개략>, <유럽문명사>, <영국 문명사 >, <만국신사 >등의 책이 출판되어 지식층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보다 20년 뒤에야 <만국공법> 이 소개되었지만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최초의 유학생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도 1889년에 완성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근대를 받아들이는 일본 지식층과 일반 시민들의 분위기가 조선과는 판이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외국서적을 빠르게 번역해서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지금도 300만 부 이상이 팔려 나간 책으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정도라고 한다.
처음 시작은 외세에 의한 강제적인 개방 개항이었지만 점차 위기감을 느끼고 자율적으로 개혁 개방을 펼쳐 나간 일본이다.
일본은 1853년 미국 페리함대에 의해 강제 개항 되고 개항에 적응해가며 구체제를 해체해 가는 과정들이 광범위하게 전개된다. 구체제 해체의 주체는 하급무사와 지식인들이고 이들을 성공적인 메이지 유신의 완성은 조선과의 차이를 더욱 벌려 놓는다. 반면 조선의 경우는 어떠한가. 대원군은 호포제 실시, 서원철폐, 비변사 폐지 등의 개혁을 실시하기도 하고 개화파들은 갑신정변을 시도해 보지만 큰 성과 없이 단발에 그치고 만다. 그 이후로 우리는 외세에 침략과 간섭에 두 손, 두 발 들고 당하게 되고 급기야 개항한 30년 뒤에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 당시에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무엇일까?
만약 기술학을 우대했더라면, 주자학 이외의 다른 학문에 대한 열린 입장이었다면, 동학혁명이나 천주교의 전래를 적극 받아 들였다면……. 우리의 지방 선비들이 근대적 의식을 좀 더 일찍 깨치고 백성들을 계몽했더라면…….흥선 대원군이나 고종에게 강력하고 현실적인 리더십이 있었더라면 ……. 개방의 타이밍이 20년만 앞섰더라면……. 모든 것이 아쉬울 뿐이다.
지금은 지식정보화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받아들이는 개방과 속도의 시대. 그 당시나 지금이나 턱없이 부족한 독서인구도 걱정스럽고 평화상 이외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없다는 사실도 걱정스럽고 개방과 속도면 에서도 솔직히 우려스럽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부터라도 많은 고민들을 해 봐야 겠다.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욕을 먹더라도 의욕을 부린 기자에게 나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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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3-04-05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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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비틀어보고 뒤집어봐야 묘미가 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고 하지만 가정하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역사를 들여다보면 역사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극대화 된다. 몰입할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다.
역사는 조금은 비틀어보고 거꾸로보고 뒤집어 보아야 내가 역사의 주인이 되고 이야기속에 빠져들수 있다. 국가의 입장에서 국가가 기록해둔 그대로를 주입하는 역사는 이제 역사로서의 의미도 없고 읽고 외워야할 이유도 없다.
결과에서 부터 역으로 그 과정이 왜 그렇게 되었으며 그렇게 될수 밖에 없었는지….
만약 A를 B가 대신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가정을 하면서 들여다 보게 되면 그 속에 매료되고 빠지게 된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주면서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할수 있는게 바로 비틀어보고, 뒤집어보고, 거꾸로 보는 역사의 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선의 못난 개항”은 제목부터가 관심을 집중시킨다.
작가가 외국인도 아닌데 이렇게 도발적인 제목을 쓸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시작하는 글에서 작가의 마지막 말이 그 자신감을 대신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는 동안 엄마의 부재를 견딘 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책을 쓰면서 자료를 찾고 참고 서적을 뒤지느라 집중하면서 엄마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미안함을 글로서 대신한 것이다. 집중해서 연구하고 비교해서 분석하고 글을 썼다는 증거이다. 많은 참고 문헌들이 그걸 뒷받침해 주기도한다.
지금까지 그저 나열식의 역사를 보아왔던 우리에게 비판의식을 심어주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직접 들어가서 역사를 들여다보게 해줄수 있는 계기가 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했었다.
이 책
“조선의 못난 개항은” 비슷한 시기에 개항을 했으면서도 개항에 성공한 일본과 개항에 실패한 조선을 흥선대원군의 개혁, 조선과 일본 젊은 지식인들을 비교하고 김옥균과 이완용을 사카모토 료마와 이토 히로부미와 비교하는 구체적 사례를 들어가면서 비교.분석해주었다.
그저 집어주는 암기식 역사가 아닌 깊이있게 분석해서 스스로 과제를 만들어가는 역사 공부를 할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역사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 역사에 관심을 갖게 할수 있는 계기를 불러 일으키게 할수 있는 책이다.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들에게는 차별화된 비교를 할수 있게 해주는 책이며 지식인들에겐 역사의 깊이를 깨우쳐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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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지기 2013-04-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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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저자의 <조선의 못난 개항: 일본은 어떻게 개항에 성공했고 조선은 왜 실패했나>(2013)에 대한 요약 및 평론이다.
<조선의 못난 개항> 요약 및 평론
1. 책 개요 및 핵심 요약
문소영의 <조선의 못난 개항>은 1876년 강화도 조약부터 1910년 국권 피탈에 이르기까지 34년간 조선과 일본이 걸어간 결정적 분기점을 정밀하게 비교한 대중 역사서이다. 전작 <못난 조선>이 16~18세기에 축적된 양국의 구조적 격차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19세기 말 서구 제국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 두 나라 지도층과 지식인들이 보여준 대응의 차이를 현미경처럼 파헤친다. 저자는 조선의 몰락이 단순히 일제의 침략이라는 외인에 의해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근대 국가로의 전환 과정에서 지도층이 보여준 무지와 무능,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폐쇄성 때문이었음을 다각도로 입증한다.
주요 내용 분석
지도층의 세계관과 정보 흡수력의 격차: 일본은 1840년 제1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사건을 목도하고 큰 충격을 받아 서양 정세를 적극 파악하고 대비했다.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 등에서 배출된 하급 무사와 지식인들은 서구 문물을 직접 체험한 후 존왕양이론에서 문명개화론으로 신속히 선회했다. 반면 조선은 아편전쟁의 경고를 방치하고 위정척사파의 명분론에 갇혔으며, 박규수의 사랑방을 중심으로 개화 사상이 싹텄으나 이를 국가적 정책으로 승화시킬 동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국왕의 역할과 근대적 개혁의 한계: 저자는 최근 학계 일각에서 시도되는 고종에 대한 과도한 재평가(대한제국을 통한 근대화 추진 및 자주적 군주상)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고종과 조정은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권력 유지에 급급했고, 왕권을 제약하려는 개화파의 제도적 개혁안을 수용하지 않은 채 스스로 개혁의 걸림돌이 되었다. 왕권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 러시아, 미국 등 외세를 끊임없이 끌어들임으로써 한반도가 열강의 격전지가 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아래로부터의 역량과 지식인의 폐쇄성: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혁명, 갑오개혁 등 위와 아래로부터의 개혁 기회가 여러 차례 존재했으나 지배층의 신분적 질서집착과 배타성으로 인해 민중적 에너지는 결합되지 못했다.
지식인들은 민중 운동을 통제하거나 배척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동학군과 같은 민중 역량을 수용하여 부국강병의 주체로 삼을 사상적 무장이 결여되어 있었다. 개혁 주체의 부재와 허송세월: 메이지 유신을 통해 구체제를 해체하고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를 설립한 일본과 달리, 조선의 지도층은 <마차를 끌던 마부가 기차를 운전하는 격>으로 정세를 오판하며 34년의 골든타임을 허송세월했다. 세력 간의 진영 싸움과 세도정치, 외세 의존적 태도가 지속되면서 조선이라는 국가 체제는 자멸의 길로 치달았다.
2. 평론: 개항기 역사의 냉철한 직시와 현대적 시사점
<조선의 못난 개항>은 근대 이행기의 역사적 실패를 감상주의나 피해자 서사로 포장하지 않고, 지도층의 실책과 체제적 결함을 철저히 파헤친 냉정한 분석서이다. 조선의 몰락을 일제의 간교함이나 외세의 강압으로만 설명하려는 기존의 관성적 시각에 경종을 울린다.
장점 및 가치
첫째, 역사적 주체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이다.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닌 언론인의 관점에서 고종과 당시 위정자들의 정치적 판단 미스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국왕과 지배층이 권력 보존을 위해 국가의 자주권을 외세에 의탁했던 실책을 명확히 지적함으로써, 위기 상황에서 리더십의 무능이 불러오는 비극을 일깨운다.
둘째, 입체적인 한일 비교 분석이다. 동일한 외세의 압력이라는 충격파 속에서 일본의 하급 무사층과 조선의 사대부 세력이 왜 다른 선택을 했는지, 정보의 유통 방식과 사상적 융통성이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갈랐는지를 입체적으로 선명하게 비교해 보여준다.
셋째, 식민사관 극복의 새로운 시각 제공이다. 저자의 자국 역사 비판은 일제 강점기를 정당화하는 식민사관과 엄연히 구분된다. 외세의 침략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을 허용한 내부의 허약함과 체제적 수동성을 철저히 반성함으로써 미래를 향한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한계 및 보완점
다만 책의 논지가 조선 지배층의 무능과 한계에 강하게 집중되어 있다 보니, 당시 제국주의 열강이 동아시아 전체에 가했던 치밀하고 압도적인 침략적 의도와 무력적 위협의 크기를 다소 약화시켜 평가할 여지가 있다. 또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근대 국가를 형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개화파 지식인들이나 민중의 자발적 개혁 노력이 '결과론적 실패'라는 틀 아래 지나치게 희화화되거나 폄하될 위험도 존재한다.
총평
<조선의 못난 개항>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제를 가장 통렬하게 입증하는 책이다. 19세기 말의 격변기 속에서 조선이 보여준 착오와 안이함은 오늘날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 사이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현실에도 유효한 경고를 건넨다. 감정적 반일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내부의 실력과 통찰력을 키우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강렬한 지적 경각심을 주는 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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