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2 을미사변Ⅱ

을미사변Ⅱ[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2회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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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함재봉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이어서 을미 [음악] 사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번에는 어 을미 사변의 국제정치적
[음악] 국내정치적 상황 어 맥락 이런 거를 어 말씀을 드렸고 가보
경장이 [음악] 실패하는 과정 어 그리고 일본의 세력이 조선에서 점점
약화되는 과정 민비를 필도로 한 민시 촉적 세력이 다시 어 세력을 잡아가는
상황 그 상황에서 일본의 [음악] 영향력이 이제 상실되어 가는 상황
거기까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음악] 그때 이제 미우라고라는 새로운 공사가 어 주조선 일본 공사가
부임을 하게 되고이 공사가 바로 을미 사변을 일으키는 주법이 됩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미우라고 주조선 전권 공사에 명된 것은 1896년
7월 19일입니다. 사실 미우라는 공사에 임명되니까 계속해서
고사합니다. 어 자기는 외교는 문회 아니고 프랑스 공사에 임명된 적은
있었지만 자기가 고사에서 안 갔었다. 이제 이렇게 어 얘기를 합니다. 실제로 미우라는 조선 공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우라는 그 이또 히로부미
야마가다리또모 또 기도다요씨 이런 사람들과 같이 같은 조수
[음악] 어 번의 어 출신이었습니다. 메이지 [음악] 유신 정권의 핵심 어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음악] 사실은 재밌는게 미우라 본인은
조슈하고 사스마의 동맹 메이지 유신을 결국 성공으로 이끄는 그 사초 동맹을
끝까지 반대했었다는 겁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그야말로 보수 반동적인 사무라이들 그 전통적 세계의 [음악]
그 향수를 느끼고 어 그거를 고수하려고 했던 아주 극단적인 [음악]
어 고수주의자였다라는 걸 우리가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 지금 근데 개혁을
추진해야 되는 조선에서 특히 갑보 경장이라는 것을 그래도 명맥을
이어가야 되는 어떻게든지 조선 내정 개혁을 해야 되는 그런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보내기에는 굉장히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었습니다. 복잡한 국제
정세가 어떻게 되고 러시아를 읽을 줄 알고 영국을 읽을 줄 알고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소양과 성격과 이런 것이 전혀 자질도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런게 전혀 없다는 걸 알고서 실제로 부임하기 전에 자기가 조선의
공사로 부임하는 것은 컴파스도 없고 별도 안 보이는 밤 깜깜한
밤에 망대를 항해한 것 같은 거다라고 자신은 전혀 적합하지 않은 거듭
얘기를 합니다. 그 미우라를 적극 추천한 사람은 단이 다데기 단위
간조라고도 하는 유명한 그 정치인데 어 사건모또 료마 같은 사람들과 같은
도사번 출신 조수하고 사스막 출신 아니지만 역시 [음악] 메이지 유신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던 원 출신이고
특히 이제 야마가 아리 또모를 도와 가지고 일본 근대 군을 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어 사람입니다.이 이 사람이 이우라를 적극 추천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또가
그 추천을 받아들여서 조선공사에 어 임명을 합니다. 1번 의회 내에서는
반정부 강경파들이 다 전혀 적합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반대를 했는데도 [음악] 불구하고 이도가
밀어붙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죠. 6월 4일 날 일본 정부가 뭐라 그럽니까? 모든 조선의
개혁 그는 굉장히 능동적으로 했었지만 이젠 아주 소극적으로 임할 것이고
철도를 놓거나 전보를 부사로 이런 거 안 하겠다라고 선언을 한 바가 있기 때문에 사실은 뭐 국제 정세를 잘 알
필요도 없고 조선에 대해서 잘 알 필요도 없고 그저 그냥 가서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는 더군다나 일본이 모든 영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이는 는 미우라의
임명을 적극 밀어붙입니다. 미우라는 조선에 부임하기 전에
공개적으로 내가 이제 공사로 가면은 그럼 어떤 정책을
1번이 조선에서 추천할 것일까를 그걸 우리가 결정을 좀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추진할 수 있는
대조선 정책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은혜적 정책으로 조선을 일본과
동맹을 맺은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조선의 독립을 지키고 개혁을 돕는
것. 지금까지 해오듯이 적극적으로 조선의 개혁을 추진하자라는 것이었죠.
근데 그거는 지금 못 하게 [음악] 돼 있는 상황이고 6월 4일 정부 발표로도 더군다나 그건 안 하겠다고
했는 상상입니다. 두 번째 협박 정책. 이건 뭐냐면 다른 서구
열강들과 조선의 독립을 공동으로 보호할 것. 그러니까 조선을
계국시키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초기부터 나오는 건 뭐냐면 일본만의 힘으로 조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조선이 다른 더 강한 열강의 영향하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 서로 서구 열광들과 같이 조선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보호하자.
공동으로 어 중립국을 만들자 뭐 이런 여러 가지 얘기를 꺼냅니다. 끊임없이
조선을 관리하려고 하는 일본의 정책 중에 하나로 늘 나오는 아니 그게
이제 두 번째 열강들과 공동으로 조선의 독립을 지키자 뭐 이런
얘기죠. 적극적으로 개입은 안 하지만 일본이 그렇다고 남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도록 다. 이런 거겠죠. 그다음에
셋째는 묵종 정책이다. 이것은 뭐냐면 다른 열강과 조선을 분할 점령하는
것. 뭐 남한 일본 찾주고 [음악] 북한은
어 러시아가 처하고 뭐 이런 이런 얘기가 되겠죠. 청일 전쟁 말기에 갔을 때에 열강들이 [음악] 개입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했을 때에 그때도 이미 나왔던 얘기 중에 안 중에 하나가 조선을
분할 점령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거에 대해서 아무도 미우라 보고 야 우리
정책은이 이거다.이 중에 어느 거다라고 얘기를 안 해 줍니다. 일본 조야의 누구도 정부도 의회도 유력
정치인 누구도 아 우리가 이렇게 가야 된다라는 거는 얘기를 안 합니다. 사실은 일본으로서도 결정을 못 하고
있었던 거고 다만 적국적인 개정책은 이제 실패로 돌아간 걸로 판명이 나 버렸기 때문에 그건 아닌데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그럼 뭐 다른 열광들과 공동을 하냐 뭐 분할 점령 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알아서 대충
큰 일 버리지 말고이 상황을 일단 넘기자. 실제로 러시아가 조선에
대해서 어떻게 할 건지 이렇게 이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는데 그럼 러시아가 뭘 할 거고 다른 열강들은
어떻게 반응할 거고 사실은 어쩔 수 없이라도 일본은 수동적으로 조선
정책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것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냥 가라. 이렇게들 미우라한테 조언을
했던 겁니다. 문제는 미우라가 사실은 그럴 인물이 아니었던 거죠. 아주
소극적으로 있으면서 그냥 자리만 [음악] 지키고 상황만 관망한다 이런
거를 할 수 있는 인물로서는 전혀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미우라는
벌써 조선에 부임할 때 오가모또 류노스케를 데리고 오가모토가
누구냐면요. 1차 갑을 일으키려고 일본이 대원군을
설득할 때 그때 대원군을 설득하러 오돌리 공사가 보낸
사람이 오가모토 유네스키였습니다. 그래서 오가모토가 대원군을 설득해서
경복궁에 입성을 해서 어 정권을 다시 잡고 갑보 경장을 추진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가장 앞장섰던 핵심 인물이 바로 오가모토 리너스케인데이 사람이
이제 그동안에 일본에 다시가 있었던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근데이 오가모터가 누구냐면은 김옥균을 그렇게
추종합니다. 나름대로 조선의 개화파들을 적극 지원을 하고 지지를 했고 김옥군 같은
경우는 아예 마음속으로 흠모를 했던 그러한 인물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김옥균이 상하에서 그
홍종욱에게 그 암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 오가모는
실제로 직접적으로 상해로 가서 어떻게서든지 김옥균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합니다. 근데 이제 그
시신을 그 이용장이 조선한테 넘겨 버려서 북양함대
군함에 실어서 조선으로 보내서 조선에서 이제 부관 잠지를 하고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거를 그렇게
막으려고 애를 썼던 어 오가모도고 나중에 김복균의 어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 일본에서 치르는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런 인물이고 끝까지
김옥균을 추정하던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오가모토를 데려왔다는 얘기 뭐냐면
이미 조선의 근대 개혁을 막는다라고 하고 김옥균과 박영 같은 개화를파를
배척하는 조선의 세력들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품고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인무을 지금 데리고 온 것만 보더라도 우리가 아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개화파가 몰락하고 조선의 개혁이 물고품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앉았을
인물은 아니구나는 걸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미우라는 9월 3일 날 고정하고 민비한테 [음악] 친정을
제을 합니다. 재정을 합니다. 이때에 어 고정하고 [음악] 민비를 처음 만나서 아주 좋은 인상을 남깁니다.
아 저는 그냥 일계 군인에 불가니다. 그래서 외교도 [음악] 잘 모르고 화술도 능하지 않고 어 그렇습니다.
회학께서 우리를 저를 불러 주시지한 저는 그냥 우리 공사관에 조용히
앉아서 조선의 아름다운 그 자연을 감상을 하고 어 불경을 필사를 하면서
수양을 하면서 [음악] 자기는 소위를 하겠다 이렇게 또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닌비한테는
뭐라 그러냐면 묘법 연화경을 자기가 필사를 할 텐데이 필사를 꼭 해서 그
필사본을 마치면 꼭 마게 그 이걸 전달을 해 드리겠습니다라는
그런 얘기까지 하고 그리고 실제로는 공상 안에 앉아서 주로
불경을 읽는데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렇지만 이때부터 이우라는 이미
민비를 시해할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우라가 부임했을 때는요. 이미 조선에 살고
있는 한양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많은 일본 사람들은 결국은 민시 척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은 조선하고 일본 관계는 물론이고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 사람들한테도 굉장히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이제
우려를 하고 있었고요. 그리고 어 미우라는 이미 뭐냐면 훈련대나
대원군이 분명히 무슨 소유를 일으킬 거다. 어 가만히 안 했을 거다.
인시척이 다시 완전히 정권을 잡는 거를 대원도 이제 가만히 아니을 거라고 이제 예측을 사실을 합니다.
이유라 본인은 뭐 근대 기억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생각이고 다만
민비를 제거를 하면은 일본하고 조선 관계는 좋아질 것이다라고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실 어 군인이었던 거죠. 자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민시척이 다시 정권을 잡는 거에 대해서
교민들이겠죠. 일본 사람들도 다 걱정하고 있고 개화파들은 물론이지만
다 걱정을 하고 있는 참회 그리고 야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되느냐 특히 민시 척적으로
어떻게 다루야 되느냐 민비가 러시아 힘을
얻고 다시 세력을 잡는 거를 어떻게 견제를 해야 되느냐를 고민을 하고
있는 미우라한테 흥선 대원군이 미우라 한테 접근을 합니다. 흥선
대원군은요. 아시다시피 개혁은 추진을 하지 않고
그죠. 청나라 장수들한테 편지를 보내서 우리가 같이 협공을 해서 일본을 축출하자. 이런 편지나 보내고
앉아 있고 그러면서 자기 자기 손주 왕위 안 생각만 하고 민리 폐서인식
이런 것만 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래서 이노의 가오루가 어떻습니까?
그만두십시오. 이제 완전히 권력가서 물러나십시오. 이노의 공사가 도저히이 사람 안
되겠다. 그래서 쫓아내 버리고 그리고 박영을 안혀 놓고 2차 가보 경쟁을 시작했던 거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그 인노회가 모든 개혁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돌아간 참입니다. 그리고 민비와 민시척쪽이
다시 힘을 세력을 갖게 되는 상황에서 대원군의 입장에서는 어 이거 다시
민시 척하고 민시가 돌아오면 이제 나는 정말 끝이다.라고 라고 생각을 하고 마침 이노회가 가고
모르던 미우라가 오니까 이때가 차라리 때다 [음악] 하고
미울한테 접근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미우라랑 손을 잡고 일본과 손을 잡고
이제는 고정하고 민비한테 반격을 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래서 9월 말 대원군이 일본 공사관의 영사관보 후리구치
구마이치라는 사람을 통해서 미우라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냅니다. 대원군은
뭐라 그러냐면요. 일본의 도움으로 조선 조정의 개혁을
원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처음에 미우라가 당연히
망설이죠. 그러나 마왕설리 대원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대원군과
손을 잡기로 합니다. 그러니까 스기무라 조선을 가장 잘하는 일본
공사관의 그 스기무라입니다. 그 스기무라가 이노웨이한테 조언을 합니다.
어쨌든이 돌고 도는 조선의이 내부의 권력 투쟁 속에서 대원군이
또다시 나오겠다고 하는데 왜 그러는지도 알겠고 그러면 지금
당장 일본의 입장에선 어떻게 보면은 대원군하고 또 손을 잡는 방법밖에
없을 것도 같지만 그 대신 여태까지 대원군이 해온 행태를 제가 20년
동안 여기 지금 공사관에 있으면서 경험하고 관찰을 해 왔는데
네 가지 조건을 대원관한테 제시를 하십시오. 그리고 그네 가지 조건을
대원군이 진짜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는 전제하에 그 사람하고 대원군하고
협력을 하십시오. 그럽니다. 그래서 미우라가 대원군한테
우리와 손을 잡고 민비와 민시 척을 견제하려고 한다면은
다음네 가지 조건에 합의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은 당신과 협력을
하겠습니다. 이럽니다. 그네 가지가 이렇습니다. 첫 번째 태공께서는
물음직기 대군주가 군궐 안에 일만을 다스리는데 보필해야 하며 모든 정부는
내각 대신에게 이임하여 단연코 간여하지 말 것. 즉 이제는
내각제입니다. 내각제니까 왕이나 대원군이나 이런 분들이 왕실에서 직접
정체 간섭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이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삼과 서문에
기재된 바에 의하여 앞으로 왕실 사무 및 국정 사무는 명백하게 구별하여
단연코 국내부에서 자기 직분을 넘어서 남을 간섭하거나 정부 직권을 침범하여
그 한계를 물란하게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또 내외직 관원들의 임명
해인 및 기타 정무에 간여할 수 없음. 태공께서는이 모든 일에 추호도
영회할 수 없으며 물음직이 내각 대신에게 주선을 이임하여 대군주의
제가를 우러로 청하여 시행하도록 해야 함.
지금 이펀군주제조 말하자면 정문은 실제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내각이 해야 되고 내각 대신들이 해야 되는 것이지
왕실리나 왕비나 왕의 아버지인 대원근이 왈거왈거하는 그거는 이제
끊어야 됩니다. 근대 정부라는 것은 근대 국가의 정부라는 것은 왕실과
정부의 재정부터 모든 책임과 권한을 완전히 분리해서 절대로 왕실 국내부가
조정의 일에 정부 일에 간여하는 없도록 해치만을 제발 좀 지켜
주십시오. 그래야지 척도 간섭을 못 하고 왕실도 간섭을 못 하고 제대로
된 정치, 제대로 된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제 첫 번째 조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은
이것입니다.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 등 세 명을 의시하여 기타 몇
사람들은 정치 개혁을 지성으로 원하는 사람들이니 이들을 모두 등용하여
국정을 담당하게 하고 고문관들이 말하는 바를 힘써 듣고 정치 개혁 사업을 단행하여 공고한 독립 국가의
기초를 도모할 것. 개화파들을 등명하라는 거죠. 비록 김옥교는
암살됐고 박영효, 서광범 이런 급진 개화파들은
다 실패하고 또 물러났지만 어떻게서든지 개 개혁은 해야 된다. 근대 개혁을 해야겠다라는 소위 온건
개화파 대표적인 인물들이 지금 조성에 남아 있는게 결국은 또 김홍집, 어윤중, 김윤식인데이 사람들을 중용을
해야 된다. 그리고 어쨌건 근대 개혁은 계속해서 추구 추진해
나가야 된다라는게 두 번째 조건입니다. 세 번째 조건은 이재명군을 국내 대신에 김종한을 국내
협에 복칙시키고 그 둘로 하여금 국내부의 모든 일을 담당하게 할 걸.
자꾸 대원군이 고종을 폐우시키고 그 자리에 앉치겠던 자기 그 손주
이재면은 그냥 국내부의 일을 담당하도록 하라. 그렇지만 국내부의 일은 1조에서 얘기했듯이 뭡니까?
정치, 정부가 하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왕실 문제만
다루도록 해라. 이렇게 되는 거죠. 그 조건을 세 번째로 내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네 번째 조건은
이준용군을 1번에 파견하여 3년간 유학시켜 실력을 양성하게 할 것.
다만 매년 한 번 하계 방학대에 귀성하도록 하는 것은 무방함.
이준영을 아예 일본에 유학시킵시다. 그러면서 일본에 가서 세상을 좀 보고
근데 문물을 배우도록 합시다 하면서 사실은 국내 정치에서 제거를 시켜
버리려는 거죠. 그 대신 방학 때마다 들어온 그 정도야 할 수 있다. 그지만 1번에 가도록 하자.이네 이네
가지를 받아 주겠다 그러면은 이행하겠다고 약속을 하면은 당신하고
한번 손을 잡고 일을 도모해 보겠다라고 하는 겁니다. 대원군은
이준영하고 상해한 후에 미우라의 그네 가지 [음악] 제안을 받아들이기도
결정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다음날 대원군과의 이제 협의가 된
다음에 오가모도가 다음날 인천으로 떠나 버립니다.
1차가보 기역 때도 시작할 때 개원군을 앞장세워서 경복궁에 쳐들어왔던 그 오까모도 또이
오가모도가 대원군하고 왔다 갔다 하는데 중간 역할을 하고 그러니까 당연히 고종하고 민비 민수척
입장에서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잠깐
마음을 놓도록 하기 위해서 먹고 먹고 일본으로 싹가 버리는 척합니다. 그래서 일본으로가 버립니다. 그러고
나서 미우라는 대원군을 이제 전면에 내세울 수가 있구나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오까모도리노 스케과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민비를 시해하고 민시들을 축출하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을 합니다.이 거사는 민시에는 결국은
조선의 당파들끼리 대원군과 민시 척간의 그
싸움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다라고 포장을 하기로 결정을 합니다.
[음악] 대원군이 소원을 잡 잡을 수 있다니까 와 이거는 진짜 이제 뭔가 일이 되는 거 같다라고 미우라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 훈련대를 일본 장교들이 훈련시킨
훈련대를 동원을 합니다. 일본인들은 절대 거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이 정변에 그러니까 오가모는 경복궁까지 대운 걸 호위하고 그니까
그 오가모또 유노스게 한 사람만이 유일한 일본 사람으로서 여기에 참여한다라고 계획을 완벽하게 세우는
거죠. 그러니까 다시 민비를 시해하라 하는데 시혜는 대원군과 민치척과의
싸움 속에서 일본이 훈련시키시켰지만 어디까지나
조선 사람들로 구성되 있는 훈련대가 그 싸움에 말려들기 시작하면서 정변이
일어나서 그 와중에 냄비가 시해된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짜는 것이었습니다.
자, 그래서 이제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는데 10월 7일 날 10월 7일 됐을 때 당시 안경수 군부 대신이
안경수 군부 대신이 미우라한테 무슨 소식을 전하냐면요. 고종이 훈련대를 곧 해산을 시킨다고
그런답니다. 그리고 민영익을 국내부 대신에 앉친다. 그 얘기는 뭐냐면
일본이 그나마 조정할 수 있는 훈련대 일본 장교들이 훈련시킨 훈련대 자체를
해산시켜 버리고 민시척의 가장 핵심 인물인 민영익이 국내부 대신에
임명됨으로써 사실은 뭡니까? 완전히 정권을 회복을 할 거라는 그 소식을
전하는 거죠. 그러니까 큰일 났다.
더운다라 민영익은 이때 친로파 그러니까 민비가 러시아하고 내통하는데
그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어. 그러니까 이제 미우라 입장에서 시간이 없다. 훈련대도 없어지고 민영익이
완전히 정권을 잡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극대화가 된다. 그 전에 우리가 손을 쓰지 않으면 다 시간 모든 일은
숲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는 10월 12 10일 날이 거사일로 잡혔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없다. 시간이 인박했다. 한시라도 지치하면 왕실이 모든 상황을
장악해야 될 것이다라고 스기무라한테 에유라가 얘기를 하면서 행동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막상 이제 거사일이 이제 10월 7일이면 뭐 내일쯤 하자
이렇게 잡혀 버린 거 아닙니까? 10월 10일 날 훈련대 해산한다는데 그 전에 해야 되니까 이제 시간이
없는 거죠. 급하다 그랬는데 미우라는 우리가 훈련시킨 군대이긴 하지만이
훈련대만 데리고 들 지금 들어가서 지금 고종과 민비를 호위하고 있는
궁성에 있는 군사들을 제압을 하고 들어가서 민비를 시해하는 일까지
이거를 아무리 자기내가 훈련시켰지만 과연 할 수 있을까 이게 걱정이 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때에 이유라는 당시 조선에 한양에 이미 정착하고
있고 뿌리 내리고 있는 일본인 교빈 사회겠죠. 거기에 중요한 역할들을
하는 인물들을 부릅니다. 그중에는 아다치 겐조, 어 군니모또 시계아키
이런 사람들을 불러모다. 아다치는 누구냐면은 구마모도 어 그 사츠마번
그 옆에 있는 구마모도번 무사 집안 출신이죠. 그러면서 청일 전쟁 당시 기자로
조선에 건너와서요. 조선에서 조센호 조선시보라는
신문을 참가합니다. 그러니까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 사람들을 위한 신문을
어 만든 참가한 사람이죠. 그리고 어 또 개의조 신보 한성신문이라는
신문사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이 군이모도라는 사람 바로 그 한성 신보 일본 사람들 신문의
주필이었습니다. 비우라는 이들한테이 두 사람을 불러서 민비시 시의 계획이
있다라는 것을 얘기를 하고 주조선 일본 거류민들을
확실하게 거기 지도자급 노력 역할들을 하고 있던 무사 출신이었지만 언론인
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 사람들을 포석을 해서 불러드려서 그 사람들
보고 자 조손에 지금 널려 있는 그 소시에
말 말씀드렸죠 그 폭력배 에 이들을 동원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요라는
결국은 훈련대를 앞장수 세우지만은 실제로 공
왕과 왕비의 호위대를 무력으로 제압을 하고 민비를 시하는 것은 결국은 일본
폭력배 소시들을 이용하기로 합니다. 훈련대를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0월 7일. 그래서 결국 미우라는 아다치를
불러서 상향이 급변했다. 곧 훈련대 해산하고 민영익이 정권을 잡고
그런다니까 그날 밤 거사야 된다라고 해서 움직이자라고 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10월 8일 날 새벽에 실제로 일본 소시들을 하고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경찰 등이 운영궁으로 들이닥칩니다. 대원군을 데려가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아직 잠이 덜 깨인 대원군을 깨워 가지고 가마에 태워서 그리고
경복군으로 향합니다. 경복으로 가고 있던 도중에 대원군이 가마를 세우다.
그러고 한 다음에 자기를 호위하고 가고 있던 오 옷가모또한테 얘기를 합니다.
왕과 세자는 [음악] 절대 해면 안 된다.라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민비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민중전에 대한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과연 대원군이 이때에 이미 일본 사람들이 가서
민중전 민비를 시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서 있 알고 있었는지
그래서 왕과 세자만큼은 건드리면 안 된다.
해하면 안 된다라고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몰랐음에도 어쨌든 민비는 자기도
반대를 했고 폐서인을 해야 된다고 그렇게 했 주장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미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간에
어쨌든 왕과 세자는 해야만 안 된다라고 했던 것인지까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냥 추측 각자가 추측하는 방법밖에 사실은 없습니다. 그래서
왕과 왕자만큼 왕세자만큼은 해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오가모토리 유노스케로부터 받아낸 다음에 다시
가만를 타고 경복궁으로 대원군이 향 향합니다. 대원군이 경복궁에
도착했지만 되면 동이 트고 있었고 8일 날 동이 트고 있었고 궁에는
60명 정도의 분량배들 소시 일본 소시들이 어 이미
도착해 있었습니다.이 이 을미 사변의
전개 과정은요. 사실은 나중에 악관 파천을 하고 나서 고종이 그 당시에
조선의 법부 고문, 법관 양송서를 만들 때에 도았던 미국의 판사 출신
그레이트하우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서 그게이트하우스한테 백서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 백서가 자하게 의미사변 내용을 수사를 하고 실제로 서양
기법으로 그 당시 근대 기법으로 온갖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해서 만든
보고서가 있습니다. 저는 그 보고서를 제가 한국 사람들이게 책을 쓰면서
그것을 서양 선교사들과 외교관들이 조선에 정착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월간지로 발관하고 있던 잡지가 있습니다. 코an 리지토리가 거기에
자세하게 그 보고서가 원래 영어대로 그대로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보고서를 참조해서 제가 번역을 했는데 그 당시에 보고한 그 을미사면
보고서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일본 군인들은 정문을
통과해 곧바로이 건물 즉 고강 내외의 초소인 건천궁을 비롯하여 국내의 여러
곳으로 향했다. 도중에 궁을 수비하던 조선 군사들을 만나고 조선 군사들 몇
명이 죽는다. 그러나 조선군은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한다. 일본인들이 국왕 내외의 처소에
도착하자 이들 중 일부는 장교의 명령에 따라 군대식으로 정렬를 하고
작은 정원에 있는 건물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정원으로 들어오는 문을 지킴으로써 중전 마마를
찾아서 죽이는 나쁜 일을 하러 온 소시들과 다른 일본인들을 지킨다.
30명 정도의 일본인 소시들은 일본인 우두머리에 지도하에 칼을 뽑아들고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가 방방을 뒤지고 모든 국려들을 잡아서 머리체를 잡아
구타하면서 중전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이는 당시 정원에 있던 군궐
수비대와 일하던 사바티니 씨 등이 모두 목격하였다. 사바티니 씨는
정원의 일본 장교들이 일본인 군사들을 지휘하는 것을 보았고 국려들에 대한
천인 공로할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일본인들에 의해서 중전마가 어디 있는지 대라고 하지만
되지 않차 수차례 위협을 받는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정원에는 일본군 장교들이 있었고 일본인
소시들이 저지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으며 일본 군인들은 정원을 에어싸고 정원문을 지키면서 소시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호하고 있었다. 모든 방을 뒤지던 소시들은 결국 작은 골방에 숨어 있는 중전을
찾아 칼로 내리쳤다. 심한 부상을 입은 것은 확실하지만 목숨이 끊겼는지는 확실하지 않은
중전을 비단 호으로 싼 판자 위에 눕히고 마당으로 나갔다. 곧 이어
일본 소시들의 지위하에 중전의 시신을 나무들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캐로신을
붙고 나뭇가지들을 위에 쌓은 다음 불을 붙였다. 타지 않고 남은 것은 뼈 몇
조각뿐이었다. 중전을 시해하는 악행의 임무를 맡은 일본인 소시들은 확인
차원에서 여러 명의 국려들을 잡아와 자신들이 불태운 시신이 중전이었음을
증언하도록 한다. 그리고 일본인들과 조선인 반역자들은 중전마가 도망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를 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여 우리의 경외하는 중전 마마이자
세자의 모치는 잔혹하게 암살되고 모든 증거를 임멸하고자 그의 시신은
불태워졌다.이 당시 상황은 사실 당시에 많은
증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낱낱이 밝혀집니다. 다만 지금까지는 우리가 대원근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이 돼 있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운명했던 것은 민비의 시혜 을미 사변은 결국은
개화파 박영혁, 수급파 대원군,
일본이 사람들이 다 원했던 것이고 사실은
방식의 자체에 대해선 합의를 안 했을지 언정 모든 사람들이
민비를 제거하는 것이 조선의 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민시 척적이 다시 권력을 잡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합의를 했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것이 비극적인
조선의 비극적인 운명이었습니다. 군대 개혁을 위해서는 자신의 국모를
외세의 힘을 빌어서 시를 해야만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조선이 처했던 상황이고이 엄청난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 합의를 보지 못하고 결국은
당파적인 이해 때문에 개혁을 놓고서
반대하는 것도 당파적인 일, 찬성하는 것도 당파적인 일러기 때문에
결국은 개혁의 이름으로 일부 세력이
조선의 분모를 시하는 그러한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일본하고
일본의 폭력배들이 다시 권력을 잡고
그러니까 대원군도 다시 권력을 잡습니다. 대원군은 곧바로 어윤중을 탁지부 대신에 6일준을 내부 및 학부
대신에 [음악] 조희현을 군부 대신에 임명합니다. 모두 다 인시척들에 의해서 쫓겨놨던
사람들이죠. 다시 개화파들을 또 대원군이 또 왜 민시척하고
척을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자기하고도 이상이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오직 민비 민시척적하고는 적이었기 때문에 자기 편으로 끌어댔던
거죠. 개혁이 될 리가 없는 이유. 그러면서 미우라는
우치다 [음악] 영사 그 공사관에 와 있던 우치다 영사를 만나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거사 직후에 조소는
드디어 일본의 손나기에 있다. 이제 안심할 [음악] 수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미우라가
상황을 오판을 하고 있는지 판새를 입는 눈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는지
너무나 여실히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미우라는이 모든 것을 본부에 그니까
재가를 받기는 커녕 알리지도 않고이 거사를 했습니다. 그래서 8일 늦은
아침에 이미 새벽에 다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늦은 아침에야 일본 본부의
사연지 외무 대신한테 전문을 보내서 사건을 보고합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대원군과 훈련대 음모였다. 1번이 개입한 것은 고종을 보호하고
조선 군대가 서로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네가 개입을 했습니다라고
사유원지한테 보고서를 보냅니다. 그렇지만
미우라의 보고서가 거짓이라는 것은 곧 드러납니다. 시의 장면을 다 목격한
국려들이 다 있었고 그리고 특히 그때 미국 군사곰은 윌리엄이 장군이 그 다
서울이 얼마나 좁습니까? 거기에서 그때 칼을 빼들고 일본인들이 오가는
경복공 일본 소시들이 볼양배들이 칼을 빼들고 왔다 갔다 갔다 하는
거를 그걸 다 봤던 거죠. 그리고 미국 공사 호레스 앨렌 바로 그
호레스 앨렌입니다. 이때는 미국 공사를 막고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갑신정변 때 민영익을 치 치료를 해서
조선이 완전히 열리고 조미 투소 통상 조약을 맺고
기독교가 뿌리내리게 하는 결정적을 역할을 했던 그 호레스 앨렌 지금
연세대학교에 가면은 알렌관 그 사람을 기억 기록하는 그 알렌관이 바로
호레스 알렌관입니다. 그 알렌이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악마같이 생긴
일본인들이 옷을 풀어 해친 채 긴 칼과 스워드케인 소드케인이라는게
이렇게 지팡이 같은데 지팡이 이렇게 빼면은 그 안에 칼이 들어 있는 거죠. 칼이든 지팡이를 들고 궁을
급히 떠나는 모습을 자기도 봤다라고 증언을 합니다. 이러니까 일본
공사관에서는 그 미우라는 뭐라 그러냐면 아니다.
민비를 시의한 것은 서양인들하고 조조선 사람들이 일본
옷을 입고서 일본인 척하고 해서 시를 한 것이지 일본은 안 한 것이다.
억울하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우깁니다. 그렇더니 알렌이 데구할 가치도 없을만큼
어처근이 없는 주장이라면서 일축을 해 버립니다. 결국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미우라는 해임이 되고
그리고 본국으로 소환이 됩니다. 미우라고 로까모또류네 스케은 군법
재판을 받지만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 10월 10일
민비의 폐서인 교지가 내려집니다. 이모군란 때도 민비가 죽었다고 생각을
해서 시해됐다고 생각을 해서 그때에도 폐서인 교지가 내리는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20년 후에 또
민비 폐서인 교지가 고종의 이름으로 당연히 교지니까 어 고정의 이름으로론
나옵니다. 심이 보위에 오른지 32년에 정사와 교화가 널리 펴지지 [음악] 못하고
있는 중에 왕후민 씨가 자기의 가까운 무리들을 끌어들려 짐의 주위에
배치하고 짐의 총명을 가리며 백성을 착취하고 짐의 정령을 어지럽히며을
팔아 탐욕과 포악이 지방에 퍼지니 도적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종묘 사직이
아슬아슬하게 [음악] 위태려워졌다. 짐이 그 죄악이 극대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벌하지 못한 것은 짐이
박지 못하기 때문이기는 하나 역시 그 패거리를 꺼려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짐이 이것을 억누르기 위하여 지난해 12월에 종묘에 맹세하기를 후빈과
종이 나라 정사의 간섭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여 민씨가 뉘우치기를
바았다. 그러나 민신은 오래된 악을 고치지
않고 그 패거리와 보잘 것 없는 무리를 몰래 끌어들여 짐의 동종을
살피고 국무 대신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며 또한 짐의 나라의 군사를
해산한다고 짐의 명령을 위저하여 변란을 격발시켰다. 사변이 [음악]
터지자 짐을 떠나고 그 몸을 피하여 이모년에 지나간 일을 답습하였으며 [음악]
찾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왕 후에 자기와 덕에 타당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 죄악이 [음악] 가득차 선왕들의 종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짐이 할 수 없이 짐의
가문과 고사를 삼가본받아 왕후민시를 패하여 서인으로 삼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어 민비가 시해당했다라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고정은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리고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이모군란 때 같이 어떻게 어딘가 피해
있겠지라고 생각을 했지 시당했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결국은
시됐다는 걸 알고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레이하우스한테 부탁을 해서 그
전말을 소상하게 밝히는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합니다. 을미 사변은
비극이었습니다. 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국내법, 국제법은 물론이지만 그냥 갑장 기본적인 윤리
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어
암사를 자행을 하고 그것도 일계 국모를
시해하는 그러한 만행을 저지 저질렀다는 것은 그 당시 만행을
저지른 미우라나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사고 방식 그런 것을 또
방치했던 대원군이나 이런 사람들의 사고 방식 저는 상당히 굉장히 문제가 있고 그 당시에 조선의 의
정황은 물론이지만 어 인정이랄까요?
어, 그 사람들의 어떠한 기본적인 인격,
인성도 너무나 타락한 상황이었다라는 것이 너무나 저는 여실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었습니다. 저는
다만 그다음에 고종이 고종이 취했던 태도가 아 참으로
안타깝고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구왕으로서 일계 나라의 왕으로서
자기 왕비가 국모가 지금 시해가 됐습니다. 근데 꼭 구강으로서만이
아니죠. 일게 지하비로 자기 부인이
지금 살해됐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만행을 통해서 처참하게
살해됐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게 정상적일까요? 더군다나 구강임은
아무리 나라가 지금 나락으로 떨어지 있더라도 아직까지도 국강의 권이
절대적이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누구든지 누구든지 대원군도
구강을 앞세하려 그랬죠. 자기 며느이 민비를 폐서인하고 죽이려고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구강만큼은 앞세야 된다고 했고
모든 대화파들 당연히 구강을 앞세야 된다고 생각했고
심지어는 일본 사람들도 이노의 가오르 같은 사람들도 어쨌든간에 고정을
앞세워야 된다고 [음악] 생각했을만큼
고종의 권이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랬던 고종이 이때에
자기가 나서서 내 왕비를 복수하겠다. 왕를 복수하겠다. 내가 지하비로서 이룰 수
있을 수가 없다.라고 분연이 일어나서 자기 신하들을 이끌고 하겠다. 그러면
거기 누가 어떡하겠습 설령? 그래서 일본과 전쟁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겠죠. [음악]
그렇지만은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더라면은 저렇게 조선이 몰락하진 않았었지
않을까? 그 부분이 민비의 시해 못지 않게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연이 일어나서 나라의 구력을
씻을 생각을 하지는 못할 망정 을미 사변으로 고중이 보이는 그다음
행행도는 뭡니까? 악관입니다.
러시아의 힘이 강해지니까 그 러시아 공사관으로 국광이
피해 들어가는 겁니다. 자기가 일어나서 백성들이여 나를 도와서이
만행을 저지르는 놈들을 타도합시다. 없애 버립시다 하고 하지는 못할 망정
또 다른 외세의 공사관으로 그 품에 안겨서 일개인의
안녕을 도모하는 그러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이 악관 파천입니다.
오늘은 [음악] 을미 사변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어 참 일어나지
말았어야 될 일이었습니다. [음악]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이 역사의 교훈을
교훈을 정확하게 알아야 됩니다. 어 왜 일어났고 그 일로 인해서 나라가
어떻게 됐었던 것인가? 그 당시에 거기 간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을 했었고 어떤 선택을 했는가?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선택이 결국은
그 상황을 다시 장악해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있었던 고종이 결국은
악관파이라는 것을 단행함으로써 민비 시로 인해서 [음악]
을미사변으로서 생겨났던 새로운 가능성 역사의 가능성이 다시
다쳐버리고 조선이 결국은 몰락해가는 그 길을 제촉하는 그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음 시간에는이어서 아관 파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났고 그 아관 파천이 국제정세는 [음악] 물론이고 국내 정세에 어떤
파장을 가져왔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을미사변Ⅱ[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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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강연은 함재봉의 『한국 사람 만들기 IV: 친일개화파 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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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을미사변이 결국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노우에 가오루의 후임으로 새로 부임한 미우라 고로는 어떤 인물이었고, 그가 왜 조선에 부임하게 됐는지, 또 그는 왜 조선의 왕비를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미게 됐는지를 설명하면서 참혹했던 을미사변의 전개 과정을 다뤄보겠습니다.

또 을미사변은 당시 조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까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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