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16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4 아관파천

아관파천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4회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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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인의 탄생의 황제봉입니다. 오늘은 악관 파천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을미사변과 어 단발령에이어서
어 전국적인 속동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고종이 어 신면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어 러시아 공사관으로 어 피신을 해 버립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1년 동안
있으면서 나라를 외국 공사관에 [음악] 있으면서 나라를 통치를 해 나갑니다.
오늘은 그 악관 파천이 정확히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음악] 일어나는지
어떻게 고종이 러시아랑 측과 접촉을 하게 됐는지 러시아는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그리고 일본은 이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가장 우리 역사의
또한 치욕적인 장년의 하나였던 [음악] 어 아관 파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1896년 1월 8일 스페이에르 주조선 러시아 공사가
도쿄로부터 동경으로부터 다시 한양으로 들어옵니다. 스페에르는 그 전에 이미
주조선 공사로 러시아 공사로 임명이 됐었는데 조선에는 이미 베르 공사라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베르 공사가 있었는데 동시에 공사로 임명이 됩니다. 그랬다가 스페르는 잠깐
일본에 몇 달 동안 건너가 있습니다. 일본에 있는 러시아 공사가 주 일본 러시아 공사가 본국에 다녀올 일이
있어서 그 사이에 이제 일본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을 담당을 했다가 다시 두어옵니다. 근데 이스페엘르라는
사람은 자기 전임자인 베르와 달리 굉장한 강경파입니다. 뭐든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떻게서든지 러시아의 이해 관계를 관철시키려고
노골적으로 관측시키려는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실 베르는 굉장히
점지않고 그래서 고종하고도 오랜 친분을 유지하면서 여러 가지 개입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조선에 있었는데이 스페어은 이제
굉장히 적극적입니다.이 사람이 도착을 하해서 아직 공식적으로 이제
공사 임무를 맡기도 전에 고종이 벌써 밀사를 보냅니다. 이범진을 통해서
밀지를 보냅니다. 고정은 알았던 거죠. 스페에르는 뭔가 자기가 얘기를
하면은 움직일 사람이고 [음악] 러시아를 자기 편으로 어떻게 끌어들릴 수 있는 그 매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제 판단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비범진을 통해서
밀지를 보냅니다. 이범진이 누구냐? 친노파로서 굉장히 그 고종하고 민비를
적극적으로 어 보필하던 사람이고 고종하고 민비도 아주 많이 잘 믿던
그런 친구인데이 친구가 이제 춘문 사건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상해로
갔다가 그 사이에 다시 돌아온 겁니다. 그래서 어 고종 옆에
있으면서 다시 고종의 밀지를 바꿔서 러시아 공사관에 가서 스페이어르를
만난 겁니다. 그 밀지에 고정은 [음악] 이렇게 합니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러시아의 도움만 기다리고 [음악] 있으며 러시아의 도움으로 보다 밝은 남아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스페이어한테 퍼니다. 그리고
1월 중순에는 아예 스페이를 궁으로 부릅니다. 근데 이제 당연히 이때는
한창 일본 일본의 영향이 세고 다 내각도 다 친일 개화파들의 내각이고
그러니까는 마음대로 얘기를 못 하는데 어쨌든 그 스페이르가
나갈 때 고정이 쪽지를 숙적 건냅니다. 그래서 스베이에르가 나중에 그 쪽지를
읽어 보는데 그 쪽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아직도 민비가 생존에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찾고
있으며 민비도 러시아가 지금의 내각을 쫓아낼 때까지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고종이 스페 [음악] 스페이르한테 걷는 쪽지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고종은 혹시 이모군란 때
같이 폭도들이 그 궁정에 쳐들어와서 [음악] 민시들을 다 잡겠다. 그래서 그때
이제 민비가 급히 고향으로 그 피신을 갔었다가 그래서 다 그때 시됐는지
알았는데 나중에 나타났지 않습니까? 고종이 이때도 [음악] 이때까지도 아직도 혹시 을미 사변 때 민비가
시해된 것이 아니라 그 민비의 시신이 [음악] 너무 훼손이 되고 그랬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확증을 못
[음악] 했던 거죠. 확신이 없었던 거죠. 그게 민비였는지 다른 국녀였었는지. 그래서 아직까지도
혹시나 혹시나 민비가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오히려 지금 친일 내각이 있기 때문에
나타나지 못하고 [음악] 있어서 러시아에 도움을 받아서 친일 내각을 물리치면은 그때 혹시 민비가 다시
나타날 수도 있다라는 희망을 고정이 버리지 [음악] 않고 있었는데 이제 그 얘기를 그 스페어르한테까지도
쪽지를 통해서 이제 전달을 한 겁니다. 베르하고 스페르 이제 지금 아직도 러시아의 공사가 둘이
있습니다. 베르도 전임 공사 그대로 있고 스페어르에도 공사가 그대로 새로 임명이 돼서 이제 둘이나 공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1월 12일 날이 사실을 스페어르하고
베르가 자기 러시아 본국의 외무성에다 이제 보고를 합니다. 조선의 국광이
우리한테 노골쪽으로 사람도 보내고 쪽지도 건내면서 자기를
러시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이거 어떻하면 좋겠습니까? 훈련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이제 본국에다 보고를 합니다. 이때에 지금 러시아는 계속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거죠. 어디까지 자기가 개입을 해야 될지 아닐지 이거를 이제
굉장히 조심스럽게 재고 있는데 스페일르하고 베르가 보낸 그 쪽지를
그 보고서를 받아본 니콜라의 이세 황제는 이렇게 얘기를 했답니다.
경악스러운 일들에 대해서 일본의 책임을 물을 때가 왔다. 그러니까 이제 을미사변 같은 사건을
아니까 [음악] 다들어서 아니까 그러니까 이때를 이용해서 러시아가
치고 나가서 일본을 축출하고 이제 러시아가 상황을 장악해야 되겠다라고
니콜라 이세는 그렇게 됩니다. 아직도 젊고 아직도 그럴쎄요. 그이 없고
[음악]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실 스베르 같이 좀 어 급진적이고
아주 적극적인 정책을 니콜라이도 계속해서 지지를 합니다.
그래서 이때도 역시 뭔가 우리가 개입을 해야 된다 그러는데 옆에 있는
다른 대신들은 아닙니다. 그거보다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특히 로바노포회상은
지금 우리가 개입을 하면은 일본하고 또 부딪칠 수 있다. 일본이 가만히 안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그러지 않아도 지금 여러 가지 개입을 하고 있고 그래 갖고 일본이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일본이 가만히 안
했을 겁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현단 철도가 만주를 관통하는 거는 그걸 협상을 하고 있고 더 큰 판을 지금
벌리고 있는데 다른 세력들도 가만히 안 있습니다. 괜히 조선의 내적 문제
이런 데에 뭐 고정이 도와 달라고 이런 거에 응해 갖고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더 큰 일을 그르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로바노프에서 오히려 [음악] 안 된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거꾸로 스페이한테 전문을 보내서 이렇게 물어봅니다. 12월 3일 1월
23일 날 1월 23일 날 전문을 보내서 뭐라 하냐면 아니
지금 당신이 보낸 거에 보면은 지금 친일 내각을 축출해서 뭐 친러 내각을
세우고 이런 얘기를 했는데 도대체 구체적으로 그게 뭘 어쩌하겠다는 얘기냐 그러면 침 내각을 예를 들어서
집어넣으면은 그다음에는 거기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얻어낼 수 있는게 도대체 뭐길래 이게
정적인 목표가 정확히 뭐냐라고 고 어 물어봅니다. 그러면서 뭐라 그러냐면
러시아는 극동에서 상황을 지금보다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스페이한테 주의를 줍니다. 그니까 여기에 현장에 있는 조선
현지에 있는 스페이르의 급진적인 행동주의가 있는 거고 지금 러시아의
외무성 러시아 본국 정부에서는 어 지금 굉장히 큰 판을 벌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러 가지를 지금 계산을 해 봐야 되고 고려를 해 봐야 되는데 스페어에르처럼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쓸데없는 혼란만 조장하고 특히 외세가 다른 열강들이 러시아의
여러 가지 의도하고 있는 바를 좌절시킬 수 있는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 수 줄 수 있다. 그러지
마라. 일본도 절대 더 이상 자극할 필요가 없다라고 보는 겁니다. 3극
간섭을 통해서 지금 요요동반도를 다시 배탄해야 될 일본의 입장에서 얼마나
겨강이 돼 있고 그런데 일본도 지금 우리가 쓸데없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 뭐 친일 내각을 축출한다. 이런 거
섣불리 하지 말라.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였죠. 그랬더니
스페르가 답을 또 합니다. 그러면서 고종이 자기한테 했던 얘기를 합니다.
스페르는 고종이 저한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라고 하는데 무슨 얘기를 했었냐면 고종이 자신에게 말하기를
조선 사람들은 모두 일본을 증어하고 백성들과 훌륭한 인재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기에 현 내각을 전복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어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라고 이렇게 답을 보냅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이 상황 이때 손을 놓고 있으면 일본은 분명히 조선을
전체를 다 집어삼라고 로마노바한테 닥치를 합니다. 그러면서
스페일은 이렇게도 얘기를 합니다. 조선 문제를 협상만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일본은
조선의 강려들과 대원근을 쫓아내 쫓아내지 않을 것입니다.이는 조선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니까 일본은 기존의 조선 조정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친일 내각을 유지하려고 할 것입니다라고
얘기를 하면서 조선의 진정한 독립을 도모하는 유일한 방법은 한양의
일본군과 같은 숫자의 러시아군을 주둔시키는 것이라면서
청일 전쟁 때문에 일본이 다 지쳐 있다. 러시아가 뭘 하는데서 사실 저항할 반응할 힘도 사실 없다.
따라서 러시아가 빨리 움직일수록 오히려 [음악] 의소가 줄어듭니다.
이렇게 로바노프한테 계속해서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음악] 조선 개입
정책을 주장을 합니다. 로바노프를 포함한 일 러시아 외무성에서도
보종 주변에 있는 그래도 친러 세력, 반일 세력을 지원할 생각이 있다라는
거 거기까지는 동의를 합니다. 그렇지만 한양에 일본군과 같은 금무의
러시아군을 파병해야 된다라는 스페이엘의 제한은 거절합니다. 괜히 그랬다가 정말로 큰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러면서 2월 1일 날 또 스페어한테 이런
훈령을 보냅니다. 현 시점에서 조선 내부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이렇게 해요. 그러면서 기다려라. 특히 뭐를
기다려라. 주일번 러시아 공사를 하는 히트로버라는 사람이 본국에 돌아갈
텐데 그때 돌아가서 상황을 조선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체적인 걸
놓고서 정부가 다 상의를 할 때까지 더 이상
조선 문제에 변화를 가져올 짓을 하지 말아라 그럽니다. 그랬더니 스베르는 답을
보내면서 지금 친일내각을 없애는 것은 사실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가면은 러시아는 설 자리가 없다. 조선에서는 굉장히 비관적이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 말씀이냐면 스페어에르라는 현지에
있는 러시아 공사는 주조선 러시아 공사는 이범진을 통해서 고종이 저런 자꾸 신호를 보내오는데 이때
적극적으로 해야 됩니다 이러는데 오히려 러시아 정부는
아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구체적으로 뭐를 하려는 얘긴지도 모르겠는데 괜히 섣불리
고정말 믿고 뭐를 개입을 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큰 일 난다. 다른 일을 걸 그르친다 그러면서 이제 조심
그랬는데 그러고 있는 와중에 2월 1일 날 고정이 또다시 이범진을
통해서 스페어한테 스페어한테 2차 밀지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자신은 반역자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며 그들은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서 나와 세자를 제거할 것이다라면서 짐은
세자와 함께이 위험을 피하여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서 보호를 요청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예 구체적으로 내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가겠다라는
얘기를 고종이 이범진을 통해서 스페어하게 전달을 합니다. 그러면서 고종이
이렇게까지이 범죄를 통해서 얘기를 합니다. 그대 두 공사들 그니까 스페르와 베르죠.
그 두 공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동의한다면 짐은 나를 정하여
밤에 비밀리의 공사관으로 가겠다. 날짜는 그대들에게 따로 미리
알리겠다. 짐은 달리 짐을 구할 방법이 없다. 짐은 두 공사들이 짐을
[음악] 지원해 주고 보호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스페르한테는 사실 이게 대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어떻게 해서든지 고정이 도움을 요청하는데
이걸 이용해서 침 내각을 만들자. 침 친일 내각을 축하고 이제 이런 얘기를 하는데
러시아 정부가 잘 듣지 않고 있는데 아예 고종이 뭐라 그럽니까? 야 내가
너희들 공상안으로 들어갈 텐데 너희들 어떻게 생각하냐? 아예 내가 걸로 돌 걸로 들어갈테니까
나를 보호해 달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스페어를 입장에서 너무나 듣기 좋은 제한이지만
들었을 때 이제 놀라는 거죠. 처음 늙고서 깜짝 놀라는 거죠. 그래서 스페어르가 이범진한테 이렇게 합니다.
이건 너무 위험한 죄이다. 오히려 스페어를가 보기에도 너무
위험하다 이거는. 왜냐면 이거 전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일국의 왕이 자기 수도에 와 있는 외국 공사관으로
피신을 해 들어오겠다 그러면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어 다른 열감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할 것인지 이거에 대한 전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너무나 위험한 일이죠. 전무 후무한 어디에서도 없었던
일이니까. 그랬더니 이범진이
그래도 고종이 국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더 위험하다. 러시아
공사들이 바다만 준다면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이 일을 도모할 것이다.
이렇게 스페어한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베로하고 [음악] 스페르는 둘이서이
이거를 둘이서 잠시 논의하고는 좋다. 한번 해 보자고 결행하기로 합니다.
만일에 고정이 우리 공사가 들어온다. 이건 우리 러시아한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 명확하다라고 해서 그럼 결국은 한번
해보겠다 이렇게 해보자 결정을 합니다. 그리고 러시아 공사가 영 외무성에 알리니까 러시아 외무성도
여기에 동의를 합니다. 그래서 파병을 더하지 더해 달라라는 스페
스페이의 요청은 거부를 하지만 고종이 자진해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왔다는데 글쎄 그거에 대해서 그걸 갖고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까지 일으킬 수는
없을 것 같다. 명분이 안 될 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러면서 니콜라세는
그래 그렇게 하고 그 대신 우리 전함을 갖다가 재물포에 보내서 정박을
시키면서 실력 과실를 해라. 그 그럽니다. 그러니까 스페르가
이범진한테 좋다. 우리 정부도 동의해 줬다. 파천 계획을 실행해
보자. 이렇게 전합니다. 2월 3일 고종은 스페이에게
나한테 피신처를 제공해 주기로 한 거에 대해서 너무나 고맙다. 그리고
자기는 매일같이 파천 계획을 러시아 공사관한테 얘기를 해 주겠다. 그리고
계회의 핵심은 뭐냐면 보통 고정이 잠들어 있는 있을 시간쯤
궁에서 다 아 이때쯤이면 고정이 잠들어 있을 시간 그게 새벽 시간입니다. 그 새벽 시간에
고종이 상궁으로 변장을 해 가지고 국녀들이 사용하는 가마를 타고 궁을
빠져 나오겠다. 이게 계획이다. 이렇게 스페일한테 알립니다. 그리고
실제로 군궐 경비병들을 속이기 위해서 그때부터 예정된 시각에 실제로
국려들이 감화를 타고 각 군궐문들을 나가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야지 막상 진짜 [음악] 이번에는 고종이 변장을 하고 그 국려들 가를 타고 나갔을 때 군궐
경비병들이 의심하지 [음악] 않고 내보낼 걸를라고 예상을 해서 계획을 어 준비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2월 7일 고종은 드디어 스페엘한테
준비가 다 됐다. 내일 새벽 8일 새벽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겠다. 그래서 수베르하고 베르가 이제 잔뜩 기다리고 있는데 고정이 안
나타납니다. 그래서 안 나타나서 왜 안 오셨냐고 그랬더니 고종이
지금 보니까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를 지켜줄 러시아 공사관 코 병력
숫자가 너무 부족하다. 내가 보기에는. 왜냐면 [음악] 그 정도 자기가 그래 아관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들어갔을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뭐 폭도들이 와서
러시아 공사관을 습격할 수도 있고 뭐 일본 군이 와서 습격할 수도 있고 뭐 이럴 이럴 텐데 그런 상황에 대배하기
위해서는 지금 러시아 공사관을 지키고 있는 그 러시아 경비병 [음악]
숫자가 태부적이다. 불안해서 나 못 가겠다. 이렇게 연락이 옵니다.
그래서 스페어에르도 그렇지 않아도 자기도 약간 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
니콜라의 명령에서 재물포의 정박 중인 순양함 애드미랄 크루일로프의
함장에게 그 배에 있는 수병들을
더 경비병으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보내 달라 이렇게 요청을 합니다. 스페일은
이런 준비를 하는 와중에 연막 전술도 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2월 9일
날에는 어 조선 주제 독일 영사 [음악] 크린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러시아는 조선에 대한 아무런 야심이 없다. 뭐 이런 얘기를 이제 어 합니다. 그리고 천과 일본이 자꾸
조선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그러면서이 조선
사람들을 내버려 둔다면 조선 사람들이 알아서 어떻게 쓴지 알아서 할 건데 자꾸 청이나 일본이 간섭을 한다.
이제 이런 얘기를 이제 크리엔한테 또 합니다. 그리고 2월 10일 날
애미널 코로니코프 순양함에서 그리고 또 같이 정정했던 [음악]
보블란 또 다른 전함에서 러시아 장교들과 수병들여 명이 재물포에
상역해서 한양으로 들어옵니다. 그 당시 한양에서 뭐 러시아 군 병력이
100명씩 움직이고 그러면 그 다 눈에 뛰고 몰래 할 수가 없는 일이죠. 그래서 이거를 본 힐리의
영사는 러시아 공사한테 아니 며칠 전에도 또 경비 공사관 경비병이 한
40명으로 증강이 됐었는데 왜 또 100명을 데려오느냐 더 충강을
하느냐 왜 그러느냐 그러면서 공사관 경비 병력을 증강하고 있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베르가 상황이 너무 위중해지고 있어서 취한 조치다. 조선의 군대로는 지금이 폭도들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저항하는 그 폭도들을 막을 능력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공사관을
지키는 건 우리 군대 운이 우리 군이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일본군이
있긴 하지만 한양의 일본군이 있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 문제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한 상황이었고
[음악] 그런 상황 때문에 만일의 폭도들이 한양에 들어와 버릴 경우에는 일본 군인들은 일본 주제원들하고 일본
상인들 지키는데도 급급할 텐데 우리 러시아 공사관이나 당신의 영상 같은
때는 지킬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거꾸로 힐리한테도 아이 당신들도 빨리 경비 병력을
증강을 해라. 영국 군남에 있는 경비용들 더 불러올려 갖고 당신들
공사관들도 더 지킬 병력을 증해라. 오히려 거꾸로 이제 그런 어 제안도
합니다. 미국 공사 C를 만나서도 똑같은 얘기를 또 반복을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연막 전술를 계속 치는 겁니다. 힐리에는 근데 영석연치가
않습니다. 그래서 일공사, 미국 공사를 만나서 뭔가이 지금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
같다. 스페에르가 하는데 좀 앞뒤가 안 맞는 말이고 뭔가 숨기는 거 같다. 그러면서 힐리에는
재물포에 정박해 있는 영국 군함에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니까 좀 잘
신경을 쓰고 있어 [음악] 달라. 그 대신 추가 경비병을 요청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당시에는요.
각국이 공사관이 환양에만 있었던게 아니라 그죠? 공사관만 있었던게
아니죠. 그 공사관을 지키는 병력들이 있어야 되고 그 병력들을 제공을 하고
또 가서 쉬고 대체시키고뿐만 아니라 뭐죠?
우리 공사관 우리 이거를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라는 엄청난 무력 시위를
할 수 있는 각 국의 각 열강의 전남들이 지금 재물포에 다 정박을 해
있었던 겁니다. 같은 날 저녁에요. 2월 10일 날 저녁에 베르,
스베이에르, 힐리의 연구 공사, 크리엔 독일 공사, 고무라 일본, 고무라 조따르 일본 공사 등이 같이
만찬을 합니다. 사실 그 당시에 한양에서는 몇 명 되지 않는 외국 사람들, 특히 외국 주원들끼리 자주
만나서 자주 식사를 하고 늘 교류합니다. 뭐 사실이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하고 뭐 조선에 대단한 외무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외국말을 잘하는
외교관들이 있어 갖고 하는 것 할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고종 가서 아련하고 무슨 얘기하고 외모 대신
김윤식 이런 사람 잠깐 만나서 얘기하는 거 빼놓고 사실은 조선 사람들하고 교류할 구체적으로 교려할게
없는 거죠. 자기네들끼 굉장히 자주 만나서 자기네들끼 의견 교환하고 때로는 정책
협의도 공동 보조 맞출 수 있는 얘기도 하고 그럽니다. 이날도 또 이제 같이 또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그때 이제 그 크리엔이 그 스베한테 독일 영사가 아니 왜 그렇게 많이
병사들을 불러올리냐 그랬더니 아이 뭐 미국 병력도 없고 영국 병력도 없고
한양에서 철수하니까 우리라도 와서 지켜야 될 거라서 어 보호하기 위해서라 그럽니다. 그렇지만
클리엔도이 내용을 본국 정부에다가 하면서 아이 근데 스페르 말은 믿을 수가 없다.
그 이제 다 뭔가가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설마 그게 조선의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거기까지는 상상을
못 했던 거다.
그랬는데 그러고 있는 와중에 2월 11일 드디어 고정은 세자와 함께
여장을 하고 국려 감화를 탄 채 서로 다른 경복 공문을
통해서 빠져나갑니다. 30명에서 40 3 40명의 시종들도 같은 시간 여러
다른 문들을 통해서 빠져나갑니다. 그리고 오전 7시경 러시아 공사관에
당도합니다. 러시아 공사 간축은 큰 두 개의 방을 아예 고종 일행들을 위해서 따로 치워
놓고 이제 마련을 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방으로 그 두 방으로 고종의 일행들을 다 안내를
합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무사히 [음악] 도착을 하자 하스베르는 즉시 한양주제 외교
사자들한테 알립니다. 부종이 현재이 나라의 정치
상황이 매우 심각하고 군궐에 더 오래 있다면 자신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고려하여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였다.라는
짧은 내용의 메모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런 열강들의
공사관에다 다 보냅니다. 베르는 또 다른 영 러시아 공사죠. 베로는
열시경 주조선 연구경사 힐리혜를 방문해서 외무독판 김윤식이 해임이 되고
이완용이 대신해서 외무 대신에 임명다라는 거를 알리면서 고종이
힐리의 당신을 곧 부를 것입니다라고 알립니다.
헬리에가 아니 고정이 어떻게해서 러시아 공사관에 들어가게 됐느냐라고
물으니까 베르는 말문을 돌려서 딴 얘기를 합니다.
답을 피합니다. 그리고 오전 11시에 고종은 신임 새로 임명한
외무판 외무장관 이완영을 통해서 당시 외교 단장을 주미 주일 주조선 미국
공사가 하고 있었죠. 공사한테 고종이 [음악] 정호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외교관들을
초청한다라는 쪽지를 보냅니다. [음악] 그래서 어
그러니까 그날 정호에 2월 11일 정호에 조선 주제 외교단이 전부 다
러시아 공사 공사관에 집결을 합니다.이 이 사람들이 갔더니 큰 방에는 러시아 공사관의 큰 방에는
조선 관리들로 꽉 가득 차 [음악]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춘문 사건을 일으켰었던 그리고 야관 파존을
중간에서 모든 협상을 했었던 어 이범진 또 10월 8일 날
총리직에서 그 해임됐던 박정양 이런 사람들이 죄 어디 가지 못하고 전부 다 러시아
공사관에 숨어 있었던 사람들이 새로 들어간 사람들하고 다 이제 섞여서 있었던 [음악] 것이죠. 그래서
12시 반에 시미국 공사, 힐리의 영국 공사, [음악] 크리엔 독일 영사, 루페브르 프랑스
영사 등이 고종의 방으로 안내가 됩니다. 고무라 일본 공사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무라 영 공사 없이 지금
고종이 서양 외교관들 만나서 간단한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부종이 지난밤 군궐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러시아 [음악] 공사관에
군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오늘 새벽 세자와 함께 이곳으로 왔소.
이러니까 실미국 공사가 답을 합니다. 전학께서 궁을 떠나셔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이곳에서 안전하고
행복하시길 [음악] 기원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옆에 있던 힐리의
어 크리앤 루페로 모두 다 저희들도 같은 생각입니다라고 이제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고정이 언제 다시 올 것이요? 그랬더니 힐리에가 전학께서 명하시면 언제든 언제든지
오겠습니다. [음악] 하고 물러납니다. 이렇게 해서 고종은
외교 외교 사정을 받았는데 공식적으로 자기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을 했음을 알립니다. 서양 외교관들이
고정을 아련하고 나오자마자 이제 고무라주로 일본 공사도 어 도착을
합니다. 도착을 해서 역시 고종을 들어가서 아련을 합니다. 고무라는
아무 다른 말 없이 고종의 건강을 빌고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고무라는
나온 길에 옆에 있었던 스페르시아 공사한테 지금 조선 사람들이 많이
놀라고 있다 그러면서이 [음악] 상황에서 지금 우리 일본군과
러시아군이 한양에서 충돌한 일, 조선에서 충돌한 일은 절대 있어서 안
되겠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스베에로 역시 동의를 합니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이 일본에지 전해지면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본의 여론 비판적인 여란이 쏟아져 나옵니다. 일본 정부는
2월 15일 날 의회를 아예 정회를 시킵니다. 의회에서 너무나 야당의 공격을 받으니까 의회를 정회를 시켜
버립니다. 그러면서 조선에 있는 일본군 지위관들한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러시아 군들과 충돌를 빚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라는
명령을 하달을 하고 이런 명령을 하달했다는 사실을 일본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의 무관한테도 통보를 합니다. 당신들도 같은 명령을
내리라. 이런 얘기가 되겠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에
원래 내각 그러니까 김홍집 총리 대신 그렇죠. 그다음에 김윤식 외무 대신
이런 사람들이 내각임 내각 대신들입니다. 그런데 고종이 당연히이 사람들한테
알리지 않고 악관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그날 아침
아침에이 대신들은 다 등청을 하는 거죠. 다 출근을 하는 겁니다. 근데 와서
보니까 고종이 러시아 공산원으로 피신에 들어갔다라는
겁니다. 그 얘기를 듣고서는 내무 대신 그때까지는 내무 이제 해임이 됐지만 아직까 해임 된지 모르는
6일주는 대산은 이미 지나갔다. 마땅히 내각은
총사직을 출론하고 각자 처신의 길을 꾀해야 한다면서 모두 피신해야
된다라고 6일준이 얘기를 합니다. 그랬더니 총리 대신 김홍집은 [음악]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나는 먼저 폐하를 아련해서 폐하가 마음을 돌리실
것을 촉구하고 성사가 되지 않으면 일사 보국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면서 군거를 나서서 영국 공사관으로 향합니다. 영국 공사관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자기 친척이 있는데 그 친척을 데리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가서
고정을 아연해서 고정을 어떻게 든든지 설득해서 폐 여기에 계시면 안 됩니다.
돌아오십시오라는 거를 간하겠습니다라고 해서 친척을 데리고 이제 가려고
공거를 나옵니다. 바로 그때 경무청의 순검들이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김홍집을
체포합니다. 같은 시각에 수십명의 순검들이 농상공부 대신 정병화
예집으로 가서 정병화를 또 체포해서 경무총으로 압성을 합니다. 순검들은
김홍집도 경무총 문앞으로 끌어냅니다.
이때 경부총 앞에는 박정 이윤용 그러니까 이완용의 서형이죠. 형이죠.
이윤영 등이 고종의 명을 받아서 집결시킨
보부상들, 경기도, 충청도, 황해, 황해도의 보부상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이 보부상을 조직을 해서 자기네 정권의 행동대로
만든 것이 민시 척들입니다. 그래서 민시 척의 아주 충실한 행동파가
보부상들이었습니다. 그 보부상들을 고종이 불러올리라 그래
갖고 한양의 집결해 있었던 겁니다. 전국의 보부상들이. 그래서 원래이
보부상들은 2월 10일 날 밤에 일본 궁사원을 습격을 하려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조병직 그때 법부 법부 대신이 설득해서 절대 하지 말라고 그래서
간신히 일본 공상은 습격까지는 안 했지만 그렇지만이 사람들이 지금 다
경부총 앞에 다 모여 있었을 그때입니다. 그때에 거기에
김몽집과 정병하를 잡아서 끌어냅니다. 그러니까 순검들이 칼을 뽑아들고
김몽집을 발로 차서 쓰러치고 나서는 칼로 난도지를 합니다. 그리고
정병화도 끌어내서 참사를 합니다. 김홍집과 정병하의 시신을 그리고는 보부상들한테
넘겨 줍니다. 보부상들은 김홍집과 정병하의 시신을 발목에 새끼줄를
묶어서 종로로 끌고 나가서 대역 무도 김홍집 정병하라고 써붙입니다.
그러니까 길을 가득 메우고 있던 보부상들이 시체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발로 친입니다. 대한 개년사에는 김웅집과 정병화의 죽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 여러 장교, 경관 및
병순검이 모두 러시아 공사관으로 달려가 허위했다. 임금이 이해 경관에게
김홍집 정병화를 체포하도록 하고 경무관 안에게 빨리 가서 배워
죽이도록 했다. 안이 명령을 받들고 경무총 문앞에 도착했는데 두 사람이
마침 당도했다. 총순 소흥문 이완영의 신복이 칼로
김홍집을 경무총문앞 소속교 위에서 찔러 죽였으며 정병화도 베어 죽였다.
두 사람의 시체를 종로 큰 길가에 널어 놓차 격분에 찬 백성들이 더어
돌멩이로 때려 시체의 팔다리와 몸통이 깨졌다. 이때 김집에게 도피할 것을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김몽집이 말하기를 내가 재상이었으니
조순 조순이 누구냐면 전국 시대 진나라의 사신으로 법을 바로잡기
위해서 5명을 감소했던 충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재상이었으니
조순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간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체포가 됐다고
합니다. 정병아는 처음에는 간사한 계략으로 왕후가 군궐 밖으로 나가 피하는 것을 막았다. 또 왕우를
폐위시켜 일반 백성으로 만든 일에 힘을 다한 사람이었는데 이날 아침 내각으로 가던 도중에 붙잡혔다.
그러니까 대한 개녀사를 어 사에서는 정병아에 대해서는 사실은 어
을미사변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인물이다라는 거를 이제 밝혀 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김홍집과 정병의
이렇게 처참한 치유를 맡게 됩니다. 6일주는 경복공을 이제 딴 사람들
보고도 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우리 각자 그야말로 살아야 될테니까 각자
알아서 피신하십시오. 그래 놓고 사서 자기도 이제 경복공을 나섭니다.
이때에 평상복을 입은 괴한이 한 사람이 들이닥쳐서 6일주을 체포하러
왔다 이럽니다. 근데 거꾸로 이제 6일준이 그 괴한을 잡고서 그의 그 잡으려고 거꾸로 그 두 권을 잡지만
괴한이 워낙 힘이 세서 오히려 6일준이 질질 끌려서 밖으로 나갑니다. 끌려 나갑니다. 이때 마침
옆에 있는 일본 관보국의 일본 직원들이 있었어요. 1번 직원 두
명이 6일준을 구하려고 오히려 쫓아나갑니다. 그랬더니 괴한은
6일을 놓고서 그냥 도망을가 버립니다. 그 와중에 괴한은 달아났지만 이번에는 순검들이 또
나타나서 6일준을 끌고 나갑니다. 이때에 일본인들이 다시 6일준을 구출을
해냅니다. 그래서 어 군궐 밖을 나 나가는데 거기에
있는 또 순검들한테 발로 채워 갖고 6일준이 쓰러집니다. 일본 관원들이 한편으로 6일준을
일으키고 다른 한 손으로 순검들을 뿌리치면서 간신히 일본 수비대
진중으로 6일주을 데리고 갑니다. 그래서 6일주는 또 변장을 한 후
1번 공사관으로 피신을 합니다. 친일계화 6일준도 역시 결국은 또
1번이 1번 사람들이 살려줘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일본 저 공상안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 외에 법부 대신 장박, 내무부
위생국장 김인식, 법부 형사국장 조중 이런 사람들은 다 파천 소식을 듣고
경복로 가지만 경비경들이 이제 입공을 못 하게 하니까는 일본 공사관으로 다
피합니다. 그리고 일본 공사관 직원들은 이들을 변장시켜서 1번인
상점에 다 피을 시킵니다. 김윤식 외모 대신은
안전하게 귀가를 합니다. 끝까지 내각에 머물다가 고정이 불러서 오히려
가서 고정을 아련했다. 그런 설도 있는데 특이하게 어 김윤식 외무
대신만은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귀가를 합니다. 어윤중 탁지부 대신은요
파천 당일날 등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피신을 하던 중
용인에 도달했을 때 용인에서 정원로와 이목길이라는 사람들한테 피사를
당합니다. 어윤중을 살해한 혐의로 나중에이 정원노하고
임로끼이 재판을 받습니다. 그 재판을 한 것이 어 고등재판소장
한규설이었는데 그 한규설의 재판장의 선고문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용인군 송전에 사는 평민 정원으로 거양 1년 2월 17일 전 탁지부
대신 어윤중이 용인을 지나가던 때에 정은 어윤중을 왕후를 시해한 역적으로
지목하고 용인군 어비동 관관현의 집으로 가서 어윤중을 죽일 것을 같이
모이겠다. 그리고 안관현이 고용한 용인군 와동에 사는 임길과 함께 백성들을
선동하여서 어연중을 용인군 장설리까지 쫓아가 앞장서서 손을 대서 즉시 죽여
버렸다. 임길도 동시에 손을 대서 죽였다. 중을 죽인 정원과 임록길은 원래는
사형 안관현은 태형일대의 종식 종신 징역을 언도하지만 고종이
일일이 살펴 가벼운 쪽으로 처벌하는 의에 따르라고 명령했다면서
정원로는 유배 5년 임록길은 유배 2년 안관현은 유배 1년으로
감형이 됩니다. 그러니까
고종문 김홍집과 의연중도 버립니다.
김홍집은 2차 수신사로
1차 수신사 김기수가 아무것도 못 하고 1876년에 강화도 제약 직후에 갔다가 온 이후에 처음으로 다시
일본에 가서 그때 관세 협정도 다시 맺으려고 하고 그 와중에 이동인을
만나서 이동인을 기적적으로 만나 갖고 이동인과 같이 귀국을 해서
신사유람단을 꾸려서 처음으로 일본을 가게 해쳤던 사람이고 어윤중 중 그
신사 유일단의 대표로 가서 윤치호 이런 사람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가서 처음으로 국가사 유키시도 만나고 일본 사람들 만나면서
그 일본의 개화 그 모습을 보고서 돌아와서 끊임없이 조선을 개화시키려고
했던 대표적인 온건 개화파 인물들입니다. 김홍집하고
어의 어의 어윤중이요. 그런데 급진 개혁 세력이었던 김옥균, 박영,
서제필, 서광범, 6일준 그 사람들도 암살당하고 피살당하고 망명하고
그랬지만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든지 남아서 온건한 방식으로 개혁을 꾀하던
그 김몽집과 어윤중마저도 주사를 당합니다. 여러분, 조선에
어떤 인물이 났습니까? 조선에 무슨 인재가 남습니까? 조선을
개혁해야 되겠다. 근대 국가로 만들어야 된다. 이렇지 않으면 나라 없어진다.
백성들이 너무 불쌍하게 살고 있다. 이렇게 구력적으로 나라가
전락할 수가 없다. 일본이 하는 거를 봐라. 일본이 하는 거를 만에도 좀
쫓아가 보자. 어떻게서든지 그거를 하려고 했던 그나마 바깥 세상을 보고 오고 그나마 일본을 보고
이랬던 사람들은 전부 다 주당합니다. 갑신정변 실패한 다음에는 온권
계약할래도 조금 남아 있었었던 거죠. 그런데 이번에는 아관파을 하는 와중에는 아예 그 온건
개화파들마저도 모두 주살됩니다.
여기까지 오면요. 조선은 자신의 힘으로 개혁은 커녕 그 나라가
더 이상 유치될 수 있는 여력이 전혀 없습니다. 그 나라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임척 자원은 전혀 없습니다. 단발령을 내려서 단발령에 대한 반대로
나라가 뒤집어지면서 왕이 외국 공사관으로 피신을 해
들어가고 그 와중에 어떻게든지 조금이라도 개혁을 해 보겠다고 했던
개화파들은 급진파든 온파든 다
시가 마르게 됩니다. 조선은 이렇게 해서 몰락의 길로 접부됩니다.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은 어 여론 자체도 그랬지만은 모과
김몽집과 어연중도 을미 사변에 민비 시에 연로가 되어
있다. 그리고 고정은 자기는 갑경장 시작돼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개혁이 다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면서
박영도 버렸던 거고 저 2차 갑장을 했던 박영도 버렸던 거고
3차가 공장을 하고 있던 김홍집 어연중도 버립니다. 입니다.
그 와중에 조선에 남은 인재들은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인재들은 씨가
말릅니다. 이것이 조선이 대한제국이
그다음에는 아무도 고정을 제어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 빠져 버리면서
고종의 전행을 통해서 국력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결국은 [음악] 국권을 넘기게 되는 비극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관처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은
국광이 남의 나라의 공사관에 들어갔다는 거 외에도 결국은 아관파이
상징하는 [음악] 것은 강화도 조약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에 [음악] 해왔던
그 근대화를 향해서 가는 얼마 안 되는 개혁마저도 도
완전히 부인을 [음악] 하고 완전히 거부하면서
갑보장 모든 근대 개혁을 [음악] 끝내 버리는 그러한 사건이었습니다.
네. 오늘은 악관 파천에 대해서 어 살펴봤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본이 주도하는 또는 일본을
따라가고자 하는 개화파들이 주도하는 그러한 개혁에 대해서
쭉 살펴봤습니다. 갑경까지 청일 전쟁까지 살펴봤습니다. [음악]
그리고이 모든 개혁이 결국은 실패하는
마지막 단계인 아관 파천까지 어 살펴봤습니다. [음악]
다음 시간부터는요. 이런 상황에서
전혀 다른 차원에서 조선의 변화를 개혁을 꾀하고 있었던 친미 기독교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한 어 10회, 20회에 걸쳐서 친미
기독교 파라는게 어떻게 형성이 됐고 특히 기독교라는 종교가 정확히 뭐고
소위 말한 개신교가 어떻게 생성이 된 거고 그것이 어떤
과정을 고쳐서 조선에 건너와서 어떤 개혁을 읽어내고 있는지 [음악]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일본을 모델로 하는 개화파의 그 개혁 의지와
와 또 미국의 [음악] 기독교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을 모델로 하는 또 다른 개혁 세력이 어떻게 형성되 있고
그 사상적 바탕이 무엇인지 그런 측면들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음악] 통해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한국인의 탄생 오늘 이만 마치도록 [음악] 하겠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니다.
아관파천 [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 44회
법률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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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18 views  Jan 7, 2026
"도대체 한국 사람은 무엇일까?"
그 질문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한국 사람'에 대해 연구해 온 『한국 사람 만들기』의 저자 함재봉 한국학술연구원장!

법률방송에서 함재봉 원장과 함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등을 통한 한국 사람의 정체성을 알아봅니다.

이번 시간에는 조선 후기, 우리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된 사건 아관파천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으로 인해 조선 사회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불안함을 느낀 고종은 자신을 지켜줄 세력을 찾다 러시아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게 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조선 조정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면서 우리 근대사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분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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